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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7. 24. (금)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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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ETg2rJc4B8I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53)] 이사야의 예언(13) 재림주요 심판자로 오실 메시야의 8가지 특징(05) 상 주시려 오심(03)(이사야 49:1~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ETg2rJc4B8I

 

기독론 153

이사야의 예언(13)

재림주요 심판자로 오실 메시야의 8가지 특징(05)

- 상 주시려 오심(03) -

(이사야 49:1-7)

정보배 목사

원문 영상: https://youtu.be/ETg2rJc4B8I

1. 들어가며

  이사야는 재림하시는 메시아를 강한 자로 임하여 친히 다스리시는 주 여호와라고 예언했다. 그분에게는 상급이 있고 그 앞에는 행한 대로 갚으시는 보응이 있다고 했다(사 40:10). 재림은 악한 영과 악한 사람을 처단하는 심판의 날이지만, 동시에 참고 선을 행하며 주님을 경외한 성도에게는 영생과 상을 주시는 날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님을 자신에게 벌을 내리실 분으로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충성과 눈물을 기억하여 상 주실 분으로 맞이해야 한다.

사 40:10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구약에서 재림주와 심판자는 만군의 여호와이시다. 신약에서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천사들과 함께 오셔서 각 사람에게 행한 대로 갚으실 분이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증언한다(마 16:27). 구약의 여호와와 신약의 예수님을 서로 다른 두 하나님처럼 갈라놓으면 재림과 심판의 주체를 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 아들이 나타나시기 전에는 한 분 하나님께서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일하셨고, 때가 차매 그분이 아들로 오셔서 아버지와 구별되어 구원의 경륜을 이루셨다.

  지난 시간에는 하늘의 상을 세 방면으로 구별했다. 날마다 행한 작은 순종이 천국 집과 정원의 재료가 되는 보상인 '미스도스'의 상이 있다. 그리고 일생의 경주를 마치고 믿음을 지킨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상인 '브라베이온'의 상과 그의 따른 면류관으로서 '스테파노스'(승리의 관)가 있다. 또한 아버지께서 특정한 사명자에게 예비하여 주시는 보좌 자리인 '트로노스'가 있다. 이번 시간에는 보좌가 단순한 명예의 의자가 아니라 다스리고 심판하는 권세의 자리라는 사실을 더 깊이 살펴보고자 한다.

  그런데 장차 보좌에 앉아 왕노릇을 할 사람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이 땅에서부터 공의와 공평을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편에게만 유리하고 반대하는 사람에게는 불리한 잣대를 적용하는 자는 결코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맡을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 보좌의 기초가 의와 공평이며, 재림하시는 예수님도 공의로 심판하고 싸우시기 때문이다(시 97:2, 계 19:11). 천국에서의 지위는 이 땅의 인기와 직함으로 정해지지 않고, 진리와 충성과 성숙함과 맡겨진 사명에 대한 순종으로 판정되기 때문이다.

  한편 이사야 49장은 태에서부터 부름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종에 관하여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똑같은 사명으로 보내지 않으시고, 어떤 사람은 한 시대를 깨우고 백성을 돌이키도록 특별히 지어 보내신다(사 49:1, 5). 그렇다고 평신도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종과 함께 그 사역에 기도와 시간과 물질과 은사로 협력하면 선지자의 상을 함께 받을 수 있다(마 10:41-42). 그래서 이 시간에는 만군의 여호와와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 행한 대로 주시는 세 상급, 보좌의 통치와 심판, 공의와 공평, 태에서부터 부름받은 종과 성도의 협력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만군의 여호와가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인 근거는?

  만군의 여호와를 단지 성부 하나님으로만 이해하고 예수님을 그와 별개의 아들로 생각하면 구약과 신약의 계시가 연결되지 않는다. 구약 시대에는 아들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나타나 활동하시기 전이었다. 한 분 하나님께서 아직 아버지와 아들로 구별되어 일하시기 전이므로, 여호와라는 이름은 그 한 분 하나님을 가리킨다. 그런데 신약에 들어와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시자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와 보내심을 받은 아들이 동시에 일하게 되었다(요 5:17).

  스가랴 선지자는 여호와의 발이 마지막 날 감람산에 서실 것이라고 예언했다(슥 14:4). 사도행전에서는 감람산에서 승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던 제자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나, 하늘로 올려지신 예수께서 그들이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라고 말했다(행 1:9-12). 구약은 여호와께서 감람산에 오신다고 했고 신약은 예수께서 그곳으로 다시 오신다고 한다. 그러므로 감람산에 재림하실 만군의 여호와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슥 14:4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쪽 감람 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 산은 그 한 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행 1: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십자가에 붙은 죄패도 하나님께서 주신 표지로 이해할 수 있다.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패에 쓰인 문장을 히브리어로 적은 뒤 그 머리글자를 연결하면 '여호와'라는 네 글자가 된다(요 19:19-20).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22장의 모리아산 사건에서 아브라함에게 번제할 어린양을 친히 준비하실 것을 예고하셨고, 골고다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약속을 성취하셨다(창 22:8, 14). 하나님은 미리 말씀하시고 역사 속에서 그 말씀을 이루셨지만 영의 눈이 닫혔던 당시 사람들은 그 표지를 보고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심판하러 오실 때 혼자 오시지 않는다. 아버지의 영광으로 천사들과 함께 오시며 각 사람에게 행한 대로 갚으실 것이다(마 16:27). 또한 주님의 강림 때 그분의 모든 성도들 곧 이미 천국에 들어가서 살고 있는 천국 성도들과 함께 오신다고 말씀한다(살전 3:13). 이에 대해 요한계시록 19장에서는 백마를 타고 오시는 주님 뒤를 하늘의 군대들이 뒤따르고 있는 모습을 본다(계 19:11-14). 이때 한 무리는 거룩한 천사들이며 다른 한 무리는 이미 천국에 들어가 주님과 함께 오는 성도들이다. 그들은 악한 영들과 악한 자들을 처단하실 왕을 수행한다.

