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우리를 위해 사람이 되셨다. 그렇지만 그분은 하나님이자 창조주이시기에 세상 모든 것이 다 그분의 것이다. 그분에게 더 필요한 것이 있거나 그분이 수고하고 노력해서 얻어야 할 것이 전혀 없다. 다 그분의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응당 모든 것이 다 자기의 것인 것처럼 살지 않으셨다. 그가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신 이상, 그분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신 것이다. 다음날 자신이 죽을 시간이 임박한 상황에서도 예수께서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찾으셨다. 그래서 피조물이고 죄인들인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렇게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대체 무엇인가? 왜 예수께서는 주와 선생이었지만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것일까? 그분은 스스로 계신 하나님 자신이신데, 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것일까? 그 이유를 정확히 아는 자는 오늘도 내일도 다른 사람의 발을 씻겨줄 것이다.
1. 들어가며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기억이 있다. 그것은 자신에게 특별하게 남아 있는 것들이다. 베드로에게도 그러한 기억이 있었다. 베드로는 3년반동안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겪었던 사건들 대부분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그렇지만 자신의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들이 있었다. 그러한 기억들 중에서 베드로는 적어도 3가지 것들을 자신이 쓴 베드로전후서에 남겨놓았다. 그것으로는 첫째, 가이샤라빌립보지방에 있었을 때베드로의 신앙고백후의 주님의 칭찬과 자신의 이름의 개명이었다. 그때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이름을 시몬에서 베드로로 고쳐주셨기 때문이다(마16:17~18). 베드로는 "반석"이라는 뜻으로서, 베드로는 그것을 깊이 간직하고 살았으며, 그래서인지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서도 늘 반석과 더불어 표현하기를 즐겨했다. 그러므로 벧전2장에 보면, 예수님을 "보배로운 산 돌(벧전2:3)", "보배로운 모퉁이돌(벧전2:6)"이라고 했으며,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 예수님은 "부딪히는 돌이자 걸려넘어지게 하는 돌"이라고도 했다(벧전2:8). 두번째로 베드로는 변화산상에서 잘못된 제안 때문에 책망을 들었던 것도 기억에 오래남아있었던 모양이다. 왜냐하면 그가 그때 들었던 하늘의 음성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을 벧후1장에도 고스란히 기록해놓았기 때문이다(벧후1:7).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로 베드로는 예수께서 죽으시기 하루 전날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무릎을 꿇은 채 자신의 발을 씻어준 사건이 오래 기억에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기에 그는 젊은 장로들에게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벧전5:5~6)"이라고까지 언급했다. 이 사건은 그에게 커다란 감동으로 남아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준 감동적인 사건을 통해서, 스스로 계신 전능하신 분께서 왜 종이 되시어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장면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2가지 중요한 이슈들
예수께서는 당신이 죽으시기 하루 전날 저녁에, 갑자기 겉옷들을 벗어두고는 허리에 수고를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담아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 시작하신다. 그리고 베드로의 차례가 되었다. 그러자 베드로는 간곡하게 만류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에 받아들였다. 그때 주님께서는 "내가 네 발을 씻겨주지 아니하면 나와 함께 분깃을 가지지 못한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베드로는 자신의 손들과 머리까지 씻어들라는 부탁을 한다. 그러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요13:10). 주님께서는 가룟유다가 곧 배신할 것을 아셨기에 다는 깨끗하지 않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머지는 다 이미 목욕한 자와 같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여기서 "발을 씻는 것"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 한 번 죄사함을 받았다면 그후로는 예수님을 믿지 않은 죄를 회개하지 않고 자범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첫번째 이슈다. 다시 말해, 첫번째 이슈는 자범죄에 대한 회개가 그 이슈인 것이다.
그런데 두번째 이슈가 있다. 그것은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다 씻은 후에 다시 옷을 입으시고 말씀하신 대목에 나와 있다. 예수께서는 이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행하였는지 아느냐? 나는 너희들이 말하듯이 주와 선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희들의 발을 씻겼다면, 너희들도 서로 발을 씻겨주는 것이 마땅하니다(의무이니라, 빚이니라)(요13:12~14)." 그런데 여기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서로 발을 씻어주라는 말은 진짜 날마다 세족식을 하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섬기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첫번째로 발을 계속해서 씻기라는 말은 자신의 자범죄를 계속해서 회개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두번째로 발을 계속해서 씻기라는 말은 서로가 서로를 섬기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발을 씻기라"는 것은 똑같은 것이지만, 그 의미와 교훈은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범죄를 회개하라는 말과 섬기라는 말의 전혀 다른 뜻이며 전혀 다른 말인가?
3. 예수께서는 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을까?
