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왜 가룟유다는 분명히 회개한 것 같은데, 왜 자살로 자신의 인생을 비참하게 마감해야 했을까? 그도 자신의 지은 죄에 대해 아파했으며, 자신이 주님께 큰 죄를 지었음을 고백까지 했긴 했는데, 왜 그러한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던 것일까? 성경에서는 후회하라는 말은 없지만 회개하라는 말은 많이 나온다. 그렇다면 가룟유다는 후회했을 뿐 회개를 안 했다는 것인데, 대체 회개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그리고 회개가 후회와는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을까? 과연 가룟유다는 회개를 한 것인가 회개를 못한 것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가룟유다가 왜 극단적인 자살을 선택했는지를 살펴보면서, 사람이 회개에 이르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가룟유다는 무슨 죄를 지었는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가룟유다가 스승을 판 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하고 있다. 혹시 스승을 판 죄가 아닌 다른 죄를 더 지은 것인가? 왜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았던 것에 대해 그렇게 뉘우쳐애 했을까? 심지어 그 죄값을 감당하려고 극단적인 선택까지 한 것일까? 그럼, 구약율법에서 스승을 판 죄에 대해서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 그래서 이제는 가룟유다가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부터 정의해보도록 하자.
가룟유다는 대체 무슨 죄를 저지른 것인가? 가룟유다의 죄는 한 마디로 자기 스승을 은30냥에 팔아넘긴 죄를 지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예수님으로 하여금 산헤드린공회에서 사형죄를 언도받게 하는 죄를 범한 것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율법규정상 스승을 돈받고 팔아넘긴 죄는 어떤 죄에 해당하는가? 그것은 아마도 2가지 죄와 유사하다. 첫째는 유괴죄다(신24:7). 사람을 돈을 받고 팔아남긴 죄가 유괴죄가 되기 때문이다(마26:14~16). 그렇다면 율법에서는 이러한 죄를 범한 자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 그것은 그런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되어 있다(신24:7). 그리고 둘째는 특수살인죄다(신5:17). 당시는 산헤드린공회가 어찌하든지 예수님을 죽이려고 벼르고 있던 상황이었데, 그들에게 예수님을 넘겨주었으니 그 죄는 살인죄에 해당하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볼 때에, 셋째, 가룟유다는 도덕죄를 범한 것 같다. 왜냐하면 자기의 스승을 팔아 넘어김으로 인하여 배은망덕의의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자기 부모를 공경하듯이 스승도 공경해야 하는데, 자신의 스승을 공경하지 못할망정 스승을 돈을 받고 팔아넘겨버렸으니, 도덕죄를 지은 것이 분명한 것이다.
3. 가룟유다가 회개를 통해 죄를 용서받지 못한 이유는 어디에 있었는가?
예수님은 넘겨준 가룟유다는 줄곧 예수님이 어떻게 되는지를 지켜보고 있었다(마27:3). 그것은 마27:3~5의 말씀에 나온다. 그 본문을 헬라어원문으로 보면 이렇다. "그때에 그분을 넘겨주고 있는(동사,분사,현재,능동태) 유다가 그가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것을 본 후에, 후회한(뉘우친) 후에, 은 30냥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돌려줬다. 그리고 그가 말하기를, "내가 무죄한 피를 넘겨준 후에, 죄를 범하였도다" 그런데 그들은 "우리를 향하여 무엇이냐? 네가 볼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가 은들을 성소 안으로 던진 후에, 물러갔다. 그리고 떠나간 후에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마27:3~5)". 그랬다.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넘겨준 후부터 예수께서 어떻게 되는지를 줄곧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상황은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왜냐하면 산헤드린공회에 붙들려간 예수께서는 자기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여 다윗과 같은 유대국가를 일으키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유죄판결을 받아 사형언도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가룟유다는 즉시 후회했다(메타멜로마이). 그리고는 산헤드린공회를 향하여 "내가 무죄한 피를 넘겨준 후에, 죄를 범하였도다" 하고 말했다. 하지만 산헤드린공회는 그의 후회를 받아주지 아니했다. 그리고 가룟유다가 스스로 행한 죄이니만큼 가룟유다가 혼자 당하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는 받았던 은30냥을 성소안으로 던져놓고는 물러간 뒤에 자살하고 말았다.
