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자신에게 원수같은 사람이 있고 원수같은 나라가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개인과 국가를 계속해서 원수처럼 여기며 살아야 하는가? 그럴 수는 없지 아니한가? 특히 믿는 이들에게 있어서는 사탄마귀 외에는 원수가 없다. 미워하고 악한 마음을 품으면 성령께서 싫어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미워할 수도 없다. 그러나 요나는 미워하는 마음을 쉽게 내려놓지 못했다. 왜냐하면 북이스라엘과 앗수르의 변방에서 살고 있었던 그에게는 앗수르의 횡포를 쉽게 용서해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이고 싶었을 것이다. 아니 악행으로 인하여 그들이 하루 빨리 멸망당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하나님으로부터 특명이 내려졌다. 앗수르에게 가서 심판을 외쳐서 그들에게 살 길을 터주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요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 대들었다. 차라리 자신을 죽여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도 마음을 바꾸지 않던 요나가 마음을 바꾸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는지, 그분의 마음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도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으로 자비를 베풀어야 할 나라가 있다. 그런데 지금이야말로 바로 그들을 용서해줄 최적의 시기요, 그들을 위해 기도해 줄 수 있는 최적의 시간(골든타임)이 도래한 것이다. 대체 그 나라는 누구인가?
1. 들어가며
"골든타임(Golden Time)"이라는 말이 있다. 이말은 방송계에서 쓰던 말로써 원래는 시청률이 가장 높이 치솟는 시간대 곧 "황금시간대"를 일컫는 말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의미가 변화되어 "최적의 시간대"라는 말로 바뀌어 쓰이고 있다. 뭐든지 최적의 시간대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누군가의 잘못이나 허물을 용서해주려면 언제가 골든타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 특히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나 교회가 북한의 평화와 해방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면 과연 언제 골든타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요나서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골든타임이 언제이며, 그것을 알았다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요나는 왜 하나님에게 대들었을까?
B.C.760년경 요나는 북이스라엘의 선지자로 부름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북이스라엘과 앗수르의 경계지역에 살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를 불러 선지자로 일하게 하셨다. 그런데 그에게 내린 특명에 대해 요나선지자를 순종하지 않았다. 아니 순종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얼굴을 떠나 멀리 도망치려고 시도하였다. 하지만 타고 가던 배가 거대한 풍랑을 만나 좌초될 위기에 봉착하고 말았다. 그때 요나는 그 모든 일들이 자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는 사실을 알리고는 자기를 바다에 던지라고 하였다. 하지만 한 사람의 생명이 걸린 문제라 선원들은 어찌하든지 다른 방도를 찾아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허사였다. 결국 요나는 바다에 던져졌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큰 물고기(고래)가 다가오더니 그를 집어삼키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죽었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그는 죽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뜨거운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다. 자신의 불순종을 회가해고 주님의 명령에 따르겠다고 했다. 이윽고 물고기는 그를 육지에 내뱉었고 그는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로 가서 "앞으로 40일후면 이 성이 멸망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라고 외쳤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니느웨백성들이 어른이나 어린아이 할 것 없이, 요나의 외침을 듣고는 굵은 베옷을 입고 악행과 강포를 그치며 회개하는 것이 아닌가? 또한 왕도 왕좌에서 내려와 금식하며 이에 동참했고 나라에 조서를 내려 모두가 다 함께 하나님 앞에 회개할 것을 명령하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니느웨성에 내리리라고 생각하고 있던 재앙을 거두어들이셨다.
그러자 결국 요나가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 "내 이럴 줄 알았다"고 말이다. 왜냐하면 요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큰 죄를 지었어도 회개하기만 하면 벌을 내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요나의 생각에는 앗수르제국은 반드시 멸망해야할 나라였다. 왜냐하면 그들이 북이스라엘에 저질렀던 만행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허구헌날 북이스라엘을 침입하여 애써 농사지은 것을 약탈해 갔으며, 때로는 부녀자와 아이들을 노예로 끌어갔고 저항하던 사람들을 칼로 죽이고 집은 불사르는 일을 자행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변방에 살고 있던 요나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반드시 심판하여 멸망케 하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시켜 앗수르의 수도에 가서 그들에게 임한 심판의 경고메시지를 전하라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경고를 들었던 니느웨성백성드은 재에 앉아 회개해버린 것이다. 큰 일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이 멸망당하지 않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나는 하나님께서 화를 내며 말했다. 자신이 고국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자비로운 분이기 때문에 앗수르인들이 회개하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지 아니할 수도 있다고 했는데 그것이 현실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자신을 죽여달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징계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그를 조용히 타이르셨다. 그때였다. 하나님께서는 요나가 니느웨성이 언제 멸망하나 지켜보기 위해 성 동쪽 언덕 위에 초막집을 만드는 것을 보셨다. 그러자 그 다음날 하나님께서는 그 초막집 위에 박넝쿨이 뻗어나가게 하셨다. 그러자 요나는 얼마나 시원한지 살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 다음날 새벽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는 벌레를 보내사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셨다. 그리고 태양이 더욱 뜨겁게 내리쬐게 하셨고, 뜨거운 동풍까지 요나에게 불게 했다. 그러자 요나는 또다시 차라리 자신을 죽여달라고 하나님께 대항하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욘4:10~11).
