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은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육체의 한계 속에서, 사탄마귀의 유혹과 그가 주는 핍박 가운데서 살아가야 한다. 그러니 사람은 자연적인 재앙에도 노출되어 있고 사탄마귀의 미혹와 핍박에도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선한 싸움을 싸워 이것을 이기는 성도가 된다면 우리는 천국이나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가 놀라운 복을 누리며 살게 될 것이다. 성도들은 과연 그곳에서 어떤 축복을 누리며 살게 되는가?
1. 들어가며
마지막 시기에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환난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징조로서의 환난은 사실 A.D.70년 예루살렘의 파괴로 인하여 1차로 실현되었다(마24:15, 눅21:20). 그리고나서 어언 2,000년이 훌쩍 지나갔다. 하지만 아직도 주님은 오시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재림의 시기에 더 한 발자국 다가와 있음을 느낀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그날을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그리고 환난을 이겨낸 자들이 받게 되는 축복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오늘은 환난을 잘 통과한 자들이 받을 축복에 대해 살펴보자.
2. 주님은 환난전에 다시 오시는가 환난후에 다시 오시는가?
다시 오시마고 약속하시며 감람산에서 승천하신 우리 주 예수께서는 과연 언제 오시는가? 대한민국의 상당수의 성도들은 예수께서 환난전에 오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환난전휴거설" 내지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미국에서 훈련받고 온 처음 장로교 목회자들이 미국의 세대주의 종말사상을 가지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조금 깨어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환난전휴거설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어느새부턴가 환난중간휴거설도 솔솔 흘러나온다. 전3년반은 지나갈 것이고, 후3년반이 되기 직전에 휴거가 있을 것이라는 가설이다. 그것은 전3년반은 미온적인 환난기이고, 후3년반은 강력한 대환난기라고 보고, 전3년반이 지나고나서 진짜 대환난이 찾아올텐데, 그 대환난이 있기 전에 휴거가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어느것이 성경적인가? 환난전휴거를 주장하는 분들이 있다면, 잠시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마24:21-22 이는 그 때에 큰 환난(대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2 그 날들(대환난의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마24:29-31그 날 환난(대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31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성경은 분명하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모든 성도들이 경험하게 될 우주적인 부활과 우주적인 휴거는 오직 단회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주님의 오심도 대환난 후에 있을 것을 증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도가 환난을 받지 않고 휴거된다는 이론은 결국에 사람을 속이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면, 정작 대환난이 찾아왔을 때 그것을 이기지 못할 수도 있다.
우선 초대교회 성도들의 경우를 보자. 그들은 환난전에 휴거되었는가? 아니다. 한 사람도 그러한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당시 원형경기장으로 끌려나가 사자에게 뜯겨 죽임당하거나 장작불 위에서 태워져 죽임당해야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 일제시대 때 주기철목사는 어떠했는가? 그는 환난을 받지 아니했는가? 6.25전쟁 때를 보자. 손양원목사는 공산군에 의해 환난을 당하지 아니하고 휴거되었는가? 아니었다. 그동안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다 환난을 통과했다. 세계의 교회사가 다 이것을 증거하고 있고, 우리나라 교회사도 여전히 이것을 증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아무리 자기주장을 하고 싶다고 해도, 환난후에 오신다고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신 것을 뒤집어서는 아니 된다. 어떤 이는 마태복음서에 "종말장"이라고 부르는 마24장에 기록되지는 아니했지만 어딘가에 은밀한 휴거가 숨어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거짓말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바로 사람을 미혹하는 것이다. 없는 것은 없는 것이지 거기에다가 무엇인가를 보태서는 아니 된다. 성경은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마24장 어디를 찾아본다고 해도 거기에는 은밀한 휴거는 나오지 않는다. 휴거는 우주적이고 공개적이고 동시적으로 나올 뿐이다. 그런데 도둑이 밤에 몰래 오듯이 주님께서 은밀하게 오셔서 알곡만 휴거시킨다고 미혹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도둑의 비유는 주님의 재림의 은밀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돌발성을 말해주는 비유이기 때문이다(마24:43~44). 성경에는 은밀한 휴거가 없다. 떠들썩한 우주적인 휴거가 있을 뿐이다. 없는 것을 만들어서 말씀 가운데 비집어넣으면 아니 된다. 그것이 미혹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는 환난을 다 받아야 한다. 환난을 통과해야 한다. 그리고 난 뒤에 주님이 오실 것이다.
