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21(일) 주일오후찬양예배(투박한 요약 정리)
제목: 어떻게 하면 나도 성경말씀을 잊어버리지 않고 잘 기억할 수 있을까?(시편119:10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b1AGvfBxVI8
1. 들어가며
성도라면 누구나 성경 말씀을 잘 기억하기 원한다. 예배 시간에 들은 말씀이 은혜로웠고, 설교 중에 마음이 뜨거워졌으며, 성경 구절이 분명히 귀에 들어온 것 같은데도 시간이 지나면 잘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막상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거나, 시험과 환난 앞에서 말씀으로 자신을 붙들어야 할 때, 혹은 귀신을 대적하고 병든 자를 위해 기도해야 할 때, 마음속에 있던 말씀이 쉽게 꺼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단순히 머리가 나쁜 문제만이 아니다. 말씀을 듣는 귀와 마음, 말씀을 저장하는 기억 장치, 말씀을 다시 꺼내 쓰는 훈련, 그리고 말씀을 방해하는 영적 세력까지 함께 살펴보아야 하는 문제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발의 등과 길의 빛이라고 고백하였다(시 119:105). 말씀은 어두운 길을 밝혀 주는 빛이다. 그런데 등불이 있어도 눈을 감고 있으면 길을 보지 못한다. 빛이 있어도 귀와 마음과 생각이 막혀 있으면 그 말씀은 내 안에서 길이 되지 못한다.
시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롬 10:17). 그러므로 말씀을 듣는 일은 신앙생활의 출발이다. 그러나 듣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들은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필요할 때 꺼내 쓰며, 삶의 결정과 영적 전쟁의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말씀은 단지 좋은 말씀이 아니라, 죄를 이기게 하고, 악한 영을 대적하게 하며, 천국을 준비하게 하는 하나님의 빛이다.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번 설교의 출발점은 매우 실제적이다. 왜 어떤 사람은 말씀을 들어도 금방 잊어버리는가? 왜 어떤 사람은 성경 주소와 내용을 자유롭게 꺼내어 말하는가? 왜 어떤 사람은 타고난 지능이 매우 뛰어나지 않아도 말씀을 오래 기억하고, 필요할 때 성령의 감동 가운데 새것과 옛것을 곳간에서 꺼내듯 사용할 수 있는가? 그 답은 말씀을 대하는 태도, 영적 방해의 처리, 마음의 상처 치유, 해마를 통한 기억의 저장과 회상, 그리고 반복적으로 꺼내 쓰는 훈련에 있다.
성경을 기억하는 것은 단순한 암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말씀을 생명으로 받아들이는 신앙의 문제이며, 내 속에 있는 악한 영들의 방해를 회개와 예수 이름으로 처리하는 영적 문제이고, 마음의 상처를 그리스도의 용서로 치유하는 내면의 문제이며, 들은 말씀을 다시 쓰고 말함으로 해마가 그 말씀을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생활 훈련의 문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성경 말씀이 왜 쉽게 잊히며,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처럼 말씀을 오래 기억하고 필요할 때 꺼내 쓰려면 무엇을 준비하고 훈련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왜 성경 말씀은 듣고도 쉽게 잊히는가?
성경 말씀을 듣고도 쉽게 잊히는 첫 번째 이유는 영적 방해 때문이다. 말씀은 영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귀에 소리로 들려도, 실제로는 영과 혼과 몸 전체에 영향을 주는 생명의 씨앗이다. 그러므로 악한 영들은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고, 듣더라도 깨닫지 못하게 하며, 깨달았다 해도 곧 빼앗기도록 방해한다.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비유에서 길가에 뿌려진 말씀을 사탄이 즉시 와서 빼앗는다고 말씀하셨다(막 4:15).
막 4:15 말씀이 길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마태복음에서는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 악한 자가 와서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는다고 했다(마 13:19).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씀을 빼앗기는 장소가 귀만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사실이다. 귀로 들었으나 마음에 심기지 못하면 말씀은 오래가지 못한다.
마 13: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려진 자요
설교 원고에서는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는 영적 방해를 매우 실제적으로 설명한다. 제사 계열의 영, 의심하게 만드는 영, 불신앙의 영,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는 영들이 귀와 생각을 막는다. 특히 조상 제사와 우상숭배를 통해 들어온 영들은 말씀을 들을 때 졸리게 하고, 다른 생각이 나게 하며, 말씀에 의심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말씀 기억의 첫 단계는 단순히 집중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막는 영적 통로를 회개로 처리하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육체의 피곤이다. 육체가 피곤하면 영적 집중력이 떨어진다. 토요일 밤에 늦게 자고 주일 예배에 오면, 말씀을 듣는 자리에서 몸이 먼저 잠을 청한다. 몸이 잠들면 귀도 닫히고, 귀가 닫히면 마음에 말씀이 심기지 못한다. 그러므로 말씀을 잘 기억하려면 몸도 말씀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 한다. 이것은 육체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성경적 균형이다. 예수님도 제자들이 겟세마네에서 졸고 있을 때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고 말씀하셨다(마 26:41).
마 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세 번째 이유는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가볍기 때문이다. 많은 성도들이 설교를 듣고 “좋은 말씀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좋은 말씀이라고 말한 뒤 곧 잊어버린다. 다음 주에도 좋은 말씀을 듣고, 또 잊어버린다. 그렇게 되면 말씀은 축적되지 않는다. 말씀을 정보처럼 소비하면 해마는 그 말씀을 오래 보존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말씀을 죽을 때까지 붙들어야 할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으면, 들을 때부터 태도가 달라진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이 쉽게 잊히는 이유는 지능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악한 영이 말씀을 빼앗는 영적 방해, 육체의 피곤, 마음의 준비 부족, 그리고 말씀을 생명으로 여기지 않는 태도가 함께 작동한다. 말씀을 기억하려면 먼저 말씀을 빼앗기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 하나의 방해는 말씀을 듣는 순간에 생기는 의심이다. 의심은 말씀의 씨앗이 마음에 뿌리내리지 못하게 만든다. ‘정말 그럴까’, ‘나에게도 해당될까’, ‘저 말씀은 나를 공격하는 말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반복되면, 말씀은 믿음으로 연결되지 못한다. 이것은 단순한 지적 질문과 다르다. 진리를 더 알기 위한 질문은 유익하지만, 말씀을 밀어내기 위한 의심은 악한 영들이 즐겨 사용하는 통로다. 그러므로 성도는 말씀을 들을 때 판단자의 자리에 앉지 말고, 말씀 앞에 판단받는 자리에 서야 한다.
3. 말씀을 꺼내 쓰는 서기관은 어떤 사람인가?
예수님은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을 말씀하셨다. 여기서 서기관은 헬라어로 ‘그람마튜스’(grammateus)이다. 이 단어는 문자와 기록을 다루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서기관은 단순한 율법 전문가가 아니다. 그는 천국의 제자가 된 서기관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나라를 아는 사람이며, 말씀을 자기 속에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한 때에 새것과 옛것을 꺼내는 사람이다(마 13:52).
마 13: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이 말씀에서 중요한 표현은 ‘곳간에서 내온다’는 것이다. 곳간에 없는 것은 꺼낼 수 없다. 저장하지 않은 것은 사용할 수 없다. 성령께서 감동을 주셔도, 내 속에 저장된 말씀이 없으면 꺼내 쓸 재료가 부족하다. 그러므로 말씀을 꺼내 쓰는 사람은 말씀을 많이 듣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 들은 말씀을 자기 안에 곳간처럼 저장해 둔 사람이다.
여기서 새것과 옛것은 신약과 구약을 함께 가리키는 방향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구약의 예표와 신약의 성취,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비밀, 그리고 예수께서 성취하신 복음의 실체가 함께 꺼내져야 한다. 예수님께서 부활 후 제자들에게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자신에 관하여 기록된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눅 24:44).
눅 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은 말씀을 단편적으로 아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연결하여 볼 줄 아는 사람이다. 그는 아브라함, 야곱, 유다, 요셉, 모세, 여호수아, 다윗, 솔로몬을 따로따로 흩어진 이야기로 보지 않는다. 그는 그 모든 흐름 속에서 한 분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한다. 그는 구약의 예표와 신약의 성취를 연결하여 성도들에게 생명의 길을 제시한다.
이런 사람은 설교 현장에서도 다르다. 원고를 준비했더라도 성령께서 그 순간에 더 세밀한 말씀을 주시면, 성경 어디에 그 말씀이 있는지 꺼내어 보여 줄 수 있다. 로고스, 곧 기록된 말씀을 평소에 저장해 두었기 때문에, 성령께서 그때그때 레마처럼 사용하실 수 있는 것이다. 로고스(logos)는 기록되고 선포된 말씀의 객관적 토대이고, 레마(rhēma)는 그 말씀이 특정 상황 속에서 성령의 감동으로 적용되는 방식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말씀을 꺼내 쓰는 서기관이 된다는 것은 성경 지식 자랑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을 살리기 위한 준비다. 누군가 낙심했을 때 위로의 말씀을 꺼내고, 누군가 죄 가운데 있을 때 책망의 말씀을 꺼내고, 누군가 귀신의 억압 가운데 있을 때 예수 이름과 십자가의 권세를 선포하며, 누군가 천국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을 때 심판과 상급의 말씀을 꺼내야 한다. 이런 사람은 말씀을 자기만 간직하지 않고 교회와 성도들을 세우는 데 사용한다.
