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26. 07. 10. (금)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tra Form
동영상URL https://youtu.be/2LFwz7hUi4o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역자론(06)]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역자로 쓸 사람을 어떻게 준비시키는가?(행7:20~29)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2LFwz7hUi4o

 

1. 들어가며

  하나님은 사람을 하루아침에 세우지 않으신다. 사람의 눈에는 어느 날 갑자기 부르심을 받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가 시작되어 있다. 사람은 겉으로 드러난 부르심의 순간만 보지만, 하나님은 태어남과 자라남과 배움과 고난과 낮아짐과 기다림까지 모두 사용하여 한 사람을 빚으신다. 그러므로 사역자는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그를 어떤 그릇으로 준비시키셨으며, 지금도 어떤 훈련 가운데 두고 계시는지를 알아야 한다.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은 모세를 소개하면서 그의 생애를 세 시기로 나누어 보여 준다. 첫째는 애굽 왕궁에서의 40년이다. 모세는 그곳에서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말과 일에 능한 사람이 되었다. 둘째는 미디안 광야에서의 40년이다. 모세는 그곳에서 왕자의 자리에서 내려와 양을 치는 목자로 낮아졌다. 셋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출애굽의 지도자로 쓰임받은 40년이다. 그러므로 모세는 80세에 갑자기 쓰임받은 사람이 아니라, 80년 동안 준비되고 훈련된 사람이었다(행7:22-23).

행7:22-23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나이가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

  오늘날에도 같은 원리가 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특별히 쓰임받는다고 말하기 전에, 먼저 그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자질이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또한 그가 성품의 훈련을 받았는지를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의 말씀과 영적 질서 안에서 교정받을 수 있는 사람인지를 보아야 한다. 자질은 있는데 성품이 준비되지 않으면 위험하고, 은사는 있는데 회개가 없으면 더 위험하다. 열심은 있는데 순종이 없으면 결국 자기 의를 세우게 되고, 은사는 있는데 지도자의 점검을 거부하면 미혹의 영에게 속을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께 쓰임받는 그릇의 조건을 분명히 말한다. 큰 집에는 여러 그릇이 있지만, 귀히 쓰임받는 그릇이 있고 천히 쓰임받는 그릇이 있다. 사람이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그릇이 된다(딤후2:20-21). 그러므로 사역의 출발점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내가 깨끗한 그릇인가’에 있어야 한다.

딤후2:20-21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그래서 이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사역자로 쓰실 사람을 어떻게 준비시키시고, 오늘의 성도와 사역자가 어떻게 깨끗한 그릇으로 준비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하나님은 왜 사역자를 갑자기 세우지 않으시는가?

  하나님의 사역자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람은 어느 날 강단에 서고, 어느 날 안수를 받고, 어느 날 어떤 직분을 맡으면 사역자가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은 다르다. 하나님은 직분보다 그릇을 먼저 보시고, 사역보다 성품을 먼저 보시며, 능력보다 순종을 먼저 보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쓰실 사람은 긴 준비 과정을 거친다.

  모세가 대표적인 사례다. 어떤 사람은 모세가 80세에 부름받았으니, 하나님은 아무 준비 없이 노년에 갑자기 사람을 쓰실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하나님은 연세가 많은 사람도 쓰신다. 나이가 많다고 하나님께서 쓰시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세의 경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는 80세에 갑자기 부름받은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보호받았고, 40년은 애굽 왕궁에서 자질을 준비받았으며, 다시 40년은 미디안 광야에서 성품을 훈련받았다.

  그러므로 모세의 80세 부르심은 ‘늦은 부르심’이라기보다 ‘완성된 준비 뒤의 부르심’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먼저 애굽의 언어와 학문과 행정과 군사적 소양을 배우게 하셨다. 또한 그에게 히브리인이라는 정체성과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신앙을 심어 주셨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의 안에는 혈기와 분노가 남아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미디안 광야로 보내셨다.

  이 원리는 오늘의 사역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사역자가 갖추어야 할 것은 단지 열정이 아니다. 열정만으로는 오래 가지 못한다. 은사만으로도 안 된다. 은사가 있어도 성품이 준비되지 않으면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다. 지식만으로도 안 된다. 지식이 많아도 순종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버림받을 수 있다. 하나님은 자질과 훈련과 순종이 함께 갖추어진 사람을 쓰신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오래 준비시키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일이 사람의 기분과 혈기로 감당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야 한다. 하나님의 종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하면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모세가 마지막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물을 내는 기적을 행했지만,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했다(민20:12).

