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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10. 04. (일)2026년 교회표어 「시대적인 사명완성을 위해 성전을 짓는 해」 (역대상 28장 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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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기도회] 은사의 오남용(誤濫用)을 막고 은사를 활성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디모데전서 4:14)

디모데전서 4:14정보배목사2026-07-03(금)조회 1,320읽는 시간 약 40분

설교핵심

이 설교는 성령의 은사가 지닌 영적 가치와 올바른 활용법을 심도 있게 고찰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은사를 영적 전쟁에서 악한 영을 물리치기 위한 최첨단 신식 무기에 비유하며, 이를 통해 개인과 교회를 견고하게 건축하는 것이 하나님이 은사를 부여하신 본질적인 목적임을 역설합니다. 특히 은사를 얻는 과정에서 사역에 대한 헌신과 철저한 회개가 선행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이미 받은 은사를 사사로운 이익이나 명예를 위해 오남용할 경우 영적인 문이 닫힐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결론적으로 성도는 영적 스승의 점검 아래 지속적인 훈련으로 은사를 연마함으로써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 나라를 위해 준비된 강력한 군사가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강의 자료

그림 2 · 슬라이드 23
Divine Arsenal Blueprint설교 슬라이드 · 23장

1. 들어가며

은사은 좋은 것이지만 오남용을 해서는 아니 된다. 은사의 오남용과 활성화를 언급하기에 앞서 오용과 남용이라는 두 단어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오용(誤用)은 잘못 사용하는 것이고, 남용(濫用)은 지나치게, 곧 넘치게 사용하는 것이다. 이 둘은 서로 다른 문제이지만 결국 은사를 하나님이 주신 목적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결과를 낳는다.

은사는 하나님께서 값없이, 곧 무상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 선물이다. 이는 단순한 재능이 아니라 초자연적 능력이요 신적 능력이다. 영의 세계에서 활동하는 능력을 육신을 가진 우리에게 주셔서,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에서 그것을 사용하면 그 결과가 눈에 보이는 세계에 나타나게 하시는 것, 이것이 바로 은사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 은사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딤전 4:14).

딤전 4: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소홀히) 여기지 말며

"은사"라는 우리말은 헬라어 "카리스마타"를 번역한 것인데, 이는 "은혜"를 뜻하는 "카리스"에서 나온 단어다. 곧 은사란 근본적으로 값없이 거저 주시는 은혜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은사는 결코 사람의 노력이나 자격으로 얻어 내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물임을 알 수 있다. 디모데가 받은 은사는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 예언을 통하여 주어진 것이었다. 이처럼 은사는 하나님의 뜻과 경륜 가운데 특정한 사역을 위하여 주어지는 것이며, 결코 가볍게 여기거나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은사를 받은 이후에 일어난다. 이 소중한 선물을 잘못 사용하거나 지나치게 사용하여 오히려 교회를 무너뜨리고 자기 자신을 파멸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목회 현장에서 지켜보면, 처음에는 순수한 마음으로 은사를 받았던 사람이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은사를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수단으로 삼아 버리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은사가 클수록 그것을 다루는 마음가짐도 그만큼 성숙해야 하는데, 능력은 빠르게 자라는 반면 인격과 겸손은 더디게 자라는 경우가 많아 이 둘 사이에 간극이 벌어지고, 그 간극이 결국 오남용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은사란 무엇이며 어떤 종류가 있는지, 사역과 은사 중 무엇이 먼저 와야 하는지, 은사를 어떻게 사모하고 훈련해야 하는지, 그리고 은사를 오남용하였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며 그것이 다시 회복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은사란 무엇이며 왜 우리에게 필요한가?

과거에는 방언과 방언 통역을 조금 하고 가끔 예언을 하며, 안수할 때 간혹 치유가 일어나는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하던 때가 있었다. 성경 말씀을 깊이 이해하여 가르치는 은사가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아가서를 통해 살펴본 술람미 여인의 성장 과정을 돌아보면, 처음에는 바알하몬의 포도원을 지키는 시골 처녀로서 자기 순결은 지킬 수 있어도 여우 한 마리조차 잡지 못하고, 오라비가 부탁한 포도원조차 스스로 지켜 낼 수 없는 연약한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아가 2:15).

