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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10. 04. (일)2026년 교회표어 「시대적인 사명완성을 위해 성전을 짓는 해」 (역대상 28장 20절)

금요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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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기도회 제1부 순서

[금요기도회] 참으로 놀라운 치유의 은사와 축사의 은사를 나도 받고 사용하려면?(눅9:1~6)

누가복음 9:1~6정보배목사2026-06-12(금)조회 1,347읽는 시간 약 41분

설교핵심

본 설교는 성도들이 치유와 축사의 은사를 이해하고 이를 실제 삶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병을 고치는 치유와 귀신을 쫓아내는 축사가 각각 성령의 권세와 능력에 기초한 초자연적인 사역임을 밝히며, 이 모든 은사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단순히 질병 해결이 아닌 천국 복음 전파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특히 영적 존재인 귀신을 실체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회개를 통한 정결함과 예수 이름의 권세가 필수적이며, 사역자의 믿음과 대상자의 순종이 결합될 때 비로소 근원적인 회복이 일어난다고 설명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들이 영적 원리를 깨달아 악한 영의 결박에서 벗어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통로로서의 삶을 살아가도록 독려하는 영적 지침서의 성격을 띱니다.

강의 자료

그림 2 · 슬라이드 25
Biblical Healing and Deliverance Blueprint설교 슬라이드 · 25장

1. 들어가며

성령의 은사 가운데 치유의 은사와 축사의 은사만큼 성도들의 관심을 끄는 것도 드물다. 아픔과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초자연적인 치유를 갈망하고, 삶을 옭아매는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두 가지 은사에 대한 이해는 지극히 단편적이거나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이는 치유 집회를 쫓아다니며 육체의 병 낫는 일에만 집착하고, 어떤 이는 축사 사역을 마치 요란한 퍼포먼스로 오해한다. 심지어 어떤 이는 치유 사역자 한 명을 만나면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고 그 사람 자체를 우상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치유 사역자를 만나 병이 낫는다 해도, 그것이 그 사람의 총체적인 삶의 문제를 모두 바꾸어 주는 것은 아니다. 치유와 축사는 하나님의 더 큰 목적을 위한 수단이지, 그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자를 고치신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는 일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고 천국 백성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나병 환자를 고치시고 38년 된 중풍병자를 일으키시고 죽은 자를 살리신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실재함을 믿도록 이끌기 위한 초자연적 표적이었다. 세상 의사가 절대로 고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고쳐 주실 때, 그 사람은 비로소 살아 계신 하나님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분이 인생을 향해 어떤 디자인을 가지고 계신지 알아가게 되고, 결국 천국을 향한 문이 열리게 된다. 이것이 치유와 축사의 본래 목적이다.

그러므로 이 은사들의 정체와 원리를 바로 알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 모든 성도에게 필요하다. 치유의 은사와 축사의 은사가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 중 어느 위치에 속하는지, 하나님께서 왜 이 은사들을 주셨는지, 치유와 축사가 각각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사역자와 사역을 받는 자 각각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성경 본문을 따라 차례로 살펴보아야 한다. 신앙과 영적 세계에 대한 고민과 방황은 사실 회개와 천국 복음과 같은 실제적인 말씀을 만날 때 끝이 난다. 이 시간에는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의 세계를 바르게 이해하고, 그 은혜 안으로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기를 원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치유의 은사와 축사의 은사가 무엇이며, 어떻게 작용하고, 어떻게 받아 사용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오늘 말씀인 누가 복음 9장 1절부터 6절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처음으로 파송하시는 장면을 기록한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셨다. 이 파송의 핵심은 치유와 축사가 복음 선포와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단순한 의사로 보내신 것이 아니라,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사자로 보내신 것이다. 오늘 우리가 이 진리를 바르게 이해할 때, 치유와 축사에 대한 모든 왜곡과 오해가 바로잡힐 수 있다. 치유와 축사의 은사는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이 표적이 따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자, 긍휼의 마음을 품는 자, 말씀으로 믿음을 키우는 자에게 이 은사들은 더해진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치유와 축사의 사역을 통해 잃어버린 영혼들을 불러 모으신다. 세상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때, 사람들은 비로소 하나님께 귀를 기울인다. 현대 의학이 아무리 발달했어도 고치지 못하는 질병이 있고, 정신 의학이 아무리 발전했어도 해결하지 못하는 영적 문제가 있다. 이 불가능한 영역에서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 그것이 바로 천국 복음이 살아 있음을 증거하는 표적이 된다. 앞으로 살펴볼 일곱 가지 주제들은 이 놀라운 은사들의 비밀을 하나씩 열어 보여 줄 것이다. 끝까지 주의를 기울이기를 바란다.

2. 치유의 은사와 축사의 은사는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 중 어느 위치에 속하는가?

