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무턱대고 남이 이야기한다고 해서 검증도 안해보고 따라가서는 아니 된다. 특히 많은 사람을 인도하는 직책에 있는 사람이 이야기했다고 해서 "그분이 이약기했으니 맞겠지." 하면서 무조건 따라가서도 아니 될 것이다. 분명한 성경적인 입장에 서서 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검증해보고 따라가라. 물론 성령의 은사들은 초자연적인 것이므로 인간의 이성적인 잣대로 정확히 분별해낸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신구약 66권의 성경이 있지 않은가? 기도하면 성령님이 도와주시지 않은가?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방언의 은사, 분명 성령이 주는 은사임에 틀림없다(고전12:10). 물론 신사도나 빈야드 운동하는 데에서는 거짓방언을 하면서도 그것이 진짜 성령이 주는 방언이라고 속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성령이 주는 은사가 분명 있긴 있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성령의 신령한 9가지 은사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은사 2개를 방언의 은사와 예언의 은사라고 했다(고전14:1-5). 그러므로 방언의 은사를 헛소리로 함부로 무시해서는 아니 된다.
방언의 은사가 분명히 있다. 그것은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다(고전14:2). 그러므로 이것은 일종의 기도다(고전14:14). 자신의 영이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기도인 것이다(고전14:2). 자신의 영의 기도인 것이다. 그러니 방언은 헛소리라고 말하지 말라. 방언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말하는 것에는 딱 두 가지만 있다. 하나는 기도드리는 것이고 또 하나는 찬양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영으로 하는 일에, 방언기도가 있고 방언찬양이 있다고 했다(고전14:14~15). 방언기도, 이는 무의미한 소리가 아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가짜방언 혹은 귀신방언이 아닌, 성령께서 주시는 진짜방언을 받을 수 있을까? 그것은 통회자복하여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서 부르짖어 기도할 때에 받게 되는 것 같다. 초대교회의 경우를 보라. 조용히 기도할 때에 방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마도 가짜방언을 받았을 것이다. 회개도 아니하고 대충 누구에게 안수받아서 방언하려고도 하지 말라. 그것은 진짜 방언이 아닐 수 있다. 사탄은 수동적인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쉽게 귀신을 집어 넣는다. 검증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머리 디밀지 말라. 귀신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방언의 은사를 맹신하지도 말라. 사도바울은 방언의 은사가 교회를 세우는데에 아무 소용이 없다고 했다(고전14:4~5). 즉 교회를 튼튼히 세우는 데에는 방언의 은사가 별로 유용하지 못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아무리 방언을 한다고 한들 그것이 자신의 인격을 성숙시키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라(고전14:14-15). 그리고 방언을 한다고 해서 꼭 천국가는 것도 아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은 다음에는 자신의 죄를 날마다 회개하다가 죽기전에 대속의 회개를 드려야 천국에 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공적으로 모여 예배드릴 때에는 방언을 하려고 하지 말고 예언을 하려고 하라. 고전14장에서 바울이 말하는 예언이란 사람에게 말하는 것으로서, 딱 3가지를 말한다. 하나는 책망하는 것이요(고전14:24~25,31) 또 하나는 위로하고 권면하는 것이며(고전14:3), 마지막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다(고전14:31). 정 공중예배 가운데 방언을 말하고 싶으면, 방언통역을 세워서 방언하라(고전14:13,27).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제대로 방언을 통역해줄 사람을 만나기는 그리 쉽지 않은 것 같다. 하나님이 주시는 방언이 분명이 있기는 있지만 그것을 통역해주는 사람이 드무니 참 안타깝기만 하는 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사실 방언중에는 가짜방언은 있기는 있다. 하지만 많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속이는 가짜통역이 수두룩할 뿐이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가짜통역에 속아 살아왔던가? 다미선교회 같은 사람들의 가짜방언통역 때문에 얼마나 많은 혼란을 겪었는가?
