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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6. 17. (수)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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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Dp4JsG_SQhU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25)] 다윗의 아들 솔로몬(03) 그는 평화의 왕이자 지혜의 왕이었다(01)(왕상3:1~1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Dp4JsG_SQhU

 

 

1. 들어가며

  솔로몬은 이스라엘 왕국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왕 가운데 한 사람으로, 그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기 어렵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긴 자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다윗 한 사람만으로는 부족하고 반드시 솔로몬을 함께 공부해야 한다. 마치 아브라함만으로는 성부를 다 알 수 없고 이삭과 야곱을 함께 공부해야 성부·성자·성령의 경륜을 알 수 있듯이, 다윗과 솔로몬은 하나의 짝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전모를 드러낸다.

  솔로몬의 이름 자체가 이미 그의 사명을 선포한다. '솔로몬(שְׁלֹמֹה, 쉘로모)'은 '샬롬(שָׁלוֹם)'에서 온 이름으로, 평화를 뜻한다. 하나님은 솔로몬이 태어나기 전부터 그 이름을 예비하셨다. 다윗이 전쟁의 왕으로 부름 받았다면, 솔로몬은 평화의 왕으로 부름 받았다. 이 둘의 관계는 단순한 부자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 안에서 서로를 완성시키는 관계다. 뿐만 아니라 솔로몬은 지혜의 왕이기도 하였으니, 그의 지혜는 동방의 모든 사람과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났다(왕상 4:30). 그러나 그 지혜의 왕이 탄식한 말이 있으니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라는 것이다. 이 두 극단, 곧 최고의 지혜와 최심(最深)의 탄식 사이에서 솔로몬이 발견한 것은 무엇인가?

  성경에서 솔로몬은 지혜 문학의 중심에 선다.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를 지혜 문학이라 부르는데, 이 가운데 솔로몬이 직접 저술하거나 깊이 관련된 책이 잠언, 전도서, 아가서다. 욥기는 동방의 지혜를 대표하고 시편은 다윗의 경건을 담고 있지만, 이 모든 지혜 문학의 핵심 메시지는 하나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 솔로몬은 이 진리를 삶으로 구현한 왕이었다. 비록 말년에 타락하였지만, 그의 전성기는 이 진리의 살아 있는 증거였다.

  이 기독론 강해에서 솔로몬을 공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솔로몬은 그리스도의 예표다. 평화의 왕으로서 솔로몬은 참 평화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지혜의 왕으로서 솔로몬은 하나님의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그러므로 솔로몬을 알면 알수록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게 된다. 이 시간에는 다윗과 솔로몬의 관계가 그리스도론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솔로몬의 지혜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솔로몬보다 크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다윗은 전쟁의 왕이고 솔로몬은 평화의 왕인데, 이 두 왕은 어떤 관계인가?

  다윗을 전쟁의 왕이라 부르고 솔로몬을 평화의 왕이라 부를 때, 이 둘은 서로 대립하거나 분리되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하나의 진리를 두 국면으로 드러내는 짝이다. 다윗이 싸워 이겼기 때문에 솔로몬이 평화를 누릴 수 있었고, 다윗이 피를 흘렸기 때문에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수 있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직접 말씀하셨다.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대상 22:8). 전쟁 없는 평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단순히 이스라엘 역사의 교훈이 아니라, 구속사 전체를 관통하는 원리다.

대상 22:8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히브리어 '에하드(אֶחָד)'는 '하나'를 뜻하지만, 그것은 고립된 단위의 하나가 아니라 연합 안에서의 하나다. 창세기가 "남자가 부모를 떠나 여자와 합하여 한 몸(בָּשָׂר אֶחָד, 바사르 에하드)이 될지로다"(창 2:24)라고 할 때, 남편과 아내는 서로 다른 두 인격이지만 하나의 연합을 이룬다. 다윗과 솔로몬도 마찬가지다. 둘은 구별되지만 하나의 경륜을 함께 이룬다. '약히드(יָחִיד)'가 홀로이며 외로운 단수의 하나라면, '에하드'는 연합 안에서의 하나다. 그래서 전쟁과 평화는 에하드다. 순서는 반드시 전쟁이 먼저이고 평화가 나중이다. 이 순서를 뒤집을 수는 없다. 평화를 먼저 말하고 전쟁을 생략하려는 것은 이 원리를 거스르는 것이다.

창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이 원리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 땅에서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영적 전쟁을 피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였고"(히 12:4)라고 하여 영적 싸움의 치열함을 요구한다. 이 싸움에서 이긴 자에게만 영원한 평화가 주어진다. 성밖에는 평화가 없다. 지옥은 평화가 아니라 싸움과 다툼으로 가득한 곳이다. 참된 평화, 영원한 평화는 전쟁에서 이긴 자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영적 전쟁을 잘 치러야 한다.

