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24(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기독론(101)]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특징(07) 그는 예수께서 어떤 존재가 될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시편 2:7~9)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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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면 복음서만 보아서는 안 된다. 복음서는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사건을 증언하지만, 그 복음서가 붙들고 있는 뿌리는 구약의 약속에 있다. 특히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알려면 다윗을 보아야 한다. 다윗은 단지 이스라엘 역사 속의 두 번째 왕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표본이며, 장차 왕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가장 선명하게 예표한 사람이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계보를 시작하면서 예수님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소개한다(마 1:1). 아브라함은 약속과 믿음의 조상이고, 다윗은 왕권과 나라의 조상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씨로 오셨고, 동시에 다윗에게 약속된 왕의 씨로 오셨다.
마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다윗은 예수님을 몰랐던 사람이 아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오래 전 사람이었지만, 성령의 감동 가운데 장차 오실 메시아가 어떤 분이신지를 보았다. 예수님께서도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그리스도를 “주”라고 불렀다고 말씀하셨다(마 22:43-45). 곧 다윗은 자신의 후손으로 오실 분이 단순한 인간 왕이 아니라 자기보다 크신 주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 22:43-45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이번 말씀의 본문인 시편 2편도 바로 그리스도의 신분을 보여 준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라는 말씀은 다윗 자신에게만 갇힌 말씀이 아니다. 신약 성경은 이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열방을 유업으로 받으실 왕이요,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리실 분이다.
다윗은 이 사실을 영적으로 알았다. 그는 왕이었기에 왕직의 무게를 알았고, 고난을 통과한 사람이었기에 장차 고난을 통해 영광에 들어가실 그리스도의 길을 예감했다. 그는 목자였기에 선한 목자를 노래했고, 기름부음 받은 왕이었기에 참된 기름부음 받은 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여호와의 영이 강하게 임한 사람이었기에, 장차 오실 예수님의 신분과 사역을 시편 곳곳에 예언으로 남길 수 있었다.
오늘날 성도도 이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을 단지 죄를 용서해 주시는 분으로만 알고 멈추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구주이시며 동시에 왕이시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는 분이시며, 동시에 이기는 자들에게 보좌에 함께 앉는 권세를 주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왕 노릇할 자로 준비되려는 성도는 왕이신 예수님을 바로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다윗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과 왕권을 미리 알았으며, 오늘의 성도가 어떻게 왕 노릇할 자로 준비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왜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부르는가?
마태복음은 왕의 복음서라고 불릴 만하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탄생을 말하기 전에 먼저 족보를 제시한다. 그런데 그 족보의 첫 문장은 매우 의도적이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수많은 구약 인물 가운데 아브라함과 다윗이 대표로 언급된다. 이것은 예수님이 약속의 성취자이시며 왕권의 완성자이심을 보여 준다.
아브라함에게는 씨의 약속이 있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씨를 통해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다윗에게도 씨의 약속이 있었다. 하나님은 다윗의 몸에서 날 씨를 세우시고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씨이시고, 다윗의 씨이시다. 한 분 하나님께서 창세기부터 이어 오신 구속 경륜은 아브라함의 약속과 다윗의 왕권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다.
삼하 7:12-13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마태복음의 족보에서 한 가지 특별한 점은 다윗에게만 “왕”이라는 직분이 붙는다는 것이다. 다른 인물들은 “낳고”라는 표현으로 이어지지만, 다윗에게는 “다윗 왕”이라는 칭호가 붙는다. 이것은 다윗이 예수님의 왕적 신분을 이해하는 열쇠임을 보여 준다.
마 1: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또한 마태복음 1장 17절은 예수님의 족보를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대, 다윗부터 바벨론 포로까지 14대, 바벨론 포로부터 그리스도까지 14대로 정리한다. 히브리어에서 다윗이라는 이름은 ‘다웨드’, 곧 דוד(DWD)로 쓰이며, 히브리 문자 숫자값으로 계산하면 14가 된다. 이것은 마태복음이 히브리적 배경 속에서 다윗 왕권을 강조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마 1:17 그런즉 모든 대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마태복음 2장에서도 예수님은 왕으로 소개된다. 동방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찾은 분은 단순한 종교 지도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았다. 예수님의 탄생은 왕의 탄생이었다.