고린도전서 12장은 성령의 초자연적인 은사에 대해 가장 체계적으로 가르쳐 주는 본문이다. 여기서 '초자연적'이라는 말에 주목해야 한다. 이 은사들은 인간의 이성과 훈련과 능력으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영역에 속한다. 오직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임할 때에만 가능한 것들이다. 아무리 종교적 열심이 있고 오랜 신앙 연륜이 있어도, 성령께서 주시지 않으면 이 은사들은 나타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은사가 인간의 달란트나 재능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달란트는 훈련과 노력으로 키울 수 있지만, 초자연적 은사는 하나님의 주권적 선물이다.

고린도전서 12장 8절부터 10절은 성령의 아홉 가지 특별 은사를 열거한다.

고전 12:8-10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본문에서 치유의 은사는 '병 고치는 은사들'이라는 복수형으로 나타난다. 단수가 아니라 복수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것은 병을 고치는 방식과 영역이 다양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치유 사역자는 뼈와 관절 치유에 두드러진 역사가 나타나고, 어떤 사역자는 내장 기관의 치유에, 또 어떤 사역자는 신진대사나 체중과 관련된 영역에서 특별한 역사가 나타난다. 동일한 성령에게서 나오지만 그 나타남은 각 사역자의 부르심에 따라 서로 다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치유의 은사조차도 그 다양성 안에서 역사하신다.

축사의 은사는 '능력 행함들'이라는 복수형으로 표현되는 은사 안에 포함된다. 능력 행함도 단일한 방식이 아니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귀신을 쫓아내는 일, 죽은 자를 살리는 일, 자연 현상을 다스리는 일 등이 모두 능력 행함의 범주에 든다. 그 중에서도 귀신을 쫓아내는 축사 사역은 이 능력 행함의 은사에 속하는 것이다. 치유의 은사와 축사의 은사가 서로 다른 범주에 있다는 사실은, 치유 사역자와 축사 사역자가 반드시 동일한 사람일 필요가 없음을 보여 준다. 물론 두 은사가 한 사역자에게 함께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이 두 은사의 차이와 공통점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치유의 은사는 고장 난 것을 수선하는 것이다. 우리의 육체가 고장 났든, 정신이 고장 났든, 그 두 영역을 회복시키는 것이 치유의 은사다. 반면에 축사의 은사는 들어와 있는 악한 영을 내보내는 것이다. 치유가 '고침'에 초점이 있다면, 축사는 '제거'에 초점이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많은 질병의 근원에 귀신이 있기 때문에, 치유를 위해서는 축사가 필요하고, 축사가 이루어질 때 치유도 함께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결론적으로 치유의 은사와 축사의 은사는 모두 초자연적 은사들이다. 성령께서 그분의 주권적인 뜻에 따라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다. 따라서 이 은사들을 다룰 때는 언제나 인간의 자랑이 개입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 초자연적 은사들의 운영 원리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은사를 올바로 받고 사용하는 첫걸음이다.

이 아홉 가지 은사를 크게 세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계시(빛) 의 은사로,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영들 분별함이 여기에 속한다. 두 번째는 능력(불) 의 은사로, 믿음, 병 고치는 은사들, 능력 행함들이 여기에 속한다. 세 번째는 발성(말) 의 은사로, 예언함, 각종 방언 말함, 방언들 통역함이 여기에 속한다. 치유의 은사와 축사의 은사는 이 중에서 능력의 은사 그룹에 속한다. 능력의 은사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은사들로, 인간의 눈으로 볼 때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드러낸다. 특별히 치유와 축사의 은사는 하나님 나라가 이미 이 땅에 침투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살아 있는 증거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으시며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하신 말씀처럼, 치유와 축사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미 지금 여기서 현실이 되고 있음을 선포하는 행위다.

3. 하나님께서 이 땅에 치유와 축사를 허락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치유와 축사를 목적 그 자체로 여긴다. 병이 낫는 것, 귀신이 떠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이것이 하나님의 더 크고 분명한 목적을 위한 수단임을 명확히 가르친다. 이 목적을 모르면 치유와 축사는 수단이 되어야 할 것이 목적이 되어 버리는, 방향을 잃은 추구가 된다. 치유 사역자에게만 목숨을 걸고 매달리는 것, 축사 사역의 현상 자체에 집착하는 것은 모두 이 오해에서 비롯된다.

누가복음 9장 1절과 2절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파송하실 때의 말씀을 기록한다.

눅 9:1-2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이 말씀에서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기 위하여'라는 목적절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신 이유는 오직 하나,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천국 백성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귀신 쫓는 것과 병 고치는 것은 그 목적을 위한 도구로 주신 것이지, 그것 자체가 최종 목적이 아니다. 치유 사역만 알고 치유 사역만 쫓아가면 수단을 따라가는 것이다. 목적이 아닌 수단을 따라가는 것은 위험한 길이다.

마태복음 4장 23절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전체를 간결하게 요약한다.

