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하와를 아담을 위해 "돕는 배필"로 지었다고 하니까, 여자는 일평생 남자의 종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니다. 그리고 비록 낮고 천한 죄인이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 첫째, 구약시대에는 그리스도를 낳는 일이었고 둘째, 신약시대에는 이기는 성도들을 산출하는 일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일을 위해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이 쓰임받았고 지금은 교회가 쓰임받고 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떻게 해야 이기는 성도들 곧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들을 계속해서 산출해 낼 수 있는 것인가?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류는 처음에는 아담이었고 이어서 하와가 창조되었다. 그렇다면 아담은 누군가? 그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최초의 사람이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그를 "오실 자의 표상(예표, 본)(롬5:14)"이라고 정의했다. 이는 아담이 오실 자 곧 그리스도의 예표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사람을 첫째 아담이라고 불렀고, 둘째 사람인 예수님을 마지막 아담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둘째 아담이란 예수님 곧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또한 사도바울은 엡5:32에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아담과 하와의 관계를 들어서 설명했는데, 이때 바울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에 비유했다. 결국 아담이 그리스도의 예표라고 한다면, 하와는 곧 교회의 예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와를 돕는 배필로 지었다는 말의 의미는 대체 무엇인가? 과연 하와는 어떤 역할을 통해서 아담을 돕는 짝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이것은 오늘날 교회의 존재목적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것과 같다. 과연 이 땅에 교회가 존재해야 할 목적은 무엇인가?
2.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데려온 하와는 대체 어떤 존재로 지어진 것인가?
하나님께서 맨 처음 만든 사람은 아담 뿐이었다. 그리고 아담이 혼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2가지를 행하셨다. 첫째, 그를 에덴동산에 두시고 동산 안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셨다. 둘째, 아담이 혼자 있을 때에 에덴동산에 모든 동물을 데려와서 그가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셨는데, 아담이 일컫는 바가 곧 그 동물의 이름이 되었다. 이것은 아직 하와가 존재하고 있지 않을 때에 일어난 사건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도울 짝이 있는가를 찾으셨다. 하지만 아담에게 짝할 만한 상대가 없었다. 사자도 아담에게는 짝이 될 수 없었고, 하늘의 독수리도 아담의 짝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을 좋지 않게 보시고는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어주셨다. 그가 바로 아담의 갈비뼈로 창조된 하와다. 하와는 아담에게 짝할 말한 돕는 자가 지으신 것이다.
3. "돕는 배필"이라는 정확한 의미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아담의 짝으로 창조된 하와의 역할로서 "돕는 배필"이라는 대체 무슨 뜻인가? 한글성경으로는 아담을 도와줄 짝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한글성경과는 거꾸로 번역해야 한다. 왜냐하면 히브리어에 따르면, "돕는 배필"은 "마주하여 도울 자"라는 의미로서, 아담에게 걸맞는 협조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좀 더 세밀하게 분석해보면, 히브리어로 "돕는 배필"은 "에제르"와 "네게드"의 합성어다. "에제르"는 "돕는 자, 협조자, 원조자"라는 의미이고, "네게드"는 "마주하는, 비견할만한, 걸맞는, 대등한"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돕는 배필"이란 "짝하여 도울 수 있는 자"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하와를 어떤 목적으로 지었는가? 아담과 짝이 되어 아담을 도와줄 자로서 지었다는 것이다.
4. 돕는 배필(짝하여 도울 자)로서 하와는 어떻게 아담을 도울 수 있는가?
돕는다고 하니까, 잘못 생각하면 하와가 아담보다 더 능력있고 지혜로운 것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하와는 아담의 머리뼈를 가지고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만약 하와가 아담의 머리뼈로 만들어진 존재라고 한다면, 하와가 아담보다 더 지혜로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와는 아담의 머리뼈가 아니라 갈비뼈로 만들어진 존재다. 이는 갈비뼈가 심장을 보호하고 있듯이 아담의 사랑으로부터 나온 존재가 하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하와가 아담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지혜도 아니고 능력도 아니다. 아담을 사랑하는 것이다. 아담을 사랑해서 그리하여 아담의 자식을 낳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와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도 중요한 돕는 일이다.