민20: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사역자에게 두려운 기준을 제시한다. 기적이 나타났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 사람의 성품까지 인정하신 것은 아니다. 물은 나왔지만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사역의 결과처럼 보이는 것과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사역자는 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고 있는지, 아니면 내 혈기와 감정을 드러내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3. 일반 사명자와 특별 사명자는 어떻게 다른가?

  모든 성도에게는 사명이 있다. 그러나 모든 사명이 같은 것은 아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성도에게는 일반 사명이 있고, 특별 사명이 있다. 일반 사명은 모든 성도가 기본적으로 감당해야 할 사명이다. 특별 사명은 하나님께서 특정한 시대와 특정한 일을 위하여 특별히 보내고 준비시키신 사람에게 맡기시는 사명이다.

  일반 사명은 먼저 자기 집을 구원으로 이끄는 데서 시작된다. 하나님께서 나를 한 가정 안에 보내신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내가 먼저 믿었다면, 그것은 나 혼자만 천국 가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다. 내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고, 회개의 길을 알려 주라고 세우신 것이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간수에게 말한 것처럼, 주 예수를 믿으면 그와 그의 집이 구원받는 길이 열린다(행16:31).

행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둘째, 일반 사명은 교회를 섬기는 일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성도는 그 몸의 지체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에게 맡겨진 자리에서 교회를 섬겨야 한다. 청소든, 식사 봉사든, 중보기도든, 말씀을 배우고 전하는 일이든,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그것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일이라면 귀한 사명이다.

  셋째, 일반 사명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주의 종들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이다. 모든 사람이 강단에 서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선지자나 목회자나 영적 사역자로 부름받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내신 종을 위해 기도하고, 그 사역이 바르게 이루어지도록 돕는 것은 큰 상급과 연결된다. 예수께서는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가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10:40-41).

마10:40-41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반면 특별 사명자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준비시키시는 사람이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낼 사람으로 준비되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어 야곱의 가족을 보존할 사람으로 준비되었다. 예레미야는 열방의 선지자로 세움을 받기 위해 모태에서부터 구별되었다(렘1:5). 바울은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 앞에 예수의 이름을 전할 그릇으로 택함받았다(행9:15).

렘1: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행9: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러므로 특별 사명은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준비시키신다. 그러나 특별 사명이 없다고 해서 낮은 것이 아니다. 일반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사람도 천국에서 상급을 받는다. 섬김의 면류관, 충성의 면류관, 인내의 면류관은 유명한 사역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깨끗한 마음으로 충성한 자에게 주어진다.

 

 

4. 하나님은 쓰실 사람에게 어떤 자질을 준비시키시는가?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에게는 자질이 필요하다. 자질이란 맡겨진 직무를 감당할 수 있는 기본 능력과 그릇의 크기를 말한다. 하나님은 아무 연장도 없는 사람에게 집을 지으라고 하지 않으신다. 목수에게는 연장이 필요하고, 군사에게는 무기가 필요하며, 말씀 사역자에게는 말씀을 깨닫고 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쓰실 때에는 그 일에 맞는 자질을 준비시키신다.

  자질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일반 은사, 곧 달란트다. 이것은 육적 DNA와 훈련을 통해 나타나는 재능이다. 가르치는 능력, 말하는 능력, 글 쓰는 능력, 노래하는 능력, 음식을 만드는 능력, 재물을 다루는 능력, 행정 능력, 운동 능력, 사람을 섬기는 능력 등이 여기에 속한다. 하나님은 이런 일반 은사를 통해서도 교회를 세우신다.

  다른 하나는 영적 은사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게 하는 영적 DNA와 같다. 영적 은사는 부모의 신앙과 기도 가운데 태어날 때부터 잠재될 수도 있고, 성령세례 때 주어질 수도 있으며, 어떤 직임을 감당하도록 안수받을 때 전이되거나 활성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은사가 사명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맡기시려면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은사를 준비시키신다.

  모세의 경우를 보자. 그는 애굽 왕궁에서 애굽의 모든 지혜를 배웠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장차 그를 애굽 왕 바로 앞에 세우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 지도자로 삼으실 것이기 때문에 미리 준비시키신 것이다. 그는 애굽의 언어를 배웠고, 행정과 지혜와 정치와 군사적 소양을 배웠다. 스데반은 모세가 말과 일에 능한 사람이었다고 증언한다(행7:22).