  이때 재림하시는 예수님은 어떤 신분으로 오시는가? 그때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 오신다(계 17:14, 19:16). 이사야가 말한 “강한 자로 임하실 주 여호와”와 요한이 본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는 사실 같은 하나님이다. 그분은 사탄과 귀신들만 심판하지 않고 그 악한 영들을 따라 불의를 행한 사람도 심판하신다. 동시에 그분을 따르며 진리를 지킨 성도에게는 상을 주신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한 분 하나님의 정체뿐 아니라 마지막 심판과 보상의 주체를 밝히는 열쇠다.

  구약에서 여호와께서는 자신을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선포하셨다(사 44:6). 신약에서 부활하신 예수님도 자신을 처음이요 마지막이며 죽었다가 살아난 이라고 말씀하셨다(계 1:17-18, 2:8). 처음과 마지막이 두 분일 수는 없다. 구약에서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여호와께서 신약에서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자신을 나타내신 것이다. 이 동일성을 붙들면 재림주와 심판주와 상 주시는 이가 모두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흔들리지 않는다.

사 44: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이 진리를 들으려면 영의 귀가 열려야 한다.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마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반복해서 명령한다(계 2:7, 11, 17, 29, 3:6, 13, 22). 사람이 진리를 듣기 싫어하는 까닭이 언제나 지성이나 취향의 문제만은 아니다. 제사와 우상숭배와 고집을 통하여 들어온 악한 영이 말씀을 듣지 못하게 막을 수 있다. 특히 제사를 많이 지낸 가문의 종손은 조상 귀신의 영향을 받아 자기 생각과 가문의 전통을 절대화하기 쉽다. 그러므로 악한 영을 내보내고 성령이 지금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

  자신이 지금까지 잘못 배웠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수치가 아니다. 교리와 전통이 성경보다 앞섰다면 그것을 내려놓고 구약과 신약의 말씀을 다시 대조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시대마다 사인을 주시고 당신의 종을 통하여 말씀하시지만 귀가 막힌 사람은 그 성취를 보면서도 깨닫지 못한다. 회개하여 영의 귀가 열리면 구약의 여호와께서 예수님으로 오셨고, 그 예수님이 다시 만왕의 왕과 심판주와 상 주시는 이로 오신다는 사실이 선명해진다.

3. 심판 때 보응과 상급은 행한 대로 어떻게 나뉘는가?

  하나님은 어떻게 심판하실까? 그것은 한 마디로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는 것이다(마 16:27). 그때 하나님께서는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갚으시지만,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않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갚으실 것이다(롬 2:6-8). 보응은 선과 악을 모두 포함하여 행한 것에 합당하게 되돌려 주는 말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심판에는 영생과 상을 받는 길이 있고 진노와 형벌을 받는 길이 있다.

롬 2:6-8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그럼, 누가 진리를 따르는 자들인가? 여기서 진리는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 자기 이익과 교단의 전통과 사람의 눈치를 섞어 두루뭉술하게 말하는 것은 온전한 진리의 말씀이 아니다. 고로 진리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의 말에 거짓이 한 조각도 섞이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 불의를 따르는 것도 단순히 법률을 한 번 어긴 것에 그치지 않는다. 사람을 의롭지 못하게 끌어가는 배후에는 악한 영의 유혹이 있다. 그 영의 말을 따라 불의를 행하고도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것이다.

  예수님도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천사들과 함께 올 때 각 사람에게 행한 대로 갚겠다고 말씀하셨다(마 16:27). 사람은 교회 직분이나 유명세나 입술의 고백으로 판결받지 않는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는지가 우선 판단 기준이고 이어서 믿은 뒤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 그것이 생명책과 행위책에 기록되어 있다(계 20:12). 이때 예수님을 믿었다고 하면서도 불의를 사랑하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다면 상 주시는 주님이 아니라 보응하시는 심판주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런 자는 결국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어지면서 대부분은 성 밖으로 쫓겨날 것이다(계 22:15). 그리고 그중에 어떤 이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게 될 것이다(계21:8).

마 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반대로 예수님 때문에 욕을 먹고 박해받으며 거짓으로 악한 말을 들은 사람에게는 하늘의 큰 상이 있을 것이다(마 5:10-12). 이때 받는 박해적인 고난은 자신이 죄를 지어 받은 질병이나 징계와는 다른 고난이다. 죄의 결과로 고통받는 것을 가지고 자신이 고난받고 있다고 말해서는 아니 된다. 하나님 앞에 진정한 고난은 주님과 진리를 따르다가 사탄과 세상의 반대를 받은 고난을 가리킨다. 성도가 이러한 고난을 받을 때에 비로소 그것은 하늘의 상과 연결된다. 고로 주님과 복음 때문에 손해를 보거나 믿음의 지조를 지키면서 박해를 받는 성도는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한다. 

마 5:11-12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미스도스)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이와같이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천국에는 큰 상과 작은 상이 있으며(마 5:11), 동시에 높은 지위와 낮은 지위도 있다(마 5:19). 예수님은 계명들 가운데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사람을 그렇게 가르친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겠지만, 계명을 행하며 가르친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5:19). 여기서 큰 자와 작은 자는 상의 크기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지위와 신분의 크기를 말하는 것이다. 한편 “하늘에서 너희의 상(미스도스)이 큼이라”는 말씀은 자신의 낱낱의 행위와 고난에 따른 보상의 크기를 말한다. 이것은 지위와 상급과도 연결은 되되지만 동일하지는 않다.

