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온라인새벽기도회(26.07.06)] [사역자론(01)] 하나님의 부르심의 2가지 종류와 그 사명은 무엇인가?(벧후1:10~11)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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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목적 없이 이 땅에 보내지 않으신다. 사람은 부모의 육체를 통하여 태어나지만, 그의 영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그러므로 인생은 우연히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면 사람은 자기 생애를 먹고 마시고 입는 일에만 소비하다가 끝내고 만다. 그러나 자신의 부르심을 아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왜 이 시대에 태어났는지, 왜 이 가정에 보냄을 받았는지, 왜 복음을 듣게 되었는지를 묻고,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려 한다.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고 권면하였다(벧후 1:10~11).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르심이 단순한 종교적 감정이 아니라,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부르심을 굳게 하는 자는 실족하지 않고,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넉넉히 들어간다.
벧후 1:10~11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그리하면 결코 실족하지 아니하리니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그러므로 부르심을 아는 것은 신앙생활의 출발이자 사명 생활의 기초다. 부르심을 모르면 이것을 조금 하다가 저것으로 옮겨가고, 사람의 말에 흔들리며, 상황이 어려워지면 곧 물러난다. 반대로 부르심을 아는 사람은 고난 속에서도 자기 자리를 지킨다. 부르심을 안다는 것은 자기의 자랑거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자리와 일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어떤 종류가 있으며, 그 부르심을 받은 성도가 어떤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사람이 흔들리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왜 부름받았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부르심을 모르면 신앙은 감정의 물결을 따라 움직인다. 은혜가 느껴질 때는 뜨겁고, 환경이 힘들어지면 식어 버린다. 누군가 칭찬하면 움직이고, 누군가 비난하면 멈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셨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사람의 반응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크게 본다.
부르심은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것으로 삼으셨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롬 1:6~7). 성도라는 말은 단순히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다. 헬라어로 “성도”는 ‘거룩하게 구별된 자들’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세상 가운데서 우리를 불러내어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의 삶을 더 이상 자기 뜻대로만 해석할 수 없다. 그는 “나는 하나님의 것으로 부름받은 자”라는 정체성으로 살아야 한다.
이 부르심을 모르면 사람은 구원도 가볍게 여기고 사명도 가볍게 여긴다. 그러나 성경은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부르심은 천국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단지 지상에서 복을 받게 하려는 데에 있지 않다. 궁극적으로는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게 하고, 더 나아가 그곳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기업과 신분을 얻게 하려는 데에 있다.
이 점에서 부르심은 구원론과 종말론을 동시에 품고 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함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의 삶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성도는 부르심을 굳게 하며, 회개로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영적 전쟁에서 이기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그래야 영원한 나라에 넉넉히 들어가는 길이 열린다.
부르심을 아는 사람은 자기 인생을 함부로 낭비하지 않는다. 그는 돈을 벌어도 왜 버는지를 알고, 가정을 섬겨도 왜 섬기는지를 안다. 교회를 섬길 때에도 사람의 인정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 때문임을 안다. 그러므로 부르심을 아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뿌리다.
부르심을 모르면 또 하나의 위험이 있다. 그것은 자기 욕망을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크게 쓰신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면서도 말씀을 배우지 않고, 회개하지 않고, 교회의 질서도 따르지 않는다. 이것은 부르심을 아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상상을 붙잡는 것이다. 참된 부르심은 반드시 준비를 요구한다. 하나님께서 쓰실 사람이라면 말씀으로 다듬으시고, 회개로 낮추시며, 사람과 상황을 통하여 순종을 훈련시키신다. 그러므로 부르심을 아는 사람은 허황된 꿈을 붙잡지 않고, 오늘 자기에게 맡겨진 순종부터 시작한다.
참된 부르심은 또한 한 분 하나님을 향하게 한다. 성도는 여러 신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 사람이 아니다. 구약에 홀로 계셨던 여호와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들로 오셨고, 그 아들이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러므로 부르심은 결국 예수님을 아는 데로 우리를 이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르는 사람은 자기가 왜 부름받았는지도 제대로 알 수 없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분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요 17:3).
