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진정 회개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 사람의 내면에 들어갈 수도 없고, 그 사람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하지만 우리는 베드로의 경우를 통해 짐작해볼 수는 있다. 베드로가 고기잡이의 기적을 통해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는 그는 하나님을 만났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는 훗날 죄짓고 넘어지기는 했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만나지 못한 자는 한 번 넘어지고 나면 다시 일어나기 쉽지 않다. 아니 예수 믿기 전의 상태로 가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된 자라야 진정 회개한 자라고 진단을 내릴 수가 있을까? 그것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의 모습 속에서 살펴볼 수 있다. 그들은 그후로 죽었으면 죽었지 주님을 부인하지 않았으며, 주님 때문에 옥에 갇히는 것을 결코 무서워하지 않았다. 주님 위해 죽는 것조차 기쁨으로 여겼다. 무엇이 이렇게 저들을 바꾸어놓았는가? 그것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에, 주님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오늘은 그것을 알아보자.
1. 들어가며
누가 진정 회개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저마다 회개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행동으로 지은 죄들이나 말로써 지은 죄들을 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음으로 미워하거나 시기한 것도 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회개만을 회개로 아는 자는 자꾸 자신이 범죄하고 또 회개하고 또 범죄하고 회개하는 것을 발견함에 따라 자기 자신에 대해 실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회개를 한 사람은 반복적으로 짓는 죄에도 쉽게 넘어지지 아니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어떻게 죄용서를 받게 되었는지를 가슴이 떨리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베풀어준 죄용서가 얼마나 커다란 것인지를 속으로 깊이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어떤 사람이 진정 회개한 자인지 그리고 그런 자가 왜 반복적으로 죄를 지을 수 없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사람은 언제 회개하게 되는가?
사람은 과연 언제 회개하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그가 하나님을 만날 때다. 베드로의 경우를 보라. 그가 어느날 주님 말씀에 순종하여 고기잡이의 기적을 체험하는 순간, 그는 순간에 알아버렸다. 예수께서 만물의 창조주이라는 사실을 알아버린 것이다. 그러자 그는 그분 앞에 엎드리고 만다(눅5:8).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5:8)"하고 말이다. 그렇다. 사람은 예수님이 누구시며 그분이 우리를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알게 될 때, 비로소 회개하기를 시작한다.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하나님이 오셔서 행한 일인 것을 깨닫게 될 때 사람은 비로소 회개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흘려진 피가 하나님의 피였음을 알게 될 때 통곡하며 회개하는 것이다(행20:28)(그러나 그 피를 "하나님의 피"라고 말해서는 아니 된다. 그 이유는 조금 있다고 살펴보자).
3. 예수님은 누구신가?
그렇다.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이 2가지 방면이 있는 것이다. 하나는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다시 말해 그분이 아들로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한 일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분이 하나님이시다는 것이다. 이는 그분이 하나님으로 오셔서 하신 일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두번째 방면은 그렇게 강조되지 않고 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자 메시야로 오셔서 행하신 일에 대해서는 줄줄 꿰는 이들이 많지만,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에 대해서 절반만 알고 있음을 말해 준다.
사실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셔서 이 세상에 하신 일은 그분이 아들로서 하신 일이며, 메시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신 일이다. 이때 예수님은 사람으로서 그 일을 감당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육신을 입고 오심으로 그분은 피를 흘릴 수 있으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또다른 한 면이 있다. 그것은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그것은 그분의 부활로 인하여 비로소 알려진 것이다.
4.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인가 하나님이신가?
그러나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이 목도했던 예수님은 이전의 예수님이 결코 아니었다. 이미 예수님은 나타났다가 사라지실 수 있는 분이 되셨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 되신 것이다. 동시존재가 가능한 하나님이 되신 것이다. 아니 하나님의 원래대로 되돌아가신 것이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예수님을 더이상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못했다. 그분은 선생님 수준이 아니라 하나님이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마는 주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즉 "주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였다(요20:28).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이 누군지를 알게 될 때, 왜 통곡하며 회개하게 되는지 그 이유를 살펴볼 수 있다. 그것은 이전까지 보통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보내어 인류의 죄값을 치르셨다고 말이다.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의 신분으로 오셔서 그 일을 감당했던 것이다(딤전3:16). 사도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자.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딤전3:16)" 그렇다. 이 구절에서는 예수께서 육신을 입으셨다고 말씀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셨고, [죽고 부활하신 뒤에] 영광가운데 올려지셨다고 언급하고 있다. 고로 우리는 성육신하신 그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요한복음 3:16을 보면 이와 다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었기에 그의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이다.