3. 요한계시록은 환난전휴거를 말하고 있는가 환난후휴거를 말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는 환난전휴거를 말하는가 환난후휴거를 말하는가? 요한계시록에서는 100% 환난후휴거를 말한다. 환난후에 주님께서 백마를 타시고 하늘로부터 오시는데, 이때는 이미 천국에 들어가서 천년동안 왕노릇하던 성도들과 함께 악의 무리들을 처단하기 위해서 아마겟돈 전쟁(혹은 곡과 마곡의 전쟁) 때에 오신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계19:11~21). 그리고 그것을 암시하는 무수한 환상과 말씀들이 있다.
이것들 가운데 요한계시록 7장에도 성도들이 환난을 통과하여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서 찬양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들은 이미 환난을 통과하여 첫째부활에 참여하여 천국에 들어간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때 사도요한은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 가운데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하나님과 어린양을 앞에서 찬양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계7:9). 그러자 그들이 누군지가 궁금하던 차에, 하나님의 보좌 좌우에 있는 24장로들 중의 어떠한 한 사람이 사도요한에게 그 정체에 대해 말해주었다. "이들은 큰 환난(대환난)에서 지금도 나오고 있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자기들의 옷들을 씻어 희게 한 자들이다"라고 말이다(계7:14). A.D.95년 사도요한의 때에도 이미 환난을 통과한 성도들이 첫째부활을 입고 승천하여 천국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올라가 하나님을 찬앙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도 그러한 일이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참고로, 여기서 "첫째부활"이라 함은 요한계시록 20장에 나오는단어로서(계20:5), 예수그리스도의 승천이후 죽은 성도들이 죽은 즉시 순간적으로 부활체를 입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 자들은 곧바로 천국에 올라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서 하나님을 알현하고 천국의 자기집에서 왕노릇하게 된다. 이것을 두고 "천년왕국"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지금 잘 모르겠다면, 헬라어원문으로 요한계시록을 읽어보기를 추천해본다. 아니 다 죽어보면 곧바로 이것이 사실인지 확인하게 될 것이다.
4. 천국에 들어가면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에게 어떤 분이 되어주시는가?
첫째부활(예수께서 승천하신 이후 재림전까지 성도들이 개인적으로 부활하는 것)에 참여한 성도들은 곧바로 천국으로 간다. 그리고 천국의 중심에 있는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고 생명강를 따라 황금길 위로 날아가, 새 예루살렘 성의 중심인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거기서 주님을 뵈옵는다. 이렇게 해서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행하시는가?
천국에 들어온 성도들에게 우리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행하시는가? 천국에서 하나님은 "보좌에 앉으신 이"이라고 불리는데, 그분께서는 천국에 들어온 성도들에게 장막을 쳐주신다(계7:15). 그리고 그때에 어린양은 그들의 목자가 되어주신다(계7:17).
그렇다면 천국에서 하나님은 두 분인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양", 이렇게 말이다. 사실 3차원의 물질적인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의 존재방식에 대해 온전히 다 알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해서 알려진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결코 자신의 눈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요4:24). 단지 보좌에 앉아계시는 분이라고 알려져 있을 뿐이다. 그것은 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성도들이 천국에 올라가서도 여전히 하나님은 볼 수 없다. 아니 영원히 볼 수 없을 것이다(딤전6:15~16).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이다(요4:24). 하지만 천국에서 성도들은 보좌에 앉으신 이를 자기의 눈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에 성도들이 볼 수 있는 하나님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분이기 때문이다. 성육신하셨던 그분이 돌아가실 때에 그 육신을 가지고 그대로 부활체가 되어 천국에 들어가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실 우리가 영원히 볼 수 없지만, 아들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우리가 천국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에서 예수님을 지칭하는 표현으로서 "어린양"이라는 표현은 그분이 어떤 분이고 무슨 일을 알려주는 존재 곧 상징하는 표현으로 가장 많이 성경에 등장하는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다가 올라가신 예수님에 대한 가장 많이 쓰이는 호칭이 바로 "어린양"이시다. 어린양은 순결하고 흠이 없다는 뜻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우리 인류의 죄를 위해 속죄제물이 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예수님은 어린양으로 불린다. 그것도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갔을 때 환난을 통과하여 천국에 들어온 성도들에게 예수님은 어떤 모습으로 보이시는가? 그것 역시 "어린양"이시다. 하지만 이때 "어린양"이라는 표현은 속죄의 간증을 가지고 계시는 예수님이라는 뜻이지, 직접 어린양의 모습으로 존재하지는 않으신다. 왜냐하면 만약 어린양이 실제로 존재하는 양이라면, 예수님은 아마도 괴물로 보일 뿐, 결코 어린양의 모습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어린양에게는 눈이 일곱 개가 달려있으며, 뿔도 일곱 개가 달려있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계5:6). 여기서 예수님의 눈과 뿔이 "일곱"이라는 것은 이 땅에서의 그분의 살피심과 권세가 완전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분은 당신의 눈으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빠짐없이 감찰하고 계시며, 그분이 이 땅에서 발휘하는 권세는 완벽한다는 것을 증언하는 것이다.