마 2: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그러므로 다윗을 모르면 예수님의 왕권을 깊이 알 수 없다. 다윗은 예수님의 조상이라는 혈통적 의미만 가진 사람이 아니다. 그는 왕의 표본이다. 그는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은 왕이었고, 전쟁과 고난을 통과한 왕이었으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시온을 사모한 왕이었다. 그러나 그는 완전한 왕은 아니었다. 완전한 왕은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다윗은 예수님을 가장 가깝게 예표한 왕이고, 예수님은 다윗 왕권의 완전한 성취이시다.
이것이 마태복음이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부르는 이유다. 예수님은 다윗처럼 왕으로 오셨지만, 다윗보다 크신 왕이시다. 다윗은 이 땅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지만, 예수님은 열방과 만국을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이시다. 다윗은 예표였고, 예수님은 실체다.
3. 다윗은 어떻게 자기 자손을 주라 불렀는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던지신 질문은 기독론의 핵심을 찌른다. “그리스도가 누구의 자손이냐?” 그들은 곧바로 “다윗의 자손”이라고 대답했다. 그것은 틀린 대답이 아니었다.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셔야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셨다.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그리스도를 “주”라 불렀다면, 그리스도는 어떻게 단지 다윗의 자손이기만 하겠느냐고 물으셨다.
마 22:41-42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여기서 예수님이 인용하신 말씀은 시편 110편 1절이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이라고 노래했다. 다윗에게 “내 주”가 있었다. 그분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이시지만, 동시에 다윗이 주라 부른 분이다.
시 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이중 신분을 보여 준다.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참 사람이시다. 그러나 동시에 다윗의 주가 되시는 참 하나님이시다.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셔서 다윗의 혈통을 따라 사람이 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낮아지심으로 다윗의 자손이 되셨고, 본래의 신적 권세로는 다윗의 주가 되신다.
이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성령의 감동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그리스도를 주라 칭했다고 말씀하셨다. 다윗이 이 비밀을 알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추론이나 문학적 상상 때문이 아니다.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강하게 임하셨기 때문이다.
삼상 16: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구약 시대에 성령은 신약 성도처럼 내주하시는 방식으로 역사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사람 위에 임하셨다. 다윗에게 여호와의 영이 강하게 임하자, 그는 단순한 정치적 왕이 아니라 예언적 왕이 되었다. 그의 시편은 개인의 감정 노래에 머물지 않고,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말씀으로 사용되었다.
시편 110편은 그 대표적인 예다. 다윗은 장차 오실 메시아가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실 것을 보았다. 여기서 “오른편”은 히브리어로 ‘야민’이며, 권세와 영광과 승리의 자리를 뜻한다. 메시아는 원수들이 발판이 될 때까지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신다. 이것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 그리고 왕권의 승리를 미리 보여 준 말씀이다.
신약은 이 말씀을 예수님께 적용한다. 예수님은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지만, 부활하신 후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셨다. 이것은 보좌가 세 개라는 뜻이 아니다. 보좌는 하나다. 만유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그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이셨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께서 왕권을 가지신 보이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히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다윗은 이 비밀을 성령 안에서 보았다. 그래서 그는 자기 자손으로 오실 분을 “내 주”라고 불렀다. 이것이 다윗의 위대함이다. 그는 자신의 왕권보다 더 크신 왕권을 보았다. 그는 자기 집안에서 태어날 후손을 자랑한 것이 아니라, 자기보다 크신 주님을 경배했다. 왕 노릇할 자는 반드시 이 태도를 가져야 한다. 자기 왕권을 붙들려는 자가 아니라, 참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엎드리는 자가 장차 왕 노릇할 자로 준비된다.
