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기도하면 하늘들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에 그냥 들으시겠지 라고 흘려 넘겨버릴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계셨던 공생애기간 중에 놀라운 말씀을 하시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혹은 두 세 사람이 한 마음으로 예수의 이름 안에서 기도한다면, 예수님께는 분명히 거기에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이다(마18:18~20). 예수께서는 인류의 속죄제물이 되시기 위해 분명히 육신을 입고 시간과 공간 안으로 들어오셨다. 그런데 어떻게 되어 모든 사람들이 기도하는 그 현장에 있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인가? 사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달리 비공유적인 속성을 가지고 계신다. 전지전능, 무소부재, 자존, 영원불변이 그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계실 때에도 과연 무소부재하신 속성이 유지되었는가가 궁금하다. 그에게 전지전능하신 속성은 있으셨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지만, 그분이 무소부재(아니 계신 곳이 없다)하신 속성을 가지고 있었는지가 궁금한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분은 육체로는 육체 안에 갇혀 있었지만 영으로는 계속해서 무소부재하신 상태로 있으셨던 것이다. 이제 그것을 성경말씀을 통해 확인해도록 하자.
1. 들어가며
예수님은 누구신가? 이 세상으로 들어오심으로 육체를 입으셨던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리셨고 또한 "메시야(그리스도)"라고 불리셨다. 하지만 그분이 죽고 부활하신 후에 그분은 완전히 주와 하나님이 되셨다(요20:21). 다시 말해 부활이후 예수께서는 무소부재(혹은 편재)하시고 동시존재가 가능한 하나님이 되신 것이다. 그렇다면 육체를 입고 계실 때에 예수께서는 과연 무소부재(혹은 편재)하신 하나님이셨을까?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계실 때에도 그분은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신 것이 종종 드러난다. 그중에 하나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실 때였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계실 때에도 과연 무소부재(혹은 편재)하신 하나님이셨는지를 살펴보고, 늘 기도에 힘쓰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2. 하나님만이 가지고 있는 4가지의 비공유적인 속성은 무엇인가?
어떤 존재가 하나님이라고 불리우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성경 전체를 찾아보면 어떤 존재가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하려면, 적어도 4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어야 함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으로는 첫째 전지전능, 둘째 무소부재, 셋째 자존, 넷째 영원불변이 바로 그러한 속성들이다.
이것들 중에서도 두번째 항목인 하나님의 무소부재하시는 특성은 신과 피조물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예를 들어보자. 마리아는 신인가 아니면 신과 인간의 중보자격인 존재인가? 천주교인들은 자신들은 결코 마리아에게 기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다만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기도가 전달되도록 그녀에게 부탁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미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 있는 마리아가 어떻게 이 지상에서 드리는 기도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말인가? 불가능하다. 마리아는 피조물인 인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그녀는 결코 무소부재하지 않다. 그러므로 그녀는 인간의 기도소리를 언제나 들을 수 없으며, 동시에 들을 수도 없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절대 신이 아니다. 또한 그는 동시존재가 불가능한 사람에 불과하므로 결코 신과 인간의 중보자가 될 수도 없다. 그는 사람이지라 수많은 소리들 가운데 시간과 공간 안에서 몇 가지 기도소리만을 들을 수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그녀는 사람이기에 모든 인간의 기도소리를 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 안에 갇혀지내는 피조물인 인간이 어찌 모든 사람들이 비는 기도소리를 다 들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동시존재가 가능하시고 무소부재가 가능하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다.
3. 예수님은 육체로 계실 때에도 과연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셨는가?
그렇다면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무소부재하시는 하나님이신가? 물론 그분이 부활하신 후에는 무소부재하신 것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셨다. 언제라도 나타나실 수 있었고 언제라도 사라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계실 때에도 과연 무소부재하신 분이었다는 흔적을 남기셨을까?
예수께서는 원래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의 육체를 입고 사람의 모습을 취하신 이후 그분은 사람처럼 사셨다. 하지만 그분이 무소부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드러내지 아니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분이 행하신 사건과 말씀 속에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공생애 기간 중이지만 예수께서 하신 말씀과 사건들 속에서 당신이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신것을 드러내신 것이다. 그중에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 곧 마18:18~20에 나오는 기도에 관한 말씀이다.