히 12: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였고

  다윗의 강함은 두 가지에서 비롯되었다. 첫째는 타고난 기질이다. 다윗의 어머니는 전쟁에 능한 자녀를 낳을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진 여인이었다. 이새의 본처에게서 나온 일곱 아들 가운데 그런 기질을 가진 아들이 없었고, 하나님이 특별히 예비하신 한 여인이 이새에게 들어와 다윗 하나를 낳았다. 그녀는 이새를 만나기 전에 이미 수루야와 아비가일을 낳았고, 그 아들들인 요압, 아비새, 아사헬은 다윗의 군대에서 가장 용맹한 장수들이 되었다. 다윗이 어린 시절 사자와 곰과 싸워 이긴 것은 단순한 용기가 아니라 그 타고난 기질에서 나온 것이다. 하나님은 이 전쟁에 능한 여인을 이새에게 보내심으로 다윗을 준비하셨다. 둘째는 하나님과의 동행이다. 다윗이 강성해진 것은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셨기 때문이다. "다윗이 나가고 들어오는 것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니라"(삼상 18:14). 기질만으로는 부족하고,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없이는 이길 수 없다. 이 두 가지가 함께할 때 다윗은 전쟁마다 이겼고, 그 결과로 솔로몬에게 평화를 유산으로 넘겨줄 수 있었다.

삼상 18:14 다윗이 나가고 들어오는 것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니라

  다윗이 이처럼 전쟁에 능했던 것은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시편 23편에 나타난 그의 고백을 보라.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시 23:4). 또한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시 23:5)라고 하였다. 이 믿음이 사자 앞에서, 골리앗 앞에서, 수많은 전쟁터에서 다윗을 지탱하게 하였다. 기질과 믿음, 이 두 가지가 합쳐져서 다윗은 전무후무한 전쟁의 왕이 되었다.

시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국가 간의 관계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된다. 협상과 대화만으로 평화가 이루어진다고 착각하는 것은 성경의 원리를 모르는 것이다. 압도적인 군사력과 의지로 다윗이 주변 민족들을 제압했기 때문에 솔로몬이 평화를 누릴 수 있었던 것처럼, 참된 평화는 힘에 의해 보장된다. 돈을 퍼줌으로써 혹은 선언문을 작성함으로써 얻어지는 평화는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악한 영을 제압하지 않고는 내 안에 평화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다윗이 없으면 솔로몬도 없고, 전쟁의 승리가 없으면 평화도 없다. 이 두 가지가 에하드를 이룬다.

 

3. 솔로몬의 지혜는 타고난 것인가, 배운 것인가, 아니면 받은 것인가?

  솔로몬의 지혜를 논할 때 흔히 두 가지 극단에 빠진다. 하나는 "하나님이 주셨으니 그냥 얻은 것"이라는 극단이고, 다른 하나는 "열심히 공부해서 얻은 것"이라는 극단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 두 가지가 함께 있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지혜는 받은 것이기도 하고, 배운 것이기도 하다. 어느 하나를 생략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비단 솔로몬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쓰시는 일반적인 방식이다.

  우선 솔로몬에게는 타고난 가능성이 있었다. 그의 어머니 밧세바의 집안에는 두 가지 탁월한 유전자가 흐르고 있었다. 하나는 지혜의 유전자다. 밧세바의 외조부는 아히도벨이었다. 아히도벨은 다윗 왕국 최고의 모사(謀士)였으니, 그의 계략은 마치 하나님의 말씀을 묻는 것 같았다. 성경이 "그 때에 아히도벨이 베푸는 모략은 사람이 하나님께 물음같이 하였으니"(삼하 16:23)라고 기록할 만큼 탁월한 지략가였다. 중국의 제갈량에 비견될 만한 인물이었다. 아히도벨의 아들 엘리암이 밧세바의 아버지였으니(삼하 11:3, 23:34 참조), 이 놀라운 지략의 피가 밧세바를 통해 솔로몬에게 흘러 내려온 것이다. 이런 집안의 후손으로서 솔로몬은 지혜를 향한 가능성의 씨앗을 품고 태어났다.

삼하 16:23 그 때에 아히도벨이 베푸는 모략은 사람이 하나님께 물음같이 하였으니 아히도벨의 모략이 그러하여 다윗에게나 압살롬에게나 그와 같이 하였더라

  또 다른 유전자는 용사의 기질이다. 밧세바의 아버지 엘리암은 다윗의 용사 삼십 명 중 한 사람이었다(삼하 23:34). 장군의 기질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난 밧세바는 그 기질을 솔로몬에게 물려주었다. 그러므로 솔로몬에게는 지혜의 씨앗과 용사의 기질이 함께 흘렀다. 그러나 이것은 가능성일 뿐이다. 가능성이 현실이 되려면 공부와 훈련이 필요하고,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한다. 씨앗이 있다 해도 땅에 심지 않으면 싹이 나지 않듯, 타고난 재질도 갈고닦지 않으면 발휘되지 않는다.

  열왕기상 3장은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셨다고 기록한다(왕상 3:12). 반면 솔로몬 자신은 잠언 서두에서 자신이 배우고 연구하였음을 선언한다. 이 둘은 모순이 아니다. 받은 지혜와 배운 지혜, 이 두 가지가 함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인간의 자유 의지, 이 두 가지를 어느 하나도 생략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주권만 강조하여 "하나님이 다 하신다"고 말하며 공부를 게을리 하는 것도 성경적이지 않고, 인간의 노력만 강조하여 "내가 공부하면 된다"고 자만하는 것도 성경적이지 않다. 구원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으로 구원이 이루어지지만, 동시에 회개와 믿음이라는 인간의 응답이 요구된다. 지혜도 이와 같다.

