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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7. 16. (목)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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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vI1gza-el0s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46)] 이사야의 예언(06) 예수께서 사람이 되신 네번째 이유는 무엇인가?(사52:13~53:12)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vI1gza-el0s

 

기독론 146

예수께서 사람이 되신 네 번째 이유는 무엇인가?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이사야는 구약의 어느 선지자보다 메시야의 신분과 사역을 넓고 깊게 예언한 선지자다. 그는 메시야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것과 처녀에게서 태어날 것과 고난받고 죽으실 것과 다시 높임을 받아 영광스러운 주가 되실 것과 마지막에는 재림주와 심판주로 오실 것까지 예언하였다(사 7:14, 9:6-7, 11:1-5, 52:13~53:12, 63:1-6). 그러므로 이사야서를 읽는다는 것은 구약 속에 감추어진 그리스도의 얼굴과 하나님의 경륜(經綸, divine economy)을 함께 읽는 일이다.

  이사야 52장 13절부터 53장 12절까지는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고난받는 의로운 종’을 보여 준다. 그 종은 강포를 행하지 않았고 그의 입에는 거짓이 없었다(사 53:9). 그런데도 그는 멸시받고 버림받고 찔리고 상하며 채찍에 맞고 마침내 죽임을 당한다. 그 고난은 자신의 죄 때문에 받은 응당한 형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대신한 대속(代贖, substitution)의 고난이며, 스스로 선택한 자발적 고난이다.

  지난 시간에는 예수님의 고난이 단지 죽음의 고난이 아니라 우리의 죄와 질병과 저주를 대신 담당한 고난임을 살펴보았다. 이제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이유는 단 하나가 아니다. 첫째, 피 흘려 죽으시기 위함이다. 둘째, 마귀를 인간의 자리에서 패배시키기 위함이다. 셋째, 우리의 친족 구속자(親族救贖者, kinsman-redeemer)가 되기 위함이다. 그리고 넷째,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직접 담당하실 수 없는 인간의 육체적·정신적 저주와 질병을 육체로 담당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여기서 반드시 풀어야 할 문제가 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율법의 저주를 이미 담당하셨다면 왜 많은 성도에게 여전히 질병과 가난과 정신적 억압과 삶의 막힘이 남아 있는가? 왜 “예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나는 나았다”라고 선포해도 현실에서는 병이 그대로 남는 경우가 있는가? 성경의 약속이 틀린 것이 아니라면, 객관적으로 이루어진 속량(贖良, redemption)이 한 개인의 삶에 실효적으로 적용되는 과정이 따로 있다는 뜻이다.

  그 핵심이 자백(自白, confession)과 회개(悔改, repentance)다. 죄를 지으면 하늘에서는 행위책에 기록되고, 이 땅에서는 죄를 통하여 악한 영들이 합법적인 권리를 얻어 사람의 몸과 혼과 환경을 공격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저주의 값을 지불하셨지만, 사람 안에 들어온 악한 영들의 권리는 죄의 자백과 회개를 통하여 제거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이사야 53장의 고난받는 종이 왜 이스라엘이 아니라 메시야인지, 죄 없으신 예수님의 고난은 왜 대속적이며 자발적인지, 예수께서 사람이 되신 네 번째 이유는 무엇인지, 예수님은 왜 질병뿐 아니라 율법의 모든 저주를 담당하셨는지, 율법을 어기면 왜 질병과 가난과 막힘의 저주가 임하는지, 그리스도께서 저주를 속량하셨는데도 왜 성도에게 질병이 남아 있는지, 그리고 왜 죄의 자백과 회개가 치유와 악한 영의 축출에 필요한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이사야 53장의 고난받는 종은 왜 이스라엘이 아니라 메시야인가?

  유대교는 이사야 53장의 ‘내 종’을 개인적 메시야가 아니라 집단적 이스라엘로 해석한다. 그 근거로 이사야 41장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전체를 “나의 종”이라고 부르신 사실을 제시한다(사 41:8-9).

사 41:8-9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실제로 이사야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의 인격체처럼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사야 53장을 민족적 이스라엘과 전혀 무관한 본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스라엘은 열방 가운데 멸시받고 박해받았으며,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종의 사명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이사야 53장의 모든 진술을 집단적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적용하면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생긴다.

