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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8. 03. (월)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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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7NnmXDeq8GE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역자론(10)] 하나님이 지명한 사람 바울, 그는 어떻게 준비되었고 쓰임받았는가?(갈1:11~1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7NnmXDeq8GE

 

사역자론(10)

하나님이 지명한 사람 바울, 그는 어떻게 준비되었고 쓰임받았는가?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구약에서 하나님께 가장 크게 쓰임받은 사람을 꼽는다면 모세를 먼저 생각할 수 있다. 모세가 기록한 율법과 그의 생애가 차지하는 분량은 매우 크다. 다윗도 시편과 사무엘서와 역대기의 중심인물로서 큰 자취를 남겼다. 신약에서는 사도 바울이 두드러진다. 신약성경 스물일곱 권 가운데 열세 권이 바울의 이름으로 전해진다. 그가 교회와 목회자에게 보낸 편지가 성경이 되었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를 얼마나 귀하게 사용하셨는지를 보여 준다.

  선지서를 기록 분량에 따라 대선지서와 소선지서로 나누듯이 성경에 남은 분량은 한 사람이 맡은 소명의 크기를 짐작하게 한다. 이사야와 예레미야가 큰 분량의 말씀을 남겼고, 바울의 서신은 베드로의 서신보다 훨씬 많은 내용을 차지한다. 이것이 다른 일꾼을 무가치하게 만든다는 뜻은 아니다. 각 사람의 하늘의 분량과 사명이 다르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큰 그릇에는 더 많은 계시와 고난과 책임을 맡기시고, 작은 그릇에는 그 분량에 맞는 충성을 요구하신다.

  그러나 바울이 인간적인 노력만으로 큰 인물이 되어 성경을 남긴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의 뜻과 섭리(攝理, providence)를 따라 그를 지명하시고, 정한 때에 이 땅에 보내어 필요한 그릇으로 준비시키셨다. 토기장이가 목적에 맞는 그릇을 빚듯이 하나님께서 바울의 출생 환경과 학문과 언어와 시민권과 만남을 미리 배치하셨다. 그렇다고 바울의 노력과 순종이 불필요했던 것도 아니다. 그는 맡겨진 사명을 위하여 배우고 찾고 고난받으며 자신의 잘못을 고쳐 나갔다.

  그러므로 모세와 바울의 생애를 나와 상관없는 위인의 이야기로 읽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나를 바울과 같은 그릇으로 정하셨다면 그에 맞게 준비하실 것이고, 다른 분량의 그릇으로 지으셨다면 그 자리에서 충성하게 하실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릇의 크기를 비교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분량을 알고 기꺼이 내어 드리는 것이다. 교회를 청소하고 음식을 만들며 설거지하고 중보기도하는 작은 일도 마지막 시대의 회개와 천국복음 사역에 참여한다는 의미로 감당하면 하나님 나라의 귀한 부분이 된다.

  하나님께 오래 그리고 온전하게 쓰임받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준비되어야 한다. 첫째는 사명을 감당할 자질(資質, qualification)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낼 성품(性品, character)이며, 셋째는 말씀하실 때 자신을 내어 드리는 순종(順從, obedience)이다. 어느 하나에 중대한 결격 사유가 있으면 하나님께서 잠시 쓰시다가도 멈추실 수 있고, 크게 쓰지 않으실 수도 있다. 사울왕은 처음부터 버림받도록 세워진 사람이 아니었지만 계속 불순종함으로 왕위를 잃었다. 예정(豫定, predestination)을 핑계로 준비를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바울도 처음부터 온전하지 않았다. 그는 율법에 뛰어났지만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여 교회를 박해했고, 성령의 은사를 받았지만 혈기와 교만 때문에 동역자와 심하게 다투었다. 그러나 주님은 그의 방향을 돌이키고 오랜 훈련을 통하여 자질과 성품과 순종을 다듬으셨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지명하신 바울에게 어떤 소명을 주셨으며, 그의 출생과 학문과 영성과 성품을 어떻게 준비시켜 오래도록 귀하게 사용하셨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하나님의 지명과 인간의 준비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바울의 출발점은 하나님의 지명이다. 그는 자신이 사람에게서 복음을 받거나 배운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받았다고 증언한다(갈 1:11-12).

