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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10. 04. (일)2026년 교회표어 「시대적인 사명완성을 위해 성전을 짓는 해」 (역대상 28장 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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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기도회] 제1부 순서(투박한 요약 글)

[금요기도회] 축사와 치유사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2가지 조건(마태복음 8:14~17)

마태복음 8:14~17(신약 11면)정보배목사2026-06-26(금)조회 1,356읽는 시간 약 27분

설교핵심

본 설교는 축사와 치유 사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사역자와 대상자가 갖춰야 할 핵심 조건과 영적 원리를 상세히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축사가 권세를 통한 악한 영의 축출이라면, 치유는 영적 원인 제거와 더불어 신체적 회복이 동반되어야 하는 더 고난도의 과정임을 강조합니다. 사역의 성공을 위해서는 영적 실체를 파악하는 빛의 은사(영안)와 영을 제압하는 불의 은사가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특히 조상의 죄와 관련된 철저한 회개가 선행되어야 함을 역설합니다. 궁극적으로 이 설교는 사역자의 영적 겸손과 대상자의 지속적인 자기 정결을 통해 질병과 저주의 사슬을 끊고 온전한 회복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강의 자료

그림 2 · 슬라이드 29
Spiritual Healing Blueprint설교 슬라이드 · 29장

1. 들어가며

축사와 치유는 서로 떨어져 있는 두 사역이 아니다. 축사는 귀신과 뱀을 내보내는 사역이고, 치유는 병든 몸과 마음을 회복시키는 사역이다. 그런데 실제 사역 현장에 들어가 보면 이 둘은 바늘과 실처럼 함께 움직인다. 귀신을 쫓아내면 병이 낫는 일이 일어나고, 병을 고치려면 그 병을 붙잡고 있는 악한 영을 처리해야 할 때가 많다. 예수님께서도 병든 자를 고치실 때 귀신을 쫓아내셨고, 귀신 들린 자들을 자유케 하시면서 병든 자들을 고치셨다(마 8:16).

마 8: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그러므로 축사와 치유를 분리해서 생각하면 실제 사역의 절반만 보게 된다. 귀신을 쫓는 사역자는 몸의 회복도 보아야 하고, 치유를 사모하는 사람은 병의 영적 원인도 보아야 한다. 병은 단순히 육체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러나 병을 영적 문제로만 보아서도 안 된다. 몸이 이미 상했다면 몸의 회복도 필요하고, 의사의 도움도 필요하다. 예수님께서도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마 9:12).

마 9: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이번 말씀은 병을 고침받고 싶은 사람에게만 주어진 말씀이 아니다. 장차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는 사역자로 세워질 사람에게도 필요한 말씀이다. 어떤 사람은 사역을 받는 자리에서 출발하지만, 결국에는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자리까지 올라가야 한다. 그러려면 축사와 치유의 차이를 알아야 하고, 사역자에게 필요한 은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사역받는 자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축사와 치유가 왜 함께 가야 하며, 그것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사역자와 사역받는 자가 무엇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왜 축사와 치유는 함께 가야 하는가?

축사와 치유는 한 방향을 향해 가는 두 걸음이다. 축사는 사람 안에 들어와 있는 귀신과 뱀을 밖으로 내보내는 일이다. 치유는 그 귀신과 뱀이 일으킨 육체적, 정신적 손상까지 회복시키는 일이다. 그러므로 축사 없는 치유는 뿌리를 놓칠 수 있고, 치유 없는 축사는 회복의 열매를 놓칠 수 있다.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 이 원리가 분명하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고치셨다. 여기서 말씀은 단순한 설명이 아니다. 권세 있는 명령이다. 귀신은 예수님의 권세 앞에서 물러갔고, 병든 자들은 그분의 손과 말씀과 긍휼 아래서 회복되었다. 그러므로 오늘의 사역도 예수님의 사역 구조를 따라가야 한다. 먼저 악한 영의 정체를 인정해야 하고, 그 영을 내보내야 하며, 동시에 육체와 마음의 회복도 살펴야 한다.

