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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9. 05. (토)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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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IoG2jyoQGSk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84)]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5) 인자 같은 이(04)(단7:9~1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IoG2jyoQGSk

 

[ 이 설교 내용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요점 질문 ]
  1. 아람어 ‘인자 같은 이’는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가?
  2. 하나님은 바벨론의 왕들을 통해 어떻게 주권을 나타내셨는가?
  3. 교황권은 왜 최종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음녀의 예표인가?
  4. 마지막 적그리스도가 이슬람권에서 나올 가능성은 왜 제기되는가?
  5. ‘인자’와 ‘인자 같은 이’는 신분과 사역에서 어떻게 다른가?
  6. 예수께서는 왜 자신을 그리스도보다 인자라고 더 많이 부르셨는가?
  7. 인자 같은 이와 함께 왕 노릇할 이기는 자는 어떻게 준비되는가?

 

기독론(184)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5)

인자 같은 이(04)

(단 7:9-14)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다니엘서가 보여 주는 그리스도의 예표(豫表, type)는 총 네 가지다. 제2장의 손대지 아니한 돌, 제7장의 인자 같은 이, 제9장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메시아, 제10장과 제12장의 세마포 옷을 입은 이가 그것이다. 이 표현들은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셨고 장차 무슨 일을 하실지를 함께 드러낸다. 특히 손대지 아니한 돌과 인자 같은 이는 마지막 세상 제국을 심판하고 영원한 나라를 세우실 재림(再臨, second coming)의 그리스도를 강하게 보여 준다.

  먼저 제2장에서 사람의 손으로 뜨지 아니한 돌은 금과 은과 놋과 쇠를 거쳐 쇠와 진흙으로 이루어진 신상의 열 발가락을 친다. 이는 인간이 만들어 낸 어떤 존재가 아니라 하늘에서 오시는 심판자가 마지막 세상 권세를 끝내실 것을 뜻한다. 그리고 제7장에서는 같은 역사가 네 짐승과 열 뿔과 작은 뿔로 펼쳐진다. 바로 그때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는다(단 7:13-14).

  이 말씀은 다니엘이 주전 577년경 벨사살 원년에 본 미래의 환상이다. 당시 바벨론 왕을 폐하고 세우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셨다. 그런데 다니엘이 본 마지막 장면에는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와 인자 같은 이가 동시에 등장한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 인성을 입고 구속(救贖, redemption) 사역을 이루신 뒤, 영광스러운 심판주로 다시 오실 때에 성취될 모습이다. 인자 같은 이는 초림하여 고난받으신 인자와 동일한 분이지만, 부활하고 승천하여 하늘의 권세를 받으신 영광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거로 이 환상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성경 원어와 인류의 역사와 종말론을 함께 보아야 한다. 다니엘서 제2장 4절 후반부터 제7장 28절까지는 아람어로 기록된 것이기에, 제7장의 ‘인자 같은 이’를 원어로 보면 아람어 ‘케바르 에나쉬’(사람의 아들 같은 이)다. 또한 작은 뿔이 과연 교황권을 말하는 것인지, 그리고 음녀와 거짓 선지자와 마지막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를 우리는 서로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사탄은 비슷한 모습을 앞세워 진짜를 감추기 때문에 성경 전체를 세밀히 보지 않으면 적그리스도의 정체를 놓치기 쉽다.

  그렇다면 아람어로서 ‘인자 같은 이’는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가? 하나님은 바벨론의 왕들을 통해 어떻게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내셨는가? 교황권은 왜 최종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음녀의 예표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가? 마지막 적그리스도가 이슬람권에서 나올 가능성은 왜 제기되어야 하는가? ‘인자’와 ‘인자 같은 이’는 신분과 사역에서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예수께서는 왜 자신을 그리스도보다 인자라고 더 많이 부르셨는가? 인자 같은 이와 함께 왕 노릇할 이기는 자는 어떻게 준비되는가? 그래서 이 시간에는 이 일곱 질문을 따라 인자 같은 이의 원어적 의미와 종말론적 사역, 그리고 그 영광에 참여할 성도의 준비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아람어 ‘인자 같은 이’는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가?