갈 1:11-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또한 하나님께서 어머니의 태로부터 자신을 택정하시고 은혜로 부르셨다고 고백한다. 그 부르심의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는 것이었다(갈 1:15-17).

갈 1:15-17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하나님의 지명은 바울이 회심한 날 갑자기 생긴 계획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복음을 전할 범위와 기록할 말씀과 감당할 고난을 아셨다. 그러므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나게 하시고,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서 헬라 세계를 접하게 하며,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예루살렘에서 율법을 배우도록 인도하셨다. 바울은 뒤늦게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흩어진 모든 준비가 하나의 소명을 향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지명받았다는 사실이 자동으로 쓰임받는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사람이 노력하지 않고 문제의 답을 찾지 않으며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맡기신 분량을 감당할 수 없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난 뒤 아라비아와 다메섹으로 가서 자신이 배운 구약성경을 다시 살폈다. 그는 오랜 무명의 기간을 지나며 율법과 그리스도의 관계를 연구하고, 선교 현장에서 실패를 경험하며, 성품의 가시를 견디면서 준비되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준비는 서로 반대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목적을 정하시고 필요한 환경과 은혜를 주시지만, 사람은 그 은혜에 응답하여 배우고 회개하고 순종해야 한다. 사울왕은 선택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않는 길을 계속 걸어 버림받았다. 반대로 바울은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 자신의 지식과 권리와 생명까지 복음을 위해 내놓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는 예정되지 않았으니 쓸모없다”고 말해서도 안 되고, “나는 선택받았으니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현재 삶을 통하여 이미 그릇을 준비하고 계신다. 내가 익힌 기술, 견딘 고난, 만난 사람, 받은 은사와 깨달은 말씀에는 의미가 있다. 다만 그 모든 것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되도록 자신을 드려야 한다. 큰 무대에 서지 않더라도 선지자를 선지자로 영접하고 작은 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하는 사람은 그 일에 해당하는 상을 받는다. 사역자를 위하여 식사 한 끼를 준비하고, 몇 달 동안 비용을 모아 사역에 참여하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기도하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보신다.

3. 바울에게 맡겨진 세 가지 소명은 무엇인가?

  바울에게 맡겨진 첫째 소명(召命, calling)은 복음을 이스라엘을 넘어 이방인과 임금들에게까지 전하는 것이었다. 베드로가 할례자의 사도로 부름받았다면 바울은 무할례자의 사도로 세움을 받았다(갈 2:7-8).

갈 2:7-8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주님은 아나니아에게 바울이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님의 이름을 전하도록 택한 그릇이며, 그 이름을 위하여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알려 주셨다(행 9:15-16).

행 9:15-16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베드로의 사역 범위는 주로 유대인이었지만 바울의 범위는 훨씬 넓었다. 이방 세계를 여행하고 회당과 광장과 재판정에서 복음을 전하며 왕과 총독 앞에 서야 했다. 그러므로 그는 유대 전통만 아는 폐쇄적인 사람이 아니라 이방 문화와 언어를 이해하는 사람으로 준비되어야 했다. 또한 복음을 한 지역에 전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여러 도시에 교회를 세우고 제자를 양성하여 자신이 떠난 뒤에도 사역이 계속되게 해야 했다.

  둘째 소명은 신약성경을 기록하여 후대 교회가 믿음의 길을 바르게 걷게 하는 것이었다. 바울은 자신이 세운 교회와 디모데·디도 같은 목회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당시에는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인적이고 목회적인 편지였지만, 성령께서는 그 글을 신약성경 열세 권으로 남기셨다. 그는 복음의 핵심, 칭의와 성화, 교회의 질서, 성령의 은사, 부활과 재림, 목회자의 자격을 체계적으로 설명했다.

