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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10. 04. (일)2026년 교회표어 「시대적인 사명완성을 위해 성전을 짓는 해」 (역대상 28장 20절)

금요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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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기도회 제1부 순서

[금요기도회] 왜 구약시대에는 귀신을 쫓아내라는 말이 없었던 것일까?(마태복음12:22~28)

마태복음 12:22~28정보배목사2026-10-02(금)조회 77읽는 시간 약 37분

설교핵심

이 설교는 성경에 등장하는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의 귀신 언급 차이를 역사적 배경과 영적 전쟁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구약에 귀신을 쫓아내라는 기록이 없는 이유가 당시에는 사탄의 세력이 아직 왕국을 이루어 전면적으로 활동하기 전이었고, 신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악한 영들이 세력을 확장하여 인류를 위협했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 따라서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철저한 회개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통해 내면의 악한 영들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통치를 삶 속에서 경험해야만 다가올 종말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

1왜 구약에는 귀신을 쫓아내라는 말이 없고 신약에는 축사가 등장하는가?2사탄·뱀·귀신은 본래 어떤 존재이며 서로 어떻게 구별되는가?3구약 시대 악한 영들은 무슨 일을 했으며 사탄의 왕국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4예수님은 왜 사탄을 먼저 제압하고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게 하셨는가?5사탄의 다섯 차례 추락은 어떻게 진행되는가?6귀신을 쫓아내는 일은 하나님의 통치와 성령의 내주에 어떤 관계가 있는가?7성도는 왜 회개와 전신갑주로 영적 싸움과 주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하는가?

강의 자료

그림 3 · 슬라이드 29
영적 지형과 우주적 전투설교 슬라이드 · 29장
설교 본문 금요기도회 왜 구약시대에는 귀신을 쫓아내라는 말이 없었던 것일까? (마 12:22-28) ·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구약성경을 읽다가 신약성경으로 넘어가면 뜻밖의 변화를 만난다. 말라기의 마지막 장과 마태복음의 첫 장 사이에는 종이 한 장밖에 없어 보이지만, 역사로는 약 400년이란 역사적인 시간이 들어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성경에서는 귀신을 쫓아내라는 명령을 찾아볼 수가 없는데,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자 귀신을 쫓아내는 일이 빈번하게 있다. 또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라는 사람들도 구약성경에는 보이지 않다가 신약에 갑자기 나타난다. 왜 이런 변화가 생겼는가?

이 물음은 단순히 '귀신'이라는 낱말이 어느 책에 몇 번 나오는가를 따지는 문제가 아니다. 사실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자신이 누구와 싸워야 하는지, 예수께서 무엇을 행하셨는지, 지금 우리는 왜 회개하며 악한 영을 내보내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씨름 상대가 혈과 육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악의 영들이라고 했다(엡 6:12). 그러므로 피와 살을 가진 가족이나 이웃을 원수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 속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을 분별하고 그들과 싸워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내 안에 성전 삼고 거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먼저 알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군지를 제대로 모른 채 귀신에게 명령하는 말만 하고 외친다고 영적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 주 예수께서는 광야에서 시험받으실 때에 과연 어떻게 사탄을 이기셨고, 결국 사탄로부터 십자가에서 무엇을 최종적으로 빼앗으셨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내쫓는 일의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구약에 축사의 명령이 없었던 까닭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악한 영을 이기신 뒤 오늘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 성도들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왜 구약에는 귀신을 쫓아내라는 말이 없고 신약에는 축사가 등장하는가?

구약 시대에 귀신이 전혀 없었는가? 그렇지 않다. 다만 구약 시대에는 귀신 세력이 아직 오늘날처럼 왕국을 이루어 사람들을 전면적으로 압박하는 단계가 아니었을 뿐이다. 그럼 왜 신약시대에 들어와서는 엄청난 숫자의 귀신들이 존재하게 되었고 사탄을 대장으로 하고 귀신들를 그 부하로 하는 사탄의 왕국이 생겨진 것일까?

천지만물을 창조하기 전에 먼저 창조되었던 고위급 천사들 중 한 명이 교만해져서 사탄이 된다. 그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다른 선한 천사들을 하나씩 꾀어 자기 편으로 모아 끌어들인다. 그리고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무렵에는 귀신의 왕(통치자)가 되어서 사람들을 괴롭힌다. 신약 무렵에 귀신의 세력이 어마어마하게 성장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이러한 사탄의 세력이 어떻게 확대되었는지를 잘 모르면, 구약에는 거의 없던 축사가 왜 신약에 들어와서 예수님의 중요한 사역으로 나타나게 되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성경을 처음 읽는 사람이 신약성경을 읽을 때에는 보통 신약 첫권인 마태복음부터 읽는다. 그리고 예수님의 족보를 지나 예수님의 일대기가 기록된 복음서를 쭉 따라서 읽다 보면, 이전에 전혀 나타나 있지 종교지도자들의 무리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만나게 된다. 그러므로 이들이 누군지가 궁금하다.