마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며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여기서 중요한 순서가 있다. 첫째로 '가르치시고', 둘째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셋째로 '병을 고치셨다.' 병 고침은 가르침과 복음 전파를 위한 부속 행위였다. 사람들은 바쁜 삶 속에서 천국 복음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죽으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무슨 천국 복음이냐고 외면하기 일쑤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세상 의사가 고칠 수 없는 나병 환자를 고치시고, 38년 된 중풍병자를 일으키시고, 죽은 자를 살리심으로써 사람들의 눈길을 끄신 것이다. 초자연적인 기적이 나타나야 사람들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혈루증을 앓는 여인이 열두 해 동안 의사들에게 가 보았지만 돈만 다 써 버리고 나아지지 않았던 것처럼, 세상 의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하심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살아 계신 하나님을 발견하도록 이끄신 것이다. 예수님이 그저 좋은 말씀만 하셨다면 아무도 따라오지 않았을 것이다.

축사도 마찬가지 목적을 가진다. 천국에 들어가려는데 귀신이 들어 있으면 그 귀신이 계속 죄를 짓게 만들고, 주님을 부인하게 만들고, 온갖 저주를 통해 천국 들어가기를 방해한다. 그러므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그 영혼이 천국에 들어오도록 길을 여는 사역이다. 귀신이 없어져야 죄를 덜 짓게 되고, 죄를 덜 지어야 천국에 들어가기가 쉬워지는 것이다. 치유와 축사는 모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두 가지 도구다. 이 두 가지 도구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치유와 축사를 올바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영안이 열리는 것을 목적으로 이 곳 저 곳을 옮겨 다니고, 어떤 사람은 병이 낫는 것만을 목적으로 치유 사역자들을 따라다닌다. 이들은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전체적인 그림을 모르기 때문에 결국 헛방질하게 된다. 치유와 축사의 은사는 천국 복음을 위한 수단이다. 이 목적의식을 잃는 순간, 치유와 축사는 신비주의나 샤머니즘과 구별되지 않는 무언가로 전락하고 만다. 반드시 회개와 천국 복음이라는 전체 그림 안에서 치유와 축사를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치유와 축사의 은사를 주신 것은 인류를 향한 긍휼의 표현이기도 하다. 아프고 고통받는 사람들, 어둠의 세력에 억눌려 있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향해 손을 내미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치유와 축사를 통해 표현된다. 그러나 그 사랑은 단순히 육체적 고통을 없애 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랑의 궁극적인 목표는 그 영혼이 천국에 들어오는 것이다. 따라서 치유와 축사는 항상 천국 복음과 함께, 회개의 촉구와 함께 이루어져야 온전한 의미를 가진다. 누가복음 9장 6절은 제자들이 파송 받은 후 어떻게 사역했는지를 기록한다. '제자들이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이 구절이 보여 주는 것처럼, 치유 사역은 복음 전파와 항상 함께였다.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쳤지, 병만 고친 것이 아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치유 사역이 본받아야 할 모델이다.

4. 치유 사역은 어떻게 이루어지며, 말씀의 권세와 성령의 기름은 어떻게 작용하는가?

치유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이해하려면 두 가지 방식을 알아야 한다. 첫째는 말씀의 권세를 통한 치유이고, 둘째는 안수를 통한 성령의 기름 전달이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함께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 두 방식은 모두 성경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다.

마태복음 10장 1절은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마 10: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여기서 '권능'이라는 말의 헬라어 원문을 살펴보면, '권세'(엑수시아)와 '능력'(디나미스)이 함께 쓰인 개념이다. 이 두 단어는 성경에서 엄격히 구별된다. ' 권세' 는 말로 행사하는 것이고, ' 능력' 은 성령의 기름이 손을 통해 나가는 것이다. 누가복음 9장 1절에서도 이 두 가지가 함께 언급된다.

눅 9: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이 말씀은 치유에 권세와 능력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 준다. 권세는 말로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실 때 약을 쓰거나 수술을 하신 것이 아니다. 오직 말씀과 안수로만 고치셨다. " 눈은 떠져라", "일어나라", "깨끗함을 받으라"고 명하셨을 때 그대로 이루어졌다. 이것이 말씀의 권세다. 마가복음 16장 17절과 18절은 이 권세가 믿는 자들에게도 주어진다고 말씀한다.

막 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여기서 두 가지가 나온다. 첫째는 '내 이름으로'의 명령이고, 둘째는 '손을 얹음'이다. 예수의 이름으로 말씀의 권세를 선포하는 것, 그리고 안수를 통해 능력을 전달하는 것이 치유의 두 가지 경로다. 예수의 이름을 쓰지 않고 내 이름으로는 안 된다. 권세는 하나님께서 예수의 이름에 부여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 능력'은 손을 통해 흘러간다. 사도행전 10장 38절은 이 원리를 명확히 가르친다.

행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셨다. 그때부터 성령과 능력이 기름 붓듯 부어졌고, 그 기름부음이 손을 통해 흘러나가며 병자를 고치셨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까지 기적을 행하지 않으신 것은 이 때문이다.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받으신 이후에야 비로소 치유와 기적의 사역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치유 사역이 사람의 의지나 노력이 아니라 성령의 기름부음에 달려 있음을 명확히 보여 준다.