  셋째 소명은 하나님의 우주적인 경륜과 그리스도의 비밀과 교회의 비밀을 밝히는 것이었다. 다메섹에서 예수님은 교회를 박해하던 사울에게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고 물으셨다. 사울은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러 갔지만 주님은 그들을 박해한 것이 곧 자신을 박해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만남을 통하여 바울은 그리스도가 머리이고 교회가 그의 몸과 지체라는 비밀을 깨닫기 시작했다.

  바울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천사와 인간을 지으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를 세우셨는지를 설명했다. 구약의 율법과 제사와 성막은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그림자와 모형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경륜이 완성된다는 것을 밝혔다. 필자는 히브리서도 바울의 저작으로 보는데, 히브리서가 보여 주는 모형론적 성경 해석은 바울이 율법의 전문가였기에 감당할 수 있었던 소명이다.

  이 세 소명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세계 선교를 위하여 언어와 시민권이 필요했고, 성경을 기록하기 위하여 율법과 헬라 문화에 대한 깊은 학문이 필요했으며, 하나님의 경륜을 설명하기 위하여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직접 만나는 계시가 필요했다. 하나님께서는 소명을 먼저 정하시고 그것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모든 자질을 바울의 생애 속에 배치하셨다.

  바울은 자신만 복음을 전하고 끝내지 않았다. 여러 지역에 교회를 세우고 디모데와 디도 같은 후계자를 길러 자신이 떠난 뒤에도 복음이 계속 전파되게 했다. 베드로가 고넬료 사건을 통하여 이방인에게 천국 문을 여는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이후 유대인의 눈치를 보다가 안디옥에서 바울의 책망을 받기도 했다. 필자는 이 차이에서 받은 사명을 넓게 수행하고 제자에게 전수하는 훈련의 중요성을 본다. 받은 계시와 은사를 자신만 간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사용할 수 있게 남길 때 사역은 한 세대를 넘어간다.

4. 그의 출생·학문·언어·시민권은 사역을 위해 어떻게 준비되었는가?

  바울은 팔레스타인 본토가 아니라 길리기아의 다소에서 태어난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인이었다. 다소는 헬라 문화와 로마 제국의 행정이 만나는 이방 지역의 도시였다. 그는 유대인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이방인의 사고방식과 생활을 가까이에서 접했다. 훗날 여러 민족에게 복음을 전할 사람에게 필요한 개방성과 문화적 이해가 출생 환경에서부터 준비된 것이다.

  그는 히브리어 성경과 유대 전통을 배웠고 헬라어로 이방인과 소통할 수 있었으며 로마 세계의 언어와 질서를 이해했다. 이방인과 왕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편지를 써서 교회를 가르치려면 말과 글을 정확하게 다룰 수 있어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언어가 장벽이 되지 않도록 어릴 때부터 여러 문화와 언어 속에서 자라게 하셨다.

  바울은 태어날 때부터 로마 시민권(Roman citizenship)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이미 시민권자였기 때문이다. 로마 시민은 재판 없이 함부로 채찍질하거나 처형할 수 없었으며 황제에게 상소할 권리가 있었다. 바울은 위기의 순간에 자신이 로마 시민임을 밝혀 불법적인 처벌을 막았고, 가이사에게 상소하여 마침내 로마에 가서 복음을 증언했다. 시민권은 개인적인 특권으로 누리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세계 선교의 길을 보호하는 도구였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유학하여 당대 최고의 율법 교사 가운데 한 사람인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했다. 바리새인으로서 율법과 조상들의 전통을 엄격하게 익혔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말할 만큼 철저히 살았다. 베드로가 어부로서 현장성과 담대함을 준비했다면 바울은 구약성경을 해석하고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설명할 학문을 준비했다.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출생과 언어와 시민권과 학문은 그 자체로 거룩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 채 사용했을 때 그 지식은 오히려 교회를 박해하는 무기가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갖춘 자질을 폐기하지 않으시고 방향을 돌려 복음을 위한 도구로 바꾸셨다. 유대교에 대한 깊은 지식은 율법의 한계를 설명하는 자산이 되었고, 헬라 문화에 대한 이해는 이방인과 대화하는 통로가 되었으며, 시민권은 선교 여행과 로마 증언을 가능하게 했다.