그리고 혹시 차례대로 구약성경부터 읽어온 성도라면 ‘과연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언제 생겼났지?’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까지 아무리 읽어보아도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극서은 B.C.400년경 활동했던 말라기 선지자 이후 예수님 시대(A.D.27) 사이에 그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질문을 귀신에게도 던져보아야 한다. 왜 구약성경에서는 거의 언급조차 되지 않던 귀신들이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온통 복음서에 귀신이 쫓아내었다는 이야기로 가득한가를 질문해야 하는 것이다. 구약성경과 신약 성경 사이에는 400년이란 시간이 흘러갔지만 갑자기 신약성경이 나오는 것처럼, 귀신의 세력들에게 있어서 엄청난 변화가 진행되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사이를 가리켜, 구약과 신약의 중간사(中間史, intertestamental history)라고 부른다. 구약성경의 마지막에 나오는 말라기 선지자가 활동하던 B.C.430년경은 바사 제국(B.C.539~331)이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활동하던 시대에는 바사 제국을 지나 헬라 제국(B.C.331~26)과 로마 제국(B.C.27~476)의 시대에 이른 후였다. 솔로몬의 첫 성전을 세운 뒤에 바사 시대에 스룹바벨의 둘째 성전이 세워진 시대(B.C.516년)를 지나고, 헬라 제국의 말기쯤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같은 집단이 등장했다. 요세푸스의 기록을 읽어보면, 이 시기의 역사와 귀신들의 우두머리에 관한 이야기를 살피는 데 도움이 된다. 말라기에서 마태복음으로 바로 넘어간다고 해서 그 사이의 세월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귀신도 이와 마찬가지다. 신약에서 귀신을 가리키는 말은 '다이모니온'이다. 그러나 이 용어가 신약성경에 많이 등장한다고 해서 악한 영이 그때 처음 생겼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구약 시대에 있었던 악신과 신접한 영들, 사람을 꾀는 뱀들을 함께 살펴야 한다. 왜냐하면 구약 시대에는 귀신들이 있기는 있었으나 신약 시대만큼 많았던 것은 아니었다. 이전부터 이어져 온 악한 영들의 출현과 활동이 예수님의 사역 때에 본격적으로 많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약에는 귀신이 없었다’고 말해서도 아니 되고, ‘구약에도 신약과 똑같은 규모의 축사가 필요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

마태복음 12장에서 바리새인들은 예수께서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난했다(마 12:24). 여기서 ‘왕’으로 번역한 말은 통치자 또는 지배자를 가리키는 아르콘이라는 말이다. 뒤에 그의 나라가 언급되기에 왕이라고 옮겼지만, 그 핵심은 사탄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다스린다는 데 있다. 신약성경은 그 왕국이 이미 형성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마 12:24 바리새인들은 듣고 가로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사실 예수께서 오시기 전까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른 신을 섬기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지키라고 하셨다. 악한 영이 조금씩 활동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세력이 아직 신약 때처럼 바글바글한 왕국을 이루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는 그들을 그대로 놔두고 사람을 죄와 저주에서 건져 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주님은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고치셨다. 이 변화는 구약 성도를 하나님께서 소홀히 여기셨기 때문이 아니라, 악한 영의 세력과 그의 축출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이 아직 그 단계에 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3. 사탄·뱀·귀신은 본래 어떤 존재이며 서로 어떻게 구별되는가?

악한 영들의 우두머리는 누군가? 그는 귀신들의 왕(통치자)인 바알세불로서(마 12:24), 오늘날 '사탄 마귀'라고 불리는 자다. 요한계시록은 그를 '큰 용, 옛 뱀, 마귀, 사단'이라고 부른다(계 12:9). 성경에서 사탄 마귀는 '시험하는 자)마 4:3)', '이 세상의 임금(통치자)(요 12:31)', '이 세대의 신'(고후 4:4), '참소자'(계 12:11), '거짓말의 아비(요 8:44)',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히 2:14)', '어둠의 세상 주관자(엡 6:12)' 등으로도 불린다. 이름이 여럿이라고 서로 다른 우두머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람을 꾀며 자기 밑의 영들을 거느리는 같은 존재인 사탄 마귀를 여러 각도에서 부르는 명칭일 뿐이다.

계 12:9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그렇다면 신약성경에서 갑자기 출현하고 있는 귀신이란 어떤 존재인가? 귀신은 한 마디로 타락한 하늘의 천사들을 일컫는 말이다. 요한계시록 16장은 그 비밀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왜냐하면 아마겟돈 전쟁을 읽으키려고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들이 나오는데, 그들을 귀신의 영이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계 16:13-14). 그렇다. 용모양을 하고 있는 것과 짐승과 사람의 모양을 하고 있는 더러운 영들이 곧 귀신들인 것이다. 여기서 더러운 영이란 처음부터 더러운 영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하게 지으셨지만 범죄하여 더러워진 것이다.