영안이 열린 자가 치유 사역자를 보면, 그 손에서 기름이 뚝뚝 흘러내리는 것이 보인다. 노란 기름이 손에서 흘러내리는 사람이라면 치유 사역자임을 알 수 있다. 이 성령의 기름은 연고처럼 환부에 스며들어 세포를 회복시키고, 휘어진 뼈를 펴고, 막힌 혈관을 열어 준다. 병 고치는 은사가 '병 고치는 은사들'이라는 복수형인 것처럼, 이 기름의 역사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어떤 사역자의 기름은 뼈에 특히 강하게 역사하고, 어떤 사역자의 기름은 내장 기관에 더 강하게 역사한다.

그런데 치유 사역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말씀의 권세로 "위장병이 나을지어다"라고 선포해도 잘 낫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 이유는 병의 근원에 귀신 이 있기 때문이다. 뱀 같은 영이 위장을 감싸고 혈관을 누르며 면역 체계를 차단하고 있는 한, 아무리 치유를 선포해도 완전한 회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귀신들은 죄를 통해 합법적으로 들어와 있기 때문에, 치유의 선포만으로는 그들이 쉽게 떠나지 않는다. 따라서 진정한 치유는 축사와 함께 이루어질 때 근원적 치료가 가능하다. 치유 사역자가 병을 고쳐도, 그 안에 있는 귀신을 쫓아내지 않으면 귀신이 다시 병들게 만든다. 이것이 치유 사역이 축사 사역과 함께 가야 하는 이유이다.

사역자가 안수할 때 받는 자에게 어떤 느낌이 오는지 알면 도움이 된다. 열감이 느껴지는 것은 성령의 기름이 들어오는 것이다. 시원함이 느껴지는 것은 성령이 시원한 바람처럼 임하는 것이다. 어떤 느낌이든, 그것은 성령의 능력이 역사하고 있다는 표시다. 그러나 아무 느낌이 없어도 성령이 역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 없으면 느끼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느낌이 아니라 믿음이다.

치유 사역자마다 서로 다른 영역에서 두드러진 역사가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께서 각 사역자에게 특정 영역의 치유를 더 강하게 부어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치유 사역자를 만났을 때 모든 병이 다 낫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치유 사역자들을 통해 다양한 영역을 치유하신다. 중요한 것은 치유 사역자 개인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눈을 고정하는 것이다.

또한 치유를 받을 때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회복되는 경우도 있다. 나아만이 엘리사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자 그 살이 어린아이의 살같이 회복된 것처럼, 어떤 경우에는 순종의 과정이 필요하다. 즉각적인 역사가 없다고 해서 치유가 일어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기다리는 것도 치유 과정의 일부임을 알아야 한다.

5. 축사 사역은 어떻게 이루어지며, 불과 무기는 왜 필요한가?

축사 사역은 귀신과의 실제적인 영적 전쟁이다. 그것은 단순히 큰 소리로 외치거나 특정 몸짓을 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하고, 믿음으로 선포하며, 성령의 불로 귀신을 고문하여 쫓아 내는 사역이다. 이 각각의 요소가 모두 갖추어져야 온전한 축사가 이루어진다.

첫째, 축사사역은 마가복음 16장 17절의 말씀처럼 '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분명히 말 한다.

막 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내 이름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하는 것이다. 이것이 말씀의 권세다.

둘째, 그런데 이 때 말의 권세가 효력을 발휘하려면 믿음이 있어야 한다. 마가복음 11장 22절부터 24절은 이 믿음에 대해 가르친다.

막 11:22-24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은 원문에서 '하나님의 믿음을 계속 가지고 있으라'는 현재 명령이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실 때 빛이 생길지 의심하지 않으셨듯이, 그런 믿음으로 명령해야 한다. 귀신에게 "묶여져라", "올라와라", "나와라"고 명할 때 그 말한 대로 될 줄 믿는 것이 하나님의 믿음이다. 의심이 있으면 귀신은 나가지 않는다. 특히 조상 제사를 많이 지낸 가문에는 불신앙의 영과 의심의 영이 가득 차 있어서, 아무리 복음을 들어도 믿음이 생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의심의 영부터 먼저 제거해야 한다.

셋째, 축사사역은 악한 영들을 고문하여 내보낼 수 있을 때에 보다 더 효과적이다.

귀신은 결코 쉽게 나가지 않는다. 사람 안에 머물수록 자신의 임무를 완수할 수 있기 때문에 나가려 하지 않는다. 사탄의 일꾼인 귀신은 그 사람을 지옥으로 끌고 가야 마귀 앞에서 칭찬을 받기 때문에, 그 사람 안에 머물려 한다. 마가복음 5장 7절과 8절은 군대 귀신이 고문을 당하지 않으려 애쓰는 장면을 기록한다.

