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26. 07. 05. (일)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tra Form
유투브 주소 https://youtu.be/OLUWaBcDFJo
날짜 2026-07-03
본문말씀 디모데전서 4:14
설교자 정보배목사

2026-07-03(금) 금요기도회

제목: 은사의 오남용(誤濫用)을 막고 은사를 활성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디모데전서 4:1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OLUWaBcDFJo

 

1. 들어가며

  은사는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영적 선물이다. 사람의 재능이나 훈련만으로 만들어 낼 수 없는 초자연적 능력이며,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육신을 가진 성도에게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은사는 신기한 체험을 자랑하기 위한 장식품이 아니며, 개인의 명예를 높이거나 사람을 끌어 모으는 수단도 아니다. 은사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고, 교회를 건축하고, 성도들을 유익하게 하며, 악한 영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주어진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 안에 있는 은사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권면했다(딤전4:14). 은사는 받아 놓고 방치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소중히 간직해야 하고, 기도와 순종과 훈련으로 불일 듯하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은사는 있어도 작동하지 않을 수 있고, 선물은 받았으나 사명에는 쓰임받지 못할 수 있다.

딤전4:14 네 안에 있는 은사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 그것은 예언을 통하여 장로회의 안수와 함께 네게 주어진 것이다

  오늘날 성도에게 은사가 필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그리스도인은 단지 자신만 천국 가는 것으로 끝나는 존재가 아니다. 성도는 다른 영혼을 살려야 하고, 악한 영에게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해야 하며, 병든 자와 상한 자를 주께로 인도해야 한다. 아가서의 술람미 여인이 처음에는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와 같은 순결한 신부였으나, 나중에는 깃발을 세운 군대같이 당당한 신부가 되었던 것처럼, 오늘의 성도도 비둘기처럼 순결한 신부에서 전투하는 신부로, 더 나아가 다른 신부를 낳고 양육하는 동역자로 자라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적 무기가 필요하다. 은사는 바로 그 영적 무기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은사가 무엇이며, 왜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시고, 어떻게 은사를 바르게 받고 활성화하며, 오남용의 위험을 막아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은사는 무엇이며 왜 영적 전쟁의 무기인가?

  은사는 헬라어로 ‘카리스마’라고 한다. 이 말은 은혜를 뜻하는 ‘카리스’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은사는 사람의 공로로 획득하는 자격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선물이다(고전 14:3-4). 그러나 값없이 주신다고 해서 목적 없이 주시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은사를 주시는 까닭은 분명하다. 은사는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나타나셔서 공동체를 유익하게 하시는 방식이다(고전12:7).

고전12: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나심을 주시는 것은 유익하게 하려는 것이다

  은사는 영적 전쟁에서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상대해야 할 원수는 혈과 육이 아니라 악한 영들이다. 악한 영들은 사람 안에 들어와 생각을 어둡게 하고, 몸을 병들게 하며, 마음을 억누르고, 죄를 반복하게 만든다. 성도가 말씀만 알고 실제 전쟁의 무기를 갖추지 못하면, 원수가 어떻게 공격하는지도 모르고 당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지막 때 성도들에게 귀신을 제어하고 병든 자를 고치는 권세와 능력을 주신다. 주께서 제자들을 부르셨을 때도 단지 말씀만 전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게 하셨다(눅9:1-2).

눅9:1-2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고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병든 자를 고치게 하려고 그들을 보내셨다

  여기서 순서가 중요하다. 귀신을 제어하고 병든 자를 고치는 일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기 위한 도구다. 치유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축사 자체가 목적도 아니다. 병이 나았는데 하나님의 나라를 모르면 반쪽짜리다. 귀신이 떠났는데 회개와 천국의 길을 모르면 다시 더 악한 영에게 공격당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은사는 천국복음의 길을 열어 주는 도구로 쓰여야 한다. 영적 전쟁의 무기라는 말은 바로 이 뜻이다.

  현대 전쟁에서 최신 무기가 전쟁의 양상을 바꾸듯이, 영적 전쟁에서도 은사는 성도가 악한 영을 대적하게 하는 무기가 된다. 그러나 무기는 손에 쥐었다고 끝이 아니다. 무기의 목적을 알아야 하고, 언제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도 배워야 한다. 무기를 자기 자랑으로 사용하면 위험하고, 사람을 해치는 데 사용하면 심판을 부른다. 은사도 마찬가지다. 은사는 주님의 양 떼를 살리고 교회를 세우기 위한 거룩한 무기다.

  특히 은사를 영적 전쟁의 무기라고 말할 때, 그 무기가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성도의 싸움은 사람과 사람의 싸움이 아니다. 미운 사람을 꺾고, 반대자를 이기고, 자신을 높이는 싸움이 아니다. 영적 전쟁은 사람 속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을 분별하고, 그 영의 역사로부터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싸움이다. 그러므로 은사를 받은 자는 사람을 더 사랑해야 한다. 귀신은 미워해야 하지만, 귀신에게 눌린 사람은 불쌍히 여겨야 한다. 이 마음이 없으면 은사는 쉽게 폭력적인 도구가 된다.

  예수께서도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고치실 때, 사람을 정죄하는 마음으로 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불쌍히 여기셨고, 묶인 자를 풀어 주셨으며,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보여 주셨다. 그러므로 오늘날 은사 사역자도 주님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능력이 먼저가 아니라 긍휼이 먼저다. 긍휼 없는 능력은 사람을 세우지 못하고, 사랑 없는 은사는 교회를 건축하지 못한다.

 

 

3. 하나님은 왜 성도에게 은사를 주시는가?

  은사의 첫째 목적은 교회를 건축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바울은 방언과 예언을 비교하면서, 방언은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은 교회의 덕을 세운다고 말한다(고전14:3-5). 여기서 “덕을 세운다”는 표현은 단지 좋은 분위기를 만든다는 뜻이 아니다. 원문적으로는 ‘건축하다’라는 뜻을 가진다. 은사는 사람과 교회를 세워 가는 능력이다.

고전14:3-5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세워 주고 권면하며 위로한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신을 세우나 예언하는 자는 교회를 세운다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지만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한다

  히브리어의 배경을 보면 이 의미가 더 선명해진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셨을 때, 그 표현은 ‘건축하다’라는 의미를 가진다(창2:22). 여자는 그냥 조립된 존재가 아니라 아담을 위하여 세워진 하나님의 건축물이었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지는 하나님의 건축물이다. 은사는 이 건축을 위해 주어진다.

창2:22[직역]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서 취하신 갈빗대로 여자를 건축하시고 그를 그 사람에게 이끌어 오셨다

  그러므로 은사를 받은 사람은 교회를 무너뜨리면 안 된다. 은사를 받았다고 하면서 성도들을 갈라놓고, 목회 질서를 파괴하고, 자기 사람을 만들며, 자기 이름을 높이는 것은 은사의 목적을 거스르는 일이다. 은사는 교회를 세우라고 주신 도구이지, 교회를 흔드는 도구가 아니다. 치유의 은사를 받았다면 병든 자를 주께로 이끌어야 하고, 축사의 은사를 받았다면 귀신에게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여 회개와 천국복음 앞으로 세워야 한다.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면 사람을 두렵게 하여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권면하고 위로하고 세워야 한다.

  은사의 둘째 목적은 성도들을 유익하게 하는 것이다(고전 12:7). 성령의 나타남은 개인 소유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은사를 주셨다면, 그것은 그 사람만 돋보이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해 다른 이들을 살리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자에게 손의 은사를 주시는 것은 그 손으로 아픈 자를 섬기게 하려는 것이고, 어떤 자에게 말씀의 은사를 주시는 것은 그 입으로 사람을 살리는 진리를 전하게 하려는 것이다.
고전12: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은사의 셋째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는 것이다(마 4:23). 예수께서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신 것은 사람들이 그 기적 자체에 머무르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 기적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했음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은사는 반드시 천국복음과 연결되어야 한다. 은사가 나타나는 곳에 회개가 없어서는 안 되고, 은사가 나타나는 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이 빠져서는 안 된다.

마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4. 성령의 아홉 은사는 어떻게 나눌 수 있는가?

  고린도전서 12장에는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가 나온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침, 능력 행함, 예언, 영들 분별, 각종 방언, 방언 통역이 그것이다(고전12:8-10). 이 은사들은 다양하지만, 크게 세 계열로 이해할 수 있다.

고전12:8-10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지혜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지식의 말씀을 주신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 안에서 믿음을, 다른 사람에게는 한 성령 안에서 병 고침의 은사들을 주신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들의 역사들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을, 다른 사람에게는 여러 종류의 방언을, 또 다른 사람에게는 방언들의 통역을 주신다

  첫째는 빛의 은사다. 빛의 은사는 보게 하고, 깨닫게 하고, 분별하게 하는 은사다. 지식의 말씀은 감추어진 사실을 알게 하는 은사이며, 지혜의 말씀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할지를 알게 하는 은사다. 영들 분별은 어떤 영이 역사하는지를 분별하는 은사다. 이것은 영적 전쟁에서 매우 중요하다. 적을 알아야 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 속에서 역사하는 영을 분별해야 한다. 사람을 미워하면 전쟁의 방향을 잃는다. 악한 영을 분별하고 그 영을 대적해야 한다.