  이는 오늘 사역자에게도 중요한 원리다. 하나님께서는 준비되지 않은 것을 마술처럼 사용하시는 분이 아니다. 글을 맡길 사람에게는 공부와 기록 훈련을, 세계 선교를 맡길 사람에게는 언어와 문화 훈련을, 사람을 돌볼 사람에게는 관계와 인내의 훈련을 시키신다. 현재의 공부와 직업과 환경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것이 장차 어떤 소명을 위하여 준비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5. 그의 잘못된 열심은 그리스도를 만난 뒤 어떻게 바로잡혔는가?

  바울은 열심이 없어서 문제가 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동년배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고 조상의 전통에 더욱 열심이었으며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고 멸하려 했다(갈 1:13-14).

갈 1:13-14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그는 하나님을 위한다고 생각하며 스데반의 죽음에 찬성하고 예수 믿는 사람을 감옥에 가두었다. 방향이 틀린 열심은 무관심보다 더 많은 사람을 해칠 수 있다. 장로들의 전통과 교단의 해석을 절대화하면서 정작 율법이 가리키는 그리스도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식과 열심은 있었지만 실체이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으므로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일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확신했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건은 바울의 방향을 완전히 돌렸다. 그는 자신이 박해한 예수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이며, 교회를 박해한 것이 곧 주님을 박해한 것임을 알았다. 그 뒤 곧바로 사람의 인정이나 기존 사도들의 권위에 기대지 않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메섹으로 돌아왔다. 그는 삼 년의 시간을 포함한 오랜 숨은 기간 동안 자신이 배운 구약성경을 그리스도의 빛에서 다시 읽었다.

  그 결과 율법과 제사와 절기와 성막이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그림자라는 모형론적 해석(模型論的 解釋, typological interpretation)이 열렸다. 놋뱀과 유월절 양과 성막과 제사장이 어떻게 예수님의 속죄와 구원을 예표하는지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의 성경 지식은 그리스도를 죽이는 데 사용되었지만, 방향이 바뀐 뒤에는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복음을 변증하는 도구가 되었다.

  바울은 자신이 자랑하던 혈통과 할례와 바리새인의 의와 율법 지식을 그리스도와 비교할 때 해와 배설물로 여겼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했기 때문이다(빌 3:7-8).

빌 3:7-8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성경 지식과 은사 자체가 쓰레기라는 뜻은 아니다. 그 지식과 은사가 그리스도를 드러내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을 높이는 수단이 된다면 배설물처럼 사람을 망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영적 진보의 중심은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아는 데 있다. 사역자는 교리와 전통을 많이 아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그 모든 말씀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리스도의 풍성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야 한다.

6. 말씀의 사람 바울은 왜 성령의 은사와 능력까지 구했는가?

  바울은 뛰어난 학자이자 논리적인 변증가였다. 그러나 제2차 선교 여행 중 아덴에서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 철학자들과 논쟁한 뒤 지혜로운 말만으로 사람이 하나님께 굴복하는 것이 아님을 절감했다. 아덴에서는 기대한 만큼의 열매를 보지 못했다. 그는 다음 사역지인 고린도로 가면서 복음 전파에는 정확한 말씀뿐 아니라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말과 전도가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에 있지 않고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에 있었다고 고백한다. 성도들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위에 서게 하기 위함이었다(고전 2:4-5).

고전 2:4-5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말씀은 복음의 내용을 밝히지만 능력은 그 말씀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임을 현장에서 증언한다. 병든 사람이 치유되고 귀신에게 눌린 사람이 자유를 얻으며 예언과 방언 통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드러날 때 사람의 완고한 마음이 굴복한다. 바울은 말씀의 정확성과 성령의 능력 가운데 어느 하나도 버리지 않았다. 성경을 깊이 해석하면서 동시에 복음 전파에 필요한 영적인 무기를 구했다.

