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은 이단들이 주로 이용해왔으니까 우리 성도들은 손도 대면 아니 되는가?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연구하다가 이단들이 많이 나와 위험하니까 이 책을 읽어서는 아니 되는가?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성도들은 이 책을 가까이 하는데 주저하고 있다. 그런데 그 이유의 하나가 종교개혁자들의 태도에서 기인한다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그렇다면 과연 종교개혁자들은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말했는가?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은 이 책을 과연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1. 들어가며
요한계시록은 분명 초신자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책이요 어려운 책이다. 또한 이단들이 이 책을 많이 이용하다보니 이 책을 대하기도 사실 두렵기까지 한다. 또한 왠만한 성경지식을 가지고서는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이 한 둘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 책을 덮어두기에는 너무나 많은 영적인 유익을 주는 책이기에 놓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책을 가까이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이 책을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최근 들어와서는 이 방면에 전문가들이 있어서, 이 책에 대해 상세하게 소개해주고 있기 때문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본다면 얼마든지 요한계시록의 영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도 겸손히 이 책을 읽고 듣고 지켜야 한다. 그때에 우리는 도와주실 분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모두에게는 요한계시록의 실제적인 저자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고 계신다. 그분은 바로 보혜사 성령님이시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받았던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 이 책을 깨닫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요한복음 14~16장을 읽어보았는가? 거기에 보면,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떠난 후에 당신이 보내주실 보혜사 성령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고 계신다. 이 성령께서는 예수께서 누군지를 알려주실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시는 분이시다(요14:26,15:26).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는 요한계시록 책이 비록 초신자가 읽기에는 어려운 책이기는 하지만 이 책을 자주 읽고 자주 듣고 또한 거기에 기록된 대로 지켜서 이 책이 상식이 되게 하여 복받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 앞으로 요한계시록은 어떤 책이 될 것인가?
최고의 기독교 역사가였던 유세비우스(A.D.260~340)는 요한계시록이야말로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책이라고 증언한다. 하지만 이 책은 주로 몬타누스주의자들과 같은 분파주의자들이나 이단들이 주로 많이 사용하였기 때문에, 기독교의 정통신앙을 가진 자들에게는 이 책을 좀 터부시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요한계시록은 예로부터 이단에서 많이 사용하는 책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을 이단들이 계속 이용하도록 내버려둔 채, 종교개혁자 칼빈도 요한계시록만큼은 주석을 쓰지 않았으니 이 책은 덮어두어야 한다고 생각하고는 이 책을 멀리해야 하는 것인가? 결코 아니다. 이 책의 저자도 "이 책을 인봉하지 말라"고 권면한다(계22:10). 앞으로 종말의 시간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이 책의 관심는 더 올라갈 것이다. 이 책이 한 편으로는 "장차 되어질 일을 기록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의해 기록된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이 책을 주의 깊에 읽어야 한다. 그리고 잘 모르겠을지라도 전문가의 지도를 받아서 점차 사도요한이 말하고자 했던 그 의미를 찾아가야 한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영적인 유익을 자기의 것을 취할 수 있어야 한다.
3. 요한계시록은 무엇을 기록한 책인가?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은 어떤 책이며 무엇을 기록한 책인가? 어떤 사람은 요한계시록이 "미래에 되어질 일들"에 다한 기록이라고 한다. 물론 이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은 미래에 되어질 일들을 다 보여주기 위해 쓰여진 책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황제숭배를 거부함으로 인하여 죽임당할 위기에 직면해 있는 성도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 위해 쓰여진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책에서 나는 과연 누구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따라가야 할 것인지를 정하고, 우리가 죽음 다음에 들어가게 될 천국을 사모하기 위해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그렇다. 이 책 우리의 주님이요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과연 누군지를 알려주는 책이며, 어떤 자가 천국에 들어가는지를 알려주는 놀라운 책이다. 사실 예수께서 보좌에 앉아계신 하나님이요 전능자인 것을 과연 어떤 책이 이 책처럼 정확히 가르쳐주는가? 그리고 이 책은 믿음으로만 천국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믿음을 끝까지 인내로서 지켜내는 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 회개없이 구원받을 수 없다는 진리까지 확실히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을 때에 미래에 일어날 일에 관해 관심을 갖기보다는 이 책이 예수님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그분이 누군지를 아는 것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장차 우리가 죽어서 들어가야할 천국이 어떤 곳인지를 배우기 위해 이 책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4. 이 책에 대한 종교개혁자들의 평가는 어떠한가?