이 서기관은 자기 곳간의 주인이기도 하다. 곳간은 아무 물건이나 쌓아 두는 창고가 아니다. 먹을 양식과 중요한 물건을 보관하는 장소다. 성도 안에도 말씀의 곳간이 있어야 한다. 어떤 성도는 세상 정보는 많지만 말씀의 곳간은 비어 있다. 어떤 성도는 찬양 가사는 많이 알지만, 정작 영혼을 살릴 성구는 떠오르지 않는다. 마지막 때의 성도는 세상 뉴스와 정보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귀하게 저장해야 한다. 그래야 위기의 순간에 두려움이 아니라 말씀을 꺼낼 수 있다.
4. 말씀 기억은 IQ가 아니라 무엇에 달려 있는가?
설교 원고에서 목사님은 자신의 지능이 특별히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중요한 것은 타고난 천재성이 아니었다. 성경 말씀을 자유롭게 꺼내 쓰게 된 비결은 말씀을 대하는 태도와 반복적인 축적의 습관이었다. 이것은 많은 성도들에게 소망을 준다. 말씀 기억은 소수의 천재만 가능한 일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도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반복하여 듣고, 찾아보고, 기록하고, 다시 꺼내 쓰면 말씀의 사람이 될 수 있다.
그 출발점 가운데 하나는 이상관 목사님, 곧 ‘이석’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던 영적 스승과의 만남이었다. ‘이석’은 말씀을 돌에 새기듯 새기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한 번 들으면 마음판에 새기겠다는 태도다. 이것은 잠언의 권면과도 맞닿아 있다. 잠언은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귀로 듣고 마음에 두는 것이 아름답다고 말한다(잠 22:17-18).
잠 22:17-18 너는 귀를 기울여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들으며 내 지식에 마음을 둘지어다 이것을 네 속에 보존하며 네 입술 위에 함께 있게 함이 아름다우니라
목사님은 그분의 설교를 들은 뒤 집에 와서 성경을 찾아보는 연습을 했다. 중요한 말씀이라고 생각되면 성경에서 직접 찾아 밑줄을 그었고, 그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 앞뒤 문맥을 읽었다. 한 구절을 읽다가 한 장을 읽고, 한 장을 읽다가 앞뒤 장을 읽었다. 이렇게 말씀이 점점 확장되었다. 이것이 성경 기억의 실제적 방법이다. 들은 말씀을 흘려보내지 않고, 성경 본문으로 돌아가 확인하고, 문맥 안에서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원리도 동일하다. 율법책을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 주야로 묵상하라는 것이다(수 1:8). 여기서 묵상하다는 히브리어 ‘하가’(hāgâ)와 연결되며, 낮은 소리로 읊조리고 되새기는 의미를 가진다. 성경적 묵상은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아니라, 입과 마음과 행동이 함께 참여하는 반복적 되새김이다.
수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시편 1편도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고 말한다(시 1:2). 여기서도 핵심은 즐거움과 반복이다. 억지로 외우는 지식은 오래가지 못하지만, 즐거워하며 묵상하는 말씀은 마음속 깊이 들어간다.
시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말씀 기억은 IQ가 아니라 가치 부여에 달려 있다. 내가 그 말씀을 중요하다고 여기면, 다시 찾아보고, 다시 쓰고, 다시 말하게 된다. 그러면 기억 장치는 그 말씀을 중요한 정보로 인식한다. 그러나 말씀을 예배 시간의 감동으로만 여기면, 예배당 문을 나서는 순간 사라진다. 그래서 성경 기억의 비결은 타고난 머리보다 말씀을 대하는 태도, 기록하는 습관, 반복하여 꺼내 쓰는 훈련에 있다.
성경 기억의 또 다른 비결은 ‘중요한 말씀을 중요하게 표시하는 것’이다. 밑줄을 긋는 행위는 단순한 표시가 아니다. 그것은 내 마음과 뇌에게 ‘이 말씀은 그냥 지나칠 말씀이 아니다’라고 알려 주는 행위다. 성경책에 밑줄을 긋고, 메모를 남기고, 날짜를 적고, 그 말씀을 다시 찾아보는 순간, 말씀은 나와 관련된 기억이 된다. 남의 설교 속에 있던 말씀이 내 성경 속으로 들어오고, 내 성경 속에 있던 말씀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5. 마음의 상처는 왜 말씀 기억을 방해하는가?
말씀 기억을 방해하는 중요한 내적 요인 가운데 하나는 마음의 상처다. 설교 원고에서는 뇌의 편도체를 상처와 연결하여 설명한다. 편도체는 감정적 충격과 두려움, 상처의 기억과 관련된 영역으로 설명된다. 목회적으로 말하면, 마음에 깊은 상처가 있는 사람은 말씀을 들어도 그 상처의 렌즈를 통해 듣기 쉽다. 그래서 생명을 살리기 위한 책망도 자신을 찌르는 비수처럼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왕따를 경험한 사람이 그 상처를 치유받지 못하면 모든 상황을 ‘나를 밀어내는가’라는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누군가 잠시 말이 없어도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끼고, 공동체에서 작은 오해가 생겨도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생각한다. 말씀도 마찬가지다. 설교자가 죄를 책망하면 성령의 수술 칼로 받아야 하는데, 상처가 강하면 자신을 공격하는 칼로 받아들인다. 그 결과 말씀은 기억으로 남기보다 방어와 분노의 감정으로 남는다.
그러므로 말씀을 오래 기억하고 바르게 사용하려면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어야 한다. 그 치유의 길은 용서와 회개다. 베드로가 형제가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하는지 물었을 때, 예수님은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마 18:21-22).
마 18:21-22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용서는 가해자의 죄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니다. 용서는 내 마음을 묶고 있는 상처의 권세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 앞에 내려놓는 것이다. 내가 주님께 용서받았기 때문에, 나에게 상처 준 사람도 주님의 심판과 긍휼에 맡기는 것이다. 바울도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같이 서로 용서해야 한다고 말한다(엡 4:31-32).
엡 4:31-32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설교자는 특히 이 부분에서 조심해야 한다.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사람이 말씀을 전하면, 말씀의 칼이 사람을 살리는 수술 칼이 아니라 사람을 찌르는 비수가 될 수 있다. 같은 진리를 말하더라도 상처에서 말하면 정죄가 되고, 십자가의 사랑 안에서 말하면 회복의 말씀이 된다. 그러므로 말씀을 기억하고 가르치는 사람은 먼저 자기 상처를 회개와 용서로 처리해야 한다.
히브리서는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더럽게 되지 않게 하라고 권면한다(히 12:15). 마음의 상처가 쓴 뿌리로 자라면 말씀을 왜곡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용서가 그 상처를 씻으면 마음은 다시 공평하게 말씀을 받을 수 있다.
히 12:15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결국 말씀 기억은 머리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마음의 문제다. 상처가 마음을 지배하면 말씀은 오래 머물지 못한다. 용서받은 자로서 용서할 때, 마음은 말씀을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회복된다.
상처가 치유될 때 말씀의 해석도 달라진다. 이전에는 책망으로만 들리던 말씀이 사랑의 권면으로 들리고, 이전에는 부담으로만 느껴지던 헌신의 말씀이 은혜의 초청으로 들린다. 같은 말씀이라도 마음의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그러므로 말씀 기억은 기억력 훈련 이전에 마음의 토양을 고르는 일과 관련된다. 마음 밭이 돌밭과 가시밭으로 남아 있으면 말씀은 깊이 뿌리내리지 못한다. 회개와 용서로 마음 밭이 부드러워질 때, 말씀은 오래 머물 수 있다.
6. 해마는 말씀을 어떻게 저장하고 가지치기하는가?
설교 원고는 말씀 기억을 설명하면서 해마를 중요하게 다룬다. 해마는 뇌 안에서 기억과 관련된 중요한 구조로 설명된다. 목사님은 해마가 정보를 저장하고, 과거의 기억을 꺼내 미래의 상황을 예측하는 데 사용한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중요한 목회적 적용은 분명하다. 해마는 모든 정보를 영원히 붙들고 있지 않는다. 필요 없다고 판단되는 정보는 가지치기하듯 쳐낸다.
사람은 방금 본 것과 들은 것을 기억할 수 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사흘이 지나면 많은 기억이 사라진다. 왜냐하면 해마가 그것을 중요하지 않은 정보로 판단하여 정리하기 때문이다. 설교를 듣고도 다시 꺼내 보지 않으면, 해마는 그 말씀을 일시적 정보로 취급한다. 그러나 들은 말씀을 다시 쓰고, 다시 말하고, 다시 묵상하면, 해마는 그것을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여 오래 남긴다.
시편 119편 11절은 말씀을 마음에 두었다고 말한다. 여기서 ‘두다’는 단순히 보관한다는 뜻을 넘어, 귀한 것을 숨겨 간직하는 의미를 가진다. 히브리어 ‘차판’(tsāphan)은 감추다, 저장하다, 소중히 간직하다는 의미를 가진다. 하나님의 말씀은 잠시 듣고 흘려보낼 소리가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 감추어 두어야 할 보화다(시 119:11).