어느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는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이것은 예수께서 무소부재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놀라운 말씀중의 하나다. 이 본문을 헬라어원문으로 직역해보자. "왜냐하면 둘 혹은 세(사람들)이 내 이름안으로 모여진 채 [현재] 있는 곳 거기에 나도 그들 가운데 [현재] 있기 때문이다(마18:20)."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왜 예수께서는 두 세 사람이 예수의 이름 안에서 모인 곳에 항상 있다고 말씀하신 것일까? 그것은 2가지 이유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본문이 "왜냐하면"이라는 이유의 종속접속사로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18절의 말씀과 19절의 말씀이 성취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첫째, 그것은 이 땅 위에서 누군가가 기도할 지라도 그 기도소리를 듣고 그 기도가 하늘 안에서 성취되게 하려면 누군가는 반드시 기도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예수께서 그 기도소리를 들으시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제 18절의 말씀을 헬라어원문으로 살펴보자.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만일 너희가 땅 위에서 [단번에] 매고 있는 것만큼 많이 하늘 안에서도 매여진 채 [장차] 있을 것이요, 만일 너희가 땅 위에서 [단번에] 풀고 있는만큼 많이 하늘 안에서도 풀려진 채 [장차]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도를 드리면 하늘에서도 그 기도가 들어간다는 것이 신기하지 아니한가? 그렇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하늘 안에까지 들어간다. 그런데 어떻게 들어가는가? 예수께서 우리가 기도하는 그 장소에 계셔서 그 기도를 들으시기 때문이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육체를 입고 계시긴 했지만 사실은 무소부재한 하나님이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말씀을 하실 수가 있으셨다. 그분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가 드리는 기도를 듣고 계시는 분이셨던 것이다.
둘째, 그것은 우리가 구하는 있는 문제에 관하여 두 사람이라도 땅 위에서 일치하게 된다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그것을 이루게 하시도록 하기 위해 예수께서 제자들과 항상 함께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본문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19절의 말씀을 헬라어원문으로 살펴보자.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만일 너희들로부터 두 사람이 땅 위에서 일치한다면(동의한다면), 만일 그들(두 사람)이 구하고 있는 문제에 관하여, 하늘들 안에 계신 내 아버지로부터 그것이 그들에게 [장차] 이루어질(되어질)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다. 하늘들 안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이 땅위에서 두 사람이 한 마음으로 구하는 것이 있다면 그 기도가 응답될텐데, 그러기 위해서는 두 세 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모든 곳에 예수께서 함께 있겠다는 뜻이다. 예수께서 비록 육체를 입고 계셨지만 그분은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으로서 사람들이 비는 기도를 다 들으시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무슨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두 사람 이상이 한 마음이 되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그렇다. 이제부터라도 한 마음이 되어서 기도해보자. 그러면 예수님께서도 그 현장에서 우리가 드리는 기도소리를 들으시고 하늘 안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응답이 있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4. 나오며
그렇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원래부터 하나님이셨다. 그분은 원래부터 무소부재(혹은 편재)하신 하나님이셨던 것이다. 다만 그분은 육체로 계실 때에 그분은 무소부재하신 속성을 스스로 제한하신 것 뿐이다. 하지만 순간순간마다 그분이 무소부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셨다. 그것의 대표적인 예가 오늘 말씀의 예다.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계셨지만 같은 장소에 있지 않는 다른 사람을 보고 계시며, 그들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 그분은 한편으로 사람이셨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이셨기에, 하나님으로서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들의 기도소리를 다 듣고 계셨던 것이다.
그렇다. 우리 주 예수님은 사람이셨지만 또한 하나님과 동일한 본성을 지니신 하나님이셨다. 지상에서 사실 때에 그분은 분명 우리 인간들처럼 육체를 가진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원래 하나님이셨다. 그러므로 지상에 계실 때에 해결해주지 못하는 것이 없으셨다. 또한 못 아시는 것도 없으셨다. 그리고 그분은 원래 자존하시다가 사람이 되어 오셨기 때문이다. 즉 자존하시던 그분이 동정녀마리아의 태중에 잉태되심으로 이 땅에 나타나셨다. 하지만 이미 그분은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시다. 다시 말해, 원래 자존하시던 하나님,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영원불변하시는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오신 것이다. 그리고 부활승천하신 후에는 당신의 영은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지금도 우리와 임마누엘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비록 육체를 입고 계셨지만 그때에서 무소부재하시는 하나님이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람이라면 절대 그렇게 하실 수 없으며, 그렇게 말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사람이라면 피조물로서 시간과 공간의 한계에 부딪혀 자기가 있는 장소에서 누군가 말하는 것만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다르다. 그분은 육체를 입기 전부터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으로써 계셨다. 그리고 육체를 입으심으로 잠시 하나님의 속성들을 제한하셨다. 하지만 그분이 하나님이 아닌 것은 아니었으니, 그분은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이 비는 기도소리를 듣고 계셨다. 그분이 우리의 주님이신 것이 놀랍기만 하다. 또한 그 기쁨을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2018년 6월 1일(금)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