행7:22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이 말씀은 사역자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하나님의 능력은 필수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준비도 사용하신다. 말씀 사역자는 말씀을 연구해야 하고, 가르치는 사역자는 가르치는 훈련을 받아야 하며, 영적 사역자는 영적 세계를 배워야 한다. 하나님은 게으름을 은혜라고 부르지 않으신다.

  모세가 애굽 왕궁에서 받은 교육은 단지 세상 학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장차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 위한 기초 소양이었다. 그가 애굽의 궁중 언어를 몰랐다면 바로 앞에서 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가 지도력과 행정을 배우지 못했다면 수많은 백성을 이끌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가 글과 기록의 훈련을 받지 못했다면 율법과 역사와 하나님의 말씀을 정리하여 후대에 남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반 은사와 영적 은사를 함께 살펴야 한다.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오래 감당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할 때 생명이 살아나는지, 무엇을 통해 다른 사람이 세워지는지를 보아야 한다. 이것이 자기 분수를 아는 길이다. 분수를 안다는 것은 자신을 낮게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그릇의 크기를 바르게 아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자기에게 없는 것을 자랑하지 않는다. 또 자기에게 있는 것을 묻어 두지도 않는다. 한 달란트를 받은 자가 그것을 땅에 묻어 두면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을 받는다. 그러나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것을 자기 자랑으로 쓰면 위험하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질은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한다. 달란트와 은사는 모두 주인의 것이기 때문이다.

 

 

5. 모세는 애굽 왕궁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모세의 첫 40년은 애굽 왕궁에서의 준비 기간이었다. 그는 버려진 아이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보호받고 있었다. 바로의 명령 때문에 히브리 남자 아이들은 나일강에 던져져야 했다. 그러나 모세의 부모는 그 아이가 아름다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겼다. 히브리서는 이것을 믿음의 행동으로 해석한다(히11:23).

히11: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모세가 갈대 상자에 담겨 나일강에 놓였을 때, 그는 죽음에 넘겨진 것 같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애굽 공주의 손에 들어가게 하셨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죽음에서 건져내셨고, 동시에 그를 애굽 왕궁 안으로 들여보내셨다. 장차 애굽을 상대할 사람을 애굽의 중심부에서 준비시키신 것이다.

  모세가 왕궁에서 배운 첫 번째는 언어였다. 그는 히브리인이었지만 애굽의 언어와 문화 속에서 자랐다. 장차 바로 앞에서 말해야 할 사람, 애굽의 정치 구조를 상대해야 할 사람, 수많은 사람 앞에 서야 할 사람에게 언어는 매우 중요했다. 하나님은 그에게 말과 글의 훈련을 받게 하셨다. 사역자는 자기 생각만 가지고는 사람을 이끌 수 없다. 하나님께 받은 내용을 바르게 전달할 수 있는 언어가 있어야 한다.

  두 번째로 모세는 애굽의 지혜를 배웠다. 애굽은 당시 고대 세계의 강대국이었다. 천문, 수학, 건축, 의학, 행정, 군사 기술이 발달한 나라였다. 모세는 그 모든 지혜를 배웠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지혜 자체를 우상화하게 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세상 지혜까지도 당신의 일을 위해 사용하셨다. 애굽에서 배운 지혜는 나중에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쓰실 때 도구가 되었다.

  세 번째로 모세는 지도력의 기본을 배웠다. 한 민족을 이끄는 일은 감정만으로 되지 않는다. 조직을 알고, 사람을 알고, 명령 체계를 알고, 위기 속에서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 모세는 왕궁에서 이런 기본 소양을 배웠다. 그는 나중에 광야에서 수많은 백성을 이끌어야 했다. 하나님은 그 일을 위해 애굽 왕궁에서 그를 미리 준비시키셨다.

  네 번째로 모세는 글과 기록의 훈련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모세는 후에 율법과 출애굽의 역사를 기록해야 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셔도 기록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후대에 남기기 어렵다. 그러므로 모세가 애굽의 모든 지혜를 배웠다는 말에는 단지 학문적 지식만이 아니라, 장차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할 사역자로서의 준비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오늘날 말씀 사역자에게도 중요한 원리다. 하나님께 쓰임받으려면 말씀을 사랑해야 한다. 성경을 깊이 연구해야 한다. 원어를 볼 수 있다면 원어를 보아야 하고, 역사와 배경을 살필 수 있다면 살펴야 한다.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것과 성도가 공부하는 것은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준비된 지성도 사용하시고, 순종하는 마음도 사용하시며, 성령의 감동도 더하신다.

