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는 누가 썼을까? 그리고 왜 썼을까? 이것만 알아도 히브리서가 어떤 책인지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히브리서는 서신서에 속하지만 일반서신으로 분류되고 있다. 대상이 분명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미 믿음으로 구원얻은 자가 다시 옛생활을 되돌아가려는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받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음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니라 무려 다섯번이나 경고하고 있다. 그리고 그 끝은 지옥이 될 것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히브리서는 야고보서와 비슷하다고 하겠다. 구원탈락의 위험성을 경고하기 때문이다. 자, 어떤 자가 구원에서 미끄러질 수 있을까? 구원에서 탈락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가? 이제 그것 안으로 들어가보자.
1. 들어가며
성경은 어떤 책인가? 경고의 책인가 아니면 위안의 책인가? 그것은 성경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성경을 "경고의 책"으로 보는 자는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자신의 구원을 이뤄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성경을 "위로의 책"으로 보는 자는 하나님께서 어찌하든지 그리스도인들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어 주실 것을 믿음으로 살아갈 것이다. 둘 다 나쁜 것도 아니요 둘 다 틀린 것도 아니다. 하지만, 오늘 이 시간에는 성경에 우리 믿는 이들에게 주시는 경고의 측면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자 한다.
2. 히브리서는 누가 썼는가?
히브리서는 과연 누가 기록했을까? 히브리서는 신약성경 27권중에 서신서에 속한다. 신약성경은 복음서(4권:마~요)와 역사서(1권:행)과 서신서(21권:롬~유)와 묵시서(1권:계)로 나뉜다. 서신서는 다시 바울서신(13권:롬~몬)과 일반서신(8권:히~유)으로 나뉜다. 그러므로 히브리서는 일반서신에 속한다. 바울서신은 특정 지교회 내지는 특정 목회자 개인에게 보낸 편지들이다. 그런데 일반서신은 어떤 특정한 지교회 내지는 목회자 개인에게 보낸 편지가 아니라 그냥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들이다. 그중에서 히브리서는 이미 그리스도인이 된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다. 그렇다면 히브리서는 누가 썼을까? 성경주석을 보면 이 책은 작자미상으로 나온다. 바울, 디모데, 누가, 바나바, 아볼로 등이 거론되지만 사실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편지에 등장하는 디모데(히13:22~23)를 봐서는 바울이 쓴 것 같으나, 내용상 13권의 바울서신과는 많은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구약의 율법에 정통한 유대인이 쓴 것만큼은 사실이며, 그는 디모데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사도바울일 것으로 추측된다. 사도바울은 바울서신 13권을 통해서 이신칭의를 통한 구원을 많이 서술했다. 하지만 그것을 잘못 사용하는 이들에 의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음을 알고는 그것과는 반대되는 내용의 한 권의 책을 더 서술했을 것이다. 그래서 내용상 야고보서와 비슷하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어도 행함으로 보증되지 못한 신앙을 가지고서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과 맥락이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책이 바울이 순교할 무렵(A.D.64~67)에 쓰였을 것으로 예상된다.
3. 히브리서는 무슨 목적으로 쓴 것인가?
그렇다면 히브리서는 어떤 책인가? 히브리서는 처음에는 유대인이었다가 나중에 그리스도인들이 된 자들에게 주는 엄중한 경고를 담고 있는 책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고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총5번이나 연거푸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자들이 핍박과 멸시와 천대를 못 이기고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유대교인이었으나 기독교로 개종한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지 않도록 즉 배교하지 않도록 그들에게 이 편지를 썼다. 다시 말해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의 나오는 예표들(천사들, 선지자들, 모세, 아론, 멜기세덱, 옛언약, 제사와 제물 등)과 예수님을 비교해보면서,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탁월한 분이신가를 소개한다. 그리고 다시 유대교신앙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유대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의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인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자기들을 참된 구원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자들은 결국 얼마나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은지를 경고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편지를 읽는 오늘날의 우리도 이러한 히브리서 기자의 경고를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4. 배교에 따른 구원의 탈락을 경고하는 다섯번의 메시지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히브리서 기자는 총 5번에 걸쳐 배교의 위험성을 경고한다(히2:1~4, 3:11~4;13, 5:11~6:12, 10:26~31, 12:1~29). 그러면서 그것은 믿음으로 얻은 구원을 잃어버리게 할 수도 있음을 연거푸 경고한다(히2:1~4).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고도 배교하는 자는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히6:4~6). 그리고 구약의 모든 것들 곧 선지자나 천사들, 모세나와 아론, 제사제도와 제물보다 뛰어난 하나님의 아들을 믿었던 자가 예수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게 될 때 그가 받을 형벌은 더 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히10:26~29). 그럼, 히브리서 기자가 언급하고 있는 배교의 위험성과 구원탈락의 가능성에 대해 조금 정리해보도록 하자.