  오늘날 설교자가 성령의 감동만을 내세우며 공부를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바른 길이 아니다. 베드로와 바울을 비교해 보라. 베드로는 예수님과 동행하며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제자였지만, 신약성경을 13권이나 저술한 것은 바울이었다. 그 차이가 어디에서 왔는가? 바울은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을 엄격하게 배운 자였다.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행 22:3). 충분한 공부가 성령의 역사를 담는 그릇이 된다. 성령은 우리의 지식을 초월하여 일하시지만, 또한 우리의 공부를 통해 일하신다. 성령이 역사할 수 있도록 공부로 그 통로를 열어 두어야 한다. 언제라도 성령이 임하실 수 있도록 충분히 공부로 준비된 자가 더 깊은 지혜를 받을 수 있다.

행 22:3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이처럼 받은 지혜와 배운 지혜는 서로를 배제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 함께 작용하듯, 은혜로 받는 지혜와 노력으로 배우는 지혜가 함께 있어야 한다. 칼빈주의의 극단은 "하나님이 다 하시니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성경 전체가 가르치는 바가 아니다. 성경은 "부지런히 찾으라, 힘써 구하라, 두드리라"고 명한다. 갈매기가 물고기를 잡기 위해 날아다니듯, 지혜를 얻으려는 자는 부지런히 공부하고 부지런히 기도하며 부지런히 구해야 한다. 그 위에 하나님이 은혜로 지혜를 더하여 주신다. 이것이 솔로몬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지혜를 얻는 길이다.

 

4. 솔로몬은 얼마나 방대한 공부를 했으며, 그럼에도 결론이 "헛되다"인 이유는 무엇인가?

  솔로몬이 얼마나 광대한 공부를 했는지는 열왕기상 4장과 전도서가 함께 증언한다. 열왕기상 4장 30절은 "솔로몬의 지혜가 동방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고 선언한다. 이것은 단순히 선천적 재능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그 지혜가 뛰어나다는 평가는 솔로몬이 동방의 지혜와 애굽의 지혜를 실제로 습득하고 그것을 능가했음을 전제한다.

왕상 4:30 솔로몬의 지혜가 동방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

  '동방 모든 사람의 지혜'는 욥기서가 대표하는 지혜다. 욥은 동방 사람이었고(욥 1:3), 욥기는 대표적인 지혜 문학이다. 욥과 세 친구 엘리바스, 빌닷, 소발 사이의 논쟁은 물론이고, 엘리후의 개입에 이르기까지 그 논증의 깊이와 수사적 세련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욥기의 그 논쟁을 오늘날 그대로 만들어 내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게 짜여 있다. 솔로몬은 이 동방의 지혜 전통을 두루 섭렵했다. 또한 '애굽의 모든 지혜'란 "무엇은 무엇이고, 무엇은 무엇이다"라는 식의 격언 문학이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는 형식이 이에 해당한다. 이런 스타일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방식과 다르다. 하나님은 "~하라, ~하지 말라"는 명령 형식으로 말씀하시지, "이것은 이것이고 저것은 저것이다"는 격언 형식으로 말씀하시지 않는다. 솔로몬은 이 모든 지혜의 전통을 공부하고 능가하였다.

  그 결과 솔로몬은 잠언을 3천 가지나 말하였고, 노래는 1005편이나 지었다(왕상 4:32). 오늘날 우리에게 남아 있는 잠언서가 대략 1천 절 남짓이니, 그것은 그가 말한 3천 잠언의 일부일 뿐이다. 나머지 2천 잠언은 시간이 흐르면서 전해지지 않았다. 노래 가운데는 아가서와 시편 72편, 127편이 남아 있다. 또한 초목과 동물, 새와 기어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이르기까지 자연계 전체를 논할 수 있었다(왕상 4:33). 당시의 자연 과학에 해당하는 모든 분야를 두루 섭렵했다는 것이다. 천하 모든 왕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사람을 보냈고, 스바 여왕은 직접 땅끝에서 찾아왔다.

왕상 4:32-33 그가 잠언 삼천 가지를 말하였고 그의 노래는 천다섯 편이며 그가 또 초목에 대하여 말하되 레바논의 백향목에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하고 그가 또 짐승과 새와 기어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대하여 말한지라

  전도서는 솔로몬의 학문적 성실함을 이렇게 증언한다. "전도자는 지혜자이어서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또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으며 전도자는 힘써 아름다운 말을 구하였나니 진리의 말씀들을 정직하게 기록하였느니라"(전 12:9-10). 그리고 공부의 과정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기록한다. "많은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전 12:12). 공부는 몸을 피곤하게 한다. 논문을 쓰는 것은 머리를 아프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한다. 하나님의 지혜를 담을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부해야 한다.

전 12:9-10 전도자는 지혜자이어서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또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으며 전도자는 힘써 아름다운 말을 구하였나니 진리의 말씀들을 정직하게 기록하였느니라

전 12:12 내 아들아 또 이것들로부터 경계를 받으라 많은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

  그런데 이토록 방대한 공부를 한 솔로몬이 내린 결론은 무엇인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8). 왜 헛된가? 세상 지혜는, 아무리 깊고 넓다 해도, 천국에 가는 길을 열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상 지혜는 세상을 사는 데 유익하고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도구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지혜 자체가 구원이 되거나 영생이 될 수는 없다. 이것이 솔로몬의 탄식이요, 동시에 경고다. 세상 지혜를 아무리 쌓아도 죽는 날 그것은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 지혜는 천국의 지혜를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야 한다.