  고린도전서 12장은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 예언, 영들 분별함, 각종 방언, 방언 통역이라는 아홉 가지 성령의 은사(恩賜, spiritual gifts)를 말한다. 바울은 이 은사들을 알고 사용했기에 각 은사의 성격과 교회 안에서의 질서를 가르칠 수 있었다. 이어 13장에서는 사랑이 없으면 어떤 은사도 유익하지 않다고 밝혔고, 14장에서는 예언과 방언과 방언 통역을 교회의 덕을 세우도록 사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필자도 사역의 문제를 만날 때 단지 환상과 음성을 기다리지 않고 원인을 찾고 또 찾으며 해결책을 발견해 왔다. 성령의 불을 받아 악한 영을 제압하는 방법을 자신만 알고 있을 것이 아니라 다른 사역자도 사용할 수 있도록 나누어야 한다고 여긴다. 베드로보다 바울의 사역이 넓어진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울이 많은 교회와 제자를 세우고 자신이 받은 계시와 은사의 사용법을 글로 남겼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능력은 개인을 높이는 장식이 아니다. 복음을 전하고 사람을 살리며 교회를 세우는 도구다. 사역자가 말씀만 붙들고 능력을 무시하면 현장의 눌림을 처리하지 못할 수 있고, 반대로 은사만 추구하고 말씀과 사랑을 잃으면 교만과 미혹에 빠질 수 있다. 바울은 아덴의 한계를 통과하여 말씀과 성령, 진리와 능력, 은사와 사랑이 함께 가야 함을 배웠다.

7. 그의 혈기와 교만은 어떤 훈련을 거쳐 온유와 겸손으로 바뀌었는가?

  바울에게는 자질만 아니라 성품의 결격 사유도 있었다. 회심하기 전 그는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한 사람이었다(행 9:1).

행 9: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필자는 혈기와 분노가 강한 사람에게 조상제사의 영이 많이 역사할 수 있다고 본다. 무당 계열의 영은 자신이 가장 잘 안다는 교만으로 나타나고, 제사 계열의 영은 머리에 가득 차 혈기와 분노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바울은 무당 계열이라기보다 조상과 유대 전통의 세력이 강한 사람이었고,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셨지만 그의 혈기와 교만은 따로 다루어져야 했다.

  그 성품은 제2차 선교 여행을 준비할 때 드러났다. 바나바는 제1차 여행에서 중도 이탈한 마가 요한을 다시 데려가기를 원했지만 바울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심히 다투어 서로 갈라섰다. 바나바는 회심한 바울을 안디옥 교회로 데려와 사역의 길을 열어 준 영적 스승이었는데도 바울은 자기 판단을 굽히지 않았다. 바울의 원칙에는 이유가 있었지만 은혜를 입은 스승과 격렬하게 결별한 것은 혈기와 성품의 한계를 보여 준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바울은 디모데에게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부탁하며 그가 자신의 일에 유익하다고 말했다(딤후 4:11).

딤후 4: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이 짧은 말은 바울이 과거의 판단을 돌아보고 마가를 다시 인정했음을 보여 준다. 혈기대로 사람을 잘라 내던 지도자가 세월과 고난 속에서 사람을 품는 지도자로 변한 것이다. 그는 성경을 기록하고 많은 교회를 세웠지만 자기 실수를 인정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훈련도 받아야 했다.

  바나바의 영적 나이나 천국에서의 지위가 바울보다 반드시 높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나바를 통하여 회심한 바울을 교회 앞에 세우고 안디옥 사역의 길을 열어 주셨다. 아나니아 역시 바울보다 학문과 계시가 뛰어나서 그에게 안수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아무에게도 배우지 않는 독립적인 사람이 되지 않도록 교회의 지체와 영적 관계를 통하여 세우셨다. 사역자는 자신보다 부족해 보이는 사람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인도와 은혜를 받았음을 기억해야 한다.