  그러나 애굽의 교육만으로는 모세가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없었다. 애굽의 학문은 도구일 뿐이었다. 그 도구를 어떤 목적을 위해 사용할 것인지가 더 중요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또 다른 교육을 주셨다. 그것은 어머니를 통한 신앙 교육이었다.

 

 

6. 모세는 어머니에게 어떤 신앙교육을 받았는가?

  모세는 애굽 왕궁에서 자랐지만, 그의 정체성은 애굽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히브리인이었다. 이 정체성이 어떻게 그의 마음에 새겨졌을까? 하나님은 모세의 친어머니 요게벳을 유모로 다시 붙여 주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다. 어머니는 젖만 먹인 것이 아니다. 그 아이에게 신앙을 심어 주었다.

  모세가 받은 첫 번째 신앙 교육은 ‘너는 히브리인이다’라는 정체성 교육이었다. 왕궁에서 자라면 자신을 애굽 사람으로 여길 수 있었다. 그러나 모세는 장성하여 자기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을 했다. 이것은 그가 자기 정체성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는 애굽의 왕자로 살 수 있었지만, 자기 백성이 누구인지를 잊지 않았다(행7:23).

행7:23 나이가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

  둘째, 모세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땅이 있다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애굽은 영원한 집이 아니었다. 아무리 왕궁이 화려해도, 하나님의 백성에게 애굽은 나그네의 땅이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기업은 가나안이었다. 이 신앙이 있었기에 모세는 애굽의 보화를 영원한 것으로 보지 않았다.

  셋째, 모세는 세상의 영광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것이 더 귀하다는 신앙을 배웠다. 히브리서 11장은 이것을 매우 분명하게 말한다.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받기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선택했다. 이것은 저절로 된 것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심겨진 신앙 교육과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선택을 이끌었다(히11:24-26).

히11:24-26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 주심을 바라봄’이다. 모세는 눈앞의 애굽 보화만 본 것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실 상을 보았다. 이것이 신앙 교육의 핵심이다. 신앙 교육은 단지 교리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이 땅의 영광보다 하늘의 상이 더 크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 땅에서 잠깐 누리는 죄악의 낙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길이 더 가치 있다는 것을 심어 주는 것이다.

  오늘날 부모와 영적 지도자의 역할도 여기에 있다. 좋은 부모를 만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러나 육신의 부모가 신앙을 제대로 전해 주지 못했다면, 좋은 영적 부모를 만나야 한다. 영적 지도자는 성도에게 정체성을 알려 주어야 한다. 너는 세상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알려 주어야 한다. 너는 애굽에서 영원히 살 자가 아니라 새 예루살렘 성을 향해 가는 자라고 알려 주어야 한다. 너는 죄악의 낙을 따라 살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하늘의 상을 받을 자라고 가르쳐야 한다.

  모세가 애굽의 학문을 배운 것은 중요했지만, 어머니에게 받은 신앙 교육이 없었다면 그는 애굽의 도구가 되었을 것이다. 세상 지식은 방향을 주지 못한다. 신앙이 방향을 준다. 지식은 힘이 될 수 있지만, 믿음은 그 힘을 어디에 쓸지를 결정한다. 그러므로 사역자는 지식과 신앙을 함께 갖추어야 한다. 세상 소양은 사역의 도구가 되고, 신앙 교육은 사역의 방향이 된다.

  이 점에서 오늘의 사역자도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가? 나는 이 땅이 영원한 집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나는 하늘의 상을 바라보며 살아가는가? 나는 세상 보화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더 귀히 여길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아직 사역자의 기초가 단단히 세워진 것이 아니다.

 

 

7. 왜 모세에게는 미디안 광야 40년이 필요했는가?

  모세에게는 애굽의 모든 학문과 지혜가 있었다. 그는 말과 일에 능한 사람이었다. 그는 히브리인이라는 정체성도 알고 있었다. 그는 자기 백성을 돌아볼 생각도 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혈기와 분노였다. 그는 애굽 사람이 히브리 사람을 치는 것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 죽였다. 의협심은 있었지만 하나님의 방식은 아니었다.

  모세는 자기 백성이 자신을 이해할 줄 알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손을 통해 그들을 구원해 주실 것을 그들이 깨달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깨닫지 못했다(행7:24-25). 모세의 때와 하나님의 때는 달랐다. 모세의 방식과 하나님의 방식도 달랐다. 모세는 자기 힘으로 구원 사역을 시작하려 했지만, 하나님은 아직 그를 쓰실 때가 아니었다.