  둘째는 불의 은사다. 불의 은사는 실제 능력이 나타나는 계열이다. 믿음의 은사, 병 고침의 은사, 능력 행함의 은사가 여기에 속한다. 여기서 믿음은 구원받는 믿음만을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가 지금 이 자리에서 일어날 것을 의심하지 않고 믿는 믿음이다. 병 고침은 몸과 마음과 정신의 고장 난 부분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회복시키는 은사다. 능력 행함은 하나님께서 초자연적 능력으로 개입하시는 여러 역사들을 포함한다. 축사는 이 영역과 깊이 연결된다. 악한 영을 결박하고, 내보내고, 무력화하는 일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다.

  셋째는 말의 은사다. 방언, 방언 통역, 예언이 여기에 속한다. 방언은 영이 하나님께 말하는 통로이며, 자신을 건축하는 은사다. 방언 통역은 그 영의 말을 알아듣게 하여 공동체에 유익을 준다. 예언은 사람을 세우고 권면하고 위로하는 말이다. 말의 은사는 매우 중요하지만, 동시에 매우 조심해야 한다. 말로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말로 사람을 무너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세 계열의 은사는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함께 작동할 때 더 강력해진다. 빛의 은사로 영을 분별하고, 불의 은사로 악한 영을 대적하며, 말의 은사로 하나님의 뜻을 선포한다. 이것이 균형 잡힌 은사 사용이다.

  여기서 '권세'와 '능력'도 구분해야 한다. 권세는 헬라어로 ‘엑수시아’라고 할 수 있으며, 명령할 수 있는 합법적 권한을 뜻한다.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에게 명령하고, 병든 것에게 떠나라고 선포하는 것은 권세의 영역이다. 반면 '능력'은 헬라어로 ‘뒤나미스’라고 할 수 있으며, 실제로 하나님의 힘이 흘러나가 역사하는 것을 뜻한다. 병 고침에는 말의 권세도 필요하고 성령의 능력도 필요하다. 축사에도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하는 권세가 필요하고, 악한 영을 태우고 끊어 내는 성령의 능력이 필요하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함께 주신 것은 이 때문이다. 말만 있고 능력이 없으면 현장에서 돌파가 약할 수 있고, 능력처럼 보이는 것이 있어도 예수의 이름의 권세 안에 있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은사 사역자는 반드시 예수의 이름 안에 있어야 하고, 성령의 능력 안에 있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있을 때 은사는 안전하고 강력하게 쓰임받는다.

 

 

5. 은사는 사역보다 먼저인가, 사역을 위해 주어지는가?

  많은 사람이 은사를 먼저 받으려고 한다. 그러나 은사는 체험해 보기 위한 물건이 아니다. 은사는 사역을 위해 주어진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특정한 은사를 주시는 이유는 그 사람에게 맡기신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은사를 받을 것인가?”보다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나는 하나님의 어떤 사역에 나를 드리고 있는가?”이다.

  디모데는 장로회의 안수를 통하여 은사를 받았다. 그러나 그 은사는 개인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말씀을 전하고, 성도들을 세우고, 교회를 돌보는 사역을 위해 주어진 것이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 은사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했고, 또 다른 편지에서는 그 은사를 다시 불일 듯하게 하라고 했다(딤후1:6).

딤후1:6 그러므로 내가 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하게 하라고 너에게 일깨운다 그것은 내 안수를 통하여 네게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원리가 나온다. 은사는 사명을 따라 온다. 어떤 사람에게 치유의 은사가 필요한 것은 그가 병든 자를 섬겨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게 축사의 은사가 필요한 것은 그가 귀신에게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게 가르침의 은사가 필요한 것은 그가 말씀을 풀어 성도들을 바르게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사역은 없는데 은사만 구하는 것은 위험하다. 무기를 왜 쓰는지도 모른 채 무기만 달라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은 은사를 사모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사모함은 호기심이 아니다. 사모함은 사명에 대한 갈망이다. “주님,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주십시오.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필요한 은사를 주십시오”라는 마음이 은사를 바르게 구하는 태도다. 자기 이름을 내고 싶어서, 사람들에게 특별하게 보이고 싶어서, 돈을 벌고 싶어서 은사를 구하면 그 동기는 이미 오염된 것이다.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보면, 마지막 때에 회개와 천국복음은 매우 중요하다. 사람들에게 회개를 전하고 천국을 보여 주려면 말만으로는 어려울 때가 많다. 사람은 초자연적 하나님의 역사를 볼 때 자기 한계를 깨닫고 주님 앞에 엎드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복음 전파를 위해 필요한 은사를 붙여 주신다. 은사는 사역을 위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배려다.

  아가서의 관점에서도 이 원리는 중요하다. 술람미 여인은 처음부터 전사였던 것이 아니다. 그는 처음에는 포도원지기였고, 작은 여우도 잡지 못해 신랑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그러나 신랑의 사랑을 받고, 시련을 통과하고, 신랑이 하는 일을 보면서 점점 자라 갔다. 마침내 그는 깃발을 세운 군대같이 당당한 자가 되었고, 신랑의 동산과 포도원 사역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다. 은사도 이와 같다. 신부가 전투하는 신부가 되려면 신랑이 주시는 무기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무기는 신랑의 마음을 모르는 자에게 주어지는 장난감이 아니다. 신랑의 관심, 곧 양 떼와 포도원과 동산을 자기 관심으로 삼는 자에게 맡겨지는 도구다.

  그러므로 성도는 “나도 은사를 받고 싶다”에서 멈추지 말아야 한다. “주님이 사랑하시는 양 떼를 나도 사랑하는가? 주님이 세우시는 교회를 나도 세우고 싶은가? 주님이 원수에게 빼앗긴 영혼을 되찾고 싶어 하시는 그 마음을 나도 품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이 질문에 정직하게 답할 때, 은사를 구하는 기도가 바른 방향을 잡게 된다.

 

 

6. 왜 회개와 정결이 은사를 담는 그릇인가?

  은사는 거룩한 선물이다. 그러므로 은사를 담는 그릇이 더러우면 은사가 제대로 활성화되기 어렵다. 사람 안에 악한 영들이 많이 자리 잡고 있으면, 은사가 와도 붙지 못하고 밀려나거나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성도 안에 합법적으로 들어온 악한 영들이 많으면 그 영들이 성령의 역사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은사를 사모하는 사람은 먼저 회개해야 한다.

  회개는 단지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하는 수준에 머물면 안 된다. 자신과 조상들의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하고, 우상숭배와 교만과 탐욕과 음란과 거짓과 혈기와 미움의 죄를 토해 내야 한다. 특히 은사 사역자는 더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은사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고, 그때부터 교만의 시험이 온다. “내가 한다”는 생각이 들어오면 위험하다. 은사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 내가 만든 능력이 아니다.

  회개는 은사를 받기 위한 준비일 뿐 아니라 은사를 지키기 위한 길이기도 하다. 은사를 받은 사람이 회개를 멈추면 속에 남아 있던 악한 영들이 다시 역사할 수 있다. 그러면 은사가 자기 자랑으로 흐르고, 사람을 지배하려는 마음이 생기며, 돈을 탐하는 마음이 올라온다. 그래서 은사를 받은 사람일수록 더 낮아져야 하고, 더 투명해져야 하며, 더 자주 점검받아야 한다.

  회개와 정결은 그릇을 비우는 일이다. 더러운 것이 비워질수록 성령의 선물이 담길 공간이 생긴다. 악한 영이 떠나갈수록 말씀을 더 밝히 듣고, 영적 분별이 더 선명해지며, 불의 은사도 더 안전하게 사용될 수 있다. 그래서 은사를 원하는 자는 은사만 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주님, 나를 깨끗하게 하소서”라고 구해야 한다. 정결한 그릇이 준비될 때 은사는 안전하게 담긴다.

  회개가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은사를 받은 후에 찾아오는 유혹 때문이다. 은사가 나타나면 사람들은 신기하게 여기고, 은사자를 특별하게 본다. 그때 안에 숨어 있던 교만의 영, 탐욕의 영, 명예욕의 영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그 순간 무너질 수 있다. 은사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데, 어느새 자기 이름을 높이게 된다. 사람을 예수께로 인도해야 하는데, 자기에게 붙들어 두게 된다. 그러므로 은사자는 은사를 받기 전보다 받은 후에 더 많이 회개해야 한다.

  또한 회개는 영적 질서를 인정하게 만든다. 악한 영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거역이다. 은사를 받았다고 하여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하면 위험하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 질서를 세우셨다. 말씀을 맡은 자가 있고, 영혼을 감독하는 자가 있으며, 앞서 싸운 영적 선배들이 있다. 은사자는 그 질서 안에서 보호받아야 한다. 질서 밖에서 은사를 사용하면 처음에는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교만과 혼합과 오류가 들어온다.

 

 

7. 은사는 어떻게 사모하고 훈련해야 활성화되는가?

  은사는 사모해야 한다. 바울은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했다(고전12:31). 사모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을 귀하게 여기고, 그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기 원한다는 뜻이다. 은사를 무시하면 은사는 약해질 수 있고, 받은 은사를 방치하면 불씨가 꺼지듯 흐려질 수 있다.

고전12: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들을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뛰어난 길을 너희에게 보이겠다

  은사는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작은 구름처럼 오고, 작은 불씨처럼 시작된다. 처음에는 희미하게 보일 수 있고, 부분적으로 느껴질 수 있으며, 확신이 약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며 훈련하면 점점 선명해진다. 엘리야가 손바닥만 한 작은 구름을 보았을 때 큰비를 기대했던 것처럼, 성도도 작은 은사의 시작을 업신여기면 안 된다.

