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기로 무조건적으로 선택하셨다는 말은 대체 무슨 뜻인가? 하나님께서는 만세전에 어떤 개인은 구원하기로 예정하시고 어떤 개인은 멸망시키리고 예정하셨다는 뜻인가? 대체 하나님께서는 인류에 대해 어떤 구원경륜을 가지고 계셨던 것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하나님의 구원경륜을 예정론의 입장에서 풀어가고자 한다. 성경은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구원상식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곧 알게 될 것이다.
1. 들어가며
에베소서는 에베소교회를 포함한 다른 교회들까지 함께 읽혀지도록 쓰여진 회람서신이다. 이는 바울이 보낸 편지에는 각기 이 편지를 받는 교회 내지 목회자에게 대한 상황와 문제가 나오지만, 에베소서는 그러한 것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편지를 바울의 다른 서신과는 좀 더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편지는 모든 교회를 위한 노사도 바울의 간절한 염원과 소원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편지는 빌립보서와 골로새서 그리고 빌레몬서와 더불어 옥중서신으로서, 바울의 말년에 쓰여진 깊이가 있는 서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에베소서 강해 두번째 시간으로서 에베소서 1:3~14에 나오는 하나님의 구원경륜을 다룸에 있어서, 예정론과 견주어서 살펴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구원경륜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인데, 그중에서 성부 하나님의 예정이 가장 중요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에베소서는 어떤 책이며 그 중심주제는 무엇인가?
에베소서는 어떤 책인가? 에베소서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구원목적이 무엇이며, 그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통하여 성취되고 완성되는가를 다루는 책이다. 그리고 결국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유를 통일하는 것이다(엡1:10). 이 일을 이루시고 완성하시고자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세우셨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이 책을 "교회론" 책이라고도 한다. 교회는 단순한 조직으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하나의 유기체여서 계속해서 성장하되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는 유기체로서, 만유를 그리스도로 통일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 에베소서를 통하여 교회에 대하여 일곱 방면을 소개한다. 교회는 이런 것이라고 말이다. 첫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다(엡1:23). 둘째, 교회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롭게 탄생한 새 사람이다(엡2:15). 셋째, 교회는 하나님의 왕국의 백성들이다(엡2:19). 넷째, 교회는 하나님의 권속으로서 하나님의 가족이다(엡2:19). 다섯째, 교회는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다(엡2:21~22). 여섯째,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이자 그리스도의 아내다(엡5:22~33). 여섯째, 교회는 단체적으로 영적 전쟁을 치룰 전사 곧 투사다(엡6:10~20). 누가 이처럼 풍성하게 교회를 정의할 수 있을까? 바울을 쓰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3. 예정론에 있어서 성부 하나님의 구원경륜은 어떤 것인가?
바울은 편지를 시작하면서 인삿말 직후부터 곧바로 하나님의 구원경륜을 예정론의 관점에서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가지셨던 위대한 경륜을 바울은 교회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하나님께서 인류에 대한 구원계획을 세우되 혼자 그 일을 행하지 아니하시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시기를 기뻐하셨다고 언급한다. 그리고 성령께서 오셔서 그것을 유효하게 하신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엡1:3~14에 나오는 하나님의 인류구원을 위한 예정론의 골자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럼 엡1:3~14의 말씀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그것은 "그의 은혜의 영광의 찬송을 위하여"라는 구분이 3번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3~6절까지는 성부의 구원경륜이 나오고, 7~12절까지는 성자의 구원경륜이 나오며, 13~14절에는 성령의 구원경륜이 나온다. 결국 하나님의 구원경륜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통하여 시작되고 진행되고 또한 완성될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 맨 앞부분인 엡1:3~6의 말씀은 성부하나님의 구원계획이다. 바울은 이곳에서 하나님께서 인류구원을 위해 언제 어떻게 구원계획을 세우셨는지를 언급한다.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는 인류구원 계획을 당신의 기분 내키는 대로 세운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창설 전에 계획적으로 세우셨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고 흠이없는 하나님의 자녀를 낳아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의 상속해주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그냥 홀로 계시지 않고 사람을 만드려고 했을까?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타락했을 때에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왜 그들을 위해 친히 피조물이 되시어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값을 담당하신 것일까? 그것을 바울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라고 말한다(엡1:5). 하나님께서 자식을 보시고 그 자식들을 천국에 데려와 영원토록 왕노릇하게 하시려는 것을 기뻐하셨다는 것이다. 그분이 어떤 마음을 지니고 계셨는지는 사실 아담을 창조하시고 그에게 돕는 배필을 지으실 때 간접적으로 나타내셨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아담이 홀로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표현하셨기 때문이다(창2:18). 그래서 아담을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신 것이 바로 "하와"이고, 이것은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라고, 바울은 에베소서 5장에서 언급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없으시면 외로우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여 천국에 데려가시려기쁘신 뜻을 세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하든지 이 땅에서 구원받아 하늘나라에 들어가서 그분이 주시는 기업을 받아 누려야 한다.