그렇다고 해서 방언하는 것을 그쳐서는 아니 될 것이다. 방언은 분명 자기를 세워주기에 유익하다고 했다(고전14:4,28). 특히 자기의 영을 강하게 해 준다(고전14:2,14).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영이 강해져야 한다. 방언기도란 영이 하나님께 드리는 간절한 청원이다. 그러므로 방언기도하는 것을 쉬지 말라. 혼자 있을 때에는 정말 많이 방언으로 기도하라. 사도바울은 다른 사람들보다 방언기도를 더 많이 하고 있다고 고백했다(고전14:18). 그러니 혼자 기도할 때에는 방언기도에도 신경을 쓰라. 물론 어떤 사람은 방언기도를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전12:30). 하지만 자신이 방언으로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쉬지 말라. 교회로 모여 예배드릴 때에는 마음(이성)으로 드리는 기도를 해야 하겠지만 혼자서 기도할 때에는 꼭 방언기도를 사용하라.
왜 방언기도를 그치지 않고 계속하는 것이 중요한지 아는가? 그것이 결국 기도의 불을 꺼버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도가 죽으면 성령이 역사할 수 없다. 성령이 역사하지 않는 교회는 결국 촛대가 옮겨지게 될 것이다. 만약 방언기도를 하지 않고 그냥 우리말로 기도해보라. 그러면 몇 시간이나 기도할 수 있겠는가? 아마 얼마 못가서 기도가 안 나올 것이다. 그러다보면 점차 더 기도시간이 줄어들 것이고, 그러다보면 기도를 쉬게 될 것이다. 기도의 불이 꺼져버리는 것이다. 사탄은 이것을 미리 알고 방언기도를 막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기도의 불을 끄려고 말이다. 기도의 불이 꺼지게 되면 이 한국교회가 어떻게 되겠는가? 사탄은 방언기도를 쉬게 하므로 기도의 불을 꺼트려 성령의 사역을 중지시키려는 간교한 속임수를 가지고 있다. 기도가 교회에서 사라지게 되면 촛대가 우리 한국교회에서 옮겨질 것이 뻔하다. 기도하라. 마음(이성)으로 기도하든지 방언으로 기도하든지 기도하는 것을 쉬어서는 아니 된다. 기도를 쉬지 않고 계속해서 하려면 마음(이성)으로 드리는 기도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러므로 방언기도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방언기도가 가짜라느니, 방언기도는 기도가 아니라느니, 방언은 헛소리라느니, 방언이 귀신소리라느니 주장하면 아니 된다. 그것은 기도를 쉬게 하는 사탄의 전략에 말려드는 것이다. 가짜방언은 분별해내면 되지 않겠는가? 구더기가 무서워 장을 담지 못한다는 말을 하지 말라. 성령께서 부어주시는 대로 기도하기를 힘쓰라.
나라와 민족과 교회, 목회자와 가정을 위해 기도해 보았는가? 이 나라와 민족과 한국교회가 위험하다. 그리고 우리말로 기도가 끝나면 이제는 자신의 영을 위해 방언을 사용하여 기도하라. 오늘날에 대여섯시간 혹은 하루종일 기도한다는 사람은 대부분 기도분량의 80%가 방언으로 하는 기도하는 것이다. 남을 위해 중보기도를 했으면 이제는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지 않겠는가!
방언기도, 주님이 오시게 되면 더 이상 그러한 기도를 하라고 해도 안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날, 주님과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보게 되면 더 이상 방언통역도 필요 없을 것이다. 그냥 무슨 말을 말해도 다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국의 언어를 지금 우리가 여기서 따로 배울려고도 하지 말라. 가보면 다 된다. 하지만 주님이 오실 그날까지 우리는 마음(이성)으로 기도하고, 영으로 기도해야 한다. 언젠가는 방언기도도 그치고 예언도 그칠 날이 올 것이다. 그때까지는 우리 쉬지 말고 기도하자. 오, 주여! 속히 오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