  그러므로 성도는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을 단지 천국에 들어가는 것만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내가 천국에 들어가서 과연 어떤 집과 어떤 정원에서 살게 되며, 거기서 어떤 면류관을 받고 어떤 지위에서 살아갈지도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현재 나의 신앙과 행위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믿고 회개함으로 시작하는 것이지만, 그 은혜를 받은 뒤의 삶에 의해서 다시 한 번 심판을 받는다(고후 5:10, 롬 14:10-12). 이것이 바로 마태복음 18장에 나오는 일만 달란트의 빚진 자의 비유다( 마18:21-35).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야 하며(빌 2:12), 오늘의 말과 행동과 동기를 주님의 심판대 앞에 내놓을 수 있도록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한 번 구원받았으면 영원히 안전하다”는 생각을 가진 자가 되어 회개를 멈추게 된다면 그는 행한 대로 갚으시는 심판 앞에서 무너지고 말 것이다.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주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미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채 있는 사람이라도 완고함과 불순종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면,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면서 성 밖으로 쫓겨날 수 있다(게 3:5, 22:15). 성 밖에서도 더 바깥쪽 어두운 곳은 회개하지 않은 고집과 반역 때문에 철장 권세로 징계를 받는 장소다. 그러나 이 땅에서 자신의 잘못된 고집을 회개하고 또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배우고 실천하면 장차 받을 징계를 피하고 주님 보좌 앞으로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

  그려므로 우리는 예정에 있어서도 구원 예정과 사역적 예정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 둘을 혼동해서도 아니 된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어떤 사람은 반드시 구원하고 어떤 사람은 반드시 멸망시키기로 정해 두셨다는 주장은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누구든지 주의 복음을 듣고 회개하여 믿으면 그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회개하면 그는 구원받을 수 있지만, 믿은 뒤에도 죄를 사랑한다면 그 삶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나아가 눈물을 흘릴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고후 5:10).

4. 보상(미스도스)은 천국 집과 정원을 어떻게 이루는가?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이 받을 수 있는 상에는 첫째로 '미스도스'(μισθός, misthos=보상, 임금, 품삯, 댓가)가 있다(계 22:12). 이것은  일한 것에 대하여 받는 품삯과 보상을 뜻한다. 예수님은 속히 오실 때 자신이 줄 상을 가지고 와서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겠다고 말씀하셨다(계 22:12). 이 보상은 일생을 모두 결산한 뒤 단 한 번 주는 면류관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것은 예수를 믿은 뒤 오늘까지 행한 기도와 찬송과 전도와 구제와 봉사가 하나하나 계산이 되어 하늘에 쌓일 때에 주어지는 보상이다.

계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길을 가다가 한 영혼에게 “예수 믿으세요”라고 말한 전도도 그 상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천국에서 올라가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전도한 한마디는 천국 집의 내 정원에 아름다운 꽃이 된다. 튤립과 아네모네와 수선화 같은 꽃들이 화단을 채워주는 것이다. 이것은 꽃 자체를 탐내라는 뜻이 아니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짧은 전도의 말도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살리려는 순종으로 기억하여 아름다운 보상으로 바꾸신다는 뜻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교회에서 음식을 만들고 안내하고 청소하며 차량을 운행하는 봉사는 정원의 연못에 물고기가 생기게 한다. 천국의 물고기는 사람을 알아보고 반갑게 맞이하며 인사하는 존재다. 그리고 내 정원에 있을 새나 혹은 나무도 우연히 그 자리에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내가 예수 믿고 난 후에 행하는 낱낱의 행위가 천국 집과 천국의 정원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다. 어떤 이는 이 땅에서의 생선을 잡아먹듯 천국에서 물고기를 잡아 요리한다고 하는데 이러한 간증은 천국의 실제와 전혀 맞지 않는다. 천국의 피조물은 성도의 순종과 사랑에 연결된 생명과 기쁨의 존재이며, 성도와 교제하는 아름다운 환경을 이루는 것이지 우리의 요리의 대상이 아니다. 

  또한 기도를 많이 한 사람의 정원에는 큰 분수대가 마련된다. 기도의 분량이 곧 분수대의 분량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수대에서 물줄기가 높이 솟구쳐 올라가는데, 이것은 우리가 얼마나 찬양을 힘차고 아름답게 불렸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정말 찬양을 감사함으로 부르는 사람의 분수는 생동감 있게 하늘로 올라간다. 이 땅에서도 음악에 맞추어 춤추는 분수를 보면 감탄하는데, 하늘의 정원은 성도가 드린 찬양과 기도의 분량과 질을 더욱 아름답게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기도 한마디와 찬송 한 절이 영원한 정원의 모습을 만들어 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금요기도회와 같은 집회 시간에 삼십 분 동안 마음을 다해 찬양하고, 말씀으로 자신의 영혼을 깨우며, 악한 영을 내보내기 위해 뜨겁게 회개하는 시간은 정말 소중한 시간이다. 피곤하다고 입을 다문 사람과 힘을 다해 찬양한 사람의 하늘 보상이 결코 같을 수 없다. 찬양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동시에 영혼을 깨우고 정원의 분수를 힘차게 만드는 재료가 된다. 기도와 찬양의 가치를 아는 성도는 예배 시간이 길다고 불평하지 않으며 하늘의 영원한 것을 준비하는 기회로 받아들인다.

  이처럼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하늘로 올려보내는 '미스도스'는 천국 집의 정원만 아니라 천국 집의 건축 재료들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세운 행위(공적)가 그날 불로 시험받듯이 시험받아 하늘에 쌓인다(고전 3:11-15). 주님을 사랑하여 은밀히 행한 순종은 불을 견디는 귀한 재료로 남아 천국 집의 재료가 되겠지만, 사람에게 보이려고 생색낸 행위는 불타 없어져 천국 집의 재료가 거의 올라가지 못한다. 같은 봉사를 해도 믿음과 사랑과 정성의 정도에 따라 하늘에 올라가는 재료가 달라지는 것이다.

고전 3:12-14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미스도스의 원리는 특별한 사역자에게만 적용되지 않는다. 선지자를 선지자의 이름으로 영접한 사람은 선지자의 상을 받고, 작은 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준 사람도 결코 상을 잃지 않는다(마 10:41-42). 말씀을 전하는 종을 위하여 식사를 준비하고 차량을 제공하며, 복음 사역에 물질과 시간을 드리고 중보기도로 협력한 일도 모두 기록된다. 직접 강단에 서지 않았어도 그 사역을 가능하게 한 충성에 합당한 보상을 받는다.