행7:24-25 한 사람이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 죽이니 그는 그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였더라

  그래서 모세에게 미디안 광야 40년이 필요했다. 애굽 왕궁 40년이 자질의 준비였다면, 미디안 광야 40년은 성품의 훈련이었다. 왕궁에서는 말과 일을 배웠지만, 광야에서는 침묵과 기다림을 배웠다. 왕궁에서는 사람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지만, 광야에서는 양을 돌보는 법을 배웠다. 왕궁에서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배웠지만, 광야에서는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하나님께서 사역자를 광야로 보내시는 이유가 있다. 광야는 사람을 낮춘다. 광야는 자기 힘을 빼게 한다. 광야는 사람의 박수와 인정 없이 하나님 앞에 홀로 서게 한다. 광야는 사람 안에 감추어진 혈기와 조급함과 자기 의를 드러낸다. 왕궁의 모세는 강했지만 위험했다. 광야의 모세는 약해졌지만 하나님께 쓰임받을 준비가 되어 갔다.

  모세의 혈기와 분노는 한순간의 성격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역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문제였다. 실제로 모세는 훗날 가데스의 므리바 물 사건에서 다시 그 약점을 드러냈다. 하나님은 반석에게 명령하라고 하셨는데, 모세는 분노하여 반석을 쳤다. 물은 나왔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다. 이는 지도자의 성품 문제가 얼마나 중대한지를 보여 준다.

  오늘날 사역자에게도 미디안 광야가 필요하다. 어떤 사람에게는 낮아지는 시간이 광야다. 어떤 사람에게는 무명의 시간이 광야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정의 어려움과 경제적 고난이 광야다. 어떤 사람에게는 사람에게 오해받고 버림받는 시간이 광야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광야는 버림이 아니라 훈련일 수 있다. 하나님은 그 광야에서 성품을 다듬으신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를 더 보아야 한다. 모세는 40년 광야 훈련을 받았지만, 혈기와 분노가 완전히 제거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회개와 천국복음의 방식, 곧 예수의 피로 내 속의 악한 영을 내보내는 길을 아직 온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참고 눌렀지만, 뿌리까지 제거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에 다시 문제가 드러났다.

  오늘의 성도는 모세보다 더 큰 은혜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예수의 피를 알고, 자백하는 회개를 알고, 악한 영을 내보내는 길을 알고 있다. 혈기와 분노와 시기와 질투와 원망과 불평은 단순한 성격 문제가 아니다. 그것들은 사람 안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의 통로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의 사역자는 광야 훈련만이 아니라 회개의 훈련을 받아야 한다. 회개가 없으면 성품은 뿌리부터 바뀌지 않는다.

  성품이 준비되지 않은 사역은 위험하다. 아무리 큰 은사가 나타나도 성품이 무너지면 그 열매는 하나님께 인정받기 어렵다. 아무리 많은 사람을 모아도 혈기와 교만으로 일하면 하늘에서 계산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사역자는 자신의 은사를 자랑하기보다 자신의 성품을 두려워해야 한다. 하나님께 쓰임받으려면, 먼저 하나님 앞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8. 오늘 사역자는 어떻게 깨끗한 그릇으로 준비되어야 하는가?

  오늘의 사역자는 모세의 생애를 통해 자신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에게는 준비가 필요하다. 첫째, 자질의 준비가 필요하다. 둘째, 신앙 교육이 필요하다. 셋째, 성품의 훈련이 필요하다. 넷째, 회개를 통해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한다. 특히 마지막 시대의 사역자는 영적 세계를 다루어야 하므로, 더더욱 깨끗해야 한다.

  깨끗한 그릇이 된다는 것은 단지 도덕적으로 착하게 사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물론 착하고 선한 성품은 중요하다. 그러나 동탄명성교회의 회개와 천국복음의 관점에서 보면, 깨끗한 그릇이 된다는 것은 내 안에 합법적으로 들어와 있는 악한 영들을 회개와 예수의 피로 내보내는 것을 포함한다. 더러운 영들이 속에 가득한 사람이 사역을 하면, 겉으로는 열심히 일해도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으실 수 있다.

