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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10. 05. (월)2026년 교회표어 「시대적인 사명완성을 위해 성전을 짓는 해」 (역대상 28장 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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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론(82)] 천국에서 성도들의 신분은 어떻게 구별되는가?(수21:1~42)

정보배 목사2026-05-04조회 2,218읽는 시간 약 39분

설교핵심

이 설교는 천국에서 성도들이 누리는 신분과 등급의 차이를 성경 구절을 바탕으로 상세히 설명합니다. 천국은 기본적으로 눈물과 고통이 없는 영광스러운 곳이지만, 성도들은 이 땅에서의 준비에 따라 왕의 그룹과 제사장 그룹으로 나뉘어 서로 다른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정보배 목사는 천국의 실상을 강조하며, 성도들이 입는 의복의 종류나 거주하는 저택의 규모가 현세에서의 사명 감당과 신앙생활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철저한 회개를 통해 영적으로 깨끗해져야만 이러한 천국의 진리를 올바르게 깨달을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들이 천국 입성 이후의 영원한 상급을 소망하며 현세에서 최선의 신앙적 노력을 다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강의 자료

그림 1 · 슬라이드 30
The Heavenly Matrix (2)설교 슬라이드 · 30장

1. 들어가며

천국에 관한 오해가 한국 교회 강단을 오랫동안 지배해 왔다. 그 오해의 핵심은 단순하다. 천국은 그저 들어가기만 하면 끝나는 곳이라는 생각이다. 일단 입성만 하면 모두가 똑같이 누리고, 똑같은 지위에 서고, 똑같은 영광을 향유한다는 막연한 통념이 성도들의 의식 깊숙이 박혀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천국의 실상과 정면으로 어긋난다.

성경은 천국에 두 종류의 큰 신분 계열이 존재한다고 명백하게 증언한다. 왕국 계열과 제사장 계열이다. 그리고 그 각각의 계열 안에 다시 네 단계의 등급이 존재한다. 이 구조는 임의의 분류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에게 땅을 분배하실 때부터 이미 정확하게 모형으로 보여 주신 것이다. 여호수아 21장의 레위 지파 성읍 분배는 단순한 고대사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천국에서 제사장 그룹이 어떻게 상을 받게 되는가에 대한 영적 청사진이다.

천국에서 누리는 것은 두 종류로 나뉜다. 모두가 동일하게 누리는 것이 있고, 신분에 따라 차등으로 누리는 것이 있다. 동일한 것은 눈물 없음, 사망 없음, 애통 없음, 곡함 없음, 아픔 없음, 저주 없음, 밤 없음이다. 생명수의 강과 생명나무의 열매도 모든 입성자가 함께 누린다. 그러나 거주 환경과 의복과 직무와 영광의 등급은 명백히 다르다. 어떤 사람은 옷방과 장신구방을 따로 갖춘 저택에 산다. 어떤 사람은 단벌 흰옷에 돗자리 하나뿐인 곳에 거한다. 이 차이는 임시적이지 않다. 영원하다.

문제는 이것이다. 이 땅에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천국에서의 신분이 결정된다. 천국에 가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천국에서 받는 모든 것은 이 땅에서 준비한 결과로 주어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천국의 신분 구조를 알아야 한다. 왕국 계열과 제사장 계열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각 계열의 네 등급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24장로가 누구이며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14만 4천 명이 누구이며 그 자리에 어떻게 들어가는지 알아야 한다.

이 구조를 모르면 천국을 준비할 수 없다. 막연히 예수 믿고 교회 다니다가 천국 가면 다 끝이라는 식의 사고로는 도저히 영원한 영광의 차이에 대비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천국에서 성도들의 신분이 어떻게 구별되는지, 그리고 그 신분 구조가 여호수아 21장의 땅 분배와 어떻게 정확히 연결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천국 입성자 모두가 동일하게 누리는 것은 무엇인가

천국에 들어간 자가 신분과 무관하게 동일하게 누리는 항목들이 있다. 이것은 입성 자체에 따라오는 기본 조건이다. 요한계시록 21장 4절은 그 첫 번째 차원을 명확히 기록한다.

(계 21:4)

계 21:4 또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여기서 사라지는 것은 다섯 가지다. 첫째, 눈물이다. 둘째, 사망이다. 둘째 사망이 더 이상 다스리지 않는다. 셋째, 애통이다. 원통하고 억울한 감정이 사라진다. 넷째, 곡함이다. 눈물 짓는 일이 없어진다. 다섯째, 아픔이다. 성 안에는 아픈 것이 없다. 약국이 필요 없는 곳이다. 그러나 성 밖은 다르다. 성 밖에는 아픔이 있고 다침이 있다. 이 구분을 놓치면 안 된다.

(계 21:23)

계 21: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해와 달이 필요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 해의 역할은 세 가지다. 빛을 비추는 것, 열을 주는 것, 광선으로 소독하는 것이다. 자외선이 살균기 역할을 한다. 그러나 천국에는 이 세 가지가 모두 필요 없다. 하나님의 영광이 빛이고, 어린양이 등불이다. 적당한 온도가 항상 유지된다. 히터가 없고 에어컨이 없다. 빛이 항상 있어 어둠이 없다.