막 5:7-8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여기서 '괴롭히지 마옵소서'의 헬라어 원문은 '바사니조'로, '고문하다', '고통을 주다'는 뜻이다. 귀신은 고문을 당해야만 나간다. 자발적으로 나가는 귀신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문하는가? 성령의 불이 그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축사 사역자의 손에서 불이 나가야 한다. 치유 사역자의 손에서 기름이 흘러나가듯, 축사 사역자의 손에서는 성령의 불이 나가야 귀신을 고문하여 쫓아낼 수 있다. 불이 없으면 귀신이 오히려 타고 들어와 사역자를 공격한다. 역사적으로 축사 사역을 많이 했던 사람들이 10년 안에 죽는 경우가 있었던 것은, 이 불의 보호막 없이 사역했기 때문이다. 성령의 불은 귀신들을 고문하는 동시에 사역자를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처음에는 빨간 불이 나가지만, 사역이 깊어질수록 파란 불이 나간다. 파란 불이 나가야 강력한 귀신의 집을 파괴하고, 갑옷을 입고 버티는 귀신들도 뚫어낼 수 있다. 뱀들이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갑옷을 만드는 경우가 있는데, 처음에는 빨간 불이 갑옷을 뚫지 못하지만, 파란 불이 나오면 갑옷을 뚫고 귀신들을 고문할 수 있다.

또한 축사 사역에는 영적 무기가 장착될 때에 더 강력하다. 칼, 망치, 그라인더, 연자맷돌 등 다양한 영적 무기들이 귀신의 집을 파괴하고, 뱀들을 끊어내고, 뱀의 알들을 깨뜨리는 데 쓰인다. 특히 10개의 손가락 끝에 장착되는 삼각칼은 전후좌우로 모두 썰어버릴 수 있어서 특히 강력하다. 전쟁에서 쓰이는 칼은 양날이라야 깊이 찌를 수 있는 것처럼, 영적 삼각칼은 사방으로 썰어버릴 수 있다. 그라인더는 귀신이 만든 갑옷을 잘라버리는 데 쓰이고, 연자맷돌은 뱀들을 돌려서 으깨는 데 쓰인다. 이 무기들은 기도와 명령으로 쓰는 능력이나 권세와 달리, 상시적으로 쓸 수 있는 은사 차원에서 장착된다. 무기가 장착된 축사 사역자는 더 신속하고 강력하게 귀신을 몰아낼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축사 사역을 할 때에는 영분별의 은사, 곧 보는 은사도 매우 중요하다. 그 안에 무슨 영이 있는지, 어디에 얼마나 큰 영이 있는지, 어디에 귀신의 집이 있는지를 볼 수 있어야 정확한 사역 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보는 은사가 없더라도 성령의 불로 "타버려, 나와"는 선포만으로도 어느 정도 사역이 가능하지만, 보는 은사가 더해질 때 훨씬 정밀하고 효과적인 축사가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몸이 계속 흔들리는 사람에게서 대나무가 보였는데, 그것이 바로 몸이 흔들리게 하는 영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보이는 것들을 통해 어떤 영인지 파악하고 정확하게 제거하는 것이 보는 은사의 역할이다. 귀신의 꼬리가 척추뼈를 감고 있는 경우에는 영적 칼로 꼬리를 잘라야 나오고, 뱀의 알이 많은 경우에는 망치로 깨뜨려 자루에 담아 음부로 보내야 한다. 이처럼 축사 사역은 단순한 선포만이 아니라, 보는 은사와 불과 무기가 함께 어우러질 때 가장 강력하게 이루어진다.

누가복음 10장 18절과 19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중요한 말씀을 하신다.

눅 10: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여기서 뱀과 전갈을 밟는다는 것은 악한 영들을 발로 짓밟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귀신을 쫓아내는 방법은 말로 명령하는 것만이 아니라, 손으로 집어 올리고, 발로 밟고, 불로 태우고, 무기로 제거하는 등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이것이 '능력 행함들'이 복수형인 이유다. 사역자는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다양한 방법을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축사 사역에서 또 하나 알아야 할 것은, 귀신이 나갈 때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어떤 경우에는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조용히 나가기도 한다. 구역질이 나거나 기침이 나는 것은 귀신이 나가는 통로가 열리는 것이다. 몸이 떨리거나 심하게 움직이는 것도 귀신이 나가려는 현상일 수 있다. 사역자는 이러한 현상들에 당황하지 말고, 계속해서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하며 사역을 이어가야 한다. 현상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역하는 것이 중요하다.

6. 치유와 축사를 사역하는 자에게 반드시 갖추어야 할 선결 조건은 무엇인가?

사역자가 갖추어야 할 선결 조건은 두 가지다. 첫째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요, 둘째는 믿음이다. 이 두 가지가 없으면 아무리 은사가 있어도 온전한 사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역자는 이 두 가지를 늘 점검하고 갈고닦아야 한다.

첫째로, 사역자는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신 마음, 고통받는 영혼을 향한 그 긍휼의 마음이 치유와 축사 사역의 동기가 되어야 한다. 이 사역을 통해 돈을 벌거나 인기를 얻으려 한다면, 그것은 이미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귀신에게 고통받는 사람, 병으로 신음하는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회복시켜 주고 싶은 순수한 마음, 그 사람이 깨끗해져서 천국에 들어오도록 돕고 싶은 마음이 사역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긍휼이 없으면 사역은 하나님의 도구가 아니라 자기 영광을 위한 수단이 되어 버린다. 예수님께서는 무리를 보실 때마다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하는 것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그 마음이 사역의 원천이었다. 사역자는 예수님의 그 마음을 항상 품고 있어야 한다.

