1. 들어가며
예수께서 이제 마지막의 예루살렘 입성을 앞 두고 있는 어느날 갈릴리와 사마리아 지역에 위치한 어느 마을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예수께서는 자신을 고쳐달라고 부르짖는 10명의 나병환자를 보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가서 자신의 몸을 제사장에 보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중에 한 명은 길을 가다가 자기가 나은 줄 알고는 예수께 돌아가서 그분께 엎드려 경배하고 감사했다. 하지만 나머지 9명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 불치병에서 치유받았던 9명의 나병환자는 예수께 돌아가 감사하지 않았던 것인가? 그들에게는 감사할 수 없는 어떤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감사할 마음이 없었던 것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비록 불치병에서 나았지만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하지 않았던 9명의 나병환자에게 대해 살펴봄으로서 우리에게는 이러한 요소가 없는지를 돌아보고자 한다.
2. 감사란 대체 무엇이며, 왜 감사해야 하며 그리고 어떻게 감사하는 것인가?
1)감사의 정의
감사란 무엇인가? 감사란 받은 은혜가 있을 때에 자기에게 은혜를 끼친 분에게 보답하는 마음과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2)감사해야 하는 3가지 이유
그렇다면 왜 감사해야 하는가? 그것은 받은 은혜가 있기 때문이다. 내 능력과 힘으로는 도무지 행할 수 없거나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을 맛본 자는 감사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눅17:121~19에 나오는 열 명의 나병환자의 치유사건을 통해서 왜 감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가? 그것은 3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눅17:18). 그러므로 감사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한 것에 대한 반응이다. 둘째, 감사는 이미 자신이 받은 은혜를 영원히 내 것이 되게 인치는 거룩한 행위다(눅17:17~18). 다시 말해, 감사는 이미 받은 은혜가 영원히 내 것이 되도록 완전히 도장찍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므로 감사할 때에 이미 받은 은혜는 확고하게 내 것이 되는 것이다. 셋째, 이미 받은 은혜 위에 또 다른 은혜가 오도록 씨앗을 뿌리는 행위다(눅17:19).
결국 9명의 나병환자들이 감사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이 정말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말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 감사를 하지 않는 것은 죄는 아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불이익이 주어지는 것도 없다. 하지만 사람은 감사를 통해서 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은 감사함으로써 이미 맏은 은혜를 완전히 자신의 것이 되게 할 수 있으며, 다음에 받을 축복에 대한 씨앗을 뿌리는 기초가 된다.
3)감사하는 3가지 방법
그렇다면 사람은 어떻게 감사할 수 있는가? 가장 기본은 "진실된 마음으로" 하면 된다. 그리고 더불어 3가지 방법으로 우리는 감사할 수 있다. 첫째, 감사함을 입술로 표현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는 그분이 나에게 해 주신 일에 대해서 간증하고 찬양하는 것이다. 이것은 주님께 감사의 예물을 바치고 싶지만 드릴 것이 없을 때 행하는 감사행위다. 둘째, 자기에게 무엇인가를 드릴 수 있을 경우의 감사가 있다. 그때에 농부들은 자기가 농사지은 것으로 감사하면 되고, 매달 월급을 받는 이들은 자신의 수입 중에서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입술로 고백하는 감사로서는 부족하고, 그렇다고 드릴 것은 없는 이는 세번째 방법을 사용하면 된다. 셋째, 자신의 몸을 드려 주님의 몸된 교회를 봉사하거나, 자신이 가진 은사와 달란트를 복음전파와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3가지 방법 중에서 어떤 것을 쓴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잘못 되었다고 나무라지 않으신다. 모두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다양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왜 9명의 나병환자는 예수께서 돌아가서 감사하지 않았을까?
불치병이라는 나병에서 고침받았지만 왜 9명의 나병환자들은 예수께 돌아가서 감사하지 않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정확히 성경말씀에 나와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소한 다음과 같은 3가지의 경우를 상정해볼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이 3가지의 경우의 수에 걸려있지만 우리는 감사하는 작 받을 수 있는 특별한 복을 놓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감사하지 못했던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첫째, 자기에게 일어난 치유의 기적은 자기의 노력의 산물이었다고 생각했었을 수 있다. 즉 그들은 자기의 믿음으로 자신이 나았다는 생각을 했기에 굳이 예수님께서 찾아가 감사해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그들의 기적적인 치유의 시작은 무엇에서부터였는가? 그들의 믿음이었는가? 예수님의 선언(명령) 때문이었는가? 사실 10명의 나병환자가 치유받은 것은 2가지가 함께 있었다. 예수님의 선언(명령)이 먼저 있었고, 그들의 믿음에 따른 순종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치유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예수님 때문이다. 만약 그것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자신의 믿음으로 치유받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들의 치유의 근본과 시작은 예수님에게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기가 기적을 체험하는 가장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이유가 자신의 믿음이라고 착각했을 수 있다.
둘째, 그들은 나중에 감사하려고 했는데, 그때가 아직 안 되었던 것이다. 즉 9명의 나병환자는 자신이 치유받은 사실을 제사장에게 보여주어 확실히 나았다는 선언을 들은 후에 예수께 돌아가서 감사하려고 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당장 감사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감사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감사는 은혜를 받았드면 그 즉시해야 하는 것이 감사다. 시간이 지나면 감사하고픈 마음도 같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까워서도 감사할 수 없다. 그러므로 감사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 순간을 결코 놓쳐서는 아니 된다. 사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물질은 언제나 부족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물질이 많아서 그리고 넉넉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다. 감사하는 이유가 발생했을 때 즉시 하는 것이 감사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감사는 너무 늦은 시기로 잡지 말라. 기왕이면 감사할 사건이 발생했을 때 즉시 실천하는 것이 좋다. 그때에는 정말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셋째, 그들이 주님께 가서 감사를 하려고 한다 할지라도 그들의 수중에게는 드릴 것이 없는데 어떻게 감사할 수 있겠느냐면서 스스로 포기해버렸을 가능성이 있다. 사실 그들은 이때껏 나병환자로 살아온 자들이다. 그들은 이미 동네사람들과 겪리 분리 조치되어 저주받은 환자처럼 취급 받으면서 살아온 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나병에서 고침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주님께 바칠 수 있는 것은 사실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주님의 마음은 다르다. 고후8:12의 말씀처럼, 할 마음만 있으면 [그 마음이] 있는대로 받으실 분이 주님이시다. 그리고 주님은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는 분이시다(고후8:12). 그러므로 자기가 가진 것이 없다고 감사를 미루거나 감사를 놓치지 말라. 감사는 하나님께 영광돌릴 기회와 이미 받은 복을 인치는 행위로, 차기에 받을 은혜를 위한 씨뿌림이기 때문이다. 정 드릴 것이 없으면, 큰 소리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그분이 행하신 일을 찬양으로 표출하라. 그렇게하도 할 때에 우리는 감사하는 자가 받게 될 축복을 놓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4. 나오며
사도바울은 A.D.55년 어느날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물질을 바치는 문제에 있어서 이러한 말을 한 적이 있다. "각각 그 마음에 [이미] [작]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서 억지로나(강제로나) 하지 말지니, [왜냐하면] 하나님은 즐겨(즐겁게) 내는 자를 사랑(아가파오) 하시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감사할 일이 생기면 감사를 통하여 감사의 복이 영원히 우리의 것이 되기를 진짜 바라신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가 받은 이후에도 그것이 영원히 우리의 것이 되기를 바라신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는 늘 감사하는 습관을 가질 필요가 있다. 감사하는 자가 더 많이 감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9년 10월 25일(금)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