그렇다면 천사는 어떤 존재들이며 왜 창조되었는가?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천사들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천군을 노래하고, 그들이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았다고 분명하게 가르쳐 준다(시 103:20-22). 골로새서에서는 보이는 것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 정사와 권세도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되었다고 말한다(골 1:16). 욥기의 장면에는 땅의 기초를 놓을 때 하나님의 아들들이 기뻐했다는 말도 있다(욥 38:4-7). 결국 천지만물을 창조되기 전에 하나님께서 당신을 수종들게 하기 위해서 창조한 존재로서 지혜롭고 능력있는 천사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창세기 1장에는 천사 창조의 기사가 나오지 않는데, 어떻게 천사가 보이는 물질세계를 만들기 전에 창조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창세기 2장 1절에 나와 있다. 왜냐하면 한글성경은 일곱째 날이 되자 ‘천지와 만물’이 다 완성되었다고 번역하고 있지만,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하늘들과 땅과 그 모든 군대’가 완성되었다고 나온다. 이 표현은 하늘의 군대인 천사들이 이미 창조 세계에 포함되어 있음을 말씀하고 있다(왕상 22:19, 느 9:6, 시 33:6, 103:21). 특히 천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행할 능력을 받았다는 시편의 묘사와, 보이지 않는 권세도 그리스도 안에서 지어졌다는 골로새서의 말씀을 연결해 보면, 악한 영들이 가진 능력은 처음부터 자기의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하나님께 거역하는 데 사용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사탄마귀가 타락했고 이어서 그를 추종하는 천사들이 하나 둘씩 타락하면서 신약시대의 사탄의 왕국이 생겨난 것이다.

그렇다면 사탄의 하수인들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성경 전체를 보면 그들은 뱀과 귀신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다면 타락한 천사들과 뱀들과 귀신들은 어떻게 다른가? 필자는 하늘에서 하나님을 섬기다가 타락한 천사들이 귀신이 된 것이고, 지구(땅)에 파송되어 사람을 섬기라고 보내어진 천사들이 타락하여 뱀이 되었다고 본다. 이것은 필자가 제시하는 일종의 학설일 뿐, 성경에는 뱀과 귀신, 이렇게 두 계열의 이름표가 처음부터 정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구별을 따라서 성경을 읽어 보면, 창세기 3장과 활동하게 된 뱀들과 신약에서 사람 속에 들어가 역사하는 귀신들을 이해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두 부류 모두 사탄의 지배 아래 있는 악한 영들이지만 그들의 기원과 그들의 활동이 약간 다른 것이다.

오늘날 태백산에 올라가 보면, 영안이 열린 사람들의 눈에는 거대한 용의 형상을 볼 수 있다. 실로 거대하다. 그런데 이러한 용급의 영들은 태백산뿐 아니라 지리산, 계룡산, 삼각산에도 있다. 과거에는 잘 몰라서 용은 오직 한 명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다. 거대한 용들이 참 많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12장에 나오는 '옛 뱀, 용, 사탄, 마귀, 온 천하를 꾀는 자'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사탄 마귀라고 지칭하는 바로 그놈이다.

그기고 ‘사탄 마귀는 사람 속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도 경계해야 한다. 이것은 베뢰아 귀신론을 잘못 가르친 것이다. 성경을 보라. 가룟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간 장면이 나오고, 예수께서 베드로를 향해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신 장면도 나온다(눅 22:3; 마 16:23). 사탄은 요한계시록 16:13-14에 보면, 귀신이다. 사탄은 이들 귀신들의 우두머리이고, 그 아래에 귀신들이 있고 또한 창세기 3장 이후부터는 뱀들이 있다. 우리가 이러한 악한 영들의 조직과 계급을 배우는 목적은 귀신들의 존재를 듣고 그들을 무서워하라고 배우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들이 어디에서 왔고 무엇을 빌미로 역사하고 있으며 어떤 권세 앞에 굴복하는지 분별하여 그들을 쫓아내기 위함이다.

4. 구약 시대 악한 영들은 무슨 일을 했으며 사탄의 왕국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그렇다면 구약의 악한 영들이 행하는 두드러진 일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죄를 지은 인간을 참소하는 일이었다. 그것의 대표적인 이야기가 욥기서에 나오고 스가랴서에 나온다.

먼저, 욥기서를 보자. 욥기 1장과 2장에 보면, 이 세상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하나님의 어전 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사탄을 보게 된다. 이때 그의 역할이 어떤 것이었는지가 나오는데, 그는 하나님 앞에 서서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겠느냐고 따지는 존재로 나온다(욥 1:6-11). 그런데 그 시기는 아브라함이 활동하던 시대였으니 약 B.C.2091년경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로부터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쓰였던 스가랴서를 보면, 사탄이 여호수아를 대적하려고 그의 오른편에 서서 참소하는 장면이 나온다(슥 3:1-2). 이때는 B.C.530~510년경의 일이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만 해도 사탄 마귀가 이미 악한 마음을 품고 사람을 고발하고 있어도,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서 참소하는 일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은 증거한다.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신 뒤에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다고 말이다(계 12:10).