  다니엘서는 두 가지 언어로 기록되었으니 하나는 히브리어요 또 하나는 아람어다다. 다니엘 제1장부터 2장 4절 전반까지 그리고 제8장 1절부터 제12장 마지막 절까지는 히브리어로 기록된 것이이며, 제2장 4절 후반부터 시작되는 바, 갈대아인들이 아람어로 왕에게 말하기 시작하는 지점부터 제7장 마지막 절까지는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제7장 13절의 ‘인자 같은 이’를 이해하려면 우선 아람어 표현을 잘 살펴야 한다.

  히브리어에서 '사람의 아들'은 ‘벤 아담’이다. 그러나 다니엘서 제7장 13절에 나오는 '사람의 아들'은 의 아람어로 ‘케바르 에나쉬’다. ‘케’는 ‘~와 같은’, ‘바르’는 ‘아들’, ‘에나쉬’는 ‘사람’을 뜻한다. 따라서 이 말은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 곧 ‘인자 같은 이’라는 뜻이다. 다니엘은 인자같은 이를 한 인간의 왕이라고 단정하지 않고 사람의 모습을 지녔으나 하늘에 속한 신비로운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단 7:13-14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그런데 다니엘서 제10장 16절에도 개역개정 성경을 보면 ‘인자 같은 이’라는 표현이 또 한 번 나온다. 그러나 그곳의 히브리어는 제7장의 아람어 표현과 같지 않다. 거기서는 "사람의 아들들의 모양(형상)"과 같은 존재가 다니엘의 입술을 만지고 있는 장면이다. 그 존재를 그리스도로 볼 것인지 가브리엘 천사로 볼 것인지는 문맥을 더 살펴야 한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종말론적 칭호로서 ‘인자 같은 이’가 선명하게 등장하는 본문은 다니엘서 제7장 13절뿐이다.

  특히 '인자 같은 이'라는 호칭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人性, humanity)과 신성(神性, deity)이 함께 암시되어 있다. 그분은 사람의 아들과 같은 모습을 가졌다는 것은 그분이 인성을 입으신다는 것을 뜻하며,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영원한 권세와 나라를 받은 것을 보면 그분은 신성을 입으셨다는 것ㅇ르 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백성과 나라와 언어를 말하는 자들이 그분을 섬기게 되고, 그의 권세가 소멸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살펴보면, 그분은 단순한 지상의 왕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만왕의 왕이시는 것을 보여 준다.

3. 하나님은 바벨론의 왕들을 통해 어떻게 주권을 나타내셨는가?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을 때에는 하나님이 바벨론의 신보다 더 약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직접 당신의 영원히 이름을 두시겠다고 했던 예루살렘 성전이 그만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니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한 부족의 신이 아니라 왕들을 세우고 폐하시는 온 우주의 주권자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증언한다.

  먼저, 느부갓네살이 꿈부터 살펴보자. 그때 바벨론의 2대 왕 느부갓네살이 한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은 징조가 있는 꿈이었으나 아무도 그 꿈을 알아내지도 못했고 해석해내지도 못했다. 왜나하면 왕이 그 꿈의 내용조차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렇게 뛰어났던 바벨론의 지혜자들은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어떠한 답답도 내놓지 못하고 있엇다. 그때 다니엘은 하나님께 기도한 뒤 그 비밀을 알게 되었고, 그때 그는 느부갓네살 왕에게 이 세상의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고 세우시는 분이 오직 하나님이라고 찬양하게 하였다(단 2:20-23). 이 사건으로 인해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의 하나님이 모든 신들의 신이요 모든 왕의 주재라고 고백했다.

단 2:47 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시로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은 곧바로 온전히 돌이키지 않았다. 그는 두라 평지에 금신상을 세우고 모든 사람에게 절하게 했다. 하나님께서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서 건져 내심으로 참신이 누구인지 다시 보여 주셨다(단 3:19-29). 그 뒤 큰 나무가 베이는 꿈과 칠 년 동안 짐승처럼 사는 징계를 통해 왕의 교만을 낮추셨다.

  총명이 돌아온 느부갓네살은 지극히 높으신 이의 권세가 영원하고 그 나라가 대대에 이른다고 고백했다(단 4:34-35). 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피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때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으나 그가 다시 타락하면서 이름이 지워졌다. 이 사건은 한때 하나님을 고백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함을 보여 준다.