  바울에게는 뛰어난 계시와 은사 때문에 교만해질 위험도 있었다. 그는 자신을 괴롭히는 육체의 가시 곧 사탄의 사자가 떠나기를 세 번 간구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을 곧바로 제거하지 않으시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능력은 약한 데서 온전해지기 때문이다(고후 12:9).

고후 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필자는 이 가시를 바울을 괴롭히던 악한 영의 역사로 해석한다. 하나님께서 모든 공격을 즉시 없애 주지 않으신 것은 바울이 자신의 능력과 계시를 자랑하지 않고 은혜를 의지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계속되는 약함을 통하여 자신을 낮추었고, 마침내 그리스도의 온유와 겸손을 닮아 갔다. 큰 은사와 지식을 받은 사람일수록 더 깊은 성품 훈련이 필요한 이유다.

  단순히 “나는 죽었다”고 반복한다고 혈기와 교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서 알려 주신 영적 비밀은 죄를 구체적으로 회개(悔改, repentance)하여 그 죄를 통해 들어온 악한 영을 내보내는 것이다. 혈기와 분노와 욱하는 성질과 교만의 죄를 자백하고 관련된 귀신을 뽑아내야 성품이 실제로 변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역의 능력이 커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지 못하여 쓰임이 중단될 수 있다.

8. 오래 쓰임받는 사역자는 자질·성품·순종을 어떻게 준비하는가?

  오래 쓰임받는 사역자는 먼저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고 그 소명에 필요한 자질을 준비해야 한다. 바울은 세계 선교를 위하여 언어와 시민권과 문화 이해를 갖추었고, 성경 기록을 위하여 율법과 글쓰기와 논리를 배웠으며,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받았다. 오늘의 사역자도 맡겨진 일이 무엇인지 살펴 그에 필요한 공부와 기술과 영적인 무기를 준비해야 한다.

  둘째, 성품을 준비해야 한다. 지식과 은사가 뛰어나도 혈기와 분노와 교만이 남아 있으면 사람을 상하게 하고 동역자를 잃으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가릴 수 있다. 바울은 바나바와의 다툼, 마가와의 관계 회복, 사탄의 가시를 통하여 자신을 낮추는 법을 배웠다. 사역자는 잘못을 깨달았을 때 변명하지 말고 회개하며, 자신보다 부족해 보이는 지도자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관계와 은혜를 존중해야 한다.

  셋째, 순종의 훈련을 받아야 한다. 바울은 이방인과 임금과 이스라엘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부르심을 따라 수많은 매와 감옥과 위험을 견뎠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알았지만 자신이 감당해야 할 수고를 피하지 않았다. 주권을 믿는다는 것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정하신 방향에 자신을 끝까지 내어 드리는 것이다.

  사역은 혼자 이루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나니아의 안수를 통하여 바울을 교회와 연결하셨고, 바나바를 통하여 안디옥 사역에 세우셨다. 선교 현장에서는 실라와 디모데와 누가가 함께했고, 루디아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은 후원자와 동역자가 붙었다. 설교하는 사람만 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고 섬기고 물질과 식사를 제공하며 사역의 한 부분을 담당한 사람도 같은 일에 참여한다.

  그러므로 작은 일이라고 의미 없이 해서는 안 된다. 청소를 하더라도 “나는 마지막 시대의 회개와 천국복음 사역에 한 부분을 담당한다”는 믿음으로 해야 한다.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하며 먼 길을 와서 중보기도하는 일도 하나님께서 보고 계신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사역자를 대접하기 위하여 몇 달 동안 비용을 모은 성도의 마음도 하나님께서 아신다. 맡은 분량에 충성할 때 주님은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말씀하신다.

  필자도 주님께 잠깐이 아니라 오래 쓰임받기를 구해 왔다. 약 팔 년 전 방언 통역을 받을 때 “오랫동안 주님께 쓰임받기 원한다”는 자신의 깊은 기도가 드러난 적이 있다. 모세가 크게 쓰임받고도 느보산에서 멈춘 사건이 영적인 충격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하는 말씀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계속 성경을 연구하고, 사역의 문제를 피하지 않으며, 얻은 해답을 공개하여 다른 사람도 같은 길을 더 빨리 갈 수 있게 하려 한다.