(계 22:1~3)

계 22: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계 22:2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계 22: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생명수의 강이 흐른다. 생명나무가 강 좌우에 있다. 한 나무에서 열두 가지 종류의 열매가 달마다 맺힌다. 열두 가지가 한 나무에 동시에 열린다. 한 달이 지나면 그 달의 열매가 사라지고 다음 달의 꽃이 피어 또 열매가 맺힌다. 따 먹으면 즉시 또 생긴다. 떨어진 자리에 다시 솟아난다. 배 같은 것, 사과 같은 것, 천도복숭아 같은 것, 표주박처럼 생긴 것까지 다양하다.

만국을 소성하는 잎사귀가 있다. 만국은 성 밖에 있는 백성을 가리킨다. 성 밖 백성을 치료하기 위한 잎사귀다. 성 안 사람은 치료가 필요 없다. 아픔이 없기 때문이다.

저주도 없다. 이것이 결정적이다. 지금 이 땅의 99퍼센트의 성도가 저주 아래 살고 있다. 질병, 가난, 신기, 막힘이 저주의 정체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저주를 다 짊어지셨다고 했지만, 그것이 자동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요일 1:9)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한일서 1장 9절이 비결이다. 밥상은 차려져 있다. 그러나 숟가락을 들어 떠먹어야 입에 들어간다. 회개하는 자에게서 저주가 떠난다. 회개하지 않으면 예수 믿어도 저주가 그대로 남는다. 그런데 천국에 들어가면 다르다. 거기서는 모두가 공평하게 저주가 없다. 회개의 수고 없이도 저주의 통로가 닫혀 있는 곳이다.

밤도 없다. 원문은 "더 이상 밤이 없다"는 표현이다. 더 이상 저주가 없고, 더 이상 밤이 없다. 어린양과 하나님이 빛이시기 때문이다.

(계 22:17)

계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목마름이 없다.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가에서 목말라 했던 그 갈증이 천국에는 없다. 인생은 항상 목마르다. 그러나 천국에 들어가면 그 목마름이 영원히 사라진다.

천국에서 먹는 음식에 대해서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천국에서는 동물을 먹지 않는다. 어떤 책에는 천국에 갔더니 생선 튀김을 해 주더라는 식의 기록이 있다. 이것은 거짓이다. 물고기가 말하는 곳에서 어떻게 물고기를 잡아 먹겠는가. 천국에서 먹는 것은 과일과 떡과 견과류 종류다. 회개가 안 된 사람이 환상을 본다고 헛것을 본다. 무당의 영이 들어 있는 상태에서 천국을 본다고 하니 다 가짜 환상이 보이는 것이다. 천사가 예수님 앞에서도 천하만국을 만들어 보여 줬다. 마태복음 4장에 기록된 그대로다. 거짓을 보여 주는 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회개가 우선이다. 깨끗해야 진실을 본다.

이 모든 것은 입성 자체에 따라오는 기본 누림이다. 돗자리 한 장 깔고 사는 자도 이 모든 것을 누린다. 단벌 흰옷을 입은 자도 생명나무 열매를 따 먹는다. 입성만 하면 이 항목들은 보장된다. 그러나 입성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누릴 수 없다. 성 밖에는 저주가 그대로 있고, 노동의 수고가 있고, 다침이 있다. 천국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해야 한다. 천국의 기본 누림은 모든 입성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다. 사망 없음, 애통 없음, 곡함 없음, 아픔 없음, 저주 없음, 밤 없음, 목마름 없음이다. 생명수의 강이 흐르고, 생명나무가 매월 새로운 열매를 맺는다. 빛이 항상 있고, 온도가 항상 적당하다. 옷이 빨 필요 없이 깨끗하고, 음식이 풍성히 공급된다. 이것은 모두 동일하다. 이것만 해도 이 땅의 어떤 영광과도 비교할 수 없는 차원이다. 그래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이미 엄청난 은혜다. 그러나 동시에 그 안에서 영원한 차등이 시작된다는 것이 결정적이다.

3. 동일한 누림 위에 어떤 차등이 발생하는가

동일하게 누리는 것이 있다고 해서 모두가 똑같은 영광을 향유하는 것이 아니다. 입성 후의 환경과 직무와 의복은 신분에 따라 명확하게 갈린다. 이 차등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집의 격차가 있다. 어떤 성도는 분수대를 갖춘 저택에 산다. 분수대의 물고기를 바라보기만 해도 은혜가 임하는 그런 집이다. 어떤 성도는 자기 집이 아예 없다. 돗자리 한 장이 그가 누울 수 있는 전부다. 자기 집이 없으니 다른 이를 초청하지도 못한다. 천국의 교제는 집에서 벌어진다. 집이 없는 자는 교제의 주체가 될 수 없다. 누군가의 초청을 받아 그 집에 가서 음식을 대접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자기가 누군가를 자기 집으로 부를 수는 없다. 영원히 손님이지 주인이 될 수 없는 자리다.

집을 가진 자는 손님을 초청한다. 천사가 접시를 들고 마치 웨이터처럼 돌아다니며 음식을 나른다. 풍성하게 차린 식탁에서 즐거운 교제가 벌어진다. 이런 자리를 마련할 수 있는 자가 있고, 그 자리에 초청받기만 하는 자가 있다. 영원한 차이다.

먹고 입고 마실 것에는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누림의 격차는 분명하다. 단벌 흰옷만 입고 사는 자가 있고, 옷방을 따로 가진 자가 있다. 더 뛰어난 자는 옷방 한 채와 장신구방 한 채를 별도로 가진다. 덜 뛰어난 자는 옷과 장신구가 한 방에 함께 들어 있다. 다양한 종류의 드레스가 있다. 귀고리가 있고, 목걸이가 있고, 발찌가 있고, 허리 벨트가 있고, 신발이 있다. 모임이 열릴 때마다 옷을 갈아입고 가는 자가 있고, 늘 같은 흰옷만 입고 가야 하는 자가 있다.