그러므로 구약시대의 귀신들이 하나님을 참소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이 여전히 하나님의 종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허용된 ‘야당’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구약시대에 귀신들은 사람에게서 정죄할 일을 찾고 잘못을 들추어 하나님 앞에 고발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허락이 떨어져야 활동했다. 결국 하나님은 사탄이 욥을 치도록 허락을 하시는데, 그때에 비로소 사탄은 욥의 소유와 자녀와 몸에까지 차례로 손을 댔다(욥 1:12-19; 2:4-7). 그러므로 구약의 사탄이 약해서 아무 일도 못한 상태에 있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의 활동은 참소와 유혹, 허락받아 공격하는 자로서 나타났고, 그 사이에 더 많은 천사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계 12: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그러므로 구약 시대에는 귀신도 없었고 그래서 그들이 사람을 공격한 일도 없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범죄 후에 여호와의 신이 떠난 사울에게 악신이 역사했다고 구약성경은 증언해 주고 있다(삼상 16:14). 또한 사울 왕이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통해서 사무엘(귀신이 사람의 모습을 한 것)을 불러올리는 장면도 나온다(삼상 28:7-20). 이 장면을 통해서도 우리는 구약 시대에 귀신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귀신들 외에도 타락한 천사들의 한 부류인 뱀들도 창세기 3장 이후 곧바로 사람의 몸속에 들어가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하와의 모태에 침투한 뱀들이 가인 속에 들어가니, 그가 혈기와 분노, 시기와 질투심으로 나타나지 않았던가!(창 3:1-6; 4:3-8). 그리고 살인의 영을 불러들여 동생 아벨을 죽이지 않았던가! 그렇다. 아담의 범죄 이후 악한 영으로서 뱀들은 사람의 죄를 틈타 곧장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다만 구약의 기록은 그들의 계급이나 활동에 대해서 신약처럼 자세히 이야기해 주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면 사탄이 어떻게 자신의 세력을 키웠는가? 요한계시록은 그 비밀을 우리에게 들려주는데, 붉은 용의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졌다고 말하기 때문이다(계 12:3-4). 이때의 별들은 천사들을 가리킨다. 그리하여 사탄은 오랜 기간 동안 선한 천사들을 꾀어서 자기 부하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을 하루아침에 다 얻은 것은 아니지만, 그는 구약 시대 초기부터 조금씩 조금씩 선한 천사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 당시에는 부하들이 가득 찬 왕국을 이루었다. 예수님의 공생애 시대에는 귀신의 우두머리가 있었고, ‘사단의 나라(왕국)’가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마 12:24-26).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알려진,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 사탄이 하늘에서 추방되었다는 말은 사실인가? 그래서 그 사건 때문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해졌다는 설명이 과연 맞는 이야기인가? 아니다. 왜냐하면 욥기서에서는 그가 여전히 하나님 앞에 올라가서 어전회의에 참석하여 어떤 명령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욥 1:6).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는 승천하신 남자아이(예수님)에 관한 장면 뒤에 미가엘과 용의 전쟁, 그리고 용의 추방을 보여 준다(계 12:5, 7-10). 그러므로 창조 초기에 있었던 도덕적 타락과 하늘 출입이 막히게 되었던 추방 사건은 서로 구별해야 한다. 구약에는 사탄이 참소하고 자신의 세력을 모으던 때였다가, 예수님의 승천 이후에는 그 자리가 사라졌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다윗의 인구조사(B.C.975년)와 전염병의 이야기도 이 영적 세계를 살필 때 좀 거론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삼하 24:1, 15-17; 대상 21:1, 14-17). 왜냐하면 사실 구약시대만 해도 하나님께서 범죄한 사람의 죄값을 물으실 때 선한 천사를 쓰시기도 하시고, 사탄과 같은 악한 영들을 사용하기도 하셨기 때문이다. 또한 욥이 겪은 연이은 손실과 질병을 생각하면, 사탄이 구약에서는 오로지 말로만 참소했다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에게 주어진 자리와, 그가 자기 부하를 늘려 예수님 당시 자신의 왕국을 이룬 상태를 시간 순서대로 잘 살펴 보아야 한다.

5. 예수님은 왜 사탄을 먼저 제압하고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게 하셨는가?