하나님의 부르심을 이해하려면 먼저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이 땅에 보내시는지를 살펴야 한다. 육체적으로 사람은 부모의 사랑을 통하여 정자와 난자가 만나 형성된다. 부모의 유전자가 자녀에게 전해지고, 그 속에는 육체의 형질과 기질과 재능이 담겨 있다. 어떤 사람은 운동의 재능을, 어떤 사람은 음악의 재능을, 어떤 사람은 가르치는 재능을 물려받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사람의 전부를 설명할 수 없다. 사람에게는 영이 있기 때문이다.
동탄명성교회가 강조하는 하나님의 경륜의 타임라인으로 보면,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이 땅에 보내실 때 영적인 목적을 가지고 보내신다. 먼저 하나님께서 보내시고, 때가 되면 부르신다. 보냄이 있고, 부르심이 있으며, 그다음에는 사명이 있다. 사명은 부르심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무엇을 위해 보냄받았는가?”라는 질문은 곧 “나는 무엇을 위해 부름받았는가?”라는 질문과 연결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내실 때 육체의 유전자도 사용하신다는 사실도 가볍게 볼 수 없다. 어떤 사람은 가르치는 가문에서 태어나 가르침의 달란트를 받는다. 어떤 사람은 음악의 가문에서 태어나 찬양의 통로가 된다. 어떤 사람은 고난 많은 가정에 태어나 고난받는 자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곧 사명 완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달란트는 재료일 뿐이다. 그 재료가 성령의 손에 붙들리고, 회개로 깨끗하게 되고, 말씀으로 방향을 잡을 때 비로소 하나님 나라를 위한 도구가 된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사역자를 보내실 때에는 때와 장소가 중요하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되어야 할 때에 부름받았다. 사무엘은 제사장 체계가 부패하고 왕정으로 넘어가는 시대에 부름받았다. 세례 요한은 주님의 초림을 준비하는 광야의 소리로 부름받았다. 그러므로 부르심은 개인의 재능만으로 해석할 수 없다. 하나님의 경륜의 시간표 속에서 해석해야 한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필요한 말씀을 맡기시고, 그 말씀을 전할 사람을 보내신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내실 때 고려하시는 요소들이 있다. 첫째는 시대다. 어떤 사람은 일제강점기 같은 핍박의 시대에 보내시고, 어떤 사람은 마지막 때 회개와 천국 복음이 필요한 시대에 보내신다. 둘째는 가정이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가정, 혹은 특별한 영적 환경이 필요한 가정에 사람을 보내신다. 사무엘은 한나의 눈물의 기도 속에서 태어났다(삼상 1:11). 셋째는 민족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민족을 통하여 어떤 복음을 드러내실지를 아신다. 넷째는 성별이다. 남자로 보내실지 여자로 보내실지 역시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다.
그런데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자기 부르심을 다 아는 것이 아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신다. 부르심은 하나님의 주권이지만,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연결된다. 하나님께서 부르셔도 거절하는 사람이 있고, 늦게 반응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부르심을 알아듣고 순종하는 사람은 그때부터 사명의 길로 들어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방식이다. 하나님은 때로 꿈으로 부르신다. 요셉은 꿈을 통하여 자기의 장래 사명을 보았다. 하나님은 때로 직접 음성으로 부르신다. 모세와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또한 하나님은 당신이 쓰시는 종을 통하여 사람을 불러내시기도 한다. 바울이 디모데와 누가 같은 동역자들을 세운 것처럼, 하나님의 종은 또 다른 하나님의 일꾼을 깨워 세우는 통로가 된다.
부르심에는 먼저 모든 성도에게 주어진 일반적 부르심이 있다. 이것은 성도로 부르심받는 것이다. 성도는 구원받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고, 생명을 얻고, 장차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도록 부름받은 사람이다.
이 일반적 부르심의 핵심은 구원이다. 빌립보 감옥의 간수가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라고 물었을 때, 바울과 실라는 “주 예수를 믿으라”고 대답했다(행 16:31). 그러나 그 대답은 개인의 구원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먼저 부르시는 것은 그 사람만 구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하여 그의 집을 구원하시려는 뜻도 들어 있다.