마 10:41-42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매일의 작은 순종을 우리는 결코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이 세상에서 큰 무대에 서는 것과 유명한 직분이 천국 집에 아름다운 재료를 만들어주는 것이 결코 아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거기에서 기도하고, 병든 이를 돌보고, 말씀을 가르치며, 믿지 않는 가족의 구원을 위하여 회개하고 눈물 흘리는 모든 일이 모두 천국 집의 영원한 건축 재료가 된다. 그러므로 오늘이라도 부지런히 순종하면 육체가 끝나는 순간까지 천국의 집과 정원을 아름답게 준비할 수가 있다.

5. 상(브라베이온)과 면류관은 어떤 승리자에게 주어지는가?

  천국에서 성도들이 받게 될 두 번째 상은 '브라베이온(βραβεῖον, brabeion)'이다. 이 상은 경기에서 이긴 사람에게 수여하는 특별상이다. 운동장에 많은 사람이 달려도 상을 받는 사람은 승리한 한 사람이므로, 성도도 상을 받도록 달려야 한다고 사도 바울은 권면한다(고전 9:24). 예를 들어 '미스도스'가 하루하루의 순종에 따라 쌓이는 품삯이라면, '브라베이온'은 일생의 경주를 모두 마친 뒤 “너는 이 분야에서 끝까지 이겼다”라고 인정하여 주는 영예로운 상에 해당한다.

고전 9:24-25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바울은 경기에서 승리한 자에게 수여하는 관을 '스테파노스(στέφανος, stephanos)'라고 말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도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며 믿음을 지켰다고 하면서, 의의 면류관이 자신을 위하여 이미 예비된 채 있다고 고백했다(딤후 4:7-8). 이처럼 면류관은 경주를 시작할 때 미리 씌워 주는 것이 아니다. 일생의 마지막까지 지조를 지키고 사명을 완수한 사람에게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씌워 주시는 상인 것이다.

딤후 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그렇다면 스테파노스 곧 면류관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성경에는 몇 안 되는 면류관들이 나온다. 하지만 실제는 이보다 훨씬 더 종류가 많다. 그런데 이러한 면류관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생명의 면류관이라 할 것이다. 주와 복음을 위해 목숨을 바친 자에게 주어지는 면류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충성의 면류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걸어가야 할 것을 끝까지 묵묵히 걸어간 자들에게 이 면류관이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성도들이 받은 면류관의 기본은 '충성의 면류관'이 아닐까 한다. 성경은 죽도록 충성한 자에게도 생명의 면류관이 수여될 것이라고 약속되어 있고(계 2:10), 맡겨진 일을 끝까지 감당한 사람에게는 충성의 면류관이 주어질 것이다. 또한 오랜 세월동안 박해의 고난을 견딘 사람에게는 인내의 면류관이 주어질 것이고, 상대방을 미워할 만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끝까지 품어 사랑의 도를 지켜낸 사람에게는 사랑의 면류관이 주어질 것이다. 이처럼 각각의 면류관은 그 사람의 일생에서 이룬 승리를 증언해주는 증표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브라베이온'을 이해하기 위해 좋은 예표는 없는가? 그것은 졸업식이나 영화제에서 받는 상을 연상하면 될 것이다. 초등학교 전 6년 과정을 마칠 때에 받는 상이 바로 '브라베이온'인 것이다. 이 상은 그날 시험을 잘 보았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초등학교의 모든 생활을 종합하여 수여되는 것이다. 필자도 어린 시절 졸업할 때 두꺼운 옥편을 상품으로 받았다. 군대의 신병교육대에서도 사격과 교육 성적을 합산하여 일등이 되어 사단장 표창과 포상휴가를 받았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을 받으려면 모든 과정을 성실히 치러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상은 한순간의 재능보다 지속적인 노력과 절제로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사실 군대가지 전부터 군종병이 되겠다는 목표를 품고 있었다. 그러나 신학을 공부한 경력이 없었으므로 학력의 조건으로만 보았을 때에는 군종병이 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필자는 신병교육대에서 최고 성적을 받으면 원하는 보직을 말할 기회가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화장실에서도 교재를 외우고 잠깐의 시간까지 아껴 반복하여 공부했다. 머리가 특별히 뛰어나서가 아니라 목표를 향해 부지런히 준비한 결과 사격과 시험을 종합하여 결국 일등을 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상도 막연히 원한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절제와 수고와 완주하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서 사단장에게 일대일로 표창을 받았는데, 이때 필자는 경례와 악수의 순서까지 다 훈련받았다. 상급자보다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 그가 손을 내밀어야 나도 손을 내밀 수 있으며, 상급자가 손을 잡는다고 해서 나도 상급자의 손을 덥썩 잡아서는 안 된다는 예절도 배웠다. 하늘의 상도 자신의 공로를 내세움으로 억지로 얻는 것이 아니다.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예수께서 경주를 모두 살피고 인정하여 주실 때 겸손히 받는 것이다. 특히 면류관을 받기 원하는 성도는 상 자체보다 그 상을 수여하시는 주님의 마음과 질서를 존중해야 한다.

  그런나 군대에서 일등 표창을 받은 일은 결코 편안함의 시작이 아니었다. 자대에 배치된 뒤 선임병들은 신병이 먼저 포상휴가를 받았다는 이유로 군기를 잡겠다며 밤마다 불러내어 때렸다. 그럼에도 수요예배에 가기 위하여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홀로 교회에 갔다. 가슴을 발로 밟고 위협해도 교회에 가겠다고 버텼고, 결국 하나님은 필자가 자대에 들어온 지 두 달 만에 소속을 옮기면서까지 하여 군종병이 되게 해 주셨다. 상을 받는 길에는 때로 그 상에 합당한 믿음과 고난이 뒤따르는 법이다. 

