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에서 드려지는 예배와 지상에서 드려지는 예배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차이가 있다. 먼저, 천국은 더이상 죄된 욕망이나 사탄마귀 귀신들이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곳에서 타락할 사람은 없다. 그리고 거기는 하나님의 실존이 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얼굴과 얼굴을 맞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 지상은 그곳과 다르다. 여기에 사는 성도들은 이미 구원을 받은 자라도 구원이 안전한 곳이 아니다. 죄된 욕망과 귀신의 공격으로 인하여 얼마든지 구원에서 미끄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고전9:27,빌2:12). 그러므로 천상에서 드려지고 있는 예배의 핵심이 지상에서 드려지는 예배의 핵심요소가 같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천상에서 드려지는 예배의 핵심요소가 "경배(엎드려 절함)과 찬양과 기도(기도는 주님재림전까지만 필요하다)"라고 한다면, 지상의 예배는 무엇인가? 그런데 오늘날 "찬양과경배"라고 하면서 ccm을 예배의 중요요소로 생각하는 교회들이 아직도 있다. 그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지상에서 예배드릴 때에 우리는 무엇에 주의해야 하는가?
1. 들어가며
천상에서 드리는 예배와 지상에서 드리는 예배는 과연 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그중에서도 예배의 핵심개념을 비교해 볼 때, 이 둘은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A.D.95~96년경 사도요한이 환상 중에 천국에 올라가 보았던 예배와 그때에 이 지상에서 드리고 있는 예배는 어떤 차이가 있었던 것일까? 그런데 우리는 요한계시록 4~5장을 통하여, 천상에서의 예배가 어떻게 드려졌는가를 확인해 볼 수 있다. 그것은 크게 3가지를 포함하고 있었다. 하나는 "엎드려 경배함", 그리고 또 하나는 "찬양을 드림",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기도를 올려드림"이다. 다시 말해, 경배와 찬양과 기도가 예배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지상에서 드리는 예배는 과연 무엇이 예배의 핵심요소인 것일까? 그래서 오늘은 천상과 지상의 예배의 핵심요소의 차이점을 대해 점검하면서, 지상에서의 예배에서 무엇을 더욱 더 주의해야 하는지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2. 천상에서의 예배의 참여자는 누구인가?
천상에서 드려지는 예배의 참여자는 대체 누구인가? 그것은 크게 4종류다. 그들로서 첫째는 피조물을 대표하는 네 생물이 있다. 둘째는 신구약의 구원받은 백성들을 대표하는 24장로들과 14만4천명의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으며, 셋째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지음을 받았던 천천만만의 천사들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피조물들이 있다. 이중에서 "네 생물"은 비록 피조물들의 원형의 모습을 가지고 있기는 하나, 세 쌍의 날개를 가진 영적 존재로서 일종의 천사에 해당한다. 그리고 24장로들이나 14만4천명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사람들로서, 24장로들을 구원받은 백성들의 대표이며, 나머지는 구원받은 백성들의 총숫자를 가리킨다.
3. 천상에서의 예배의 핵심요소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천상의 이러한 네 존재들을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도 크게 3부분의 나뉜다. 첫째는 엎드려 경배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린양에게 24장로들이 했던 예배행위로부터 시작되었다. 이것은 예배의 기초이자 예배드리는 자의 자세를 가리킨다고 하겠다. 그리고 둘째는 찬양을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칭호와 성품들(속성들)을 찬양하고, 하나님께서 어린양으로서 이미 과거에 행하신 일들과 장차 미래에 행하실 일들을 소리 높여 찬양하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24장로들의 두 손에 들려진 것은 거문고(찬양위한 도구)와 금대접(기도위한 도구)이었다.
그렇지만, 찬양과 기도 중에서 찬양은 영원무궁토록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하만 기도는 그렇지 않는 요소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이 우주를 만드신 뜻과 목적이 완성될 때까지 필요한 것이지, 이미 하나님의 뜻대로 다 성취되었다면 더이상 기도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 재림 전까지 하나님의 뜻의 완전한 실현은 계속 뒤로 미뤄질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영원토록 지속헤야할 성도들의 예배의 행위는 오직 "찬양"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지상에서부터 찬양의 행위를 적당히 하거나, 건성으로 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이것은 이 지상에서도 해야 할 일이며, 저 천국에 들어가서도 해야 핼 영원한 예배행위이기 때문이다.
