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한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았다. 그것은 그들이 가야할 곳은 인도하는 매개체로서 가시적이면서 초자연적인 어떤 현상이었다. 그때의 구름을 짜면 물이 되는 구름은 아니였으며, 그때의 불은 성막을 태워버리는 불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았던 것을 두고 우리는 오늘날 무엇의 인도를 받아야 하는 것일까? 대부분 성령의 인도 내지는 말씀의 인도라고 해석한다. 그렇다면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가 주의할 점은 무엇이며, 말씀의 인도를 따라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가 주의할 점은 무엇인가? 둘 다 바른 해석이기는 하지만, 매우 중대한 위험성도 같이 내포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성령의 은사(꿈이나 환상, 예언 등)를 따라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허다하며, 말씀의 인도를 따라가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자신의 주장이나 교리를 따라가도록 가르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가?
1. 들어가며
B.C.1446년경 출애굽했던 이스라엘백성이 두번째 숙영지인 광야 끝 에담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을 안내하시 시작하셨다(출13:20~22). 그래서 그때부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에 들어갈 때까지 이스라엘백성들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았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동안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았다는 것은 신약의 성도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좋은가? 대부분의 성도들은 이스라엘백성들의 성령의 인도를 받았다거나 말씀의 인도를 받았다는 것으로 해석하고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성령 자체가 아니며,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매개체로 사용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끄셨다는 것은 사실이나, 구름기둥과 불기둥 자체가 여호와 혹은 성령님이 아니었던 것을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구름기둥의 구름을 손으로 짜면 결코 물이 나오지 않으며, 불기둥의 불도 어떤 물건들을 태을 수 있는 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만약 불기둥의 불이 진짜 태우는 불이었다면 그 불로 인해 성막은 불에 타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출3장에서 가시떨기 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가시나무가 타지 않은 것처럼,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한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초자연적인 현상으로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기 위해 사용하신 도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름의 이동 경로에 따라 텐트를 걷기도 하고 텐트를 치기도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때 이러한 사실에 대해, 이스라엘백성들이 여호와의 명령(입)에 따라 이동하고 진을 쳤다고 언급한다(민9:17~18). 그래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구름기둥과 불기동의 안내를 받았다는 것을, 그들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으로 인도를 받았다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은 것은 성령의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인도함을 받은 것이지만 그것의 실제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으로 인도함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성령의 초자연적인 현상의 인도를 받아야 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인도함을 받아야 하는가? 오늘은 이 부분을 다루면서, 성령의 인도와 말씀의 인도를 따라가는 우리 성도들이 주의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까지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2. 오늘날 성도들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하는가 아니면 말씀의 인도를 받아야 하는가?
오늘날 현대를 살아고 있는 우리 성도들은 과연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를 받아야 하는가? 그런데 성도들에게는 사실상 이 둘의 인도가 다 필요하다. 사실 어느것 하나만을 고집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경에서는 우리 성도들이 성령의 인도함받기를 권면하기도 하고(롬8:14, 갈5:16), 말씀의 인도를 따르기를 권면하고 있기도 하다(고전4:6). 그런데도 이것들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아마도 말씀의 인도를 따라가는 일이 아닌가 하고 조심으로 생각해본다. 왜냐하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처음에 하나님께서 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안내를 받게 했지만, 1년이 지난후 성막이 완공되자 그때부터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성막 위로 옮겨갔다. 그러자 둘이 하나가 되더니 둘은 거의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자신이 누구며 무슨 일을 하셨는지 알려주는 성막은 대체 어떤 장소인가? 그곳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십계명)을 보관하는 전문비밀장소이자 집인 것이다. 그렇다면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언제 성막과 함께 하다가 또한 언제 헤어졌는가? 그것은 출애굽직후부터 함께했던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에 들어가려고 할 때부터 서서히 헤어지고 시작하였다. 이 두 기둥들은 더이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이지 않았으며, 그때부터는 십계명 말씀을 보관하고 있는 성막의 법궤 자체가 이스라엘의 진두지휘자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초자연적인 현상인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안내를 받았던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끝 에담에서부터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법궤로 지칭되는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를 받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하지만 가장 중요하고 궁극적인 관심은 바로 말씀의 인도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3. 오늘날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으려 할 때 주의할 점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안내를 받으려고 할 때에, 무엇을 주의해야 했을까?