아가 2:15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그러나 그 신부는 결국 여우를 잡고, 사자 굴과 표범 산에서도 결코 지지 않는 당당한 존재로 성장하여야 한다 (아가 4:8).

아가 4:8 내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 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오구나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꽂고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당당한 신부, 그리고 신랑이 하던 일을 이어받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상속자를 세우는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은사와 재능의 차이다. 재능은 타고난 소질이나 후천적인 훈련으로 계발되는 자연적인 능력이지만, 은사는 자연적인 노력의 범위를 넘어서는 초자연적인 능력이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도 스스로 귀신을 쫓아내거나 병을 고칠 수는 없다. 오직 성령께서 값없이 부어 주시는 은사만이 그러한 영역을 감당할 수 있다. 그렇기에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은사가 없으면 영적 전쟁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고, 반대로 재능은 부족해도 은사를 온전히 사용하는 사람은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은사는 예수 믿는 자에게만 특별히 주시는 초자연적 성령의 선물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은사는 여러 가지이지만 그것을 주시는 성령은 동일한 한 분이시다 (고전 12:4).

고전 12: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사람이 애써 노력한다고 해서 억지로 얻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자유로운 뜻을 따라 각 사람에게 나뉘어 주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은사를 누구에게 얼마나 나누어 주실 것인지는 전적으로 성령의 뜻에 달려 있다 (고전 12:11).

고전 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느니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신령한 것, 곧 은사에 대하여 결코 알지 못한 채로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권면하였다 (고전 12:1).

고전 12:1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은사가 신앙생활의 부수적인 요소가 아니라 반드시 알고 이해하며 사용해야 할 핵심적인 요소임을 분명히 밝히는 말씀이다. 은사를 몰라도 구원받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고 여겨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성도들이 많지만, 사도 바울의 권면은 그러한 태도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음을 보여 준다. 은사에 무지한 채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마치 강력한 무기를 지급받고도 그 사용법을 배우지 않은 채 전장에 나가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이 은사가 우리에게 왜 필요한가. 오늘날의 전쟁을 생각해 보면 그 답이 분명해진다. 지금의 전쟁은 사람이 직접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 드론이 대신 싸우는 전쟁이 되었다. 병사가 몸으로 부딪히지 않고 드론을 조종하여 원거리에서 적을 제압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실제로 어느 전장에서는 부상당해 도망치지 못한 병사를 드론이 찾아내었는데, 그 병사가 죽이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자 드론이 물과 먹을 것을 가져다주며 항복을 유도하여 결국 그 병사의 생명을 살린 일도 있었다고 한다. 최첨단 무기를 가진 쪽이 훨씬 유리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영적 전쟁도 이와 마찬가지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씨름이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밝힌다 (엡 6:12).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어려움과 갈등의 배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력이 자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영적 세력과 맞서 싸우는 데 있어 사람의 지혜나 노력, 인간관계의 기술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 오직 성령께서 주시는 초자연적 무기, 곧 은사만이 이 보이지 않는 전쟁에서 실질적인 승리를 가져다줄 수 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가면서 귀신을 쫓아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최신식 영적 무기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은사다. 은사는 악한 영을 쫓아내기 위한 최첨단 신식 무기라고 정의할 수 있다. 맨손으로 탱크에 맞서기보다 강력한 무기를 장착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처럼, 영적 전쟁에서도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라는 무기를 갖추는 것이 마땅하다. 사도 바울은 이 영적 무기 가운데서도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라고 권면한다 (엡 6:17).

엡 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말씀은 은사가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붙잡아 주는 나침반과 같다. 아무리 강력한 은사라도 말씀의 기초 없이 사용되면 방향을 잃고 오히려 위험한 무기가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은사를 사모하는 사람일수록 말씀 묵상과 연구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며, 말씀과 은사가 함께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그 무기가 온전한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3. 은사는 왜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주어지는가?

고린도전서는 예언의 은사와 방언의 은사가 왜 주어졌는지를 분명하게 밝힌다 (고전 14:3-5).

고전 14:3-5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에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여기서 "덕을 세운다"는 표현은 의역이며, 원문은 "건축한다"는 뜻이다. 곧 자기를 건축하고 교회를 건축한다는 것이다. 이 건축한다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바나"인데, 이 단어가 성경에서 처음 등장하는 곳이 창세기 2장이다 (창 2:21-22).