4. 지상의 예배의 핵심요소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지상에서 드리는 예배의 핵심요소는 대체 무엇인가? 오늘날 지상의 각 교회에서 드리고 있는 예배의 순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예배의 기원, 찬송, 기도, 말씀선포, 봉헌, 광고, 축도 등이 들어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지상에서의 예배행위는 어떤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이 누군지를 알고서 예배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칭하는 악한 귀신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상에서의 예배의 핵심은 말씀이 될 수밖에 없다. 말씀을 가지고 영적 세계를 깨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이곳저곳에는 영적인 세계를 알려주는 상당한 식견을 가진 자들이 많다. 하지만 영적 세계에 대한 지식도 다양하다.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이 구별해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결론의 책인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말씀으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누군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신앙생활의 최종적인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시기를 어떻게 살아야 이기는 자가 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속임당하기 쉽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오직 진리만을 말씀하셨다. 거짓의 아비 마귀는 거짓을 제것으로 말하지만 사람들에게 그것이 진리라고 늘 속인다. 그러므로 말씀을 선포하는 목회자는 오직 예수님만의 말씀만을 증거하고 선포하리라는 각오를 다지고 또 다져야 한다. 그리고 영적인 세계를 꿰뚫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말씀사역에도 혼돈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말씀사역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에 목회자들은 다른 길을 모색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손쉽게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까페를 교회에서 운영하기도 하고, 상담 및 학습센타를 열기도 하고, 문화선타를 시작하기도 하며. 공연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사람을 끌어들이는데 쉽게 빠른 것이 바로 "찬양과 경배팀"을 세워, 음악으로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의 위험성을 감지하지 못할 때에는 오히려 잘못된 길로 나아갈 수 있다.
5. 1990년대에 붐이 일어났던 "경배와찬양"예배는 우리는 과연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1990년경이다. "경배와찬양"이라는 것이 출현했다. 그전에는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이라는 말도 없었다. 찬송가가 아닌 것은 모두 "복음성가"라고 불렀다. 하지만 새롭게 탄생한 대중음악을 기독교음악에 끌어온 "경배와찬양"은 많은 전자 악기들을 동원하였고, 전문적인 찬양사역자들을 앞세워 젊은이들을 빠르게 잠식해갔다. 멋진 사운드를 세상에 싫어할 사람이 없으며, 그것도 음악을 사용해서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하는데 거부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경배와찬양"이 나온지도 벌써 30년이 되었다. 그런데 젊은이들의 신앙이 나아진 것이 과연 얼마나 되는가? 젊은이들의 헌신도가 더 강해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 교회는 텅텅 비고 있고, 젊은이들은 사라지고 있으며, 노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을 뿐이다. 요즘 들어와서 젊은이들은 결혼도 하지 못한다. 그것도 늦게 한다. 자매가 믿음좋은 청년만나기는 정말 하늘의 별따기다. 그러니 교회학교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참된 믿음을 가진 자와 기도자들을 만나보기가 어려운 때가 된 것이다. 물론 경배와찬양이 아직도 강력하게 활동하는 교회들이 조금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 왜인가? "경배와찬양"이 청년들을 불러모으는데는 성공했지만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헌신하게 하는 데까지 성공시키지는 못했던 것이다. 잠깐 음악에 취하게 했을 뿐이다. 말씀으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경배와찬양 사역으로 참된 헌신자를 배출할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주었다. 말씀은 우리의 혼 중에서 지적인 영역에 역사한다. 그리고 음악(찬양)은 우리의 혼 중에서 [감]정적인 영역에 역사한다. 그러므로 말씀을 깨닫는 것이 없다면, 감정은 들쑥날쑥하기에 그으로 온전한 믿음을 갖춘 사람들을 배출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6. "경배와찬양"은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인가?
교회가 "경배와찬양"을 들여온 것은 어쩌면 장점도 있었다. 성도들의 예배 참여도를 한층 더 늘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음악의 대중화를 가져왔던 것이다. 하지만 이에 비해 단점이 만만치 않다. 그것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악기연주 및 리듬연주의 찬양은 자극적인 요소를 거룩한 예배 안으로 계속 끌어들여옴으로 말미암아 세속적인 영역까지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만들었다. 둘째, 말씀에 의한 깨달음과 교육적 기능이 약한 음악을 사용함으로 성도들을 감성 및 감정위주의 신앙으로 흘러가게 했다. 그러므로 찬양이 없는 곳에서는 젊은이들은 반응 자체가 없다. 경배와찬양팀이 없는 소규모 교회는 젊은이들이 아예 모이지를 않는다. 셋째, 말씀을 통한 진정한 회개와 거듭남이 없다. 감정적인 흥분만이 잠시 있을 뿐이다. 넷째, 거듭나지 아니한 불신자를 교회에 데려오는데까지는 성공했으나 그들을 신앙인으로 바꾸는데 실패했다. 그저 찬양과경배 공연을 보려고 오는 자들만 있을 뿐이다. 다섯째, 신앙적으로 그리고 신학적으로 준비된 찬양인도자가 아니라, 음악실력 위주의 인도자가 거룩한 강단을 점령함에 따라 교회의 거룩성이 점점 상실되어갔다. 그러므로 지상의 예배는 찬양위주가 되어서는 아니된다. 말씀위주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천국에는 죄성이 전혀 없고, 사탄과 귀신들이 없으며, 거기에 있는 성도들도 더이상 타락할 이유가 없기에, 찬양이 예배의 핵심요소가 되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지상에서의 예배는 다른 것이다.