시 119:11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마리아도 예수님에 관한 놀라운 말을 들었을 때 그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였다(눅 2:19). 이것이 말씀 기억의 중요한 원리다. 마음에 새기고 생각하는 것이다. 단순히 감탄하고 끝내지 않고, 그 말씀을 반복하여 마음속에서 돌이켜 보는 것이다.
눅 2: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설교 원고에서 해마는 기억의 저장소이면서 동시에 미래 예측의 도구로 설명된다. 과거에 저장된 말씀들이 서로 연결될 때, 성도는 새로운 상황을 만났을 때 말씀으로 판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윗의 전쟁을 기억하고, 야곱이 이긴 자가 된 사건을 기억하며, 예수님의 십자가 승리와 요한계시록의 이기는 자 약속을 함께 기억하면, 영적 전쟁의 현장에서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말씀 기억은 낱개의 구절 암송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물론 성경 구절을 외우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더 깊은 단계는 구절과 구절, 사건과 사건, 구약의 예표와 신약의 성취를 연결하여 하나님의 큰 그림 안에서 보는 것이다. 이것이 해마가 저장한 말씀을 성령 안에서 연결하여 사용하는 삶이다.
말씀을 들을 때 ‘문 밖에 나가면 잊어버릴 말씀’이라고 여기면 기억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러나 ‘이 말씀은 죽을 때까지 붙들 말씀’이라고 듣는다면 태도 자체가 달라진다. 해마가 가지치기하기 전에 다시 꺼내어 쓰면, 그 말씀은 중요한 것으로 각인된다. 말씀 기억의 실제 비밀은 여기에 있다.
설교 원고에서는 치매의 예도 함께 언급된다. 해마와 기억 기능이 약해지면 가까운 기억부터 흐려진다. 방금 들은 말, 방금 한 일, 오늘 먹은 식사부터 기억나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은 말씀 기억에도 경고가 된다. 평소에 머리를 쓰지 않고, 말씀을 꺼내 쓰지 않고, 모든 것을 검색과 기계에만 맡기면 기억의 근육은 약해질 수 있다. 성도는 성경 주소를 찾고, 본문을 직접 펼치고, 말씀의 앞뒤 문맥을 읽는 수고를 통해 기억의 길을 계속 사용해야 한다.
해마가 말씀을 중요하게 여기게 하려면 반복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반복은 단순한 기계적 반복이 아니다. 같은 말씀을 오늘의 상황에 다시 적용하고, 어제의 경험과 연결하며, 내일의 결단으로 가져가는 반복이다. 그렇게 할 때 말씀은 과거의 지식이 아니라 현재의 빛이 된다. 주의 말씀은 한 번 비추고 사라지는 불꽃이 아니라, 날마다 내 발걸음을 인도하는 등불이다.
7. 말씀을 오래 기억하려면 어떻게 꺼내 써야 하는가?
말씀을 오래 기억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꺼내 쓰는 것이다. 설교를 다시 듣는 것도 유익하다. 그러나 더 강력한 방법은 설교를 듣고 난 뒤, 기억나는 내용을 스스로 글로 써 보는 것이다. 다시 듣는 것은 외부에서 정보를 한 번 더 넣는 방식이다. 그러나 글로 쓰는 것은 내부에 저장된 것을 꺼내는 방식이다. 해마는 꺼내 쓸 때 그 정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더 강하게 인식한다.
하박국에서 하나님은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라고 하셨다(합 2:2). 기록은 기억의 보조 장치일 뿐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것을 정리하고 선명하게 만드는 행위다. 기록하면 모호하던 생각이 문장으로 정리된다. 문장으로 정리된 말씀은 다시 기억되기 쉽다.
합 2:2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말씀을 꺼내 쓰는 첫 번째 훈련은 설교 요약이다. 오늘 들은 말씀의 제목은 무엇이었는가? 본문은 무엇이었는가? 첫 번째 핵심은 무엇이었는가? 설교자가 반복해서 강조한 성경 구절은 무엇이었는가? 결론은 무엇이었는가? 처음에는 한 줄만 써도 된다. 한 줄이 두 줄이 되고, 두 줄이 열 줄이 되며, 열 줄이 한 페이지가 된다. 이것이 말씀을 저장하는 실제적인 훈련이다.
두 번째 훈련은 말로 설명하는 것이다. 신명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든지 길을 갈 때든지 누웠을 때든지 일어날 때든지 말하라고 한다(신 6:6-7). 말씀은 말할 때 다시 살아난다. 가족과 식탁에서 말씀을 나누고, 성도들과 대화 속에서 오늘 들은 말씀을 설명하며, 누군가 질문할 때 성경으로 대답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신 6:6-7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베드로도 성도들에게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라고 했다(벧전 3:15). 준비되지 않은 말씀은 꺼내기 어렵다. 그러나 평소에 말씀을 기록하고 말로 설명해 본 사람은 질문을 받을 때 당황하지 않는다.
벧전 3: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목사님의 설교 준비 과정도 이 원리를 보여 준다. 먼저 설교 주제가 정해지면 개요를 쓴다. 그 다음 관련 본문과 자료를 찾아본다. 주보 요약을 쓰고, 다시 원고를 작성한다. 설교를 한 뒤에도 다시 요약한다. 이런 과정은 모두 기억을 꺼내 쓰는 과정이다. 한 번 들은 것을 다섯 번 이상 다른 방식으로 꺼내 쓰면, 말씀은 단순 정보가 아니라 몸에 익은 도구가 된다.
말씀을 꺼내 쓰는 훈련은 설교자만의 일이 아니다. 모든 성도가 해야 할 일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말씀을 설명하려면 꺼내 써야 한다. 직장에서 누군가 믿음에 대해 물으면 꺼내 써야 한다. 귀신의 공격이 있을 때 예수 이름으로 대적하려면 말씀을 꺼내 써야 한다. 고난 중에 낙심하지 않으려면 약속의 말씀을 꺼내 써야 한다.
그러므로 말씀을 오래 기억하는 비결은 다시 듣기만이 아니다. 기억해서 써 보고, 기억해서 말해 보고, 기억해서 적용하는 것이다. 말씀은 꺼내 쓸수록 더 깊이 저장된다.
실제 훈련은 아주 작게 시작할 수 있다. 예배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늘 들은 성경 본문을 먼저 떠올린다. 그 다음 설교 제목을 떠올린다. 그리고 핵심 단어 세 개를 적는다. 예를 들어 ‘말씀, 해마, 꺼내 쓰기’와 같이 적는 것이다. 그 다음 그 세 단어를 가지고 한 문장을 만든다. ‘말씀은 해마가 중요하다고 여기도록 계속 꺼내 써야 한다.’ 여기서부터 설교 요약이 시작된다. 작은 문장 하나가 기억의 씨앗이 된다.
말로 설명할 때도 원리가 있다. 단순히 “은혜로웠다”고 말하면 기억은 깊어지지 않는다. 무엇이 은혜로웠는지, 어떤 성구가 마음에 남았는지, 그 말씀이 내 삶의 어떤 부분을 건드렸는지를 말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는 순간 말씀은 감정의 흔적에서 생각의 구조로 바뀐다. 생각의 구조로 바뀐 말씀은 다시 꺼내 쓰기 쉬워진다.
8. 말씀 기억을 돕는 보조 원리는 무엇인가?
설교 원고는 해마를 발달시키는 핵심 원리로 상처 치유와 기억 꺼내 쓰기를 말한 뒤, 몇 가지 보조 원리를 제시한다. 첫째는 기쁨과 보상의 원리다. 목사님은 이것을 도파민과 연결하여 설명한다. 보상이 있으면 의욕이 생기고, 의욕이 생기면 기억과 훈련이 더 잘 이루어진다. 여기서 말하는 보상은 세속적 욕심만을 뜻하지 않는다. 말씀을 붙든 결과로 얻게 될 영적 유익, 사역의 열매, 사역자의 도움, 회개의 진전, 천국의 상급을 바라보는 것도 거룩한 동기가 될 수 있다.
바울은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한다고 말한다(고전 9:25). 운동선수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기 위해 절제한다면, 성도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을 훈련해야 한다. 말씀을 기억하는 훈련도 마찬가지다. 즉각적인 편안함보다 장차 얻게 될 영적 유익을 바라볼 때 지속할 힘이 생긴다.
고전 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둘째는 자기 암시, 더 정확히 말하면 말씀에 근거한 믿음의 고백이다. 단순한 긍정 심리가 아니다. 성도는 ‘나는 내 힘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성도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할 수 있다고 고백하는 사람이다(빌 4:13).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예수님도 자신을 믿는 자는 주님이 하신 일을 그도 할 것이며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라고 말씀하셨다(요 14:12). 그러므로 성도는 말씀을 근거로 자신에게 믿음의 말을 들려줄 수 있다. ‘나는 어제보다 오늘 말씀을 더 잘 붙들 수 있다.’ ‘성령께서 내게 깨닫게 하시는 말씀을 나는 더 깊이 저장할 수 있다.’ ‘나는 주님의 말씀을 꺼내어 사람을 살리는 자로 세워질 수 있다.’ 이런 고백은 허공에 던지는 말이 아니라, 주님의 약속 위에 서는 신앙적 자기 암시다.