축사는 주로 “나가라”, “올라오라”, “풀어지라”, “떨어지라”와 같은 명령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은 예수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치유는 그보다 더 복합적이다. 병든 장기가 이미 손상되어 있거나, 혈관이 막혀 있거나, 신경망이 눌려 있거나, 정신과 마음의 상처가 깊게 남아 있다면 단순한 명령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귀신은 나갔어도 육체가 회복될 시간이 필요할 수 있고, 의학적 관리가 병행되어야 할 수 있다.

그래서 축사와 치유는 러닝메이트다. 축사를 하다 보면 치유가 따라오고, 치유를 하다 보면 축사가 필요하다. 악한 영을 내보내지 않으면 병의 뿌리가 남아 있을 수 있다. 반대로 몸의 회복을 무시하면 사역받은 사람이 실제 삶에서 건강을 유지하지 못할 수 있다. 사역자는 이 두 영역을 함께 보아야 한다.

더 나아가 축사와 치유를 함께 보아야 하는 이유는 사람의 문제가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영과 혼과 몸으로 연결되어 있다. 마음의 상처가 몸을 아프게 할 수 있고, 몸의 병이 마음을 낙심하게 할 수 있으며, 죄로 들어온 영이 생각과 감정과 장기와 혈관을 동시에 눌러 버릴 수 있다. 그러므로 사역자는 한 부위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배가 아프다고 배만 볼 일이 아니고, 머리가 아프다고 머리만 볼 일이 아니다. 그 배와 머리에 어떤 영이 들어왔는지, 그 영이 어떤 죄의 통로를 붙잡고 있는지, 이미 몸에는 어떤 손상이 진행되었는지를 함께 보아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역과도 일치한다. 예수님은 귀신을 꾸짖기도 하셨고, 손을 대어 고치기도 하셨으며, 말씀으로 낫게 하기도 하셨다. 어떤 경우에는 죄 사함을 먼저 선포하셨고, 어떤 경우에는 다시 죄를 범하지 말라고 경고하셨다. 그러므로 오늘의 사역도 한 방식만 절대화해서는 안 된다. 축사와 치유는 함께 가되, 각 사람의 상태에 맞게 정확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특히 질병 사역에서는 죄와 몸을 동시에 보아야 한다.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후 예수님은 다시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그 병과 죄의 관계를 보여 준다(요 5:14).

요 5: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병의 근본에는 죄와 악한 영의 통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몸이 실제로 망가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축사와 치유는 함께 가야 한다. 영적 원인을 처리하고, 육체의 회복을 도와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역 방식이며, 오늘 사역자들이 배워야 할 기본 방향이다.

3. 축사보다 치유가 더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축사는 본질적으로 영을 내보내는 사역이다. 귀신과 뱀을 향해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고, 성령의 불과 영적 무기를 사용하여 떠나가게 하는 것이다. 물론 축사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구조는 비교적 분명하다. 영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그 영을 예수 이름으로 대적하며, 불과 권세로 내보내면 된다.

그러나 치유는 조금 더 어렵다. 치유에는 육체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병든 몸은 단순히 귀신이 붙어 있는 상태만이 아니다. 오랫동안 악한 영의 공격을 받은 몸은 혈관이 막히고, 신경이 눌리고, 장기가 손상되고, 세포가 약해져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악한 영을 쫓아냈다고 해서 손상된 몸이 즉시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을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두통이 오래 지속되었다면 머리와 목의 혈관이 막혀 있을 수 있다. 고혈압이 오래되었다면 혈관 자체가 굳고 좁아졌을 수 있다. 소화기관의 병은 음식 습관과 장기 손상이 함께 관련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회개와 축사가 필요하지만, 몸을 회복시키는 생활 관리도 필요하다. 그래서 예수님은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다고 하셨다.

치유가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는 병의 뿌리가 한 가지가 아닐 때가 많기 때문이다. 어떤 질병은 한 종류의 영이 아니라 여러 세대의 죄, 여러 종류의 영, 조상의 죄, 억울한 죽음, 폭력, 권력 남용, 우상숭배와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 겉에 있는 영 하나를 쫓아냈다고 병이 끝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나이가 많을수록 몸 안에 쌓인 영과 손상이 많다. 오래된 병일수록 영적 층도 깊고 육체적 손상도 깊다. 젊은 사람이나 어린아이에게서 병이 빨리 낫는 경우가 많은 이유는 상대적으로 영의 축적과 육체 손상이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죄와 저주와 습관이 쌓인 경우에는 회개도 깊어야 하고 사역도 정밀해야 한다.