천국에서 하나님과 어린양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하나님과 어린양은 한 분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 이후 천국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라고 불리게 된다(계22:1,3). 만약 하나님과 어린양이 다른 존재라고 한다면,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들"이라고 해야한다. 하지만 사도요한은 하나님의 보좌를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단수)"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과 어린양은 한 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5. 환난을 통과한 자들에게 주시는 축복은 대체 무엇인가?
그렇다면, 환난을 통과해서 천국에 들어간 자들에게 주어지는 축복과 혜택은 무엇인가?
그것은 총 5가지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더이상 굶주리게 하지 않으신다고 했다(계17:16a). 그리고 둘째로, 그들을 더이상 목마르게 하지 않으신다고 했다(계17:16b). 그리고 셋째로, 그들 위에 해(태양)이나 뜨거움이 상하지 못하게 하시겠다고 했다(계17:16c). 그런데 이 세 가지는 보좌에 앉으신 분께서 천국에 들어온 성도들에게 주시는 축복과 혜택이다. 이러한 축복은 사실 더이상 이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자연재앙들을 더이상 받지 않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들이다.
굶주림과 목마름은 사실 이 세상에는 기근의 재앙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하지만 천국에서는 기근의 재앙이 없다. 그곳은 모든 것이 풍족하고 모든 것을 다 누리고 살 수 있는 환경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먼저는 먹을 것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다. 천국에는 부활체로 들어가기 때문에 사실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아니한다. 그렇지만 이 땅에 먹던 습관이 있기에 천국에서도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해놓으셨다. 그렇다면 성도들이 천국에서 먹는 음식은 무엇인가? 아무것이나 다 먹는가? 그렇지는 않다. 천국에서 먹을 수 있다는 나오는 것은 딱3가지다. 첫째는 생명나무의 열매다(계2:7, 22:1~2). 생명과는 생명나무로부터 나오는데, 생명과는 달마다 그 열매를 맺는다. 그러므로 어마어마한 길이의 생명강가에 있는 생명나무로부터 모든 성도들은 마음껏 생명과일을 먹을 수가 있다. 이것은 과일이니 일종의 후식이다. 하지만 주식처럼 먹을 수 있는 것이 있는데, 둘째는 만나다(계2:17).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나와서 40년간 만나를 먹었다. 바로 그 만나를 천국에서 우리들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셋째는 음료수로서 포도주가 있다(눅22:18,30). 천국에서는 포도주를 마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에서 만나와 포도주 그리고 생명과를 먹는다고 생각하시면 된다. 참고로, 천국에서 육식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천국에서는 화장실도 없다. 먹은 음식을 배출할 때에는 방귀를 뀌는데 가장 아름다운 향기가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천국에서는 더이상 목마르지도 아니할 것이다. 이것은조금 있다가 살펴보겠지만, 어린양이 목자가 되사 베풀어주시는 혜택과 동일하다.