요 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셋째는 몸의 훈련이다. 육체와 기억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몸이 너무 피곤하면 말씀을 듣기 어렵고, 몸이 지나치게 무기력하면 기억을 꺼내 쓰는 훈련도 어렵다. 그래서 적절한 운동과 수면, 규칙적 생활은 말씀 기억에도 도움을 준다. 영적인 사람은 육체를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육체를 말씀을 담는 그릇으로 잘 관리하는 사람이다.
넷째는 회개와 축사다.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는 영, 의심하게 하는 영, 귀를 막는 영, 생각을 흐리게 하는 영은 회개와 예수 이름으로 처리해야 한다. 동탄명성교회가 강조해 온 귀신론의 관점에서 보면, 말씀 기억의 문제는 단지 뇌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 세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조상 제사와 우상숭배와 불신앙의 통로로 들어온 악한 영들이 말씀을 막는다면, 성도는 그 죄를 자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이름으로 그 영들을 대적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보조 원리의 중심에는 말씀이 있어야 한다. 보상도 말씀을 위해 있고, 자기 암시도 말씀의 약속 위에 있어야 하며, 운동도 말씀을 듣고 섬기기 위한 몸의 관리가 되어야 한다. 회개와 축사도 결국 말씀을 더 잘 듣고 순종하기 위한 길이다. 말씀 기억의 목적은 암기력 자랑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더 알고, 교회를 세우며, 마지막 때에 이기는 자로 준비되는 데 있다.
보상의 원리는 체크리스트와도 연결된다. 회개기도를 몇 번 했는지 표시하고, 성경 읽기와 설교 요약을 했는지 표시하면 뇌는 진행 상황을 본다. 진행 상황이 보이면 의욕이 생긴다. 어린아이에게 스티커가 도움이 되는 것처럼, 어른에게도 작은 표시와 확인은 지속의 힘을 준다. 이것은 율법주의가 아니라 훈련의 지혜다. 영적 삶에도 질서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
운동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말씀을 기억하려는 성도는 몸을 혹사시키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몸이 너무 무너지면 예배 자리에서도 집중하기 어렵고, 기도 자리에서도 금방 지친다. 가볍게 걷고, 숨을 고르고, 몸을 움직이는 일은 말씀을 담는 그릇을 관리하는 일이다. 몸을 우상으로 삼으면 안 되지만, 몸을 방치해서도 안 된다. 성도의 몸은 성령의 전이기 때문이다(고전 6:19).
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9. 나오며
이번 시간에는 성경 말씀을 잊어버리지 않고 잘 기억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았다.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지만, 그 말씀이 내 안에 오래 머물기 위해서는 말씀을 듣는 귀와 마음과 몸이 준비되어야 한다. 악한 영의 방해를 회개로 처리해야 하고, 육체의 피곤을 가볍게 여기지 않아야 하며, 말씀을 좋은 말씀으로만 듣고 흘려보내지 않아야 한다.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은 새것과 옛것을 곳간에서 꺼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들은 말씀을 성경에서 찾아보고, 앞뒤 문맥을 읽고, 마음에 새기며, 다시 글로 쓰고 말로 설명하는 훈련을 계속해야 한다. 말씀은 꺼내 쓸수록 더 깊이 저장된다. 해마가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쳐내기 전에, 성도는 그 말씀을 다시 꺼내어 중요한 것으로 각인해야 한다.
마음의 상처도 반드시 처리되어야 한다. 상처가 마음을 지배하면 말씀을 삐뚤게 듣게 되고, 책망의 말씀도 공격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용서함으로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말씀을 공평하게 듣고, 생명을 살리는 말씀으로 전할 수 있다.
말씀 기억은 IQ의 문제가 아니라 말씀을 대하는 태도와 습관의 문제다. 평범한 사람도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반복하여 꺼내 쓰면, 어느 순간 성령께서 그 말씀을 사용하시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여기에 기쁨과 보상, 말씀에 근거한 믿음의 고백, 몸의 관리, 회개와 축사의 실제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성도는 말씀을 자기 안에 보화처럼 간직해야 한다. 그리고 그 말씀을 자기만을 위해 붙들 것이 아니라, 가족과 교회와 영혼들을 살리기 위해 꺼내 쓸 수 있어야 한다. 말씀을 기억하는 최종 목적은 지식 축적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뜻을 행하며, 마지막 때에 이기는 자로 서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의 말씀을 발의 등과 길의 빛으로 삼고, 새것과 옛것을 곳간에서 꺼내어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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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요약입니다]
2026-06-21(일) 주일오후찬양예배(정제된 요약 정리)
제목: 어떻게 하면 나도 성경말씀을 잊어버리지 않고 잘 기억할 수 있을까?(시편119:10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b1AGvfBxVI8
1. 들어가며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늘 들은 말씀이 무엇이었는지 되새겨 보려 하지만 좀처럼 생각이 나지 않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분명히 은혜로운 설교를 들었고, 그 순간에는 마음이 뜨거웠는데, 하루가 지나면 절반이 사라지고 사흘이 지나면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이다. 또한 다음 주가 되면 지난 주에 들었던 말씀이 무엇이었는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이것이 반복되면 "나는 왜 이렇게 기억력이 나쁠까"라는 자책이 생기고, 급기야 "성경 공부는 머리 좋은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체념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지적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뇌의 기억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말씀을 잘못된 방식으로 대해 왔기 때문이다. 동시에 영적인 방해와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상처가 기억의 문을 닫아 버린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손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명한다(신 6:6-7). 신명기는 이 명령을 집에 앉았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날 때나 언제든지 강론하라고 덧붙인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자리에서 꺼내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말씀이 머릿속 어딘가에 단단히 새겨져 있어야 한다.
신 6:6-7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예수님도 천국의 제자가 된 서기관은 마치 새것과 옛것을 곳간에서 꺼내 오는 집주인과 같다고 말씀하셨다(마 13:52). 언제든지 필요한 말씀을 꺼내 쓸 수 있는 자, 그것이 천국의 서기관이다. 이 서기관은 특별히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소수만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올바른 원리와 습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 자리에 이를 수 있다.
마 13: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그래서 이 시간에는 왜 말씀이 기억되지 않는지 그 원인을 살피고, 뇌의 기억 장치인 해마가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아보며, 마음의 상처가 어떻게 기억을 방해하고 용서를 통해 어떻게 치유되는지를 함께 살핀 다음, 누구든지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통해 말씀을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는 서기관으로 서는 길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평균적인 지능지수를 가진 한 사람이 수십 년의 훈련을 통해 어떻게 말씀을 자유자재로 꺼내 쓸 수 있게 되었는지, 그 구체적인 여정을 따라가며 우리 모두가 그 길을 걸을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2. 성경 말씀이 잘 기억되지 않는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예배 시간에 말씀이 잘 기억되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영적인 방해이고, 둘째는 육체적인 피곤함이다. 그러나 이 둘보다 더 근본적인 세 번째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말씀을 들은 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먼저 영적인 방해부터 살펴보자. 성경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 말씀을 들을 때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고 분명히 경고한다(마 13:19). 귀신은 말씀이 들려지는 예배 자리에서도 끊임없이 역사하며, 듣는 자로 하여금 집중하지 못하게 하고 의심하게 만들며, 마음에 뿌려진 씨앗을 순식간에 빼앗아 간다. 이것이 영적 방해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잘 기억하기 위해서는 예배에 임하기 전 영적으로 준비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도로 마음을 정돈하고, 예배 자리에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악한 자의 방해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치는 영적 자세가 필요하다. 베드로는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온전히 바라라고 권면했다(벧전 1:13). 예배에 임하는 자세가 이와 같아야 한다. 방심한 채로 예배에 앉아 있으면 귀신은 어렵지 않게 역사한다. 그러나 기도로 준비하고 영적으로 경계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말씀이 깊이 뿌리내린다.
벧전 1: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마 13: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둘째는 육체적인 피곤함이다. 몸이 지쳐 있으면 예배 시간에 졸음이 쏟아지고, 졸면 당연히 듣지 못한다. 피곤한 육체는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도 귀에 들어오지 않게 만든다. 그래서 주일 예배를 앞둔 토요일 저녁에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단순한 건강 상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기 위한 영적 준비의 일환이다. 피곤함을 핑계로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영적인 문제인 동시에 생활 습관의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주일 전날 저녁을 어떻게 보내는가가 그다음 날 예배에서 말씀을 얼마나 잘 기억하는가와 직결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원인을 넘어, 말씀이 기억에 남지 않는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예배를 마치고 나서 "오늘 말씀 참 좋았어요"라는 감상 한 마디를 남기고 그대로 잊어버린다. 다음 주에 또 듣고, 또 좋은 말씀이야, 그리고 또 잊어버린다. 이렇게 반복되면 말씀이 축적되지 않는다. 수년째 예배를 드려도 누군가 신앙적인 질문을 던지면 대답할 성경 구절 하나가 떠오르지 않는다. 결국 핸드폰을 꺼내 검색에 의존하게 된다. 이것은 믿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말씀을 대하는 방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지금 이 순간, 오늘 아침에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나는가? 아마 대부분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사흘 전 아침은 어떤가? 기억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주일 전은 거의 불가능하다. 기억이란 그것을 꺼내 보지 않으면 빠르게 희미해진다. 말씀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은혜로운 설교라도 한 번 듣고 그냥 두면, 뇌는 그것을 불필요한 정보로 분류하여 지워 버린다. 이것은 뇌가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라, 뇌가 효율적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뇌는 자주 사용되는 정보를 강화하고, 사용되지 않는 정보는 삭제한다. 이 원리를 이해하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사이에 말씀 축적의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뇌의 기억 구조를 이해하는 데 있다. 우리의 뇌는 말씀을 받아들이는 놀라운 능력을 이미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그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 이유가 있고, 그것을 알면 누구든지 말씀을 오래 기억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IQ가 아니라 습관이다.