왜 예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귀신을 제압하는 것을 먼저 하셨는가? 그것은 그들을 그대로 내버려둔 채 사람들을 이끌어 천국에 들여보내는 일이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귀신들을 제압할 필요가 있었고 특히 그들의 왕인 사탄 마귀를 이겨야 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공생애를 보면, 광야로 가서 사탄과 맞붙어 싸우는 일로 시작된다. 예수께서는 일부러 사십 일을 금식하신 뒤 육체가 가장 약한 상태를 갖고 계셨다. 그러자 즉시 이를 알아본 시험하는 자 마귀가 다가와서 예수님께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고 유혹했다(마 4:1-4). 배고픔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자기 말에 순종하여 종으로 만들려는 시험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기록된 말씀으로 그의 시험을 세 번 다 물리치셨다(마 4:1-11). 이것은 사탄을 향한 첫 승리로서, 곧 앞으로 그의 부하들인 귀신들을 내쫓기 위한 싸움의 시작이었다. 만약 그날 예수께서 사탄에게 지셨다면 그의 지배 아래 있는 귀신들을 자유롭게 몰아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왜 예수께서는 가장 먼저 귀신의 우두머리를 제압하셔야 했는가? 그것은 강한 자를 먼저 결박한 뒤에야 그 집의 세간을 빼앗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마 12:29). 사탄이 사람들을 붙들고 자기 나라의 세간처럼 삼고 살고 있었으나, 주님은 그를 먼저 결박한 다음 사람들을 건져 내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 첫째, 회당에서 가르치셨고, 둘째는,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으며, 셋째는, 귀신을 쫓아내면서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셨다(마 9:35). 특히 예수께서 병든 자를 고치실 때에는 귀신 들린 이들로부터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든 이들을 고쳐 주셨다(마 8:16-17). 필자가 겪은 사실은 축사 현장에서 본 병든 사람들 속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영들이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질병을 치료할 때에는 겉에 나타난 증상만 다루지 말고 그 근원인 귀신의 문제부터 살펴야 한다. 모든 병이 귀신 하나를 쫓아내는 방법으로만 낫는 것은 아니지만, 귀신이 사람의 육체 속에 들어가는 것이 질병의 심각한 원인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역시 열두 제자를 둘씩 둘씩 내보내시면서 더러운 귀신을 제어할 권세를 주셔서 보내셨다(막 6:7). 그러자 제자들은 회개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쳤다(막 6:12-13). 칠십 명이나 또는 칠십이 명으로 전해지는 그 뒤의 더 확대된 제자들도 파송되었고 그들도 나가서 귀신을 쫓아보니, 주의 이름에 귀신이 항복한다고 보고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능력보다 오히려 그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고 하셨다(눅 10:17-20). 마가복음에는 믿는 자가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는 표적도 기록되어 있다(막 16:17-18).

막 6:7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

그렇다고 예수 이름을 믿는 모든 이가 실제 삶에서 이런 제자들과 똑같이 축사를 했던 것 같지는 않다. 우선 제자들과 초대교회의 귀신축사 기록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에는 베드로와 빌립의 사역, 빌립보에서 점치는 여종에게서 귀신을 내쫓은 바울의 일만이 축사 사역으로 나온다(행 5:16; 8:7; 16:16-18). 바나바나 누가, 디모데가 귀신을 쫓아냈는지에 대해서는 성경은 침묵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는 권세를 주셨다는 말씀과 그 권세를 실제로 사용하고 다룰 줄 아는 문제는 서로 구별해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들은 그리스도에 대해 더 배우고 더 말씀으로 무장하여 악한 영들과 싸울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의 광야의 승리에 이어, 십자가에서는 예수님의 더 결정적인 승리가 있었다. 그때 예수께서는 죄가 없으셨지만 죽음에 넘겨지셨다. 사탄은 죄의 삯인 사망을 붙들고 사람을 공격할 수 있었지만, 죄 없으신 주님을 죽임으로 인하여 불법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정사와 권세를 무력화하여 그들을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리고 승리(개선행진)하셨다(골 2:14-15). 여기서 예수께서 귀신들의 ‘계급장을 떼었다’는 표현은 악한 영들이 자신의 능력을 상실했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그들의 권세가 주님의 앞에서 무장 해제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즉 그들은 무장해제당해 계급장은 떼어졌지만 여전히 그들의 능력은 막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귀신의 세력에 맞설 수 있는 것은 예수께서 믿는 자들에게 주신 권세 때문이다.

고을에 있는 관리가 아무리 힘이 세어도 임금이 내린 마패를 지닌 암행어사를 만나면 권세의 관계는 뒤집힌다. 예수 이름의 권세가 바로 그와 같은 것이다. 귀신들은 타락했고 계급장은 떼어졌어도 그들의 능력은 여전히 강하다. 그러나 사탄의 왕국을 묶어버릴 수 있는 권세가 성도들에게 주어진 채 있다. 이 사실을 모르고 ‘나가라’는 말만 반복한다면, 상대의 위세 앞에서 쉽게 흔들릴 것이다. 고로 먼저 강한 자를 이기셨던 주님을 알아야 한다.

골 2:15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6. 사탄의 다섯 차례 추락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그러므로 사탄의 추락을 한 날의 한 사건으로만 읽는다면 구약의 참소자의 역할과 예수님의 승천 후 추방 장면을 서로 연결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사탄의 추락의 과정은 크게 다섯 차례로 구별해야 한다.