  그러므로 훈련은 반드시 필요하다. 보는 은사는 보려고 훈련해야 하고, 듣는 은사는 들은 것을 말씀으로 점검해야 하며, 치유와 축사의 은사는 믿음과 순종 안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해 보아야 한다. 그렇다고 무모하게 아무에게나 실험하듯 해서는 안 된다. 은사 사역은 사람의 영혼과 몸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두려움과 겸손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영적으로 앞서간 지도자의 점검이 필요하다. 혼자 본 것, 혼자 들은 것, 혼자 느낀 것을 절대화하면 위험하다.

  특히 영안이나 환상과 관련된 은사는 반드시 말씀과 질서 안에서 점검해야 한다. 성령께서 보여 주시는 것도 있지만 악한 영이 속여 보여 주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은사를 훈련하는 사람은 첫째, 성경 말씀 안에 머물러야 한다. 둘째, 회개를 계속해야 한다. 셋째, 영적 질서 안에서 검증받아야 한다. 넷째, 작은 열매라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다섯째, 은사를 사용한 결과가 교회를 세우고 사람을 살리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은사의 활성화에는 믿음도 중요하다. 예수께서는 산에게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고 말하면서 마음에 의심하지 않으면 그대로 된다고 하셨다(막11:23-24). 이 믿음은 자기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권세를 신뢰하는 믿음이다. 축사와 치유도 이 믿음 안에서 이루어진다.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하고, 주님의 능력이 역사하심을 믿어야 한다.

  훈련할 때 가장 조심할 것은 '조급함'이다. 은사가 조금 나타났다고 해서 곧바로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보이는 것도 부분이고, 들리는 것도 부분이며, 느껴지는 것도 부분일 수 있다. 그러므로 은사자는 항상 “내가 본 것이 전부는 아니다”라는 겸손을 가져야 한다. 성령께서 더 보여 주실 수도 있고, 말씀으로 수정해 주실 수도 있으며, 지도자를 통해 교정해 주실 수도 있다. 은사가 자라가는 과정에는 반드시 다듬어짐이 있다.

  또 하나 필요한 것은 '기록'과 '점검'이다. 어떤 은사가 언제 어떻게 나타났는지, 그 열매가 무엇이었는지, 그 후에 사람과 교회가 실제로 세워졌는지를 살펴야 한다. 은사는 감정이 아니라 열매로 검증된다. 예언을 했는데 두려움만 남았다면 점검해야 하고, 축사를 했는데 사람이 회개와 말씀에서 멀어졌다면 다시 살펴야 한다. 병이 나았다고 해도 그 사람이 주님께 더 가까워지지 않았다면 목적이 충분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모든 은사의 최종 열매는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막11:23-2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이 산에게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고 말하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으며 자기가 말한 것이 이루어질 줄 믿으면 그대로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무엇이든지 기도하며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될 것이다

 

 

8. 은사를 오남용하면 어떤 영적 결과가 나타나는가?

  은사는 귀한 선물이지만 위험도 있다. 은사를 자기 자랑으로 쓰면 오염된다. 돈벌이의 수단으로 쓰면 타락한다. 사람을 끌어 모아 자기 세력을 만들면 교회를 무너뜨린다. 영적 질서를 무시하고 윗사람을 대적하거나, 성도들을 자기에게 종속시키려 하면 은사는 더 이상 성령의 목적대로 쓰이지 않는다. 은사는 교회를 세우라고 주신 것인데, 교회를 나누는 데 사용하면 하나님 앞에 큰 책임이 따른다.

  은사를 오용한다는 것은 잘못된 방향으로 쓰는 것이다. 예언을 받았다고 하면서 사람을 조종하거나 두려움에 묶어 두는 것이 오용이다. 치유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면서 회개와 천국복음 없이 사람의 병 고침만 자랑하는 것도 오용이다. 축사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면서 사람을 무시하거나 귀신 이야기만 하여 복음의 중심을 잃는 것도 오용이다. 남용은 은사를 지나치게 사용하거나,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말까지 보태는 것이다. 은사 사역자는 “보이는 만큼, 받은 만큼, 말씀 안에서” 말해야 한다.

  하나님은 한 번 주신 선물을 쉽게 빼앗아 가시는 분이 아니다. 그러나 은사를 오남용하면 그 은사의 사용이 막힐 수 있다. 은사는 남아 있어도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을 영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그 은사에 문을 닫으시는 것과 같다. 은사는 몸 안에 있으나 열쇠가 잠겨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을 지키는 수호천사가 은사가 보관된 문의 열쇠를 가지고 다시 하늘에 올라가서 은사창고에 가져가서 거기에 보관한다. 그러면 그에게서 그 은사가 나타나지 않는다. 있기는 있으나 끌어다가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쓸려고 해도 이미 은사의 열쇠가 하늘의 은사창고에 보관되어 있으니, 은사는 자기에게 있으나 그 은사를 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은사를 받은 자는 더욱 두려워해야 한다. 받은 것이 크면 책임도 크다.

  이 지점에서 주님의 엄중한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주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능력을 행했다고 해도, 주님께서 모른다고 하실 수 있다(마7:22-23). 이것은 은사가 구원의 보증서가 아니라는 뜻이다. 은사가 나타났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주님과 친밀하다는 뜻은 아니다. 은사는 사역을 위해 주어질 수 있지만, 주님과의 관계는 회개와 순종과 사랑으로 세워진다.

마7:22-23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내게 말할 것이다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들을 쫓아내며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그러므로 은사자는 은사보다 주님을 더 두려워해야 한다. 능력보다 말씀을 더 사랑해야 하고, 나타남보다 거룩을 더 사모해야 한다. 아무리 큰 은사가 있어도 불법을 행하면 위험하다. 불법이란 하나님의 질서와 말씀 밖에서 자기 뜻대로 행하는 것이다. 은사 사역은 반드시 말씀의 울타리 안에 있어야 하고, 회개의 길 위에 있어야 하며,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방향 안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사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던 자라도 목숨을 걸고 생명을 담보로 통회자복한다면에 회복의 길도 열어 주신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삼손의 경우이다. 삼손은 나실인의 표지를 잃고 그만 힘을 잃고 말았다(삿 16:17).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소홀히 여기는 순간, 그에게서 '힘의 은사'가 떠나갔기 때문이다.

삿16:17 삼손이 진심을 드러내어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하니라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그는 자기 생명을 걸고 다시 한 번 힘을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삿16:28).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다시 힘을 주셨다. 그때 주님의 지시를 받은 천사가 하늘의 은사창고로 가서 갖다 놓았던 열쇠를 가져다가 다시 그 문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에게 다시 힘이 들어왔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원수를 한꺼번에 갚을 수가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은사를 잃어버린 자에게도 회개의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삿16:28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말하였다 주 여호와여 나를 기억하옵소서 하나님이여 이번 한 번만 나를 강하게 하옵소서

  다만 회복은 가볍지 않다. 삼손의 회복은 생명을 건 회복이었다. 그러므로 은사를 함부로 쓰다가 막힌 사람이 다시 회복되기를 원한다면, 변명으로 돌아오면 안 된다. 진실한 회개로 돌아와야 한다. 자기 자랑을 내려놓고, 돈과 명예를 내려놓고, 사람을 지배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의 뜻과 질서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은사의 회복은 기술의 회복이 아니라 마음의 회복이다.

 

 

9. 나오며

  우리는 지금까지 은사의 정의와 목적, 종류와 수령의 길, 활성화와 오남용의 위험을 살펴보았다. 은사는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성령의 선물이지만, 결코 가볍게 다루어서는 안 되는 거룩한 무기다. 은사는 교회를 건축하고 성도를 유익하게 하며, 천국복음을 전파하고 악한 영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자유롭게 하려고 주어진다.

  성도는 은사를 체험의 도구로만 보지 말아야 한다. 은사는 사역을 위해 주어진다는 사실을 붙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의 뜻과 경륜 안에서 자신이 감당해야 할 사명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회개와 정결로 자기 안의 악한 영들을 내보내야 한다. 그래야 은사가 안전하게 담기고 바르게 활성화될 수 있다.

  은사를 받은 사람은 더 겸손해야 한다. 받은 은사가 클수록 자기 자랑을 경계해야 하고, 돈과 명예와 사람의 칭찬을 조심해야 한다. 교회를 세우라고 받은 은사로 교회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 사람을 자유롭게 하라고 받은 은사로 사람을 자기에게 묶어 두어서도 안 된다. 모든 은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

  또한 은사는 훈련되어야 한다. 작은 구름 같은 시작을 멸시하지 말아야 하고, 작은 불씨 같은 나타남을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 말씀과 회개와 기도와 영적 질서 안에서 은사를 다듬어야 한다. 영적으로 앞선 지도자에게 점검받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용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은사는 사람을 살리는 예리한 칼이 되고, 악한 영을 대적하는 거룩한 무기가 된다.

  그리고 한 번 받은 은사를 함부로 사용하거나 자기 명예와 이익 그리고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할 경우 하나님께서는 그가 은사를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도록 잠궈버리신다. 그러면 그를 지키는 천사가 은사의 문을 여는 열쇠를 가지고 하늘로 올라가서 은사창고의 방에 보관한다. 그러면 그가 은사를 가지고 있어서 사용할 수 없다. 꺼내서 쓸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생명을 담보로 통회자복하여 하나님께 다시 은사를 구한다면 하나님께서를 그것을 허용할 수도 있다. 참으로 은사는 귀중하지만 한 번 막히게 된 은사는 다시 가져다가 쓰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다. 