  바울은 사람이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게 된다고 했다(딤후2:21). 여기서 핵심은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이다. 하나님께 쓰임받고 싶다면 먼저 깨끗하게 되어야 한다. 사역을 먼저 하려고 하지 말고, 깨끗한 그릇이 되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 은사를 먼저 구하기 전에 회개해야 하고, 직분을 먼저 탐하기 전에 성품을 다듬어야 한다.

딤후2: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깨끗한 그릇이 되기 위해서는 첫째, 말씀의 기준을 가져야 한다. 사역자는 자기 경험이나 환상이나 은사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은 성경 말씀으로 점검해야 한다. 영적 세계를 본다고 해서 다 옳은 것이 아니다. 귀신도 보여 줄 수 있고, 미혹의 영도 가르칠 수 있다. 그러므로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성령은 말씀을 거스르지 않으신다.

  둘째, 회개를 생활화해야 한다. 회개는 구원받을 때 한 번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계속 정결해져야 한다. 특히 사역자는 더 많이 회개해야 한다. 자신이 더럽혀지면 자신을 통해 섬김받는 사람들도 악한 영의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역자는 날마다 ‘주님, 나를 깨끗하게 하소서. 내 안에 있는 혈기와 교만과 탐욕과 음란과 미움의 영들을 내보내 주소서’라고 회개해야 한다.

  셋째, 좋은 영적 지도자의 점검을 받아야 한다. 스스로 자신을 지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위험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눈의 들보를 잘 보지 못한다. 영적 사역자는 더더욱 점검이 필요하다. 내가 지금 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 내 안에 교만이 들어오지 않았는지, 내가 본 것이 성령께로부터 온 것인지, 미혹의 영이 섞인 것은 아닌지 점검받아야 한다.

  넷째, 작은 일에 충성해야 한다. 특별한 은사를 받았는지 여부보다 먼저, 지금 맡겨진 작은 일에 충성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청소하는 일, 기도하는 일, 섬기는 일, 순종하는 일, 교회를 세우는 일, 주의 종을 돕는 일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하나님은 작은 일에 충성한 사람에게 더 큰 일을 맡기신다. 작은 일에 불성실한 사람이 큰 일을 감당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

  다섯째, 자기 안에 남아 있는 혈기와 분노를 가볍게 보지 말아야 한다. 모세는 위대한 종이었지만, 마지막에 혈기 문제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것은 오늘 사역자에게 두려운 경고다. 하나님께 쓰임받았다고 해서 끝까지 안전한 것이 아니다. 받은 은사가 있고, 지나온 훈련이 있고, 큰 일을 감당했어도, 마지막에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하면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다.

  여섯째,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모세는 40세에 자기 힘으로 시작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하나님은 그를 80세에 부르셨다. 이것은 하나님이 늦으셨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셨다. 오늘의 사역자도 조급하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 쓰실 때가 있다. 그때까지 준비하고, 배우고, 낮아지고, 회개하고, 순종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역자는 자기 수고가 하늘에서 인정받는 수고가 되기를 구해야 한다. 이 땅에서 많은 일을 했다고 해서 다 하늘의 상급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수고가 있고, 인정하지 않으시는 수고가 있다. 깨끗한 그릇으로 행한 충성과 순종은 하늘에 올라가지만, 귀신의 힘과 교만과 혈기로 행한 수고는 헛될 수 있다. 그러므로 사역자는 ‘내가 얼마나 많이 했는가’보다 ‘하나님께서 내 수고를 인정하시는가’를 물어야 한다.

 

 

9. 나오며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역자로 쓰실 사람을 어떻게 준비시키시는지를 살펴보았다. 하나님은 사람을 갑자기 세우지 않으신다. 모세는 80세에 부름받았지만, 이미 80년 동안 준비되고 훈련된 사람이었다. 애굽 왕궁의 40년은 자질과 소양을 준비하는 시간이었고, 미디안 광야의 40년은 성품과 자기 비움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오늘의 성도와 사역자도 이 원리를 붙들어야 한다.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서는 자질이 필요하다. 일반 은사와 영적 은사가 필요하고, 맡겨진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자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성품이 준비되어야 하고, 순종의 훈련을 받아야 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회개를 통해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한다.

  사역자는 자신의 은사를 자랑해서는 안 된다. 은사는 주인의 일을 위해 맡겨진 도구일 뿐이다. 달란트도 주인의 것이고, 영적 은사도 주인의 것이다. 그러므로 사역자는 자기를 높이지 말아야 한다.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말씀의 기준 안에 머물며, 좋은 영적 지도자의 점검을 받고, 작은 일에 충성해야 한다.