  그 종은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다”고 말해진다(사 53:9). 그러나 구약의 이스라엘은 반복적으로 우상숭배와 음행과 불순종을 범하였다.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을 목이 곧고 패역하며 거짓된 백성이라고 책망하였다(사 1:2-4, 렘 5:1-3). 그러므로 죄가 전혀 없는 의로운 종이라는 묘사는 범죄한 민족 전체보다 죄 없는 한 인격적 종에게 더 정확히 들어맞는다.

사 53: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더 결정적인 증거는 신약성경의 해석이다. 마태는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신 사건을 이사야 53장 4절의 성취라고 선언한다(마 8:16-17). 베드로는 예수께서 죄를 범하지 않으셨고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이사야 53장을 직접 적용한다(벧전 2:22-24). 빌립 역시 에디오피아 내시가 읽던 이사야 53장의 종을 예수 그리스도로 해석하여 복음을 전하였다(행 8:32-35).

마 8:16-17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셨으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이사야 53장은 이사야 자신이나 이스라엘에게 부분적으로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으나, 궁극적인 실체는 메시야 예수다. 다윗에게 주어진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는 시편 2편의 예언도 다윗에게 온전히 성취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다(시 2:7-9, 행 13:33, 히 1:5). 같은 원리로 이사야의 종도 예표(豫表, type)를 넘어 그리스도 안에서 실체(實體, antitype)가 된다.

3. 죄 없으신 예수님의 고난은 왜 대속적이며 자발적인가?

  예수님의 고난은 자신의 범죄 때문에 받은 형벌이 아니다. 성경은 그분이 죄를 범하지 않았고 입에 거짓도 없었다고 증언한다(벧전 2:22). 그분은 하나님을 모독하지 않았고, 폭력을 행하지 않았고, 사람을 속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분에게 징계와 채찍과 사망이 임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이사야는 그 이유를 반복되는 ‘우리’라는 말로 설명한다. 그는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담당하며, 우리의 허물 때문에 찔리고, 우리의 죄악 때문에 상하였다(사 53:4-5). 여기서 대속(代贖, substitutionary atonement)의 핵심이 드러난다. 죄 없는 한 분이 죄 있는 다수를 대신하여 그들이 받을 형벌과 저주를 담당한 것이다.

사 53:4-5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 고난은 또한 자발적(自發的, voluntary)이었다. 예수님은 붙잡힐 능력이 없어서 체포된 것이 아니다. 그분은 자신을 잡으러 온 군병들에게 “내가 그니라”고 말씀하셨고, 그들이 뒤로 물러가 땅에 엎드러졌다(요 18:3-6). 열두 군단이 넘는 천사를 부를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마 26:53-54). 성경을 이루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을 내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고난은 강제된 희생이 아니라 사랑의 선택이다. 아버지가 무력한 아들을 억지로 죽음에 밀어 넣은 것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셔서 스스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셨다. 이것이 십자가 사랑의 깊이다. 대속은 법적인 교환이고, 자발성은 그 교환을 가능하게 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 사실을 놓치면 십자가는 단순한 순교나 정치적 희생으로 축소된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은 세상의 부당함에 희생된 한 의인의 죽음만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구속(救贖, redemption)의 사건이며, 죄와 저주와 사망과 마귀의 권세를 깨뜨린 하나님의 경륜적 사건이다.

4. 예수께서 사람이 되신 네 번째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이유는 무엇일까? 그 첫 번째 이유는 피 흘려 죽으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피가 없으시다(요 4:24). 그러나 율법은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다고 선언한다(레 17:11, 히 9:22).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의 혈과 육을 입으셔야만 죄를 위한 피를 흘릴 수 있었다.

히 9: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두 번째 이유는 마귀를 인간의 자리에서 패배시키기 위함이다. 예수님은 잠시 천사보다 못하게 되신 사람의 자리에서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마귀를 멸하셨다(히 2:9, 14). 하나님이 말씀 한마디로 마귀를 없애실 수도 있었지만, 마귀가 멸시하던 인간의 자리에서 그를 패배시키심으로 그의 교만을 가장 수치스럽게 무너뜨리셨다.