  마지막 시대의 성도는 순결한 신부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술람미 여인처럼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꽂는 전투하는 신부가 되어야 하고, 다른 신부를 낳고 양육하는 성숙한 신부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성도는 회개로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역에 충성하며, 필요한 은사를 사모하고 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그리하여 은사를 오남용하지 않고 교회를 세우며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설교핵심]

  이 설교는 성령의 은사가 지닌 영적 가치와 올바른 활용법을 심도 있게 고찰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은사를 영적 전쟁에서 악한 영을 물리치기 위한 최첨단 신식 무기에 비유하며, 이를 통해 개인과 교회를 견고하게 건축하는 것이 하나님이 은사를 부여하신 본질적인 목적임을 역설합니다. 특히 은사를 얻는 과정에서 사역에 대한 헌신과 철저한 회개가 선행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이미 받은 은사를 사사로운 이익이나 명예를 위해 오남용할 경우 영적인 문이 닫힐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결론적으로 성도는 영적 스승의 점검 아래 지속적인 훈련으로 은사를 연마함으로써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 나라를 위해 준비된 강력한 군사가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은사는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초자연적 영적 선물이다. 은사는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육신을 가진 성도에게 주신 것이며, 그 목적은 자기 자랑이나 돈벌이가 아니라 교회를 세우고, 성도를 유익하게 하며, 천국복음을 전파하고, 악한 영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은사를 받으려면 먼저 하나님의 사역과 경륜에 자신을 맞추어야 하고, 회개를 통해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하며, 은사를 사모하고 훈련하여 활성화해야 한다. 또한 은사를 오용하거나 남용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거두어 가시지는 않더라도, 그 은사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히게 하실 수 있다. 그러나 삼손처럼 진실한 회개와 생명을 건 돌이킴이 있으면 다시 회복의 기회가 열릴 수 있다.

 

[금요기도회(26.07.03)] 인포_ChatGPT Image 2026년 7월 4일 오전 09_55_042026-06-21.jpg.webp

 

 

 

[금요기도회(26.07.03)] Divine_Arsenal_Blueprint.pdf_1_vora.jpg.webp

[금요기도회(26.07.03)] Divine_Arsenal_Blueprint.pdf_2_vora.jpg.webp

[금요기도회(26.07.03)] Divine_Arsenal_Blueprint.pdf_3_vora.jpg.webp

[금요기도회(26.07.03)] Divine_Arsenal_Blueprint.pdf_4_vora.jpg.webp

[금요기도회(26.07.03)] Divine_Arsenal_Blueprint.pdf_5_vora.jpg.webp

[금요기도회(26.07.03)] Divine_Arsenal_Blueprint.pdf_6_vora.jpg.webp

[금요기도회(26.07.03)] Divine_Arsenal_Blueprint.pdf_7_vora.jpg.webp

[금요기도회(26.07.03)] Divine_Arsenal_Blueprint.pdf_8_vora.jpg.webp

[금요기도회(26.07.03)] Divine_Arsenal_Blueprint.pdf_9_vora.jpg.webp

[금요기도회(26.07.03)] Divine_Arsenal_Blueprint.pdf_10_vora.jpg.webp

[금요기도회(26.07.03)] Divine_Arsenal_Blueprint.pdf_11_vora.jpg.webp

[금요기도회(26.07.03)] Divine_Arsenal_Blueprint.pdf_12_vora.jpg.webp

 

 

===========================================

 

2026-07-03(금) 금요기도회(투박한 요약 글)

제목: 은사의 오남용(誤濫用)을 막고 은사를 활성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디모데전서 4:1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은사은 좋은 것이지만 오남용을 해서는 아니 된다. 은사의 오남용과 활성화를 언급하기에 앞서 오용과 남용이라는 두 단어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오용(誤用)은 잘못 사용하는 것이고, 남용(濫用)은 지나치게, 곧 넘치게 사용하는 것이다. 이 둘은 서로 다른 문제이지만 결국 은사를 하나님이 주신 목적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결과를 낳는다.

  은사는 하나님께서 값없이, 곧 무상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 선물이다. 이는 단순한 재능이 아니라 초자연적 능력이요 신적 능력이다. 영의 세계에서 활동하는 능력을 육신을 가진 우리에게 주셔서,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에서 그것을 사용하면 그 결과가 눈에 보이는 세계에 나타나게 하시는 것, 이것이 바로 은사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 은사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딤전 4:14).

딤전 4: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소홀히) 여기지 말며

  "은사"라는 우리말은 헬라어 "카리스마타"를 번역한 것인데, 이는 "은혜"를 뜻하는 "카리스"에서 나온 단어다. 곧 은사란 근본적으로 값없이 거저 주시는 은혜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은사는 결코 사람의 노력이나 자격으로 얻어 내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물임을 알 수 있다. 디모데가 받은 은사는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 예언을 통하여 주어진 것이었다. 이처럼 은사는 하나님의 뜻과 경륜 가운데 특정한 사역을 위하여 주어지는 것이며, 결코 가볍게 여기거나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은사를 받은 이후에 일어난다. 이 소중한 선물을 잘못 사용하거나 지나치게 사용하여 오히려 교회를 무너뜨리고 자기 자신을 파멸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목회 현장에서 지켜보면, 처음에는 순수한 마음으로 은사를 받았던 사람이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은사를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수단으로 삼아 버리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은사가 클수록 그것을 다루는 마음가짐도 그만큼 성숙해야 하는데, 능력은 빠르게 자라는 반면 인격과 겸손은 더디게 자라는 경우가 많아 이 둘 사이에 간극이 벌어지고, 그 간극이 결국 오남용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은사란 무엇이며 어떤 종류가 있는지, 사역과 은사 중 무엇이 먼저 와야 하는지, 은사를 어떻게 사모하고 훈련해야 하는지, 그리고 은사를 오남용하였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며 그것이 다시 회복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은사란 무엇이며 왜 우리에게 필요한가?

  과거에는 방언과 방언 통역을 조금 하고 가끔 예언을 하며, 안수할 때 간혹 치유가 일어나는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하던 때가 있었다. 성경 말씀을 깊이 이해하여 가르치는 은사가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아가서를 통해 살펴본 술람미 여인의 성장 과정을 돌아보면, 처음에는 바알하몬의 포도원을 지키는 시골 처녀로서 자기 순결은 지킬 수 있어도 여우 한 마리조차 잡지 못하고, 오라비가 부탁한 포도원조차 스스로 지켜 낼 수 없는 연약한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아가 2:15).

아가 2:15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그러나 그 신부는 결국 여우를 잡고, 사자 굴과 표범 산에서도 결코 지지 않는 당당한 존재로 성장하여야 한다 (아가 4:8).

아가 4:8 내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 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오구나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꽂고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당당한 신부, 그리고 신랑이 하던 일을 이어받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상속자를 세우는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은사와 재능의 차이다. 재능은 타고난 소질이나 후천적인 훈련으로 계발되는 자연적인 능력이지만, 은사는 자연적인 노력의 범위를 넘어서는 초자연적인 능력이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도 스스로 귀신을 쫓아내거나 병을 고칠 수는 없다. 오직 성령께서 값없이 부어 주시는 은사만이 그러한 영역을 감당할 수 있다. 그렇기에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은사가 없으면 영적 전쟁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고, 반대로 재능은 부족해도 은사를 온전히 사용하는 사람은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은사는 예수 믿는 자에게만 특별히 주시는 초자연적 성령의 선물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은사는 여러 가지이지만 그것을 주시는 성령은 동일한 한 분이시다 (고전 12:4).

고전 12: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사람이 애써 노력한다고 해서 억지로 얻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자유로운 뜻을 따라 각 사람에게 나뉘어 주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은사를 누구에게 얼마나 나누어 주실 것인지는 전적으로 성령의 뜻에 달려 있다 (고전 12:11).

고전 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느니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신령한 것, 곧 은사에 대하여 결코 알지 못한 채로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권면하였다 (고전 12:1).

고전 12:1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은사가 신앙생활의 부수적인 요소가 아니라 반드시 알고 이해하며 사용해야 할 핵심적인 요소임을 분명히 밝히는 말씀이다. 은사를 몰라도 구원받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고 여겨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성도들이 많지만, 사도 바울의 권면은 그러한 태도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음을 보여 준다. 은사에 무지한 채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마치 강력한 무기를 지급받고도 그 사용법을 배우지 않은 채 전장에 나가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이 은사가 우리에게 왜 필요한가. 오늘날의 전쟁을 생각해 보면 그 답이 분명해진다. 지금의 전쟁은 사람이 직접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 드론이 대신 싸우는 전쟁이 되었다. 병사가 몸으로 부딪히지 않고 드론을 조종하여 원거리에서 적을 제압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실제로 어느 전장에서는 부상당해 도망치지 못한 병사를 드론이 찾아내었는데, 그 병사가 죽이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자 드론이 물과 먹을 것을 가져다주며 항복을 유도하여 결국 그 병사의 생명을 살린 일도 있었다고 한다. 최첨단 무기를 가진 쪽이 훨씬 유리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영적 전쟁도 이와 마찬가지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씨름이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밝힌다 (엡 6:12).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어려움과 갈등의 배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력이 자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영적 세력과 맞서 싸우는 데 있어 사람의 지혜나 노력, 인간관계의 기술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 오직 성령께서 주시는 초자연적 무기, 곧 은사만이 이 보이지 않는 전쟁에서 실질적인 승리를 가져다줄 수 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가면서 귀신을 쫓아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최신식 영적 무기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은사다. 은사는 악한 영을 쫓아내기 위한 최첨단 신식 무기라고 정의할 수 있다. 맨손으로 탱크에 맞서기보다 강력한 무기를 장착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처럼, 영적 전쟁에서도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라는 무기를 갖추는 것이 마땅하다. 사도 바울은 이 영적 무기 가운데서도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라고 권면한다 (엡 6:17).