  다니엘은 세상 왕궁에서 일했지만 세상에 동화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꿈과 환상을 해석하는 은사로 왕을 변화시켰다. 오늘의 성도도 직장과 사회 속에서 신실하게 살아 불신자가 하나님을 인정하게 해야 한다. 목회자는 성도를 진리로 깨우는 일을 맡고, 평신도는 세상 속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한다. 하나님께서는 포로의 자리에서도 자신의 주권을 드러내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4. 교황권은 왜 최종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음녀의 예표인가?

  종교개혁자들과 역사주의 해석자들, 안식교는 로마 교황권을 적그리스도라고 보아 왔다. 교황권이 작은 뿔과 닮은 행동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높은 종교 권위를 주장하고, 세상 왕들과 결탁하며, 성경을 자기 권위 아래 두고, 자기 가르침에 반대하는 성도들을 핍박했다. 그래서 겉으로만 보면 다니엘서 제7장의 작은 뿔처럼 보인다.

  그러나 최종 적그리스도(敵그리스도, Antichrist)는 여러 교황의 연속이 아니라 마지막에 나타날 한 사람이다. 교황권에는 오랜 기간 수많은 교황이 이어졌다. 요한은 이미 많은 적그리스도가 나타났다고 말했는데, 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여러 예표와 세력이 역사 속에 있었음을 뜻한다(요일 2:18). 교황들은 적그리스도의 성격을 보여 주었지만 마지막 짐승 그 자체는 아니다.

  더 결정적인 구별은 그 기원이다. 요한계시록의 첫째 짐승은 바다에서 올라오는 이방 제국의 권세다. 반면 교황권은 기독교 세계 안에서 세상 권력과 결탁한 종교 세력이다. 그러므로 교황권은 바다 짐승보다 큰 음녀의 모습과 더 가깝다. 음녀는 세상 왕들과 음행하고 그 권력을 이용하여 부와 영화를 누리다가 마지막에는 짐승과 열 뿔에게 미움을 받고 멸망한다(계 17:1-6, 15-18).

  요한계시록에서 악의 삼위일체는 용과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과 두 뿔 가진 어린양 같은 짐승 곧 거짓 선지자다(계 13:1-18; 16:13). 음녀는 이 세 존재와 구별된다. 음녀의 반대편에는 정결한 처녀로 묘사되는 십사만 사천 명이 있다(계 14:1-5). 음녀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 권력과 타협하여 끝까지 부귀영화를 좇는 종교 세력이다.

  거짓 선지자도 음녀와 구별해야 한다. 교회 안에서 성도를 잘못 가르친 발람과 니골라당과 이세벨은 거짓 선지자의 계보를 보여 준다. 이들은 우상의 제물을 먹고 음행해도 괜찮다는 식으로 성도들을 미혹했다(계 2:14-15, 20). 음녀가 세상 권력과 결탁한 타락한 종교 체제라면, 거짓 선지자는 거짓 가르침과 표적으로 짐승을 경배하게 하는 종교 지도자다. 비슷해 보여도 맡은 역할과 마지막 시점이 다르다.

5. 마지막 적그리스도가 이슬람권에서 나올 가능성은 왜 제기되는가?

  마지막 적그리스도의 출현 지역을 알려면 다니엘서 제7장만으로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제7장의 작은 뿔은 넷째 짐승의 열 뿔 사이에서 나오고, 제8장의 작은 뿔은 헬라 제국에서 갈라진 네 왕국 가운데 하나에서 나온다.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는 셀류코스 왕조에서 나와 성전을 더럽히고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함으로 적그리스도의 역사적 모형을 보여 주었다. 하나님께서는 한 예표만 주신 것이 아니라 여러 시대의 모형을 통해 마지막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셨다.

  요한계시록 제17장에는 일곱 왕과 여덟째 왕의 계시가 나온다. 사도 요한이 환상을 보던 때에는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으며 다른 하나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했다. 이스라엘을 지배한 제국을 애굽, 앗수르, 바벨론, 메대·바사, 헬라, 로마로 헤아리면 요한 당시의 여섯째는 로마다. 그 뒤에 올 일곱째 제국은 오스만 제국으로 볼 수 있으며, 일곱 중에 속한 여덟째가 마지막 적그리스도로 나타난다.