  또한 성도는 자신의 일반 사명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자기 가정을 위해 기도하고, 교회를 섬기며, 하나님이 보내신 종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은 매우 귀하다. 특별한 사명자가 아니어도 하늘의 상급은 충분히 크다. 하나님은 유명한 사람만 기억하시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마음으로 충성한 사람을 기억하신다.

  마지막으로 사역자는 모세의 느보산을 기억해야 한다. 모세는 위대한 종이었지만,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한 사건 때문에 약속의 땅을 밟지 못했다. 이것은 은사보다 성품이 중요하고, 기적보다 순종이 중요하며, 결과보다 하나님의 인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오늘의 사역자는 회개와 순종으로 자신을 계속 다듬어야 한다. 그리하여 깨끗한 그릇으로 준비되어 하나님께 귀히 쓰임받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설교핵심]

이 설교는 하나님께서 사역자를 준비시키시는 세 가지 단계적 과정을 모세와 요셉의 삶을 통해 통찰력 있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먼저 사역자가 될 사람에게 그 직무를 감당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 및 영적 은사라는 자질을 갖추게 하시며, 이후 혹독한 광야의 시간을 통해 성품과 순종의 훈련을 거쳐 자아를 비우게 하십니다. 특히 설교자 정보배 목사는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갖추었더라도 혈기와 분노 같은 부정적인 성품을 회개로 제거하지 못하면 결국 하나님의 거룩함을 가리게 되어 그간의 모든 수고가 헛수고가 될 수 있음을 엄중히 경고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사역자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 영적 스승의 지도 아래 끊임없이 자신을 살피고 회개함으로써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깨끗한 그릇으로 거듭날 것을 강력히 권면하고 있습니다.

 

[핵심내용]

하나님께서는 사역자를 어느 날 갑자기 세우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크게 쓰실 사람은 먼저 자질을 준비시키시고, 다음에는 성품과 순종을 훈련시키시며, 때로는 좋은 영적 지도자와 환경을 통해 다듬으신다. 모세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었고, 애굽 왕궁에서 언어와 학문과 지도력과 군사적 소양을 배웠으며, 어머니 요게벳을 통해 히브리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신앙을 배웠다. 그러나 그에게는 혈기와 분노가 남아 있었기에, 하나님은 그를 미디안 광야로 보내 40년 동안 비움과 성품의 훈련을 받게 하셨다. 그러므로 오늘의 성도와 사역자도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서는 자질과 은사만이 아니라, 회개로 깨끗해진 성품과 순종의 훈련을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

 

 

[사역자론(06)] 인포그래픽_[포맷변환].jpg.webp

 

 

[사역자론(06)] Forging_the_Clean_Vessel.pdf_1_vora.jpg.webp

[사역자론(06)] Forging_the_Clean_Vessel.pdf_2_vora.jpg.webp

[사역자론(06)] Forging_the_Clean_Vessel.pdf_3_vora.jpg.webp

[사역자론(06)] Forging_the_Clean_Vessel.pdf_4_vora.jpg.webp

[사역자론(06)] Forging_the_Clean_Vessel.pdf_5_vora.jpg.webp

[사역자론(06)] Forging_the_Clean_Vessel.pdf_6_vora.jpg.webp

[사역자론(06)] Forging_the_Clean_Vessel.pdf_7_vora.jpg.webp

[사역자론(06)] Forging_the_Clean_Vessel.pdf_8_vora.jpg.webp

[사역자론(06)] Forging_the_Clean_Vessel.pdf_9_vora.jpg.webp

[사역자론(06)] Forging_the_Clean_Vessel.pdf_10_vora.jpg.webp

[사역자론(06)] Forging_the_Clean_Vessel.pdf_11_vora.jpg.webp

[사역자론(06)] Forging_the_Clean_Vessel.pdf_12_vora.jpg.webp

[사역자론(06)] Forging_the_Clean_Vessel.pdf_13_vora.jpg.webp

 

 

 

 

[사역자론(06)] 하나님의_사역자가_세워지는_과정_vora.jpg.webp

 

 