5. 돕는 배필로 창조된 여자는 어떤 자식을 낳아야 했는가?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의 타락직후에 그들을 만나셨다. 그리고 하와에게 나무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갈망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창3:16)" 그런데 이에 앞서 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들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와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3:14~15)" 결국 하와가 낳아야 할 자식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아담의 자식이다. 이가 결국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이 존재해야 했던 이유는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아담의 자식을 낳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이 타락해서 멸망받아야 했지만 그들을 완전히 멸하지 아니하시고 그루터기를 남겨두심은 그들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태어나야 했기 때문이다. 고로 이스라엘 민족의 최대의 사명은 메시야를 낳는 일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래서 구약성경 이야기는 "낳고 낳고"하는 족보이야기다. 그리고 마태복음 1장에서 메시야의 42대 조상들의 명단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중에 가끔씩 여인들의 이름도 등장한다. 이러한 여인들로는 "다말, 룻, 라합" 등이 있는데, 이들은 이방여인이었음을 불구하고 메시야의 조상을 낳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것을 갈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드디어 마리아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셨다. 그리스도는 사내아이로 탄생하셨다. 그러면 인류는 끝인가? 그렇지 않다. 여자가 낳은 아담의 후손으로서 메시야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속죄제물로 죽으러 오신 예수님이시다. 이 예수님으로 인하여 모든 인류는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해 전부 죽어 지옥형벌을 받을 위험에 처했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대신 죽으셔서 죄값을 치르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12장에 보면, 그리스도를 낳고 있는 어떤 여인의 모습이 등장한다. 이 여인은 해를 옷입고 있었고 달이 그 발밑에 있었으며, 12별의 면류관을 쓰고 있었는데, 아이를 배어 애써 아파서 부르짖고 있었다. 그러자 그 아이가 태어나면 잡아먹으려고 일곱머리가 달렸으나 열뿔 가진 붉은 용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태어난 아이는 하늘로 올라가버렸다. 그러나 이제는 붉은 용이 여자를 죽이려고 덤벼들었다. 그러자 이 여자에게 독수리의 날개가 주어서 광야에 있는 피난처로 날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여인은 그곳에서 계속해서 사내아이를 낳고 있었다.
그러므로 여자가 하는 일은 사내아이를 낳는 일인데, 한 명만 낳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낳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여자가 낳은 사내아이는 어떤 존재인가? 그것은 메시야로서,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아이다. 그런데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는 예수님 뿐이 아니다. 이기는 자들도 동일하게 만국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그러므로 여자가 하는 일은 메시야를 낳아야 했을 뿐만 아니라,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이기는 자들을 낳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6. 돕는 배필로서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는 어떻게 사내아이를 낳을 수 있는가?
사내아이는 누가 낳는가? 그것은 해를 옷입은 여인으로서 이 여인이 요한계시록 14장에는 144,000명을 산출하고 있는 모체로 등장한다. 이 여인은 실제하는 어떤 여인이 아니라 사내아이를 산출하고 있는 모체라고 가리킨다. 그런데 144,000명은 어떤 존재인가? 그들은 전부 정결한 처녀라고 불려졌다. 고로 돕는 배필로서 그리스도의 신부는 정결함이 요청된다 하겠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돕는 배필로서 교회가 사내아이를 낳으려면 정결함 뿐만 아니라 2가지가 더 요청된다고 하였다. 그것은 신실함(피스티스)과 희생적인 사랑(아가페)이다. 여자가 돕는 배필로서 이기는 성도 곧 천국에 들어가는 사내아이를 산출하려면 여자에게는 3가지가 필요하다고 사도바울이 언급한 것이다. 그것은 곧 정결함과 신실함과 희생적인 사랑함이다. 정결함은 어린양의 피에 자신의 옷을 깨끗히 빨아서 희개하는 것을 가리킨디. 그리고 신실함이란 다른 말로 충성됨을 의미한다. 맡겨진 작은 일에도 충성하는 모습이 신실함인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희생적인 사랑함이다. 곧 아가페 사랑이다. 자신을 희생하지 않고서 여자가 사내아이를 낳을 수는 없다. 예수님의 피로서 자신의 죄를 정결케하는 일을 하기 전에는 사내아이를 낳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작은 일이나마 맡겨주신 일들에 신실함을 보이지 못하는 자들은 결코 사내아이를 낳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정결함(거룩함)과 신실함(충성됨)과 희생적인 사랑이 꼭 있어야 하는 것이다.
7. 나오며
임신과 해산의 수고없이 여자는 결코 자식을 낳을 수 없다(창3:16).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임신과 해산의 수고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다 된 밥에 숟가락 하나 더 얹여놓으려고 할 뿐이다. 그런데 그렇게 신앙생활하는 자가 과연 자신의 믿음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믿음 때문에 죽음까지도 불사할 수 있을까? 묻겠다. 과연 이 땅에 살면서 임신의 수고와 해산의 고통도 인내하지 못하는 자가 과연 어떻게 끝까지 자신을 믿음을 지켜낼 수 있겠는가? 그리고 어떻게 또 다른 열매를 산출할 수 있겠는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므로 그럴수록 첫째, 우리는 구약시대에 아담을 돕는 배필로 지어진 존재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 임신하는 고통과 해산의 수고를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사도바울은 해산의 수고를 겪은 자에게 구원이 주어질 것이라고 했다(딤전2:15). 이것은 사실 모든 공동체의 진리인 것 같다. 하나의 작은 가정공동체라도 그것이 온전히 세워지려면 임신과 해산의 수고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큰 그리스도공동체인 교회가 교회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교회도 임신과 해산의 수고와 고통을 견뎌내야 한다. 자, 우리는 과연 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핍박과 조롱마저 다 이겨낼 자신이 있는가? 인내할 수 있으며, 충성할 수 있는가? 희생하면서 날마다 회개할 수 있는가? 이것을 이겨낸 자가 결국 구원을 얻게 될 것이며,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것이다. 건투를 빈다.
2020년 1월 3일(금)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