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 중에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이스라엘 백성들로 태어나면 더 유리하지 않을까 율법을 더 많이 배운 사람이 더 유리하지 않을까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요한복음 3장에 나오는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대화를 살펴보면, 유대인으로 태어난다고 해도, 율법을 더 많이 공부했다고 해도 그것이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영적인 것은 혈통이나 지식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구원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구원은 언젠가 빛되신 예수님과 맞딱뜨렸을 때에 그분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계속 어둠과 거짓을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빛과 진리를 따라갈 것인가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니고데모는주님을 찾던 그날까지 자신이 어둠에 속해 있었다는 사실을 잘 몰랐다.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들었을 때,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그는 결국 빛을 붙들고 어둠을 버리기로 결단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산헤드린공회원 72명 가운데 천국에 들어간 2명의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길을 가고 있는가?
1. 들어가며
누가 과연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혈통적으로 자신이 유대인이라고 한다면 구원받는 데에 유리할까? 아니면 율법말씀을 많이 알고 있 자가 구원받는 데에 유리할까? 이러한 질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계속된다. 나는 가방 끈이 짧으니 구원받기 어렵지는 않을까? 나는 이제 예수님을 믿은 자니 구원받기가 쉽지는 않을거야. 내 집안에 예수믿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구원받기가 어렵지는 않을까?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를 통해서 우리는 누가 결국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 대답은 우리의 예상을 빗나간다. 그리고 그것은 그 사람의 머리가 좋아야 한다든지 혹은 혈통적인 조건이 좋아야 한다든지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수님 앞에 섰을 때에 그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2. 산헤드린공회원이었던 니고데모가 주님을 찾아온 이유는 무엇인가?
요한복음 3장에 보면, 한 사람이 예수님이 있는 곳을 찾아온다. 그때는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시기로 본다면, 유월절이 조금 지난 후였다. 그 사람은 니고데모라 불리우는 바리새인으로서 산헤드린공회원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밤중에 주님을 찾아온다. 하지만 그 장소가 어디였는지 성경은 말하지 않고 있다. 다만 그가 밤중에 주님께 나아온 것이다. 그는 왜 밤중에 주님을 찾아왔을까? 혹시 낮에 와서 물어보면 아니 되는 어떤 이유라도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것은 시간적으로 어두운 저녁만을 일컫는 것일까? 그는 대체 무슨 일 때문에 캄캄한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인가?
얼핏보면, 그가 비록 예수님을 시기하고 미워하고 대적하는 산헤드린공회원 가운데 한 사람이었지만 자기 딴에는 예수님을 메시야로 알아보고 예수님과 은밀한 대화를 나누기 위함이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는 개인의 자격으로 온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의 질문은 처음부터 "우리는 당신이 누군지를 알아왔는데, 당신이 하는 일을 보면,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것 같습니다(요3:2)"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께서도 니고데모를 책망하실 때에,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않고 있다. 내가 땅의 일을 말했는데 너희가 믿지 않고 있는데 하물러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3:11~12)고 하시면서, "너희"라고 지칭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는 자기가 예수님을 알고 싶어서 개인적으로 만나러 온 것이 아니다. 그는 산헤드린공회에서 공식적으로 보낸 사람의 자격으로 온 것이다. 그것도 예수님이 누군지를 정확히 알아보고 오라는 명을 받고 찾아온 것이다.
3. 니고데모와 예수님이 대화를 통해서 알 수 있는 사실들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산헤드린공회에서 보낸 니고데모에게 무슨 말씀을 들려주셨는가? 우리는 니고데모에게 들려주신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만나 대화를 나누기까지 그는 영적으로 볼 때 매우 어둠 가운데 있었다는 것이다(요3:3~12). 그는 산헤드린공회에서 율법말씀에 따라 사람을 심판하는 위치에 있던 사람이다(요3:10). 그런데도 그는 사람이 어떻게 해서 구원을 받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중생에 관한 내용을 들려주었을 때, 그는 생소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이 구원받으려면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 자체도 모르고 있었다.