계 17:10-11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하나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시 동안 머무르리라 전에 있었다가 지금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그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

  오스만 제국은 1299년부터 1922년까지 존속했고, 1453년에는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했다. 튀르크계 민족이 세운 이 나라는 이슬람을 받아들여 거대한 이슬람 제국이 되었다. 그러므로 일곱째 제국에서 다시 나올 여덟째 왕을 생각할 때 이슬람권을 주목해야 한다. 필자는 마지막 적그리스도가 이슬람 세력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것은 인물의 이름을 미리 단정하거나 출현 날짜를 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직 실제 인물이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구체적인 국적과 신분은 지나 보아야 안다. 그러나 교황권만 바라보다가 세속의 이방 제국에서 올라오는 짐승을 놓쳐서는 안 된다. 사탄은 참된 것과 비슷한 예표를 앞세워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그러므로 다니엘서 제7장과 제8장, 요한계시록 제13장과 제17장을 함께 보아야 한다.

  장차 나타날 짐승은 바벨론과 메대·바사와 헬라의 특징을 한 몸에 지니고, 용에게서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받는다(계 13:1-2). 그는 한 국가의 지도자에 머물지 않고 세계 권력의 중심에 설 것이다. 교황권의 종교적 참칭과 안티오코스의 성전 모독과 이방 제국의 정치 권력이 마지막 한 사람 안에서 결합할 수 있다. 이것이 역사적 예표들을 세밀히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6. ‘인자’와 ‘인자 같은 이’는 신분과 사역에서 어떻게 다른가?

  ‘인자’와 ‘인자 같은 이’는 동일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지만 강조하는 신분과 사역이 다르다. ‘인자’는 연약한 인간의 자리로 내려오셔서 고난받고 죽으신 그리스도를 보여 주고, ‘인자 같은 이’는 그 고난과 죽음을 이기고 하늘의 영광과 왕권을 얻으신 그리스도를 보여 준다. 인자가 되지 않고서는 인자 같은 이의 영광에 이를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아흔세 번이나 ‘인자야’라고 부르셨다. 히브리어로는 ‘벤 아담’, 곧 사람의 아들이다. 이 호칭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위엄 앞에 선 연약하고 유한한 인간을 일깨운다. 에스겔은 하나님이 세우고 말씀을 주셔야만 일어설 수 있었으며, 하나님이 붙드시지 않으면 사명을 감당할 수 없었다(겔 2:1-3). 그러므로 인자는 먼저 인간의 한계와 의존성을 나타낸다.

겔 2:1-2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 발로 일어서라 내가 네게 말하리라 하시며 그가 내게 말씀하실 때에 그 영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내 발로 세우시기로 내가 그 말씀하시는 자의 소리를 들으니

  예수께서는 바로 이 인자의 자리에 들어오셨다.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피곤과 배고픔과 목마름을 겪으셨고 머리 둘 곳조차 없으셨다(마 8:20). 종교 지도자들에게 버림받고 채찍질과 조롱을 당했으며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신성을 버린 것이 아니라 참된 인성을 입고 인간이 통과해야 할 고난과 죽음을 실제로 담당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신앙고백 직후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림받아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한다고 가르치셨다(막 8:29-31). 여기서 ‘인자’는 정치적 승리보다 고난과 대속(代贖, ransom)을 먼저 가리킨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러 오셨다(막 10:45).

  반면 다니엘서의 인자 같은 이는 하늘 구름을 타고 온다. 그분은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 앞에서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고 모든 민족의 섬김을 받는다.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와 신성한 권위를 나타내며,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 권세는 어떤 인간 왕에게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자 같은 이는 죽음을 통과하고 부활(復活, resurrection)과 승천을 거쳐 천상의 왕이 되신 그리스도다.

  다니엘이 본 것은 주전 577년 당시 하늘에서 진행된 장면이 아니라 먼 미래에 이루어질 장면이다. 구약 시대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시고 모세에게 자신을 보이신 적은 있지만, 아버지가 보좌에 앉고 인성을 입은 아들이 그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으로 활동하신 것은 아니다(창 18:1-2). 하나님의 아들은 영원부터 계셨으나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인성을 입은 뒤 아버지와 아들의 인격적 구별이 역사 속에 선명하게 드러났다.