4. 다윗은 왜 메시아를 하나님의 아들로 보았는가?
이번 본문의 중심은 시편 2편 7절이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이 말씀은 표면적으로는 왕의 즉위와 관련된 말씀처럼 보인다. 그러나 신약 성경은 이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한다. 그러므로 시편 2편은 단순한 왕권 시가 아니라, 메시아의 신분과 통치를 예언하는 말씀이다.
시 2: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아들”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벤’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생명과 권위를 이어받는 자다. “낳았다”는 말은 히브리어 ‘얄라드’와 관련되며, 존재의 출현과 관계의 선언을 함께 담고 있다. 시편 2편에서 이 말씀은 메시아가 하나님께 속한 독특한 아들의 신분으로 세워지는 것을 보여 준다.
히브리서는 이 말씀을 예수님께 적용한다. 하나님께서 어느 천사에게도 “너는 내 아들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천사보다 훨씬 뛰어나신 분이며,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요 본체의 형상이시다. 이것은 예수님이 단순한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한다.
히 1:5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 한 분 하나님께서 본래부터 어떤 다른 신적 존재를 따로 낳으셨다는 뜻이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아들은 한 분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셔서 자신을 나타내신 방식이다. 예수님은 사람으로는 다윗의 자손이시지만, 신분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분 안에서 보이지 않던 하나님이 보이셨고, 영원한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시편 2편은 하나님의 아들이 단지 사랑받는 존재로만 오시는 것이 아니라, 열방을 유업으로 받는 왕으로 오신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아들에게 이방 나라를 유업으로 주시고, 땅끝까지 소유로 주시겠다고 하신다.
시 2: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리로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이 이스라엘 안에만 갇히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셨지만, 유대인만의 왕이 아니시다. 그분은 열방의 왕이시며, 만국을 다스리실 왕이시다. 그러므로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야 한다. 하나님 아들의 왕권은 온 세상을 향한다.
시편 2편은 또한 메시아의 심판 권세를 말한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철장은 흔들리지 않는 왕적 권세를 뜻한다. 예수님은 사랑의 주님이시지만, 동시에 공의로 심판하시는 왕이시다. 주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하나님과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는 자들은 결국 심판을 받는다.
시 2:9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다윗은 이것을 알았다. 자신도 왕으로 세움을 받았지만, 참된 왕은 장차 오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신도 열방과 싸웠지만, 참된 왕은 열방을 유업으로 받으실 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신도 원수들을 상대했지만, 참된 왕은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리실 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시편 2편은 다윗의 왕권을 넘어 예수님의 왕권을 보여 준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열방의 상속자이시며, 심판과 통치의 왕이시다. 오늘 성도는 예수님을 단지 나를 도와주시는 분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며, 나의 왕이며, 만국을 다스릴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5. 기름부음 받은 자는 어떤 사명을 가진 분인가?
시편 2편은 메시아를 “기름부음 받은 자”로 부른다.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은 여호와와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한다. 여기서 “기름부음 받은 자”가 바로 메시아다. 히브리어로는 ‘마쉬아흐’이며, 헬라어로는 ‘크리스토스’다. 우리가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말은 이름이 아니라 직분과 신분을 담은 말이다.
시 2: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구약에서 기름부음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가 기름부음을 받았다. 기름은 하나님의 선택과 위임과 성령의 능력을 상징한다. 다윗도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았다. 그날 이후 여호와의 영이 다윗에게 강하게 임하셨다. 다윗은 자신이 기름부음 받은 왕이었기 때문에, 장차 오실 참된 기름부음 받은 자를 더 깊이 바라볼 수 있었다.
삼상 16: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예수님도 기름부음 받은 분으로 오셨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름부음은 단지 의식적 기름부음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다. 그 결과 예수님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다.
행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예수님은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의 말씀을 읽으시며 자신의 사명을 밝히셨다. 주의 성령이 자신에게 임하셨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기름을 부으셨다고 선포하셨다. 그 기름부음의 목적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며, 눈먼 자를 다시 보게 하고,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었다.