여기에 또 하나의 난점이 있다. 치유는 시간과 순서를 요구한다. 깊은 병은 마치 여러 겹의 옷을 입은 것과 같다. 맨 위에 있는 영을 처리하면 그 아래 다른 영이 드러난다. 칼을 뽑으면 그 아래 뱀이 있고, 뱀을 처리하면 그 아래 조상의 죄가 있으며, 그 죄를 회개하면 또 다른 억울함의 영이 드러날 수 있다. 그러므로 치유 사역자는 조급하면 안 된다.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태도는 위험하다.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만큼 보고, 회개시킬 만큼 회개시키며, 그날 처리할 만큼 처리해야 한다.

사역받는 사람도 이 원리를 알아야 한다. 한 번 안수받으면 모든 병이 즉시 낫는다고만 생각하면 낙심하기 쉽다. 물론 주님은 즉시 고치실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는 회개와 축사와 몸의 회복이 단계적으로 일어난다. 병이 오래된 만큼 깊은 회개가 필요할 수 있고, 몸이 약한 만큼 회복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므로 치유를 받는 사람은 믿음과 인내를 함께 가져야 한다.

치유는 그래서 영적 분별과 육체적 지혜를 함께 요구한다. 병을 일으킨 영을 쫓아내야 하고, 이미 망가진 몸을 돌보아야 하며, 다시 죄의 통로가 열리지 않도록 삶을 고쳐야 한다. 이것이 축사보다 치유가 더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다.

4. 축사 사역에는 왜 불과 영적 무기가 필요한가?

축사 사역의 기본은 예수 이름의 권세다. 귀신은 사람의 말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과 권세에 굴복한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는 표적이 따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막 16:17).

막 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그러나 실제 축사 현장에 들어가면 단순히 입으로 명령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다. 특히 강한 영이나 깊이 박힌 영을 상대할 때에는 불의 사역이 필요하다. 성령의 불은 악한 영을 고통스럽게 하고 태우며, 숨어 있던 영을 드러나게 한다. 불이 없으면 귀신들이 사역자에게 달라붙거나 공격할 수 있다. 그래서 축사 사역자는 불의 사역자가 되어야 한다.

불의 사역은 감정적 열심이 아니다. 몸과 손과 말과 사역 현장에 실제로 성령의 불이 역사하는 것이다. 사역자가 기도할 때 속에서 불이 일어나고, 하늘로부터 불이 부어지고, 손을 통해 불이 흘러 들어가는 방식으로 악한 영을 태우고 몰아내는 것이다. 이것이 있어야 사역자가 보호를 받고, 귀신들도 버티지 못한다.

또한 영적 무기도 필요하다. 원고에서 언급된 칼, 도끼, 그라인더, 탈곡기, 그물 같은 표현들은 모두 영적 전쟁에서 사용되는 무기의 상징이자 실제 사역 언어다. 어떤 영은 칼로 자르듯 처리해야 하고, 어떤 영은 도끼로 찍어야 하며, 어떤 영은 그물로 모아야 하고, 어떤 영은 탈곡기처럼 분쇄해야 한다. 이것들은 육체의 무기가 아니라 영적 권세와 은사의 표현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사역자의 자랑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무기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은사란 하나님께서 맡기신 도구이지, 사역자의 소유물처럼 자랑할 것이 아니다. 불의 은사와 영적 무기가 주어질수록 사역자는 더 두려워해야 한다. 왜냐하면 더 강한 사역을 할수록 더 강한 공격도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불과 무기는 반드시 사랑 안에서 사용되어야 한다. 축사 사역은 사람을 공격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붙잡고 있는 악한 영을 공격하는 일이다. 사역자는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되고, 귀신을 향해서는 단호해야 한다. 사람에게는 긍휼을 가져야 하고, 악한 영에게는 권세를 사용해야 한다. 이 구분이 무너지면 사역자는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러므로 축사 사역자는 강해야 하지만 동시에 따뜻해야 한다. 불은 귀신에게는 심판이지만, 사람에게는 보호와 회복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또한 말의 권세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사역자가 평소에 원망과 불평과 정죄의 말을 많이 하면, 사역 현장에서도 말이 거칠어질 수 있다.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는 것과 사람을 저주하듯 말하는 것은 다르다. 사역자의 입술은 평소에 말씀과 회개와 감사로 훈련되어야 한다. 그래야 사역의 자리에서도 말이 정확하고 깨끗하게 나간다.