첫째는 창조된 뒤 마음에서 일어난 도덕적 타락이다. 하나님은 천사들을 선하게 지으셨다. 에스겔 28장의 두로 왕에 관한 표현 속에서 기름 부음을 받았던 그룹 천사로서 그의 불의함을 읽는다면 그의 교만이 드러난다(겔 28:14-17). 지음받던 날의 완전했던 그가 그날 불의를 드러낸 것이다(겔 28:15). 왜 그랬을까? 그것은 그가 창조되던 날부터 자기 아름다움과 지혜를 보며 마음이 높아졌고 천사들이 흠모하니 하나님처럼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사야의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는 말도 그때 사탄의 모습과 연결된다(사 14:12-14). 이것이 바로 그가 먼저 마음에 품은 대적이었다. 그리고 이후 천사들을 거느리고 찬양했던 자리에서 그 영광을 자기 영광으로 돌리려 했던 것이 교만의 모습이다. 마음속 교만이 뒤이어 천사들을 꾀는 행동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둘째는 다른 천사들을 끌어들여 이 세상에서 왕국을 세우는 추락이다. 성경에서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처소를 떠난 천사들에 관한 유다서의 말씀과 붉은 용이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당긴 장면을 함께 보면, 도덕적인 타락을 했던 사탄 마귀가 어떤 일을 추진했을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유 1:6; 계 12:3-4). 사탄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시려는 영광을 시기하여 사람을 죄로 유혹했으며 하나님을 대적했다. 그리고 이런 불만을 품은 천사들을 미혹하고 모아 서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었다. 그러나 구약 시대에는 여전히 하나님의 종이었다. 그래서는 그는 하나님 앞에서 죄지은 사람을 참소하는 일을 했다. 그때는 아직 하늘에서 완전히 쫓겨난 때가 아니었으므로, 도덕적 타락만 있었을 뿐 하늘에서 쫓겨나는 추방을 당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셋째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사망의 권세를 빼앗기고 정사와 권세가 무장 해제된 추락이다(골 2:14-15; 계 1:17-18). 사탄마귀가 지혜로웠다고 하나 모르고 있었던 사실은 예수님을 죽여 없애버리면 세상 모든 것이 자기의 것이 될 줄 알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죄 없는 예수님을 죽임으로 인하여 그가 가진 사망 권세를 빼앗기고 말았다. 그래서 죽임당한 예수께서는 3일 만에 불법을 행한 사탄에게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빼앗아 가셨다. 이때 십자가에서의 승리는 전쟁에서 패한 자의 계급장을 뜯어버리고 개선 행진을 하는 모습과 같다. 그래서 그때 이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는 주 예수님에게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아무리 귀신의 능력이 세게 느껴지더라도 그리스도들이 그것을 이길 수가 있는 것이다.

넷째는 예수께서 부활하고 승천하신 뒤 사탄과 그의 사자들이 하늘에서 내쫓긴 추락이다. 요한계시록 12장을 보면,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아이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올라간 장면이 나온다. 그 남자는 예수님이시다. 그런데 그 후에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운다(계 12:5, 7-9). 그러자 그때까지 그리스도인의 형제들을 밤낮 참소하던 자가 더는 하늘에 있을 곳을 얻지 못한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을 통하여 용과 그의 천사들을 하늘에서 아예 쫓아버리신다. 이때 모든 타락한 천사들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다. 그 뒤 사탄은 예수님을 죽인 벌로 인하여 천 년 동안(예수님의 승천 이후 재림까지의 시기를 상징적으로 일컫는 말), 무저갱(無底坑, abyss)에 결박된 채 있다. 다만 그는 자신의 부하들을 땅으로 보내 활동하고 있을 뿐이다(계 20:1-3). 그러므로 예수님의 승천 이후 재림 때까지의 기간은 사탄 마귀가 성도들을 유혹하고 죄짓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기간일 뿐이다. 그러므로 지금 현장에서 사역하는 사역자들이 한 번도 사탄 마귀와 부딪힌 일이 없다고 말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다만 그의 졸개들과 마주칠 뿐이다.

다섯째는 마지막에 사탄이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는 완전한 추락이다. 이때는 주님이 재림하실 때이다. 주님이 재림하기 전까지 사탄은 무저갱에 결박된 채 있다. 그곳이 일종의 임시 형무소인 셈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면 영원한 불못의 형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지금 사탄 마귀는 자기들의 부하인 귀신들을 올려 보내 삼킬 자를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에서는 그가 천 년이 지난 뒤 잠시 풀려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그는 잠깐 풀려날 것이다. 그러나 곧바로 예수께서 재림하시어 모든 것을 수습하실 것이다. 결국 그는 짐승과 거짓 선지자와 더불어 불못에 던져지게 될 것이다(계 20:7-10). 고로 지금의 시기는 그 마지막 때로서 사탄 마귀가 무저갱에서 올라오기 직전인 것이다.

7. 귀신을 쫓아내는 일은 하나님의 통치와 성령의 내주에 어떤 관계가 있는가?