눅 4:18-19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우리는 메시아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본다. 예수님은 단지 왕으로 군림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포로 된 자를 풀어 주시기 위해 오셨다. 여기서 포로 됨은 정치적 속박만이 아니다. 죄에 묶이고, 마귀에게 눌리고, 조상과 자신의 죄로 인해 악한 영의 압박을 받는 모든 상태를 포함한다. 예수님은 마귀에게 눌린 자들을 고치시고 자유롭게 하시는 메시아다.
그러므로 기름부음 받은 자의 사명에는 구원론과 귀신론이 함께 들어 있다. 죄 사함만 있고 악한 영의 압박에서 벗어나는 자유가 없다면 복음의 실제가 약해진다. 반대로 귀신을 쫓는 체험만 있고 회개와 보혈의 정결이 없다면 그것도 위험하다. 예수님은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부음 받으신 분으로서 죄인을 용서하시고,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임하게 하신다.
다윗은 기름부음 받은 왕이었지만, 자신이 완전한 메시아가 아님을 알았다. 그는 죄를 지었고, 회개해야 했으며, 약점도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기름부음은 장차 오실 완전한 기름부음 받은 자를 가리켰다. 예수님은 왕으로 기름부음 받으셨고, 선지자로 말씀을 선포하셨으며, 제사장으로 자신의 피를 드리셨다. 한 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왕직과 선지자직과 제사장직이 완전하게 성취된다.
성도도 이 기름부음의 목적을 알아야 한다. 성령의 은사는 자랑을 위한 것이 아니다. 직분도 높아지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능력을 주시는 이유는 영혼을 살리고,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함이다. 다윗에게 임한 영도 사명을 위한 것이었고, 예수님께 임한 성령과 능력도 사명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은사를 구할 때 자기 영광이 아니라 주님의 사명을 붙들어야 한다.
6. 예수님은 어떻게 만왕의 왕으로 보좌에 앉으셨는가?
왕권의 최종 완성은 요한계시록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예수님은 어린양이시지만, 동시에 만주의 주요 만왕의 왕이시다. 어린양은 죽임당하신 예수님의 희생을 말하고, 만왕의 왕은 그분의 승리와 통치를 말한다. 예수님은 고난을 통과하여 승리하셨고, 그 승리로 왕권을 받으셨다.
계 17:14 그들이 어린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예수님이 왕으로 보좌에 앉으신 길은 세상의 왕들이 권력을 얻는 방식과 다르다. 세상의 왕들은 힘으로 올라가고 사람을 짓누르며 자기 자리를 지킨다. 그러나 예수님은 낮아지심으로 왕이 되셨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셨고, 부활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셨으며, 승천하여 보좌에 앉으셨다.
빌 2:8-9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 보좌는 원래 한 분 하나님의 통치 자리다. 시편은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신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보좌도 하나다. 그 한 보좌에서 만유가 다스림을 받는다.
시 103:19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도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기셨기 때문에 보좌에 앉으셨다. 요한계시록 3장 21절은 이 사실을 분명히 말한다. 예수님은 이기셨고,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으셨다. 여기서 아버지와 아들이 두 보좌에 따로 앉아 있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셔서 인간으로 승리하시고, 그 승리의 몸으로 보좌의 영광을 드러내신 것이다.
계 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이 말씀에는 성도에게 주시는 놀라운 약속도 있다. 예수님은 이기는 자에게 자신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하겠다고 하셨다. 이것은 모든 신자가 아무렇게 살아도 자동으로 왕권을 받는다는 뜻이 아니다.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이다. 예수님이 이기셨기 때문에 보좌에 앉으셨듯이, 성도도 이기는 자가 되어야 보좌에 참여한다.