  세 번째 이유는 그분이 우리의 고엘 즉 우리의 친족 구속자(親族救贖者, kinsman-redeemer)가 되기 위함이다. 히브리어 ‘고엘’은 가까운 친족으로서 잃어버린 기업을 되찾고, 팔린 친족을 속량하며, 피의 원한을 갚아 주는 사람을 가리킨다(레 25:25, 룻 3:9-13). 하나님은 우리와 같은 혈과 육을 입음으로 우리의 친족이 되셨고, 우리의 잃어버린 생명과 기업을 되찾아 주셨다.

  그리고 네 번째 이유는 인간의 육체와 정신에 임한 저주를 몸으로 담당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질병과 채찍과 굶주림과 목마름과 육체적 통증을 직접 경험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람이 되셨다. 육체를 입으셔야 우리의 질고를 짊어지고, 채찍에 맞고, 가시관에 찔리고, 헐벗고, 목마르고, 버림받는 고난을 실제로 담당할 수 있었다.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그 종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고 질고를 당하게 하셨다고 말한다(사 53:10). 이것은 하나님께서 고난 자체를 즐기셨다는 뜻이 아니라, 죄인들을 치유하고 구원하기 위한 대속의 길을 기꺼이 성취하셨다는 뜻이다.

사 53: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예수께서 사람이 되신 네 번째 이유는 단순히 죽을 몸을 얻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우리 몸과 혼에 임한 저주의 값을 직접 감당하고, 우리가 질병과 정신적 억압과 가난과 버림받음에서 놓임을 받을 합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함이다.

5. 예수님은 왜 질병뿐 아니라 율법의 모든 저주를 담당하셨는가?

  이사야 53장은 특별히 질병과 연약함과 채찍을 강조한다. 마태는 이를 예수님의 치유와 축사 사역에 적용하였다(마 8:16-17). 그러나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담당하신 것은 질병 하나만이 아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셔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고 말한다(갈 3:13).

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속량(贖良, redemption)에 해당하는 헬라어 ‘엑사고라조’는 값을 지불하고 어떤 상태나 권세로부터 사서 끌어낸다는 뜻을 가진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율법의 저주 아래에서 값을 주고 사서 해방시키셨다. 그 값은 자신의 몸과 피와 생명이었다.

  율법의 저주는 신명기 28장에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중하고 오래가는 질병, 폐병과 열병과 염증과 피부병, 정신 이상과 눈멂, 압제와 약탈, 자녀와 재산을 빼앗김, 굶주림과 목마름과 헐벗음이 포함된다(신 28:20-35, 47-48, 58-61).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이 저주들의 표지를 실제로 담당하셨다.

신 28:47-48 네가 모든 것이 풍족하여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네가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모든 것이 부족한 중에서 여호와께서 보내사 너를 치게 하실 적군을 섬기게 될 것이니 그가 철 멍에를 네 목에 메워 마침내 너를 멸할 것이라

  그분은 옷 벗김을 당하여 헐벗으셨고, 십자가에서 “내가 목마르다”고 말씀하셨으며, 모든 제자가 도망함으로 사람들에게 버림받으셨다(마 26:56, 요 19:23-24, 28). 채찍에 맞아 육체의 질병과 통증의 저주를 담당했고, 사람들의 조롱과 침 뱉음과 모욕을 통하여 정신적 수치와 버림받음의 저주를 담당하셨다.

  또한 예수께서 나무에 달리신 것은 우연이 아니다. 율법은 나무에 달린 자를 하나님께 저주받은 자라고 선언한다(신 21:22-23). 페르시아에서 시작되어 헬라와 로마로 이어진 십자가형이 바로 예수 시대에 사용된 것도 하나님의 섭리(攝理, providence) 안에 있었다.

신 21:22-23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그러므로 십자가는 죄의 용서만을 위한 사건이 아니다. 예수님은 죄의 삯인 사망뿐 아니라 율법을 어긴 인간에게 임한 질병과 가난과 헐벗음과 목마름과 정신적 억압과 삶의 막힘까지 담당하셨다.

6. 율법을 어기면 왜 질병과 가난과 막힘의 저주가 임하는가?

  율법에는 적극적으로 행해야 할 긍정 명령과 하지 말아야 할 부정 명령이 있다. 유대 전통은 모세오경의 계명을 613가지로 정리하여, 하라는 계명 248가지와 하지 말라는 계명 365가지로 구분한다. 중요한 것은 숫자 자체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다.