3. 뇌의 기억 구조에서 해마는 어떤 역할을 하며, 왜 핵심인가?
말씀 기억의 비결을 이해하려면 먼저 우리 뇌의 구조를 알아야 한다. 우리의 뇌는 크게 대뇌, 소뇌, 간뇌, 중뇌, 교뇌, 연수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전체를 뇌간이 뿌리처럼 지탱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간뇌이다. 간뇌는 뇌의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데, 외부 충격으로 다른 부분이 손상되더라도 마지막까지 보호받을 수 있도록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다. 그만큼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는 뜻이다.
대뇌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뇌의 겉껍질 부분이며, 네 영역으로 나뉜다. 뒤통수 쪽에 있는 후두엽은 눈으로 들어온 시각 정보를 처리하여 간뇌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머리 위쪽의 두정엽은 운동 감각을 담당하는데, 자전거를 한번 배우면 오랫동안 탈 수 있는 것은 이 두정엽이 운동 감각 기억을 저장하기 때문이다. 만약 두정엽이 손상되면 자전거 타는 법을 잊어버려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이마 쪽의 전두엽은 본능적 충동을 억제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하게 해 주는 기관이다. 귀 주변에 위치한 측두엽은 귀로 들어온 청각 정보를 이해하고 처리하는 역할을 한다. 이 네 영역으로 들어온 모든 정보가 간뇌로 흘러들어간다.
간뇌 안에는 두 가지 핵심 기관이 있다. 하나는 편도체이고, 다른 하나는 해마이다. 편도체는 간뇌의 번연계 뒤쪽에 위치하며, 정서적 충격과 상처를 저장하는 장치이다. 해마는 간뇌 뒤쪽 부분에 위치하며, 일반적인 정보와 경험을 기억하는 장치이다. 이 두 기관이 각각 "상처의 기억"과 "일반적 기억"을 담당한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해마이다.
해마는 뇌 속에 좌우 두 개가 한 쌍으로 존재한다. 생김새가 바다에 사는 해마와 닮아서 해마라는 이름이 붙었다. 크기는 약 5cm 정도이며, 귀 위쪽에서 약 5cm 안쪽으로 들어간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작은 기관이 우리 기억 전체를 주관하는 핵심 장치이다.
해마의 기능은 단순히 정보를 저장하는 것이 아니다. 해마는 눈으로 본 것, 귀로 들은 것, 몸으로 느낀 것 등 모든 감각 정보를 받아서 잘게 분해한 뒤 각 파트별로 분류하여 저장한다. 그리고 나중에 비슷한 상황이 펼쳐질 때, 저장해 둔 조각들을 다시 모아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예측하게 해 준다. 쉽게 말해 해마는 우리 몸 안의 일기 예보관이다. 과거를 기억하는 이유가 단순한 추억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를 더 지혜롭게 대비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러므로 해마에 풍성한 말씀이 쌓여 있을 때, 어떤 상황에서도 적절한 말씀을 꺼내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인간의 해마는 인공지능(AI)과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탁월하다. AI가 어떤 동물을 식별하려면 수십만 장의 사진을 반복 학습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처음 보는 동물이라도 한 번만 보면 즉시 기억한다. 아침 식사 때 옆에 누가 앉아 있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를 우리는 별다른 노력 없이 기억한다. 이것이 해마가 가진 놀라운 능력이다. 우리는 AI보다 천만 배 뛰어난 기억 장치를 이미 몸 안에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 탁월한 기억 장치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해마는 모든 정보를 무한정 보관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쓸모없다"고 판단한 정보를 가지쳐 삭제해 버린다. 마치 조각가가 대리석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쳐내듯이, 해마도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된 기억을 조용히 지워 버린다. 오늘 점심으로 무엇을 먹었는지는 지금 이 순간은 기억나지만, 사흘 뒤에는 대부분 사라진다. 해마가 "그 정보는 더 이상 필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해마가 기억을 분해하여 파트별로 저장하는 것은 단순히 데이터를 쌓기 위해서가 아니다. 과거의 경험에서 패턴을 추출하여 미래의 상황에 적용하기 위해서이다. 말씀도 마찬가지이다. 창세기의 아브라함 이야기, 출애굽기의 모세 이야기, 다윗의 시편, 바울의 서신, 요한계시록의 예언이 각각 파트별로 해마에 저장되어 있다가,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그 상황에 맞는 말씀이 무엇인가를 예측하여 꺼내 줄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을 폭넓게 아는 사람은 삶의 어떤 자리에서도 적절한 말씀으로 대응할 수 있다. 해마에 저장된 말씀의 양과 질이 그 사람의 영적 대응력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오래 기억하려면 해마가 그 말씀을 중요한 정보로 분류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한 가장 강력한 방법은 기억을 꺼내 다시 사용하는 것이다. 꺼내서 쓰면 해마는 "아, 이 정보는 계속 필요하구나"라고 인식하여 삭제하지 않고 더 깊이 저장한다. 반대로 한 번 듣고 다시 꺼내 보지 않으면, 해마는 미련 없이 그 말씀을 삭제해 버린다. 이것이 기억의 법칙이다.
한편 치매는 이 해마가 서서히 죽어가는 병이다. 해마가 손상되면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지 못한다. 그래서 치매 환자는 방금 한 말을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수십 년 전의 오래된 기억은 생생하게 말할 수 있다. 오래된 기억은 이미 해마가 건강하던 시절에 단단히 저장된 것이기 때문이다. 치매를 예방하는 핵심은 바로 이 해마를 지속적으로 활성화시키는 데 있다.
뇌에 대한 몇 가지 일반적인 오해를 짚어 두는 것이 도움이 된다. 뇌가 크면 기억을 잘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뇌의 크기가 아니라 해마를 얼마나 발달시켰는가이다. "우리는 뇌의 10%만 쓰고 나머지 90%는 잠을 잔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뇌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활동을 할 때 뇌의 모든 영역에 불이 들어온다. 뇌 전체가 협력하여 정보를 처리하는 것이다. "호두를 먹으면 뇌가 좋아진다"는 말도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호두의 모양이 뇌를 닮아서 뇌에 좋은 것이 아니라, 호두에 들어 있는 불포화지방산과 오메가-3 성분이 실제로 뇌의 신경전달 기능을 돕기 때문이다.
또한 영국의 연구가 이를 잘 보여 준다. 런던의 택시 기사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비교했는데, 내비게이션에 의존하여 운전한 그룹과 20만 개 이상의 골목길을 머릿속으로 기억하며 운전한 그룹 사이에 치매 발병률이 현저히 달랐다. 머리로 길을 기억하며 운전한 기사들은 뇌 신경세포 간의 연결망인 시냅스가 더욱 발달하여, 일부 신경이 손상되어도 다른 경로로 우회하며 기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반복적인 패턴을 기계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기억을 꺼내 쓰는 활동이 해마를 살아 있게 만든 것이다. 이것이 화투나 단순 반복 게임보다 요리나 일기 쓰기가 해마 발달에 훨씬 더 유익한 이유이기도 하다.
4. 마음의 상처가 기억력을 방해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어떻게 치유받는가?
'해마'가 기억을 담당한다면, '편도체'는 감정이나 상처를 담당한다. 편도체는 간뇌의 번연계 뒤쪽에 위치한 작은 기관으로, 정서적 충격과 두려움의 기억을 저장하는 장치이다. 편도체는 마음을 주관하는 기관이라 할 수 있다. 예전에는 마음이 심장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뇌 과학이 발전하면서 심장은 온몸에 피를 공급하는 펌프일 뿐이며, 정서와 감정을 주관하는 것은 바로 이 편도체임이 밝혀졌다.
한번 극심한 상처를 입으면 편도체는 그 충격을 강렬하게 기억하고, 이후 모든 상황을 그 상처의 관점으로 해석하려 한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왕따를 경험한 사람은, 이미 그런 환경을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오면 무의식적으로 "나를 또 왕따시키려는 것이 아닐까"라고 받아들인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말수가 줄어들고, 관계에서 자꾸 움츠러든다. 편도체에 새겨진 상처의 기억이 현재의 모든 관계를 왜곡하여 보게 만드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는 공평하고 열린 시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상처가 기억 전체를 덮어 버리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상처가 해결되지 않은 설교자이다. 마음에 상처가 남아 있는 채로 강단에 서면, 그 설교는 말씀의 칼이 아니라 상처에서 나온 칼이 된다. 의사가 메스를 들면 사람을 살리지만, 도둑이 칼을 들면 사람을 해치듯, 동일한 입에서 나온 말씀이라도 상처가 치유된 사람이 전하는 말씀은 생명을 살리고, 상처가 남은 사람이 전하는 말씀은 사람을 찌른다. 어떤 설교자들이 책망의 말씀을 전할 때 "당신은 저주받을 것이다"라는 식의 비수 같은 말을 던지는 것은, 그 사람의 상처가 강단 위에서 터지는 것이다. 말씀을 증언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마음의 상처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그렇다면 마음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받는가? 그 답은 용서이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형제가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리이까"라고 물었을 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다(마 18:21-22). 490번이라는 숫자는 회수의 한계를 정한 것이 아니라, 끝없이 용서하라는 뜻이다. 이것은 단순한 도덕적 권면이 아니다. 용서를 통해 편도체에 깊이 박힌 상처의 기억이 해방되고, 그 지배력이 끊어지는 영적이고 과학적인 원리이다.
