눌라운 사실은 우리말 개역성경이 진리를 속이고 우리를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것에는 요10:29도 있고, 요6:37과 39절의 말씀도 있다.
그런에 오늘 이 시간에는 요6:37과 39절의 말씀이 얼마나 잘못 번역되어 있어서, 칼빈주의에 맞게금 틀어져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런데 왜곡이 먼저 있었고 나중에 칼빈주의의 교리가 나왔는지, 아니면 칼빈주의자들에 의해 성경이 왜곡되었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묘하게도 요6:37과 39절의 말씀은 다 칼빈주의 예정론의 교리에 맞게금 잘못 번역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가. 요한복음 6장 37절에 대한 왜곡된 번역
그렇다면, 요6:37과 39절의 말씀은 대체 무엇이 어떻게 잘못 번역되어 있는 것일까? 먼저, 요6:37과 39절이 나오는 문맥을 한 번 개역성경으로 보도록 하자.
요6:35-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36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예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에 당신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다(요6:35a). 그러므로 예수님을 향하여 나아오는 이는 결코 굶주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6:35b). 그리고 주님을 믿는 이는 어느 때든지 목마르지도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6:35c). 그러시면서 예수님을 이미 본 채 있었던 자들이지만 현재 믿지 않고 있는 이들도 있다고 말씀하셨다(요6:36).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구절이다. 우리말 개역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해노았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요637a)” 하지만 이 말씀은 잘못 번역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말 개역성경에 번역된 대로 본다면,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시는 자만 예수님께 나아오게 될 것이고, 예수님께 나아오는 자를 예수님께서는 결코 내쫓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이게 무슨 뜻인가? 이렇게 번역하면 안 되는 것이다. 헬라어원문에는 그렇게 쓰여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6:37의 말씀이 지금 우리말 개역성경처럼 번역됨에 따라 극단적인 칼빈주의자들을 이 말씀을 인용하여 이렇게 주장한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보내주지 않는 자는 어느 누구도 예수님에게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 마음대로 예수님께로 나아가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자는 없다. 그럼, 어떤 자가 예수님께로 나아가서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그것은 오직 아버지께서 만세전부터 구원하시려고 작정한 자들이다. 이런 자들을 아버지께서도 예수님에게 보내주실 것이다. 그러면 그가 예수님께로 나아가서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예수님께서 나아가서 구원받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다 구원받기로 만세전에 예정된 자만 구원받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극단적인 칼빈주의자들이 말하는 요6:37절에 대한 해석이다.
그러나, 헬라어원문은 우리말 개역성경처럼 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이제는 요6:37에 대한 헬라어원문을 찾아보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히 살펴보도록 하자.
그렇다. 이 문장이 바로 요한복음 6장 37절 말씀에 대한 헬라어원문이다. 이 문장을 직역해보면 다음과 같다.
요6:37[헬라어직역] 아버지께서 내게 [현재] 주시고 있는 모든 것(중성,단수)이 나를 향하여 다다를(도달할,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나를 향하여 [현재] [스스로] 오고 있는 자(사람)(남성,단수)를 [나는] 결코 [확실히] 밖으로 내어쫓지(내어던지지) 않을 것이다.
이 말씀을 보면, 우리말 개역성경과는 앞부분의 절반이 판이하게 다르게 번역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두 개의 번역을 비교해보자.
요6:37[개역개정]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남성,단수)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요6:37[헬라어직역] 아버지께서 내게 [현재] 주시고 있는 모든 것(중성,
단수)이 나를 향하여 다다를(도달할,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나를 향하여 [현재] [스스로] 오고 있는 자(사람)(남성,단수)를 [나는] 결코 [확실히] 밖으로 내어쫓지(내어던지지) 않을 것이다.
헬라어신약성경(TR이든 네슬-알란드이든)에서는 분명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시어 예수님을 향하고 다다르고 있는 대상은 사람이 아니다. 중성단수명사로서 “~는 모든 것”이다. 왜냐하면 “모두”에 해당하는 헬라어단어(‘판’)가 남성당수명사(‘파스’)가 아니라 “중성단수명사(‘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말 개역성경은 아버지께서 예수님께서 주시고 있는 대상을 남성단수명사인 “~는 모든 자(사람)”의 뜻으로서 “~는 자는 다(모두)”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는 그 뜻이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시고 있는 모든 사람이라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우리말 개역성경 외에 다른 한글 번역본에서는 어떻게 번역하고 있을까? 놀랍지만 우리말 개역성경과 똑같거나 다음처럼 아예 “~는 사람”이라고 번역해놓고 있다. 자, 그럼, 몇 개의 번역본만 살펴보자.