  따라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와 인자 같은 이가 함께 등장하는 환상은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 이후를 가리킨다. 두 인격이 동시에 나타나지만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아들은 이 땅에서 구속 사역을 완성하고 하늘에 오르신 뒤 아버지 앞에서 나라를 받는다. 다니엘은 그리스도가 오시기 약 오백여 년 전에 그분의 승천 이후와 마지막 재림의 영광을 미리 본 것이다.

  요한계시록 제1장의 인자 같은 이는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었으며 머리와 털이 흰 양털과 눈같이 희다. 눈은 불꽃 같고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으며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다(계 1:13-16). 다니엘서에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지닌 흰옷과 흰 머리털과 불의 영광이 인자 같은 이에게도 나타난다. 이는 예수님이 단순히 영광을 얻은 인간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보여 준다.

  요한계시록 제14장에서도 인자 같은 이가 흰 구름 위에 앉아 금 면류관을 쓰고 예리한 낫을 들고 나타난다. 그분은 땅의 곡식이 익었을 때 낫을 휘둘러 알곡을 거두신다(계 14:14-16). 제1장의 인자 같은 이가 교회 가운데를 거니시며 말씀하시는 왕이라면, 제14장의 인자 같은 이는 마지막 추수와 휴거(携擧, rapture)를 집행하시는 왕이다. 신약에서 이 특별한 표현이 두 번 모두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자 같은 이가 된 뒤에는 심판이 따른다. 시편 제110편에서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주에게 원수들이 발판이 될 때까지 오른편에 앉으라고 말씀하셨다. 권능의 날에는 왕들을 쳐서 멸하고 여러 나라를 심판하신다(시 110:1-6). 예수께서 대제사장 앞에서 권능자의 우편에 앉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말한 것은 시편과 다니엘의 예언이 자신에게서 성취됨을 선언한 것이다.

막 14:6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그러므로 인자의 길과 인자 같은 이의 영광을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는 먼저 낮아져 순종하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기에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받으셨다(빌 2:6-11). 고난받은 인자가 곧 영광받은 인자 같은 이다. 십자가 없는 왕관이 없고, 죽음을 통과하지 않은 부활의 영광도 없다.

7. 예수께서는 왜 자신을 그리스도보다 인자라고 더 많이 부르셨는가?

  예수께서 자신을 가장 자주 부르신 호칭은 ‘인자’다. 사람들이 그분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것은 받아들이셨지만, 스스로 정치적 의미가 가득한 ‘그리스도’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셨다. 당시 유대인들이 기다린 메시아는 로마의 압제를 무너뜨리고 다윗 왕국의 영광을 회복할 정치적 왕이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잘못된 기대를 따라가지 않으셨다.

  그렇다고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정하신 것은 아니다. 대제사장이 찬송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고 물었을 때 “내가 그니라”고 대답하셨고, 베드로의 고백도 옳다고 인정하셨다(막 14:61-62; 마 16:16-17). 다만 사람들이 그 칭호를 현세적 왕권으로만 오해했기 때문에 자신을 말할 때에는 ‘인자’라는 호칭을 앞세워 메시아가 먼저 걸어야 할 고난과 죽음의 길을 가르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인자’가 서로 반대되는 이름은 아니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의 직분을 나타내고, 인자는 그 직분을 완성하기 위해 실제 인간이 되어 낮아지신 길을 나타낸다. 예수께서는 인자라는 말을 통하여 참된 메시아의 왕권이 칼과 군대로 먼저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순종을 통하여 세워진다는 사실을 교정하셨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 고백했을 때 예수께서는 그 고백을 인정하셨다. 그러나 곧바로 아무에게도 자신을 말하지 말라고 경고하시고,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버림받아 죽임을 당한 뒤 사흘 만에 살아날 것을 가르치셨다(막 8:29-31). 제자들이 생각한 그리스도는 곧 왕좌에 오를 분이었지만, 예수께서 밝히신 그리스도의 길은 먼저 십자가로 향했다.