창 2:21-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여기서 "만드시고"라는 표현이 바로 "바나", 곧 건축하셨다는 뜻이다. 여자는 빚어 만든 존재가 아니라 남자의 갈빗대로 지어진 건축물이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 건축의 원리를 몸의 비유로도 설명한다 (롬 12:4-5).

롬 12:4-5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몸에는 눈도 있고 손도 있고 발도 있지만, 그 모든 지체는 저마다 다른 기능을 가지고서도 한 몸을 세우기 위하여 함께 협력한다. 은사도 이와 같아서, 서로 다른 은사를 가진 성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감당할 때 비로소 교회라는 한 몸이 온전히 세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유독 사람만은 암컷이 아름답다. 대부분의 동물은 수컷이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며서 암컷의 관심을 끌지만, 사람은 반대로 여자가 아름답다. 이는 여자가 남자의 아름다운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자기 집을 허술하게 짓는 사람은 없듯이, 하나님도 아름답고 튼튼하게 여자를 지으신 것이다. 이와 같이 은사도 교회를 건축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다. 은사를 받았는데 교회를 나누고 편을 가르며 다툼과 분열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은사를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을 세워 주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자유롭게 하고 건강하게 해 주는 것, 그것이 건축한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다. 고린도전서는 은사가 성령의 나타나심이라고 하면서 그 목적을 이렇게 밝힌다 (고전 12:7).

고전 12: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각 사람에게 다른 직분을 주신 목적도 이와 동일한 선상에서 밝힌다 (엡 4:11-12).

엡 4:11-12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여기서도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 역시 앞서 살펴본 건축의 개념과 동일하다. 결국 직분이든 은사든 그 목적은 한결같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건축하는 데 있는 것이다. 베드로도 은사 받은 자가 마땅히 가져야 할 자세를 이렇게 권면한다 (벧전 4:10).

벧전 4: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은사를 받은 사람은 그 은사의 주인이 아니라 그것을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에 불과하다. 청지기는 맡은 것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권한이 없으며, 오직 주인의 뜻대로 사용해야 할 책임만 있을 뿐이다. 은사는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은사를 받은 사람이 그것을 자기 자랑의 수단으로 삼거나 신령한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면, 이는 은사를 주신 근본 목적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사랑이 없이 은사만 소유한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사도 바울은 단호하게 말한다 (고전 13:1-2).

고전 13:1-2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4. 은사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가?

고린도전서 12장은 성령의 은사를 아홉 가지로 나열한다 (고전 12:8-10).

고전 12:8-10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로마서 또한 은사의 다양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롬 12:6-8).

롬 12:6-8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예언할 것이요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이처럼 은사는 신비한 능력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섬김과 가르침과 구제와 긍휼까지도 포함하는 폭넓은 개념이다. 다만 이 시간에 살펴보는 초자연적 은사들은 영 분별을 포함하여 육신에도 표징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영 분별의 은사가 있는 사람은 어떤 영이 어떤 동물의 형상으로 나타났을 때, 그것이 어떤 성질의 귀신인지를 곧바로 알아차리는 경우가 있다. 뱀의 형상으로 나타난 영에게 곧바로 "혈기의 영"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보이는 식이다.

이 아홉 가지 은사는 크게 세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빛의 은사다. 이는 환하게 비추어 보는 은사로서, 지식의 말씀의 은사는 환상을 보는 은사이며, 지혜의 말씀의 은사는 그 본 것을 해석하는 은사다. 영 분별의 은사는 그것이 어떤 영인지, 곧 어떤 성질의 귀신인지를 분별하는 은사다. 사도 요한도 이 영 분별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권면하였다 (요일 4:1).

요일 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영의 세계는 그 자체로 매우 신비롭고 다양하여, 성령의 역사와 악한 영의 역사를 겉모습만으로는 쉽게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영 분별의 은사는 다른 어떤 은사보다도 신중하고 정확하게 훈련되어야 하며, 이 은사가 없이 다른 은사들만 앞세우면 자칫 거짓 영에게 미혹될 위험이 크다. 둘째는 불의 은사다. 여기에는 믿음의 은사, 능력 행함의 은사, 병 고침의 은사가 속한다. 이 믿음은 구원 얻는 믿음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날 것을 믿는 믿음이다. 주님도 이러한 믿음의 원리를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막 11:23-24).