이기는 것은 무엇인가? 죄를 이기는 것이다. 마귀의 유혹을 이기는 것이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것이다. 고난 속에서도 주님을 배반하지 않는 것이다. 자기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이기셨고, 성도는 회개와 충성과 인내로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 동탄명성교회가 강조하는 구원론의 핵심이 드러난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칭의를 얻는 것은 구원의 시작이다. 그러나 왕 노릇할 자로 준비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성도는 날마다 회개하고, 행위책에 기록된 죄가 지워지도록 자신을 정결하게 해야 하며, 맡겨진 사명에 충성해야 한다. 구원받은 자가 모두 같은 영광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주님은 행한 대로 갚으시며, 이기는 자에게 보좌의 영광을 나누어 주신다.
고후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다윗은 이 왕권의 원리를 삶으로 배웠다. 그는 사울을 억지로 끌어내리지 않았다. 자신의 힘으로 왕권을 빼앗으려 하지 않았다. 도망하고 고난받는 시간을 통과하면서도 하나님의 질서를 어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참 왕권은 사람이 빼앗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높이셔서 주시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 길을 완전하게 걸으셨다. 그러므로 왕 노릇할 자는 보좌를 탐하기 전에 먼저 십자가의 길과 회개의 길과 충성의 길을 배워야 한다.
7. 선한 목자는 왜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가?
다윗을 이해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신분이 있다. 그는 왕이기 전에 목자였다. 그는 들에서 양을 지키던 사람이었다. 사자와 곰이 양을 물어가려 할 때, 그는 도망하지 않았다. 양을 위해 싸웠다. 이 목자의 경험이 다윗의 영성에 깊이 새겨졌다. 그래서 그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할 수 있었다.
시 23:1-3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시편 23편은 단순한 위로의 시가 아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어떻게 다루시는지를 보여 준다. 목자는 양을 먹이고, 쉬게 하고, 인도하고, 보호한다. 때로는 지팡이와 막대기로 지키고 바로잡는다. 다윗은 양을 돌보며 이것을 배웠고, 하나님을 그런 목자로 경험했다.
시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셨다. 선한 목자는 삯꾼과 다르다. 삯꾼은 이리가 오면 양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나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 다윗은 사자와 곰 앞에서 양을 버리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사망과 마귀 앞에서 자기 양들을 버리지 않으셨다. 십자가에서 자기 목숨을 내어 주심으로 양들을 살리셨다.
요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여기서 왕과 목자는 하나로 만난다. 하나님이 세우신 참 왕은 백성을 짓누르는 왕이 아니다. 그는 백성을 먹이고 보호하는 목자 같은 왕이다. 세상의 왕은 백성을 자기 영광을 위해 사용하지만,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백성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내어 준다. 예수님은 바로 그런 왕이시다. 그분은 만왕의 왕이시면서 동시에 선한 목자이시다.
요한계시록은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성도들의 목자가 되신다고 말한다. 이것은 놀라운 표현이다. 어린양이 목자가 된다. 죽임당하신 어린양이 이제 보좌 가운데서 자기 백성을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신다. 십자가의 희생과 보좌의 통치가 하나로 연결된다.
계 7: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다윗은 이 예수님의 목자 되심을 미리 보여 준 사람이다. 그는 양을 사랑했던 목자였고, 이스라엘을 맡은 왕이었다. 그러나 다윗도 완전하지 않았다. 자녀 문제에서 약했고, 죄를 지었으며, 회개해야 했다. 그렇지만 그의 목자의 마음은 장차 오실 예수님의 선한 목자 되심을 예표했다.
오늘날 목회자와 사역자와 왕 노릇할 자는 이 목자의 마음을 배워야 한다. 은사가 있어도 목자의 마음이 없으면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 직분이 있어도 양을 위해 자신을 내어 놓는 마음이 없으면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왕권이 아니다. 왕 노릇할 자는 먼저 양을 돌보는 목자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이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셨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성도는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 인도받아야 한다. 자기 뜻대로 걷는 양은 길을 잃는다. 목자의 음성을 듣는 양만 생명수 샘으로 간다. 예수님은 우리를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분일 뿐 아니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함께하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님을 왕으로 경외하면서도, 동시에 목자로 신뢰해야 한다.