4.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란 어떤 것인가?
바울은 성부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해 세운 계획이 인간에게는 어떤 성질의 것인지를 다음과 같이 2가지로서 말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인간에서 하늘들에 속한 복을 주시려는 것이요, 또 하나는 영적인 복을 주시려는 것이라고 말이다(엡1:3).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하늘들에 속한 복과 영적인 복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인간이 받을 수 있는 복에는 2가지 종류가 있다. 그것은 마치 사람이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과 비슷하다. 즉 사람이 받아야할 복에는 육체가 받아야 할 복과 영혼(정확히는 영)이 받아야 복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복을 다 받은 대표적인 사람이 창세기에 나온다. 그 사람은 바로 "아브라함"이다. 그는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명령을 따라 순종함으로 인하여 이 땅에서 받을 축복과 하늘에서 받을 축복 2가지를 공히 누린 당사자가 되었다. 그럼, 아브라함이 누린 축복은 어떤 것이었는가? 그것은 먼저 "육체의 복"이요 "땅의 복"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자손이 번성해 가고 땅을 기업으로 받아 누리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하나 더 복을 추가한다면, 그것은 육체가 건강하게 사는 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사람이 받아야 할 육체의 복이란 자손번성과 땅을 기업으로 상속받는 것과 건강하게 사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것을 아브라함이 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아브라함은 "영적인 복"도 받았다. 왜냐하면 그는 이 땅에 속하지 않는 놀라운 복을 받았으니, 그것은 자신이 씨로 말미암아 원수들의 문들을 차지하는 복을 받았기 때문이다(창22:17). 여기서 말하는 "씨"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출생하게 될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이므로(갈3:16), 그분은 창3:15에 이미 약속된 분으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분을 가리킨다. 그분은 누구인가? 그분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래서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없이하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리하여 죄없는 예수님을 죽인 사탄마귀는 불법를 저지른 죄로 인하여 그의 머리가 박살나게 되니, 자신이 가진 사망권세를 예수님에게 내주어야 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사망과 질병과 가난과 저주와 무지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이 하늘들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기를 그렇게 바라고 원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사람들이 받기를 원했던 하늘들에 속한 3가지의 영적인 복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늘이 3가지가 있다는 측면에서 3가지 복인 것이다. 하나님에게는 총 3가지 종류의 하늘이 있다. 새들이 날아다니는 "첫째 하늘"이 있고, 해와 달과 수많은 별들이 있는 "둘째 하늘"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과 천사들이 있는 "셋째 하늘"이 있다. 그렇다면 사람이 받아야 할 복은 구약시대의 여러 인물들처럼 자손번성과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는 것과 건강하게 사는 것뿐일까?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첫째 하늘에 속한 복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사실 첫째 하늘에도 영적인 복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이 땅에서 살지만, 이 땅에도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복이요, 영적인 세계에 눈을 뜨고 그것을 통해 누리는 복을 가리킨다. 그것은 귀신과 천사들의 정체와 속성을 제대로 알아, 죄를 회개함으로 귀신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나게 되고 계속해서 천사들로부터 도움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하늘은 비록 공중의 권세잡은 자가 차지하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음으로 그들의 권세가 박살나게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세번째는 우리가 죽을 때에 우리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는 복으로서, 그곳에 들어가 기업으로 땅을 상속받는 것이다. 그런데 셋째 하늘에서 받을 복은육신을 갖고 있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결정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과 셋째 하늘에서 받게 될 영적인 축복들을 다 받아야 한다. 이것을 사도바울도 원했던 것이다.