그러므로 성도의 일반적 부르심 안에는 가정 구원의 사명이 들어 있다. 하나님께서 나를 먼저 불러 예수 믿게 하셨다면, 나는 내 집의 선교사다. 부모와 형제와 배우자와 자녀를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아직 믿지 않는 가족 때문에 낙심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나를 먼저 부르셨다는 것은 그 집에 복음의 문을 열어 놓으셨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반적 부르심은 거룩함으로의 부르심이다. 성도는 세상과 똑같이 살도록 부르심받은 사람이 아니다. 거룩함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구별됨이고, 또 하나는 깨끗함이다. 성도는 세상 사람처럼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만 반복하는 속된 삶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는 회개를 통하여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가정 구원은 감정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도와 삶의 증거와 인내가 함께 있어야 한다. 가족이 당장 따라오지 않는다고 해서 신앙의 보폭을 뒤로 늦추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자신이 먼저 빛 가운데 서야 한다. 성도가 뒤로 물러가면 가족도 빛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성도가 부르심을 붙들고 전진하면 가족은 언젠가 그 삶을 통하여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먼저 믿은 성도는 가족에게 끌려가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을 생명의 길로 이끌어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일반적 부르심은 또한 영적 전쟁을 포함한다. 성도는 단지 예배당 안에 앉아 있기 위해 부름받은 것이 아니다. 죄와 싸우고, 귀신의 미혹과 싸우고, 자기 안에 들어와 있는 악한 본성의 역사와 싸우도록 부름받았다.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속에서 역사하여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악한 영들을 분별해야 한다. 회개하지 않는 삶은 악한 영에게 합법적인 자리를 내어 주는 삶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일반적 부르심은 믿음, 회개, 거룩함, 영적 싸움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일반적 부르심은 교회의 지체로 부르심받는 것이다. 성도는 홀로 구원받아 홀로 사는 존재가 아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한 지체다. 그러므로 성도는 교회를 세우고, 다른 지체를 섬기며, 복음의 일에 참여해야 한다. 이것이 성도의 일반적 부르심이다.
성도는 구원받기 위해 부름받았을 뿐 아니라 섬기기 위해 부름받았다. 여기서 섬김은 단순히 봉사 시간을 채우는 것이 아니다. 헬라어로 “일꾼”을 뜻하는 말 가운데 ‘디아코노스’가 있다. 이것은 섬기는 자, 봉사하는 자라는 뜻을 가진다. 바울은 자신을 복음의 일꾼이라고 했다(골 1:23). 복음의 일꾼은 복음을 듣고만 있는 사람이 아니라 복음을 위하여 섬기는 사람이다.
성도의 섬김에는 먼저 자기 집을 위한 섬김이 있다.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것, 복음을 전하는 것, 믿음의 본을 보이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믿지 않는 가족을 억지로 끌고 오려 하기보다, 먼저 자신의 삶이 변화되어야 한다. 회개로 성품이 바뀌고, 말이 바뀌고, 삶이 바뀔 때 가족은 그 변화를 본다. 하나님은 그 모습을 통하여 가족의 마음을 여신다.
또한 성도는 교회를 섬기도록 부름받았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교회를 섬긴다는 것은 사람의 조직을 섬긴다는 뜻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에 참여한다는 뜻이다. 교회를 세우는 섬김은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기도하는 일, 예배를 지키는 일, 성도들을 돌보는 일, 물질로 복음을 돕는 일, 주어진 자리에서 충성하는 일이 모두 포함된다.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사역자들을 세우신 목적도 분명하다. 그것은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고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는 것이다(엡 4:11~12). 그러므로 사역자는 성도를 자기에게 묶어 두는 사람이 아니라 성도를 그리스도께로 이끌어야 한다. 성도도 사역자를 인간적으로만 보지 말고, 그가 전하는 말씀이 자신을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이끌고 있는지를 분별해야 한다.
섬김에는 질서가 있다. 질서 없는 열심은 교회를 세우기보다 흔들 수 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말씀의 질서와 교회의 질서를 따라 섬길 때, 그 섬김이 하늘에 기록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골라서 하는 사람이 아니라, 교회가 필요로 하는 자리에서 충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드러나는 자리보다 보이지 않는 자리가 더 귀할 때가 많고, 말보다 기도가 더 큰 섬김이 될 때도 많다.