마 18:21-22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용서는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주님이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해 주셨으니, 나도 저 사람을 용서한다"는 고백이 편도체를 옥죄던 사슬을 끊어 낸다. 상처가 사라지면 비로소 외부의 정보를 왜곡 없이 공평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상처가 없는 사람의 특징은 자신의 연약함과 아픈 과거를 담담히 꺼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처가 해결되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자신의 상처를 남 앞에서 꺼내 놓지 못한다. 그 상처를 건드리는 말 한마디에도 방어적 반응이 일어난다. 반면에 상처가 치유된 사람은 자신의 연약했던 과거를 담담히 드러내며 오히려 그것으로 다른 사람을 세울 수 있다.
상처가 치유되면 해마가 자유롭게 작동하기 시작한다. 말씀을 들을 때 편도체의 방해 없이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고, 그 말씀이 해마에 또렷이 새겨진다. 또한 설교자가 강한 어조로 책망하더라도 그것이 비수가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수술의 메스로 들린다. 상처 치유가 말씀 암송의 첫 번째 조건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먼저 용서하라. 그러면 기억의 문이 열린다.
영적인 세계에서도 이 원리는 동일하게 작동한다. 마음에 상처가 가득 차 있는 사람은 귀신이 그 상처를 틈타 더욱 강하게 역사한다. 상처는 어둠이 들어오는 틈새이다. 그러나 용서를 통해 상처가 치유되면 그 틈새가 막히고, 귀신이 역사할 빌미가 사라진다. 마음이 자유롭게 되면 예배 자리에서도 말씀이 더욱 선명하게 들어온다. 잡념이 줄고, 집중이 깊어지며, 말씀이 마음 밑바닥까지 뚫고 들어온다. 이것이 용서가 가져오는 기적이다.
또한 상처가 치유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숨기지 않는다. 자신의 허물과 부족함을 솔직하게 내어 놓을 수 있고,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더 풍성히 받는다. 상처 속에 갇혀 있을 때는 자신을 보호하느라 마음의 문을 닫게 되지만, 상처가 치유되면 마음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상처 없는 마음이 말씀을 가장 잘 받아들이는 토양이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이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다(마 13:23). 좋은 땅이란 상처 없이 준비된 마음이다. 용서로 상처가 치유된 사람의 마음이 바로 그 좋은 땅이다. 그 땅에 말씀이 뿌려질 때, 해마는 그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풍성한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마 13:23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5. 해마를 발달시켜 말씀을 오래 기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상처가 치유된 이후에는 해마를 적극적으로 발달시키는 훈련이 필요하다. 해마를 발달시키는 핵심 원리는 단 하나이다. 기억을 꺼내 쓰는 것이다. 해마는 사용할수록 더욱 강해진다.
해마는 자신이 저장한 정보를 누군가 꺼내어 사용할 때마다, 그 정보가 중요하다는 신호를 받는다. 그러면 해마는 그 기억을 더 단단히 저장하고, 주변의 신경세포들을 연결하여 더욱 풍성한 기억망을 형성한다. 신경세포들 사이의 연결고리인 시냅스가 더욱 촘촘해지고 강해진다. 반대로 저장해 두었어도 꺼내어 쓰지 않으면, 해마는 "이 정보는 필요 없다"고 판단하여 지워 버린다. 기억은 냉장고 속 음식과 같다. 꺼내어 먹어야 신선하게 유지되고, 방치하면 썩어서 버릴 수밖에 없다.
말씀을 꺼낼 때는 반드시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기억에서 끌어내는 것이 핵심이다. 설교를 또 들어 복습하는 것도 유익하지만, 그것은 외부의 도움을 받는 수동적 행위이다. 반면에 아무것도 보지 않고 기억을 끌어내어 글로 쓰거나 말로 표현하는 것은, 해마를 능동적으로 작동시키는 가장 강력한 자극이다. 이 차이가 기억의 깊이를 결정한다.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간 후, 오늘 들은 말씀 중 기억에 남는 것을 아무것도 보지 않고 한 줄이라도 적어 보라. 처음에는 한 줄밖에 쓰지 못할 수 있다. 그래도 괜찮다. "오늘 목사님이 해마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기억을 꺼내 써야 해마가 발달한다고 하셨다." 이 한 줄이 해마를 자극한다. 그 한 줄이 내일은 두 줄이 되고, 두 줄이 열 줄이 되고, 열 줄이 한 페이지가 된다. 말씀이 쌓이는 것이 이 과정이다.
말씀을 누군가에게 전해 보는 것도 마찬가지로 강력하다. 집에 돌아가서 가족에게 "오늘 예배에서 이런 말씀을 들었어"라고 이야기해 보라. 그 순간 해마는 저장해 두었던 말씀 조각들을 다시 모아 재구성하고, 그 과정에서 기억은 더욱 선명해진다. 이야기를 들은 가족도 유익을 얻고, 말한 사람의 기억은 더욱 오래 남는다. "여보, 오늘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알고 있었어요?" 하고 꺼내는 그 순간, 해마에 불이 켜지면서 그 말씀이 영구 저장 영역으로 넘어간다.
말씀을 기억해서 꺼내 쓰는 것, 기억해서 글로 쓰는 것, 이것이 해마 활성화의 핵심이다. 요리가 해마 발달에 탁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요리는 재료를 보고, 냄새를 맡고, 간을 조절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판단을 내리는 활동이다. 이것이 해마를 자극한다. 반면에 화투치기나 단순 반복 게임처럼 동일한 패턴을 기계적으로 되풀이하는 활동은 해마가 개입할 필요가 없다. 규칙이 고정되어 있으면 뇌는 그 규칙을 한 번 익힌 뒤 자동으로 처리하므로, 해마는 잠을 자게 된다. 일기를 쓰는 것이 해마에 탁월한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며 있었던 일을 기억으로 끌어내고, 그 의미를 생각하며 글로 표현하는 과정이 해마를 매일 활성화시킨다. 하루에 한 줄이라도 일기를 쓰는 것, 오늘 들은 말씀 한 가지를 기억으로 적는 것, 이 작은 습관이 세월이 쌓이면 엄청난 말씀의 보고를 만들어 낸다. 이 원리를 깨닫는 것이 말씀 암송의 진정한 출발점이다. 중요한 것은 다시 보는 것이 아니라 기억으로 꺼내는 것이다. 이 차이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사이에는 세월이 흐를수록 엄청난 차이가 생긴다.
6. 필자는 어떤 습관으로 수십 년간 말씀을 기억하고 설교해 왔는가?
필자(정보배 목사는 IQ 106, 한국인 평균 수준의 지능지수를 가지고 목회를 시작했다. 천재적인 암기력을 타고난 것이 아니었다. 18살에 예수님을 믿고, 25살 때 군대에서 제대한 직후 이상관 목사를 만나면서 그의 신앙과 말씀에 대한 자세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이상관 목사는 성경을 펼치지 않고도 수십 개의 장절을 막힘없이 인용하며 한 시간 이상 설교하는 사람이었다. 그 이름 '이석(李石)'은 스스로 지은 것으로, "하나님 말씀을 한 번 들으면 돌에 새기듯 새겨서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겠다"는 결단에서 비롯된 이름이었다. 정보배 목사는 그 부흥회를 2년 동안 보좌하며 이 목사의 설교를 하나하나 기록하고 연구했다. 3일짜리 부흥회와 5일짜리 부흥회의 레퍼토리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고, 중요한 말씀이 나오면 메모해 두고 집에 돌아와 성경을 직접 찾아 확인했다. 앞뒤 구절을 함께 읽으며 문맥을 이해해 나갔고, 한 절이 한 장이 되고, 한 장이 다음 장으로 이어지며 성경 전체로 확장되어 갔다. 이렇게 하다 보니 신약 성경 대부분에 밑줄이 그어지는 날이 왔다.
이후 신학대학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그는 아무도 밀어 주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홀로 성경을 공부했다. 당시 시험에는 성경, 영어, 세계사, 상식 등 다양한 과목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여러 번 낙방한 수험생들이 모인 스터디 그룹에서 그는 의외로 성경 과목을 맡게 되었다. 성경 이야기가 나오면 어느 장에 있는지 막힘없이 말하는 그를 보고, 2년 이상 준비한 이들도 놀라워했다. 이것은 단지 공부를 많이 해서가 아니라, 꾸준히 말씀을 꺼내고 되새기는 습관이 쌓인 결과였다.