막 8: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제자들조차 이 차이를 깨닫지 못했다. 야고보와 요한은 주님의 나라가 임할 때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구했다(막 10:35-40). 그들은 로마를 무너뜨릴 현세적 왕국과 그 안의 높은 자리를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신이 마실 잔과 받을 세례를 먼저 말씀하셨다. 왕 노릇하기 전에 고난에 참여해야 하며, 높은 자가 되려면 먼저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예수께서 해결하러 오신 근본 문제는 로마 정권만이 아니었다. 애굽의 바로와 바벨론과 로마 뒤에서 역사하는 사탄 마귀의 권세가 진짜 원수였다. 세상 제국을 바꾸어도 죄와 사망과 마귀의 권세가 그대로라면 인간은 자유로워질 수 없다. 그러므로 주님은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눌린 자에게 놓임을 주기 위해 오셨고, 십자가로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장 해제하셨다(사 61:1-2; 골 2:14-15).

  ‘인자’라는 호칭은 예수님의 참된 인간됨과 낮아짐을 보여 준다.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고,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며, 안식일의 주인이며, 자기 살과 피를 생명으로 내어 주는 분이다(마 8:20; 9:6; 12:8; 요 6:53-57). 그분은 연약한 인간의 자리로 내려오셨지만 죄가 없으셨고, 인간이 감당하지 못한 순종을 끝까지 이루셨다.

  동시에 인자라는 호칭은 다니엘서의 영광을 감추어 품고 있다. 지금은 고난받고 버림받지만 장차 권능자의 우편에 앉아 구름을 타고 오실 분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인자라고 부르심으로 십자가의 낮아짐과 마지막 왕권을 하나로 묶으셨다. 사람들은 현세의 정치적 해방만 원했지만, 주님은 먼저 죄와 마귀에게서 구원(救援, salvation)하시고 마지막에는 모든 악한 나라까지 심판하신다.

마 24: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세상 문제를 즉시 해결해 줄 정치적 구원자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 고난받은 인자를 따라 죄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며, 장차 오실 인자 같은 이의 영원한 나라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분은 초림 때 섬기고 죽으셨지만 재림 때에는 원수들을 깨뜨리고 왕으로 다스리신다. 이 두 모습을 함께 알아야 예수님을 온전히 알 수 있다.

8. 인자 같은 이와 함께 왕 노릇할 이기는 자는 어떻게 준비되는가?

  인자 같은 이와 함께 왕 노릇할 사람은 고난을 피한 사람이 아니라 믿음으로 고난을 통과한 사람이다. 예수께서 인자의 자리에서 멸시와 버림과 죽음을 이기고 영광의 왕이 되셨듯이, 성도도 인간의 한계와 세상의 반대와 악한 영의 공격을 믿음으로 이겨야 한다. 넉넉하고 편안하게만 살다가 저절로 하늘의 왕권을 받는 것이 아니다.

  첫째, 자기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 에스겔이 ‘인자야’라는 부름을 들을 때마다 자신이 흙으로 지음받은 인간임을 기억했듯이, 우리도 하나님이 붙드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지식과 경력과 지위를 자랑하면 느부갓네살처럼 낮아질 수밖에 없다. 겸손히 하나님을 높일 때 총명과 사명을 회복할 수 있다.

  둘째, 날마다 회개(悔改, repentance)하여 악한 영의 방해를 제거해야 한다. 필자도 본래 특별히 뛰어난 사람이 아니었지만 계속 회개하면서 영적 시야가 열리고 말씀을 이해하는 속도와 분별력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 느부갓네살도 징계를 통과하고 하늘을 우러러보았을 때 총명이 돌아왔다. 죄를 붙들고 있으면서 하늘의 지혜만 구할 수는 없다.

  셋째,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를 세상 사람을 구원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다니엘은 꿈과 환상을 깨닫는 은사로 왕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언했다. 필자도 안수하고 기도할 때 한 사람과 관련된 배의 환상을 본 적이 있다. 그에게 물으니 아버지가 뱃사람이었다고 답했다. 이러한 체험은 사람을 놀라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영혼을 아시며 말씀을 믿고 따라오도록 돕기 위해 주신 표지다.

  넷째, 세상 속에서 신실하게 살아야 한다. 다니엘은 바벨론 왕궁의 관리였지만 믿음을 버리지 않았고, 오히려 왕들이 하나님을 고백하게 했다. 평신도에게 전도는 천국에서 큰 상급이 되는 사명이다. 직장과 사업장과 학교와 가정에서 올바르게 살고 복음을 전해야 한다. 세속의 일을 한다고 절망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자리에서 만나는 영혼들을 맡기셨다.