요6:37[표준새번역]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또 내게로 오는 사람은, 내가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요6:37[공동번역] 그러나 아버지께서 내게 맡기시는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올 것이며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요6:37[쉬운성경]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은 다 내게로 올 것이며, 내게로 오는 자르 나는 결단코 쫓아내지 않을 것이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한국에 나와 있는 수십 종의 한글성경들 중의 단 한 가지의 성경도 요6:37의 말씀을 헬라어원문을 따라 중성단수명사(모든 것)로 번역한 성경은 없다. 더욱이 후대에 번역되었으므로 보다더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표준새번역성경>이나 <공동번역성경> 그리고 <쉬운성경>에서조차도 전부 다 중성단수명사를 남성단수명사인 ‘사람’으로 번역해놓고 있다. 즉 어떤 번역본들 친절하게도 “~는 사람은 다” 혹은 “~는 사람은 누구나”라고 아예 대놓고 번역하고 있었다.
그래도 최근들어와 헬라어에서 직역해놓은 성경들이 있기에 그러한 번역본들 좀 다르지 않을까 해서 요즘 시중에 나와있는 직역성경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이것도 오역은 똑같았고, 이런 우리말 헬라어직역성경들은 아예 ‘사람’이라고 분명하게 번역해 놓았다.
요6:37[히브리어헬라어 직역성경(허성갑역)]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사람은 다 내게로 올 것이고,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바깥으로 내쫓지 않을 것이다.
요6:37[원문번역주석성경(고영민역)]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올 것이며 또 내게로 오는 사람을 나는 결코 밖으로 내어 쫓지 않을 것이다.
요6:37[회복역]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들은 모두 나에게로 올 것이고, 나는 나에게 오는 사람을 결코 쫓아내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 최근에 헬라어원문에서 번역했다고 해서, 여러 사람들이 그래도 찾고 있는 <허성갑역>이나 <고영민역>에서조차도 요6:37에 나오는 앞부분을 남성단수명사(~는 사람)로 잘못 번역하고 있다. 더욱더 놀라운 사실은 회복역이라는 성경은 중성단수명사(~는 모든 것)를 남성단수명사(~는 사람은 다, ~는 사람은 모두)를 넘어서, 남성복수명사(~는 사람들은 모두)로 번역해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그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어찌 그뿐인가?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시고 있는 모든 것이 예수님에게로 ‘오는’ 것이라고 번역하는 것도 헬라어원문의 뜻을 제대로 번역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헬라어원문에 보면, 첫째, 아버지게서 예수님에게 주시고 있는 모든 것이 “나에게(me)”가 아니라 “나를 향하여(toword me)”라고 나와 있으며, 둘째, “온다”고 번역한 헬라어 단어도 ‘에르코마이(come)’가 아니라, ‘헤코(reach, arrive)’라는 동사이기 때문이다. 이 동사는 마24:14 등에 나오는 동사로서, “다다르다, 도착하다, 도달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6:37의 전반부는 이렇게 번역되어야 가장 올바른 번역이라고 하겠다.
요6:37a[헬라어직역] 아버지께서 내게 [현재] 주시고 있는 모든 것(중성,단수)이 나를 향하여 다다를(도달할,도착할) 것이다.
그렇다. 이것을 종합해서 정리하자면 이렇다. 요6:37에 대해, 우리말 개역성경에서는 중성단수명사(‘판’)를 남성단수명사(‘파스’)로 번역해 놓음으로서, 뜻이 전혀 다르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 아버지께서 미리 정해놓은 자만 예수님에게 나오게 될 것이고, 마치 그런 자만 구원얻을 것처럼 번역해놓았는데, 사실은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시고 있는 어떤 모든 것이 예수님에게 도달하게 되어서, 예수께서는 그것을 가지고 자기에게 나아오는 자들을 다 구원해 주실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극단적인 칼빈주의자들은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보내주는 자만 예수님에게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아무나 예수님에게로 나아와서 구원얻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반드시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보내준 자만 구원얻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크게 잘못된 해석이자 왜곡이다.