8. 왕 노릇할 자는 왜 회개와 거룩을 갖추어야 하는가?
왕 노릇할 자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직분이 아니다. 직분 뒤에 오는 심판이다. 높은 자리에 설수록 책임은 무겁다. 하나님은 왕에게 권세를 주시지만, 그 권세를 함부로 쓰면 더 엄중하게 심판하신다. 다윗은 이것을 알았다. 그는 자신의 죄를 가볍게 보지 않았고, 상한 심령으로 회개할 줄 알았다.
시편 7편은 하나님을 의로우신 재판장으로 말한다. 하나님은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며, 회개하지 않으면 칼을 가신다. 이것은 왕 노릇할 자에게 매우 두려운 말씀이다. 보좌에 앉는다는 것은 다스리는 권세만이 아니라 심판의 공의와도 관련된다. 그러므로 왕 노릇할 자는 먼저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시 7:11-12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회개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믿는 성도에게도 필요하다. 예수님의 피로 칭의를 받았다고 해서 죄의 기록과 죄의 영향이 자동으로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죄는 악한 영이 역사할 수 있는 근거가 되고, 행위는 하나님 앞에 기록된다. 자백과 회개를 통해 예수의 피가 적용될 때 그 죄는 씻기고 지워진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그러므로 왕 노릇할 자는 회개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죄를 감추는 왕은 타락한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역자는 무너진다. 은사가 크고 직분이 높아도 회개가 없으면 위험하다. 회개는 단지 슬퍼하는 감정이 아니라, 죄의 근거를 끊고 하나님께로 방향을 돌이키는 것이다. 헬라어 ‘메타노이아’가 말하듯, 마음과 생각의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시편 24편은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의 조건을 말한다.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청결해야 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않아야 하고 거짓 맹세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왕 노릇할 자의 조건이기도 하다. 주님의 산에 오르려는 자는 깨끗해야 한다.
시 24:3-4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여기서 거룩은 단순한 도덕적 품위가 아니다. 하나님께 속하도록 구별되는 것이다. 히브리어 ‘카도쉬’는 구별됨을 뜻하고, 헬라어 ‘하기오스’도 하나님께 따로 구별된 상태를 뜻한다. 왕 노릇할 자는 세상과 같은 가치관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 시간과 물질과 달란트를 어디에 쓰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우선순위가 드러난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는 사람과 자기 영광을 위해 쓰는 사람은 길이 다르다.
또한 왕 노릇할 자는 악한 영의 근거를 회개로 끊어야 한다. 혈기와 분노, 미움과 시기, 음란과 탐욕, 교만과 불순종은 악한 영이 역사할 수 있는 자리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이유로 죄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오히려 믿었기 때문에 더 회개해야 한다. 성령의 전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다윗의 위대함은 죄가 없었다는 데 있지 않다. 그는 죄를 지었다. 그러나 그는 나단 선지자의 책망 앞에서 회개했다. 사울은 책망을 들어도 변명했고, 다윗은 책망을 듣고 무너졌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보다 회개하는 사람을 쓰신다. 왕 노릇할 자는 죄를 안 짓는 척하는 사람이 아니라, 죄를 발견할 때 즉시 회개하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는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왕 노릇할 자는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한다. 요한계시록은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는다고 말한다. 두루마기를 빠는 삶은 회개의 삶이다. 왕권은 더러움 위에 세워지지 않는다. 정결한 신부, 이기는 자, 충성한 종에게 주어진다.