사역자는 불이 없는데 함부로 안수하고 축사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귀신들이 달라붙고, 심장과 머리와 눈을 공격할 수 있다. 영적 전쟁은 장난이 아니다. 권세는 믿음으로 사용해야 하지만, 정결과 보호 없이 함부로 나아가면 자신이 다칠 수 있다. 그러므로 축사 사역자는 예수 이름의 권세, 성령의 불, 영적 무기, 그리고 날마다의 회개를 함께 갖추어야 한다.

5. 치유 사역에는 왜 영안과 지식의 말씀이 필요한가?

치유 사역에는 보는 은사가 필요하다. 이것을 빛의 은사라고 할 수 있다. 빛은 감추어진 것을 드러낸다. 병이 어디서 왔는지, 어떤 영이 붙어 있는지, 어떤 죄의 뿌리가 작용하고 있는지를 보게 한다. 치유 사역자는 단순히 아픈 부위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사람만이어서는 안 된다. 그 병을 붙잡고 있는 영의 정체를 분별해야 한다.

고린도전서 12장은 성령의 은사들 가운데 지식의 말씀, 영들 분별함,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을 말한다(고전 12:8~10). 치유 사역에는 이 은사들이 함께 필요하다. 지식의 말씀은 병의 영적 원인을 알게 하고, 영들 분별함은 그 영의 정체를 보게 하며, 병 고치는 은사는 회복을 가져오고, 능력 행함은 악한 영을 제압하게 한다.

고전 12:8~10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주시나니

보는 은사는 크게 두 방향으로 나타날 수 있다. 하나는 실제 영의 모양을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환상으로 영적 원인을 보는 것이다. 실제 영의 모양은 뱀, 구렁이, 짐승, 사람 형상, 검은 물체, 칼, 못 같은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 환상은 조상들의 행위, 우상숭배의 장면, 억압받은 사람들, 폭력의 현장, 제사의 장면처럼 나타날 수 있다. 전자는 지금 몸 안에서 역사하는 영의 모양을 보여 주고, 후자는 그 영이 들어온 죄의 통로를 보여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보는 자는 본 것을 곧바로 단정하지 말고 해석해야 한다. 칼이 보이면 상처와 공격을 생각해야 하고, 뱀이 보이면 죄를 통해 들어온 더러운 영을 생각해야 한다. 가마와 권력자의 모습이 보이면 권세 남용과 억울한 죽음을 생각해야 하고, 무당이나 제사 장면이 보이면 우상숭배와 귀신 접촉의 통로를 생각해야 한다. 이렇게 보는 것과 해석하는 것이 함께 가야 치유 사역이 정확해진다.

어떤 병은 뱀처럼 보인다. 어떤 병은 칼, 못, 쇠붙이, 물체처럼 보인다. 어떤 병은 조상의 죄와 관련된 환상으로 드러난다. 예를 들어 권력 남용, 억압, 폭력, 살인, 억울한 죽음, 우상숭배, 무당의 죄, 제사의 죄, 역사적 폭력 같은 장면들이 환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병을 붙잡고 있는 죄의 뿌리를 보게 하시는 빛의 은사다.

치유 사역에서 보는 은사가 중요한 이유는 회개를 정확하게 시키기 위해서다. “주여,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일반적으로 기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병을 붙잡고 있는 죄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면 회개도 구체적이 된다. 조상이 권력을 남용하여 사람을 억울하게 죽였다면 그 죄를 회개해야 한다. 무당의 죄가 보이면 무당을 섬기고 귀신을 받은 죄를 회개해야 한다. 제사의 영이 보이면 죽은 자와 우상 앞에 절하고 음식을 바친 죄를 회개해야 한다.

빛의 은사는 병의 원인을 보게 하고, 불의 은사는 그 원인을 처리하게 한다. 빛만 있고 불이 없으면 볼 수는 있지만 내보내지 못한다. 불만 있고 빛이 없으면 강하게 쫓아낼 수는 있지만 어떤 뿌리를 회개시켜야 하는지 모를 수 있다. 그러므로 치유 사역에는 빛과 불이 함께 필요하다.