막 11:23-2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주님은 또한 자신을 믿는 자는 자신이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그보다 큰 일도 하리라고 약속하셨다 (요 14:12).

요 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나보다 큰 일도 하리니

사도행전은 능력 행함의 은사가 실제로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행 19:11-12).

행 19:11-12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특별한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자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바울 자신이 직접 손을 얹지 않아도, 그의 몸에 닿았던 손수건과 앞치마만으로도 병이 떠나고 악귀가 나가는 역사가 일어났다. 이는 능력 행함의 은사가 사람의 방법이나 절차에 매인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성령의 주권적인 역사임을 보여 주는 사례다.

셋째는 말의 은사다. 방언, 방언 통역, 예언이 여기에 속한다. 사도 바울은 이 말의 은사들 가운데서도 특별히 예언을 사모하라고 권면하였다 (고전 14:1).

고전 14:1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방언은 자기 자신을 세우는 은사이지만, 예언은 교회 전체를 세우는 은사이기에 바울은 이를 더욱 귀하게 여기라고 가르친 것이다. 다만 방언이 통역과 함께 나타나면 그 방언도 예언과 마찬가지로 교회를 세우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방언의 은사가 최초로 나타난 사건은 오순절 성령 강림 때였다 (행 2:4).

행 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이때 제자들이 배운 적 없는 다른 나라의 언어로 말하자, 각 지방에서 모인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고향의 말로 하나님의 큰 일을 듣고 놀라워하였다. 이는 방언이 단순히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주권적으로 언어의 장벽을 허무시는 초자연적 역사임을 보여 준다. 이렇게 성령의 은사는 아홉 가지이지만 결국 빛의 은사, 불의 은사, 말의 은사 세 계열로 나뉜다. 그런데 병 고치는 은사와 같은 불의 은사는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 실제로 능력이 없는데도 자신에게 병을 고치는 은사가 있다고 착각하여 안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경우 그 사람의 병이 도리어 안수하는 자기 자신에게 옮겨 붙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몸에서 그것을 쫓아내지 못하고 계속 받아들이기만 하다가 몇 년 안에 병들어 심장에 압박이 오거나 심장 마비나 뇌출혈로 쓰러지는 경우까지 있다. 실제로 진정한 불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손가락 끝, 특히 손가락 끝마디가 붉은 특징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은사를 가진 자들은 그 능력을 실제로 사용해 보아야 그 은사가 성장하고 확증된다.

5. 사역과 은사 중 무엇이 먼저인가?

은사를 받는 순서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역이 먼저이고 은사는 그 뒤를 따른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회개와 천국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시대에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셔야 할 시대적 사명이다. 이 사명을 사람의 말로만 전해서는 사람들이 결코 넘어오지 않는다. 인간은 아무리 학식이 뛰어나고 논리가 정연해도 초자연적인 은사가 나타나지 않으면 좀처럼 굴복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회개와 천국 복음이라는 사명이 너무나 중요하였기에, 그 사명을 목숨 걸고 감당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그에 합당한 은사를 더해 주신 것이다. 이는 오랜 시간 기도원에서 기도해서 받은 것이 아니라, 사역의 중요성 때문에 하나님이 붙여 주신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회개와 천국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를 돕기 위하여 그 배우자에게도 불의 은사가 강력하게 임한 경우가 있으니, 이는 신학을 깊이 공부한 사람보다도 오히려 남편의 사역을 지키기 위해 헌신한 사람에게 능력이 임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원리는 다윗과 사울의 삶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은 그날 이후로 여호와의 영이 다윗에게 크게 감동하셨다 (삼상 16:13).

삼상 16:13 사무엘이 기름 뿔을 가져다가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반면 사울에게서는 여호와의 영이 떠나고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하였다 (삼상 16:14).

삼상 16:14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사울은 처음부터 예정된 은사가 없었기에 열 배, 백 배 더 노력해야 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고, 결국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였다. 반면 다윗은 처음부터 그러한 은사를 갖고 태어났기에 그 직무를 잘 수행하여 전쟁에 능한 자가 되었다. 결국 사역이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사역을 위하여 은사를 주시는 것이며, 이것이 디모데전서가 보여 주는 원리이기도 하다. 디모데도 안수를 통해 은사를 받았지만, 그 은사는 그가 감당해야 할 사역을 위하여 주어진 것이었다.

