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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2cEE2NvdJDE
날짜 2019-12-08
본문말씀 요한계시록 1:4~8(신약 399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요한계시록,하나님,신론,삼위일체론,삼신론,양태론,가현설,영지주의,성부고난설,한분하나님,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인가? 아니면 한 분 하나님이신가? 하나님의 보좌에는 성부가 앉아계시는가, 성자가 앉아계시는가? 천국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3개인가 1개인가? 요한계시록에서는 한 분 하나님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공히 붙혀서 칭할 수 있는 칭호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한 분 하나님을 강조하려다가 잘못되어 나온 "가현설"과 "양태론"과 "영지주의"와 그리고 삼위을 강조하다가 잘못되어 나온 "삼신론"은 왜 이단일 수밖에 없는가? 이것으로 하나님에 대한 정의는 일종의 획을 그을 수 있을 것이다.

 

1. 들어가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우리가 만약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잘 모르게 되면 우리는 이단에 빠질 수도 있다.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으로 섬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되 힘써 알아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을 알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도 없을 뿐더러, 질문해서 당장 무엇인가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은 성경을 통해서다. 그리고 기도를 통해서 그분이 살아계심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도를 통해서 응답을 받는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응답인지 아닌지는 판단해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성경을 통해서 뿐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어떻게 하나님을 묘사하고 있는가? 특별히 오늘은 성경 주에서도 최종적인 계시를 담고 있는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살펴볼 것이다. 우리가 아는 것도 있지만 아마 우리가 잘못 이해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2. 사도요한이 보았던 환상과 들었던 말씀 가운데 하나님은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가?

  사도요한이 보았던 환상과 들었던 말씀 중에서 하나님은 요한계시록 1:4~6에 나온다. 그것을 헬라어로 직역해보면 다음과 같다.

(4) 요한은 아시아 안에 일곱교회들에게 편지한다(쓴다). 은혜(정관사없음)와 평강(정관사없음)이 너희들에게 [있기를]. 지금도 계시는 이와 아직도 계시는(계속 계셨던) 이와 지금도 오고 계시는 이에게서부터(아포) 그리고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들에게서부터(아포).

(5)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부터(아포). [그분은] 신실하신(충성된) 증인[이요], 죽은 자들의 먼저 나신 분[이며] 그리고 땅의 왕들의 통치자[이다]. 우리를 사랑하는 이에게 그리고 우리를 그(자신)의 피 안에서 우리의 죄들로부터 [밖으로] 해방하셨던 이에게.

(6) 그리고 [그분(예수 그리스도)]은 우리를 왕국과 그(자기)의 아버지와 하나님에게 제사장들로 만드셨다(삼으셨다). 그분(예수 그리스도)에게 영광과 세력이 세대들의 세대들까지(세세토록,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아멘.

 

3. 요한계시록 1:4~6의 말씀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관한 말씀인가?

  요한계시록 1:4~6절의 말씀을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설명으로 알고 있는 분들은 이 말씀을 볼 때 이 말씀이 성부와 성령과 성자를 지칭하는 표현이라고 이해할 것이다. 즉 "지금도 계시는 이와 아직도 계시는 이와 지금도 오고 계시는 이"는 성부를 지칭하는 말일 것이고, "그(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들"은 성령을 지칭하는 표현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성자를 지칭하는 말이라는고 이해하는 것이다. 특히 여기서 성자는 신실하신 증인이시며, 죽은 자들로부터 먼저 나신 분이고, 땅의 왕들의 통치자라고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해석은 결코 틀린 해석은 아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계1:4~5의 말씀이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설명이라고 생각해 보았는가? 그 이유는 요한계시록 1:8에 그 증거가 나와 있다. 자, 이제는 요한계시록 1:7~8의 말씀을 헬라어로부터 살펴보자.

(7) 보라! (예수 그리스도)가 구름들과 함께 오신다. 모든 눈이 그를 [장차] 볼 것이다. 그리고 그를 찔러서 뚫었던 자들은 누구든지 [그를 볼 것이다]. 땅의 모든 지파들이 그분 때문에 [장차] [스스로] 가슴을 칠 것이다. 그러하다. 아멘.

(8) 나는 알파와 오메가.” (정관사없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지금 계시는 이와 아직도 계시는(계속 계셨던) 이와 지금도 오고 계시는 이[이신] 그리고 전능자[이신].