  신병이 되어 자대 배치를 받고 두 달 동안 심한 구타를 받아 허리를 다쳐 목회를 하지 못할 만큼 오랜 시간 누워 있기도 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필자의 허리를 낫게 해 주셨다. 그래서 벌써 35년이 지난 뒤에도 사역을 감당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도록 고쳐 주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다. 이러한 고백은 상을 얻기 위하여는 자기 몸을 함부로 위험에 던지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주님이 맡기신 믿음을 지키고 또한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대가를 치러야 하는 순간에 물러서지 않는 충성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성도는 한때 열심히 했다는 기억으로 면류관을 확신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에 믿음을 버리고 사명을 놓으면 완주자로 인정받을 수 없다. 지금의 성과가 작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끝까지 달려야 한다.

  이처럼 찬송과 기도와 봉사의 개별 행위는 날마다 '미스도스'로 쌓이고, 그 일을 변함없이 감당한 일생은 '브라베이온'과 '스테파노스'로 결산이 될 것이다. 주님은 시작과 과정과 마지막을 모두 보신 후에 승리한 자에게 영광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것이다.

6. 보좌(트로노스)의 다스림과 심판은 무엇을 뜻하는가?

  천국에서 성도가 얻을 수 있는 세 번째의 상으로 '보좌' 자리가 있다. 보좌를 뜻하는 헬라어는 트로노스(θρόνος, thronos)인데, 영어의 ‘스론’(throne)이 여기에서 나왔다. 보좌는 편안히 앉아 명예를 누리는 의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왕권을 행사하는 자리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보좌를 세우시고 그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신다고 하셨다(시 103:19). 그러므로 보좌에 앉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첫 번째 권세는 다스리는 권세임을 알 수 있다.

시 103:19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도다

  천국에서 받게 된 보좌 자리는 크게 두 종류의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하나는 천국에서 주인 노릇을 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이러한 사람의 집에는 아침마다 섬기는 자들이 출근한다. 이때 들어오는 사람들에는 남자들도 있고 여자들도 있다. 남자로서 섬기러 오는 사람을 가리켜 '경호원'이라고 부른다면, 여자로서 섬기로 오는 사람은 '시녀'에 비유할 수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대부분 간신히 턱걸로 천국에 들어온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아침마다 주인노릇을 하는 성도들의 집에 오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천국의 보좌가 있으니 그것은 천국에서 왕 노릇을 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지는 보좌이다. 이들이 왕노릇하는 대상은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성도들이 아니다. 왕노릇 하는 자들은 새 예루살렘 성 밖에 있는 민족들을 다스리는 자들이다. 더욱이 천국에 왕 노릇을 하는 자들이라도 각각 자신이 왕노릇을 영토와 민족의 크기가 다 다르다는 것이다.

  필자가 천국의 상황을 확인한 바에 따르면, 간신히 구원받아 들어온 성도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앞치마를 두르고 다른 성도의 집으로 가서 섬기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억압이나 착취의 노동이 아니 각 사람의 성숙과 충성에 따른 하늘의 질서에 따른 섬김의 모습이러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높은 왕권을 받은 자는 새 예루살렘 성 밖으로 나가서 열방을 다스린다. 요한계시록은 만국이 새 예루살렘의 빛 가운데로 다니며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성으로 들어온다고 말한다(계 21:24-26). 성 안에서는 주님이 통치하시며, 땅의 왕들은 성 밖으로 나가서 자신에게 주어진 민족과 마을을 돌보는 것이다.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므나 비유에서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긴 종에게 열 고을의 권세를, 다섯 므나를 남긴 종에게 다섯 고을의 권세를 준 말씀은 실제 천국의 통치와 연결된다(눅 19:16-19).

눅 19:17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그러므로 달란트 비유와 열 므나의 비유는 다른 비유임을 알아야 한다. 달란트 비유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에게 서로 다른 분량을 맡기신 뒤 그 분량에 맞게 얼마만큼 충성했는지를 묻는다(마 25:14-30)면, 므나 비유는 종들에게 같은 한 므나를 주고 누가 더 충성스럽게 남겼는지에 따라 다스릴 고을의 수를 정하는 비유다. 두 비유는 모두 천국의 상과 지위가 막연한 상징이 아니라 이 땅의 충성과 연결된 실제임을 보여 주지만 성경이 약간 다르다. 그러므로 같은 기회와 복음을 전해받았다고 할지라도 얼마나 부지런히 순종했는지에 따라 통치의 범위가 달라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보좌 자리에 앉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두 번째 권세는 심판하는 권세임을 알 수 있다. 누구든지 다스리려면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을 판정하고 명령을 거스른 자를 제재할 권한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이긴 자가 되시어 아버지에게 나라들을 유업으로 받고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리며 질그릇같이 부수는 권세를 받으셨다(시 2:8-9, 계 3:21). 이처럼 이기는 자들 중에는 만국을 다스리는 철장 권세가 주어질 자가 있다(계 2:26-27).

  그렇다면 장차 천국에서 왕이 되어 왕노릇을 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것은 왕은 반드시 공평과 정의로 심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왕은 결코 악을 내버려 두는 존재가 아니라 공의의 기준으로 질서를 바로잡는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 2:8-9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그런데 이러한 영적 사역에서도 이러한 철장 권세의 원리를 살펴볼 수 있다. 충분히 회개한 사람에게 붙어 있는 귀신에게 나가라고 명령했는데도 그가 불법적으로 버틴다면 왕권을 가진 자는 자신의 권세로 제압하여 내보낼 수 있다. 그러나 당사자가 죄를 회개하지 않아 귀신이 머물 합법적인 근거가 있는데 무조건 힘으로 쫓으려 하면 사역자가 오히려 공격받을 수 있다. 귀신은 “나는 합당하게 들어왔는데 왜 쫓아내느냐”라고 반항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심판 권세를 사용하기 전에 회개로 법적 근거를 제거하고 공의로운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귀신을 쫓는 사역자가 자신이 주님으로부터 영적 권세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자기 감정대로 귀신을 때려잡을 수는 없다. 당사자의 우상숭배와 음란과 미움과 원망이 아직 회개되지 않았다면 그는 귀신에게 머물 근거가 남겨두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이 때에는 먼저 당사자에게 죄를 구체적으로 회개하게 하고 용서할 사람을 용서하며 불의한 관계를 끊도록 인도해야 한다. 그러나 그 뒤에 귀신이 게속 불법적으로 버틴다면 그때에는 철장 권세로 그를 심판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공의로운 절차 없이 권세만 휘두른다면 그는 왕권이 아니라 폭력을 행사하는 자가 되고 말 것이다.