욘4:10-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자라게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아까워하는데)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전혀 알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아까워하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3. 불순종한 요나와 같은 이 세대
사실 성경에 등장하는 선지자치고 요나처럼 불순종한 사람은 익히 없었다. 사실 구약성경을 통틀어서 이처럼 그릇된 태도와 편협되고 완고하며 배태적인 마음을 가진 하나님의 종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는 오로지 자기자신의 뜻대로만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렇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요나처럼 사는 자들이 적지 않는 것 같다. 내 생각과 내 뜻대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울분을 참지못하고 폭발해버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얼마전에는 야당원내대표가 어떤 청년에 의해 얼굴이 가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가 그렇게 한 이유는 이랬다. 김정은이가 마음을 열고 남북간에 대화하고 평화를 열어가자고 하는데, 국회비준동의정도는 해 줘야 될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렀다. 그 청년의 생각에 야당원내대표는 매우 미웠을 것이다. 요나처럼 말이다. 요나는 앗수르제국이 멸망당하지 않는 것을 생각할 수 없었다. 앗수르는 반드시 망해야 할 나라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말씀하셨다. 그 성 안에는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이 12만명이나 있으며(당시 니느웨성 인구는 60만명 정도였다), 가축도 많이 있는데, 이들이 무슨 죄를 지었길래 그들이 죽임을 당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또한 자기도 잘 모르고 죄를 짓고 있는 이들도 있을 터인데, 그들 중에 한 사람이라도 회개하여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당장 자신을 괴롭혔으니 그런 놈들은 없어져야 한다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4. 그렇다면 우리나라에게는 앗수르와 같은 저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
지금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북한은 앗수르와 같은 나라다. 그들 때문에 겪어야 할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 북한은 뻔뻔스럽기까지 하다. 해방이후 그들은 70년간 많은 잘못을 저질러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아왔건만,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는 모습 하나 보이지 않았으며, 감사하다는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그들이 일으킨 6.25전쟁을 보라. 그들은 남한을 공산주의화시키기 위해서 1950년 6월 25일에 남침을 감행하였다. 그것으로 인해 삼천리금수강산은 폐허더미가 되었다. 산업의 모든 기반이 허물어졌다. 일천만 이산가족이 생겨났다. 남북한 합쳐 무려 600만명의 사상자가 났다. 하지만 휴전이 성립된 이후 그들은 계속해서 남침야욕을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뻔뻔스럽게 오리발을 내밀기 일쑤였다. 천안함사태, 연평도 포격사건, 비무장지대의 목함지뢰사건 등 아직도 그들의 도발은 계속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우리의 경제적 지원을 받아 핵무기를 개발하였고 완성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남한 사람들은 날마다 북한 김정은이와 공산당원들이 죽기를 놓고 기도해야 하는 것인가? 미국이 폭격하여 북한이 다시 쑥대밭되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남한 사람들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북한 사람들도 사랑하신다. 주님께서는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 하맂라도 회개하여 돌이켜 살기를 바라신다(겔18:23,32). 한 사람이라도 죽어 지옥형벌을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신다. 그리고 북한주민들과 아이들은 무슨 잘못이 있는가? 그러므로 우리도 북한이 회개하고 그동은 잘못행하고 인권을 유린해온 것을 인정하고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올 수 있도록 기도해주어야 한다. 요나처럼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 한 사람이라도 회개하고 구원받을 수 있도록 그들을 품어주고 용서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은 북한 수뇌부의 회개다. 김정은과 북한 수뇌부가 이 기회에 그동안 잘못을 인정하고 인권을 유린해온 것을 인정하고 사람다운 사람과 살기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통큰 결정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5. 나오며
지금 이 시기야말로 대한민국의 더 발전적인 형태로 나아갈 수 있는 골든타임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기회가 우리의 생애에 두번 다시 찾아올까 싶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들의 회개와 반성을 위해 기도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행동으로 보여주는 모습이 없다면 그때에는 우리도 어쩔 수 없다. 그들이 받아야 할 몫을 그들이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제자들로 하여금 복음을 전파하도록 밖으로 내보내실 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만약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의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빈 평안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마10:12~13)" 그렇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북한의 회개와 그리고 행동의 변화를 위해 기도하고 축복해주는 일이다. 하지만 그들이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자기의 길을 간다면 더이상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다만 우리가 기도했던 것이 우리에게 돌아올 뿐이다.
북한, 분명 우리나라의 주적이요 원수이다. 하지만 북한주민까지 주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북한 어린이들이 주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지금은 북한의 수뇌부의 회개를 위해 정말 간절히 기도할 때다. 이것을 위해 우리가 최선을 다해 기도로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그래야 북한에도 자유와 해방이 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북한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해 우리나라를 위해 고통을 안겨준 그들이 저주받도록 그리고 멸망받도록 기도해서야 되겠는가? 아니다. 그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축복해줄 수 있는 시기는 지금 뿐이다. 지금이 바로 골든타임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도 이처럼 말씀하셨다. "너희 원수를 하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니요. 세리도 이와같이 아니하느냐?(마5:44~46)" 그렇다. 그 시기가 이제 우리에게 많이 남아있지 않다. "주여, 진실로 간구하옵나니, 저 북한을 불쌍히 여겨주소서. 통 큰 결정을 하도록 이끌어주시옵소서."
2018년 5월 13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