  우리는 요한계시록 1:8에서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그분은 자신을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고 소개하고 계신다. 이것을 두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기선언"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주 하나님"이 누군지를 사도요한은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지금도 계시는 이와 아직도 계시는 이와 지금도 오고 계시는 이"이자 "전능자"이시다. 그렇다면, 계1:8의 말씀은 성부 하나님에 대한 소개인가? 아니면 성자 예수님에 관한 소개인가? 그것도 아니면 성령 하나님에 대한 소개인가? 얼핏 보기에는 계1:4~5에서 분류했던 것처럼, 계1:8의 말씀은 성부 하나님의 대한 소개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 그렇다고만 단정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구약성경에서 "주 하나님"은 여호와를 지칭하는 표현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다니엘은 다리오왕 통치 원년에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를 올린다. 그때 그는 이렇게 기도했다.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로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이시여(단9:4b)" 이때 "주 하나님"은 누구인가? 그분을 문맥으로 보면 "여호와"이시다(단9:4a). 그런데 우리는 신약에서 도마의 신앙고백을 통하여, 부활하여 예수님도 "주 하나님"이라는 것을 보게 된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도마가 이렇게 고백했기 때문이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다(요20:28)" 그렇다.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계실 때에 제자들의 신앙고백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라는 고백이었다(마16:16). 하지만 부활하시어 무소부재한 상태가 되신 예수님을 본 도마는 "주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성령님께서도 "주 하나님"이라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다. 사도바울은 고후3:17에서 이렇게 말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3:17)" 고로 "주의 영" 곧 성령님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도행전 5장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성령님이 또한 하나님이신 것을 알 수 있다. 즉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속인 것을 두고, 처음 문장에서는 "성령"이라고 언급했으나 나중에는 "하나님"이라고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행5:3~4). 그러므로 성경에서는 여호와도 "주 하나님"이라고 지칭하고 있고, 예수님도 "주 하나님"이라고 칭해지고 있으며, 성령께서도 "주 하나님"이라고 불려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주 하나님"이라는 칭호는 오직 성부에게만 적용할 수 있는 칭호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주 하나님"이라는 칭호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공히 사용될 수 있는 칭호인 것이다. 그러므로 계1:8의 말씀은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설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주 하나님"은 어떻게 자기를 계시하고 있는가? 그것은 딱 한 마디로 "나는 알파와 오메가다" 라고 하셨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곳에서도 하나님은 자기자신을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으셨다. 다만 구약시대에는 "알파와 오메가"와 거의 똑같은 표현으로서  "나는 처음과 마지막이다"라고 말씀하셨다(사41:4, 44:6, 48:12). 참고로, 구약시대에 여호와께서는 당신 자신이 누군지를 딱 두 번 소개하셨는데, 하나는 출3:12~15에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나는 ~라고 하는 바로 그분이다)"라는 하신 것이요, 또 하나는 "나는 처음과 마지막"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계1:8에 나오는 "주 하나님"이라는 용어는 성부 하나님에 대한 소개로 한정하기보다는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소개라고 해야 한다. 그분이 우리에게 자기를 소개하실 때에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고 소개하신다는 사실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주 하나님이 누군지에 대한 부가적인 설명으로서, 그분은 "이제도 계시는 이와 아직도 계시는 이와 지금도 오고 계시는 이"이며, "전능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로, 계1:4에 앞에서 "성부"에 대한 설명이자 호칭으로 보았던 "지금도 계시는 이와 아직도 계시는 이와 지금도 오고 계시는 이"는 성부에 대한 호칭이라기보다는 주 하나님 곧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설명이라는 것이다. 사실 한 분 하나님은 "지금도 계시며(성령)", "아직도 계시고 있고(성부)", "지금도 오고 계시기" 때문이다(성자).

  한편, 계1:4에 나오는 "그(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들"은 주 하나님이신 한 분 하나님의 활동 중에서 성령으로 사역하고 계시는 주 하나님에 대한 설명이라고 할 수 있으며,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로부터 먼저 나시고, 땅의 왕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주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신 그분을 설명해주는 표현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위격을 구분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계시기 때문이다. 성부는 보좌에 앉아계시고, 성자는 하나님 오른편에서 중보자와 대제사장으로 일하고 계시며, 성령은 이 땅에 보내심을 받아 모든 것을 감찰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계1:4~6의 말씀을 설명할 때, 그것은 위격을 가지신 성부와 성령과 성자에 대한 설명이라고 하더라도 아무런 문제는 없다. 다만, 계1:4~6의 말씀을 성부와 성령과 성자에 관한 말씀으로만 이해했을 때에 우리는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시선을 잃어버리거나 성부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희미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천국에서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의 보좌도 한 개 뿐이다. 그 보좌에 예수님도 앉아 계신다. 그러므로 그분의 보좌는 한 분 하나님의 보좌라고 일컬는다. 그러나 예수께서도 그 보좌에 앉아 계시므로 그 보좌는 "하나님와 어린양의 보좌(단수)"라고 부르는 것이다(계22:11,3).