엡 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말씀은 은사가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붙잡아 주는 나침반과 같다. 아무리 강력한 은사라도 말씀의 기초 없이 사용되면 방향을 잃고 오히려 위험한 무기가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은사를 사모하는 사람일수록 말씀 묵상과 연구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며, 말씀과 은사가 함께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그 무기가 온전한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3. 은사는 왜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주어지는가?

  고린도전서는 예언의 은사와 방언의 은사가 왜 주어졌는지를 분명하게 밝힌다 (고전 14:3-5).

고전 14:3-5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에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여기서 "덕을 세운다"는 표현은 의역이며, 원문은 "건축한다"는 뜻이다. 곧 자기를 건축하고 교회를 건축한다는 것이다. 이 건축한다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바나"인데, 이 단어가 성경에서 처음 등장하는 곳이 창세기 2장이다 (창 2:21-22).

창 2:21-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여기서 "만드시고"라는 표현이 바로 "바나", 곧 건축하셨다는 뜻이다. 여자는 빚어 만든 존재가 아니라 남자의 갈빗대로 지어진 건축물이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 건축의 원리를 몸의 비유로도 설명한다 (롬 12:4-5).

롬 12:4-5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몸에는 눈도 있고 손도 있고 발도 있지만, 그 모든 지체는 저마다 다른 기능을 가지고서도 한 몸을 세우기 위하여 함께 협력한다. 은사도 이와 같아서, 서로 다른 은사를 가진 성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감당할 때 비로소 교회라는 한 몸이 온전히 세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유독 사람만은 암컷이 아름답다. 대부분의 동물은 수컷이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며서 암컷의 관심을 끌지만, 사람은 반대로 여자가 아름답다. 이는 여자가 남자의 아름다운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자기 집을 허술하게 짓는 사람은 없듯이, 하나님도 아름답고 튼튼하게 여자를 지으신 것이다. 이와 같이 은사도 교회를 건축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다. 은사를 받았는데 교회를 나누고 편을 가르며 다툼과 분열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은사를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을 세워 주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자유롭게 하고 건강하게 해 주는 것, 그것이 건축한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다. 고린도전서는 은사가 성령의 나타나심이라고 하면서 그 목적을 이렇게 밝힌다 (고전 12:7).

고전 12: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각 사람에게 다른 직분을 주신 목적도 이와 동일한 선상에서 밝힌다 (엡 4:11-12).

엡 4:11-12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여기서도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 역시 앞서 살펴본 건축의 개념과 동일하다. 결국 직분이든 은사든 그 목적은 한결같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건축하는 데 있는 것이다. 베드로도 은사 받은 자가 마땅히 가져야 할 자세를 이렇게 권면한다 (벧전 4:10).

벧전 4: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은사를 받은 사람은 그 은사의 주인이 아니라 그것을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에 불과하다. 청지기는 맡은 것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권한이 없으며, 오직 주인의 뜻대로 사용해야 할 책임만 있을 뿐이다. 은사는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은사를 받은 사람이 그것을 자기 자랑의 수단으로 삼거나 신령한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면, 이는 은사를 주신 근본 목적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사랑이 없이 은사만 소유한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사도 바울은 단호하게 말한다 (고전 13:1-2).

고전 13:1-2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4. 은사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가?

  고린도전서 12장은 성령의 은사를 아홉 가지로 나열한다 (고전 12:8-10).

고전 12:8-10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로마서 또한 은사의 다양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롬 12:6-8).

롬 12:6-8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예언할 것이요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이처럼 은사는 신비한 능력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섬김과 가르침과 구제와 긍휼까지도 포함하는 폭넓은 개념이다. 다만 이 시간에 살펴보는 초자연적 은사들은 영 분별을 포함하여 육신에도 표징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영 분별의 은사가 있는 사람은 어떤 영이 어떤 동물의 형상으로 나타났을 때, 그것이 어떤 성질의 귀신인지를 곧바로 알아차리는 경우가 있다. 뱀의 형상으로 나타난 영에게 곧바로 "혈기의 영"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보이는 식이다.

  이 아홉 가지 은사는 크게 세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빛의 은사다. 이는 환하게 비추어 보는 은사로서, 지식의 말씀의 은사는 환상을 보는 은사이며, 지혜의 말씀의 은사는 그 본 것을 해석하는 은사다. 영 분별의 은사는 그것이 어떤 영인지, 곧 어떤 성질의 귀신인지를 분별하는 은사다. 사도 요한도 이 영 분별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권면하였다 (요일 4:1).

요일 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영의 세계는 그 자체로 매우 신비롭고 다양하여, 성령의 역사와 악한 영의 역사를 겉모습만으로는 쉽게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영 분별의 은사는 다른 어떤 은사보다도 신중하고 정확하게 훈련되어야 하며, 이 은사가 없이 다른 은사들만 앞세우면 자칫 거짓 영에게 미혹될 위험이 크다. 둘째는 불의 은사다. 여기에는 믿음의 은사, 능력 행함의 은사, 병 고침의 은사가 속한다. 이 믿음은 구원 얻는 믿음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날 것을 믿는 믿음이다. 주님도 이러한 믿음의 원리를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막 11:23-24).

막 11:23-2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주님은 또한 자신을 믿는 자는 자신이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그보다 큰 일도 하리라고 약속하셨다 (요 14:12).

요 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나보다 큰 일도 하리니

  사도행전은 능력 행함의 은사가 실제로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행 19:11-12).

행 19:11-12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특별한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자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바울 자신이 직접 손을 얹지 않아도, 그의 몸에 닿았던 손수건과 앞치마만으로도 병이 떠나고 악귀가 나가는 역사가 일어났다. 이는 능력 행함의 은사가 사람의 방법이나 절차에 매인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성령의 주권적인 역사임을 보여 주는 사례다.

  셋째는 말의 은사다. 방언, 방언 통역, 예언이 여기에 속한다. 사도 바울은 이 말의 은사들 가운데서도 특별히 예언을 사모하라고 권면하였다 (고전 14:1).

고전 14:1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방언은 자기 자신을 세우는 은사이지만, 예언은 교회 전체를 세우는 은사이기에 바울은 이를 더욱 귀하게 여기라고 가르친 것이다. 다만 방언이 통역과 함께 나타나면 그 방언도 예언과 마찬가지로 교회를 세우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방언의 은사가 최초로 나타난 사건은 오순절 성령 강림 때였다 (행 2:4).

행 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이때 제자들이 배운 적 없는 다른 나라의 언어로 말하자, 각 지방에서 모인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고향의 말로 하나님의 큰 일을 듣고 놀라워하였다. 이는 방언이 단순히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주권적으로 언어의 장벽을 허무시는 초자연적 역사임을 보여 준다. 이렇게 성령의 은사는 아홉 가지이지만 결국 빛의 은사, 불의 은사, 말의 은사 세 계열로 나뉜다. 그런데 병 고치는 은사와 같은 불의 은사는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 실제로 능력이 없는데도 자신에게 병을 고치는 은사가 있다고 착각하여 안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경우 그 사람의 병이 도리어 안수하는 자기 자신에게 옮겨 붙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몸에서 그것을 쫓아내지 못하고 계속 받아들이기만 하다가 몇 년 안에 병들어 심장에 압박이 오거나 심장 마비나 뇌출혈로 쓰러지는 경우까지 있다. 실제로 진정한 불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손가락 끝, 특히 손가락 끝마디가 붉은 특징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은사를 가진 자들은 그 능력을 실제로 사용해 보아야 그 은사가 성장하고 확증된다.

 

5. 사역과 은사 중 무엇이 먼저인가?

  은사를 받는 순서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역이 먼저이고 은사는 그 뒤를 따른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회개와 천국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시대에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셔야 할 시대적 사명이다. 이 사명을 사람의 말로만 전해서는 사람들이 결코 넘어오지 않는다. 인간은 아무리 학식이 뛰어나고 논리가 정연해도 초자연적인 은사가 나타나지 않으면 좀처럼 굴복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회개와 천국 복음이라는 사명이 너무나 중요하였기에, 그 사명을 목숨 걸고 감당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그에 합당한 은사를 더해 주신 것이다. 이는 오랜 시간 기도원에서 기도해서 받은 것이 아니라, 사역의 중요성 때문에 하나님이 붙여 주신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회개와 천국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를 돕기 위하여 그 배우자에게도 불의 은사가 강력하게 임한 경우가 있으니, 이는 신학을 깊이 공부한 사람보다도 오히려 남편의 사역을 지키기 위해 헌신한 사람에게 능력이 임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원리는 다윗과 사울의 삶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은 그날 이후로 여호와의 영이 다윗에게 크게 감동하셨다 (삼상 16:13).

삼상 16:13 사무엘이 기름 뿔을 가져다가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반면 사울에게서는 여호와의 영이 떠나고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하였다 (삼상 16:14).

삼상 16:14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사울은 처음부터 예정된 은사가 없었기에 열 배, 백 배 더 노력해야 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고, 결국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였다. 반면 다윗은 처음부터 그러한 은사를 갖고 태어났기에 그 직무를 잘 수행하여 전쟁에 능한 자가 되었다. 결국 사역이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사역을 위하여 은사를 주시는 것이며, 이것이 디모데전서가 보여 주는 원리이기도 하다. 디모데도 안수를 통해 은사를 받았지만, 그 은사는 그가 감당해야 할 사역을 위하여 주어진 것이었다.

