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6"은 분명 숫자라고 했다(계13:18). 그것은 물건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제품이나 시스템도 아니다. 그것은 "짐승의 숫자"와 "사람의 숫자"라고 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베리칩이 666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이 짐승의 표라는 것이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리스도인들은 목숨걸고 거부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사도요한이 요한계시록을 쓸 당시에도 "짐승"이 있었고, "짐승의 표"가 있었으며, "666"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때 짐승은 로마의 도미시안황제를 지칭하는 것이었고, 짐승의 우상은 황제의 흉상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짐승의 표"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었다. 짐승의 표는 짐승의 이름이나 짐승의 이름의 숫자라고 했는데, 도미시안은 결코 그 알파벳 숫자의 합이 "육백육십육"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666"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석할 때 우리는 그것이 "짐승의 표"라는 것을 알 수 있는가? 여기에 그 해답이 있다.
1. 들어가며
"666"이란 대체 무엇인가? 이것은 요한계시록에만 나오는 숫자다. 일종의 암호와 같은 어떤 숫자값을 가리킨다. 그래서 지혜가 있는 자는 이 숫자를 헤아려보라고 했다(계13:18). 그렇다. 이 숫자값의 의미를 안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666은 곧 베리칩"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베리칩을 일컬어 666이라고 주장한지가 벌써 15년이 지났다. 그런데 아직도 그 주장을 계속해서 펼치고 있다. 진짜 그런가? 그렇다면 다시 질문을 던져본다. 베리칩이 666이 아니라는 증거는 무엇인가? 거꾸로, 어떤 것이 666이라든지 아니면 666이 아니라고 하는 어떤 증거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그래서 우리의 판단의 기준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것은 어느 누구의 주장이나 말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오직 성경말씀이어야 한다. 성경말씀에 무엇이라고 나와 있는지를 정확히 알아봐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라도 진리의 세계에 실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666의 실체에 대해서 다뤄보고자 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진정 조심해야 할 666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 666이 아닌 것들은 어떤 것들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것을 제대로 깨닫는 자는 허송세월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 자신이 진정 힘써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감당하므로 분초가 아까운 때를 보다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2. 사도요한은 무엇을 가리켜 "666"이라고 말했는가?
사도요한은 "666"은 "짐승의 숫자"요 "사람의 숫자"라고 말하였다(계13:18). 그리고 짐승의 "표(카라그마)"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표"는 "짐승의 이름"이요, "짐승의 이름의 숫자"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고로, "짐승의 표(카라그마)"는 "짐승의 이름"이며 "짐승의 이름의 수"다. 그리고 "짐승의 숫자"이자 "사람의 숫자"로서 짐승의 이름이나 짐승의 우상의 숫자값이 "666"이라고 하였다.
이것 때문에 초대교회부터 "짐승"이 누군지를 알기 위해 많은 사람이 연구를 했다. 그중에서 가장 유력한 인물은 "이레네우스(A.D.140-203)"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초기 교부들 가운데 한 사람이지만 사도바울의 뒤를 이어 어거스틴의 출현 때까지 초기교회시대의 정통교리를 사수한 위대한 교부이자 대단한 신학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도 "666"이 누구를 가리키는지를 찾아내지 못했다고 했다. 다시 말해, 요한계시록이 쓰여질 당시 사도요한이 염두해두고 있는 "짐승"은 분명 로마의 "도미시안황제"(A.D.81~96)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도미시안황제의 이름이 "짐승(데리온)"은 아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이름의 숫자의 합이 "666"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초대교회 때에는 누군가를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안 되는 상황에서 누군가를 언급할 때에는 사람 이름의 알파벳의 숫자값을 더한 값으로 말하곤 하였다. 이를테면, "나는 545인 여자를 좋아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게마트리아"라고 부른다. 헬라어나 히브리어, 라틴어나 영어나 모두 각 알파벳에는 고유한 숫자값이 매겨져 있다. 그것을 하나하나 더해보면 어떤 숫자값이 나오는데,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대상을 대신하여 그 숫자값을 언급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도요한이 요한계시록을 쓰고 있을 당시, 게마트리아로 합해보았을 때에 "666"이 되는 중요인물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666"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3. "666"이란 상징적으로 무엇을 뜻하는가?