[사역자론(06)] Crafting_the_Divine_Vessel.pdf_1_vora.jpg.webp

[사역자론(06)] Crafting_the_Divine_Vessel.pdf_2_vora.jpg.webp

[사역자론(06)] Crafting_the_Divine_Vessel.pdf_3_vora.jpg.webp

[사역자론(06)] Crafting_the_Divine_Vessel.pdf_4_vora.jpg.webp

[사역자론(06)] Crafting_the_Divine_Vessel.pdf_5_vora.jpg.webp

[사역자론(06)] Crafting_the_Divine_Vessel.pdf_6_vora.jpg.webp

[사역자론(06)] Crafting_the_Divine_Vessel.pdf_7_vora.jpg.webp

[사역자론(06)] Crafting_the_Divine_Vessel.pdf_8_vora.jpg.webp

[사역자론(06)] Crafting_the_Divine_Vessel.pdf_9_vora.jpg.webp

[사역자론(06)] Crafting_the_Divine_Vessel.pdf_10_vora.jpg.webp

[사역자론(06)] Crafting_the_Divine_Vessel.pdf_11_vora.jpg.webp

[사역자론(06)] Crafting_the_Divine_Vessel.pdf_12_vora.jpg.webp

[사역자론(06)] Crafting_the_Divine_Vessel.pdf_13_vora.jpg.webp

 

 

 

 

 

 

Who's 갈렙

profile
Atachment
첨부 '31'

  1. [사역자론(06)]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역자로 쓸 사람을 어떻게 준비시키는가?(행7:20~29)_2026-07-10(금)

  2. [사역자론(05)] 나도 영적인 은사를 받고 그 은사를 발전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딤후1:3~6)_2026-07-08(목)

  3. [사역자론(03)]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의 자격으로서 첫번째 조건은?(딤전4:11~16)_2026-07-08(수)

  4. [사역자론(02)]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받기 위해서 사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은?(딤후2:20~21)_2026-07-07(화)

  5. [온라인새벽기도회(26.07.06)] [사역자론(01)] 하나님의 부르심의 2가지 종류와 그 사명은 무엇인가?(벧후1:10~11)_2026-07-06(월)

  6. [기독론(139)] 다윗의 아들 솔로몬(17) 본받지 말아야 할 솔로몬의 다른 모습은 무엇이었나?(열왕기상10:21-11:13)_2026-07-03(금)

  7. [기독론(138)] 다윗의 아들 솔로몬(16) 여자가 성숙한 자가 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아가5:2~8)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8. [기독론(137)] 다윗의 아들 솔로몬(15) 신부들 곧 천국의 성도들의 4가지 신분의 차이(아가 6:8-9)_2026-07-01(수)

  9. [기독론(136)] 다윗의 아들 솔로몬(14) 여자의 호칭에 나타난 왕의 바람은 무엇이었는가?(아가6:4~10)_2026-06-30(화)

  10. [기독론(135)] 다윗의 아들 솔로몬(13) 왕이 진정 바라는 신부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아가서 7:10~13)_2026-06-29(월)

  11. [기독론(133)] 다윗의 아들 솔로몬(11) 아가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8가지 신분(05) 창조주와 재림주(아가서 8:14)_2026-06-26(금)

  12. [기독론(132)] 다윗의 아들 솔로몬(10) 아가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8가지 신분(04) 목자, 포도원의 주인, 동산지기(아4:12-5:2)_2026-06-25(목)

  13. [기독론(131)] 다윗의 아들 솔로몬(09) 아가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8가지 신분(03)(아가서1:14)_2026-06-24(수)

  14. [기독론(130)] 다윗의 아들 솔로몬(07) 아가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8가지 신분(02)( 아가서 4:9~5:2 )_2026-06-23(화)

  15. [기독론(129)] 다윗의 아들 솔로몬(07) 아가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8가지 신분(01)(아가서3:6~11 )_2026-06-22(월)

  16. [기독론(127)] 다윗의 아들 솔로몬(05) 지혜의 3가지 방면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지혜(고전1:18~31)_2026-06-19(금)

  17. [기독론(126)] 다윗의 아들 솔로몬(04) 그는 평화의 왕이자 지혜의 왕이었다(02)(잠8:11~36)_2026-06-18(목)

  18. [기독론(125)] 다윗의 아들 솔로몬(03) 그는 평화의 왕이자 지혜의 왕이었다(01)(왕상3:1~1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19. [기독론(124)] 다윗의 아들 솔로몬(02)”그는 메시야에 대한 어떤 예표자인가?(02)(왕상 4:20~34)_2026-06-16(화)

  20. [기독론(123)] 다윗의 아들 솔로몬(01) 그는 메시야에 대한 어떤 예표자인가?(01)(삼하7:8~17)_2026-06-15(월)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18 Next
/ 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