나. 요한복음 6장 39절에 대한 왜곡된 번역
한편, 그 다음에 나오는 요6:39절의 말씀도 요6:37의 말씀과 마찬가지로 왜곡(歪曲)된 번역 중의 하나다. 이 구절도 요6:37의 말씀처럼, 우리말 개역성경에서는 헬라어원문과는 달리 만세전예정을 지지하는 성경구절처럼 번역해 놓았다. 요6:39의 내용은 “아버지의 뜻이 무엇이냐?” 하는 것인데, 우리말 개역성경에 번역되어 있는대로 본다면,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보내주신 자만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구원하실 것 같은 의미처럼 보인다.
자, 그럼, 우리말 개역성경과 헬라어원문(이곳은 TR이나 네슬-알란드원문이나 동일함)을 동시에 비교해보도록 하자.
요6:39(개역개정)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사람)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요6:39(헬라어직역) 그런데 나를 [과거에] 보내셨던 아버지의 뜻은 이것이다. 그것은 [내가] [그분이] 나에게 [이미] 주신 채 있는 모든 것(중성,단수)을 그것(중성,단수)에서부터 [확실히] 잃어버리는(사라지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지막 날, [내가] 그것(중성,단수)을 [확실히]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함이다.
그렇다. 우리말 개역성경에서는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의 뜻은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사람 중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헬라어원문에 의하면, 이와는 전혀 다른 말씀이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것들이 있는데,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마지막 날에 확실히 다시 일으키는 것이라는 뜻이다. 한편, 요한복음 6장 37절에서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시고 있는 모든 것이 예수님 자신에게 도달할 것이라고 언급하셨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것을 사용하여 예수님에게 스스로 나아오고 있는 자를 결코 밖으로 내어쫓아내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이 두 말씀을 종합해보면, 예수님을 이 땅에 이미 보내셨던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에게 계속해서 어떤 것을 보내주고 계셨다. 그런 것으로는 성령도 될 수 있고, 지혜와 명철, 권세와 능력, 영광, 이름 등이 있을 수 있다. 예수께서는 이런 것을 사용하여, 예수님에게로 스스로 나아와서 구원얻기를 원하는 자들을 하나도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맞아들이신다고 하셨다. 이는 그들에게 생명을 주어 구원을 얻게 하시기 위함이다. 그리고 혹시 아버지께서 예수님에 주신 것 중의 하나라도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마지막 날에 그것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어질 것들은 하나도 없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6:40의 말씀이다.
요6:40[헬라어직역] 그리고 내 아버지의 뜻은 이것이다. 아들을 [현재] 보고 있는 모든 자(사람)(남성,단수)와 그분 안으로(그분을) [현재] 믿고 있는 [모든 자]가 영생을 [계속해서] 얻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날 내가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다.
그렇다. 예수님 자신을 향한 아버지의 뜻이 있고(39절), 예수님을 보고 믿는 자를 향한 아버지의 뜻(40절)이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향한 아버지의 뜻에 따라, 자신을 보고 믿고 있는 자를 향한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실 것이다. 그것은 자신을 보고 믿고 있는 자가 영생을 얻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생명의 떡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보고 믿는 자는 영생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혹시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죽더라도 예수께서는 그 사람을 마지막날에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다.