전 12:8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서 결론부에서 솔로몬은 또 이렇게 선언한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3-14). 공부의 결론이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이다. 수만 권의 책을 읽고, 수천 가지 격언을 지어내고, 동방과 애굽의 모든 지혜를 섭렵한 끝에 내린 결론이 이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명령을 지키는 것, 그것이 인간의 전부다. 세상 공부의 끝에서 이 진리를 발견한 자가 참으로 지혜로운 자다.

전 12:13-14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세상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가 어떻게 다른지는 잠언 1장 7절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잠언 1장 2절부터 6절까지는 지혜를 배우는 방법과 목적을 기술한다.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자원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라." 이것은 세상 어느 지식인도 추구할 수 있는 목표다. 여기까지는 예수를 믿지 않아도 좌우명으로 삼을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7절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드러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 1:7). 하나님의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여호와 경외 없는 지식은 결국 헛되다는 것이 솔로몬의 결론이다. 모든 지식의 시작점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는 이 선언이 솔로몬의 탄식과 깨달음의 핵심이다.

잠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5. 솔로몬은 왕이 된 후 하나님께 무엇을 구했으며, 어떻게 구했는가?

  솔로몬이 왕위에 오른 나이는 대략 스무 살 전후였다. 사울이 마흔 살에 왕이 되었고, 다윗이 서른 살에 왕이 되었으니(삼하 5:4), 솔로몬은 더 이른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사울 40년, 다윗 40년, 솔로몬 40년의 통치가 이어지는 것이다. 솔로몬은 전쟁도 정치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젊은이로서 갑작스럽게 왕이 된 것이다. 형 아도니야가 요압 장군과 아비아달 제사장의 지지를 등에 업고 왕위를 찬탈하려 했고, 그 혼란 속에서 다윗의 뜻과 하나님의 섭리로 솔로몬이 왕위에 올랐다.

삼하 5:4 다윗이 나이가 삼십 세에 왕위에 올라 사십 년간 다스렸으되

  그런 솔로몬의 눈앞에는 아버지 다윗이 정복하여 복속시킨 수많은 민족들이 있었고, 그 백성들의 숫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이스라엘 백성 외에도 주변 민족들이 들어와 이스라엘 공동체에 합류함으로써 다스려야 할 대상이 더욱 많아졌다. 다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평화롭게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많은 백성들을 공의롭게 다스려야 할 책임은 오롯이 어린 솔로몬에게 주어져 있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그는 하나님께로 나아갔다. 인간의 지혜로는 역부족임을 처음부터 인정한 것이다.

  당시 법궤는 다윗 성에 있었고, 성막은 사울 왕 때 제사장들이 학살당한 뒤 법궤와 분리되어 기브온으로 옮겨져 있었다. 기브온은 번제단이 있는 큰 산당이었다. 솔로몬은 기브온으로 올라가 거기 있는 번제단에 무려 천 번제를 드렸다. 황소 천 마리를 잡아 드린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예배가 아니라 목숨을 건 헌신이요, 왕국의 재물을 하나님께 쏟아붓는 대가 지불이었다. 왕이 드리는 번제이므로 당연히 황소였을 것이다. 그 천 마리의 황소가 타오르는 번제의 연기가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광경을 상상해 보라. 하나님은 그 헌신에 감동하셨다. 밤에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하셨다(왕상 3:5).

왕상 3:4-5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번제 일천 번을 드렸더니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이때 솔로몬이 구한 것이 놀랍다. 그는 부도 영화도 장수도 구하지 않았다. 원수의 생명을 멸하는 힘도 구하지 않았다. 어린 왕이 가장 구하고 싶을 법한 것들, 즉 권력을 공고히 하는 것이나 풍요를 누리는 것을 구하지 않았다. 그가 구한 것은 단 하나였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7-9). 그가 구한 것은 '듣는 마음', 곧 히브리어로 '레브 쇼메아(לֵב שֹׁמֵעַ)'였다. 백성의 소리를 잘 들어 선악을 분별하고 공의롭게 재판하는 마음이었다.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백성을 위한 것을 구한 것이다.

왕상 3:7-9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은 이 구함을 크게 기뻐하셨다.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왕상 3:11-12). 하나님이 감동하셔서 구하지 않은 부와 영광까지 더하여 주셨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위하지 않고 맡겨진 사명을 위해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더욱 풍성하게 채워 주신다.

왕상 3:11-13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내 앞에서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니라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솔로몬의 기도 태도다. 그는 자신을 "작은 아이"라고 낮추었다. 왕위에 오른 자가 자신을 작은 아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단순한 겸손의 표현이 아니다. 이것은 실제로 자신이 이 큰 사명을 감당할 능력이 없음을 인정하는 신앙 고백이다. 하나님은 이런 자에게 지혜를 주신다. 자신이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자는 지혜를 구하지 않는다. 자신이 부족함을 아는 자만이 하나님께 구한다. 그래서 솔로몬의 기도는 겸손에서 시작하여 사명으로 끝난다. "내가 부족하오니 주의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마음을 주소서." 이것이 가장 지혜로운 기도다. 자신의 필요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맡겨진 사명을 위한 기도, 이런 기도가 하나님을 감동시킨다.

