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론(42)] 그리스도의 예표인 율법과 실체인 복음의 공통분모와 목표는?(요일4:8~12)

본 설교는 율법과 복음을 상반된 개념이 아닌 천국 입성이라는 동일한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유기적인 관계로 설명합니다. 저자는 율법의 의식법은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그림자로서 종료되었으나, 도덕법인 십계명은 신자에게도 유효하며 이를 통해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것이 구원의 필수 과정임을 강조합니다. 진정한 믿음은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구체적인 행함으로 완성되어야 하며,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러한 열매를 맺는 자만이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지 않고 최종적인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결국 복음의 핵심은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이기는 자의 삶을 사는 것이며, 이를 위해 끊임없이 회개와 순종의 삶을 견지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일깨워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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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3 · 슬라이드 111.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은 무리한 강요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먼저 된 희생에 대한 자발적 순종인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목숨 다해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은, 타락한 인간이 도저히 지킬 수 없는 무리한 짐을 억지로 강요하시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턱대고 사랑을 요구하시기 전에, 친히 가장 먼저 상상할 수 없는 희생적인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한일서 4:10)
성경의 진리를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히 피조물 중 으뜸인 천사나 대리자가 아니셨다. 창조주이신 '한 분 하나님'께서 친히 육신을 입고 '아들'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이 땅에 오신 것이다(사 9:6). 그래서 예수께서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고 말씀하셨으며,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고 명확히 선포하신 것이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사야 9:6)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요한복음 14:9)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요한복음 10:30)
그리고 아들로 오신 한 분 하나님께서는 모리아산에서 자신을 기꺼이 제물로 내놓았던 이삭의 경우처럼, 자신의 몸을 기꺼이 인류를 위한 화목제물이자 속죄제물로 내어주셨다(막 10:45, 딤전2:5).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말씀하신 예수께서는 기꺼이 우리 인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준 것이다(요15:12-13). 그리고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는지 질문을 했던 율법사에게 예수께서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하여, 강도 만난 자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희생한 사마리아인처럼, 누가 과연 이웃사랑을 실천한 자인지를 보여주셨다(눅 10:25-37). 그렇게 하는 사람이 바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가복음10:4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디모데전서 2:5-6)
2. 구약의 성도들과 달리, 신약의 성도들에게 '보혜사 성령'을 내주하도록 부어주신 특별하고도 영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왜 구약 시대에는 없었던 '보혜사 성령의 내주하심'이 신약 성도들에게는 필수적인 장치로 주어졌을까? 이는 인류의 역사와 영적 환경이 근본적으로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구약 시대는 아직 사탄 마귀(루시퍼)와 타락한 천사들이 하늘에서 완전히 쫓겨나 이 땅을 본격적으로 장악하기 전이었다. 따라서 구약의 성도들은 성령의 내주하심 없이도, 율법의 말씀을 경외하며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강인한 정신력만으로도 천국에 들어갈 만한 행함의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신약 시대는 다르다. 예수님의 승천 이후 하늘에서 쫓겨난 수많은 귀신과 뱀들이 성도들의 육체와 삶의 터전에 가득 들어차 우는 사자처럼 미혹하고 공격하는 치열한 영적 전쟁터가 되었다. 이 끔찍한 귀신들의 득실거림 속에서 연약한 인간의 결심만으로는 도저히 죄의 유혹을 이기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끝까지 실천할 재간이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속에 '생명 주는 영이신 보혜사 성령'을 파송하셨다. 우리 안에서 죄를 깨우쳐 주시고, 귀신과 싸울 능력을 주시며, 진리의 길로 인도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이 없다면, 신약의 성도들은 단 한 명도 천국 문턱을 넘지 못한 채 마귀의 밥이 되고 말 것이다.
3. 우리가 율법의 요구(완전한 사랑과 행함)를 다 이루지 못해 구원에서 탈락할 위기에 처했을 때, 천국 문을 열게 하는 마지막 생명줄은 무엇인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21)
이토록 엄위하신 주님의 말씀 앞에 우리는 절망할 수밖에 없다. 내 속에는 여전히 시기와 질투, 혈기와 음란의 영이 똬리를 틀고 있어 완전한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가 너무나 버겁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행함이 부족하여 구원에서 탈락할 위기에 놓인 우리에게, 천국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게 만드는 마지막 생명줄은 과연 무엇인가?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요한계시록 22:14)
그것은 바로 '철저한 회개'다. 율법의 거울에 비친 나의 참담한 죄악과, 내 속에 기생하며 나를 죄로 이끄는 더러운 귀신들의 실체를 깨닫고 십자가의 보혈 앞에 납작 엎드리는 것이다. 비록 내가 행함으로 온전한 의를 다 이루지 못했을지라도(이미 예수님을 믿고 칭의인이 되엇으며 생명책에 자신의 이름이 여전히 기록된 상태이므로), 매일매일 눈물을 쏟으며 "주여, 내가 죄인입니다. 내 속의 악한 영을 내쫓아 주옵소서"라며 자신의 두루마기를 빠는 자에게 하나님은 천국 문의 빗장을 열어주시는 것이다. 사랑의 행함이 부족하다면, 최소한 피를 토하는 회개라도 있어야 턱걸이로라도 구원을 지켜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4. 나오며
우리는 율법과 복음이 결코 대립하는 적이 아님을 확인했다. 십계명이라는 영원한 도덕법은 내가 얼마나 처절한 죄인이며 내 속에 얼마나 많은 악한 영들이 웅크리고 있는지를 폭로하는 고마운 진단서다. 구약의 율법이 "이 사랑을 행하라"고 명령했다면, 신약의 복음은 십자가에서 먼저 희생하신 예수님의 사랑과 성령의 능력을 공급해 주며 "이제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독려하는 거룩한 생명줄이다.
이제 반쪽짜리 구원론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믿기만 하면 과거와 미래의 모든 죄가 용서된다는 거짓 평안을 내던지고, 날마다 십계명의 날 선 검 앞에 나 자신을 세우자. 내 육체 속에 합법적으로 들어와 진을 치고 있는 조상의 우상 숭배의 죄와 나의 자범죄를 매일매일 회개 기도문으로 자백하여 씻어내어야 한다. 진정한 이기는 자는 죄짓지 않는 완벽한 자이기보다는, 내 안의 성령이 책망하실 때 즉각적으로 무릎 꿇고 악한 영을 토해내는 자다. 이 치열한 회개와 피 묻은 십자가 사랑의 실천을 통해, 마침내 우리 모두가 행위책의 부끄러운 기록을 다 지워내고 새 예루살렘 성에 넉넉히 입성하는 영광의 상속자들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란다.
2026년 03월 13일(금) · 정보배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