둘째로, 은사적인 믿음 곧 초자연적인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귀신에게 나오라고 명할 때, 병에게 나을지어다 선포할 때, 그 말한 대로 이루어질 줄 확신하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에이 이런다고 귀신이 묶이겠나 하는 의심이 마음 안에 있으면 사역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 믿음은 어디서 오는가? 로마서 10장 17절은 이렇게 가르친다.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신약 성경을 계속 읽고 들으면서 "그대로 되었구나, 그대로 되었구나"를 반복하여 확인하게 될 때, 그 말씀대로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자라난다. 특히 믿음이 있는 사람의 말씀 선포를 들을 때 믿음은 더 강하게 형성된다. 사역자는 끊임없이 말씀 안에 거하며 믿음을 키워가야 한다.

더 나아가, 치유와 축사 사역자가 되는 것은 상당 부분 하나님의 예정에 가깝다고 여겨진다 . 하나님께서는 특정한 사람들을 이 사역을 위해 이 땅에 보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이 사역이 소수에게만 완전히 닫혀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려는 열심을 계속 유지해 나간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때그때마다 필요한 은사를 더하여 주신다.

처음에 는 말씀의 권세로 시작하지만, 계속해서 믿음으로 나아가다 보면 성령께서 능력과 은사를 더하여 주신다. 은사와 능력의 차이도 알아야 한다. 능력과 권세는 기도하고 명령함으로 쓸 수 있는 것이고, 은사는 기도하지 않고 명령하지 않아도 상시적으로 쓸 수 있는 것이다. 무기가 장착된다는 것은 이 은사의 차원이 더 깊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처음에 없었던 은사가 하나님의 종이 헌신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 더하여 주시는 것이다. 세례 요한과 같이 회개를 선포하는 사역자였다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사역이 깊어지면서 능력을 행하는 엘리야의 사역 양태로 옮겨지기도 한다. 사역자는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헌신할 때, 하나님께서 그 헌신에 응답하여 더 강한 은사를 부어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정리하자면, 축사와 치유 사역자가 되려는 자는 먼저 자신의 동기를 점검해야 한다. 그 동기가 긍휼인가, 아니면 자기 영광인가? 그다음에는 말씀을 통해 믿음을 키워가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를 겸손히 받고, 그 은사를 통해 영혼들을 천국으로 이끄는 데 헌신해야 한다. 이것이 사역자가 걸어가야 할 길이다.

사역자에게는 또 하나 중요한 조건이 있다. 그것은 '순 결'이다. 사역자의 삶이 죄로 가득 차 있으면, 귀신들이 그 사역자를 도리어 비웃는다. 사도행전 19장에 나오는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축사하려다가 귀신에게 제압당한 것은, 그들에게 예수님과의 실제적인 관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역자는 자기 삶을 항상 예수의 피 아래 두고, 날마다 회개하며 깨끗함을 유지해야 한다. 그럴 때 귀신은 그 사역자의 권세 앞에 떨게 된다.

7. 치유와 축사 사역을 받으러 오는 성도가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사역을 베푸는 자뿐 아니라, 사역을 받으러 오는 자도 반드시 준비가 필요하다. 아무 준비 없이 와서 수동적으로 사역을 받기만 한다고 해서 온전한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치유와 축사 사역에서 받는 자의 준비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회개요, 둘째는 믿음과 순종 이다. 이 두 가지가 갖추어질 때, 사역의 효과는 훨씬 강력해진다.

첫째로, 먼저 ' 회개' 다. 회개를 많이 하고 올수록 이미 예수의 피가 많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몸 안에 있는 귀신과 뱀들이 피부 쪽으로 올라와 있어서 쫓아내기가 훨씬 쉬워진다. 예수의 피는 뱀들과 귀신들을 우리 몸의 표면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회개를 통해 예수의 피가 들어오면, 그 피가 귀신들을 안쪽에서 표면으로 밀어올리고, 사역자가 그것을 보고 정확하게 제거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칼국수 반죽을 서로 붙지 않게 하려면 콩가루를 묻혀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회개로 예수의 피를 많이 받아 두면, 그 피가 귀신들을 피부 쪽으로 올라오게 하여 사역자가 제거하기 쉬운 상태로 만든다. 반대로 회개하지 않으면 예수의 피가 들어오지 못하고, 귀신들이 몸 안 깊숙이 달라붙어서 아무리 사역해도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집에 돌아가면 원상 복귀되는 것이다.

둘째로, ' 믿 음' 과 그것에 따른 ' 순종' 이다. 예를 들어 , 38년 된 중풍병자도 예수님께서 "일어나라"고 명하셨을 때 일어나려고 해야 했다. 38년간 누워 있었던 몸이 갑자기 움직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일어나려는 의지, 그것이 믿음이었다. 치유와 축사 사역을 받으러 오는 성도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종을 통해 역사하시는 주님을 믿고, 그 안수를 통해 자신 안의 귀신이 쫓겨나고 병이 나을 줄로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사역자의 능력이 아무리 강해도, 받는 자에게 믿음이 없으면 그 능력이 온전히 역사할 수 없다.