둘째, 예수께서는 산헤드린공회를 향하여 당신이야말로 구약성경에 나오는 장대 위에 높이 달린 놋뱀이시며(민21장),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이 세상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러 오신 분이라고 들려주셨다(요3:13~14). 이것은 그분이 구약성경에 기록된 메시야이시며,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으로 오신 하나님이신 것을 말해준 것이다.
셋째, 예수께서는 이미 당신이 누구신지 세례요한의 사역을 통해 알려주셨지만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세례요한은 메시야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자였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예수께서 메시야이자 하나님의 아들로서 오셨지만 영접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요3:11).
넷째,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유대인들만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 특히 회개하고 믿는 모든 자들을 구원하러 오신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다(요3:16~17). 하지만 당시 산헤드린공회는 메시야가 유대인들만 구원하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섯째, 이것은 매우 중요한데, 산헤드린공회는 예수께서 빛으로 이 세상에 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둠을 사랑하고 빛을 미워하기 때문에 빛 앞으로 나아오지 않고 있다고 책망하셨다(요3:18).
결국 예수께서 니고데모에서 들려주신 말씀을 종합해보면 이런 것이다. "니고데모야, 너는 지금 산헤드린공회원의 자격으로 내가 누군지를 시험하러 온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너에게 말한다. 산헤드린공회는 어둠에 속해 있어서 메시야가 왔는데도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빛이 왔지만, 빛을 미워하고 어둠 안에 머물러 있으려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래야 그들의 권세와 신분을 유지할 수 있고, 돈도 벌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는 내가 하는 이 말을 듣고, 네가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잘 결정하기를 바란다. 너도 계속 어둠 안에 머물러 있어서 유대교의 틀 안에 있으면, 너도 백성들로부터는 존중받고 흠숭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네게 어둠 안에 계속 머물러 있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이제라도 어둠에 속한 자를 구원하러 온 빛을 붙들라. 그러면 너도 빛의 아들이 될 수 있단다."
4.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어떻게 하기로 결단했는가?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은 더이상 없다.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그와 관련된 2가지 정보를 더 제공해준다. 하나는 요한복음 7장에 나오고 있고, 또 하나는 요한복음 19장에 나와 있다. 먼저 것은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변호해주는 사람처럼 등장하고 있다(요7:49~51). 이것은 이미 그가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오고 있음을 가르쳐준다. 또한 나중의 것은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장사지내기 위해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찾아오는 장면이다(요19:39~40). 이것은 그가 예수님을 장대 위에 높이 달린 놋뱀 곧 메시야로 믿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렇다. 그는 요3장에서는 어둠 가운데 있었다. 그리고 요한복음7장에서는 빛으로 나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요한복음 19장에서는 그는 이미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고 그분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기로 결단한 채 있었던 것이다.
5. 나오며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어느날 우연히 혹은 누군가를 통해서 빛되신 주님 앞으로 나아오게 된다. 그런데 그때 그 사람이 구원을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것은 그때 본인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 니고데모는 직책상 빛되신 예수님으로 나아오게 된다. 하지만 그는 빛으로 나아오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그때 니고데모는 당신은 예수님을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나서는 자신의 믿음으로 공개적으로 드러낸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산헤드린공회가 어둠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산헤드린공회를 형성하는 그룹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로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는 외식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니고데모는 더이상 어둠을 붙잡고 있는 것을 포기하고, 빛이신 주님을 붙잡기로 결정한다. 그것만이 참된 길이요 생명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본의아니게라도 주님과 대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때 사람은 누구든지 그분이 빛이라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구원은 그때 그분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여러분도 니고데모처럼 어둠과 거짓을 버리고 빛과 진리를 꼬옥 붙잡게 되기를 기원한다.
2018년 6월 17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