  예수님은 세상이 새롭게 되어 영광의 보좌에 앉으실 때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19:28). 이는 장차 인간에게도 보좌에 앉을 권리와 심판권이 주어진다는 뜻이다. 요한계시록에는 이십사 장로의 보좌가 있고, 하나님의 종 14만 4천에게도 사명과 분량에 따른 보좌가 있다(계 4:4, 7:3-4). 보좌는 왕 노릇하며 섬기고 다스리고 판단할 만큼 성숙한 자에게 주어지는 책임의 자리다.

  특히 천국의 모습은 참으로 질서정연한 모습이다. 천국 곧 새 예루살렘 성의 거주지를 보면, 스물네 마을로 구분되어 있고, 거기에서 이십사 장로들이 각 마을의 수장으로서 섬기고 다스리고 있다. 이 땅에 하나님의 종으로서 파송받아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인 14만 4천의 종들도 사실 스물네 마을에 나뉘어 배치되어 이십사 장로와 함께 살고 있다. 14만 4천의 종들의 집에는 섬기러 오는 자들이 매일 아침에 출근을 한다. 이 구조는 세상의 계급처럼 사람을 억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가장 합당하게 섬기도록 세우신 질서에 속한다.

  한편 14만 4천 모두가 같은 범위의 다스릴 권리를 받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자기 집의 주인이 되어서 섬김을 받는다. 하지만 어떤 이는 왕이 되어 성 밖의 한 고을이나 여러 고을로 나가 철장권세를 마을들을 다스린다. 앞에서 살펴본 바대로 한 므나로 얼마나 남겼는지에 따라 통치할 고을의 수가 결정되듯이, 예정된 사명과 더불어 실제 충성이 자신의 통치할 범위를 결정한다. 보좌를 받았다는 사실보다 그 자리에서 누구를 어떻게 섬기고 공평하게 판단할 것인지가 더 중요한 것이다.

마 19: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7. 왕 노릇할 자에게 공의와 공평이 왜 필요한가?

  그렇다면 왕 노릇하는 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불의하게 백성들을 다스려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공평과 정의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 왕의 왕이자 만 주의 주이신 하나님의 보좌의 기초는 의와 공평인 것이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므로 땅과 많은 섬이 기뻐하며, 구름과 흑암이 그분을 둘러도 의와 공평이 그 보좌를 떠받칠 것이라고 했다(시 97:1-2). 불이 그에게서 나와 사방의 대적을 사른다고 했다(시 97:3). 하나님의 심판이 두려운 까닭은 감정적으로 화를 내시기 때문이 아니라 완전한 진리와 공평으로 숨은 악까지 드러내시기 때문이다. 이대로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자도 왕 노릇을 하게 될 것이다. 

시 97:1-3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나니 땅은 즐거워하며 허다한 섬은 기뻐할지어다 구름과 흑암이 그를 둘렀고 의와 공평이 그의 보좌의 기초로다 불이 그의 앞에서 나와 사방의 대적들을 불사르시는도다

  고로 재림하실 우리 주님께서도 의로 세계를 판단하고 공평으로 백성을 심판하실 것이다(시 98:9). 그러므로 백마를 타고 오시는 분의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며, 그분드 역시 공의로 심판하고 싸우실 것이다(계 19:11). 충신은 맡은 일에 충성된 성품이며, 진실은 거짓과 불순물이 없는 성품이다. 왕 노릇할 사람도 먼저 충성되고 진실해야 하며, 동시에 누구에게나 같은 원칙을 공평하게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계 19: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그러므로 공평하지 않은 사람은 천국에서 결코 왕 노릇하는 자의 반열에 들어갈 수 없다. 고로 이 땅에서 공평하지 않는 지도자는 자기편의 잘못은 덮어버리고 반대편의 작은 허물은 크게 정죄하는 특징을 나타낸다. 자신에게 충성한 사람에게만 자리를 나누어 주고 비판한 사람에게는 정당한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이런 사람에게 왕권을 주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 권세를 사적인 복수와 이익을 위하여 사용하고 말 것이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불의한 판정을 반복한 사람에게 천국의 보좌와 철장 권세를 맡기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에 들어갔을 때에 왕 노릇을 염원하는 자는 결코 사람을 차별 없이 섬기고 판단할 성품을 갖추는 일에 힘써야 한다.

  또한 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원칙은 계속 적용해야 한다. 헌금을 많이 하거나 목회자와 가깝다는 이유로 그의 잘못을 덮어 주고, 힘없는 성도의 실수만 공개적으로 정죄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직분자를 세울 때에도 개인적인 친분보다 믿음과 성품과 충성을 따져 보아야 한다. 공평한 목회자는 사랑하는 사람의 잘못도 진리로 바로잡고, 자신을 비판한 사람에게도 회개하고 성장할 기회를 주는 자이다. 이 땅의 작은 공동체에서 공평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천국에서 많은 백성을 다스릴 왕이 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오늘날 젊은 세대들이 이 사회를 향하여 공평을 요구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면서 자신의 잘못에는 관대하다면 신뢰를 잃어버리고 만다. 입법과 행정과 사법이 서로 견제해야 하는 까닭도 한 사람이나 한 집단이 심판의 기준을 자기 마음대로 바꾸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죄를 죄가 아닌 것처럼 만들려고 심판 기관을 무력화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왕권을 거스르는 일이다.