청년부 시절을 돌아보아도 이 원리는 그대로 확인된다. 그때 함께 신앙생활을 하던 한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유독 기도에 열심이어서 늘 기도 시간을 놓고 서로 경쟁하듯 기도원을 찾아다니곤 하였다. 그런데 정작 그 열심만큼 은사가 뚜렷하게 나타나지는 않았다. 반면 사역의 자리, 곧 누군가를 실제로 섬기고 복음을 전하는 자리에 먼저 나선 사람에게는 그 사역을 감당할 만큼의 은사가 뒤따라 임하는 것을 여러 차례 목격하였다. 이는 기도의 양이 은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기신 사역의 무게가 그에 필요한 은사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주님도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하신다는 원리를 분명히 말씀하셨다 (눅 12:48).

눅 12:48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이 말씀은 달란트 비유와도 그 맥락이 닿아 있다. 주인은 각 종에게 그 재능대로 달란트를 맡겼고, 많이 맡은 종에게는 그만큼 많은 결실을 기대하셨다 (마 25:14-15).

마 25:14-15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에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은사도 이와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무턱대고 은사를 나누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감당할 사역의 크기와 무게를 미리 아시고 그에 합당한 은사를 맡기신다. 그러므로 은사를 받지 못했다고 낙심하거나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에게 맡겨진 사역의 자리에 신실하게 서는 것이 순서상 옳은 태도다.

이 원리는 엘리사의 경우에서도 분명하게 확인된다. 엘리야가 승천하기 전, 엘리사는 그의 뒤를 이어 선지자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하여 갑절의 영감을 구하였다 (왕하 2:9-10).

왕하 2:9-10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이르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같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고

엘리사가 갑절의 영감을 구한 것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엘리야의 뒤를 이어 감당해야 할 사역의 무게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엘리사는 그 사역을 이어받은 후 엘리야보다 더 많은 이적을 행하였는데, 이는 사역의 크기에 합당한 은사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음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증거다.

6. 은사는 어떻게 사모하고 훈련해야 하는가?

은사를 받고 활성화시키는 데에는 몇 가지 길이 있다. 첫째는 앞서 살펴본 대로 사역에 헌신하는 것이다. 사역의 방향을 정확히 잡고 나아갈 때 그 사역에 필요한 은사가 임할 확률이 높아진다. 둘째는 회개다. 내 속에 악한 영이 많으면 하나님이 은사를 주시려 해도 그것이 붙었다가 떨어져 버린다. 악한 영을 내보내면 은사가 착착 달라붙는데, 은사는 주로 머리와 가슴과 손과 발, 이 네 군데에 자리를 잡는다. 셋째는 사모함이다. 사도 바울은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권면한다 (고전 12:31).

고전 12: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넷째는 기도다. 은사는 기도의 골방에서 훈련되고 다듬어진다. 야고보서는 의인의 간구가 역사하는 힘이 크다고 증언한다 (약 5:16).

약 5: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기도는 단순히 마음의 위로를 얻는 시간이 아니라, 영의 세계에 실제로 개입하여 역사를 일으키는 통로다. 꾸준한 기도의 훈련 없이는 은사가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없으며, 기도가 뒷받침되지 않은 은사는 쉽게 흔들리고 오용되기 마련이다. 특히 강력한 영적 세력을 상대할 때는 일반적인 기도만으로는 부족한 경우가 있다. 주님도 제자들이 쫓아내지 못한 귀신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 17:20-21).

마 17:20-21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그러나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이런 종류가 나가지 아니하느니라

이는 은사의 활성화가 단순한 지식이나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기도와 금식으로 자기를 쳐서 하나님께 복종시키는 영적 훈련과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사모함으로 은사를 훈련하는 구체적인 방법 중 하나는 상상이다. 영안이 열리기를 훈련받을 때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 있다고 생각하고 상상해 보는 훈련을 거치게 되는데, 이 상상 자체를 성령이 붙잡아 사용하시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맞는 확률이 낮지만 계속 훈련하면 점점 정확도가 높아진다. 이런 훈련은 결코 짧은 시간에 되는 것이 아니어서, 매일 삼십 분씩 훈련해도 처음에는 아무것도 못 보고 지나가는 날이 허다하다. 그럼에도 훈련을 거듭하면 나뭇가지 끝만 희미하게 보이던 것이 점차 전체가 보이게 되고, 흑백으로 보이던 것이 점차 색깔까지 보이게 된다. 디모데후서는 이러한 훈련의 필요성을 다른 표현으로 잘 보여 준다 (딤후 1:6).