  바울도 대략 삼십 세 전후에 부름받아 예순일곱 세 무렵 순교했다고 본다면 삼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신을 고쳐 갔다. 큰 사도였다고 해서 한 번의 회심으로 혈기와 교만이 모두 사라진 것이 아니다. 선교의 실패와 동역자의 충돌과 몸의 약함과 감옥과 재판을 지나며 자신의 한계를 발견했다. 오래 쓰임받는다는 것은 오랫동안 유명한 자리를 지킨다는 뜻이 아니라, 매 단계에서 드러나는 부족함을 회개하고 다음 순종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오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그리스도론(Christology)을 배워 성경 전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회개하여 성품을 막고 사역을 방해하는 악한 영을 내보내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 지식은 방향을 잃고, 회개하지 않은 은사는 교만의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리스도를 배우고 끝까지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오래 그리고 크게 사용하실 수 있는 그릇으로 준비된다.

9. 나오며

  하나님께서 바울을 어머니의 태로부터 지명하시고, 세계 선교와 성경 기록과 하나님의 경륜을 밝히는 세 가지 소명을 위하여 준비하신 과정을 살펴보았다. 길리기아 다소의 출생, 여러 언어와 문화, 로마 시민권, 가말리엘 문하의 율법 교육은 우연한 이력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맡길 일을 아시고 바울에게 필요한 자질을 미리 갖추게 하셨다.

  그러나 자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의 지식과 열심은 교회를 박해하는 방향으로 사용되었다.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난 뒤 그는 구약을 다시 읽고 모든 말씀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했다. 아덴의 한계를 통과한 뒤에는 사람의 지혜만이 아니라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이 필요함을 배웠다. 지식과 은사와 능력이 모두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사람을 살리는 방향으로 바로잡힌 것이다.

  성품도 오랜 훈련을 받아야 했다. 위협과 살기가 등등했던 혈기, 바나바와 심히 다투었던 완고함, 큰 계시와 은사 때문에 높아질 수 있었던 교만은 마가와의 회복과 사탄의 가시와 수많은 고난을 통하여 낮아졌다. 바울은 완전해서 부름받은 사람이 아니라 부르심에 응답하여 잘못을 고치고 순종함으로 준비된 사람이었다.

  오늘 우리에게 맡겨진 분량이 바울보다 작더라도 의미가 작은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설교와 선교뿐 아니라 청소와 식사 준비와 중보기도와 후원을 통하여도 당신의 일을 이루신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고 필요한 자질을 준비하며, 혈기와 교만을 회개하고, 말씀하실 때 끝까지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계획을 믿되 준비와 수고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더 깊이 배우고 회개의 분량을 채워야 한다. 잘못된 지식의 방향을 그리스도께로 돌리고, 악한 영을 내보내 성품을 변화시키며, 받은 은사와 능력을 사랑 안에서 사용해야 한다. 그리하여 자질과 성품과 순종을 온전히 준비하고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에 끝까지 충성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8월 03일(월)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신약 성경의 핵심 인물인 사도 바울의 생애와 사역을 통해 하나님이 일꾼을 세우시고 사용하는 영적 원리를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바울이 이방인 선교와 성경 기록이라는 거룩한 소명을 완수할 수 있었던 비결이 출생 성분부터 학문적 배경까지 세밀하게 안배된 하나님의 섭리와 준비에 있었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쓰임 받는 일꾼의 필수 조건으로 자질의 비축, 성품의 도야, 순종의 훈련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제시하며, 바울조차 혈기와 교만을 다스리기 위해 일평생 회개와 겸손의 과정을 거쳤음을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독자들에게 각자의 삶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음을 인지하고, 회개를 통한 성품 변화와 그리스도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하나님이 귀히 쓰시는 그릇으로 거듭날 것을 독려하는 목적을 지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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