  그리고 이어지는 계1:5~6의 말씀은 주 하나님께서 이 세상(땅)에 오시어 인성을 취하고 활동하셨던 예수님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여기에서 이 말씀이 설명하고 있는 분은 인성을 취하신 예수님인 것이지, 신성을 가지신 예수님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6절 말씀이 더욱 그렇다. 우리는 6절에 대한 헬라어원문을 통해서, 이 말씀은 한 분이시나 위격으로 나뉘어있는 하나님에 대한 묘사라는 것을 살펴 볼 수 있다.

(6) 그리고 [그분(예수 그리스도)]은 우리를 왕국과 그(자기)의 아버지와 하나님에게 제사장들로 만드셨다(삼으셨다). 그분(예수 그리스도)에게 영광과 세력이 세대들의 세대들까지(세세토록,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아멘.

  이때 사도요한은 예수께서 우리 성도들을 누구를 위하여 제사장들을 만드셨다고 말씀하고 있는가? 그분은 "그의 아버지와 하나님"이다. 여기의 "그[분]"는 예수님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우리 성도들을 "예수님의 아버지와 하나님에게 제사장들로 만드셨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우리말 개역성경은 "그의 아버지"와 "하나님"을 동격으로 취급한 나머지, 중간에 있는 대등접속사(카이=and)에 대한 번역을 빼버렸다. 그러므로 우리말 개역성경은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라고 번역했을 뿐이다. 하지만 헬라어 원문을 보면, "그는 그의 아버지 그리고 하나님에게 우리를 제사장으로 만드셨다"고 되어있다. 이 부분은 예수님이야말로 인성을 지닌 아들이라고 묘사하고 있기에, 하늘에 계신 분을 예수님의 아버지이자 하나님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하늘에서는 여전히 한 분이시다. 그러다가 주 하나님께서 어느날 약속대로 아들로 이 세상에 오셨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하늘에서는 여전히 주 하나님이 계신다. 예수께서는 공생애를 마치고 아버지를 향하여 돌아가셨다. 그리고 재림시까지는 천국에서  여전히 아들로서의 중보사역을 담당하실 것이다. 재림전까지 예수께서는 중보자와 대제사장과 상담자이자 사역자로서 임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4. 한 분 하나님과 삼위의 하나님, 어느 한 쪽을 강조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우리가 구약성경만 읽을 때에는 오직 "여호와"만 하나님이라고 알게 된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사44:6b)"고 하셨고, "나 외에는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신이 없으리라(사43:10)"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또한 오직 여호와께서 홀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사44:24). 그러나 신약을 읽어보면 좀 다르다. 삼위가 계시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만물이 그분(예수) 안에서 창조되었다고 언급한다(골1:15).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는 만물이 그분(예수)을 통하여 창조되었다고 말씀한다(히1:2). 특별히 사도요한은 모든 만물은 하나님과 함께 계신 말씀을 통하여 지어졌다고 말씀한다(요1:3). 그러므로 구약성경만을 읽어보면, 여호와 하나님 이외에 예수께서 활동하셨다는 것을 발견하기 어렵다. 하지만 신약성경을 읽어보면 삼위가 계시며 삼위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그러나 이것은 성자가 밖으로 자신을 드러내심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예수께서 세례받으실 때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동시에 출현하는 것이다. 이때 성자는 세례요한으로 세례를 받고 있으며, 성부는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계시며, 성령은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잘 맞지 않는 것 같은 말씀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 신학자들은 간단하게 말한다. "하나님은 한 분이면서 삼위로 계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라고 말이다. 참으로 설명을 듣지만 알듯 하면서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이 문제도 "경륜적인 삼위일체"라는 관점으로 보면 쉽게 이해할 수가 있다. 다시 말해, 경륜적으로 구약시대에는 오직 여호와라고 자기를 계시하신 하나님만이 활동하신 것이다. 그러다가 하나님으로 밖으로 나와서 이 땅에 들어오신 분이 생겨났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분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아들의 신분으로 오셨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에는 한 분 하나님께서 아버지와 아들로 동시에 계시게 되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고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늘에도 계시고 땅에서도 계시며, 아버지로도 계시고 아들로도 동시에 존재하실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확히 성부와 성자의 위격이 구분이 된 시점을 언제인지를 말하라고 한다면, 우리는 아들의 성육신의 사건부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예수께서 속죄사역을 마치고 하늘로 올라가셔서 아버지로부터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셨다. 이후의 보혜사는 경륜상 사람 속에도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들어가면 그것을 '거듭남'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5:6의 말씀을 보면, 성령님은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어린양(예수)의 일곱 눈들이라고 나와 있다. 예수께서 승천하시어 성령을 보내주셨는데, 동시에 예수께서는 성령과 함께 이 땅에 오신 것이다. 