딤후 1: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은사는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로 오지 않는다. 은사는 마치 한 조각의 작은 구름처럼, 혹은 손바닥만 한 작은 불씨처럼 찾아온다. 이것을 소중히 여기고 정성껏 다듬으며 훈련하지 않으면 그 불씨는 꺼져 버리고 만다. 반대로 그 작은 불씨를 소중히 여기고 계속 훈련하며 확대해 나가면 그 은사는 점점 더 강력하게 활활 타오르게 된다. 이러한 은사는 부모가 가지고 있으면 자녀에게도 물려질 확률이 매우 높다. 부모나 조부모가 한두 세대 전부터 영적 은사를 가지고 있었다면, 자녀는 비교적 쉽게 그 은사를 이어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먼저 앞서간 영적 스승들의 점검을 받는 일이다. 자기 혼자서 은사를 확신하는 것은 악한 영에게 속을 위험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영적으로 뛰어난 지도자에게 점검을 받으며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디모데전서는 이러한 지속적인 훈련의 자세를 다음과 같이 권면한다 (딤전 4:15).

딤전 4:15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은사는 단번에 완성되지 않으며, 전심전력하는 꾸준한 훈련을 통해서만 그 성숙함이 드러난다. 하루아침에 큰 은사를 얻으려는 조급함은 오히려 훈련을 방해하고 자기 확신에 빠지게 만들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은사를 사모하는 성도는 단기간의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오랜 시간 성실하게 자신을 훈련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훈련 과정에서 함께하는 사람들의 배경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은 어려서부터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 이른바 "제사파", 곧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섬겨 온 신앙의 뿌리를 가진 사람이고, 어떤 사람은 무속이나 우상 숭배의 배경을 가진 집안에서 자라 나중에 예수를 믿게 된 이른바 "무당파"인 경우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훈련 초기에는 오히려 무당파 쪽이 영적 감각이 예민하여 빠르게 무언가를 보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성령의 은사인지 아니면 과거에 익숙했던 다른 영적 감각의 잔재인지는 신중하게 분별해야 한다. 그래서 훈련 공동체 안에서는 매년 한 번씩 영적 지도자들과 함께 자신에게 나타나는 은사의 종류와 정확도를 점검하는 일종의 은사 확인표를 작성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이 은사 확인표를 통해 어떤 은사가 자라고 있는지, 어떤 은사가 오히려 흐려지고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점검할 수 있고, 자기 확신에 빠져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미리 막을 수 있다.

7. 은사를 오남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은사를 오용하고 남용했을 때 하나님이 그 은사를 다시 거두어 가시는지에 대한 질문이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하나님은 한 번 주신 선물을 다시 거두어 가지 않으신다. 은사는 헬라어로 카리스마타, 곧 선물이다. 선물로 준 것을 다시 달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문제는 그 선물을 처음 주신 목적대로 사용하지 않을 때 일어난다. 교회를 든든히 세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쓰지 않고, 도리어 돈을 버는 수단이나 자기 자랑과 명예를 위한 도구로 그 은사를 사용하게 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찬찬히 지켜보시다가 어느 순간 그 은사가 들어오고 나가는 문에 자물쇠를 채워 버리신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마술사 시몬의 이야기는 이러한 오남용의 위험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시몬은 사도들이 안수할 때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고 돈으로 그 능력을 사려고 하였다 (행 8:18-19).

행 8:18-19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베드로는 이러한 시몬의 태도를 단호하게 꾸짖었다. 은사는 결코 돈으로 사고팔 수 있는 상품이 아니며, 그것을 상업적 이익이나 개인적 명예의 수단으로 여기는 순간 이미 오남용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그렇게 잠긴 은사는 수호천사가 거두어 하늘의 은사 창고에 도로 가져다 놓는다. 그 창고는 축사의 은사, 치유의 은사 등 종류별로 방이 나뉘어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축사의 은사를 보관하는 방이 가장 줄어들지 않은 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사람을 굴복시키려는 힘이 아니라 참되게 하나님과 동행하며 진리를 좇는 자에게 온전히 사용되어야 할 은사이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은 주님이 각 교회의 행위를 낱낱이 알고 계시며, 그 행위대로 심판하신다고 경고한다 (계 2:23).