천국에서는 모임이 자주 열린다. 그때마다 품위 있는 옷으로 갈아입고 참석할 수 있는 자와, 단벌로 가야 하는 자의 차이가 영원히 드러난다. 그때 가서 후회한다. 이 땅에 있을 때 조금 더 준비할 걸 그랬다고.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다.

옷에 관해서는 또 한 가지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천국의 옷은 빨 필요가 없다. 더러워지지 않는다. 물이 묻어도 금방 마른다. 무엇이 묻어도 흔적 없이 사라진다. 세탁기가 필요 없는 곳이다. 그러나 그것은 옷의 기본 속성일 뿐이다. 옷의 종류와 격은 신분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직무의 격차도 있다. 어떤 자는 왕으로 다스리고, 어떤 자는 제사장으로 섬기고, 어떤 자는 일꾼으로 시중든다. 왕노릇 하는 자가 따로 있다. 제사장 직무를 수행하는 자가 따로 있다. 14만 4천의 자리에 인침을 받은 자가 따로 있다. 24장로의 자리에 앉는 자가 따로 있다.

이 모든 격차의 뿌리는 단 하나다. 이 땅에서 어떻게 준비했는가. 천국에 가서는 아무것도 새로 얻을 수 없다. 거기서 받는 모든 것은 이 땅에서 준비한 만큼이다. 그래서 천국의 신분 구조를 알아야 한다. 모르고 가면 돗자리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알아야 준비한다. 준비해야 차지한다.

이 땅에서 주의 종으로 부지런히 사역하는 자에게는 한 가지 표지가 나타난다. 마음에 풍성함이 가득하다. 항상 신선하다. 어제 한 말씀이 오늘 또 쏟아지고, 오늘 받은 깨달음이 내일 또 새롭게 다가온다. 어디를 찔러도 말씀이 흘러나오는 자가 있다. 근심 걱정이 끊이지 않을 자리에서도 평안이 임한다. 50억의 성전 건축을 앞두고도 걱정이 없는 자가 있다. 손이 작아 걱정이 클까 봐 주님께서 친히 환상으로 위로하시는 자가 있다. 천국에 가신 어머니가 "아들아 걱정하지 마라"하고 직접 격려하는 자가 있다.

이런 풍성함이 이 땅에서 미리 임한다. 천국의 풍성함이 이 땅까지 흘러내린다. 주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음성이 들린다. 금덩이가 매주 새끼처럼 묶인 채 손에 쥐여진다. 사역의 영광이 이 땅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런 자에게 천국의 좋은 자리가 예비되어 있다.

4. 왜 천국의 신분은 왕국과 제사장 두 계열로만 나뉘는가

천국의 신분은 단 두 가지 큰 줄기로만 갈린다. 왕국 계열과 제사장 계열이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의 결론이다.

(계 1:5~6)

계 1: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계 1:6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원문은 "왕국과 제사장들로 삼으셨다"이다. 한 계열은 왕국이고, 다른 한 계열은 제사장들이다. 제사장이 복수형이다. 두 계열로 정확히 나뉜다.

여기서 한 가지 중대한 오해를 깨야 한다. 모든 성도가 천국에서 왕이 되는 것이 아니다. "왕국"이라고 했지 "왕"이라고 하지 않았다. 왕국 안에는 왕만 있는 것이 아니다. 왕이 있고, 그 아래 장관이 있고, 그 아래 백성이 있고, 그 아래 일꾼이 있다. 왕국이라는 말은 그 전체 계열을 가리키는 것이지 모두가 왕이 된다는 뜻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제사장도 복수다. 제사장 계열 안에 대제사장이 있고, 제사장이 있고, 레위인이 있고, 그 아래 나무 패며 물 긷는 자가 있다. 모두가 대제사장이 되는 것이 아니다.

두 계열의 분기점은 분명하다. 왕국 계열에 들어가는 자는 전쟁에서 승리한 자다. 이 땅에서 영적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악한 영을 쫓아내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자기 자신을 투입한 자다. 갈렙처럼 아낙 자손이 있다 할지라도 주님이 주셨다고 하면 반드시 빼앗아 차지하는 자다.

제사장 계열에 들어가는 자는 다르다. 이것은 자기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시고 보내신 자다. 출애굽 시대에 아론과 그의 아들들만 제사장이 될 수 있었다. 유다 지파는 안 되고, 시몬 지파도 안 되고, 오직 레위 지파만 가능했다. 하나님께서 정하셨기 때문이다.

이 땅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선택하시어 특정한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보내신 자들이다. 그 사람들은 제사장 계열로 올라간다. 둘째는 그냥 이 땅에 태어나서 복음을 듣고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여 들어온 자들이다. 그 사람들은 왕국 계열로 올라간다.

누구든지 전쟁에 싸워 승리하면 왕국 계열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누구나 제사장이 될 수는 없다. 제사장은 하나님께서 정하셨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통로가 있다. 그것이 나실인 제도다. 이것은 뒤에 다시 다룬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짚어야 할 사실이 있다. 제사장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책임자가 된다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제사장의 길은 무릎이 닳도록 기도하는 길이다. 한 영혼을 책임진다는 것은 자기 영혼이 갈리는 일이다. 주일 예배에 출석할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그 마음에 근심이 끊이지 않는다. 왜 저분이 안 나왔지 하는 걱정이 끊어질 날이 없다. 간이 상해서 일찍 죽는 사역자가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책임자의 길은 영광스럽지만 동시에 가장 무거운 길이다.