 

6. 솔로몬이 구한 "듣는 마음"은 무엇이며, 지혜의 참된 목적은 무엇인가?

  '듣는 마음'은 지혜를 가리키는 또 다른 이름이다. 지혜(히브리어 호크마, חָכְמָה)란 단순히 많이 아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줄 아는 마음이요, 그 말씀에 따라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이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신 목적은 그가 이스라엘 백성을 공의롭게 재판하기 위함이었다. 지혜의 열왕기상 기자가 정의한 지혜는 바로 이 듣는 마음이다. 즉 지혜란 하나님의 말씀과 백성의 소리를 잘 듣고 그에 따라 바르게 분별하는 능력이다.

  지혜의 목적이 재판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솔로몬이 지혜를 받자마자 보여 준 능력이 바로 두 창기 사이의 재판이었다(왕상 3:16-28). 아이를 두고 서로 자기 것이라 다투는 두 여인 앞에서 솔로몬은 "살아 있는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은 이 여자에게, 반은 저 여자에게 주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때 진짜 어머니는 "차라리 이 여자에게 주고 죽이지 마소서"라고 호소하였다. 이로써 진짜 어머니가 가려졌다. 온 이스라엘이 이 재판을 보고 "하나님의 지혜가 그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보았더라"(왕상 3:28)고 경탄하였다. 지혜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가장 어려운 판단 앞에서 그 진가를 드러낸다.

왕상 3:28 온 이스라엘이 왕이 심판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그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

  지혜의 목적이 재판이라는 것을 이해하려면 왕의 가장 핵심적인 직무가 재판임을 알아야 한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왕은 단순히 군사 지도자가 아니라 최고 재판관이었다. 백성이 왕에게 나아오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송사(訟事)였다. 왕이 공의롭지 않으면 백성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호소할 곳이 없었다. 솔로몬이 재판을 잘하기 위한 마음을 구한 것은 왕으로서의 사명을 가장 정확하게 이해한 것이다. 그리스도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그 사명의 핵심은 심판이다. 그러므로 지혜는 심판을 위한 것이요, 심판을 위한 준비가 바로 지혜다.

  그런데 이 재판의 주제는 더 깊은 차원으로 나아간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신 궁극적 목적은 그가 장차 심판을 잘 받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인이 지혜로워야 하는 이유는 장차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는 날을 위해서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고 선포한다. 지금 이 순간 죽는 자는 곧바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선다. 죽은 후 무덤에 잠자며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천년왕국이 진행되고 있으며 낙원에서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 상급 심판을 받게 된다.

고후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받는 심판은 정죄의 심판이 아니라 상급의 심판이다. 어떤 신분을 얻을 것인가, 어떤 처소에서 살 것인가, 어떤 면류관을 받을 것인가가 결정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 20장의 백보좌 심판에서 온 인류의 최후 심판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심판주 앞에 섰을 때 어떤 모습으로 설 것인가를 아는 자다. 그날을 준비하는 자가 진정으로 지혜로운 자다.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 비유에서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기름을 준비한 것처럼, 신랑이신 주님을 맞이할 때 어떤 모습으로 설 것인지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 지혜다.

  또한 '듣는 마음'이라는 표현은 오늘의 성도에게도 중요한 도전을 준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듣지 않는 사람은 교만으로 가득 찬 사람이다. 자기 생각이 꽉 들어차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반면에 지혜로운 사람은 한 번만 들어도 눈이 번쩍 뜨인다. 말씀 앞에서 "내가 30년 신앙생활을 했는데 그리스도가 누군지도 몰랐구나, 구약 성경을 헛것으로 봤구나, 주님이 오시는 날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구나"라고 깨닫는 사람이 지혜로운 자다. "한 번 영원히 구원받았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상급 심판을 의식하며 날마다 준비하는 삶을 사는 자가 바로 '듣는 마음'을 가진 자다. 그런 깨달음이 없다면 아직 지혜가 없는 것이다. 지혜로운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지를 알아야 한다.

 

7. 예수님은 솔로몬보다 더 큰 평화와 지혜의 왕이심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솔로몬이 평화의 왕이요 지혜의 왕이라면, 예수님은 그보다 훨씬 크신 분이다. 예수님은 평화를 베푸는 왕이 아니라 평화 그 자체이시다. 사도 바울은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엡 2:14)라고 선포한다. 솔로몬이 아버지 다윗의 전쟁으로 이루어진 평화를 다스렸다면,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무심으로 평화를 이루셨다. 피를 통해 악한 영을 내보내고, 인간의 죗값을 대신 치르시고, 하나님과 원수 된 우리를 화목케 하신 것이다. 이것이 솔로몬의 평화와 예수님의 평화가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다.

엡 2:13-14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예수님은 부활 이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때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하셨다. 히브리어로는 '샬롬(שָׁלוֹם)'이요, 헬라어로는 '에이레네(εἰρήνη)'다. 예수님이 직접 요한복음 14장에서 선포하셨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세상이 주는 평화는 일시적이고 조건적이다. 힘의 균형이 깨지면 무너지는 것이 세상의 평화다. 솔로몬이 다윗의 전쟁으로 얻은 평화도 솔로몬이 우상을 섬기기 시작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하였고, 결국 왕국 분열로 이어졌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는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내적 실재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화목에서 비롯되는 평화이기 때문이다. 죄가 용서받고 하나님과 화목된 자에게 임하는 평화는 환경이 어떻게 바뀌어도 빼앗길 수 없다.