계 2: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이 말씀은 은사를 가진 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겉으로 아무리 화려한 은사를 나타낸다 할지라도, 그 마음의 동기가 하나님 앞에 정직하지 못하다면 주님은 그것을 낱낱이 살피시고 반드시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신다. 주님도 마지막 심판 때에 주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권능을 행하고도 버림받는 자들이 있을 것을 분명하게 경고하셨다 (마 7:22-23).

마 7:22-23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이 말씀은 초자연적인 능력을 행하는 것 자체가 결코 구원의 보증이 되지 못함을 분명히 보여 준다. 은사를 받은 자가 겸손히 자기를 낮추고 회개하며 영적 질서 안에 복종하지 않으면, 도리어 그 은사가 걸림돌이 되어 심판의 자리에 서게 될 수도 있다.

구약의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이야기도 거룩한 직분과 은사를 오남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그들은 제사장이라는 거룩한 직분을 맡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욕심을 채우는 데 그 직분을 이용하였다 (삼상 2:12,17).

삼상 2:12,17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서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컸으니 이는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결국 이 두 사람은 하루에 함께 죽는 심판을 받았다. 이는 거룩한 것을 맡은 자가 그것을 사사로운 욕심을 위해 사용할 때 하나님이 결코 좌시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엄중하게 보여 주는 사례이며, 은사를 맡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경고로 다가온다.

사도 바울도 이와 비슷한 원리를 불의 비유로 설명한 바 있다 (고전 3:12-15).

고전 3:12-15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은사를 금이나 은이나 보석처럼 귀하게 사용한 사람은 그 날에 상을 받겠지만, 나무나 풀이나 짚처럼 가볍고 부실하게, 곧 자기 유익과 명예를 위하여 사용한 사람은 구원은 받되 그 공적은 불에 타 없어지고 말 것이다. 은사 자체는 구원과 직결된 것이 아니지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였는가는 반드시 그 날에 드러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는 사실을 이 말씀은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또한 심는 대로 거둔다는 원리를 이렇게 밝혔다 (갈 6:7-8).

갈 6:7-8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은사를 육신의 정욕과 자기 자랑을 위하여 심는 사람은 결국 썩어질 것을 거두게 되지만, 성령을 따라 은사를 겸손히 사용하는 사람은 영원한 열매를 거두게 된다. 이는 은사의 오남용이 단순히 한때의 실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8. 오남용으로 닫힌 은사도 다시 회복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이미 닫혀 버린 은사는 다시 회복될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사사기에 기록된 삼손의 이야기가 이 질문에 대한 분명한 답을 준다. 삼손은 태어나기 전부터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바쳐진 존재였다 (삿 13:5).

삿 13:5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이스라엘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나님은 삼손에게 어마어마한 힘의 은사를 주셨고, 그는 사자를 염소 새끼 찢듯 찢고 나귀 턱뼈 하나로 천 명을 쳐 죽이는 초인적인 능력을 나타냈다. 그러나 삼손은 들릴라의 거듭된 유혹에 넘어가 결국 자신의 힘의 비밀을 스스로 발설하고 말았다 (삿 16:17).

삿 16:17 삼손이 진심을 드러내어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그 결과 그는 머리털이 잘리고 힘을 잃었으며, 블레셋 사람들에게 붙잡혀 두 눈을 뽑히고 옥에 갇혀 맷돌을 돌리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삿 16:19-21).

삿 16:19-21 들릴라가 삼손에게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의 힘이 없어졌더라 블레셋 사람이 그를 붙잡아 그의 두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 줄로 매고 옥중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이는 오남용의 결과로 은사의 문이 완전히 닫혀 버린 참혹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머리털이 다시 자라나고, 다곤 신전에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조롱거리로 끌려 나온 삼손은 마지막 순간에 진심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삿 16:28).

삿 16:28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에게 힘을 주사 나의 두 눈으로 말미암아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그러자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힘을 부어 주셨다.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그의 가슴에서 은사가 들어오는 문을 다시 열어 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삼손은 신전의 두 기둥을 무너뜨려 블레셋의 방백들과 백성을 함께 멸망시켰다 (삿 16:29-30).