  또한 공의를 말하는 왕은 사랑과 기다림에 있어서도 주의가 필요하다. 성장 중인 사람의 실수와 고의로 악을 행하는 사람의 반역을 구별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부족하더라도 말씀을 배우고 회개하려는 사람에게는 성장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필자도 성도가 당장 완전하지 못하다고 배척하기보다 기꺼이 양육하고 기다리려고 노력한다. 진리를 거절하고 스스로 떠나는 사람을 강제로 붙들 수는 없겠지만, 따라오려는 사람에게는 공평하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영적 사건도 공평하게 분별해야 한다. 어떤 교회에 갔다가 자녀가 다쳤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님께서 그 교회에 가지 말라고 사인을 주셨다고 단정해서는 아니 된다. 오히려 한 사람이 회개하고 깨어나면 가족 전체가 변화될 것을 두려워한 악한 영이 방해했었을 수 있다. 눈앞의 어려움만 보고 길을 포기하지 말고 말씀과 기도와 회개로 사건의 배후를 분별해야 한다. 고난을 무조건 하나님의 금지로 해석하면 사탄의 방해를 하나님의 뜻으로 오해할 수 있다.

  왕 노릇은 높은 자리에 앉아 명령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의롭지 않은 자가 정의를 집행할 수 없고, 편파적인 자가 만민을 다스릴 수 없다. 성도는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부터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고, 자기 잘못을 먼저 인정하며, 가까운 사람과 먼 사람에게 같은 진리의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이 땅에서 변화된 성품만큼 천국에서 더 큰 책임을 맡을 수 있다.

8. 태에서부터 부름받은 종과 성도는 어떻게 협력해야 하는가?

  그럼 누가 천국에서 왕 노릇 하는 자가 되는가? 그것의 십중팔구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어떤 사명을 주어 보낸 예정된 사역자들이다. 이사야 선지자도 그중에 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사야 49장에서는 섬들과 먼 곳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종의 소명을 들으라고 외치고 있다. 여호와께서는 이사야 자신을 모태에서부터 부르셨으며,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그의 이름을 부르시고 기억하셨다고 말했다(사 49:1). 이는 하나님께서 미리 정해놓으셨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의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시고 손 그늘에 숨기셨으며, 그를 갈고 닦은 화살로 준비하여 화살통에 감추셨다고 말한다(사 49:2). 때가 오기 전까지 그를 감추어 훈련하셨다가 정한 시대에 꺼내어 그를 사용하신다는 뜻이다.

사 49:1-2 섬들아 내게 들으라 먼 곳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으며 내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의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를 갈고 닦은 화살로 만드사 그의 화살통에 감추시고

  하나님은 그 종을 “나의 종 이스라엘”이라고 부르신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그를 통하여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겠다고 말씀하신다(사 49:3). 여기의 이스라엘은 단지 혈통의 명칭을 넘어 이기는 자의 이름이다. 야곱은 하나님과 사람과 겨루어 이긴 뒤 이스라엘이라 불렸다(창 32:28). 즉 여기서 '이스라엘'이란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긴 자'로서의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것이다(창 32:28).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은 죄와 세상과 악한 영의 방해를 이기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그 영광을 나타낼 사람이어야 한다.

사 49:3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네 속에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

  이사야는 태에서부터 하나님의 종으로 지음받았으며, 야곱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며 이스라엘을 모으는 사명을 받았다(사 49:5). 예레미야도 모태에 짓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를 알았고 태에서 나오기 전에 성별하여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우셨다고 했다(렘 1:5). 바울도 어머니의 태로부터 자신을 택정하고 은혜로 부르신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아들을 자기 속에 나타내셨다고 고백했다(갈 1:15-16). 시대적 종에게는 이처럼 시대적인 사역적 예정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종을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고 보전된 이스라엘을 돌아오게 하는 일에만 사용하지 않으신다. 그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하나님의 구원이 땅끝까지 이르게 하신다(사 49:6). 왕들은 그를 보고 일어서며 고관들은 경배해야 한다(사 49:7). 그가 처음에는 멸시와 미움을 받을 수 있지만 신실하신 여호와께서 그를 택하셨기 때문에 결국 열방 앞에 하나님의 영광이 그에게서 드러나게 될 것이다.

사 49:6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사 49:5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나니 그는 태에서부터 나를 그의 종으로 지으신 이시요 야곱을 그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는 이시니 이스라엘이 그에게로 모이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여호와 보시기에 영화롭게 되었으며 나의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셨도다

  이러한 사역적 예정은 구원받을 사람과 멸망할 사람을 만세 전에 미리 고정해 놓았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구원은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믿고 회개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다(요 3:16, 행 2:38).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자기 길로 그릇 행하여 죄를 범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이러한 자기의 백성을 깨우고 그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할 종을 미리 준비하여 이 땅에 내려보내신다. 토기장이가 토기를 만들 때에 그릇의 용도를 직접 정하여 빚듯이,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는 시대를 감당할 분량과 은사와 혹은 고난까지도 허락하신다(사 64:8).

  요한계시록 7장에 나오는 14만 4천은 누군가? 이들이 바로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종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종들로서 자신의 이마에 이미 인침을 받은 자들이다(계 7:3-4).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도장을 찍어 특정한 사명을 맡겨 보내신 종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들 모두가 같은 위치에서 왕 노릇하지는 않으며, 그들의 성숙함과 충성과 맡겨진 분량에 따라 보좌의 위치와 통치 범위가 달라진다. 이십사 장로는 그 가운데서도 최고 위치에서 스물네 마을을 맡아 다스리는 수장으로 활동할 것이다(계 4:4).