하지만 그때 오심은 단독적인 성령의 오심이시면서도, 동시에 삼위 하나님의 오심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예수께서 오실 때에 혼자 오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함께 오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과 일맥 상통하는 표현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알 것은 오순절 이후에는 경륜상 성령께서 혼자 단독적으로 일하실 수 있게 되셨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경륜적인 삼위일체에 대한 설명이다. 그러므로 성부나 성자나 성령은 각각 구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주 하나님으로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단독적으로 일하실 수 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볼 때, 그러한 삼위의 일하심은 한 분 하나님께서 동시에 성부의 역할과 성자의 역할과 성령의 역할을 하고 계시다고 이해해도 틀린 표현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견해는 양태론과는 어떻게 다른가? 양태론은 이단이다. 왜냐하면 양태론은 한 분 하나님께서 여러 모양으로 나타나신다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동시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뿐더러, 십자가에서 아버지(혹은 하나님)가 죽었다고 함으로 하늘에서 하나님의 공석상태를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아니다. 하나님은 결코 죽을 수가 없다. 또한 신성만 가지신 아버지도 결코 죽으실 수가 없다. 오직 아들만이 육신을 취하셨기에 그분이 죽으실 수가 있는 것이다. 고로 십자가에서는 아들이 죽으신 것일 뿐, 아버지가 육신을 입고 죽은 것이 결코 아니다. 사실 예수께서 죽으신 것은 한 분이신 주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세우신 계획에 따라 인성을 취하셔서 아들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아버지라고 말해서는 아니 된다. 하나님이 죽었다고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절대 죽으실 수가 없으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든지 십자가에서 인성을 취하신 아들이 죽었다고 이야기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께서 혹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고 이야기해야 한다. 성부가 죽었다고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고로 양태론의 하나인 "성부고난설"은 잘못된 이단학설이다. 이처럼 양태론 혹은 성부고난설은 하나님을 한 분으로만 이해하려고 시도하다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간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가현설"도 잘못된 이단이다. "가현설"은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하는 이단이다. 예수님을 육체를 가지신 사람으로 보지 않고 오직 신성만 가지신 하나님으로만 보려다가 가현설 이단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것에서 조금 더 전진하면 "영지주의"가 된다. "영지주의"는 영은 선하고 육체는 악하다는 이론으로서, 육체를 만든 여호와 하나님은 저급한 신이며, 예수님은 오직 신성만 가지신 분이라고 본다. 그러기에 예수께서는 결코 십자가에서 죽으실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사도요한은 이런 자들을 경계하고자,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가 바로 적그리스도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이다(요일4:2~3,5:5~6, 요이2:7). 예수께서 육체를 입으시지 않았다면 그분의 피흘림을 통한 인류의 속죄를 거짓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아니다. 그들이 잘못 이해한 것이다. 생각해보라. 왜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의 신분으로서 이 세상에 들어오셔야했는가? 그것은 오직 우리 인류의 속죄를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이다. 인류의 속죄를 위해 하나님께서 아들의 신분으로 밖으로 나오셔서 이 땅에 들어오신 것이다. 가현설은 예수님의 인성과 속죄를 부정하기 때문에 이단 중에 이단인 것이다. 그것을 믿지 않으면 죄사함을 받을 수가 없는데 어찌 가현설을 기독교라고 하겠는가?

  그런데 반대의 경우도 있다. 하나님을 삼위의 하나님으로 묘사하려다가 삼신론 이단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잘못 이해하게 되면 삼신론으로  빠질 위험성이 있다. 왜냐하면 성부도 하나님, 성자도 하나님, 성령도 하나님이라고 하니, 하나님은 세 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나라 개신교에서 사용하는 사도신경에는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신앙고백이 빠져 있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으로 늘 신앙고백을 하던 사람은 하나님을 세 분(즉 세 신)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래서 천국에 가면 하나님의 보좌도 3개라고 생각하고는 한 가운데 보좌에는 성부(늙으막한 할아버지 모양)가 앉아 계시고, 오른쪽에는 성자(젊은 아들 모양)가 앉아계시고, 왼쪽에는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단이다. 삼신론으로 하나님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통 삼위일체 신앙에서도 오류가 발견된다. 하나님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3개의 위격으로 묘사하려다가, 그만 구약성경에 나오는 표현을 잘못 푼 것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창1:26~27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창1:26)"고 하셨는데, 이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회의하는 장면이라는 것이다. 아니다. 경륜적인 삼위일체는 성육신과 오순절이후에 완성된 것이다. 그것을 구약시대에 소급적용한 것은 실수인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성자도 존재하고 있었고 성령도 존재하고 있었지만 아직 성자께서 밖으로 나타나 활동하신 때가 아니요 성령께서도 단독적으로 활동하시던 때가 아니다. 구약시대에는 홀로 한 분 하나님께서 여호와로서 활동하시던 때였다. 그러므로 지나친 삼위의 적용은 오히려 성경의 잘못된 해석을 낳을 수도 있음을 알라.