목사가 된 이후 그가 설교를 준비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번 주에 어떤 말씀을 전할지 기도하며 주제를 정한다. 주제가 정해지면 노트에 개요를 쓴다. 서론, 본론, 결론의 뼈대를 잡는다. 둘째, 컴퓨터를 열어 관련 자료를 찾는다. 주석, 성경 사전, 요즘에는 AI 자료 등을 두루 살핀다. 셋째, 충분히 자료를 습득한 뒤 그것을 전부 기억에서 꺼내어 다시 쓴다. 자료를 보지 않고 기억으로 원고를 작성하는 것이다. 이것이 주보에 실리는 설교 요약이 되며, 예배에서 전하는 설교문의 기초가 된다. 넷째, 설교를 한다. 다섯째, 귀가하여 그날 설교했던 내용을 다시 원고를 보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요약한다. 이것을 무려 약 28년간 지속해 왔다.
이렇게 하면 설교 하나를 준비하면서 말씀을 다섯 번 이상 기억으로 꺼내 쓰는 셈이다. 개요를 쓸 때, 자료를 볼 때, 기억으로 원고를 작성할 때, 설교를 전할 때, 귀가 후 요약할 때이다. 이 다섯 번의 반복이 말씀을 뇌에 깊이 새겨 넣는다. 한 편의 설교에 이 과정을 8,600번 이상 반복한 결과,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자유자재로 꺼내 쓰는 목사가 된 것이다.
그는 주일 예배 설교에서 과거의 말씀을 자주 반복한다. 이것은 내용이 없어서가 아니라, 성도들이 중요한 말씀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다시 꺼내게 해 주기 위해서이다. "이기는 자", "창세기 32장", "아브라함의 믿음" 등의 핵심 주제를 반복할 때마다 성도들의 해마도 "아, 이것이 중요하구나"라고 인식하여 더 깊이 저장하게 된다. 설교자의 반복은 게으름이 아니라, 말씀이 성도들의 기억 속에 단단히 뿌리내리게 하려는 목양의 지혜이다.
또한 그는 말씀을 들을 때부터 다른 자세를 취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 나가면 잊어버린다"는 생각으로 말씀을 듣는 반면에, 그는 "이 말씀을 죽을 때까지 기억한다"는 결단으로 말씀을 받는다. 이 자세 하나가 해마에게 강력한 신호를 보낸다. "이 정보는 중요하다. 절대 삭제하지 말라." 해마가 그 신호를 받고 말씀을 더 깊은 영역에 저장하는 것이다. 결단이 기억을 만든다.
이 원리는 성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예배를 드릴 때 어차피 나가면 잊어버릴 테니 들리는 만큼만 듣자는 마음과, 오늘 이 말씀을 내 삶에 새기겠다는 마음은, 동일한 설교를 들어도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낸다. 말씀을 대하는 자세 하나가 기억의 깊이를 결정한다. 또한 성경을 읽을 때 중요한 구절에 밑줄을 긋는 습관도 도움이 된다. 밑줄을 긋는 그 행위 자체가 해마에게 이것은 중요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나중에 성경을 펼쳐 밑줄 그은 구절을 다시 볼 때마다 해마는 그 기억을 재강화한다. 중요한 것은 양보다 깊이이다. 천 구절을 스쳐 지나가는 것보다, 열 구절을 반복해서 꺼내 쓰는 것이 훨씬 더 강한 기억을 만든다.
7. 도파민 분비와 자기 암시는 말씀 암송에 어떻게 도움을 주는가?
해마를 더 효과적으로 발달시키기 위한 보조적인 방법들이 있다. 그 첫 번째가 도파민 분비를 활용하는 것이다.
도파민은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로, 보상을 받을 때 집중적으로 분비된다. 도파민이 분비되면 뇌가 활성화되고, 의욕이 생기며, 해마의 활동도 더욱 왕성해진다. 도파민이 해마에 기름을 치고 비료를 주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 원리를 말씀 암송에 적용하면, 기억을 꺼내 쓰는 훈련에 작은 보상을 연결시키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말씀을 일정 횟수 암송하면 좋아하는 음식을 먹겠다거나, 목표를 이루면 원하는 활동을 하겠다는 보상 약속을 스스로 세우는 것이다. 어린 자녀에게 회개 기도를 가르칠 때 스티커를 붙여 주고, 일정 개수가 모이면 좋아하는 음식점에 데려가는 방식이 바로 이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스티커 하나하나를 붙이는 그 순간마다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되며, 다음 스티커를 향한 의욕이 솟아오른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이 보상이 예측 가능하되 완전히 규칙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매번 동일한 보상이 주어지면 뇌는 익숙해져서 도파민 분비가 줄어든다. 그러나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보상이 찾아올 때, 뇌는 더 강렬한 도파민을 분비하며 더욱 집중하게 된다. 이것이 불규칙적 보상의 원리이다. 언제 오라고 정해 놓지 않다가 갑자기 "오늘 와서 기도받아요"라는 연락을 받을 때, 사람들이 더 기쁘게 달려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체크리스트도 강력한 도구이다. 말씀 암송이든 기도든, 목표를 항목별로 나누고 하나씩 완료할 때마다 체크하는 행위가 해마를 자극한다. 체크 표시를 하는 그 순간 뇌는 작은 성취감을 느끼며 도파민을 분비하고, 다음 항목을 향한 의욕을 불러일으킨다. 체크리스트는 단순한 기록 도구가 아니라, 뇌를 움직이는 동기 부여 장치이다.
두 번째 보조적 방법은 '자기 암시'이다. 자기 암시는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말을 반복함으로써 뇌를 특정 방향으로 이끄는 기술이다. "나는 더 잘할 수 있다", "나는 오늘도 말씀을 기억할 수 있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반복하면, 뇌는 그 말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것은 심리학적 원리인 동시에 신앙적 고백과 정확히 일치한다.
정보배 목사의 어머니는 그에게 어릴 때부터 이 자기 암시를 심어 주었다. "너는 백두산 꼭대기에 올려놓아도 살아서 나올 아이다"라는 말을 끊임없이 들려주었다. 그 말이 뼈에 사무쳐,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반드시 헤쳐 나올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개척 교회가 어려운 시기를 맞아도 흔들리지 않고 그 시간을 준비의 시간으로 삼아 설교를 연구하고 성경을 팔 수 있었던 것도, 어머니가 심어 준 자기 암시의 열매였다. "언젠가는 쓸 날이 올 것이다"는 믿음으로 10년 동안 성경을 팠고, 지금 그 기간에 쌓인 말씀이 매주 강단 위에서 흘러나온다.
자기 암시는 마음속으로만 하는 것보다 소리를 내어 말할 때 더 강하게 뇌에 각인된다. 귀로 들어오는 소리가 뇌의 측두엽을 통해 더 직접적으로 기억 장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더 잘할 수 있다", "나는 말씀을 기억할 수 있다"고 소리 내어 말하라. 이미 최고다, 다 됐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성장은 멈춘다. 항상 "나는 어제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고백을 지속하는 사람이 계속 성장한다.
회개 기도도 마음으로만 하는 것보다 입으로 소리 내어 고백할 때 훨씬 깊이 새겨진다. 이것이 말로 고백하는 신앙의 원리이기도 하다. 빌립보서는 이 원리를 이렇게 선포한다(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이 고백은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니다. 자기 암시의 최고 형태이며, 성령께서 능력을 부어 주시는 통로이다. 이 고백을 날마다 소리 내어 반복할 때, 뇌는 그 고백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고, 실제로 더 많은 말씀을 기억하고 더 잘 전하게 된다.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세 번째 보조적 방법은 '유산소 운동'이다. 몸은 정신과 연결되어 있다. 몸을 움직이면 뇌의 신경전달물질이 활성화되어 해마의 기능이 더욱 선명해진다. 대단한 운동이 아니어도 된다. 먼저 5분만 하기로 결심하고 시작하면 된다. 5분이라는 낮은 문턱이 시작의 장벽을 허물고, 일단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된다. 이 작은 시작이 뇌와 몸 전체를 깨우고, 말씀을 받아들이는 기억력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은 영적인 임무이기도 하다. 고린도전서는 우리 몸이 성령의 전이라고 말한다(고전 6:19). 성령의 전을 잘 관리하는 것, 즉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더 명확한 정신으로 말씀을 받고 기억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8. 말씀을 언제든지 꺼내 쓰는 서기관이 되려면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가?
지금까지 살펴본 원리들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정리할 때가 되었다. 말씀을 오래 기억하여 언제든지 꺼내 쓰는 서기관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실천이 요구된다.
첫째로, 상처를 치유받아야 한다. 이것이 모든 것의 기초이다. 마음에 상처가 남아 있는 한, 아무리 노력해도 해마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편도체가 모든 것을 상처의 관점으로 걸러 내기 때문이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주님의 이름으로 용서하라. "주님이 나를 용서해 주셨으니, 나도 저 사람을 용서합니다"라는 고백을 날마다 반복하라. 이 용서가 편도체의 사슬을 끊고, 해마가 자유롭게 일하는 환경을 만든다.
둘째로, 말씀을 들을 때부터 결단을 가지고 들어야 한다. "이 말씀을 죽을 때까지 기억하겠다"는 마음으로 말씀을 받는 것과 "어차피 나가면 잊어버리겠지"라는 마음으로 듣는 것은, 결과에서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해마는 우리의 태도를 알아챈다. 중요하다고 결단하면 해마는 더 깊이 저장하고,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면 빠르게 삭제한다. 예배에 임하기 전 "오늘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말씀을 평생 새기겠습니다"라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 기억의 토양을 준비하는 첫걸음이다.