그런데 예수께서 오셔서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셨다. 그리고 그 일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이 땅 위에 임한 표지라고 말씀하셨다(마 12:28). 그러므로 예수께서 당시 귀신을 내쫓았던 이유는 어떤 기이한 현상을 보여 주려는 데 있지 않았다. 악한 영에게 사로잡혀 있던 자들에게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사람이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였지만, 여전히 육체는 죄와 사망의 법에 끌려가고 있다면, 그 몸은 여전히 귀신의 통치가 가득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회개하여 자기 몸에 들어 있는 악한 영들을 내보내는 일은 하나님의 왕국을 이 땅에서 미리 맛보는 놀라운 일이다.

마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왜 예수께서 부활승천 이후에 보혜사 성령을 믿는 자들 속에 넣어 주시는가? 그것은 보혜사 성령이 없이는 귀신을 상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약 시대에는 귀신들이 얼마 없었다. 그러므로 성령의 활동도 보편적이지 않았다. 몇몇 사사나 왕 그리고 선지자 같은 사람에게 임하여 어떤 일을 하게 했다. 그러나 사역자라도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면 위에 내려와 있게 했던 성령을 거두어 가기도 하셨다. 사울에게서 여호와의 신이 떠난 일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하겠다(삼상 16:14).

그러나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의 성도들의 속에는 생명 주는 영으로 오신 예수님이 안에 계신다(고전 6:17; 15:45). 왜냐하면 신약 시대에 들어와서 악한 영의 세력이 너무 커지고 방대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믿는 자들 속에도 내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내주하고 계신 창조주를 의지하면 귀신의 계급이나 위세 때문에 우리가 눌릴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그 권세를 가졌기에 우리가 귀신에게 떠나갈 것을 선포한다고 해서, 죄를 통하여 들어온 영이 저절로 떠나지는 않는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나라를 과연 어디에서 경험할 수 있는가? 바로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와 내 육체 속에 귀신이 붙들고 있는 부분을 그대로 둔 채, 내가 하나님의 나라에 속했다고 말만 해서는 안 된다. 고름이 꽉 들어차 있는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고약만 바르는 격이다. 고름을 빼내야 새살이 차오르듯이, 죄를 회개하고 그 죄에 붙은 악한 영이 떠나게 해야 하나님의 통치가 실제 나의 삶에도 임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12장 28절을 이번 말씀의 중심 본문으로 잡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축사는 천국의 통치를 몸으로 미리 맛보게 하는 귀한 일이다.

그럼 왜 귀신들은 떠나가라고 명령해도 나가지 않는가? 그것은 그 영들도 우리의 죄를 틈타 합법적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죄를 그대로 둔 채, 그들에게 ‘나가라’고만 명령하면 그 영도 떠나갈 이유가 없기 때문에 버틴다.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에 하나님께서 뱀에게 흙(아파르)을 먹으라고 하신 말씀과 흙(아프로)로 지어진 사람의 육체를 연결하면 이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를 알 수 있다(창 2:7; 3:14). 한 차례 강한 사역으로 영이 괴로워서 떠난 듯한도 할지라도, 본인이 회개를 안 했으면 다시 들어온다. 예수께서도 더러운 귀신이 나갔다가 일곱을 더 데리고 돌아오는 일을 말씀해 주셨다(마 12:43-45). 그러므로 쓰러졌다는 현상이나 큰 소리를 질렀다는 사실만으로 귀신이 떠나갔다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

혹시 사역자가 강한 불로 악한 영을 밀어내는 경우가 있어도 죄의 자리가 남아 있다면 영은 다시 돌아온다. 내보내는 순간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떠나갔지만 다시 들어온다. 그러므로 축사로 단번에 영들을 내보겠다는 말만 믿고 회개를 게을리하면, 자신의 몸은 잠시 가벼워졌다가 더 무거워질 수 있다. 그러므로 사역을 받기 전에 자기 죄를 살피고 거듭거듭 자신의 죄를 자백해야 한다. 회개는 귀신을 내보내기 위한 형식이 아니라, 그 영이 붙잡고 있던 죄의 근거를 없애는 일이기 때문이다.

필자는도 성경말씀을 암송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고 선포하며 금식해 보았다. 그런데도 그 행위만으로는 속에 있는 영이 나가지 않는다. 또 병든 이를 위해 사역해 보니, 그 사람 속에 필자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영들이 들어 있음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체험은 말씀 자체가 아니라, 말씀을 붙들고 현장에서 왜 회개가 필요한지를 배우는 과정이다. 병이 깊어져 힘이 다 빠진 다음에는 회개하기조차 버겁다. 조금이라도 건강하고 시간이 있을 때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해야 한다.

8. 성도는 왜 회개와 전신갑주로 영적 싸움과 주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하는가?