먼저, 성령의 인도함을 받을 때에 주의할 점에 대해 살펴보자. 성령께서는 천지창조 때부터 이 세상에서 활동해오신 하나님 자신이시다(창1:2). 그렇지만 그분의 활동에 혁혁한 변화가 찾아왔으니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오순절 이후부터는 신자들 속에 들어오시게(내주하시게) 되었다(요14:17). 그리고 그분은 한 성도가 죽는 그날까지 떠나가지 아니할 것이다. 그런데 죽는 그날에 성령께서 떠나가실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거룩한 하나님의 영을 모신 자는 거기에 합당한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게 없거나 부족할 때에는 날마다 회개하고 말씀에 순종하기를 힘써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알려주시는 분이 성령이시고(요16:7~8), 우리가 믿어야 할 대상인 예수님이 누구시며, 그분이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시다(요15:26, 14:26).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구원자되시는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며 그분이 하신 말씀을 알기 위해서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이 필수적이다. 성령의 인도함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은 불가능하며, 성령의 인도함이 없이 예수님을 온전히 알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의미를 깨닫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필수적으로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을 때에 주의할 점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있다고 말은 하지만 성령의 인도함이 아니라 성령의 은사의 인도함을 받는 것이 문제다. 이것은 마치 출애굽하여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함을 받았지만,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여호와 하나님은 아니었다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는 데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매개체로 사용하셨는데, 그것 자체가 하나님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할 수 있는 매개체는 구름기둥과 불기둥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안내를 받아서 가나안땅까지 이동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착각할 수가 있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도를 받았으나,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하나님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는 신약의 성도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오순절 이후 성도들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있다. 그런데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를 성령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성도들 중에는 성령께서 주시는 성령의 은사들 곧 꿈이나 환상, 예언같은 것으로 인도함을 받을 수가 있다. 하지만 이것이 완전 100% 성령의 인도함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정말 성령의 인도함인지 분별하고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꿈이나 환상, 예언 등도 얼마든지 귀신이 그렇게 보여줄 수 있고 말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분명히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성령의 은사들이라고 말해지는 모든 것이 다 성령의 은사들인지 아닌지를 검증해보아야 한다. 그것들 중에는 귀신이 역사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천국과 지옥도 귀신들이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순절이후 강림하신 성령께서 행하시는 근본적인 사역은 은사사역이 아니라, 예수님이 누군지를 증거하고, 그분이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책망하게 회개케하시는 사역이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요15:26, 14:26, 16:7~8).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들의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다고 하면서 귀신이 주는 어떤 초자연적인 것들을 성령의 은사들로 착각하고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염두해 두기를 바란다. 다시 말해, 방언을 말하게 되었다고 해서 그 집회가 100% 성령집회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방언말함은 성령이 오심으로 나타난 현상이 맞기는 하지만, 귀신들이 왔을 때에도 나타나는 현상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4. 오늘날 말씀의 인도를 받으려고 할 때 주의할 점은 무엇인가?