삿 16:29-30 삼손이 집을 버틴 두 기둥을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껴 의지하고 삼손이 이르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들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삼손은 그렇게 생을 마쳤지만, 진심으로 회개하고 죽기까지 하나님의 원수를 갚겠다는 마음으로 나아갔을 때 하나님은 다시 그 힘을 사용하도록 허락하셨다. 이는 은사가 오남용으로 닫혔다 할지라도, 진실한 회개와 죽음을 각오한 헌신이 있다면 하나님이 다시 그 문을 열어 주실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실례다. 다만 이는 결코 가벼운 회개로 되는 일이 아니라, 생명을 건 자복과 철저한 낮아짐이 전제되어야 하는 일임을 함께 기억해야 한다.

삼손의 그 이후는 하늘의 시각으로 보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지금 하늘에서 삼손은 우락부락한 체격에 장군의 복장을 갖추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고 한다. 세상에서는 두 눈을 잃고 맷돌을 돌리는 조롱거리로 생을 마감한 것처럼 보였지만, 마지막 순간 진심으로 회개하고 하나님의 원수 갚음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놓았던 그 헌신을 하나님은 결코 헛되이 여기지 않으신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도 삼손을 믿음의 사람들의 명단에 당당히 포함시켰다 (히 11:32).

히 11: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이는 오남용으로 닫혔던 은사라 할지라도, 진실한 회개와 마지막까지의 헌신이 있다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결코 실패자로 기억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사람의 눈에는 비참한 종말로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눈에는 끝까지 붙잡은 믿음이 더 크게 기억되는 것이다. 선지자 요엘도 하나님께 진심으로 돌아오는 자에게는 메뚜기가 먹어 버린 세월조차 갚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욜 2:25).

욜 2:25 내가 너희에게 큰 군대 곧 내가 너희 중에 보낸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가 먹은 햇수대로 갚아 주리니

삼손이 잃어버린 세월과 힘은 결코 짧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잃어버린 세월조차 마지막 순간의 진실한 헌신으로 갚아 주셨다. 이는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약속이다. 은사를 오남용하여 오랜 시간 그 문이 닫혀 있었다 할지라도, 진심으로 돌이키는 자에게 하나님은 잃어버린 세월을 결코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으신다.

9. 나오며

이 시간에는 은사란 무엇이며 왜 우리에게 필요한지, 은사가 왜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주어지는지, 은사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지, 사역과 은사 중 무엇이 먼저인지, 은사를 어떻게 사모하고 훈련해야 하는지, 그리고 은사를 오남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며 그것이 다시 회복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은사는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초자연적 영적 선물이며,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최첨단 무기와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 은사는 자기 자랑이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를 건축하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기 위해 주어진 것임을 늘 기억해야 한다.

은사는 사역의 필요를 따라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경우가 많으며, 회개를 통해 내 속의 악한 영을 몰아낼 때 비로소 착실하게 자리를 잡게 된다. 그리고 더 큰 은사를 사모하며 꾸준히 훈련할 때, 작은 구름과 같고 작은 불씨와 같던 은사가 점점 더 강력하게 자라난다. 그러나 이 소중한 선물을 자기 유익이나 명예를 위해 오남용하게 되면, 하나님은 그 은사가 드나드는 문을 닫아 버리시고 그것을 다시 하늘의 은사 창고에 넣어 버리신다. 그럼에도 삼손의 예에서 보듯이, 진심으로 회개하고 생명을 건 헌신으로 다시 하나님께 나아가면 그 문은 다시 열릴 수 있다.

결국 은사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잠시 맡아 사용하는 청지기일 뿐이며, 그 청지기의 자세는 언제나 겸손과 감사와 회개로 채워져야 한다. 사역이 먼저이고 은사가 그 뒤를 따르듯이,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위한 헌신이 앞서고 그에 합당한 능력이 뒤따라오는 것이 마땅한 순서다. 이 순서를 거스르지 않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신실하게 사역의 자리를 지킬 때, 우리는 오남용의 위험 없이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온전히 활성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소중히 여기며, 늘 겸손한 마음과 순전한 동기를 품고서 그것을 오직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에만 사용해야 한다. 또한 홀로 자신의 은사를 판단하지 말고 영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의 점검을 받으며 겸손히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리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오남용함 없이 갈고닦아, 마지막 때에 악한 영과 싸우는 예리한 영적 무기로 온전히 사용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7월 03일(금) ·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