혈루증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능력이 온다는 믿음으로 나아왔고, 예수님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라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너희 믿음대로 되리라'는 원리는 치유와 축사 사역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러므로 치유나 축사 사역을 받으러 오기 전에, 먼저 그 사역이 자신에게 효과적으로 일어날 줄로 믿는 믿음을 가지고 와야 한다. 단순히 신기해서, 궁금해서, 한번 시험해 보려고 오는 것과, 믿음을 가지고 오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시험해 보려는 마음으로 오면 하나님은 그 마음에 응답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임을 믿고 간절한 마음으로 나아오 면, 하나님은 그 믿음에 반드시 응답하신다.

따라서 사역을 받으러 오는 성도는 첫째로 충분히 회개하여 예수의 피가 충만하게 임해 있는 상태로 오고, 둘째로 하나님의 종을 통해 치유와 축사의 역사가 자신에게 일어날 것을 믿음으로 기대하면서 나아와야 한다. 이렇게 준비된 성도에게는 사역 가운데 귀신이 확실하게 제거되고 병이 근원적으로 치유되는 은혜가 임한다. 회개와 믿음이라는 두 가지 준비 없이 사역을 받는다면, 일시적으로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수 있어도 집에 돌아가면 원상 복귀되는 경우가 많다. 진정한 변화는 회개와 믿음이라는 토대 위에서만 이루어진다.

나아가, 사역을 받는 성도는 사역자를 하나님의 도구로 바라보아야 한다. 사역자 자체를 의지하거나 사역자에게 모든 것을 기대하는 것은 잘못된 자세다. 사역자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눈을 고정해야 한다. 또한 사역을 받은 후에는 반드시 더 깊은 회개와 말씀 묵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귀신이 쫓겨난 자리에 하나님의 말씀이 채워지지 않으면, 마태복음 12장이 경고하는 대로 일곱 귀신이 다시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역을 받은 후의 삶이 사역 자체만큼이나 중요하다. 그리고 사역을 받은 이후에는 지속적인 회개의 삶을 이어가야 한다. 귀신이 쫓겨나고 병이 나았다고 해서 이후의 삶이 자동으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다. 치유와 축사의 은혜는 회개와 말씀 생활이라는 토대 위에서 계속 유지되고 강화된다. 자유함을 얻은 자리에서 더욱 열심히 회개하고 기도하며 말씀을 읽을 때, 그 자유함은 점점 더 완전해지고, 성령의 은사는 점점 더 강화된다.

8. 치유만으로는 왜 부족하며, 축사까지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치유 사역과 축사 사역의 관계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치유만 받고 축사를 받지 않는다면, 그 치유는 일시적인 것에 그칠 수 있다. 나아가, 치유와 축사를 다 받았다 하더라도 귀신의 근원인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천국에서 기업을 얻지 못한다. 이것이 치유와 축사를 단순한 의료 행위나 종교적 현상으로 보지 말고, 천국 복음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는 이유다.

첫째로, 치유만으로는 병의 근원을 해결할 수 없다. 많은 질병의 뿌리에는 귀신이 있다. 뱀 같은 영들이 위장을 감싸고, 혈관을 눌러 피를 통하지 못하게 하고, 신경을 차단하여 면역 체계를 무너뜨린다. 이러한 상태에서 치유의 기름이 들어와 일시적으로 증상이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귀신이 여전히 남아 있는 한, 귀신은 다시 그 사람을 병들게 만든다. 치유 집회에서 치유를 받았다가 몇 달 뒤 도로 악화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아무리 훌륭한 치유 사역자를 만나 병이 낫는다 해도, 안에 있는 귀신이 남아 있으면 결국 다시 도지는 것이다. 축사를 통해 병의 근원인 귀신을 제거해야 진정한 치유가 완성된다.

둘째로, 귀신이 남아 있으면 결국 또다시 죄를 짓게 된다. 귀신은 그 사람을 통해 계속 죄를 짓게 만들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무너뜨리고,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따라서 축사 사역의 궁극적인 목적은 단순히 귀신을 쫓아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죄에서 자유함을 얻고,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며,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충성스러운 일꾼이 되도록 하는 데 있다. 귀신이 없어진 자리에 성령께서 채우시면, 그때 비로소 그 사람 안에서 하나님의 은사가 나타나고 주의 일을 온전히 감당하게 된다. 축사 사역은 귀신을 쫓아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빈자리에 하나님의 영이 충만히 채워지도록 하는 과정까지 포함한다.

셋째로, 축사까지 이루어져야 진정으로 천국 복음이 완성된다. 치유는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도구이고, 축사는 그 사람이 죄의 권세에서 해방되어 천국 백성으로 설 수 있게 하는 도구다. 누가복음 9장 1절과 2절이 말씀하는 바대로,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기 위한 것이다. 결국 치유와 축사는 둘 다 한 목적, 즉 영혼이 천국에 들어오도록 하는 것을 위해 함께 작동해야 한다.