  신명기 27장은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선언한다(신 27:26).

신 27:26 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여기서 저주는 단순히 하나님이 감정적으로 화를 내어 벌을 내린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보호 울타리를 벗어남으로 악한 영들이 합법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상태에 들어간다는 뜻을 포함한다. 우상숭배와 점술과 신접과 음행은 사람의 영과 몸을 악한 영에게 열어 주는 대표적인 문이다.

  신명기 28장은 불순종의 결과로 중하고 오래가는 질병과 정신적 혼란과 압제와 가난과 자녀 문제를 열거한다. 특히 율법책에 기록되지 않은 모든 질병과 재앙까지 임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신 28:58-61).

신 28:58-61 네가 만일 이 책에 기록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라 하는 영화롭고 두려운 이름을 경외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네 재앙과 네 자손의 재앙을 극렬하게 하시리니 그 재앙이 크고 오래고 그 질병이 중하고 오랠 것이라 여호와께서 네가 두려워하던 애굽의 모든 질병을 네게로 가져다가 네 몸에 들어붙게 하실 것이며 또 이 율법책에 기록하지 아니한 모든 질병과 모든 재앙을 네가 멸망하기까지 여호와께서 네게 내리실 것이니

  반대로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 말씀에 순종하면 애굽에 내린 질병 하나도 내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자신을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라고 계시하셨다(출 15:26).

출 15: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또한 우상을 깨뜨리고 하나님만 섬기면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병을 제거하며 낙태와 불임이 없게 하겠다고 하셨다(출 23:24-26). 이것은 순종이 구원을 사는 공로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와 보호 안에 머무는 길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질병과 가난과 막힘이 있을 때 무조건 모든 원인을 죄로 단정해서도 안 되지만, 죄와 우상숭배와 악한 영의 문을 전혀 살피지 않는 것도 성경적이지 않다. 성도는 자신의 삶을 정직하게 돌아보고, 말씀에 불순종한 지점이 있다면 회개해야 한다.

7. 그리스도께서 저주를 속량하셨는데도 왜 성도에게 질병이 남아 있는가?

  갈라디아서 3장 13절은 객관적인 구속 사실을 선포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이미 속량하셨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마련된 은혜가 개인의 몸과 삶에 자동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음식이 차려져 있어도 직접 먹지 않으면 배부르지 않은 것과 같다.

  많은 성도가 “예수께서 채찍에 맞으셨으므로 나는 나았다”고 선포한다. 이 고백은 성경적 근거가 있다. 그러나 선포만으로 몸속의 악한 영들이 자동으로 나가는 것은 아니다. 그 영들이 죄를 통하여 합법적으로 들어왔다면, 그 죄의 권리가 회개와 자백으로 제거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불법적으로 일하지 않으신다. 악한 영이 죄를 근거로 사람 안에 들어왔다면, 그 사람의 자유의지와 회개를 무시한 채 무조건 끌어내지 않으신다. 예수님의 대속은 나갈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지만, 개인은 그 근거를 믿음과 회개로 적용해야 한다.

  이것이 창세기 2장과 3장의 차이다. 창세기 2장은 죄의 결과로 죽음을 선언한다(창 2:17). 이 문제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해결되었다. 그러나 창세기 3장은 뱀이 흙을 먹고 살 것이라고 선언한다(창 3:14). 이는 죄를 통하여 뱀과 악한 영들이 사람의 육체를 공격하는 문제를 보여 준다.

  성도가 여러 세대 동안 예수를 믿었더라도 조상들의 죄와 자신의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하지 않았다면, 악한 영들이 남아 있을 수 있다. 다만 여러 세대 동안 우상숭배를 끊고 말씀을 따라 살았다면 그 영들은 먹이를 얻지 못해 약해질 수 있다. 그래서 회개와 축사(逐邪, deliverance)를 시작하면 비교적 쉽게 나가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계속 제사를 지내고 무당과 점술을 찾고 음행과 혈기와 미움의 죄를 반복하면 악한 영들은 지속적으로 힘을 얻는다. 그러므로 몇 번 회개하고 병이 낫지 않았다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 중하고 오래된 질병의 배후에는 오래 쌓인 죄와 많은 악한 영의 권리가 있을 수 있으므로, 회개의 분량이 차기까지 꾸준히 자백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속량은 완전하다. 문제는 십자가의 효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 효력이 개인에게 적용되는 통로가 막혀 있는 데 있다. 믿음의 선포와 함께 죄의 문을 닫고 악한 영들의 권리를 제거해야 실제 치유와 자유가 나타난다.