그런데 우리는 산술적인 숫자값을 사용하여 도미시안 황제를 계산할지라도 그가 바로 짐승이라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도미시안 황제의 이름을 아무리 더해보아도 666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의 기록과 교회사적인 기록을 통해서, 사도요한이 가리키고 있는 그 "짐승"은 분명 "도미시안황제"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도미시안황제가 짐승이라는 것을 지정해서 말할 수 있으며, 그 이름의 값을 "666"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가? 그것은 "666"을 요한계시록에 나오고 있는 다른 숫자들의 경우처럼 상징적인 숫자로 보면 간단히 해결된다.
예를 들어, 숫자들의 상징적인 의미들을 살펴보자. 요한계시록에서 "1"은 한 분 하나님을 가리킨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 "12"는 천국에서의 완전수를 가리키고, "7"은 지상(땅)에서의 완전수를 가리킨다. 그리고 "4"는 피조물, 땅(지구), 인간세상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보좌 근처에 있는 생물이 총4명이며, 지구의 방향이 동서남북이고, 계절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6"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6"은 "불완전, 짐승, 인간"을 가리키는 숫자다. "6"은 땅의 완전수인 "7"에서 하나 모자라는 숫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짐승과 사람이 창조되던 날도 여섯째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피조물이고 불완전한 사람(6)이더라도, 하나님(1)을 만나게 결합하게 되면, 그는 완전히 안식(7)에 들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666"이라는 숫자는 "6"이 세 번 겹쳐서 나오는 숫자다. 물론 "666"은 "600" 더하기 "60" 더하기 "6"을 가리킨다. 그런데 "6"이라는 숫자가 "불완전"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666"은 불완전함의 삼위일체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비중은 처음이 제일 큰 "600"이고, 그 다음이 "60"이며, 맨 마지막이 제일 작은 수 "6"이다. 그런데, 우리는 인류최후의 전쟁인 아마겟돈 전쟁 때에 짐승 세 놈이 동시에 참여한다는 것을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즉 용과 [첫째]짐승과 [둘째짐승인] 거짓선지자가 그들이다(계16:13~14, 19:19, 20:10). 이들은 다 더러운 귀신들의 영이다. 이들이 함께 모여 아마겟돈전쟁 곧 곡과 마곡의 전쟁을 일으킨다.
4. 용과 짐승과 거짓선지자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런데 짐승 "용"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요한계시록 12장을 살펴보면, 그의 정체가 정확히 나온다. 그는 악의 화신인 "사탄마귀"로서, 옛뱀이자 중상자이며, 온 천하를 미혹하는 자다(계12:9). 그런데 그가 하늘에서 쫓겨날 때, 하늘의 천사들 1/3을 끌고 내려온다. 그래서 그는 지구의 땅속인 음부에 자기의 보좌를 만들어놓고, 거기에 앉아 하늘에서 떨어진 자기의 천사들 1/3의 왕이 되었다. 그러나 죄없으신 예수님을 그만 사망권세로 죽이는 바람에 자신은 불법자가 되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빼았기고 말았고(계1:18), 그만 무저갱 속에 갇히게 된다(계20:1~3). 그리하여 그의 능력과 권세와 지혜가 상당히 제한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천년왕국(그리스도의 승천이후 재림직전까지, 죽고 곧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가서 왕노릇하는 성도들의 나라)의 끝무렵에, 용이 잠깐 놓임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계20:3,7). 그러면 그일로 인해 "아마겟돈전쟁"이 일어나게 되고, 순교자의 숫자가 차면 이 세상은 끝나게 될 것이다(계6:11). 그런데 주님의 재림 직전까지, 어찌하든지 용은 무저갱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곳에서 용은 가만히 놀고 있지만은 않다. 대신 자신의 하수인들을 음부의 문들을 통해(마16:18) 올려보내어 자신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의 하수인들에게 자신의 능력과 권세를 주어서 말이다(계13:1~18).
