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어느 목사님께서 노우호목사님의 글을 퍼 나르고 있어서, 제가 그 목사님에게 방언에 대한 노우호목사님의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알려드리자, 제게 방언과 방언기도 및 방언통역에 대해 질문해 온 것을 정리한 것입니다.
3. 예수님과 바울이 방언기도를 하였다는 성서적인 증거가 있는가?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방언으로 기도할 필요나 이유가 없는 분이죠.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방언에 대해 언급하신 부부분을 조금 후에 살펴보겠습니다.
문제는 바울이 과연 방언으로 기도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바울은 방언기도를 더 많이 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고전14:18).
[개역개정] 고전14:18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글로싸이스)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이 본문을 헬라어 원문에서 직접 번역해 보겠습니다.
[원문직역] (나는) (계속해서) 하나님께 감사한다. (내가) 너희의 모두보다 더 (계속해서) 방언들(글로싸이스)로 말(하기 때문이다).
이 본문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사도바울은 방언기도를 계속해 왔던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으며, 그가 말했던 방언도 한 개가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방언을 말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가 다른 사람들보다 외국어(히브리어, 헬라어, 아람어, 로마어 등등)를 더 많이 말하기 때문에 감사한다는 내용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지금 사도바울은 고전14장에서 당신이 외국어를 더 많이 말하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서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문제를 논하면서 고전14장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해도 여기에 나오는 ‘방언’은 복수로서, 외국어방언들을 가리킨다는 터무니 없는 주장을 하신 노우호목사님을 따라가실 분이 혹 있을른지 모르겠습니다. 단어의 단수와 복수 문제는 제가 2번 문항에서 자세히 답변하고 있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고전14:18에 나오는 ‘방언들(글로싸이스)’를 외국어방언들이라고 번역해야 한다는 주장은 왜 잘못된 것인지 한 번 더 언급하고자 합니다.
첫째, 만약 노우호목사님의 주장대로 고전14:18에 나오는 방언들이 외국어방언들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해야 한다면, 방언들이라는 글자 앞에 ‘게네’라는 단어가 붙어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방언들이 외국어를 지칭한다고 하는 근거를 고전12:10,28에서 따오셨는데, 거기에서는 분명히 ‘게네 글로쏜’이라고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게네’라는 단어가 여기서는 나오지 않는데, 어떻게 고전14:18에 나오는 ‘글로싸이스(복수)’를 외국어들이라고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하는지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쓰여진 그대로 보아야지 개인의 견해를 자꾸 집어넣어 낱말의 뜻을 변경하려는 시도는 좋은 않은 테도입니다.
둘째, 고전14장에 나오는 방언은 사도바울이 고전13장에 이어서 성령의 신령한 은사들 중에 ‘방언과 예언’만을 따로 떼어내어 더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쓰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어찌 단수(글로싸)는 ‘알 수 없는 방언’으로서 헛소리로 보아야 하며, 복수(글로싸이스)는 ‘외국어방언들’이라고 번역해야 한다고 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알아 들을 수 없는 ) 방언이 은사가 아니라고 주장하기 위해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혹 이러한 억지 주장이 맞는다고 칩시다. 그러면, 고전14장의 다른 부분에서 나오는 복수 ‘글로싸이스’는 어떻게 해석하시려고 그런 억지 주장을 하는 것입니까? 자, 고전14:22~23을 보십시오.
고전14:22-23 그러므로 방언(글로싸이스, 복수)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23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글로싸이스, 복수)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이 본문을 노우호 목사님의 주장에 따라 번역해 보겠습니다.