셋째로, 예배 후 반드시 기억을 꺼내 써야 한다. 집에 돌아가면, 오늘 들은 말씀을 노트나 메모장에 기억으로 적어 보라. 아무것도 보지 않고 기억에만 의존하여 써 내려가는 것이 핵심이다. 처음에는 한 줄밖에 쓰지 못할 수 있다. 그래도 괜찮다. 그 한 줄이 해마를 자극하고, 다음 번에는 두 줄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세 줄이 나온다. 가족에게 오늘 들은 말씀을 이야기해 주는 것도 훌륭한 방법이다. "오늘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 해마라는 기억 장치가 있는데…" 하고 꺼내 말하는 그 순간, 해마는 그 말씀을 더 단단히 기억으로 새긴다.
넷째로, 보상을 활용하여 동기를 유지해야 한다. 말씀 암송이나 기도를 일정 목표만큼 이루면, 자신에게 작은 보상을 약속하라. 그 보상 약속이 도파민을 분비시키고, 도파민은 해마를 더욱 활성화시킨다.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하나씩 완료할 때마다 표시하고, 스스로를 격려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규칙적인 보상과 함께 때때로 예상치 못한 보상을 더할 때, 동기는 더욱 강하게 유지된다.
다섯째로, 자기 암시를 날마다 실천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날 때, 샤워를 할 때, 잠자리에 들기 전에 소리 내어 고백하라. "나는 오늘 더 잘할 수 있다. 나는 말씀을 기억할 수 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이 고백이 뇌에 새겨질 때, 해마는 그 방향으로 더욱 힘차게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미 충분하다는 교만이 아니라,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겸손한 기대가 해마를 살린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라고 말씀하셨다(요 14:12). 이 약속은 단순한 격려가 아니다. 성령을 통해 주님이 하신 일 이상을 할 수 있다는 분명한 선포이다. 이 말씀을 자기 암시로 삼아 날마다 고백하라. 나는 오늘도 말씀을 더 잘 기억할 수 있다. 어제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말씀을 나눌 수 있다. 성령께서 나를 통해 더 큰 일을 이루실 것이다. 이 고백이 뇌 안에 새겨질 때, 해마는 그 고백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모든 저장된 정보를 동원하기 시작한다. 믿음의 고백과 뇌의 기억 장치가 하나로 연결되어 함께 작동하는 것이다.
여섯째로, 몸을 움직여야 한다. 유산소 운동은 뇌의 신경전달물질을 활성화하고 해마의 건강을 유지시킨다. 대단한 운동이 아니어도 된다. "오늘 5분만 운동하자"고 결심하고 나서면 된다. 5분 뒤에는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된다. 이 작은 시작이 뇌와 몸 전체를 깨우고, 말씀을 받아들이는 기억력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일곱째로, 말씀을 들은 즉시 삶에 적용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말씀을 지식으로만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 내려 할 때, 해마는 그 말씀을 훨씬 더 강하게 기억한다. 용서에 대한 말씀을 들었다면 집에 돌아가서 실제로 용서해야 할 사람을 떠올리고 용서를 실천해 보라. 그 경험이 해마 속에 말씀과 함께 저장되어, 그 말씀을 더욱 생생하게 기억하게 만든다. 말씀은 삶에서 실천될 때 가장 깊이 새겨진다. 야고보서는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행하는 자가 되라고 명한다(약 1:22). 행함이 기억을 강화한다.
약 1: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예수님께서는 성령이 오시면 제자들이 예수님이 하신 일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4:12). 이 약속이 현실이 되려면,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하게 쌓여 있어야 한다. 성령께서 말씀을 생각나게 하실 때, 이미 쌓아 둔 말씀이 있어야 그것을 꺼내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공부하지 않고 성령의 역사만 구하는 것은 빈 곳간에서 무언가를 꺼내려는 것과 같다. 곳간에 채워 두어야 꺼낼 수 있다. 채워 두는 것은 사람의 몫이고, 꺼내어 쓰게 하시는 것은 성령의 몫이다. 성령은 없는 것을 만들어 내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것을 때를 따라 일깨워 주시는 분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요 14:26). 생각나게 하려면 먼저 들어야 한다. 들어야 저장이 되고, 저장이 되어야 성령이 생각나게 하실 수 있다. 말씀을 열심히 듣고, 읽고, 쓰고, 외우고, 이야기하며 해마 속에 차곡차곡 쌓아 두는 것이 성령의 역사와 협력하는 삶이다. 씨앗을 심지 않고 추수를 기다릴 수 없듯, 말씀을 쌓지 않고 성령의 역사만 바랄 수는 없다. 씨앗을 심는 자에게 성령이 성장시켜 주신다. 말씀을 꾸준히 쌓아 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선명해진다. 지금 당장의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포기하지 말라. 해마는 쌓이는 곳간이다. 한 알 한 알 말씀이 쌓일 때, 어느 날 그 곳간이 가득 차서 넘치는 날이 온다.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 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9. 나오며
성경 말씀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원인과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을 살펴보았다. 영적 방해와 육체적 피곤함이 말씀이 기억되지 않는 첫 번째 장벽이며, 마음의 상처가 뇌의 기억 장치 전체를 왜곡하는 두 번째 장벽임을 알았다. 그리고 우리 뇌 속에 탁월한 기억 장치인 해마가 있으며, 그것을 발달시키는 핵심이 기억을 꺼내 쓰는 반복적 훈련에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 모든 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처를 용서로 치유해야 한다. 용서하지 않으면 편도체가 기억의 문을 막아 버리기 때문이다. 상처가 풀려야 해마가 자유롭게 작동한다. 그다음 말씀을 들을 때 이 말씀을 죽을 때까지 기억하겠다는 결단으로 받아야 한다. 그 결단이 해마에게 "이것은 중요한 정보다"라는 신호를 보낸다. 이후에는 반드시 기억을 꺼내 글로 쓰거나 말로 전해야 한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기억만으로 한 줄이라도 써 내려가는 그 행위가 해마를 살리고, 말씀을 뇌에 영구적으로 새긴다.
도파민을 활성화하는 보상의 원리와 자기 암시의 힘, 그리고 유산소 운동의 중요성도 해마를 돕는 보조적 수단이다. 이 모든 것이 말씀을 더 오래, 더 깊이 기억하게 하는 기반이 된다. 특히 자기 암시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빌립보서의 고백과 직결된다. 이 고백을 날마다 소리 내어 반복하는 것이 신앙의 자기 암시이다. 이 고백이 우리 뇌 안에 새겨질 때, 해마는 그 방향으로 더욱 힘차게 작동하기 시작한다. 신앙과 뇌과학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우리 뇌를 이렇게 만드셨기 때문에, 바르게 사용할 때 신앙의 성장과 기억력의 발달이 함께 이루어진다. 우리가 말씀을 꺼내 쓸수록 해마가 발달하고, 해마가 발달할수록 더 많은 말씀을 기억하게 되며, 더 많은 말씀이 쌓일수록 성령께서 더욱 풍성하게 역사하신다. 이 선순환이 바로 하나님의 경륜 속에 담긴 기억의 비밀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씀을 풍성히 알고, 그 말씀으로 세상을 섬기는 서기관이 되기를 원하신다. 그것이 가능하도록 이미 우리 안에 탁월한 기억 장치를 넣어 두셨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 장치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다.
평균적인 지능지수를 가진 한 사람이 수십 년의 반복 훈련을 통해 성경 전체를 자유롭게 꺼내 쓸 수 있게 되었다면, 이것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길이다. 천재만이 말씀을 암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올바른 습관을 가진 사람, 상처를 용서로 치유한 사람, 들은 말씀을 꾸준히 꺼내어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 길을 걸을 수 있다. 그 길의 끝에는 새것과 옛것을 언제든지 곳간에서 꺼내 오는 천국의 서기관이 서 있다. 날마다 말씀을 꺼내 쓰고, 그 말씀이 삶 속에서 살아 역사하는 것을 경험하며,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고백이 현실이 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다고 히브리서는 선언한다(히 4:12). 이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 해마 속에 단단히 자리 잡을 때, 그 말씀은 때를 따라 꺼내어져 삶의 현장에서 날선 검처럼 역사한다. 우리는 말씀을 소유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을 사용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곳간에 쌓인 곡식이 꺼내어 먹혀야 생명을 살리듯, 해마에 저장된 말씀이 꺼내어 선포될 때 비로소 그 말씀이 생명의 역사를 일으킨다. 이것이 천국의 서기관이 해야 할 일이다.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2026년 6월 21일(일)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성경 말씀을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는 영적, 과학적 비결을 제시하며 성도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신경전문가의 도움을 힘입어 뛰어난 지능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상처 치유와 해마의 활성화라고 강조하며, 특히 타인을 용서하여 뇌 속의 편도체에 쌓인 부정적 영향을 제거하는 것이 기억의 첫걸음임을 설명합니다. 또한, 학습한 내용을 단순히 반복해서 읽기보다는 스스로 인출하여 글이나 말로 표현하는 습관이 뇌 세포를 자극해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는 핵심 기제임을 역설합니다. 마지막으로 도파민 분비를 돕는 긍정적인 자기 암시와 규칙적인 운동을 병행함으로써, 누구나 성령의 도우심 안에서 지혜를 축적하고 말씀을 자유자재로 선포하는 서기관이 될 수 있다는 실천적 교훈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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