6. 질병의 영은 어떻게 죄의 뿌리와 연결되는가?

질병의 영은 대체로 죄의 뿌리를 붙잡고 들어온다. 죄가 문을 열어 주고, 악한 영이 그 문으로 들어온다. 그 영은 처음에는 작은 영향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몸의 한 부위를 장악하고, 신경과 혈관과 장기와 마음을 눌러 병을 일으킨다.

설교 원고에는 치유 사역의 실제 사례가 나온다. 어떤 사람은 의술로는 치료하기 어려운 상태였고, 이미 오랜 시간 회개기도를 많이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몸의 한 부위가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영안이 열린 사역자가 보니 그곳에 칼들이 많이 박혀 있었고, 그 아래에는 검은 뱀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것은 상처와 공격, 그리고 죄를 통해 들어온 더러운 영의 구조를 보여 준다.

칼이 보인다는 것은 찔림과 상처와 공격의 흔적이다. 뱀이 보인다는 것은 죄를 통해 들어온 악한 영의 실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더 깊이 들어가자 조상의 권력 남용과 반대파 숙청,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 역사적 폭력과 연결된 환상들이 드러났다. 그러므로 병은 단순히 몸의 문제가 아니었다. 여러 세대의 죄와 억울함과 폭력의 영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던 것이다.

이 사례가 보여 주는 것은 병의 구조다. 첫째, 겉에는 증상이 있다. 배가 단단해지고, 통증이 생기고, 장기가 눌린다. 둘째, 그 아래에는 영적 물체가 있다. 칼이나 못이나 쇠붙이가 박혀 있을 수 있다. 셋째, 그 아래에는 뱀과 귀신이 있다. 넷째, 더 깊은 곳에는 그 영이 들어온 죄의 근거가 있다. 그러므로 사역은 증상에서 출발하지만, 반드시 죄의 뿌리까지 내려가야 한다.

또한 같은 부위에 여러 영이 겹쳐 있을 수 있다. 처음에는 칼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검은 뱀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큰 구렁이가 나오고, 마지막에는 환상 속 죄의 장면이 나올 수 있다. 이것은 사역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층층이 있던 것들이 드러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사역자는 “왜 아직도 남아 있는가?”라고 조급해하지 말고, 드러나는 순서대로 처리해야 한다.

이럴 때 사역자는 먼저 죄를 회개하게 해야 한다. 영이 보였다고 해서 곧장 뽑아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왜 그 영이 들어왔는지를 인정하고, 그 죄를 자백해야 한다. 요한일서 1장 9절은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한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죄가 자백되면 그 죄를 근거로 붙어 있던 영들이 약해진다. 그때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고, 불과 무기로 처리하며, 결박하여 음부로 보내야 한다. 질병 치유가 오래 걸리는 이유는 이 죄의 뿌리가 한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겉의 칼을 뽑고, 밑의 뱀을 처리하고, 그 아래의 조상 죄를 회개하고, 또 다른 환상이 드러나면 그것까지 처리해야 한다. 이것이 정밀한 치유 사역이다.

그러므로 질병을 다룰 때 뭉뚱그린 기도만으로 끝내면 안 된다. 병을 준 영의 정체, 들어온 죄의 통로, 몸의 손상, 회개의 깊이를 1:1로 맞추어 처리해야 한다. 그래야 병을 붙잡고 있던 영들이 합법적 근거를 잃고 떠날 수 있다.

7. 보는 사역자는 왜 반드시 점검과 회개가 필요한가?

영안이 열린 사람은 귀한 사역자다. 그러나 동시에 위험한 자리에도 서 있다. 보는 사람은 귀신을 보지만, 귀신도 자신을 보는 사람을 안다. 악한 영들은 자신을 드러나게 하는 사람을 공격한다. 특히 눈과 머리와 가슴을 공격한다. 그러므로 보는 은사가 있다고 해서 안전한 것이 아니다.