8. 왜 죄의 자백과 회개가 치유와 악한 영의 축출에 필요한가?

  요한일서 1장 9절은 죄의 자백과 깨끗하게 됨을 직접 연결한다.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요일 1:9).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자백(自白, confession)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몰로게오’는 같은 것을 말하다, 인정하다라는 뜻을 가진다. 하나님께서 죄라고 말씀하신 것을 나도 죄라고 인정하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자백이다. 변명하거나 축소하거나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자백이 아니다.

  회개(悔改, repentance)는 단지 미안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헬라어 ‘메타노이아’는 생각과 방향을 바꾸는 것을 뜻한다. 죄를 인정하고 그 죄에서 돌이키며, 다시는 같은 죄의 통로를 열지 않도록 삶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자백할 때 예수님의 피가 죄의 권리를 덮고 제거한다. 그 결과 악한 영이 사람 안에 머물 법적 근거를 잃는다. 그때 예수 이름으로 나가라고 명령하면 악한 영이 실제로 떠나게 된다. 회개가 충분하지 않으면 영들이 버티지만, 회개의 분량이 차면 나가라는 명령에 따라 빠르게 떠난다.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는 것도 같은 원리다. 출애굽기 20장은 우상숭배의 죄악을 삼사 대까지 갚는다고 말한다(출 20:5). 후손이 조상의 죄에 대한 도덕적 책임까지 대신 지는 것은 아니지만, 조상들이 열어 놓은 영적 통로와 그 결과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그 죄를 인정하고 예수님의 피를 적용하여 악한 영의 권리를 끊어야 한다.

  치유(治癒, healing)는 선포만의 결과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객관적 대속, 개인의 믿음, 구체적인 자백, 실제적인 회개, 악한 영을 내보내는 축사, 그리고 성령의 치유가 함께 작동할 때 온전한 회복이 나타난다. 어느 한 요소만 붙들고 다른 요소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회개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최소한의 길일 뿐 아니라, 이 땅에서 빛 된 삶을 살고 천국의 상을 준비하기 위한 길이기도 하다. 질병과 정신적 억압과 삶의 막힘에 눌린 채 살아가면 복음을 위해 능동적으로 쓰임받기 어렵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과 가정과 조상의 죄를 정직하게 자백하고, 예수님의 피와 이름으로 악한 영을 내보내며, 성령의 인도에 순종해야 한다.

  여기서 하나 더 구별해야 한다. 모든 질병을 개인의 현재 죄 하나로 단순 환원해서는 안 된다.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두고 제자들이 누구의 죄 때문인지 물었을 때, 예수님은 그 사람이나 부모의 특정한 죄 때문이라고만 답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일이 그에게서 나타나게 하려는 목적도 있다고 말씀하셨다(요 9:1-3). 그러므로 질병의 원인을 분별할 때에는 개인의 죄, 조상의 우상숭배, 악한 영의 공격, 자연적 쇠약, 과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등을 함께 살펴야 한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회개는 해가 되지 않으며, 자신의 삶을 말씀 앞에 비추어 보는 일은 필요하다.

요 9:1-3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또한 치유가 더디다고 해서 곧 믿음이 없다고 정죄해서도 안 된다. 성경에는 즉시 치유된 사람도 있고, 여러 단계에 걸쳐 회복된 사람도 있다. 벳새다의 맹인은 예수님의 첫 번째 안수 후 사람들을 나무 같은 것으로 보았고, 다시 안수받은 뒤에야 밝히 보게 되었다(막 8:22-25). 이는 하나님의 치유가 언제나 한 번의 기도와 동일한 방식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성도는 약속을 붙들되 하나님의 주권(主權, sovereignty)과 치유의 과정도 인정해야 한다.

막 8:22-25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하거늘 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회개와 축사는 의학적 치료를 부정하는 구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 누가복음의 저자인 누가는 의사였고, 바울은 디모데에게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권하였다(골 4:14, 딤전 5:23). 하나님은 기도와 회개와 축사뿐 아니라 의사와 약과 수술과 휴식도 사용하실 수 있다. 영적 원인을 살피는 것과 책임 있게 치료받는 것은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 성도는 어느 한쪽만 절대화하지 말고 성령의 인도 아래 모든 합당한 치료 수단을 분별하여 사용해야 한다.