특히 성경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종을 돕는 일을 귀하게 말한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복음에 함께 힘쓰던 여인들과 동역자들을 도와주라고 했다(빌 4:3). 이것은 하나님의 종을 인간적으로 높이라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역을 알아보고, 그 사역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함께 짐을 지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도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10:40~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는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상급 원리다. 직접 사도의 직무를 받은 사람이 아니어도, 사도의 복음 사역에 동참하면 그 상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일반 성도에게 주어진 섬김은 작은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하늘에서 기억되는 일이다.
모든 성도에게 일반적 부르심이 있다면, 어떤 사람에게는 특별한 사역자의 부르심이 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사도라고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고 고백했다(롬 1:1). 여기서 사도라는 부르심은 모든 성도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부르심이 아니다. 이것은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가르치고, 교회를 세우도록 특별히 맡겨진 사역자의 부르심이다.
특별한 부르심은 직분의 이름보다 사명의 내용이 중요하다.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는 모두 그리스도의 몸을 온전하게 하고 성도를 봉사의 일에 세우기 위해 주어진다. 그러므로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자기 영광을 구해서는 안 된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보냄받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경륜을 전하기 위해 보냄받은 사람이다.
바울은 자신이 이방인의 교사로 세우심을 받았다고 했다(딤전 2:7). 그는 자기 생각을 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전했다. 특별한 부르심은 이처럼 시대적 사명과 연결된다. 어떤 시대에는 믿음의 지조를 지키도록 순교자를 보내시고, 어떤 시대에는 타락한 교리를 바로잡도록 진리의 종을 보내시며, 어떤 시대에는 회개와 천국 복음을 다시 외치도록 사역자를 보내신다.
특별한 사역자의 부르심에는 시대적 메시지가 따른다. 어떤 종은 믿음을 지키는 메시지를 맡고, 어떤 종은 회개를 맡고, 어떤 종은 천국의 실상을 증거하는 일을 맡고, 어떤 종은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는 일을 통하여 복음을 확증하는 사명을 맡는다. 그러나 어떤 은사도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은사와 직분은 모두 천국 복음을 전하고 성도를 세우기 위한 도구다. 예수님께서도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병과 약한 것을 고치셨다(마 4:23). 순서는 중요하다. 기적이 중심이 아니라 천국 복음이 중심이다.
따라서 사역자는 자기에게 나타난 은사만 자랑해서는 안 된다. 말씀 없는 은사는 위험하고, 회개 없는 능력은 오용될 수 있으며, 천국의 목적을 잃은 사역은 사람을 자기 주변에 모으는 일로 끝날 수 있다.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일수록 더욱 낮아져야 하고, 더욱 말씀 앞에 정직해야 하며, 더욱 회개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다.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는 더 큰 책임이 있다. 많이 맡은 자에게 많이 요구하신다. 사역자는 말씀을 바로 전해야 하고, 회개를 외쳐야 하며,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가도록 도와야 한다. 또한 귀신론의 영역에서도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성도들이 왜 죄에 눌리고, 왜 가난과 질병과 막힘의 저주 가운데 살아가는지, 왜 회개가 필요한지, 왜 예수님의 피와 이름과 성령의 능력이 실제적인 해방을 가져오는지를 가르쳐야 한다.
특별한 부르심은 영적 싸움을 피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은 사람을 미워하라고 보내심받은 것이 아니다. 사람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는 악한 영들을 분별하고, 회개와 말씀과 예수 이름의 권세로 그것들을 물리치도록 보냄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특별한 사역자의 부르심은 진리를 가르치는 일과 영적 전쟁을 수행하는 일을 함께 포함한다.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 하나님은 그 부르심을 어떤 방식으로든 알려 주신다. 물론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듣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꿈으로 듣고, 어떤 사람은 직접 음성으로 듣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쓰시는 종을 통해 듣는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사명을 맡기실 때 그 사람에게 깨닫게 하신다는 점이다.