계 7:3-4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그러나 자신에게 어떤 보좌가 예정되었다고 해서아무렇게나 살아도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필자도 처음 천국 집을 보았을 때 남자와 여자의 섬기는 자들이 있는 것을 보았지만 14만 4천의 보좌가 있는지를 정확히 보여지지 아니하였다. 영에 악한 영들이 너무 많아 아직 보여 줄 수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나 회개를 계속한 뒤 몇 년 뒤에 다시 보니 섬기는 자들도 많아지고 보좌도 높아져 있었다. 이 체험은 예정이 있더라도 회개와 충성과 성숙함에 따라 실제 누릴 지위가 달라질 수 있음을 그대로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그에게 보좌를 보여 주지 않으신 것은 어쩌면 그에 대한 보호조치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 높은 자리를 미리 알면 회개하지 않아도 이미 그 자리를 얻은 것처럼 착각하고 교만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의 영적 상태와 감당할 분량에 따라 계획을 조금씩 알려 주신다. 고로 자신의 보좌가 어디인지 호기심을 품기보다 오늘 악한 영을 내보내고 말씀에 순종하여 그 자리에 합당한 성품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렇다면 평신도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 평신도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종과 협력하여 같은 사역의 열매에 참여할 수 있는 자들이다. 선지자 하나를 영접하면 선지자의 상을 받고 작은 자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을 주어도 상을 잃지 않는다(마 10:41-42)고 주님은 약속하셨다. 말씀을 전하는 종이 사명을 완수하도록 기도하고, 물질을 드리며, 찬양과 안내와 교육과 봉사로 협력한다면 그는 그러한 거룩한 사역의 미스도스를 함께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강단에 선 사람만 보지 않고 그 사역을 위하여 뒤에서 수고한 모든 손길을 모두 다 기억하시기 때문이다.

  협력은 사람을 우상화하거나 맹목적으로 따르는 일이 아니다. 성경과 성령으로 그 말씀이 진리인지 늘 분별해 내야 하며, 하나님께서 보내신 종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을 때에는 자기 은사와 달란트를 드려 함께 선을 이루어야 한다. 하나님이 보낸 종들도 성도들을 자기 소유처럼 다루지 않고 공의와 공평으로 양육해야 한다. 종과 성도가 각각 자기 위치에서 충성할 때 아름다운 천국 집과 면류관을 준비되어지고, 어떤 사람은 비어 있는 보좌의 자리까지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늘의 지위와 신분은 이미 예정되어 있다고 하지만 그 자리가 완전히 고정된 것은 아니다. 맡겨진 사람이 게으르고 불순종하면 탈락할 수 있고, 뒤에 있던 사람이 목숨을 걸고 충성하면 앞으로 더 전진해 나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평신도도 “나는 보좌와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단정하지 말고 자기 분야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해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기도와 찬양과 구제와 교육과 전도 가운데 맡겨진 일을 완주하면 누구든지 면류관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뜻에 특별히 충성한 사람이라면 그는 더 큰 지위에 참여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9. 나오며

  재림하시는 만군의 여호와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행한 대로 주시는 세 상급, 그리고 보좌의 다스림과 심판을 살펴보았다. 구약에서 감람산에 오신다고 예언된 여호와는 신약에서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실 예수님이다. 그분은 천사들과 성도들을 거느리고 만왕의 왕과 만주의 주로 오셔서 악한 영과 악한 자를 심판하고, 진리와 믿음을 지킨 성도에게 상을 주신다.

  마지막 심판에는 행한 대로 갚으시는 두 방향이 있다. 참고 선을 행한 자에게는 영생과 상이 주어지지만, 진리를 거절하고 불의를 따른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가 임한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만으로 모든 결과가 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주님 때문에 박해받은 사람에게는 큰 상이 있고, 계명을 행하며 가르친 사람은 천국에서 큰 자라 일컬음을 받는다. 상의 크기와 지위의 높이는 구별되며 모두 지금의 믿음과 행위에 연결된다.

  보상인 미스도스는 매일의 작은 순종을 천국 집과 정원의 영원한 재료로 바꾼다. 전도한 한마디는 꽃이 되고, 교회를 섬긴 봉사는 연못과 물고기 같은 아름다운 환경이 되며, 기도와 찬송은 분수대와 힘찬 물줄기로 나타난다. 상인 브라베이온과 면류관인 스테파노스는 일생의 경주를 마치고 믿음과 사명을 지킨 승리자에게 주어진다. 한때의 열심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이어진 충성과 인내가 필요하다.

  보좌인 트로노스는 다스리고 심판하는 왕권의 자리다. 새 예루살렘 성 밖의 열방과 마을을 다스리고, 악을 판정하여 철장 권세로 질서를 세운다. 그러므로 보좌에 앉을 사람은 이 땅에서부터 의와 공평을 보좌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 자기편만 감싸고 반대편을 억압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실하고 충성되며 누구에게나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사야와 예레미야와 바울처럼 태에서부터 특별한 사명을 받고 보냄받은 종들이 있다. 그 소명은 구원받을 자를 일방적으로 정해 놓은 구원 예정이 아니라 백성을 깨우고 진리를 전하도록 맡기신 사역적 예정이다. 하나님의 종들도 회개하고 이겨야 하며, 맡겨진 길을 끝까지 완주해야 준비된 보좌를 실제로 얻을 수 있다. 성도는 그런 종을 성경으로 분별하여 영접하고 기도와 물질과 은사와 시간으로 협력해야 한다.

  한번 믿었으니 영원히 안전하다고 착각하며 죄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고, 믿음의 지조를 지키며,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과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역자와의 협력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육체가 끝나는 순간까지 회개하여 악한 영의 방해를 제거하고 오늘 할 수 있는 순종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리하여 아름다운 천국 집을 준비하고 충성의 면류관을 쓰며 공의로운 왕의 보좌에 참여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7월 24일(금)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재림주이자 심판자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성격과 성도가 천국에서 받게 될 세 가지 차원의 보상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예수님께서 인간의 고난을 직접 체험하신 인자(人子)이시기에 가장 공정하고 완전한 심판자가 되심을 강조하며, 성도의 삶이 단순한 구원을 넘어 하늘의 상급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정보배 목사는 구체적인 보상의 종류를 매일의 행위로 쌓는 천국 집의 재료, 일생의 경주를 완주한 승리자에게 수여되는 면류관,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적 예정과 개인의 충성이 결합된 보좌의 지위로 구분하여 제시합니다. 특히 14만 4천 명의 종과 이기는 자의 개념을 통해 각 시대마다 부여된 영적 사명의 엄중함을 역설하며, 성도가 타인과 비교하기보다 자신에게 맡겨진 분량과 위치에서 끝까지 충성할 것을 권면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글은 성도들이 회개와 순종을 통해 각자의 사명을 완수함으로써, 장차 오실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하도록 독려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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