그런데, 용(사탄마귀)이 무저갱에서 올려보낸 첫째 짐승이 바로 계13:1~10에 나오는 열뿔 가진 짐승이다(계13:1~10). 이는 휘몰아치는 "바다에서 올라오는 열뿔 가진 짐승"으로서, 이 세상의 거대 대제국의 우두머리들을 미혹하는 타락한 천사를 가리킨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짐승이 있다. 그는 계 땅에서 올라오는 두 뿔 가진 어린양같은 짐승인데(계13:11~18), 이것은 둘째짐승으로서, "거짓선지자"라고 불린다(계16:13,19:19,20:10). 그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를 흉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녀석은 교회의 지도자들을 꾀여 일하려고 올라온 사탄의 세번째 하수인이다. 고로, 사탄도 삼위일체로 일하시는 하나님처럼, 용과 짐승(첫째짐승)과 거짓선지자(둘째짐승)라는 팀을 조직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에게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흉내내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갖고 있는 권세와 능력이 똑같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권세의 수치로 보면, 용은 600이요, 첫째짐승은 60이요, 둘째짐승은 6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고로 사탄의 3위일체인, 용과 짐승과 거짓선지자를 상징적으로 "666"이라고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누구든지 그가 용을 섬기든지, 짐승을 섬기든지, 거짓선지자를 섬기게 되면, 짐승의 수(6)이자 사람의 수(6)로서, 그합이 얼마든지 "666"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5. 누가 "짐승의 표"인 "666"을 받게 되는가?
오늘날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자들 중에는 한사코 "베리칩"을 "666"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베리칩"이야말로 전세계에서 단일정부를 구축할 우두머리(지배자)가, 전 세계 사람들을 감시하고 통제할 용도로 사용할 "666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주장이 과연 합당한가?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왜냐하면 "베리칩"이 666이 될 수 없는 것은 이것이 짐승의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요, 짐승의 우상과도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베리칩이 666이라고 주장하려면, 짐승이나 짐승의 우상을 경배하는 일이 먼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말대로라면] 아직 짐승이나 짐승의 우상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베리칩을 "666"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짐승"이나 "짐승의 우상"이 실제가 아니라 상징적인(은유적이고 영적인) 표현들인데, 어떻게 "666"을 실제라고 말할 수 있으며, 베리칩을 짐승의 표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앞뒤가 바뀌어 있다. 먼저, "짐승"이 나와야 하고 "짐승의 우상"이 나와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지가 먼저 정확히 규명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도 않은 상태에서 짐승의 표를 말하는 것은 앞뒤가 바뀌어있는 것이다.
사실 과거에도 "짐승의 표"에 대한 주장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바코드" 혹은 "컴퓨터" 등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어느 누가 바코드나 컴퓨터를 짐승이나 짐승의 우상이라고 곧이곧대로 믿고 있는가? 거기에는 반드시 인간의 경배가 결부되어 있어야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계14:9, 15:2, 20:4). 그렇지 않은 것은, 모두가 하나의 물건이나 상품이나 어떤 시스템일 뿐이다. 그러니 베리칩을 몸 속에 삽입하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을 지옥에 떨어지게 하는 것이 결코 될 수 없다. 자신의 편리한 삶을 위해 자신이 선택한 현대문명의 유익한 수단일 뿐이기 때문이다(그렇지만 만의 하나 훗날 이것이 더욱 발전되어, 짐승과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표식이요 혜택이 된다면 그때는 단호히 거부해야 할 것이다).
6. 무엇이 "짐승, 짐승의 우상, 짐승의 표, 666"인가?
그렇다면, 무엇이 "짐승"이며, "짐승의 우상"이며, "짐승의 표"인가? 그리고 특별히 무엇이 "666" 즉 "짐승의 이름"이나, "짐승의 이름의 숫자"인가? 답은 간단하다. 그것은 짐승에 대한 정의가 내려지면 된다. 위에서도 설명했다시피 "짐승"은 세 종류다. 용과 짐승과 거짓선지자가 그들이다. 용은 사탄마귀요, 짐승이란 사탄마귀가 쓰는 하수인으로서 세상제국의 왕들인데,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불신세력의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거짓선지자는 무저갱에서 올라와 [첫째]짐승을 경배하게 하는 타락한 천사들로서, 성도들을 미혹하여 결국에 사탄마귀를 경배하게 하는 교회지도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천년왕국의 끝날 곧 예수재림의 직전의 날에 불못에 먼저 던져지게 될 것이다(계19:20, 20:10).