그러나 그 길의 끝에 영원한 영광이 있다. 천국에 가면 그 길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길이었는지가 드러난다. 이 땅에서의 고생이 천국에서의 자리로 환산된다. 무릎 꿇고 기도한 분량이 천국에서의 거리로 결정된다. 영혼을 위해 흘린 눈물이 천국에서의 의복과 장신구로 환산된다.

그래서 제사장의 길로 보냄을 받은 자는 그 길에서 흔들리면 안 된다. 힘들다고 멈추면 안 된다. 부담스럽다고 도망치면 안 된다. 그 길을 위해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그 길을 가지 않으면 다른 무엇도 의미가 없다. 그 사명만이 그 사람의 존재 이유다.

5. 두 계열의 네 등급은 각각 무엇인가

왕국 계열에는 네 등급이 있다. 첫째는 왕이다. 가장 높은 자리다. 다스리는 자다. 영원히 왕노릇 하는 자다. 둘째는 장관이다. 왕을 보좌하여 통치에 직접 참여하는 대신 계급이다. 오늘날의 장관에 해당한다. 셋째는 백성이다. 왕국 안에서 일반 시민으로 거주하는 자다.

넷째는 일꾼이다. 왕국 내에서 시중드는 종의 신분이다.

제사장 계열에도 네 등급이 있다. 첫째는 대제사장이다. 사도 바울 같은 자, 사도 베드로 같은 자가 이 위치에 있다. 한 시대의 영적 주축으로 보냄을 받은 자다. 한 시대의 영적 사령탑 역할을 수행하는 자리다. 둘째는 제사장이다. 디모데, 바나바 같은 자가 이 위치에 있다. 대제사장 위치의 종을 보좌하며 사역의 한 축을 감당하는 자다. 한 지역 교회의 핵심 사역을 책임지는 자리다. 셋째는 레위인이다. 성막 안에서 다양한 직무를 맡았던 자들이다. 유디아 같은 자, 순두게 같은 자가 이 위치에 해당한다. 사도들과 동역하며 교회를 떠받친 자들이다. 넷째는 나무 패며 물 긷는 자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성소 봉사를 떠받치는 종이다. 그러나 이들도 제사장 계열에 속한다. 이것이 결정적이다. 비록 가장 낮아도 제사장 계열의 종은 왕국 계열의 일반 백성보다 더 영광스러운 직무를 가진다. 신분의 격은 계열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계 5:8~10)

계 5:8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계 5:9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계 5:10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여기서도 분명하다. 나라와 제사장이다. 왕국 계열과 제사장 계열이 함께 언급된다. 모두가 왕노릇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왕노릇 할 자가 따로 있다.

(계 20:6)

계 20:6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

첫째 부활에 참예한 자가 제사장이 되어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 한다. 첫째 부활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첫 열매로 부활하여 승천하신 이후, 재림 때까지 개인적으로 부활하여 올라간 자들이 받는 부활이다. 둘째 부활은 예수님 재림 때 한꺼번에 일어나는 부활이다. 첫째 부활에 속한 자가 제사장 계열의 본진을 이룬다.

(계 22:3~5)

계 22: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계 22:4 그의 얼굴을 볼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계 22: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리로다

세세토록 왕노릇 하는 자가 누구인가. 3절에 명시되어 있다. "그의 종들"이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종들이다. 곧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이 땅에 보내신 제사장 계열의 종들이다. 이들이 왕국 계열의 정점인 왕직과 제사장 직무를 동시에 수행하는 자리에 오른다.

6. 여호수아의 땅 분배는 천국 신분과 어떻게 1:1로 연결되는가

여호수아 시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분배받은 사건은 단순한 역사가 아니다. 천국에서의 신분 배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정확하게 보여 주는 모형이다. 하나님께서 구약의 역사 속에 천국의 청사진을 새겨 두셨다.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지파가 좋은 땅을 차지했다. 가나안 정복의 중심을 이끈 유다 지파가 남쪽의 광대한 영토를 받았다. 에브라임 지파가 그 위 중앙을 차지했다. 므낫세 지파가 에브라임 위에 자리를 잡았다. 이 세 지파가 가나안 정복 전쟁의 주력이었기 때문이다. 위와 아래의 가장 중심을 이 세 지파가 차지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것이 왕국 계열의 모형이다. 영적 전쟁에 자기 자신을 투입한 자, 갈렙처럼 아낙 자손이 살고 있어도 주님이 주셨다고 하면 발로 밟고 들어가 빼앗는 자가 천국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한다. 갈렙은 여든다섯이 되어서도 아낙 자손을 쫓아내고 헤브론을 차지했다. 다만 기랏세벨은 다 빼앗지 못해서, 이를 빼앗는 자에게 자기 딸 악사를 주겠다고 약조했다. 그 결과 동생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그 땅을 빼앗고 악사를 아내로 얻었다. 발로 밟는 땅을 주신다고 약속하셨기에, 갈렙이 밟지 않은 기랏세벨까지 옷니엘이 발로 밟아 차지한 것이다.