첫째,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을 통해서 얻는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말라고 경고한다(히2:1~4). 히브리서 기자는 맨 처음 선지자들(히1;1~3)과 천사들(히1:4~14)보다 뛰어나신 그리스도를 소개하면서, 선지자들과 천사들보다 뛰어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말씀을 결코 등한히 여기지 말라고 경고한다. 왜냐하면 천사들을 통하여 주신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자들도 공정한 보응을 받았는데, 복음을 등한히 여기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이다.
둘째, 히브리서 기자는 이미 믿음을 가진 자라도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있기에 그때까지 안식에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 수 있음을 경고한다(히3:11~4:13). 그러므로 기자는 믿음의 기초를 끝까지 그리고 견고히 붙잡고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만약 그렇지 않고 믿음을 포기한다면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히3:12~13). 특히 오늘이라는 날에 매일 피차 격려하여 죄의 유혹으로부터 완고하게 되지 말 것을 경고한다. 그래야 결국 구원에 골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히브리서 기자는 하늘의 은혜와 은사를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회개할 수 없음을 경고한다(히5:11~6:12). 히브리서 기자는 이미 빛을 받아 그리스도를 알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까지 맛본 자가 다시 타락하여 배교한다면, 그는 결코 회개할 수 없을 것인데, 그렇게 되면 그의 결국은 불사름(지옥형벌0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넷째, 히브리서 기자는 진리의 지식을 받은 후에 고의로 죄를 짓게 된다면 다시는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그를 태워버릴 맹렬한 불(지옥불)만 있을 것이라고 경고한다(히10:26~31).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의 율법을 폐한 자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임당했는데, 하물려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예수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무겁겠는지를 생각하라고 한다.
다섯째, 히브리서 기자는 자기앞에 당한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행하지 못해 죄에 빠지게 되면 그는 더러운 자가 되어 결국 주를 보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히12:1~29).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과 구원을 경주에 비교한다. 그런데 그때 가장 경주를 방해하는 세력을 언급하는데 그것은 죄라고 한다. 그러므로 믿음과 구원의 경우에서 승리하려면 무거운 죄를 벗어버려야 함을 강조한다. 아니 죄에게 지지 않기 위해 죄와 피흘리기까지 싸워야 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늘에 준비된 상급을 바라보고 경주하라고 권면한다. 영적인 축복을 바라보지 못했던 르우벤과 에서의 교훈을 잊지 말라고 한다(히12:16~17). 영적인 것을 소홀히 여겼던 르우벤은 간음하다가 그것을 놓쳐버렸고, 배고픔 때문에 장자의 명분을 소홀히 여겼던 에서는 나중에 장자의 축복을 상속받으려 했지만 거절당해 회개할 기회마저 얻지 못했다고 경고한다.
5.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것인가?
그렇다. 이미 믿음으로 얻은 구원이라도 그것을 끝까지 붙잡지 않고 있으면 구원에서 미끄러질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죄의 유혹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히3:13, 6:6, 10:26, 12:1~4). 옛생활로 다시 돌아가려는 미련도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히브리서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쓴 경고의 메시지가 아니다. 이미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고 섬기며 성령의 은사까지 맛본 자들에게 쓴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라도 하나님의 아들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다시 옛생활로 돌아간다면 그가 받을 형벌이 얼마나 중하겠는지를 정확히 묻고 있다.
그렇다. 믿음을 가진 자라도 그가 죽기전까지는 구원이 완성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믿음과 구원은 일종의 경주와도 같은 것이다.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 아닌 것이다. 믿음으로 시작된 구원을 끝까지 붙들어야 하는 것이다. 믿는 믿음에다가 이제는 지키는 믿음, 인내하는 믿음이 요청되는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11장을 통해서 인내로서 자기앞에 당한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달려갔던 믿음의 인물들을 언급한다. 그러면서,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신 예수님을 견고히 붙잡고 가면서 죄와 피흘리기까지 싸우며 가는 자가 거룩함을 입게 될 것과 그런 자들만이 구원에 당도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2017.11.05
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