7. 요한계시록은 말씀과 기도에 대해 어떤 말씀을 하고 있는가?
요한계시록을 다시 주의깊게 읽어보면, 천상에서의 예배만 말씀하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지상의 교회가 지상의 예배에서 읽어주는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모든 교회가 듣고 회개할 것을 말씀하셨다. 다시 말해, 지상의 예배는 말씀과 더불어, 회개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모든 교회들이 듣고 지키라고 주어진 말씀이기 때문이다(계1:3). 사도요한은 이렇게 언급했다. "이 예언의 말씀들을 읽고 있는 자과 듣고 있는 자들과 그것 안에 기록된 채 있는 것을 지키고 있는 자들이 복이 있다. 왜냐하면 때가 까가왔기 때문이다"(계1:3.직역). 그렇다. 당시에는 성경필사본을 소장하기가 거의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그러므로 교회에 낱권으로 된 성경 몇 권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니 그것을 읽어주는 자가 있었고, 그것을 듣는 자들이 있었던 시대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그 가운데에 기록된 대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말씀을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사도요한이 기록한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예배의 상황에서 읽혀지도록 쓰여진 책이었던 것이다.
둘째, 예수께서는 모든 교회들에게 성령으로 하신 예언의 말씀을 다 듣고 지키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계2:7,11,17,29, 3:6,13,22). "귀를 가지고 있는 자는 그 영이 교회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단호하게] 들으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들 가운데 칭찬을 들었던 서머나교회와 빌라델비아교회를 제외하고는 전부다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이 꼭 들어있었다.
그러므로 지상에서의 예배의 핵심은 말씀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말씀을 듣고 회개하지 않으면, 아무리 멋진 음악사운드에 맞춰 찬양을 불렀어도 소용없다. 죄용서를 받을 수도 없고,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8.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배 시간에 실제 집행했던 일들은 무엇이었는가?
그렇다면, 예수님의 부활승천후에 탄생한, 지상의 교회들 안에서는 어떤 예배가 드려지고 있었을까? 예배를 드릴 때에 어떤 순서가 거기에 들어있었을까? 그 예는 고린도전서에 나온다. A.D.53~58년경 바울의 제3차전도여행 중에 기록된 고린도전서에는 예배 중에 어떤 순서가 들어 있었는지를 우리에게 말해준다. 그것은 두 구절에서, 총 7가지 정도가 나온다(고전14:6,26). 그것은 "계시(아포칼륍시스), 지식(그노시스), 예언(프로페테이아), 가르침(디다케), 방언(글로싸), 찬송시(프살모스), 방언통역(헤르메네이어)" 등이다. 여기서 "계시와 지식과 가르침"은 말씀이 없으면 불가능한 예배의 요소들이다. 그리고 "방언과 방언통역과 예언"은 성령의 은사들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찬송시"(시편찬송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됨)가 들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에 들어와서 "방언과 방언통역과 예언"은 잘못된 성령의 은사사용으로 말미암아 예배시간에 거의 제한되어 사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금의 예배에는 "말씀"과 "찬송"만 남아있는 것이다. 또한 찬송의 순서는 고전14:26에 단 한 번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 초대교회의 지상의 예배에서 찬송은 그리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오직 말씀이 예배의 가장 핵심요소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지상의 예배에서 말씀을 소홀히 하는 것은 예배의 실패를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다. 예배시간에 말씀을 놓치면 예배를 놓치는 것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9. 나오며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예배하는 자를 찾고 계신다고 말씀하셨다(요3:23). 특히 "영 안에서 진리로" 예배하라고 말씀하셨다(요3:24). 그런데 여기서 "진리"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고 있다(요17:17). 그리고 예수님 자신을 가리킨다(요14:6). 그리고 성령님의 칭호는 진리의 영이라고 했다(요15:26). 고로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만을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누구시며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에 대한 정확한 선포가 없다면 지상에서 드리는 예배는 더이상 예배로서의 기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말씀을 듣지 않았는데 어찌 깨달음이 있겠으며, 믿음이 생기지 않는데 어찌 거듭남이 일어나겠으며, 동시에 잘못을 책망하는 메시지(설교말씀)가 없는데 어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돌이키는 자가 있겠는가? 그러나 천상의 예배에서는 더이상 회개가 필요없다. 그리고 더이상 말씀을 깨닫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지 않다. 이미 다 회개하고 천국에 들어온 자들이 드리는 예배이기 때문이요,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보고 예배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지상에서 드리는 예배는 그것과는 다르다. 주님께서 성령으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그리고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지에 포커스를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아니하면 예배에 실패하게 될 것이다. 말씀을 듣는 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잘못한 것이 있으면 회개해야 한다. 이것이 지상에서 드리는 예배의 가장 중요한 핵심요소인 것이다. 건투를 빈다.
2019년 6월 7일(금)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