5. 예정론의 무조건적인 선택교리와 성경적인 예정론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제는 마지막으로 성부 하나님께서, 곧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획하신 구원이 어떤 것인지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만세전에 인류를 구원하시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되기를 기뻐하셨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먼저 당신의 자녀가 탄생할 장소를 마련하셨으니 그 장소가 바로 "지구"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지구 중에서도 아담과 하와 살 공간을 만들어주셨으니 그곳이 바로 에덴동산이다. 하지만 인류의 시조인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래서 거짓의 아버지인 사탄마귀의 말을 듣고는 따먹지 말라 했던 선악과를 따먹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의 구원계획에 따라 먼저 그들의 죄를 속량하기 위해 사람이신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시어 인류의 죄값을 대신 치러주신다. 그리고는 하늘로 올라가신 후에는 아버지의 생명을 성령을 통해 믿는 자들 속에 넣어주심으로 사람들을 거듭나게 하시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사람을 당신의 자녀이자 상속자로 삼으시려 했는지를 살펴보자.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다른 종류로서 당신의 자녀이자 상속자로 삼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왜 하나님께서는 굳이 사람(인간)을 선택하신 것인가? 왜 하나님께서는 천사나, 여러 동물들 중에서 그리고 식물들 중에서이나 상속자를 선택하지 아니하셨는가? 그것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고 싶으셨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사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는 문제가 아닌가 싶다. 다만 그것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과 그분의 기뻐하시는 뜻이라는 것을 알고 감사할 것만 가질 뿐이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의 무조적인 선택"이라는 말이 나온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타락이나 불순종에 상관없이 만세전에 인간을 당신의 자녀로 낳으실 것과 그들로 하여금 하늘나라를 상속받게 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불순종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온 우주만물 가운데서 인간을 당신의 상속자로 선택하셨다고 할 수 있다. 고로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이란 온 우주만믈을 창조하신 이의 주권에 따라 우리 인간이 하늘의 상속자로 선택되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오늘날 "무조건적이 선택"교리는 성경말씀에서 너무나 많이 벗어나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왜냐하면 이 교리가 많은 피조물들 가운데 인류가 선택되어졌다는 선택교리로 알려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들 개개인을 선택하셨다는 교리로 둔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생명으로 선택하시고, 어떤 사람은 영원한 사망으로 예정하셨다고 교리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다. 그것은 예정론을 해석해도 한참을 잘못 해석한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무조건적인 선택교리는 인류 개개인을 위한 하나님의 선택예정으로 고착화되어버렸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전형적인 폭군이자, 편애하시는 분이요 또한 불공평한 분으로 낙인찍혀가고 있다. 왜냐하면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선택교리를, 어떤 개인이 이 땅에서 생겨나기도 전에 그의 운명을 하나님이 미리 결정하신 것이라고 풀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이란 하나님께서 온 우주만물 가운데 인간을 당신의 상속자로 선택하셨음을 뜻하는 것이지, 결코 인간 개개인 중에서 어떤 사람은 천국으로, 어떤 사람은 지옥으로 보낼 것은 예정하시고 선택하셨다는 뜻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까지 예정교리는 하나님을 절대 폭군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선택은 언제나 선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그러한 선택에 관해 왈가불가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교리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단 한 구절에서도 하나님께서 누구는 구원으로 선택하시고 누구는 멸망으로 선택하셨다는 말씀이 없기 때문이다. 혹 인간에 관한 어떤 선택이 있다면 그것은 전부다 개인 사역에 관한 예정인 것이지 개인 구원 예정은 없기 때문이다.
6. 나오며
우리는 에베소서 1:3~14의 말씀을 통하여 만세전부터 세워놓은 하나님 아버지의 인간구원계획을 살펴볼 수 있었다. 하나님은 이러한 계획을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셨으며 지금도 구원하고 계신다. 그리고 오순절 이후부터는 성령께서 오셔서 그것을 보증해주시고 있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됨을 인치시고 있으시다. 인류구원을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그리고 성령께서도 함께 일하시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감사하고도 황송한 은혜란 말인가? 벌레만도 못한 몹쓸 우리 인간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당신이 행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행하셨다. 그만큼 우리는 사랑하신 것이다. 그만큼 우리를 위하신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무리 큰 사랑을 베푸시려고 해도 우리가 하나님을 계속 거절하고 손절한다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시기 대문에 결국 우리는 자신의 행위를 따라 심판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당장이라도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한 구원경륜과 예정섭리를 배워야 한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해 내미시는 사랑의 손길을 꼭 붙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를 구원을 위해 희생하신 그분의 사랑을 찬양하고 선포하고 또한 널리 알려야 알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지으시고 우리 인간구원을 위해 직접 희생을 치르신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감사하는 가장 중요한 반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20년 10월 28일(수)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