이렇듯 예수님에게는 2가지 방면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아서 오신 분이라는 방면과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라는 방면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아서 오신 분이라는 의미로 볼 때(요8:42,11:42), 예수님은 아들이시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사람의 아들이다. 그리고 그냥 아들이라고도 불리운다. 하지만 예수님에게는 또 다른 측면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언급해보면,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셨다"고 말씀하셨다(요8:42,16:28,30).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보냄을 받아 오신 분인 것을 믿지 않았고,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분이라는 것도 믿지 않았다(요16:9).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으로부토 보냄을 받은 자로서 메시야이자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아예 믿지 않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분이라는 것도 믿지 않았다. 여기서 잠깐 요한복음 17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를 보자. 그때 예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셨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제자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요17:8)" 그렇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일 뿐만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나오신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분이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분이 하나님이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공생애 기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다(요14:9~10)".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다(요12:44)", "나를 보는 것은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다(요12:45)",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요14:9)", "너희가 들은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시나(요14:24)", "나를 미워하는 것은 나와 내 아버지를 미워한 것이다(요15:22,24)", "나를 알았다면 내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요8:19)", "나를 영접하는 것은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다(요13:20)" 결국 예수께서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10:30)"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그분이 육체로 계실 때에도 그분은 하나님으로서만 하실 수 있들을 하실 수있었다. 예를 들어, 바람과 풍랑을 잔잔케 하시고, 바다 위를 걸어서 오셨으며, 말씀 한 마디로 나무를 뿌리채 마르게도 하셨기 때문이다. 또한 날 때부터 소경된 자의 눈을 즉시 뜨게 해주기도 하셨다. 이런 일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었다. 그 일들은 선지자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증거는 예수께서 죽으신 후에 비로소 나타났다. 그것은 바로 부활이다. 사람이 한 번 죽게 되면 다시 살아날 수는 없다(물론 몇몇 사람들이 살아나기는 했지만 다시 죽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살아나셨으며 다시 죽지 않았다. 사실 예수께서 육체를 입으신 메시야로서 해야 할 사역은 십자가에서 고난받고 죽으시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죽었다가 3일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 자신의 죄로 죽지 아니하고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죽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함이다. 만약 예수께서 인류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데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것은 예수께서 자신의 죄 때문에 죽지 않았다는 것과 우리를 대신하여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증명해준다. 고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통해서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된다.
5. 예수님의 피와 예수님의 죽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렇다. 예수님은 분명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았던 아들이시며 메시야이시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하나님 자신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이지만 하나님이 오신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 피흘리신 것은 아들이 피를 흘린 것이지만 하나님이 피흘린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피를 "하나님의 피"라고 말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피가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피와 살과 뼈가 없으시다. 그러므로 십자가상에서 흘려진 피는 아들의 피요 예수의 피인 것이 맞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피였다는 것을 고백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6. 나오며
사람이 언제 진정 회개하는지 아는가?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성육신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신 것임을 아는 때다. 하늘 어딘가에 있던 아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이 아니다(요16:28). 예수께서는 그때에 아버지로부터 나오셔서 마리아의 태중에 잉태되신 것이다. 그러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으로 오셨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회개하지 않을 수 없다. 나를 위하여 그 어려운 선택을 하셨음에 황송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분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아들의 피이지만 그것이 하나님이 흘리신 피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진실로 회개하게 된다. 이 어찌 말로다 표현할 수 있는 은혜란 말인가? 하나님의 고귀한 희생과 엄청난 무게의 사랑에 우리는 감복해하지 않을 수 없다.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살리기 위해 하나님께서 피조물이 되시고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데에 형언할 수 없는 전율을 느끼게 된다. 그때에 비로소 사람은 진정 회개하게 된다.
당신은 진정 회개한 사람인가? 아니면 회개하는 과정에 있는 사람인가? 그렇다면 오늘부터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다시 묵상해보라. 그리고 그분의 낮아지심과 고난받으심과 죽으심을 다시 한 번 묵상해보라. 그리고 그것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 전능자가가 행하신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묵상해보라. 그러면 회개가 저절로 나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