고전14:22-23 그러므로 외국어들(글로싸이스)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23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외국어들(글로싸이스)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생각해보십시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 즉 성령의 은사의 하나인 방언으로 기도하고 있으니, 믿지 아니할 자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미쳤다고 하는 것이지, 어찌 그들이 외국어를 말하고 있는데 그것을 보고 미쳤다고 하겠습니까? 고린도교회에서 행하고 있는 방언은 사람들이 알아 들을 수 없는 여러 종류의 방언들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성령께서 은사들로서 그들에게 주신 것들이죠.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공예배시에 사용하지 말고, 정 성령의 은사를 사용하려고 한다면 예언의 은사를 사용하라고 경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예수님께서는 방언기도를 했느냐고 언급하신 것에 대해 조금 부가해서 말씀드립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에 방언으로 기도하셔도 되고 안 해도 됩니다. 그분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신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방언은 오순절 마가다락방에 성령께서 강림하신 후에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한 것이 시초인데, 그것은 그때 사람의 영에 하나님의 생명이 공급되어지므로 나타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방언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사람이 영이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것이요(고전14:2), 사람의 영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임(고전14:14)을 감안한다면, 성령이 사람에게 오시게 될 때에, 사람 위에도 임재해 계시지만, 사람의 영 속에 들어와 그 영을 살려내십니다. 성령은 생명의 성령으로서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인간의 영 속으로 들어오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흔히 ‘중생’ 혹은 ‘거듭남’이라고 부릅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면, 성령께서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그 사람 속으로 들어가 거하시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의 죽었던 영이 살아나 말을 하기 시작하는데, 곧 그것이 방언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영이 새로 태어났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이죠. 물론 방언으로 말을 하지 못한다고 성령으로 거듭 태어나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죠. 어찌되었든 사람은 요한복음 3장에 나와 있듯이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보더라도,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태어나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음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영이 거듭나서 그 출생을 알리고 자신의 영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왔음을 표시하기 위해 사람의 영은 그때부터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방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마가복음 16장에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를 것인데, 그들이 곧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낼 것이며, 새 방언을 말하게 될 것(동사, 직설법, 미래, 능동태, 3인칭, 복수)이라고 하셨습니다(막16:17). 여기에 나오는 ‘새 방언’이라는 말은 ‘카이나이스 글로싸이스’라는 말로서, ‘새로운 방언들’이라는 뜻입니다. 거듭나는 사람마다 다 다른 종류의 말(방언)을 말하게 될 것이기에, 주님께서도 ‘새로운 방언들’을 말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했던 것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새’라는 말은 ‘카이노스(kainos)’라는 단어인데, 이것은 “질적으로 새로운”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와 비슷한 단어가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네오스(neos)’라는 단어인데, 이것은 “시간적으로 새로운”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는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믿는 자들은 새 방언을 말하되, 이전에 사용하던 말과는 질적으로 다른 말(정확히는 혓소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미리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순절 성령강림 때부터 자신의 영이 거듭난 사람들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글로싸이스)을 말하게 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방언으로 말씀하실 필요는 없으셨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새 방언이 따르게 될 것임을 미리 말씀해주셨다는 것입니다.
한편, 노우호목사님께서는 예수님께서 방언에 대해 말씀하셨다는 마가복음 16장의 말씀의 뒷부분(막16:9~20)이 후대에 첨가된 말씀이라는 점을 말씀하심으로, 이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식으로 말씀하고 계신데 이는 정말 성경에 대한 모독이요 또한 신구약성경이 66권으로 정해지게 된 하님의 섭리를 무시한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도 사본학에 대해서는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장신대 신대원에서 신약성서신학의 권위자이나 헬라어교본을 쓰신 나채운 교수님에게 직접 강의를 들었고 또한 따로 공부를 했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6:9~20의 말씀이 후대에(후대라고 해서 많이 뒤쳐진 것은 아닙니다)에 첨가된 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지금 우리에게 이렇게 신구약66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남겨지게 된 것은 성령의 역사하심이요 하나님의 섭리임에는 분명합니다. 정말 오늘날과 같이 방언문제 때문에 왈가불가할 것 같아,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지만 복음서에 기록이 누락되어 있는 부분이어서,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하심으로 마가복음 16:9~20의 말씀이 누군가에 의해 첨가되었을 수 있을 것입니다
. 그리고 옥스퍼드주석에서는 마가가 종결부를 기록했으나 초기에 본문이 전승되는 과정에서 그 종결부가 유실된 것으로 보이며, 종결부에 있어야 할 내용이 없음을 발견한 초대교회가 그것을 보충한 것이 9~20절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만약 이 말씀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이 아니었다면, 즉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 아니었다면 이 본문은 사라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뒤의 모든 교회가 이 말씀도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인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였기에 오늘날에 우리가 마가복음 16:9~20이 포함된 신약성경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이 본문은 후대에 첨가된 것이니 빼어야 한다거나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하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성경에 기록된 초자연적인 역사는 하나씩 둘씩 빼내기 시작할 것이고, 요아킴 예례미야(?)인가 하는 신학자처럼, 성경의 기록은 실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후대의 사람들의 신앙고백에 불과하다고까지 하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주장하던 독일과 미국교회의 현재를 보십시오. 성경을 난도질하더니 지금 교회는 나이트클럽으로 바뀌어가고 있고, 이슬람사원으로 바뀌어가고 있을 뿐입니다. 저는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신구약 66권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그대로 믿습니다. 그래서 고전12장에 기록된 성령의 9가지 은사들 중에 방언의 은사가 있다고 하니, 방언의 은사가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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