  또한 예수님은 지혜에 있어서도 솔로몬보다 크시다. 예수님 자신이 이를 선언하셨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마 12:42).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해 땅 끝에서 찾아온 스바 여왕이 있었다면, 솔로몬보다 크신 예수님이 직접 오셨음에도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은 것은 얼마나 큰 비극인가.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요 1:11). 말씀을 외면하고 귀를 막는 것은 솔로몬보다 크신 분을 거부하는 것이다. 심판 날에 스바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할 것이다.

마 12:4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평화를 얻는 길에도 반드시 순서가 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라고 하셨다. 화평케 하는 자가 되려면 먼저 영적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 악한 영을 쫓아내고, 죄와 싸워 이기고, 그 후에 화평을 가져오는 것이다. 전쟁을 생략하고 평화를 가져오려 하는 것은 착각이다. 영적 전쟁에서 이긴 자만이 진정한 화평을 누리고 또 전달할 수 있다. 화평케 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고 천국에 들어간다.

마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예수님이 율법을 완전히 아시고 성취하셨다는 것도 솔로몬보다 크심을 확인케 한다. 예수님은 열두 살 성인식 때에 성전에서 율법 교사들과 대화를 나누셨고, 그들이 그 지혜와 대답에 놀랐다(눅 2:46-47). 예수님도 공부하셨다. 율법을 공부하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의 계시를 받으심으로, 예수님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지혜와 평화를 온전히 갖추셨다. 솔로몬은 나중에 타락하여 이방 여인들과 결혼하고 우상을 섬기다가 60세에 세상을 떠났지만, 예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버지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솔로몬보다 크시다.

  예수님이 솔로몬보다 크신 평화와 지혜의 왕이심은 또한 그의 이름에서도 확인된다. 예수(יֵשׁוּעַ, 예슈아)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를 뜻한다. 그는 단지 평화를 선물로 주시는 분이 아니라 구원 자체를 주시는 분이다. 솔로몬의 이름이 샬롬에서 왔듯이, 예수님의 이름은 구원을 담고 있다. 솔로몬이 이 땅에서 누리는 평화를 다스렸다면, 예수님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평화를 가져다 주신다. 사도 바울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7)고 한 것이 바로 이 평화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환경을 초월하는, 솔로몬도 완전히 누리지 못한 그 평화가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솔로몬보다 크신 평화의 왕이요 지혜의 왕이시다.

빌 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8. 오늘을 사는 성도에게 지혜란 무엇이며, 어떻게 얻고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지혜를 구하는 것은 예수를 믿은 성도의 첫 번째 과제다. 야고보서 1장 5절은 이를 명확하게 선언한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솔로몬처럼 지혜를 구하라. 하나님은 꾸짖지 않으시고 후히 주신다. 자신이 지혜롭지 못함을 겸허히 인정하고, 하나님께 구하는 자가 지혜를 얻는다. 솔로몬이 "종은 작은 아이라"고 고백한 것이 지혜를 받은 출발점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약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지혜를 얻는 데는 두 가지 통로가 있다. 첫째는 공부다. 솔로몬처럼, 바울처럼,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진리의 말씀을 정직하게 공부해야 한다. 지혜는 지식을 활용하는 힘이다. 지식 없이 지혜가 활용될 그릇이 없다. 성경에 대한 지식, 구속사에 대한 이해, 신학적 훈련은 성령이 역사하실 통로가 된다. 오늘날 목회자의 경우에도 대학 교육과 신학대학원 과정, 인턴십, 목사 고시 등 십 년에 가까운 준비 과정이 요구되는 것은 그 이유가 있다. 충분히 공부하지 않으면 성도를 바르게 섬길 수 없다. 그러나 공부만으로 되지 않는다. 지식이 지혜가 되려면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성령은 공부로 쌓아 놓은 지식의 그릇 위에서 역사하신다. 충분히 공부해 놓은 자에게 성령이 임할 때, 그것이 지혜가 된다.

  둘째는 기도와 헌신이다. 솔로몬은 천 번제를 드린 후에야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 대가 없는 기도, 헌신 없는 간구는 하나님의 감동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솔로몬이 자신의 왕국 재물로 황소 천 마리를 드린 것은 목숨을 걸고 하나님 앞에 나아간 것과 같다. 그 헌신 위에 꿈이 임하였고, 그 꿈 속에서 지혜가 허락되었다. 기도는 구체적이어야 하고, 헌신은 값비싸야 하며, 구함은 분명해야 한다. 무엇을 위해 지혜를 구하는지 목적이 분명할 때 하나님이 응답하신다. 솔로몬은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백성을 위한 재판을 위해 지혜를 구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셨다.

  지혜를 사용하는 목적도 분명하다. 지혜는 심판을 잘 받기 위해 사용해야 한다. 솔로몬이 재판을 잘하기 위해 지혜를 구했듯이, 성도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지혜를 구해야 한다. 지금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위해 지혜를 구한다면,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지혜와 다를 것이 없다. 지혜로운 성도는 항상 심판주 앞에 섰을 때를 생각하며 살아간다. 오늘 어떤 결정을 내릴 때마다 "이것이 그날 심판대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선택인가?"를 묻는 자가 지혜로운 자다.