그런데 성도가 천국에서 더이상 굶주리지도 아니하고 목마르지도 아니한다는 것은 사실 이사야선지자가 예언한 천국에 관한 성취다. 왜냐하면 장차 도래할 천국에서는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이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라(사49:10)"고 예언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국에 들어간 자에게 주어지는 2가지 축복이 더 있다. 그것은 어린양이 목자가 되어주심으로 주어지는 2가지 혜택이다. 우리의 생각으로 볼 때 양은 결코 목자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린양"이라는 표현이 예수님에 대한 상징적인 묘사로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에서 주 예수님은 성도들에게 목자가 되신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런데, 구약성경을 읽어보면, 목자는 여호와에 대한 묘사로서 등장한다(시23:1~2, 100:3). 시편기자가 말하기를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시100:3)"고 비유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약시대에 들어오면 목자는 우리 주 예수님을 가리킨다(요10:11,14). 고로 우리는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로 나타나셨던 한 분 하나님께서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더불어 천국에서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갓 천국으로 들어온 성도들에게 목자가 되어주신다고도 했다(계7:17). 그래서 주시는 2가지 혜택이 있다. 첫째는 목자가 양떼를 이끌고 푸른 초장과 맑은 시냇물가로 인도하듯 선한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께서는 구원받은 성도들을 생명수의 샘으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했다(계7:17a). 그러면 우리는 더이상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성도가 이 땅에 있을 때에 복음전파하는 일로 인하여 옥에 갇히게 되거나 핍박을 받으면서 목말라했던 것에 대한 보상일 것이다. 그것을 더이상 경험하지 않게 해주시겠다는 뜻이다. 둘째는 목자는 구원받은 성도의 눈에서 더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고 모든 눈물을 씻어주시겠다고 하셨다.
천국은 어떤 곳인가? 천국에 있는 보좌로부터 들려오는 음성에서 사도요한은 천국의 실재가 어떤 곳임을 알게 된다. 그것은 요한계시록 21:4에 나온다.
계21:3-4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그렇다. 천국에서는 이 땅에서도 육체가 사는 것이 아니다. 부활의 몸이 거하는 곳이다. 또한 거기에는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사탄마귀도 없다. 그들은 형벌의 장소인 불못에 던져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국에서는 우리가 죄를 지어 고통받고 질병에 시달릴 이유가 없다. 더욱이 죽을 일도 없다. 그러므로 그곳에서는 눈물을 흘릴 필요가 없고, 죄로 인한 아픔들 곧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는 있지 않을 것이다. 한편, 이 땅에 살 때 이 세상의 죄악의 상태를 보면서 애통해하는 우리의 마음이 천국에서 환한 빛으로 바꾸어질 것이다. 산상수훈에서도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마5:4). 그런데 놀랍게도 사망을 폐하시고 모든 눈물을 씻겨주신다는 예언의 말씀이 이사야서에 도 나온다는 사실이다.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사25:8)" 참으로 이사야서는 구약의 신약성경이자 구약의 요한계시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메시야에 관한 수많은 예언들을 담고 있고 있으며, 천국에 관한 예언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6. 나오며
이 땅에 살 때 성도는 이 세상 사람처럼 육체를 가지고 있기에 육체를 갖고 있는 어려움을 그들과 똑같이 견뎌내야 한다. 자연재앙을 만나 기근이나 뜨거움이 임하면 그것에 의한 고통을 함께 겪어야 하는 것이다. 전염병이나 지진을 만나더라도 함께 그것을 이겨내야 한다. 그런데 성도들은 이 땅에서 살 때 사람으로부터 오는 재앙도 추가로 더 이겨내야 한다.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미혹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 의한 핍박이다. 사탄은 사람들을 써서 성도들을 미혹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짓선지자나 거짓그리스도에게 속아 남어가서는 아니 된다. 그리고 사탄은 사람들을 써서 성도들을 핍박도 할 것이다. 성도들은 이것까지도 이겨내야 한다. 때로는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러한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 그러므로 짐승에 의한 핍박에 대처하는 방법은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라고 했다(계13:10).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이러한 자연적인 재앙들과 사람들에 의한 환난을 다 이겨낸다면 우리는 죽은 즉시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혹 주님의 재림시까지 살아남아있는 성도가 있다면 그들은 그때 우주적인 부활 곧 둘째 부활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천국이나 새하늘과 새땅에 에 들어가게 된다면 우리는 더이상 굶주리거나 목마르지도 아니할 것이며, 해와 달과 별들의 이상에 의한 고통을 맛보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리고 천국에서는 더이상 사탄마귀과 존재하지 않으므로 죄로 인한 질병이나 아픈 것을 맛보지 않아도 될 것이며 더이상 죽음도 맛볼 일도 없을 것이다. 눈물, 근심, 걱정, 아픔, 애곡 등이 다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가 머지 않았다. 끝까지 잘 참고 견뎌내자. 마라나타!!!
2020년 2월 9일(주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