예수께서는 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을까? 예수님의 말씀을 종합해보면 2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하나는 예수님을 위한 이유이고 또 하나는 제자들과 앞으로 믿을 사람들을 위한 이유다. 먼저 첫째로, 예수님을 위한 이유부터 살펴보자.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일 내가 너를 씻기지 않는다면 너와 함께 받을 분깃을 가지지 못한다(요13:8)" 이 말은 예수께서 베드로의 발을 씻김으로 예수님께서 받으실 분깃도 있고 베드로도 받을 분깃이 생긴다는 뜻이다. 여기서 "분깃"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메로스"라는 말로서, "내게 돌아온 몫, 할당된 몫"을 뜻하는 단어다. 결국 그 분깃이란 천국에서 받을 상급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렇지만 예수께서는 굳이 그렇게 하실 필요가 없었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이시기에 세상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이요, 천국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므로, 굳이 그것을 얻자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다. 그것은 그분이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자로서 이 세상에서 끝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직책을 성실히 감당하셨음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1절에 나와있듯이, 예수께서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심을 그렇게 표현하신 것이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본성은 하나님이지만 사람이셨다. 그러기에 그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끝까지 성실히 수행하려 애쓰셨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아무런 상관이 없으신 분이지만 주님께서는 사람으로서 성실하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내어 그것을 성실하게 감당하신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또 얼마나 우리가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른지 깊이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둘째,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이유는 제자들과 제자들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을 사람들을 위함이다. 다시 말해서, 제자들이 나가서 세상을 변화시켜 구원얻게 해야 하는데, 어떻게 살아야 세상 사람들을 감동시켜 그들로 하여금 주님을 믿게 할 것인가는 섬김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섬김이 어떤 섬김이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싶으시어, 예수께서는 친히 주와 선생이 되어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것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어야 할 이유는 사실 없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비하면 비교할 수 없는 스승(선생님)이었고 높디높은 상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자신이 비록 제자들의 스승이요 상전이었음에도 기꺼이 종의 위치로 내려가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것이다. 그러니 하물며 제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정확하다. 예수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사람들이니만큼 당연히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것으로 자신이 받은 섬김을 표출해야 한다는 뜻이다. 주와 선생도 제자들이자 종의 발을 씻겨주셨는데 우리들은 얼마나 더 씻겨주어야 할 것인지를 묵시적으로 가르침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던 두번째 이유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장차 예수께서 자기들에게 행하신 행동으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을 낮추어 겸손히 다른 사람을 섬기도록 하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제자들로부터 또 섬김을 받은 자가 또 다른 사람을 그렇게 함으로서, 세상의 가치관과는 전혀 다른 섬김의 방식으로 사람을 구원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 말씀 후에 자신이 누군지를 다시 한 번 알려주셨다. 그는 자신을 "내가 그이다(요13:19)"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독특한 자기선언으로서, 출3:14에 처음 나오는 하나님의 자기선언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이 누군지를 물어보는 모세의 물음에 하나님께서 자신이 누군지를 직접 답해주신 대답이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했다. "나는 나다(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3:14)" 그렇다. 그것은 스스로 자존하시면서, 모든 것을 다 아시며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에 대한 묘사에 해당한다. 그런데 예수께서 자신이 누군지에 대해서 "나는 나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결국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들려주신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 "내가 행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요13:7)",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행하였는지 아느냐?(요13:12)"는 말씀은 전능하신 창조주께서 직접 피조물의 발아래까지 내려가서 섬겼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때가 되어 그것이 무슨 일이었는지를 알게 된다면, 제자들도 남을 그렇게 섬길 것이라는 뜻이다. 그렇다. 예수님의 섬김은 단지 하나님의 아들이나 그리스도의 섬김이 아니었다. 그것을 한참 뛰어넘는다. 그것은 전지전능하시고 자존하신 하나님의 섬김이기 때문이다.
4. 다른 사람의 발을 씻기는 섬김의 또다른 영적 의미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발을 씻겨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첫째로, 자신이 지은 자범죄에 대해서 회개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둘째로, 다른 사람을 섬김의 방법을 통하여 감동시켜 그들을 구원얻게 만드는 통로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의 발을 씻어준다는 의미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그것이 일종의 자범죄에 대한 회개의 표시에도 속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받은 은혜는 너무 큰데, 받은 은혜에 보답할 줄 모르는 배은망덕한 죄를 다른 사람을 섬김으로 회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이미 목욕한 자에 속한다. 그것으로 인하여 사람은 구원을 얻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잘 회개할 줄 모른다. 그렇지만 진정 예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아는 자는 그 빚을 갚으려 한다. 그 빚을 갚는 행위가 바로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주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자신의 물질과 시간과 달란트를 드려 봉사한다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에 어떻게 보답할지 몰랐던 것에 대해 회개하는 마음의 표시이기도 하다.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저주를 받지 아니할까 하여 걱정해서 섬기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자범죄를 용서 바라는 마음을 행동으로 표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행위는 거룩하다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교회 안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행위는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위는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로 바꿀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의 자범죄에 대한 회개의 표시임과 동시에 섬기는 자로 오신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 그대로 표현한 사랑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섬김을 받은 자는 세상의 방법과는 전혀 다른 하늘의 방식에 그만 감동받는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다른 사람을 섬김의 방식으로 사랑하여 구원얻게 하는 놀라운 행위인 것이다.
5. 나오며
어떤 사람은 자신이 자신을 낮추어 남을 섬기며 봉사하는 것을 손해보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비굴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반대다. 만약 자신을 낮추어 남을 섬기고 봉사하는 것이 손해보는 일이고 자신을 비참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었다면 예수께서 과연 그렇게 행동하셨겠는가?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주의 이름으로 섬기며 봉사하는 자들을 위해 이러한 말씀을 덧붙여주셨다.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느니라. 만일 너희가 이것을 알고 또한 그렇게 행한다면 너희는 복이 있을 것이다(요13:16~17)" 그렇다. 아무리 주인이 종이 되어 종을 주인처럼 섬긴다고 해서 그 위치가 달라지는 것은 없다. 오히려 하늘나라가 가면 주인이었으나 정말 존귀한 자로 인정받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높은 위치에 있거나 재물이 많은 자는 내려오려고 하지 않는다. 괜히 비굴한 사람 될 것 같고 손해보는 것 같아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니다. 하늘나라에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 자신을 겸손히 낮추고 섬기는 그이가 하늘나라에서 큰 자가 되고 으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마20:25~27). 그러니 기쁨과 감사함으로 섬기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한 것을 다 아시고 언젠가 다시 한 아름 안겨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2018년 3월 11일(주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