 

5. 우리가 믿어야 할 하나님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우리가 믿어야 할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이시지만 우리의 구원을 위해 삼위로 계시며 지금도 삼위로 활동하고 계시다고 이해하라. 그러나 구약시대에는 성자께서 존재하기는 하셨으나 밖으로 드러나 활동하지는 않으셨던 때라는 것을 알라. 성령도 구약시대에 있었고 할동하셨으나 단독적으로 활동하지는 않으셨으며, 다만 하나님이 보낸 영으로서 이 땅에서 일하시고 있었다. 하지만 성자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심으로, 비로소 삼위가 분명하기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는 성령께서도 단독적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러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한 분 하나님이신 것이지, 성령께서는 성부나 성자가 모르는 일을 단독적으로 처리하시지는 않으신다.

  우리가 한 분 하나님과 삼위의 하나님을 이해할 때 가장 좋은 설명이 있다면 "하나님은 동시존재가 가능하다"고 하는 설명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지만 오순절 이후부터는 하나님은 성부로도 계시고, 성자로도 계시고, 성령으로도 계신다는 것이다. 그것도 동시에 계시는 것이다. 그래서 오순절 이후에는 성부도 일하고 계시고(때와 기한의 정하심, 기도를 들으심...), 성자도 일하고 계시며(중보자, 대제사장으로 일하심 그리고 재림시에는 심판주로 오실 것임), 성령도 일하고 계신다(내주하심, 은사를 주심...). 하지만 오순절 이후에는 경륜상 성부만 있다거나 성자만 있다거나 성령만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성자가 동정녀 탄생으로 인하여 밖으로 자신을 드러내셨기 때문이요 그분이 자신의 육체를 부활체로서 천국으로 가져가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난 천국에서 하나님을 보게 될 때에는 성자로 오셨던 한 분 하나님, 곧 예수님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사실 아무도 볼 수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사람되신 예수님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님으로 인하여 감사를 드린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영영토록 우리는 하나님을 못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6. 나오며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볼 수도 없는 이이시다. 하지만 볼 수 없는 하나님이 보일 수 있는 형태로 나타나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으로터 나와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들어오셨다. 그분이 육신을 입고 나타나신 것은 오직 인류의 속죄 때문이다. 인류의 속죄는 오직 흠없는 속죄제물로서 가능했기 때문이다. 아담의 타락이후 인류는 흠없는 사람을 산출해내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의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아들의 신분으로 오신 것이다. 그분이 예수님이시다. 하나님의 품 속에 있던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신 것이다. 그분은 가셔서 아버지께 받아서 성령을 또한 믿는 자들 속에 보내주시고 계신다. 그런데 이때부터 성령은 단독적으로 일할 수 있는 "주 하나님"이시지만 그분이 하시는 일은 예수께서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깨닫게 해주시며,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는 것이지, 성자와 관계없는 일을 하시는 분이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내가 성자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배웠다고 한다면, 또 다시 성령을 배워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미 성령으로 예수께서 오셨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성령께서 단독적으로 일을 하실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어야 한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 그분도 얼마든지 일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꾸 나누다보면 잘못되면 삼신론 이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그렇다고 예수님의 신성만을 강조하고 그분의 하나님되심만을 강조하다보면, 가현설이나 양태론이단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니 이것도 조심해야 한다. 한 분 하나님이시나 경륜적으로 삼위로 나타나셨고 지금도 삼위로 일하시는 하나님이지만, 천국에서 하나님은 오직 한 개의 보좌에 좌정해계시는 한 분 주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우리가 천국에서 보는 하나님은 사람의 육신을 입으셨던 성자인 것이지 성부와 성령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를 위해 사람이 되어오신 예수님께 오늘도 찬양과 경배를 올려드린다.

 

2019년 12월 08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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