계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그러므로 성도는 왕권을 사모하되 회개 없는 왕권을 꿈꾸어서는 안 된다. 보좌를 사모하되 십자가를 피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이 이기시고 보좌에 앉으셨듯이, 성도도 회개와 거룩과 충성으로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9. 나오며
우리는 다윗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과 왕권을 어떻게 미리 알고 증언했는지를 살펴보았다. 다윗은 단순한 역사적 왕이 아니라, 장차 오실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선명하게 예표한 사람이었다. 그는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분이면서 동시에 다윗의 주가 되시는 분임을 성령 안에서 보았다. 그는 메시아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기름부음 받은 자이며, 만왕의 왕이며, 선한 목자이심을 시편 가운데 예언적으로 드러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소개한다. 이것은 예수님이 약속의 씨요 왕권의 완성자라는 뜻이다. 시편 110편은 다윗이 자기 자손으로 오실 분을 주라 부른 이유를 보여 준다. 시편 2편은 그 메시아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열방을 유업으로 받을 왕임을 증언한다. 사도행전과 누가복음은 그분이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부음 받은 자임을 보여 준다. 요한계시록은 그분이 이기신 후 보좌에 앉으신 만왕의 왕임을 밝힌다.
성도는 예수님을 부분적으로만 알아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죄를 용서해 주시는 구주이시며 동시에 만국을 다스리시는 왕이시다. 예수님은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선한 목자이시며 동시에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리실 심판의 왕이시다.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으로 낮아지셨지만, 다윗의 주로 높임을 받으신 분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데서 멈추지 말고, 왕이신 예수님께 순종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왕 노릇할 자는 다윗에게서 배워야 한다. 다윗은 기름부음 받았지만 자기 힘으로 왕권을 빼앗지 않았다. 그는 고난을 통과했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으며, 자신의 죄 앞에서는 회개했다. 이것이 왕 노릇할 자의 길이다. 성도도 보좌를 사모한다면 먼저 회개해야 한다. 거룩해야 한다. 맡겨진 시간과 물질과 달란트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
또한 성도는 은사와 직분을 자기 자랑으로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성령의 은사는 교회를 세우고 영혼을 살리기 위한 것이다. 다윗에게 임한 여호와의 영도 사명을 위한 것이었고, 예수님께 임한 성령과 능력도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은사를 사모하되 회개와 사랑과 섬김 안에서 사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성도는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갈 자로 준비되어야 한다. 믿음은 시작이고, 회개와 충성과 거룩은 그 믿음이 열매 맺는 길이다. 행위 심판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서기 위해서는 날마다 두루마기를 빨아야 한다. 악한 영의 근거를 회개로 끊고, 성령의 전으로 자신을 깨끗하게 세워야 한다. 이기는 자에게 보좌를 약속하신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왕 노릇할 자답게 준비해야 한다.
그리하여 다윗처럼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회개와 거룩과 충성으로 이기는 자가 되어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5월 24일(주일)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다윗 왕이 예수 그리스도의 왕적 신분과 사역을 미리 내다본 가장 완벽한 모형임을 강조하며, 그가 성령의 강력한 임재를 통해 메시아의 생애와 고난을 구체적으로 예언했음을 설명합니다. 마태복음 족보에서 유일하게 '왕'으로 칭호된 다윗은 장차 오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자 선한 목자임을 깊이 통찰했으며, 자신이 겪은 고난을 왕이 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으로 이해하며 인내했습니다. 특히 시편을 통해 그리스도가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으실 것까지 환상으로 본 다윗의 지식은 오늘날 성도들이 천국에서 왕 노릇 하는 자로 준비되기 위한 핵심적인 지침이 됩니다. 따라서 설교는 다윗의 삶을 본받아 철저한 회개와 거룩함을 유지함으로써, 장차 주님과 함께 통치할 이기는 자의 반열에 올라설 것을 강력히 권면합니다.
[설교교지]
다윗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으로서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존재이신지를 성령 안에서 미리 보았고 알았다. 그는 예수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왕이시면서 동시에 다윗의 주가 되시는 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요, 기름부음 받은 메시아요, 만왕의 왕이요, 선한 목자요, 장차 왕 노릇하는 자들의 완전한 본이 되실 분임을 시편을 통해 예언하였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도 다윗처럼 그리스도를 알고, 회개와 거룩과 충성을 통해 장차 왕 노릇할 자로 준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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