이것이 영적 원리다. 발로 밟는 만큼 주신다. 싸우는 만큼 차지한다. 왕국 계열의 등급은 이 땅에서의 영적 전투의 강도와 정확히 비례한다.

이제 제사장 계열을 보아야 한다. 제사장 계열의 모형이 바로 여호수아 21장이다.(수 21:1~3)

수 21:1 때에 레위 사람의 족장들이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 족장들에게 나아와 수 21:2 가나안 땅 실로에서 그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모세로 명하사 우리의 거할 성읍과 우리의 가축 먹일 그 들을 우리에게 주라 하셨었나이다 하매 수 21:3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을 따라 자기의 기업에서 이 아래 성읍들과 그 들을 레위 사람에게 주니라

레위 지파는 정복 전쟁의 주력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거주할 성읍이 주어졌다. 다만 그 방식이 다르다. 다른 지파처럼 한 영토를 통째로 받지 않았다. 각 지파의 기업 가운데서 성읍과 들을 떼어 받았다. 이것이 제사장 계열의 모형이다. 제사장 계열은 별도의 영토를 갖지 않는다. 그 대신 모든 지파의 한가운데 흩어져 거주하면서 성소의 직무를 수행한다.

레위 지파 안에서도 등급이 있었다. 아론의 자손에게 가장 좋은 성읍이 주어졌다. 그 가운데도 도피성이 포함된 헤브론 같은 성읍이 있었다. 그핫 자손, 게르손 자손, 므라리 자손에 따라 받은 성읍의 위치와 격이 달랐다. 이것이 제사장 계열 내부 등급의 모형이다.

대제사장에 해당하는 자는 가장 좋은 위치의 성읍을 받았다. 일반 제사장은 그 다음 위치를 받았다. 레위인은 그 아래의 직무를 맡았다. 나무 패며 물 긷는 자는 가장 낮은 봉사 자리에 섰다. 그러나 그 모든 등급의 사람이 결국 한 계열에 속한다. 제사장 계열이다.

천국에서도 동일하다. 사도 바울처럼 한 시대의 영적 주축으로 보냄을 받은 자는 대제사장 위치에 거한다. 디모데와 바나바처럼 그 사역의 동역자로 보냄을 받은 자는 제사장 위치에 거한다. 한 지역 교회에서 평생 충성으로 봉사한 자는 레위인 위치에 거한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성소를 떠받친 자는 나무 패며 물 긷는 자의 위치에 거한다. 그러나 모두가 한 계열에 속한다. 제사장 계열이다.

이 1:1 매칭을 놓치면 안 된다. 유다 지파, 에브라임 지파, 므낫세 지파의 중심부 영토 차지가 천국 왕국 계열의 좋은 자리에 해당한다. 레위 지파가 각 지파 가운데서 성읍을 받은 것이 천국 제사장 계열의 자리 배정에 해당한다. 갈렙이 헤브론을 차지한 것은 영적 전투를 통해 왕국 계열의 정점에 오른 자의 모형이다. 옷니엘이 기랏세벨을 빼앗은 것은 발로 밟는 자에게 주시는 천국의 원리를 보여 주는 그림이다.

여기서 더 정밀한 매칭을 짚어야 한다. 천국에는 꽃밭이 있다. 그 꽃밭에 들어가 사는 자가 있다. 변두리에 거주하는 자도 있다. 성문 가까운 좋은 위치에 사는 자가 있다. 성 중앙 보좌 가까운 자리에 거하는 자가 있다. 14만 4천의 인침 받은 정예의 자리는 그 가운데서도 가장 영광스러운 위치다. 보좌 가까이에서 어린양을 따라다니며 가장 가까이서 섬기는 자리다.

이 모든 위치 배정이 여호수아의 땅 분배와 정확히 대응된다. 유다 지파의 광대한 남방 영토는 천국 왕국 계열의 가장 큰 자리에 해당한다. 에브라임 지파의 중앙 산지는 또 다른 큰 자리에 해당한다. 베냐민 지파의 작은 영토는 그 다음 자리에 해당한다. 단 지파의 좁은 영토는 그 아래 자리에 해당한다. 각 지파가 받은 영토의 크기와 위치가 천국에서의 거주 위치와 격을 그대로 보여 준다.

레위 지파는 성읍만 받았다. 영토를 따로 받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못한 자리가 아니다. 오히려 더 영광스러운 자리다. 레위 지파에게는 하나님 자신이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지파는 땅이 기업이었지만, 레위 지파는 하나님이 기업이었다. 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제사장 계열의 종은 별도의 큰 영토를 차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기업은 하나님 자신이다. 보좌 가까이에서 하나님과 어린양을 직접 섬기는 자리에 거한다. 14만 4천이 어디로 가든지 어린양을 따라다닌다고 기록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계 14:4)

계 14:4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어린양을 따라다니는 자가 14만 4천이다. 보좌의 어린양 가까이에 항상 머무는 자다. 이것이 제사장 계열의 정점이다. 거리가 곧 영광이다. 보좌에 가까울수록 더 큰 영광을 누린다. 이 거리의 차이가 영원히 결정된다.

이것이 동탄명성교회 기독론이 강조하는 1:1 정밀 매칭의 정수다. 구약의 한 줄도 우연이 아니다. 모든 땅 분배 기록이 천국의 신분 구조와 정확히 맞물려 있다. 여호수아서를 한 줄 한 줄 다시 읽어야 한다. 거기서 천국의 청사진이 보인다. 12지파의 분배가 천국 12등급의 거주 배치이고, 레위 성읍 48개의 분포가 천국 제사장 계열의 흩뿌려진 직무 자리다.