여기서 우리는 가룟유다가 분명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가슴아파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죄용서받지를 못한 채 비극적인 인생을 마감해야 했던 이유를 살펴볼 수 있다. 첫째, 그는 분명히 죄를 인식하고 애통해하는 것까지는 했지만 그 뒤에 그 죄를 가지고 하나님께 가서 용서를 빌지 못했던 것이다. 아니 당사자인 예수님에게 가서 자신의 죄에 대해 용서를 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때 산헤드린공회(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자신의 잘못을 그들에게 고백했을 뿐이다. 하지만 사람은 그 어떤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용서해줄 수는 없다. 그러므로 산헤드린공회는 가룟유다더러 "네가 죄를 범한 만큼 네가 당하라"고 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죄는 우리가 지었어도, 우리가 죄값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그분이 직접 사람이 되어오셔서 우리의 죄값을 대신 담당해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룟유다는 범죄를 깨닫고 마음아파한 후에 하나님 내지는 예수님에게 찾아가서 용서를 빌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둘째, 그는 예수님의 속죄를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그에게는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이 없었던 것이다. 사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가? 그분은 사람이 죄를 범하였고 그 죄값 때문에 어느누구도 지옥형벌을 면치 못한다는 것을 아셨기에, 당신이 우리 대신 죄값을 받으시어 우리가 받을 형벌을 받지 않게 하려고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가룟유다가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면 그는 아마도 예수님께 자신의 죄를 고백했을 것이다. 하지만 3년반이나 오랜 기간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녔음에도 불구하고, 가룟유다는 그분이 이 세상에 죄사함을 위해 오셨다는 것을 알고 있지 못했다. 즉 가룟유다는 예수님의 속죄에 대한 믿음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그러한 사실 자체를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러므로 자신이 죄값을 담당하라고 했언 산헤드린공회의 의견을 따라 자살을 선택한 것이다. 셋째, 그는 사람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 회개하기만 하면 용서받는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즉 그는 사람이 회개하는 이유가 죄용서를 받기 위함인 것을 잘 인지하고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막1:4).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회개는 "죄사함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막1:4, 행2:38, 3:17)라고 말이다. 그러나 가룟유다는 회개를 주신 목적을 몰랐고 회개를 하지 못했으니 결국 구원받지 못한 것이다. 그냥 인간적으로 후회만 한 것이다. 가룟유다는 자신이 지은 죄가 엄청 크다는 것을 알았고 그 죄값은 죽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므로 극단적인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다.
4. 천사도 우리와 같은 영물이지만 인간만이 가진 특권은 무엇인가?
이 세상과 하늘에 있는 존재 가운데 영원히 사는 피조물에는 천사와 사람이 있다. 그러나 우리 인간에게는 있으나 천사에게는 없는 것이 있다. 몇 가지 있다. 첫째는 죄사함이 없다. 둘째, 더불어 천사에게는 회개할 기회도 없다. 그들에게는 그러한 기회가 애시당초 주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셋째, 천사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상이 없다. 왜 그런가? 그들은 처음부터 심부름꾼으로 혹은 종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아무리 일해도 상급이 없다. 물론 영물이기 때문에 열심히 일해도 피곤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다르다. 인간은 천사와 같이 영을 가진 존재이기는 하지만 회개하기만하면 죄사함을 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열심히 일하면 하늘에서 상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이 죄사람을 받거나 하늘의 상급을 준비할 수 있는 시기가 제한되어 있다. 그 시기는 사람이 육체를 떠나기 전까지라는 것이 그 기준이다. 사람은 육체와 영혼이 함께 있을 때에만 주어진 특권이다. 이때에 사람은 회개도 할 수 있으며, 죄사함을 받을 수 있고, 상급도 준비할 수 있다. 인간은 육체가 있기에 매우 힘들게 사는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인간은 먹어야 살 수 있고, 쉬어야 살 수 있는 존재다. 또한 아담의 범죄이후 사람의 죄된 본성이 육체 안에 자리를 잡고 있기에, 언제든지 죄의 유혹으로부터 조용한 날이 없다. 그것이 자꾸 우리를 충동질한다. 그러므로 죄의 유혹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성령충만을 받아야 한다. 또 기도해야 한다. 절제해야 한다. 주님 일에 충성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육체를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육체가 있음으로 인하여 회개할 기회가 주어지고, 죄용서를 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무려 열심히 행한대로 상급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회개는 사람에게만 주어진, 죄용서에 대한 놀라운 특권이다. 천사는 인간의 능력과 지혜보다도 월등한 존재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우리가 가진 이런 특권이 없다. 오직 육체를 지닌 우리에게만 있는 특권들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체를 가지고 있을 때에 반드시 회개를 실천해야 한다. 육체를 가지고 있을 때에만 죄용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충성해야 한다. 육체를 가지고 있을 때에만 하늘의 상급을 쌓아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육체를 가지고 있을 때만 회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한다.
5. 나오며
그러나 약 3년 6월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가룟유다는 왜 위와 같은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까? 다시 말해, 가룟유다는 왜 회개를 실천하지 못하고 후회만 하고 있었던 것인가? 그는 진정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잘 몰랐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다른 사람보다도 그것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더 주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예수님 곁에 있던 12제자들 중의 하나였음에도 그러한 사실을 전혀 몰랐다.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를 전혀 모르고 지냈던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려고 아들로 오셨다는 것을 모른 채, 자기가 지은 죄를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자 그는 죽음을 선택했다. 그러나 자기가 자기를 죽인 죄(살인죄)에 대해서는 용서받을 기회가 없다는 것을 잘 몰랐다. 육체가 깨진 후에는 아무리 기도해도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잘 몰랐다. 육체가 깨진 후에는 회개할 수 없다는 것을 몰랐다. 그러니 당연히 용서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영원히 지옥의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도 회개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되는지 정말 확실히 알고 있는가? 그러면 지금 당장 회개부터 시작해야 한다. 회개가 살 길이기 때문이다. 회개가 구원의 첫관문이자 마지막 관문이 되기 때문이다. 회개하라. 그것이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할 신앙의 핵심가치이니까.
2018년 9월 14일(금)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