눅 9:1-2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그러므로 치유만 받고 만족하는 것은 절반의 은혜만 받은 것이다. 치유로 끝나서는 안 된다. 축사까지 받아 속에 있는 악한 영이 떠나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천국에서 기업을 얻을 수 있다. 치유와 축사는 분리될 수 없는 두 날개다. 이 두 날개가 모두 갖추어질 때, 우리는 죄에서 자유해지고,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며, 충성된 일꾼으로 하나님 나라를 섬길 수 있게 된다. 치유와 축사가 지향하는 완전한 목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여러분은 지금 치유를 원하는가? 그럼, 회개하고 믿음을 가져라! 축사를 원하는가? 회 개하고 믿음을 가져라! 치유와 축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고 싶은가? 그럼, 긍휼의 마음을 품고 나아가라! 하나님께서는 이 세 가지를 준비한 자를 절대로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으신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게 치유하시고 축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는 모든 성도에게 치유와 축사의 은혜가 더욱 풍성히 임하기를 바란다. 두려움을 버리고, 의심을 내려놓고, 회개와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라! 하나님께서는 기다리고 계신다. 그것은 단순히 몸이 나음으로써 이 땅에서 더 건강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죄와 귀신의 권세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는 자녀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치유를 받은 성도는 그 치유를 자신의 건강을 위한 하나님의 선물로만 여기지 말고, 더 나아가 자신이 천국 복음을 위한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을 받은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병이 낫는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확인한 자는, 그 간증을 가지고 다른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치유는 끝이 아니라 천국 복음의 시작점이다.

9. 나오며

치유의 은사와 축사의 은사가 무엇이며, 어떻게 작용하고, 이를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를 살펴보았다. 성령의 아홉 가지 초자연적 은사 가운데 치유의 은사는 '병 고치는 은사들'에 속하고, 축사의 은사는 '능력 행함들'에 속한다. 이 은사들은 인간의 노력이나 학습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그분의 주권적인 뜻에 따라 주시는 초자연적 선물이다. 그리고 이 은사들은 모두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고 천국 백성을 만드는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

치유 사역은 말씀의 권세와 성령의 기름부음을 통해 이루어진다.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하는 권세의 말씀이 병을 고치며, 성령의 기름이 손을 통해 흘러들어가 연고처럼 환부를 회복시킨다. 그러나 치유만으로는 병의 근원인 귀신을 제거할 수 없다. 축사 사역은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하되, 믿음과 성령의 불이 반드시 필요하다. 귀신은 고문을 당해야 나가기 때문에, 손에서 성령의 불이 나가야 귀신을 쫓아낼 수 있다. 파란 불이 나갈수록, 보는 은사와 영적 무기가 장착될수록, 더 강력한 귀신도 제어할 수 있다. 치유와 축사는 함께 가야 하며, 어느 하나만으로는 온전한 사역이 완성되지 않는다. 치유는 성령의 기름이 환부를 고치는 것이고, 축사는 성령의 불이 귀신을 몰아내는 것이다. 기름과 불, 이 두 가지가 함께 작동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히 나타난다.

사역자에게는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말한 대로 이루어질 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사역을 받는 성도에게는 충분한 회개와 믿음의 준비가 있어야 한다. 이 두 가지 조건이 맞을 때, 하나님의 능력은 가장 강력하게 역사한다. 사역자의 긍휼과 믿음, 그리고 받는 자의 회개와 믿음이 만나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초자연적 능력이 폭발적으로 나타난다. 치유만으로 끝내지 말고 축사까지 받아 속에 있는 악한 영을 완전히 내보내야 한다. 그래야만 죄에서 자유해지고,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며, 충성된 일꾼으로 하나님 나라를 섬길 수 있다. 회개와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치유와 축사의 은혜를 온전히 받아,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에도 치유하시고 축사하시며 일하고 계신다. 어제 치유하셨으면 오늘도 치유하시고, 어제 귀신을 쫓아내셨으면 오늘도 귀신을 쫓아내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이 하나님을 믿고 나아오는 모든 성도에게 치유와 자유함의 은혜가 반드시 임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땅에서 치유와 축사를 경험한 사람은, 그 은혜를 자신만을 위해 소유해서는 안 된다. 그 은혜는 다른 영혼들을 향한 복음 증거로 흘러가야 한다. 내가 나음을 받은 것처럼, 나를 고치신 하나님이 다른 사람도 고치실 수 있음을 증거하라! 내가 귀신에서 자유함을 얻은 것처럼, 그 자유함이 다른 영혼들에게도 전파되도록 하라! 치유와 축사의 은혜는 나눌수록 더 커진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확장된다. 이 시대에 치유와 축사의 은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 강력하게 전파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특별히 이 사역에 관심이 있는 성도라면 반드시 회개와 말씀으로 준비된 자가 되어야 한다. 치유와 축사의 은사가 주어지기를 원한다면, 먼저 자신의 삶이 예수의 피로 씻기고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 날마다 신약 성경을 읽고, 믿음을 키우고,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간구하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실 때마다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기도하라! 치유와 축사의 은사는 이렇게 실천하는 자에게 더해진다.

2026년 06월 12일(금) ·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