7. 24장로는 왕이면서 제사장으로서 어떤 직무를 수행하는가

천국의 두 계열을 설명할 때 반드시 짚어야 할 자리가 있다. 24장로의 자리다.(계 5:8)

계 5:8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네 생물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의 대표다. 24장로는 구원받은 자의 대표다. 이 24장로가 손에 두 가지를 가진다.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이다.

거문고는 찬양을 의미한다. 다윗 시대에 처음 악기가 도입되었다. 다윗이 수금을 만들었다. 헤만, 아삽, 여두둔이 악기 담당자로 세워졌다. 이들이 성가대의 원형이다. 이 직무는 모두 제사장 계열이 담당했다.

금 대접의 향은 기도를 의미한다. 분향단에서 향을 살라 하나님께 올리는 직무는 제사장의 일이었다. 향을 피우는 것이 곧 기도를 올리는 행위였다.

24장로가 거문고와 금 대접을 가졌다는 것은 결정적이다. 그들이 제사장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들은 보좌 둘레에 앉은 장로다. 곧 왕적 신분이다. 24장로는 왕이면서 동시에 제사장이다.

이들의 구체적 직무 가운데 하나는 지상 성도의 기도를 받아 주님께 올려 드리는 것이다. 천국에 들어간 자가 지상에 남은 자기 마을 성도의 기도를 모아서 24장로의 손에 전달한다. 24장로는 그것을 거문고에 실어 아름다운 화음으로 주님께 올린다. D코드, G코드, A7 코드, 때로는 E7 코드까지 섞어 가며 아름답게 만들어 올린다. 주님이 그 기도를 기쁘게 받으시면 대접을 쫙 기울이신다. "그대로 되거라" 하시면 그대로 응답이 임한다.

천국에 들어간 부모가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일이 있다. 그것이 환상이 아니다. 실제다. 주의 종의 어머니가 천국에서 아들을 위해 기도한다. "아들아 걱정하지 마라, 주님께서 다 예비해 주신다" 하고 격려하며, 그 격려가 24장로의 손을 거쳐 주님께 올라간다. 천국에 들어간 자도 지상 성도를 위해 기도하는 직무를 수행한다. 다만 그 기도를 모아 올리는 자가 24장로다.

분명히 알아야 한다. 천국에서는 더 이상 속죄 제사가 드려지지 않는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속죄 제사는 영원히 끝났다. 그러므로 천국 제사장의 직무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찬양과 기도다. 거문고로 찬양하고, 향으로 기도를 올린다. 이 두 가지가 천국 제사장 계열의 본질적 직무다.

24장로는 그 정점에 있다. 왕국 계열의 정점에 있는 왕직과 제사장 계열의 정점에 있는 대제사장직을 동시에 수행하는 자리다. 첫째 부활에 참예한 자, 곧 예수님 승천 이후부터 재림 전까지 개인적으로 부활하여 올라간 자들 가운데서 가장 높은 충성을 드린 자들이 이 자리에 앉는다.

24장로의 직무를 좀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의 기도를 받는다. 천국에 들어간 부모, 천국에 들어간 사역자, 천국에 들어간 동역자가 지상에 남은 자기 마을 성도와 자기 후손을 위해 기도한다. 그 기도가 모여서 24장로의 손에 든 금 대접에 담긴다. 24장로는 그것을 거문고에 실어 아름다운 화음으로 주님께 올린다. 주님께서 그 기도를 받으시는 순간 응답이 발생한다. "그대로 되거라" 하시면 그대로 응답이 임한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천국에 들어간 자도 일이 있다는 뜻이다. 천국은 빈둥거리는 곳이 아니다. 직무가 있다. 그 직무의 등급이 신분의 등급이다. 가장 높은 직무가 24장로의 직무다. 그 다음이 14만 4천의 직무다. 그 아래로 제사장 계열의 다양한 봉사 직무가 있고, 왕국 계열의 다스리는 직무가 있다. 천국에서도 일하는 자가 있고 시중드는 자가 있다. 모두가 동일하지 않다.

또 한 가지 결정적인 사실이 있다. 24장로가 들고 있는 금 대접은 영원하지 않다. 마지막에 가서는 금 대접도 사라진다. 그것은 임시 도구다. 지금 24장로가 천국에 들어간 자기 마을 성도의 기도를 받아서 주님께 올리는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임시로 사용하는 도구일 뿐이다. 영원한 본질은 직무 자체이지 도구가 아니다.

8. 14만 4천 명의 자리는 누가 채우며 나실인은 어떻게 진입하는가

요한계시록 7장은 인침 받은 종의 숫자를 명확히 기록한다.(계 7:3~4)

계 7:3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계 7:4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 사만 사천이니

이 14만 4천은 영적 실재다. 천국 제사장 계열 안에서 특별히 인침을 받은 종들의 정해진 자리다. 그 자리가 96퍼센트 정도 채워졌다. 약 4퍼센트가 비어 있다. 마지막 때에 이 남은 자리가 채워진다.

원래 이 자리는 하나님께서 미리 지정하신 자들이 채우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정된 자들 가운데 일부가 자기 사명을 감당하지 않고 떨어져 나간다. 힘들다고 안 한다. 부담스럽다고 멈춘다. 그렇게 탈락하는 자가 생긴다.