그런데 놀랍게도 요한계시록에 대한 종교개혁자들의 평가는 냉혹하리만큼 차갑다. 심지어 어떤 이는 이 책을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도 주장하기도 한다(루터). 사실 이 책을 누가 기록했는지 본 자가 있어서 그가 "이 책은 사도요한이 기록한 것입니다"라고 증언해주지 않는 이상 우리는 이 책의 저자가 누군지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므로 초기교회 성도들은 성경의 기록자체를 통해서 과연 이 책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책인지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는 우리에게 신약성경 27권을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책이라고 후손들에게 전해주었다. 그러므로 아무리 누군가 사도의 이름을 빌려 책을 기록했다고 주장할지라도 그 책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책이 아니었을 때에는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 책을 성경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우리에게 정경으로서 전해진 놀라운 계시의 책의 하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자들이 이 책을 바라볼 때에는 하나의 문서라고 생각했지 성경책으로 보지 않았다. 이 책이 너무 어려웠던 것일까? 아니면 초기교회 성도들부터 지금까지 이단들이 많이 사용했기에 그것을 꺼려했던 것인가? 분명한 사실은 종교개혁자들도 이 책에 대한 과거의 기록들을 잘 알았을텐데, 왜 이 책을 도외시한 것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종교개혁자들의 비판적인 기록들은 오늘날까지 요한계시록을 일반 성도들이 읽기에 매우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이다. "혹시 이 책을 읽다가 이단에 빠지는 것은 아닌가?" "칼빈도 이 책에 대해 주석을 쓰지 않았는데, 내가 읽는다고 뭐가 깨달아질 수 있겠어?" 하지만 이 책은 좀전에도 언급했지만 "삼위일체론"과 "그리스도론"과 "구원론"에 있어서 마지막 계시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중요하고 또 중요하는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종교개혁 당시 학자들은 요한계시록을 어떤 책으로 평가했을까? 몇 명의 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첫째, 루터(A.D.1483~1546)는 "사도들은 환상을 다루지 않는다. 이 책은 사도적이지 않고 성령으로 감동된 하나님의 말씀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에스라4서를 평라하듯 요한계시록을 평가한다. 그리고 성령이 그것을 만들어냈다는 점을 감지하지 못한다"고 말함으로써, 그는 정경의 필수적인 요소로서 성령의 감동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이 책을 다른 유대묵시문헌과 동일시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둘째, 에라스무스(A.D.1466~1536)는 1524년에 출간한 "신약성경 쉽게 풀어쓰기"에 요한계시록에 대해서만큼 서론을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요한의 성경말씀이라기보다는 약속의 노트를 쓰고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셋째, 츠빙글리(A.D.1484~1531)도 요한계시록에 대한 1528년 베른 토론에서 "나는 요한계시록의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책은 성경책이 아니기 때문이다"고 말한 바 있다. 넷째, 칼빈(A.D.1509~1564)은 츠빙글리의 입장을 "침묵 가운데" 그냥 넘겨버렸다. 그리고 그는 신약성경 중에서 요한계시록 주석을 쓰지 않음으로서 당신의 분위기를 남긴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다. 종교개혁자들은 요한계시록을 상당히 비판적으로 보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러한 전통은 오늘날에 우리에게까지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요한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소아시아의 일곱교회에 대해서는 설교할 뿐 다른 부분은 거의 설교하지 않는다. 또한 요한계시록에 관심을 가지려는 성도들에게는 위험한 책에 관심갖지 말라고 자제를 부탁하는 실정이다.
5. 이 책은 왜 인봉해서는 아니 되며, 꼭 이 책을 읽어야 하고 들어야 하고 거기에 기록된 대로 지켜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일반 성도들은 요한계시록을 손도 대지 말아야 하는가? 이단들이 사용하니까, 위험하니까, 해석하기 어려우니까 관심도 갖지 말아야 하는가? 아니다. 결코 아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인터넷만 클릭하면 정보가 와르르 쏟아지는 세상이요, 유튜브를 검색해보면 요한계시록 강해가 수도 없이 나오는 세상이다. 그것을 보지 말라고 막는다도 해서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이 책을 누구든지 읽도록 해야 한다. 누구든지 보고 읽을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이다. 다만, 이 책이 어떤 책인지를 성도들에게 설명해주고 알려준 다음에 그렇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 책을 무작정 읽게 되면, 성도들은 그만 혼란에 빠지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구약성경을 꿰뚫고 있어야 해석할 수 있는 상징적인 표현들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신론부터 시작하여 삼위일체론, 그리스도론, 성령론, 인간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을 비롯하여, 부활론, 마귀론, 귀신론까지 꽤뚫고 있어야 한다. 또한 요한계시록을 해석해놓은 과거의 자료들 즉 교회사적인 해석까지도 꿰뚫고 있어야 이 책을 바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이단을 이단이라고 부르는지 아는가? 그것은 성경에 대하여 예수님의 해석과 사도들의 해석이 아닌 다른 것을 가지고 들여와서 해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심을 가지고 보면 반드시 길이 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다보면 언제가는 이 책이 훤히 다 열릴 것이다. 개념 하나하나에 감격하고 장면 하나하나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이러게 소상하게 하나님에 관하여, 구원에 관하여, 교회와 종말론에 관하여 기록해놓은 책이 또 있을까 하고 감사하고 또 감격해 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우리도 이제 이 책을 공부하고 이 책을 읽어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도요한은 이 책을 쓰면서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그렇다. 성도라면 이제 이 예언의 말씀을 읽어야 하고 들어보아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기록된 대로 지켜야 한다. 그래서 구원받아서 꼭 천국에 입성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참고로, 정말 성경원문으로 풀어낸 요한계시록강해를 듣기 원하신다면, 정병진목사의 52주 요한계시록 강해를 클릭해 보시기 바랍니다.
https://dongtanms.kr/board_qHUM98
6. 나오며
그러므로 사도요한은 이 책을 마무리하면서 이렇게 기록해놓았다.
계22:10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계22:18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계22:19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그렇다. 이 예언의 책에 무엇인가를 더하는 자는 재앙을 만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약과다.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무엇인가를 빼버린다면 그는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거해버린다고 하였다. 결국 천국에 못 들어가게 하겠다는 말이다. 이 책에 대한 무용성에 대해 말하거나 이 책을 읽지 못하게 하는 이들에 대한 엄중한 경고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이 책을 이단의 전유물로만 남겨둘 셈인가? 이 책이 주는 놀라운 영적인 계시들을 언제까지 닫아놓아야 하는가? 아니다. 이제는 이 책이 내가 가장 소중한 말씀이 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상징적인 단어들과 계시들이 상식적인 이야기가 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이 진정 말하고자 하는 것을 깨달고 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2019년 11월 29일(금)
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