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어떻게 되어서 불의한 청지기는 칭찬을 듣게 되었는가?(눅16:1~8)_2019-12-31(화)
1.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는 어떤 비유인가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비유로서, 이 세대 사람들이 자기의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지혜롭게 행하고 있다는 비유입니다. 어떤 청지기가 부자인 주인의 소유를 낭비하고 있다는 보고가 주인에게 들어가자 주인이 그에게 곧 해고당할 준비를 하라고 하는데, 그가 취한 행동을 본 주인이 오히려 그 청지기를 칭찬해주었다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2. 이 비유에서 청지기는 왜 칭찬을 들었을까요?
이 비유에 보면 청지기는 자신의 사무가 끝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해고당한 후를 준비하는데,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빚을 탕감해주는 일을 시작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얼핏 보기에는 청지기가 더 야단맞을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 있는데, 오히려 주인은 그를 칭찬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비유도 성경의 난제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주인이 그를 칭찬해주고 있습니까? 이는 주인이 청지기에게 미리 결산의 때를 알려주었을 때, 그때를 그 청지기는 매우 지혜롭게 대비했기 때문입니다.
3.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는 무엇에 초점이 있는건가요?
모든 비유에는 비유를 통해서 깨닫게 하고자 하는 촛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비유는 비유에 등장하는 모든 상황을 다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주님께서는 도둑같이 오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비유는 예수께서 도둑같이 곧 갑자기 예기지 않은 시간이 오신다는 것에 대한 비유인 것이지, 결코 주님이 은밀하게 즉 주님이 아무도 모르게 오신다는 비유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도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인데 이는 사탄마귀가 하는 행위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도적 취급해서는 아니 됩니다. 도적의 모습 중에서 주님은 그가 갑자기 예기치 않은 시간에 온다는 것만을 비유로 따온 것입니다.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의한 청지기가 다 잘 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 비유는 자신의 사무를 그만둘 때가 온다는 경고조치를 받은 청지기가 그때가 이르기 전에지 자신의 미래를 잘 대비하는 모습을 보고 주인이 칭찬해주었다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4. 왜 세상사람들이 제자들보다 더 지혜로울 수 있는 것인가요?
이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즉시 그 때를 대비해 나갑니다. 하지만 주의 성도들은 장차 심판의 때가 되면 어떻게 된다는 경고의 말씀을 듣고도 잘 고치지 않는다는 것이 이 비유의 핵심입니다. 심판의 때에 어떤 사람은 생명책에서 자신의 이름이 지워지는 성도가 있다(계3:5)고 나옵니다. 그래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날에 있습니다. 추도예배와 장례예배를 드리는 것이 곧 우상숭배행위라고 가르쳐주어도 그것은 교회의 장례예법에 속할 뿐이라고 계속해서 항변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있기만 하면 간음죄를 저질러도, 거짓말을 해도, 우상을 숭배해도 결국에는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라도 계속해서 죄짓고 회개하지 않는 자는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던져질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계21:8). 주님더러 "주여 주여"라고 말하는 자들 중에서도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 있서 바깥 어두운 데에 내어쫓겨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마7:22~23).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주님의 심판에 관한 말씀을 듣고도 전혀 반응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눅16;1~8에 나오는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의 핵심입니다.
5. 왜 성도들 중에는 신앙의 노정에서 탈락하여 구원받지 못하는 자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자가 있을까요?
종교개혁이후 약 500년간 지배해온 개혁신앙이 곧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하고 인간의 전적인 타락을 강조하다보니, 그만 구원도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시는 절대 주권의 영역에 속한 것이요, 또한 구원은 이미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작정하시고 예정해 놓은 뜻대로 된다고 하는 가르침이 성도들의 신앙의 근간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믿어서 구원의 노정에 들어선 자라 할지라도 결국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못하는 자는 구원에서 탈락하는 자가 있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딤전1:19~20, 히6:1~8).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확실한 것인지만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이미 받은 것이지만 아직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을 두렵고 떨림으로 이뤄가야 하겠습니다(빌2:12).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기는 받았지만 소망으로 구원을 얻은 것이기 때문입니다(롬8:24). 그러나 이러한 말씀을 듣고도 끝까지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가 믿고 싶어하는 바대로 믿을 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주님은 심판의 때에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여러 나의 종들을 시켜, 구원에서 탈락할 자가 있다는 것을 성경에도 다 기록하게 하였고, 그렇다는 것을 목숨걸고 외치는 주의 종들을 너희에게 보내주었느니라" 그러므로 때가 늦기 전에 우리는 성경에 말씀하고 있는 바를 온전히 깨닫고 회개하여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2019년 12월 31일(화)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