  청년부 시절을 돌아보아도 이 원리는 그대로 확인된다. 그때 함께 신앙생활을 하던 한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유독 기도에 열심이어서 늘 기도 시간을 놓고 서로 경쟁하듯 기도원을 찾아다니곤 하였다. 그런데 정작 그 열심만큼 은사가 뚜렷하게 나타나지는 않았다. 반면 사역의 자리, 곧 누군가를 실제로 섬기고 복음을 전하는 자리에 먼저 나선 사람에게는 그 사역을 감당할 만큼의 은사가 뒤따라 임하는 것을 여러 차례 목격하였다. 이는 기도의 양이 은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기신 사역의 무게가 그에 필요한 은사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주님도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하신다는 원리를 분명히 말씀하셨다 (눅 12:48).

눅 12:48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이 말씀은 달란트 비유와도 그 맥락이 닿아 있다. 주인은 각 종에게 그 재능대로 달란트를 맡겼고, 많이 맡은 종에게는 그만큼 많은 결실을 기대하셨다 (마 25:14-15).

마 25:14-15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에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은사도 이와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무턱대고 은사를 나누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감당할 사역의 크기와 무게를 미리 아시고 그에 합당한 은사를 맡기신다. 그러므로 은사를 받지 못했다고 낙심하거나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에게 맡겨진 사역의 자리에 신실하게 서는 것이 순서상 옳은 태도다.

  이 원리는 엘리사의 경우에서도 분명하게 확인된다. 엘리야가 승천하기 전, 엘리사는 그의 뒤를 이어 선지자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하여 갑절의 영감을 구하였다 (왕하 2:9-10).

왕하 2:9-10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이르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같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고

  엘리사가 갑절의 영감을 구한 것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엘리야의 뒤를 이어 감당해야 할 사역의 무게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엘리사는 그 사역을 이어받은 후 엘리야보다 더 많은 이적을 행하였는데, 이는 사역의 크기에 합당한 은사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음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증거다.

 

6. 은사는 어떻게 사모하고 훈련해야 하는가?

  은사를 받고 활성화시키는 데에는 몇 가지 길이 있다. 첫째는 앞서 살펴본 대로 사역에 헌신하는 것이다. 사역의 방향을 정확히 잡고 나아갈 때 그 사역에 필요한 은사가 임할 확률이 높아진다. 둘째는 회개다. 내 속에 악한 영이 많으면 하나님이 은사를 주시려 해도 그것이 붙었다가 떨어져 버린다. 악한 영을 내보내면 은사가 착착 달라붙는데, 은사는 주로 머리와 가슴과 손과 발, 이 네 군데에 자리를 잡는다. 셋째는 사모함이다. 사도 바울은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권면한다 (고전 12:31).

고전 12: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넷째는 기도다. 은사는 기도의 골방에서 훈련되고 다듬어진다. 야고보서는 의인의 간구가 역사하는 힘이 크다고 증언한다 (약 5:16).

약 5: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기도는 단순히 마음의 위로를 얻는 시간이 아니라, 영의 세계에 실제로 개입하여 역사를 일으키는 통로다. 꾸준한 기도의 훈련 없이는 은사가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없으며, 기도가 뒷받침되지 않은 은사는 쉽게 흔들리고 오용되기 마련이다. 특히 강력한 영적 세력을 상대할 때는 일반적인 기도만으로는 부족한 경우가 있다. 주님도 제자들이 쫓아내지 못한 귀신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 17:20-21).

마 17:20-21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그러나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이런 종류가 나가지 아니하느니라

  이는 은사의 활성화가 단순한 지식이나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기도와 금식으로 자기를 쳐서 하나님께 복종시키는 영적 훈련과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사모함으로 은사를 훈련하는 구체적인 방법 중 하나는 상상이다. 영안이 열리기를 훈련받을 때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 있다고 생각하고 상상해 보는 훈련을 거치게 되는데, 이 상상 자체를 성령이 붙잡아 사용하시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맞는 확률이 낮지만 계속 훈련하면 점점 정확도가 높아진다. 이런 훈련은 결코 짧은 시간에 되는 것이 아니어서, 매일 삼십 분씩 훈련해도 처음에는 아무것도 못 보고 지나가는 날이 허다하다. 그럼에도 훈련을 거듭하면 나뭇가지 끝만 희미하게 보이던 것이 점차 전체가 보이게 되고, 흑백으로 보이던 것이 점차 색깔까지 보이게 된다. 디모데후서는 이러한 훈련의 필요성을 다른 표현으로 잘 보여 준다 (딤후 1:6).

딤후 1: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은사는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로 오지 않는다. 은사는 마치 한 조각의 작은 구름처럼, 혹은 손바닥만 한 작은 불씨처럼 찾아온다. 이것을 소중히 여기고 정성껏 다듬으며 훈련하지 않으면 그 불씨는 꺼져 버리고 만다. 반대로 그 작은 불씨를 소중히 여기고 계속 훈련하며 확대해 나가면 그 은사는 점점 더 강력하게 활활 타오르게 된다. 이러한 은사는 부모가 가지고 있으면 자녀에게도 물려질 확률이 매우 높다. 부모나 조부모가 한두 세대 전부터 영적 은사를 가지고 있었다면, 자녀는 비교적 쉽게 그 은사를 이어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먼저 앞서간 영적 스승들의 점검을 받는 일이다. 자기 혼자서 은사를 확신하는 것은 악한 영에게 속을 위험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영적으로 뛰어난 지도자에게 점검을 받으며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디모데전서는 이러한 지속적인 훈련의 자세를 다음과 같이 권면한다 (딤전 4:15).

딤전 4:15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은사는 단번에 완성되지 않으며, 전심전력하는 꾸준한 훈련을 통해서만 그 성숙함이 드러난다. 하루아침에 큰 은사를 얻으려는 조급함은 오히려 훈련을 방해하고 자기 확신에 빠지게 만들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은사를 사모하는 성도는 단기간의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오랜 시간 성실하게 자신을 훈련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훈련 과정에서 함께하는 사람들의 배경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은 어려서부터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 이른바 "제사파", 곧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섬겨 온 신앙의 뿌리를 가진 사람이고, 어떤 사람은 무속이나 우상 숭배의 배경을 가진 집안에서 자라 나중에 예수를 믿게 된 이른바 "무당파"인 경우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훈련 초기에는 오히려 무당파 쪽이 영적 감각이 예민하여 빠르게 무언가를 보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성령의 은사인지 아니면 과거에 익숙했던 다른 영적 감각의 잔재인지는 신중하게 분별해야 한다. 그래서 훈련 공동체 안에서는 매년 한 번씩 영적 지도자들과 함께 자신에게 나타나는 은사의 종류와 정확도를 점검하는 일종의 은사 확인표를 작성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이 은사 확인표를 통해 어떤 은사가 자라고 있는지, 어떤 은사가 오히려 흐려지고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점검할 수 있고, 자기 확신에 빠져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미리 막을 수 있다.

 

7. 은사를 오남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은사를 오용하고 남용했을 때 하나님이 그 은사를 다시 거두어 가시는지에 대한 질문이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하나님은 한 번 주신 선물을 다시 거두어 가지 않으신다. 은사는 헬라어로 카리스마타, 곧 선물이다. 선물로 준 것을 다시 달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문제는 그 선물을 처음 주신 목적대로 사용하지 않을 때 일어난다. 교회를 든든히 세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쓰지 않고, 도리어 돈을 버는 수단이나 자기 자랑과 명예를 위한 도구로 그 은사를 사용하게 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찬찬히 지켜보시다가 어느 순간 그 은사가 들어오고 나가는 문에 자물쇠를 채워 버리신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마술사 시몬의 이야기는 이러한 오남용의 위험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시몬은 사도들이 안수할 때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고 돈으로 그 능력을 사려고 하였다 (행 8:18-19).

행 8:18-19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베드로는 이러한 시몬의 태도를 단호하게 꾸짖었다. 은사는 결코 돈으로 사고팔 수 있는 상품이 아니며, 그것을 상업적 이익이나 개인적 명예의 수단으로 여기는 순간 이미 오남용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그렇게 잠긴 은사는 수호천사가 거두어 하늘의 은사 창고에 도로 가져다 놓는다. 그 창고는 축사의 은사, 치유의 은사 등 종류별로 방이 나뉘어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축사의 은사를 보관하는 방이 가장 줄어들지 않은 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사람을 굴복시키려는 힘이 아니라 참되게 하나님과 동행하며 진리를 좇는 자에게 온전히 사용되어야 할 은사이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은 주님이 각 교회의 행위를 낱낱이 알고 계시며, 그 행위대로 심판하신다고 경고한다 (계 2:23).

계 2: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이 말씀은 은사를 가진 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겉으로 아무리 화려한 은사를 나타낸다 할지라도, 그 마음의 동기가 하나님 앞에 정직하지 못하다면 주님은 그것을 낱낱이 살피시고 반드시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신다. 주님도 마지막 심판 때에 주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권능을 행하고도 버림받는 자들이 있을 것을 분명하게 경고하셨다 (마 7:22-23).

마 7:22-23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이 말씀은 초자연적인 능력을 행하는 것 자체가 결코 구원의 보증이 되지 못함을 분명히 보여 준다. 은사를 받은 자가 겸손히 자기를 낮추고 회개하며 영적 질서 안에 복종하지 않으면, 도리어 그 은사가 걸림돌이 되어 심판의 자리에 서게 될 수도 있다.

  구약의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이야기도 거룩한 직분과 은사를 오남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그들은 제사장이라는 거룩한 직분을 맡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욕심을 채우는 데 그 직분을 이용하였다 (삼상 2:12,17).