  결국 핵심은 십자가의 완전성과 적용의 책임을 함께 붙드는 데 있다. 그리스도의 대속에는 부족함이 없지만, 성도는 믿음과 회개와 순종으로 그 은혜 안에 머물러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미 차려 놓으신 은혜의 식탁을 바라보기만 해서는 안 되며, 말씀을 믿고 죄를 끊고 실제로 은혜를 받아 누리는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치유를 구하는 성도는 정죄와 두려움이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 안에서 회개해야 한다. 회개는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표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마련하신 자유를 실제로 받아 누리기 위한 믿음의 응답이다. 자신의 죄를 숨기지 않고 빛 가운데 내어놓을 때 예수님의 피가 깨끗하게 하며, 성령께서 몸과 혼과 생활을 새롭게 하신다.

9. 나오며

  이번 시간에는 예수께서 사람이 되신 네 번째 이유가 인간의 육체적·정신적 저주와 질병을 대신 담당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이사야 53장의 고난받는 종은 죄 없는 메시야 예수이며, 그분의 고난은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대신한 대속적 고난이자 사랑으로 선택한 자발적 고난임을 살펴보았다.

  예수께서는 피 흘려 죽기 위해, 마귀를 인간의 자리에서 패배시키기 위해, 우리의 친족 구속자가 되기 위해, 그리고 질병과 가난과 헐벗음과 목마름과 정신적 억압과 버림받음의 저주를 몸으로 담당하기 위해 사람이 되셨다.

  그분은 나무에 달려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 그러므로 십자가 안에는 죄 사함뿐 아니라 질병의 치유와 저주의 해방과 악한 영의 권세를 깨뜨릴 완전한 근거가 있다. 성도는 이 객관적 구속의 사실을 굳게 믿어야 한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이루어진 속량이 개인의 삶에 자동적으로 적용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죄를 통하여 악한 영들이 합법적으로 들어왔다면, 그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여 그들의 권리를 제거해야 한다. 선포만 반복하면서 죄의 문을 그대로 열어 두어서는 안 된다.

  질병과 가난과 정신적 억압과 삶의 막힘이 있을 때에는 낙심하거나 자신을 정죄하기보다, 말씀 앞에서 자신의 삶과 가문의 죄를 정직하게 살펴야 한다. 우상숭배와 점술과 신접과 음행과 혈기와 미움과 탐욕의 통로가 있었다면 구체적으로 자백해야 한다.

  성도는 몇 번 회개하고 변화가 없다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 오래 쌓인 죄와 악한 영의 권리는 꾸준한 자백과 회개로 처리해야 한다. 예수님의 피가 죄의 권리를 제거하고 성령의 능력이 악한 영을 몰아낼 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치유와 자유가 실제 삶에 나타나게 된다.

  또한 회개와 치유의 목적은 단지 편안하게 사는 데 있지 않다. 악한 영의 억압에서 벗어나 자신의 몸과 시간과 물질을 복음을 위해 사용하고, 빛 된 삶을 살아 천국의 상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우리의 모든 저주를 대신 담당하신 은혜를 온전히 믿고, 날마다 죄를 자백하며 악한 영의 권세에서 벗어나 몸과 혼과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7월 16일(목)
정보배 목사
 

 

[설교요약]

이 설교는 이사야서의 예언을 바탕으로 예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네 번째 목적이 우리 삶의 질병과 저주를 대속하기 위함임을 역설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예수께서 채찍에 맞고 고난을 당하신 사건이 단순한 희생을 넘어 율법을 어김으로써 인간에게 닥친 질병, 가난, 그리고 정신적 고통이라는 모든 저주를 끊어내기 위한 법적 근거가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비록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모든 저주를 속량하셨을지라도, 저자는 성도들이 철저한 자백과 회개를 통해 자신과 조상의 죄를 씻어내야만 몸속에 합법적으로 머무는 악한 영들을 몰아내고 실제적인 치유를 경험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이 신자의 삶에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회개라는 신앙적 응답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함을 일깨우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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