보는 사역자에게 가장 큰 위험은 교만이다. 자신이 본 것을 절대화하는 순간 위험해진다.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것은 필요한 만큼이다. 어떤 사람은 실제 영을 보고, 어떤 사람은 환상을 보고, 어떤 사람은 일부만 본다. 그런데 자신이 본 것을 전부라고 생각하면 사역이 어그러진다. 더 위험한 것은 귀신이 보여 주는 헛환상을 성령이 보여 주신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영안이 오염되면 처음에는 정확하게 보던 사람이 나중에는 잘못 볼 수 있다. 사역자의 눈 속에 악한 영이 들어가면, 그 영이 가짜 영상을 보여 줄 수 있다. 그러므로 보는 사역자는 반드시 점검을 받아야 한다. 자기 눈을 정기적으로 청소해야 하고, 머리와 가슴에 들어온 공격을 뽑아내야 한다. 은사가 있다고 해서 회개를 게을리하면 그 은사가 오히려 넘어지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사도 베드로는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경고했다(벧전 5:8~9). 사역자는 이 말씀을 자신의 말씀으로 받아야 한다. 사역자는 공격받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공격받기 쉬운 사람이다. 많이 볼수록 많이 공격받고, 많이 쫓아낼수록 많이 대적받는다.

벧전 5:8~9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그러므로 보는 사역자는 세 가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 첫째, 자신이 보는 것은 전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부다. 둘째, 본 것을 말하기 전에 반드시 성령의 분별과 사역자의 점검을 받아야 한다. 셋째, 날마다 회개하여 눈과 머리와 가슴을 정결하게 해야 한다.

보는 사역자는 사역 후 관리도 받아야 한다. 사역이 끝난 뒤에는 자신이 본 것 때문에 마음이 흔들릴 수 있고, 몸이 피곤해질 수 있으며, 눈이 무겁거나 머리가 아플 수 있다. 이것은 공격이 들어왔다는 신호일 수 있다. 그때는 즉시 회개하고, 눈과 머리와 가슴에 붙은 영들을 뽑아내야 한다. 그리고 사역 내용을 혼자 품고 교만해지지 말고, 더 성숙한 사역자에게 점검받아야 한다.

보는 은사는 사람을 높이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다. 병든 자를 살리고, 죄의 뿌리를 회개시키고, 악한 영을 내보내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보는 사역자는 “내가 보았다”에 머물지 말고 “주님이 보게 하셨다”는 고백으로 낮아져야 한다. 그렇게 낮아질 때 은사는 오래 간다.

은사는 사역을 가능하게 하지만, 정결은 사역자를 보존한다. 빛의 은사가 있어도 정결하지 않으면 빛이 흐려진다. 불의 은사가 있어도 회개하지 않으면 불이 사역자를 보호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역자는 은사보다 회개를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8. 사역자와 사역받는 자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축사와 치유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려면 사역자와 사역받는 자가 함께 준비되어야 한다. 사역자만 준비되어 있고 사역받는 자가 회개하지 않으면 영들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반대로 사역받는 자가 회개했어도 사역자가 정결하지 않고 은사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깊은 치유까지 들어가기 어렵다.

사역자는 먼저 날마다 회개해야 한다. 사역자는 강한 영을 상대하므로 자신의 틈을 막아야 한다. 죄가 틈으로 남아 있으면 그 틈을 통해 공격이 들어온다. 그러므로 사역자는 말과 생각과 행동을 점검해야 하고, 마음의 상처도 처리해야 하며, 교만을 경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셨다고 해서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은사는 도구이고,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사역자는 또한 영적 보호 기도를 해야 한다. 사역 중에 처리된 영들이 다시 공격하지 못하도록 결박하고 보내는 기도를 해야 한다. 가정과 교회와 사역 현장도 보호해야 한다. 영적 전쟁은 사역이 끝났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역 후에도 공격이 올 수 있으므로 지속적으로 보호와 정결을 구해야 한다.

사역받는 자도 준비가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회개다. 회개 없이 영만 억지로 빼내려 하면 위험하다. 합법적으로 들어온 영들이 나갔다가 다시 들어올 수 있고, 더 악한 영들이 들어올 수도 있다.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이 나갔다가 다시 돌아올 때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올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마 12:43~45).

마 12:43~45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사역받는 자는 자기 죄와 조상의 죄를 인정해야 한다. 제사의 죄, 무당의 죄, 우상숭배의 죄, 억압과 폭력과 살인의 죄, 음란과 탐욕과 혈기의 죄를 구체적으로 회개해야 한다. 회개가 깊어질수록 영들은 이격된다. 예수의 피가 들어가면 영들이 붙어 있을 근거를 잃는다. 그때 사역자가 명령하면 더 쉽게 떨어져 나간다.