삼상 2:12,17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서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컸으니 이는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결국 이 두 사람은 하루에 함께 죽는 심판을 받았다. 이는 거룩한 것을 맡은 자가 그것을 사사로운 욕심을 위해 사용할 때 하나님이 결코 좌시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엄중하게 보여 주는 사례이며, 은사를 맡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경고로 다가온다.

  사도 바울도 이와 비슷한 원리를 불의 비유로 설명한 바 있다 (고전 3:12-15).

고전 3:12-15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은사를 금이나 은이나 보석처럼 귀하게 사용한 사람은 그 날에 상을 받겠지만, 나무나 풀이나 짚처럼 가볍고 부실하게, 곧 자기 유익과 명예를 위하여 사용한 사람은 구원은 받되 그 공적은 불에 타 없어지고 말 것이다. 은사 자체는 구원과 직결된 것이 아니지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였는가는 반드시 그 날에 드러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는 사실을 이 말씀은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또한 심는 대로 거둔다는 원리를 이렇게 밝혔다 (갈 6:7-8).

갈 6:7-8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은사를 육신의 정욕과 자기 자랑을 위하여 심는 사람은 결국 썩어질 것을 거두게 되지만, 성령을 따라 은사를 겸손히 사용하는 사람은 영원한 열매를 거두게 된다. 이는 은사의 오남용이 단순히 한때의 실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8. 오남용으로 닫힌 은사도 다시 회복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이미 닫혀 버린 은사는 다시 회복될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사사기에 기록된 삼손의 이야기가 이 질문에 대한 분명한 답을 준다. 삼손은 태어나기 전부터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바쳐진 존재였다 (삿 13:5).

삿 13:5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이스라엘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나님은 삼손에게 어마어마한 힘의 은사를 주셨고, 그는 사자를 염소 새끼 찢듯 찢고 나귀 턱뼈 하나로 천 명을 쳐 죽이는 초인적인 능력을 나타냈다. 그러나 삼손은 들릴라의 거듭된 유혹에 넘어가 결국 자신의 힘의 비밀을 스스로 발설하고 말았다 (삿 16:17).

삿 16:17 삼손이 진심을 드러내어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그 결과 그는 머리털이 잘리고 힘을 잃었으며, 블레셋 사람들에게 붙잡혀 두 눈을 뽑히고 옥에 갇혀 맷돌을 돌리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삿 16:19-21).

삿 16:19-21 들릴라가 삼손에게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의 힘이 없어졌더라 블레셋 사람이 그를 붙잡아 그의 두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 줄로 매고 옥중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이는 오남용의 결과로 은사의 문이 완전히 닫혀 버린 참혹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머리털이 다시 자라나고, 다곤 신전에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조롱거리로 끌려 나온 삼손은 마지막 순간에 진심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삿 16:28).

삿 16:28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에게 힘을 주사 나의 두 눈으로 말미암아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그러자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힘을 부어 주셨다.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그의 가슴에서 은사가 들어오는 문을 다시 열어 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삼손은 신전의 두 기둥을 무너뜨려 블레셋의 방백들과 백성을 함께 멸망시켰다 (삿 16:29-30).

삿 16:29-30 삼손이 집을 버틴 두 기둥을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껴 의지하고 삼손이 이르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들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삼손은 그렇게 생을 마쳤지만, 진심으로 회개하고 죽기까지 하나님의 원수를 갚겠다는 마음으로 나아갔을 때 하나님은 다시 그 힘을 사용하도록 허락하셨다. 이는 은사가 오남용으로 닫혔다 할지라도, 진실한 회개와 죽음을 각오한 헌신이 있다면 하나님이 다시 그 문을 열어 주실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실례다. 다만 이는 결코 가벼운 회개로 되는 일이 아니라, 생명을 건 자복과 철저한 낮아짐이 전제되어야 하는 일임을 함께 기억해야 한다.

  삼손의 그 이후는 하늘의 시각으로 보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지금 하늘에서 삼손은 우락부락한 체격에 장군의 복장을 갖추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고 한다. 세상에서는 두 눈을 잃고 맷돌을 돌리는 조롱거리로 생을 마감한 것처럼 보였지만, 마지막 순간 진심으로 회개하고 하나님의 원수 갚음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놓았던 그 헌신을 하나님은 결코 헛되이 여기지 않으신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도 삼손을 믿음의 사람들의 명단에 당당히 포함시켰다 (히 11:32).

히 11: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이는 오남용으로 닫혔던 은사라 할지라도, 진실한 회개와 마지막까지의 헌신이 있다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결코 실패자로 기억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사람의 눈에는 비참한 종말로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눈에는 끝까지 붙잡은 믿음이 더 크게 기억되는 것이다. 선지자 요엘도 하나님께 진심으로 돌아오는 자에게는 메뚜기가 먹어 버린 세월조차 갚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욜 2:25).

욜 2:25 내가 너희에게 큰 군대 곧 내가 너희 중에 보낸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가 먹은 햇수대로 갚아 주리니

  삼손이 잃어버린 세월과 힘은 결코 짧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잃어버린 세월조차 마지막 순간의 진실한 헌신으로 갚아 주셨다. 이는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약속이다. 은사를 오남용하여 오랜 시간 그 문이 닫혀 있었다 할지라도, 진심으로 돌이키는 자에게 하나님은 잃어버린 세월을 결코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으신다.

 

9. 나오며

  이 시간에는 은사란 무엇이며 왜 우리에게 필요한지, 은사가 왜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주어지는지, 은사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지, 사역과 은사 중 무엇이 먼저인지, 은사를 어떻게 사모하고 훈련해야 하는지, 그리고 은사를 오남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며 그것이 다시 회복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은사는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초자연적 영적 선물이며,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최첨단 무기와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 은사는 자기 자랑이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를 건축하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기 위해 주어진 것임을 늘 기억해야 한다.

  은사는 사역의 필요를 따라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경우가 많으며, 회개를 통해 내 속의 악한 영을 몰아낼 때 비로소 착실하게 자리를 잡게 된다. 그리고 더 큰 은사를 사모하며 꾸준히 훈련할 때, 작은 구름과 같고 작은 불씨와 같던 은사가 점점 더 강력하게 자라난다. 그러나 이 소중한 선물을 자기 유익이나 명예를 위해 오남용하게 되면, 하나님은 그 은사가 드나드는 문을 닫아 버리시고 그것을 다시 하늘의 은사 창고에 넣어 버리신다. 그럼에도 삼손의 예에서 보듯이, 진심으로 회개하고 생명을 건 헌신으로 다시 하나님께 나아가면 그 문은 다시 열릴 수 있다.

  결국 은사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잠시 맡아 사용하는 청지기일 뿐이며, 그 청지기의 자세는 언제나 겸손과 감사와 회개로 채워져야 한다. 사역이 먼저이고 은사가 그 뒤를 따르듯이,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위한 헌신이 앞서고 그에 합당한 능력이 뒤따라오는 것이 마땅한 순서다. 이 순서를 거스르지 않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신실하게 사역의 자리를 지킬 때, 우리는 오남용의 위험 없이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온전히 활성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소중히 여기며, 늘 겸손한 마음과 순전한 동기를 품고서 그것을 오직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에만 사용해야 한다. 또한 홀로 자신의 은사를 판단하지 말고 영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의 점검을 받으며 겸손히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리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오남용함 없이 갈고닦아, 마지막 때에 악한 영과 싸우는 예리한 영적 무기로 온전히 사용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7월 03일(금)
정보배 목사

 

[금요기도회(26.07.03)] 인포_성령의_은사_활성화_가이드_vora.jpg.webp

 

 

[금요기도회(26.07.03)] The_Divine_Armory.pdf_1_vora.jpg.webp

[금요기도회(26.07.03)] The_Divine_Armory.pdf_2_vora.jpg.webp

​​​​​​​

[금요기도회(26.07.03)] The_Divine_Armory.pdf_3_vora.jpg.webp

​​​​​​​

[금요기도회(26.07.03)] The_Divine_Armory.pdf_4_vora.jpg.webp

​​​​​​​

[금요기도회(26.07.03)] The_Divine_Armory.pdf_5_vora.jpg.webp

​​​​​​​

[금요기도회(26.07.03)] The_Divine_Armory.pdf_6_vora.jpg.webp

​​​​​​​

[금요기도회(26.07.03)] The_Divine_Armory.pdf_7_vora.jpg.webp

​​​​​​​

[금요기도회(26.07.03)] The_Divine_Armory.pdf_8_vora.jpg.webp

​​​​​​​

[금요기도회(26.07.03)] The_Divine_Armory.pdf_9_vora.jpg.webp

​​​​​​​

[금요기도회(26.07.03)] The_Divine_Armory.pdf_10_vora.jpg.webp

​​​​​​​

[금요기도회(26.07.03)] The_Divine_Armory.pdf_11_vora.jpg.webp

​​​​​​​

 

 

 

 

Who's 갈렙

profile
Atachment
첨부 '25'

  1. [금요기도회] 은사의 오남용(誤濫用)을 막고 은사를 활성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디모데전서 4:14)_2026-07-03(금)

    2026-07-03(금) 금요기도회 제목: 은사의 오남용(誤濫用)을 막고 은사를 활성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디모데전서 4:1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OLUWaBcDFJo 1. 들어가며 은사는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영적 선물이다. 사람의 ...
    Date2026.07.04 By갈렙 Views55
    Read More
  2. [금요기도회]축사와 치유사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2가지 조건(마태복음 8:14~17)_2026-06-26(금)

