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수르 제국
남북왕국 시대의 앗수르는 처음부터 이스라엘을 지배한 것은 아닙니다. 9세기에는 북이스라엘과 전쟁하거나 조공을 받는 세력으로 등장하고, 8세기 중반부터 직접 영토를 병합하는 제국으로 변하며, 결국 B.C. 722년경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킵니다. 앗수르 왕명표에 따른 신앗수르 왕들의 연대는 상당히 정확하게 복원되어 있습니다.
1. 남북왕국 시대와 관련된 앗수르 왕 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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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수르 왕 |
통치 연대(B.C.) |
이스라엘·유다와 관련된 핵심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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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슈르단 2세 |
934–912 |
신앗수르 제국 재건의 출발점. 이스라엘과 직접 관계는 거의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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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드니라리 2세 |
911–891 |
메소포타미아 북부 정복, 앗수르 팽창 기반 확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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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쿨티니누르타 2세 |
890–884 |
서방 진출의 기반 확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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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슈르나시르팔 2세 |
883–859 |
앗수르가 시리아 방면으로 본격 진출. 수도를 갈라(니므롯)로 옮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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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에셀 3세 |
858–824 |
아합과 전쟁(853), 예후에게 조공 받음(8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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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시아다드 5세 |
823–811 |
국내 반란 수습. 이스라엘과 직접 관계 적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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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드니라리 3세 |
810–783 |
다메섹을 약화시킴. 북이스라엘 요아스에게 조공 받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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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에셀 4세 |
782–773 |
앗수르 세력 일시 약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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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슈르단 3세 |
772–755 |
전염병·반란 등으로 앗수르 약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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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슈르니라리 5세 |
754–745 |
제국의 약세 지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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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글랏빌레셀 3세 |
745–727 |
므나헴의 조공, 베가 시대 북이스라엘 대규모 침공·영토 병합, 아하스와 동맹, 호세아를 왕으로 세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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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에셀 5세 |
727–722 |
호세아의 반란 진압, 사마리아 포위 시작. 북이스라엘 멸망 과정의 핵심 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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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곤 2세 |
721–705 |
사마리아 함락·점령을 자신의 업적으로 기록, 주민 27,290명 추방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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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헤립 |
705–681 |
B.C.701 유다 침공. 라기스 함락,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공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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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살핫돈 |
680–669 |
므낫세 시대. 서방지역 지배 강화, 이집트 침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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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슈르바니팔 |
668–627경 |
므낫세·요시야 시대와 겹침. 앗수르 최전성기 후 쇠퇴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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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슈르에틸일라니 |
627–623경 |
앗수르 급속 쇠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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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샤리쉬쿤 |
623–612경 |
B.C.612 니느웨 함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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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슈르우발리트 2세 |
612–609경 |
하란을 중심으로 저항하다 패배. 앗수르 제국 최종 소멸 |
초기 왕들의 연대는 앗수르 왕명표에서 아슈르단 2세 934–912, 아다드니라리 2세 911–891, 투쿨티니누르타 2세 890–884, 아슈르나시르팔 2세 883–859, 살만에셀 3세 858–824 등으로 이어집니다.
2. 성경 역사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앗수르 왕들
실제로 설교나 성경연구를 위해서는 모든 왕보다 다음 왕들을 집중해서 기억하는 것이 좋습니다.
① 살만에셀 3세 — B.C. 858–824
이 왕부터 북이스라엘과 앗수르의 관계가 역사 기록에서 매우 선명해집니다.
B.C. 853년 카르카르 전투에서 살만에셀 3세는 시리아·팔레스타인 연합군과 싸웠습니다. 앗수르 기록에는 북이스라엘의 아합(Ahab)도 연합군의 일원으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약 12년 후 상황이 완전히 바뀝니다.
B.C. 841년 예후가 살만에셀 3세에게 조공을 바칩니다.
유명한 검은 오벨리스크(Black Obelisk)에 이 장면이 새겨져 있습니다. 앗수르 기록은 예후를 Iaua라고 부르며, "오므리의 집" 즉 이스라엘의 왕으로 표현하고 은·금 등을 조공으로 받았다고 기록합니다.