가룟 유다는 원래 11번 보좌에 들어갈 자였다. 그러나 탈락했다. 지옥으로 갔다. 사울 왕도 상당히 높은 보좌의 자리에 위치해 있었던 자다. 그러나 사울 왕도 탈락했다. 성 밖으로 갔다. 보좌가 비어 있다. 빈 자리가 그렇게 생긴다.

하나님께서는 이 빈 자리를 어떻게 채우시는가. 이것이 결정적이다. 본래 제사장은 혈통으로 결정되었다. 아론의 자손이 아니면 제사장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한 가지 통로를 열어 두셨다. 나실인 제도다.

사무엘이 그 대표다. 사무엘은 에브라임 지파 사람이었다. 본래 제사장이 될 수 없는 혈통이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 한나가 서원하여 그를 주께 드렸다. 평생 나실인으로 살게 했다. 그 결과 사무엘은 대제사장의 일을 수행했다. 혈통으로는 제사장이 아닌 자가 서원과 헌신을 통해 제사장 계열의 정점에 오른 사례다.

이것이 마지막 시대에 결정적인 통로다. 지금 이 시대에는 본래 지정된 자들이 사명을 안 감당하기 때문에, 나실인으로 들어가는 자가 더 많아진다. 자기 자신을 주께 드린 자, 24시간 시간을 다 주님께 드린 자, 전 시간 봉사자로 자기를 드린 자가 나실인이다. 이런 자들이 14만 4천의 빈 자리를 채워 들어간다.

이것이 가장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길이다. 자기 자신 전부를 드린 자가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는다. 본래 왕국 계열로 갈 수 있었던 자라도, 자기를 나실인으로 드리면 제사장 계열로 진입할 수 있다. 마지막 시대의 특별한 통로다.

여기서 회개의 메커니즘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14만 4천의 자리에 들어가려면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게 막는 영적 방해가 있다. 무진장의 악한 영들이 이 길을 막는다. 그 길을 못 가게 하려고 온갖 것으로 역사한다. 모세도 광야 40년의 준비를 거쳐야 했다. 혈기가 강해서 그 혈기의 영을 다 빼내기까지 40년이 필요했다.

이 악한 영을 어떻게 내보내는가. 회개를 통해서다. 회개할 때 예수님의 피가 들어와 악한 영을 몸에서 떼어 낸다. 이격시킨다. 그리고 녹인다. 또한 성령의 불과 칼의 은사가 임하면 그 영을 태우고 자른다. 이 두 가지가 정확히 구분된다. 예수님의 피는 이격시키고 녹이는 작용을 한다. 성령의 불은 태우는 작용을 한다. 성령의 칼은 자르는 작용을 한다.

뱀이 실처럼 줄어들어 사람의 몸 안으로 들어와 집을 짓는다. 한번 들어와 자리를 잡으면 쉽게 나가지 않는다. 회개하지 않으면 결박된 채 살아간다. 그 결박이 풀리지 않으면 사명의 길도 막힌다. 그래서 부지런히 회개해야 한다. 회개로 예수님의 피가 들어와 악한 영을 떼어 내고 이격시키고 녹여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사명의 길이 열린다.

조상의 영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무당의 영, 제사상에 올린 음식을 먹은 자에게 따라 들어온 귀신의 영이 가족 안에 대대로 흐른다. 어떤 사역자가 어느 집에 심방을 가서 식사를 했는데, 그 집에서 평소에 제사를 지내던 음식이 식탁에 올라왔다. 돼지고기였다. 그 고기를 통해 들어온 영이 뱀처럼 청벽에 자리를 잡아 사역자를 괴롭혔다. 회개로 그 영을 다 내보내야 비로소 사역이 회복되었다. 이런 일이 이 시대에도 그대로 일어난다. 회개가 한순간이라도 멈추면 안 되는 이유다.

지금은 사탄이 무저갱에 결박된 상태다. 그러나 그 졸개들인 무수한 악한 영은 여전히 활동한다. 조상의 영, 무당의 영, 제사 음식을 통해 들어온 귀신, 이런 것들이 사람의 몸에 들어와 집을 짓는다. 회개로 이것들을 다 내보내야 한다. 그래야 14만 4천의 자리에 들어갈 영적 정결이 갖춰진다.

손끝에서 칼이 나가는 영적 실재가 있다. 영적 전투가 깊어지면 사역자의 손끝에서 삼각형 모양의 칼이 5센티미터 정도로 뻗어 나가 악한 영을 찌른다. 더 깊은 단계로 들어가면 그 칼이 둥근 원형으로 변한다. 500원짜리 동전 크기의 동그란 칼날이 회전하면서 악한 영을 갈아 버린다. 이것이 성령의 칼의 은사가 임한 자에게 일어나는 실제다. 추상적 비유가 아니다. 영적 세계의 정확한 메커니즘이다.

성령의 불도 마찬가지다. 회개로 예수님의 피가 들어와 악한 영을 이격시키고 녹이는 것과는 별도로, 성령의 불의 은사가 임한 자에게는 그 불이 영을 태우는 작용을 일으킨다. 성령의 칼의 은사가 임한 자에게는 그 칼이 영을 자르는 작용을 일으킨다. 피의 작용과 불의 작용과 칼의 작용이 정확히 구분된다. 이 셋이 함께 임할 때 가장 강력한 영적 전투가 가능해진다.