이제는 둘째로, 말씀으로 인도함을 받는 것에 대해 살펴보자. 출애굽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에서 인도함을 받았던 매개체는 분명 구름기둥과 불기둥이었다(출40:34~38). 그들은 구름기둥이 떠오르면 행진하였고, 구름기둥이 머무는 곳에 진을 쳤다(민9:17). 그것을 두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의 명령(입)을 따라서" 행진했으며, 진을 쳤다고 말하고 있다(민9:18). 그렇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실체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신약의 성도들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있다고 말할 때에는 그것의 핵심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아니된다. 말씀이 없는 곳에 나타난 초자연적인 현상들은 얼마든지 귀신도 그렇게 역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씀은 어떠한가? 혹시 천지는 없어질지라도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24:35). 그러므로 귀신들이 초자연적인 현상을 만들어낼 수는 있겠지만, 말씀을 조작해낼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려고 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를 받는다고 말하는 자들의 주장이 항상 옳은 것일까? 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말씀의 인도를 받는다고 말은 하지만 말씀의 인도를 받지 아니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체로 2가지 형태다. 하나는 말씀을 전하는 자가 주님의 말씀이라고 전하기는 하지만 사실은 주의 말씀이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전할 수가 있다.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과 어긋난 것인데도, 자신은 교회의 지도자들이며 성경해석자들이니만큼 자신의 말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대표적인 예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두아디라교회의 이세벨선지자의 가르침과 같은 것이다. 그녀는 예수믿는 사람은 우상의 제물을 먹거나 그후에 음행의 파티에 참가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죄가 되지 아니한다고 가르쳤다. 그것은 그 지방의 특별한 문화이기 때문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이다(계2:20~23). 그러나 아닌 것은 아닌 것이지 다른 핑계나 변명을 해서는 아니 된다. 또한 성도는 그러한 가르침을 전하는 지도자의 말을 따라가서는 절대 아니 될 것이다. 또 하나는 말씀을 전하는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말은 하고 있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교리를 전하는 경우가 있다. 다시 말해, 말씀을 전하는 자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는데, 사실은 교단의 교리나 신학사상을 주입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지금 전세계 기독교회는 거의가 다 이 오류에 빠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 신론에 있어서 삼위일체론이 오직 성경말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한다든지, 구원론에 있어서 이신칭의 구원론이나 만세전개인구원예정론이 오직 성경말씀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또한 종말론에 있어서 베리칩을 두고 666이라고 주장한다든지, 사도신경에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있다는 것을 두고 예수께서 실제로 하나님의 보좌 우편 보좌에 앉아있다고 가르치는 경우다. 천국에서 하나님은 성부께서 한가운데 계시고, 성자는 오른편에, 성령은 좌편에 앉아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다(그러나 이런 것들의 대부분은 로마천주교에서 나온 교리들이다)(참조, https://dongtanms.kr/board_xjsQ06). 그러나 그것은 교리일 뿐 온전히 성경말씀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말씀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상당수가 실제로는 교리의 인도를 받으라고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일점일획이라도 빼거나 더하지 말아야 한다. 있는 그대로를 전하고 그리고 있는 그대를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를 믿어야 한다. 그것이 바른 신앙이다.
5. 나오며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분명히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았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을 인도하였던 매개체였다. 그것은 가시적인 것이었고 초자연적인 것이었다. 하나님은 눈으로 볼 수 없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와 인도하심을 확실히 나타내준 것이었다. 하지만 구름기둥과 불기둥 자체가 하나님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오늘날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야 한다고 가르치는 이들이 성도들로 하여금 성령의 초자연적인 은사들 곧 꿈이나 환상, 예언 등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잘못으로 나타날 수가 있는 것이다. 꿈이나 환상이나 예언은 성령께서 사용하시는 도구들이다. 하지만 그것은 성령만이 사용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탄마귀와 귀신들도 사용하는 도구이므로 분별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야 한다면서 성령의 은사들을 성령의 인도라고 가르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은 것은 사실은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인도를 받은 것이었다(민9:17~18).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들도 광야같은 교회생활 가운데에 말씀의 인도를 받아 약속의 땅인 천국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에서 말씀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이들 중에는 자신의 잘못 해석한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가르치는 경우가 허다하며, 성경말씀 자체가 아니라 천주교나 교단에서 만들어낸 교리들을 성경말씀이라고 가르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에 대한 해석이나 교리같은 것을 말할 때에는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거기에는 성경말씀에 없거나 성경말씀에 근거한 것이 아닌 것들도 더러 섞여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 중에는 성도들의 구원을 잘못 인식하여, 영적 전투에서 끝까지 고군분투해야 할 성도들의 무장상태를 해제시켜 버리거나 죽을 때에 구원에서 탈락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으니 철저히 성경을 바르게 연구하여 그대로 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겠다.
2018년 10월 12일(금)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