사역받은 후의 삶도 중요하다. 다시 죄의 문을 열면 영들이 다시 들어올 수 있다. 그러므로 사역받은 사람은 말씀을 붙들고, 회개를 계속하며, 죄의 습관을 끊고, 몸의 건강도 관리해야 한다. 치유는 사역 한 번으로 끝나는 행사가 아니라, 정결한 삶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사역받는 사람은 사역 전에도 준비해야 하지만, 사역 후에도 자신을 지켜야 한다. 사역 중에 영이 빠져나갔어도 같은 죄를 다시 짓거나 같은 환경으로 돌아가면 다시 문이 열린다. 그래서 사역 후에는 말씀을 듣고, 회개기도를 계속하며, 죄의 통로를 끊고, 몸도 관리해야 한다. 특히 질병 치유의 경우에는 식습관, 수면, 운동, 약물 관리, 병원 진료도 무시하지 않아야 한다. 영적 사역과 육체 관리는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야 한다.

또한 사역받는 사람은 사역자를 우상화해서는 안 된다. 고치는 분은 주님이시다. 사역자는 도구다. 사역을 통해 좋아졌다면 주님께 감사해야 하고, 사역자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사역자도 공격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도들이 함께 기도할 때 사역자는 더 안전하게 사역할 수 있고, 교회 전체도 영적 보호를 받게 된다.

결국 축사와 치유의 성공은 기술에만 있지 않다. 사역자와 사역받는 자가 모두 예수의 피 안에서 정결해지고, 성령의 빛과 불이 역사할 수 있도록 자신을 준비할 때 사역은 깊어지고 안전해진다.

9. 나오며

이번 시간에는 축사와 치유 사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두 가지 조건을 살펴보았다. 축사와 치유는 함께 가야 한다. 축사는 귀신과 뱀을 내보내는 사역이고, 치유는 병든 몸과 마음의 회복까지 포함하는 사역이다. 그러므로 축사에는 예수 이름의 권세와 성령의 불과 영적 무기가 필요하고, 치유에는 병을 일으킨 영의 정체와 죄의 뿌리를 보게 하는 빛의 은사가 필요하다.

사역자는 은사가 나타난다고 해서 자만해서는 안 된다. 보는 은사가 있으면 더 많이 공격받을 수 있고, 불의 은사가 있으면 더 강한 영을 상대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역자는 날마다 회개해야 하고, 눈과 머리와 가슴을 정결하게 해야 하며, 자신이 본 것과 행한 것을 점검받아야 한다. 은사는 사역을 가능하게 하지만, 정결은 사역자를 오래 보존한다.

사역받는 사람도 회개 없이 사역만 기대해서는 안 된다. 악한 영들은 죄의 근거를 붙잡고 들어왔기 때문에, 그 죄가 자백되고 예수의 피가 적용되어야 한다. 자기 죄와 조상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할 때, 영들이 이격되고 사역이 깊어질 수 있다. 회개는 사역의 준비이자 치유의 통로이며, 저주를 자손에게 물려주지 않는 길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성도는 단순히 병 고침을 받는 데서 멈추지 말아야 한다. 회개와 정결을 통해 자신이 먼저 자유를 얻어야 하고, 나아가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사역자로 자라가야 한다. 빛의 은사는 병의 뿌리를 보게 하고, 불의 은사는 그 뿌리를 처리하게 한다. 이 두 은사가 예수의 피와 성령의 권세 안에서 바르게 역사하도록 자신을 준비해야 한다.

축사와 치유는 하나님의 긍휼이 나타나는 자리다. 귀신에게 눌린 자가 자유를 얻고, 병든 자가 회복되며,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가문의 저주가 끊어지는 자리가 바로 이 사역의 자리다. 그러나 그 자리는 동시에 두려운 자리다. 사역자는 정결해야 하고, 사역받는 자도 진실해야 하며, 모든 영광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가야 한다. 그리하여 빛의 은사와 불의 은사가 예수의 피 안에서 바르게 역사하여 자신도 깨끗해지고 다른 사람도 살리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6월 26일(금) ·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