먼저 싸움의 상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바울은 혈과 육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와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의 악의 영들을 상대한다고 했다(엡 6:12). 그렇다고 그들에 대한 지식만 쌓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알고 하나님의 전신갑주(全身甲冑, full armor of God)를 힘입어야 한다. 진리의 허리띠와 의의 흉배, 평안의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호와 공격을 함께 준비해야 한다(엡 6:10-17). 무장하지 않고 무턱대고 귀신과 쓰우면 그 공격을 감당하기 어렵다.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 무장에는 회개(悔改, repentance)가 빠질 수 없다. 요한일서는 죄를 자백할 때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한다(요일 1:7-9). 먼저 죄를 깨닫고 자백해야 영이 떠날 합법적인 근거가 생긴다. 그 다음에 사역자의 도움으로 영을 내보낼 수 있다. 회개 없이 축사만 받고 영이 강제로 떠난다면, 문밖에서 기다리다가 다시 들어와 더 괴롭힐 수 있다. 자기가 지은 죄를 되풀이했다면 그 횟수와 들어온 영의 수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진실하게 거듭 회개해야 한다. 회개 기도문으로 한 열다섯 번 정도 회개하고 한 번 안수받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설교에서 필자가 이천육백 번 회개한 자를 예로 든 것은 회개의 숫자를 축사의 끝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적은 회개로 많은 죄의 자리를 한 번에 해결했다고 단정하지 말라는 권면이다.

또한 한 번의 안수에만 모든 기대를 걸어서는 안 된다. 많은 죄를 오랫동안 반복해 놓고 짧은 시간에 몇 차례 회개한 뒤 영이 모두 떠났다고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회개 횟수를 채우기만 하면 저절로 해결된다는 뜻도 아니다. 지은 죄를 진실하게 인정하고 돌이키면서, 그 죄를 범한 반복과 영이 들어온 과정을 가볍게 보지 않아야 한다. 진실한 자백과 반복 회개가 함께 있어야 귀신이 잘 떠나간다. 그 과정에서 예수의 피가 죄를 씻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는 약속을 붙들어야 한다(요일 1:7, 9).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축사의 핵심은 죄를 자백하고 예수의 피로 깨끗함을 받는 것이다. 사람의 머리에 기름을 바르거나 ‘나갔다’고 선포하거나 사람을 밀어 쓰러뜨리는 것으로 축사가 된 것은 결코 아니다. 필자는 이런 현상 뒤에 영이 그대로 남아있거나 돌아오는 사례를 지켜 보아 왔다. 중요한 것은 죄의 자리가 처리되어 악한 영이 합법적으로 떠나고 하나님의 통치가 삶에 임하게 하는 일이다. 회개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죄를 돌이키는 실제 행위여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 때를 생각하면 이 준비는 더 절실하다. 요한계시록은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귀신의 영들이 나와 아마겟돈의 전쟁을 위해 세상을 모으는 모습을 보여 준다(계 16:13-16). 지금 천국의 땅에서 천년왕국이 진행 중에 있기에 지금 현재 사탄은 무저갱에 결박되어 있지만, 마지막 때가 되면 그의 세력이 드러나 큰 핍박을 할 것이다(계 20:1-7). 주님의 공중 강림 때 준비된 알곡 성도는 나팔절의 실현으로 아마겟돈 전쟁에 참여하도록 소집될 것이다. 그때까지 죄와 악한 영을 안고 적그리스도의 압박 앞에 서지 않도록 하려면 지금 익어야 한다. 주님이 언제 오시든 그분을 사랑하고,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맡겨진 사람에게 충성하며, 주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감당해야 한다.

요한계시록의 다섯째 나팔 때 무저갱이 열리고 황충이 나오는 장면을 생각하면(그때가 적그리스도가 세상을 통치하기 시작하는 때이다), 지금 영적 싸움을 미루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계 9:1-11). 황충의 공격과 적그리스도의 때가 오기 전에 모든 성도는 알곡으로 익어야 한다. 공중으로 들림받는 성도는 마지막 전쟁을 피하려고 도망가는 이들이 아니라 주님이 부르시는 전사들이기 때문이다. 그 싸움에 나아가기 전에 자기 속의 간첩 같은 영을 회개로 내보내야 한다. 회개와 축사, 말씀의 무장은 이 마지막 부르심을 위한 현재의 준비다.

9. 나오며

구약 시대에 축사의 명령이 두드러지지 않았던 까닭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탄의 세력을 제압하신 과정을 살펴보았다. 사탄과 뱀과 귀신은 같은 말로 뭉칠 존재가 아니며, 구약의 참소와 신약의 추방도 한순간의 사건으로 합칠 수 없다. 사탄은 교만으로 타락하고 천사들을 꾀어 왕국을 세웠으나, 주님은 광야에서 그를 이기고 십자가에서 그 권세를 벗기셨다. 승천 뒤에는 하늘에서 쫓겨나고, 마지막에는 불못에 던져질 것이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도는 악한 영의 위세에 눌려 있을 이유가 없다. 다만 죄를 붙든 채 축사의 말과 현상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 거듭 진실하게 죄를 자백하고, 말씀과 전신갑주로 무장하여, 하나님의 통치가 자신의 육체와 삶에 임하도록 해야 한다. 주님의 재림과 마지막 싸움을 바라보며 맡겨진 자리에서 충성해야 한다. 그리하여 회개로 정결하게 되어 주님의 통치를 경험하고 끝까지 그분께 충성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10월 03일(토) ·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