고로, 사도요한 당시 "짐승"은 "도미시안 황제"였으며, "짐승의 우상"은 황제의 흉상같은 것이었다. 왜냐하면 도미시안 황제가 늘 각 지방도시에 방문할 수 없으니까, 황제의 흉상을 만들어놓고 거기에다가 절하며 충성을 맹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짐승의 표"라는 것은 황제나 황제의 흉상을 숭배하는 자들에게 주어진 일종의 표식이었다. 일종의 "매매활동허가서"와 같은 것이었다. 그것이 있으면 상업활동 특히 사고파는 일에 특권을 받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짐승이나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짐승이 준 특권같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666"은 짐승의 숫자와 사람의 숫자로서, 삼위일체를 흉내내는 사탄의 세력을 경배하는 자들에게 속했다는 것을 뜻하는 상징적인 숫자를 가리킨다. 왜냐하면, 666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흉내내는 것이듯, 짐승의 표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는 것을 보고(물론 보이지 않는 영적인 표시로서,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음을 표시하는 것이다), 사탄마귀도 덩달아 하나님을 흉내내어 이제는 자신을 경배하는 자들에게 자신의 소유가 되었음을 인치는 일종의 영적인 표식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도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탄의 표도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다만, 666도 영적인 숫자로서 사탄에게 속해있음을 알려주는 영적인 표식인 것이다.
7. 나오며
2019년, 지금의 시대는 마지막 끝자락의 시대다(요일2:18). 주님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 만약 지금 구원받고 있는 숫자보다 앞으로 구원받을 숫자가 점점 더 작아진다면, 이 세상은 사실 존재할 이유가 없어진다. 다만 순교자의 숫자가 채워질 날이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기도로 예수께서 재림하실 것이기 때문이다(계6:11). 그때가 머지 않았다. 과거보다 지금이 훨씬 더 가까운 시기임에는 틀림없다. 곧 있으면, 땅의 상인들이 인간과 비슷한 AI(인공지능)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들어 시중에 내놓아 돈을 벌 날이 올 것이다(계18:13). 이것에 뒤쳐지는 국가는 경제대국에서 점차 멀어져 갈 것이다. 미래시장은 AI시대가 될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만의 하나(조건이 맞아떨어지기는 쉽지는 않겠지만), 모든 정보가 다 입력된, 거대한 통합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로봇이 등장한다면 그를 신(하나님)으로 섬길 자가 있을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것을 신으로 섬기도록 강제하기 시작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신으로 섬기는 자들에게 어떤 혜택과 특권을 주어서 사람들을 유혹한다면, 그것도 교회지도자들이 적극적으로 앞장 선다면, AI거대로봇(빅데이터로봇)도 일종의 "짐승의 우상"이 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될른지는 사실 지금으로부터 알 수 없다. 그때 가서 그것을 보기 전에는 말이다.
문제는 지금이다. 지금 우상숭배하다가 지옥에 떨어지는 자가 있다는 데에 있다. 지금 자신의 이마에 영적으로 666표가 찍히는 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일은 창세이후로 계속해서 있어왔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계13:8, 17:8). 그러니 지금 지은 죄를 회개하는 것이 중요하고, 지금 자신이 우상을 숭배하고 있지는 않는지를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지금의 시대는 추도예배나 장례예배 같이 죽은 자를 놓고 예배드리는 것이 우상숭배요, 돈이나 명예나 쾌락이나 권력을 추구하는 것도 우상숭배에 해당한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우리 주 예수님만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이 중요하다. 당신은 어떠한 상황에 처한다고 할지라도 오직 예수님을 나의 주요 나의 하나님으로 섬기겠는가? 설령 그것 때문에 당신이 죽임당해야 한다면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이겠는가? 그때를 대비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기도해야 하고 지금 말씀으로 무장해야 한다. 건투를 빈다.
2019년 5월 17일(금)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