  솔로몬이 구한 지혜, 즉 호크마는 욥기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보라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 하셨느니라"(욥 28:28).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심판을 두려워하여 악을 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자기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려는 자다. 회개 기도문 앞에서 귀를 막지 않는 자가 지혜로운 자다. 아무리 회개를 촉구해도 회개하지 않는 것은 교만이요, 지혜가 없는 것이다.

욥 28:28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보라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 하셨느니라

  지혜 문학인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는 한결같이 이 진리를 선언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 9:10). 이 진리를 알고, 믿고, 삶으로 실천하는 자가 참된 지혜자다. 지혜로운 성도는 말씀 앞에서 "내가 틀렸구나, 내가 몰랐구나"라고 고백하며 돌이킨다. 배울수록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하나님께 더욱 의지하게 된다. 공부를 열심히 하되 그 결론이 헛되다는 솔로몬의 고백처럼, 모든 지식의 끝에서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지혜다.

잠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지혜 문학 전체를 관통하는 이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심오하다. 욥기의 욥은 극심한 고난 속에서도 끝까지 하나님 앞에 바로 서려 하였고,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응답을 받았다. 시편의 다윗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임을 노래하였다. 잠언의 솔로몬은 그 지혜를 격언과 잠언으로 정리하여 후세에 남겼다. 전도서의 솔로몬은 모든 것이 헛됨을 고백한 끝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3)고 결론을 내렸다. 이것이 지혜 문학이 한 목소리로 선언하는 최종 진리다. 모든 지혜의 시작과 끝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이 진리를 삶으로 실천하는 자가 참된 지혜자요, 그가 마지막 날 심판대 앞에서 당당히 설 수 있는 자다.

전 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세상을 사는 지혜도 필요하다. 세상 공부를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그들을 진리로 이끌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목적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 서는 그날이다. 솔로몬이 구한 지혜처럼, 세상의 것을 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마음을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세상의 것까지 더하여 주신다. 이것이 솔로몬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지혜의 길이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솔로몬의 삶을 통해 구약에서 이미 증명되었다.

 

9. 나오며

  다윗과 솔로몬의 관계가 전쟁과 평화의 에하드를 이루며, 솔로몬의 지혜가 타고난 가능성과 치열한 공부, 그리고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결합으로 이루어졌음을 살펴보았다. 또한 솔로몬이 천 번제를 드리며 재판을 잘할 수 있는 듣는 마음을 구했을 때 하나님이 지혜를 허락하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평화 그 자체이시며 솔로몬보다 크신 지혜의 주이심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오늘을 사는 성도에게 지혜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며, 심판주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준비하는 힘임을 살펴보았다.

  모든 성도는 이 진리를 붙들어야 한다.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며, 지혜의 목적은 심판주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함이다. 세상의 지식과 성령의 지혜를 함께 구해야 한다. 어느 하나를 생략해서는 안 된다. 공부하지 않고 성령만을 구하는 것도 잘못이요, 성령의 도움 없이 공부만으로 되는 것처럼 자만하는 것도 잘못이다. 솔로몬처럼 치열하게 공부하되, 솔로몬처럼 하나님 앞에 값비싼 헌신으로 나아가 지혜를 구해야 한다.

  또한 영적 전쟁에서 도망쳐서는 아니 된다. 다윗이 전쟁에서 이겼기에 솔로몬이 평화를 누렸듯이, 이 땅에서 죄와 싸워 이기는 자만이 장차 영원한 평화를 누리게 된다. 말씀을 들을 때 "내가 틀렸구나" 하고 돌이키는 듣는 마음, 그것이 지혜의 시작이다. 그 지혜로 심판주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도록 날마다 준비해야 한다.