첫째, 하나님은 꿈으로 알려 주신다. 구약의 요셉은 꿈을 통하여 자신의 장래 사명을 보았다. 그의 형들이 그에게 절하는 장면은 단순한 개인적 성공의 꿈이 아니라, 장차 기근 속에서 가족과 민족을 살릴 사명의 예고였다. 꿈은 때로 상징으로 오기 때문에 해석이 필요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꿈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결국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성취된다.
둘째, 하나님은 직접 음성으로 부르신다. 모세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었다. 사무엘은 어릴 때 “사무엘아, 사무엘아”라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하나님께서 두 번 부르시는 장면은 성경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우연한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격적으로 부르신다는 표시다.
셋째, 하나님은 참된 종을 통하여 사람을 세우신다. 바울이 디모데를 세우고, 복음의 동역자들을 불러 세운 것처럼, 하나님은 이미 쓰시는 종을 통하여 다음 일꾼을 깨우신다. 이때 중요한 것은 질서다. 하나님 나라에는 영적 질서가 있다. 자기 혼자 특별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부르심의 증거가 아니다. 말씀의 검증, 성령의 열매, 사역의 열매, 그리고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 속에서의 확인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특별한 부르심이 있는지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가? 첫째, 하나님께서 계속 같은 방향으로 마음을 이끄시는지 보아야 한다. 둘째, 그 부르심이 자기 자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와 영혼을 살리는 방향인지 살펴야 한다. 셋째, 그 부르심을 감당하기 위해 고난을 피하지 않는 마음이 있는지 보아야 한다. 넷째, 시간이 지나도 그 사명이 사라지지 않고 더욱 선명해지는지 보아야 한다.
또한 부르심을 분별할 때에는 열매를 보아야 한다. 참된 부르심은 결국 사람을 살리고 교회를 세운다. 거짓된 부르심은 사람을 자기에게 묶고, 분열을 만들고, 교만을 낳는다. 참된 부르심은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고, 회개를 일으키며, 천국의 소망을 더 분명하게 한다. 그러므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 말이 아니라 열매로 검증되어야 한다. 그 열매는 말씀에 대한 순종, 인격의 변화, 영혼을 향한 사랑, 교회를 세우는 충성이다.
부르심은 시간이 지나며 더 선명해질 수 있다. 처음에는 희미한 감동으로 시작되지만, 말씀을 배우고 회개하며 순종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그 길을 더 분명히 보여 주신다. 어떤 사람은 청년 때 부르심을 알게 되고, 어떤 사람은 고난을 통하여 뒤늦게 깨닫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깨달은 뒤의 순종이다. 늦게 깨달았다고 낙심할 필요는 없다. 다만 깨달은 뒤에는 더 이상 뒤로 물러가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누구든지 특별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면서 회개하지 않고, 말씀을 배우지 않고, 교회를 세우지 않고, 자기 이름만 높인다면 그것은 위험하다. 특별한 부르심은 특별한 대접을 받으라는 허락이 아니라 특별한 책임을 감당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부르심에는 반드시 사명이 따른다. 일반 성도에게는 구원받고, 자기 집을 구원하며, 교회와 복음의 일을 섬기는 사명이 있다. 특별한 사역자에게는 진리를 전하고, 회개를 외치며, 천국을 증거하고, 영적 전쟁에서 성도들을 세우는 사명이 있다. 이 사명은 사람의 박수로 평가되지 않는다. 하늘에서 평가된다.
사명의 핵심은 영혼을 살리는 데에 있다. 성도가 먼저 구원받은 것은 다른 사람도 구원받게 하기 위함이다. 사역자가 말씀을 맡은 것은 자기 지식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성도들이 진리를 알고 천국에 들어가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늘 “내가 하는 일이 영혼을 살리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부르심에 순종한 자에게는 상급이 있다. 그 상급은 단순히 이 땅에서 형통하는 정도가 아니다. 천국에서 받을 신분과 기업과 면류관과도 연결된다. 성경은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가 선지자의 상을 받는다고 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놀라운 원리다. 직접 모든 일을 다 하지 못해도,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고 그 일에 동참하면 그 상급에 참여한다.