이상으로 우리는 요6:37과 39절 말씀이 어떻게 왜곡되어 번역되었고 그것을 극단적인 칼빈주의자들이 만세전 예정론을 뒷받침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해왔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 본문들은 극단적인 칼빈주의자들의 주장처럼, 만세전 예정론을 뒷받침할 수 있는 성경구절이 아니었다. 오히려 누구든지 구원을 얻기 위해 예수님에게 나아오고 있고 믿고 있는 자를, 예수께서 계속해서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어떤 것을 활용하여 그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는 것임을 살펴보았다. 그래서 이제는 요한복음 6장 35절부터 40절까지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그대로를 따라 번역해보고자 한다. 즉 헬라어에서 직역해보는 것이다. 그러면,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우리말 개역성경이 얼마나 이 부분에서 중요한 구절을 왜곡되게 번역해놓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바른 구원론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요6:35~40(헬라어직역) 그러나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생명의 떡이다. 나를 향하여 [현재] [스스로] 나오고 있는 자는 결코 [확실하게] 죽지 않을 것이다. 내 안으로(나를) [현재] 믿고 있는 자는 결코 [확실하게] 영원히 목마르지도 아니할 것이다. 36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다. 나를 [이미] 본 채 있으면서도 나를 믿지 않는다는 것을. 37 아버지께서 내게 [현재] 주시고 있는 모든 것(중성,단수)이 나를 향하여 다다를(도달할,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나를 향하여 [자기를 위해] [현재] 오고 있는 자(사람)(남성,단수)를 [나는] 결코 [확실히] 밖으로 내어쫓지(내어던지지) 않을 것이다. 38 왜냐하면 내가 하늘로부터 [이미] 내려온 채 있는 것은, 내 뜻을 [계속해서] 행하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나를 [과거에] 보내셨던 분의 뜻을 [행하고자 함이다] 39 그런데 나를 [과거에] 보내셨던 아버지의 뜻은 이것이다. 그것은 [내가] [그분이] 나에게 [이미] 주신 채 있는 모든 것(중성,단수)을 그것(중성,단수)에서부터 [확실히] 잃어버리는(사라지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지막 날, [내가] 그것(중성,단수)을 [확실히]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함이다. 40 그리고 내 아버지의 뜻은 이것이다. 아들을 [현재] 보고 있는 모든 자(사람)(남성,단수)와 그분 안으로(그분을) [현재] 믿고 있는 [모든 자]가 영생을 [계속해서] 얻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날 내가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다.
그렇다.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스스로 구원얻기 위해 예수님께서 나아온다면 그 어느 누구도 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유대인들 중에는 예수님을 이미 보아왔지만 그때까지도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다고 애석하게 생각하셨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자기에게 나아와서 자기를 믿는 자를 결단코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구원하시겠다는 의지를 표현하셨는데, 그것은 자신을 향한 2가지 뜻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당시에 주시고 있는 어떤 것들이 있는데, 그것들 중에 하나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예수님에게 도달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향하여 나아오는 자는 결코 쫓겨나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예수님의 뜻이 아니라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좀 더 나아가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던 아버지의 뜻은 이미 예수님에게 주신 채 있는 모든 것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며, 마지막날에 가서라도 그것을 일으켜 세울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어서 사람들을 위한 아버지의 뜻을 계시하셨으니, 그것은 예수님을 바고 있고 믿고 있는 모든 이가 영원한 생명을 갖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를 마지막 날에 반드시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라고 하셨다. 이것이 바로 요한복음 6장 35절에서 40절까지의 본뜻이다.
그렇다. 요한복음 6장 37절의 헬라어원문을 직접 보니,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당시 주시고 있는 것은 어떤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결코 만세전에 아버지께서 구원하시려고 작정된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아버지께서 아들로 하여금 아들에게로 나아오는 자들을 다 구원할 수 있도록,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시고 있는 모든 것이었다. 그러한 모든 것들로는 하나님의 지혜도 될 수 있고, 보혜사 성령도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능력이나 권세도 될 수 있을 것이고, 아버지의 이름도 되고, 거의 모든 것들이 다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러한 모든 것으로 당신을 바라보고 당신에게 나아오고 있고 믿는 모든 자를 다 구원할 것이다. 그런 자는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 다시 일으켜세워 천국으로 데려가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동안에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만 주시고 있었던 어떤 것들이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그때 당시에도 예수님에게 도착하고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만 주시는 것으로서,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어떤 것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끝까지 예수님을 믿으며, 그분을 따라가게 된다면 우리도 반드시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결코 중간에 타락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예수님을 생명의 떡으로 알고 그분을 믿으면 우리의 영혼이 목마르지도 배고프지 않고 죽지도 않는다는 것을 믿고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믿음이 필요하다. 예수님이 누군지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이러한 믿음은 예수께서 당시에 군중들에게 들려주신 말씀을 늘 경청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믿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이 하신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들도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셨던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우리는 구원얻게 될 것이다.
그렇다. 요6:39의 말씀도 요6:37의 말씀처럼,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의 뜻이라는 것이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보내주시는 사람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라는 말씀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버지의 뜻은 이미 예수님에게 주신 채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예수께서 당신을 바라보고 당신을 믿는 자들 중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지키어내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그것을 가지고서, 예수께서도 자기에게 나아오는 자를 사탄마귀로부터 지켜내어 천국에까지 인도해 들일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