따라서:
아합 → 앗수르와 전쟁
↓
예후 → 앗수르에 조공
이라는 정치적 변화가 나타납니다.
3. 아다드니라리 3세 — B.C. 810–783
이 왕은 성경을 이해할 때 상당히 중요하지만 흔히 간과됩니다.
그 이유는 이 시기에 앗수르가 이스라엘의 가장 큰 적이었던 아람-다메섹을 공격했기 때문입니다.
아람의 압박이 약해지면서 북이스라엘은 다시 힘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앗수르의 텔 알리마 석비(Tell al-Rimah Stele)에는 놀랍게도 북이스라엘 왕이 직접 등장합니다.
“사마리아 땅의 요아스(Iūʾāsu)의 조공을 받았다.”
즉 북이스라엘 왕 요아스입니다.
이 국제정세는 이후 여로보암 2세 시대 북이스라엘의 영토 회복과 번영을 이해하는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4. 디글랏빌레셀 3세 — B.C. 745–727
이 왕은 북이스라엘 멸망사를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앗수르 왕 가운데 하나입니다.
성경에서는
디글랏빌레셀 / 불(Pul)
등으로 등장합니다.
그는 앗수르를 단순히 조공을 받는 제국에서 정복한 영토를 직접 행정구역으로 편입시키고 주민을 대규모로 이주시키는 제국으로 발전시켰습니다.
북이스라엘 므나헴
열왕기하 15:19–20에서 므나헴이 앗수르 왕 불에게 은 1,000달란트를 줍니다.
즉 북이스라엘은 사실상 앗수르의 속국이 됩니다.
베가 시대
아람 왕 르신과 북이스라엘 왕 베가가 반앗수르 연합을 형성하고 유다 왕 아하스를 압박합니다.
이것이 바로
아람-에브라임 전쟁
입니다.
아하스는 앗수르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이에 디글랏빌레셀 3세가 B.C. 733–732년경 공격하여 북이스라엘의 북부 지역을 대거 점령합니다.
앗수르 자료에서도 북이스라엘의 영토를 정복하고 주민을 앗수르로 옮겼으며, 베가 이후 호세아를 왕으로 세웠다고 기록합니다.
따라서 북이스라엘의 멸망은 B.C.722년에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이미 B.C.733–732년경 상당한 영토와 주민을 잃었습니다.
5. 살만에셀 5세 — B.C. 727–722
디글랏빌레셀 3세의 뒤를 이은 왕입니다.
북이스라엘 마지막 왕 호세아가 처음에는 앗수르에 조공을 바쳤지만 나중에 반란을 일으킵니다.
열왕기하 17장에 따르면 호세아는 이집트와 손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살만에셀은 호세아를 체포하고,
사마리아를 3년 동안 포위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러면 사마리아를 최종적으로 함락한 왕은 누구인가?”
입니다.
6. 사르곤 2세 — B.C. 721–705
성경의 열왕기 기록만 읽으면 살만에셀 5세가 사마리아를 함락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앗수르 왕위가 이 과정에서 교체됩니다.
후계자 사르곤 2세는 자신의 비문에서 사마리아 정복을 자신의 업적으로 주장합니다.
사르곤의 기록에는 사마리아 정복과 관련하여 유명한 숫자가 등장합니다.
27,290명
사르곤의 왕실 비문 전승에는 사마리아에서 27,290명을 추방했다는 판본이 있습니다. 다만 다른 사본에는 27,280명 등 숫자 차이도 있어, 정확한 숫자는 비문 전승 차이를 고려해야 합니다.
사르곤 2세의 통치는 B.C.721–705년으로 확인됩니다.
따라서 역사적으로는 보통 이렇게 정리하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살만에셀 5세 → 사마리아 포위 및 멸망 과정 시작
사르곤 2세 → 정복을 자신의 즉위년 업적으로 기록하고 사마리아를 앗수르 행정체제에 편입
이 구분은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연구할 때 매우 중요합니다.