    2026-06-26(금) [금요기도회] 제1부 순서(투박한 요약 글) 제목: 축사와 치유사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2가지 조건(마태복음 8:14~1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yjPvQFpVR6A 1. 들어가며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공생애를 사시는 동안,...
    Date2026.06.27 By갈렙 Views146
    Read More
  3. [금요기도회] 나의 부모에게서 치매가 생기지 않게 하고 또한 치매를 치료하려면?(출애굽기23:24~26)_2026-06-19(금)

    2026-06-19(금) 금요기도회 제1부 순서[투박된 글 요약] 제목: 나의 부모에게서 치매가 생기지 않게 하고 또한 치매를 치료하려면?(출애굽기23:24~2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yHZWKSUi3Ps 1. 들어가며 대한민국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
    Date2026.06.20 By갈렙 Views185
    Read More
  4. [금요기도회] 참으로 놀라운 치유의 은사와 축사의 은사를 나도 받고 사용하려면?(눅9:1~6)_2026-06-12(금)

    2026-06-12(금) 금요기도회 제1부 순서 제목: 참으로 놀라운 치유의 은사와 축사의 은사를 나도 받고 사용하려면?(눅9:1~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Z7ZSLnSUMhk 1. 들어가며 마지막 시대의 성도에게 치유와 축사는 낯선 주제가 아니다. 복...
    Date2026.06.13 By갈렙 Views207
    Read More
  5. [금요기도회] 악한 영들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한 필수적인 3가지 방법은 무엇인가?(눅11:20~26)_2026-06-05(금)

    2026-06-05(금) 금요기도회 제목: 악한 영들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한 필수적인 3가지 방법은 무엇인가?(눅11:20~2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ewhEeas7xmU 1. 들어가며 우리는 보이는 세계만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눈에 보이는 것...
    Date2026.06.06 By갈렙 Views184
    Read More
  6. 귀신이 내게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과연 어떻게 알 수 있는가?(야고보서 4:7~10)_2026-05-29(금)

    2026-05-29(금) 금요기도회 제1부 제목: 귀신이 내게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과연 어떻게 알 수 있는가?(야고보서 4:7~1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u3LmrJlk9GM 1. 들어가며 야고보서 4장 7절에서 10절은 악한 영적 실제에 대해서 이렇게 하...
    Date2026.05.30 By갈렙 Views273
    Read More
  7. [제3회 방언열기세미나 제2부] 방언열기 실습(방언, 언어방언, 마음+방언, 전투방언, 방언찬양)_2026-05-22(금)

    2026-05-22(금) 제3회 방언열기세미나 제2부 제목: 방언열기 실습(방언, 언어방언, 마음+방언, 전투방언, 방언찬양)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IxbH1TZgJ1A 1. 들어가며 방언을 말하고 싶지만 말하지 못하는 성도들이 있다. 어떤 이는 방언을...
    Date2026.05.23 By갈렙 Views226
    Read More
  8. [제3회 방언열기세미나 제1부] "방언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나도 방언으로 말할 수 있는가?"(사도행전 2:1~13)_2026-05-22(금)

    2026-05-22(금) 금요기도회(제회 방언 열기 세미나 제1부) 제목: "방언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나도 방언으로 말할 수 있는가?"(사도행전 2:1~13)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JkxdS9pahcY 1. 들어가며 방언은 교회 안에서 가장 많이 말해지...
    Date2026.05.23 By갈렙 Views211
    Read More
  9. [금요기도회] 악한 영들을 잘 진단하고 떠나보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01)(고전12:4~11)_2026-05-15(금)

    2026-05-15(금) 금요기도회 제목: 악한 영들을 잘 진단하고 떠나보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01)(고전12:4~11)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SchBDdeGCLg 1. 들어가며 사람은 누구나 자기 삶에 풀리지 않는 어떤 매듭 하나를 안고 살아간...
    Date2026.05.16 By갈렙 Views303
    Read More
  10. [균형잡힌 신앙생활] 말씀과 성령사역, 나는 과연 어떤 것을 따라가야 하는가?(행4:29~31)_2026-05-08(금)

    2026-05-08(금) 금요기도회 제목: [균형잡힌 신앙생활] 말씀과 성령사역, 나는 과연 어떤 것을 따라가야 하는가?(행4:29~31)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gnCK5em-e34 1. 들어가며 한국 교회는 오랫동안 두 개의 거대한 축을 중심으로 극심한 ...
    Date2026.05.09 By갈렙 Views234
    Read More
  11. [우상숭배죄회개하기(04)] 미신잡신의 죄란 어떤 것이며 어떻게 회개해야 하는가?(신4:19)_2026-05-01(금)

    2026-05-01(금) 금요기도회 제목: [우상숭배죄회개하기(04)] 미신잡신의 죄란 어떤 것이며 어떻게 회개해야 하는가?(신4:19)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rCXo2h9dWUk 1. 들어가며 우리가 영적 전쟁의 최전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적들의 정...
    Date2026.05.02 By갈렙 Views271
    Read More
  12. [우상숭배죄회개하기(03)] 반 만 년 이상 지속 되어온 무당 점쟁이의 죄는 왜 그리고 어떻게 회개할 것인가?(레20:6~7)_2026-04-24(금)

    2026-04-24(금) 금요기도회 제목: [우상숭배죄회개하기(03)] 반 만 년 이상 지속 되어온 무당 점쟁이의 죄는 왜 그리고 어떻게 회개할 것인가?(레20:6~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Vnl39uJRe6o 1. 들어가며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세...
    Date2026.04.25 By갈렙 Views638
    Read More
  13. [우상숭배죄회개하기(02)] 천년 이상 지속되어온 불교 부처의 죄는 왜 그리고 어떻게 회개할 것인가?(레위기 26:1)_2026-04-17(금)

    2026-04-17(금) 금요기도회 제목: [우상숭배죄회개하기(02)] 천년 이상 지속되어온 불교 부처의 죄는 왜 그리고 어떻게 회개할 것인가?(레위기 26:1)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ZvBSzm2Gxqk 1. 들어가며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며 영적인 성장을...
    Date2026.04.18 By갈렙 Views665
    Read More
  14. [우상숭배죄회개하기(01)] 내 조상들이 지은 제사의 죄는 왜 그리고 어떻게 회개해야 하는가?(고전10:20)_2026-04-10(금)

    2026-04-10(금) 금요기도회 제목 : [우상숭배죄회개하기(01)] 내 조상들이 지은 제사의 죄는 왜 그리고 어떻게 회개해야 하는가?(고전10:2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1m9WjNXKvfM 1. 들어가며 우리가 어떤 영적인 현상이나 삶에 나타나는 ...
    Date2026.04.11 By갈렙 Views776
    Read More
  15. 회개가 일상적인 삶이 된다는 것은 대체 어떤 의미일까?(마가복음 6:8~13)_2026-04-03(금)

    2026-04-03(금) 금요기도회 제목: 회개가 일상적인 삶이 된다는 것은 대체 어떤 의미일까?(마가복음 6:8~13)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3FaDHND6CMg 1. 들어가며 요한계시록을 깊이 연구하다 보면 구원에 대한 우리의 안일한 생각이 얼마나 위...
    Date2026.04.04 By갈렙 Views858
    Read More
  16. 왜 귀신들은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가려고 애쓰고 또한 나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것일까?(마12:43-45)_2026-03-27(금)

    2026-03-27(금) 금요기도회 제목: 왜 귀신들은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가려고 애쓰고 또한 나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것일까?(마12:43-4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SFvSaQ0mfn4 1. 들어가며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은 눈에 보이는 물...
    Date2026.03.28 By갈렙 Views1145
    Read More
  17. 귀신축사의 핵심요소와 그 실체를 낱낱이 밝힌다(마태복음 12:43~45)_2026-03-20(금)

    2026-03-20(금) 금요기도회 제1부 제목: 귀신축사의 핵심요소와 그 실체를 낱낱이 밝힌다(마태복음 12:43~4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U3sRyiQiwN4 1. 들어가며 영적 세계는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차갑고 철저한 법칙(Rule)에 ...
    Date2026.03.21 By갈렙 Views1061
    Read More
  18. 축사와 치유에 지대하게 영향을 미치는 6가지 요인은 무엇인가?(마17:14~20)_2026-03-13(금)

    2026-03-13(금) 금요기도회 제목: 축사와 치유에 지대하게 영향을 미치는 6가지 요인은 무엇인가?(마17:14~2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N1fPqtFcX8g 1. 들어가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하면, 당연히 영혼...
    Date2026.03.14 By갈렙 Views1130
    Read More
  19. 축사에 있어서 사역의 다양성과 은사의 활용(마가복음 16:16~18)_2026-03-06(금)

    2026-03-06(금) 금요기도회 제목: 축사에 있어서 사역의 다양성과 은사의 활용(마가복음 16:16~18)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l-i0eiGJD08 1. 들어가며 영적 세계는 우리가 눈으로 보는 물질세계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치열하게 움직이고 있...
    Date2026.03.07 By갈렙 Views1139
    Read More
  20. [회개코칭] 회개하고 있는데 왜 나는 귀신으로부터 공격을 당하는가?(마태복음 12:43~45)_2026-02-27(금)

    2026-02-27(금) 제1부 제목: [회개코칭] 회개하고 있는데 왜 나는 귀신으로부터 공격을 당하는가?(마태복음 12:43~4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FcvgklMpPDk 1. 들어가며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 성령을 모신 거룩한 성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
    Date2026.02.28 By갈렙 Views1245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5 Next
/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