하늘의 상급은 공평하다. 사람은 겉으로 드러난 일만 보지만 하나님은 마음과 동기와 충성을 함께 보신다. 어떤 사람은 큰 무대에서 말씀을 전하지만, 어떤 사람은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기도로 그 말씀의 길을 연다. 어떤 사람은 물질로 복음의 길을 돕고, 어떤 사람은 몸으로 섬기며, 어떤 사람은 눈물로 가족을 품는다. 하나님은 그 모든 일을 잊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역할이 작다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부르심에 충성하면 그 자리에서 상급이 있다.
또한 상급은 사명과 연결될 뿐 아니라 신분과도 연결된다. 천국에는 분명 신분의 차이가 있다. 모두가 구원받았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영광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이 땅에서 얼마나 회개했는지, 얼마나 주님을 사랑했는지, 얼마나 영적 전쟁에서 이겼는지, 얼마나 영혼을 살렸는지에 따라 하늘의 지위와 기업이 달라진다. 그러므로 오늘의 신앙생활은 장차 천국에서의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또한 부르심에 순종하는 자는 영원한 나라에 넉넉히 들어간다. 베드로후서 1장의 말씀은 바로 이 점을 말한다.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는 자는 실족하지 않는다. 그는 천국 문턱에 겨우 들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영원한 나라에 넉넉히 들어가는 사람이 된다. 이것은 성도가 이 땅에서 사명을 감당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사명은 항상 쉬운 길만은 아니다. 가정에서 홀로 믿음을 지켜야 할 때도 있고, 교회에서 묵묵히 섬겨야 할 때도 있으며, 진리를 전하다가 오해를 받을 때도 있다. 특별한 사역자는 더 큰 영적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부르심을 아는 사람은 뒤로 물러가지 않는다. 히브리서는 뒤로 물러가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말한다(히 10:38~39). 믿음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순종은 내일의 영광과 연결된다. 오늘의 섬김은 하늘의 기록과 연결된다. 오늘의 회개는 천국 입성과 연결된다. 오늘의 영적 싸움은 장차 받을 왕권과 연결된다. 부르심을 따라 사명을 감당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기억하신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일반적 부르심과 특별한 부르심이 있으며, 그 부르심은 사명과 상급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일반적 부르심을 받은 성도는 먼저 자신이 구원받아야 하며, 자기 집을 구원하기 위해 기도해야 하고, 교회와 복음의 일을 섬겨야 한다.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사역자는 말씀과 회개와 천국 복음을 전해야 하며, 성도들이 영적 전쟁에서 이기도록 도와야 한다.
부르심은 자랑의 근거가 아니라 책임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왜 이 시대에 보내셨는지, 왜 이 가정에 태어나게 하셨는지, 왜 이 말씀을 듣게 하셨는지를 깊이 물어야 한다. 그 질문 앞에서 성도는 자신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 성도는 뒤로 물러가지 말아야 하고, 사역자는 맡겨진 말씀과 영혼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또한 부르심을 굳게 하기 위해서는 회개가 반드시 필요하다. 회개하지 않으면 영적 귀가 어두워지고, 부르심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며, 사명이 주어져도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나 회개하는 자는 깨끗하게 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감당할 수 있다.
이제 성도는 자기 부르심을 막연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먼저 보내셨고, 때가 되어 부르셨으며, 이제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다는 경륜을 붙잡아야 한다. 그리하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여 영원한 나라에 넉넉히 들어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7년 07월 06일(월)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사역자가 갖추어야 할 태도와 하나님의 두 가지 부르심에 대한 영적 원리를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모든 인간이 일반적인 성도 혹은 특별한 사도적 사명 중 하나로 부름을 받으며, 이러한 소명은 꿈이나 음성, 혹은 영적 지도자를 통해 명확히 전달된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육체적 유전자만큼이나 하나님이 부여하시는 영적인 유전자(영)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각자의 부르심에 순종할 때 비로소 영원한 천국에 넉넉히 들어갈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결론적으로 성도는 자신에게 맡겨진 구원과 전도의 사명을 다하고 하나님이 세운 종을 섬김으로써 하늘의 상급을 예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이 설교의 핵심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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