7. 산헤립 — B.C. 705–681
북이스라엘은 이미 멸망했습니다.
이제 앗수르의 공격 대상은 남유다입니다.
유다 왕은 히스기야였습니다.
B.C.701년 산헤립이 대규모 서방 원정을 실시합니다.
성경:
열왕기하 18–19장
역대하 32장
이사야 36–37장
과 직접 연결됩니다.
산헤립은 라기스를 공격하고 예루살렘을 위협합니다.
흥미롭게도 이 사건은 앗수르 기록에도 매우 자세히 나옵니다.
유명한 산헤립 프리즘(Taylor Prism)에는 B.C.701년에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서 조공을 받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성경 기록 + 앗수르 왕실 기록 + 고고학 자료
가 서로 만나는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8. 에살핫돈 — B.C. 680–669
산헤립이 죽은 후 아들 에살핫돈이 왕이 됩니다.
성경에도 직접 이름이 나옵니다.
“그 아들 에살핫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 왕하 19:37
이 시대에는 이미 북이스라엘 왕국이 존재하지 않았고, 유다는 므낫세 시대였습니다.
앗수르는 계속해서 팔레스타인을 지배했고, 에살핫돈은 마침내 이집트까지 침공합니다.
9. 아슈르바니팔 — B.C. 668–627경
신앗수르 제국의 마지막 위대한 왕입니다.
앗수르의 영토가 최대 규모에 이르렀으며 이집트의 테베까지 공격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통치 후반과 사후에 제국은 급격히 쇠퇴합니다.
이 시기는 남유다에서는 대체로
므낫세 → 아몬 → 요시야
시대와 겹칩니다.
10. 앗수르의 최종 멸망 — B.C. 612–609
아슈르바니팔 이후 앗수르는 내전과 외적의 공격으로 급격히 약해집니다.
결국
B.C.612년
바벨론과 메대 연합군이 니느웨를 함락합니다.
앗수르 잔존 세력은 하란으로 이동하여 저항했습니다.
그리고 B.C.609년경 마지막 왕 아슈르우발리트 2세의 세력이 사실상 소멸하면서 앗수르 제국의 역사가 끝납니다.
성경과 연결해서 압축하면
이 흐름을 기억하시면 상당히 편합니다.
살만에셀 3세 (858–824)
→ 아합과 카르카르 전투
→ 예후의 조공
아다드니라리 3세 (810–783)
→ 다메섹 약화
→ 요아스의 조공
→ 북이스라엘 회복의 국제정세 형성
디글랏빌레셀 3세 (745–727)
→ 므나헴 조공
→ 베가 공격
→ 갈릴리·납달리 등 북부 영토 병합 및 주민 추방
→ 호세아 즉위
살만에셀 5세 (727–722)
→ 호세아 반란
→ 사마리아 포위
사르곤 2세 (721–705)
→ 사마리아 정복을 자신의 업적으로 기록
→ 주민 추방·재편
→ 북이스라엘의 앗수르 속주화
산헤립 (705–681)
→ B.C.701 히스기야의 유다 침공
→ 라기스 함락
→ 예루살렘 위기
에살핫돈·아슈르바니팔
→ 므낫세 시대 앗수르 패권 지속
B.C.612 니느웨 함락 → B.C.609경 앗수르 최종 소멸
이렇게 보면 북이스라엘의 멸망은 722년의 단일 사건이라기보다, 약 120년에 걸친 앗수르와의 관계가 단계적으로 악화된 결과라는 점이 선명해집니다. 특히 지금 연구하시는 “북이스라엘 멸망 이후에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얼마나 남아 있었는가”라는 문제에서는 디글랏빌레셀 3세의 B.C.733–732년 추방과 사르곤 2세 시대의 추방을 서로 구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원하시면 다음 단계로 「앗수르 왕–북이스라엘 왕–남유다 왕–성경본문–앗수르 비문」을 한눈에 비교하는 B.C. 900~600년 통합 연대표로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설교 준비에는 이 형식이 특히 유용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