하늘에서는 이미 천년왕국이 진행 중이다. 첫째 부활에 참예한 자들이 이미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 하고 있다. 24장로가 이미 그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14만 4천의 인침이 이미 96퍼센트 진행되었다. 이 모든 것이 지금 이 순간에도 하늘에서 실시간으로 진행 중이다. 이것을 알면 이 땅에서의 한 시간이 얼마나 결정적인지가 보인다.(계 7:9)

계 7: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4만 4천 외에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또 있다. 이들은 흰옷을 입고 종려 가지를 든 자들이다. 왕국 계열에 속한 거대한 본진이다. 14만 4천의 정예 제사장 그룹과 셀 수 없는 왕국 그룹이 함께 보좌 앞에 선다. 천국의 두 계열이 한 자리에 모이는 광경이다.

그런데 이 큰 무리도 모두 동일한 영광을 누리는 것이 아니다. 흰옷을 입었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 안에서도 다시 등급이 갈린다. 어떤 자는 보좌 가까이에 서고, 어떤 자는 멀리서 바라본다. 어떤 자는 종려 가지를 손에 쥐고, 어떤 자는 그 가지의 의미만 흠모한다. 천국의 영광은 끝까지 정밀하게 차등화되어 있다. 한 등급의 차이가 영원의 차이다.

영적 전쟁에 적극 투입된 자가 큰 무리 가운데서도 앞자리에 선다. 회개를 부지런히 한 자가 흰옷을 더 빛나게 입는다. 영혼을 사랑하여 자기를 드린 자가 종려 가지를 더 높이 든다. 모두가 흰옷을 입었지만 그 빛의 강도가 다르다. 모두가 보좌 앞에 섰지만 그 거리가 다르다.

9. 나오며

지금까지 천국에서 성도들의 신분이 어떻게 구별되는지를 살펴보았다. 천국에는 두 종류의 큰 신분 계열이 있다. 왕국 계열과 제사장 계열이다. 각 계열에 네 등급이 있다. 왕국 계열은 왕, 장관, 백성, 일꾼으로 나뉜다. 제사장 계열은 대제사장, 제사장, 레위인, 나무 패며 물 긷는 자로 나뉜다. 이 구조가 여호수아 시대의 땅 분배에 정확히 1:1로 새겨져 있다. 유다 에브라임 므낫세 지파의 중심부 차지가 왕국 계열의 모형이고, 레위 지파의 성읍 분배가 제사장 계열의 모형이다.

천국에 들어가는 자가 모두 동일하게 누리는 것이 있음도 살펴보았다. 눈물 없음, 사망 없음, 애통 없음, 곡함 없음, 아픔 없음, 저주 없음, 밤 없음, 그리고 생명수의 강과 생명나무 열매다. 그러나 그 위에 신분에 따른 차등이 영원히 존재한다는 사실도 분명히 살펴보았다. 집의 격차, 의복의 격차, 직무의 격차가 모두 이 땅에서의 준비에 정확히 비례한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24장로의 직무도 살펴보았다. 그들이 왕이면서 제사장으로서 거문고로 찬양하고 금 대접의 향으로 기도를 올리는 자리에 있음을 살펴보았다. 14만 4천의 인침 받은 자의 자리도 살펴보았다. 그 자리가 이미 96퍼센트 채워졌고, 마지막 4퍼센트가 채워지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라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본래 지정된 자가 탈락한 자리에 나실인이 들어가는 통로가 열려 있음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먼저 자기 신분을 정확히 분별해야 한다. 자신이 왕국 계열로 부름을 받은 자인지, 제사장 계열로 보냄을 받은 자인지를 분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특정한 사명으로 보내신 자라면 그 사명에서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그 길만을 가야 한다. 초지일관 그 한 길만 가야 한다. 그것 때문에 창조되었고, 그것 때문에 이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영적 전쟁에 자기 자신을 투입해야 한다. 갈렙처럼 발로 땅을 밟아야 한다. 아낙 자손이 있어도 주님이 주셨다고 하면 들어가 빼앗아야 한다. 옷니엘처럼 남이 못 밟은 땅을 밟아야 한다. 발로 밟는 만큼 차지하는 것이 천국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날마다 회개해야 한다. 회개를 통해 예수님의 피가 들어와 악한 영을 몸에서 떼어 내고 이격시키고 녹여야 한다. 성령의 불과 칼이 그 영을 태우고 잘라야 한다. 그래야 사명의 길이 열린다. 회개하지 않으면 무진장의 악한 영이 길을 막는다. 모세처럼 40년이 더 걸린다. 자기 자신을 나실인으로 드릴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을 다 드리고, 삶을 다 드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14만 4천의 빈 자리를 채우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래 제사장이 아닐지라도 서원을 통해 제사장 계열에 진입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려 있다. 이것이 마지막 시대의 특권이다.

이 땅에서의 시간이 천국에서의 영원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한순간도 잊지 말아야 한다. 천국에 가서는 더 얻을 것이 없다. 거기서 받는 것은 다 이 땅에서 준비한 것이다. 단벌 흰옷에 돗자리 한 장으로 영원을 보낼 것인지, 옷방과 장신구방을 따로 가진 저택에서 영원을 누릴 것인지, 14만 4천의 인침 받은 정예의 자리에 앉을 것인지, 모두가 지금 이 순간의 준비에 달려 있다. 그리하여 자기 신분을 분별하고, 영적 전쟁에 투입되며, 날마다 회개하여 악한 영을 다 내보내고, 자기 자신을 나실인으로 드려 14만 4천의 자리를 채우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5월 04일(월) ·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