  솔로몬이 구하지 않은 부와 영광을 하나님이 더하여 주셨듯이, 먼저 심판주 앞에 설 준비를 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이 땅에서의 삶도 풍성하게 채워 주신다. 세상 지혜와 하늘의 지혜를 모두 구하되 순서를 바로 해야 한다. 하늘의 지혜가 먼저요, 세상 지혜는 그 도구다. 이 순서를 바로 잡고, 솔로몬처럼 하나님 앞에 헌신하며 지혜를 구하고, 예수님 안에서 참된 평화를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솔로몬보다 크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참된 평화를 누리며, 마지막 날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6월 17일(수)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평화와 지혜의 왕으로 조명하며, 그가 누린 영광이 부친 다윗의 영적 전쟁과 승리라는 토대 위에서 가능했음을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참된 평화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피 흘리는 싸움을 통해 쟁취되는 것이듯, 성도 역시 영원한 평화를 위해 지혜를 갈구하며 치열한 영적 전투를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솔로몬의 지혜는 유전적 요인이나 개인적 학습을 넘어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림으로써 얻은 ‘듣는 마음’에 근간을 두고 있으며, 이는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심판의 지혜로 귀결됩니다. 결국 이 설교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지식에 머물지 않고 성령의 가르침과 성경 공부를 병행하여, 장차 올 그리스도의 심판대를 준비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한다는 실천적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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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18)]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24) 그는 전쟁에 능한 자였다(01)(시24:7~1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HftS79XS4J8 1. 들어가며 지금까지 우리는 다윗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았다. ...
    Date2026.06.10 By갈렙 Views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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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기독론(117)]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23) 그는 진정 회개하는 자였다(05)(시51:1~19)_2026-06-09(화)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17)]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23) 그는 진정 회개하는 자였다(05)(시51:1~19)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mQ8T-U8Veqw 1. 들어가며 이번 시간은 구약의 기독론 시리즈 가운데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에 ...
    Date2026.06.09 By갈렙 Views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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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기독론(116)]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22) 그는 진정 회개하는 자였다(04)(시51:1~19)_2026-06-07(주일)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16)]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22) 그는 진정 회개하는 자였다(04)(시51:1~19)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R3lkAyHzK88 1. 들어가며 이번 기독론 연속 강해 116번째 시간이자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으...
    Date2026.06.08 By갈렙 Views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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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기독론(113)]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9) 그는 진정 회개하는 자였다(01)(시38:1~13)_2026-06-05(금)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13)]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9) 그는 진정 회개하는 자였다(01)(시38:1~13)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NMuZ0Ly2igs 1. 들어가며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기억된다. 그는 골리앗 앞에...
    Date2026.06.05 By갈렙 Views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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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기독론(112)]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8) 다윗의 저주시, 과연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시51:10~12)_2026-06-04(목)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12)]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8) 다윗의 저주시, 과연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시51:10~12)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Bu-ht_hrNmM 1. 들어가며 시편을 읽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
    Date2026.06.04 By갈렙 Views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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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기독론(111)]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7)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4)(시22:1~21)_2026-06-03(수)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11)]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7)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4)(시22:1~21)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SMRwAH_FhHU 1. 들어가며 다윗은 메시아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이다. 이사야를 메시아 ...
    Date2026.06.03 By갈렙 Views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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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기독론(110)]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6)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3)(시22:1~21)_2026-06-02(화)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10)]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6)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3)(시22:1~21)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MpzXbxrIduQ 1. 들어가며 다윗은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불리는 인...
    Date2026.06.02 By갈렙 Views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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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기독론(109)]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5)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2)(시22:1~21)_2026-06-01(월)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09)]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5)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2)(시22:1~21)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8_z-Y2WW3yY 1. 들어가며 지금 우리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구약 성경을 통해서 살...
    Date2026.06.01 By갈렙 Views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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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기독론(106)]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2) 찬양대장에게 미친 진정한 왕의 위엄(시78:65~71)_2026-05-29(금)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06)]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2) 찬양대장에게 미친 진정한 왕의 위엄(시78:65~71)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ZUPCGQWtCgU [기독론(106)]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2) 찬양대장에게 미친 진정한 왕의 ...
    Date2026.05.29 By갈렙 Views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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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기독론(105)]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1) 고라자손에게 미친 진정한 왕의 위엄(시48:1~14)_2026-05-28(목)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05)]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1) 고라자손에게 미친 진정한 왕의 위엄(시48:1~1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Y1hbJRiwHcs 1. 들어가며 한 사람의 생애가 얼마나 깊이 하나님을 사랑했는가는, 그가 죽은 ...
    Date2026.05.28 By갈렙 Views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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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기독론(104)]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0) 그는 예수께서 왕이자 제사장이라는 것을 예언하였다(03)(시110:1~7)_2026-05-27(수)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04)]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0) 그는 예수께서 왕이자 제사장이라는 것을 예언하였다(03)(시110:1~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O7qFXjZSbUA 1. 들어가며 시편 110편은 다윗이 성령의 감동 가운데 본 하...
    Date2026.05.27 By갈렙 Views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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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기독론(103)]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09) 그는 예수께서 왕이자 제사장이라는 것을 예언하였다(02)(시110:1~7)_2026-05-26(화)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03)]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09) 그는 예수께서 왕이자 제사장이라는 것을 예언하였다(02)(시110:1~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dK6eZeWZvT4 1. 들어가며 예수님은 누구신가. 이 질문은 기독론의 중심 ...
    Date2026.05.26 By갈렙 Views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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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기독론(102)]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08) 그는 예수께서 왕이자 제사장이라는 것을 예언하였다(01)(시110:1~7)_2026-05-25(월)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02)]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08) 그는 예수께서 왕이자 제사장이라는 것을 예언하였다(01)(시110:1~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_Y-0B3nPzV4 1. 들어가며 다윗은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으로만 기억될 사...
    Date2026.05.25 By갈렙 Views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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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기독론(99)]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05) 사명과 마음과 은사의 측면에서(시110:1~7)_2026-05-22(금)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99)]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05) 사명과 마음과 은사의 측면에서(시110:1~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nXjJaFuelYY 1. 들어가며 사람은 무엇을 사모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달라진다. 어떤 사람은 ...
    Date2026.05.22 By갈렙 Views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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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기독론(98)]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04) 사명과 마음과 은사의 측면에서(시110:1~7)_2026-05-21(목)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98)]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04) 사명과 마음과 은사의 측면에서(시110:1~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YVS--SER50 1. 들어가며 성도는 이 땅에서 시작되어 이 땅으로 끝나는 존재가 아니다. 육체는 흙으...
    Date2026.05.21 By갈렙 Views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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