  다섯째, 올바른 영적 지도를 받고 진리를 배워야 한다. 제자가 선생과 같아지는 것이 최고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누구에게 무엇을 배우는지가 중요하다(마 10:24-25). 종말과 천국과 회개와 악한 영의 실체를 배우지 못하면 오랫동안 교회에 다녀도 준비되지 못할 수 있다. 자신의 영혼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고 말씀을 부지런히 듣고 분별해야 한다.

  영적 지도자는 사람을 자기에게 묶어 두는 자가 아니라 말씀을 열어 주어 성도가 직접 주님을 따라가게 하는 자다. 필자는 청년 시절부터 어린아이와 불신자를 전도했고, 지금은 잠자는 성도들을 깨워 천국과 회개와 마지막 때를 준비시키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본당에 모인 숫자만으로 사역을 판단할 수 없다. 오늘은 온라인을 통해서도 진리를 찾는 많은 영혼에게 말씀이 전해질 수 있으므로, 깨달은 사람은 다시 다른 영혼을 깨우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

  여섯째, 받은 말씀을 실제 전도로 이어 가야 한다. 진리를 많이 아는 것만으로는 왕의 신분이 준비되지 않는다. 세상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을 보여 주고, 낙심한 성도를 깨우며, 가족이 구원의 길로 들어오도록 섬겨야 한다. 다니엘이 자기 은사를 왕 앞에서 사용했듯이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직업과 관계와 재능을 복음의 통로로 사용해야 한다.

  일곱째, 고난과 역경 앞에서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도 인자의 길에서 피곤과 배고픔과 배척과 죽음을 겪으셨다. 우리에게도 세상 권세의 압박과 사람들의 오해와 귀신의 공격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믿음을 버리라는 신호가 아니라 이기는 자로 훈련받는 과정이다. 고난을 통과할 때 순종이 단단해지고 천국에서 맡을 신분과 지위가 준비된다.

  여덟째, 마지막 나팔과 추수를 바라보며 충성해야 한다. 구름 위의 인자 같은 이는 금 면류관을 쓰고 예리한 낫으로 익은 곡식을 거두신다(계 14:14-16). 알곡은 하루아침에 익지 않는다. 매일 죄를 회개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맡은 사명에 충성할 때 익어 간다. 주님은 마지막에 준비된 성도들을 소집하여 악한 세력을 심판하는 하늘 군대로 사용하실 것이다.

계 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왕 노릇할 자의 기준은 세상에서 얼마나 유명했는가가 아니다. 주님처럼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맡은 일에 충성했는가가 기준이다. 인자 같은 이는 혼자 영광을 누리려 하지 않고 이기는 성도에게 자기 보좌에 함께 앉게 하신다. 그러므로 오늘의 작은 순종과 회개와 전도와 인내가 영원한 나라의 신분을 준비한다.

  우리 앞에 있는 어려움은 인자 같은 이의 영광으로 가는 길을 막는 장애물만이 아니다. 믿음으로 극복할 때 그것이 곧 왕권을 감당할 훈련이 된다. 삶을 불평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주님을 따라야 한다. 고난받은 인자를 사랑하고 그 길에 동참한 사람이 영광 가운데 오실 인자 같은 이를 기쁨으로 맞이하며 그분과 함께 왕 노릇하게 된다.

9. 나오며

  아람어 ‘인자 같은 이’의 의미와 바벨론 왕들을 다스리신 하나님의 주권, 교황권과 음녀와 최종 적그리스도의 구별, 이슬람권에서 마지막 짐승이 나올 가능성, 인자와 인자 같은 이의 차이, 예수께서 자신을 인자라고 부르신 이유와 이기는 자의 준비를 살펴보았다.

  인자는 연약한 인간의 자리로 내려와 고난받고 죽으신 그리스도를 나타내며, 인자 같은 이는 그 고난을 이기고 하늘의 권세와 영광과 영원한 나라를 받으신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예수께서는 정치적 메시아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기대를 넘어 죄와 사망과 마귀의 권세를 깨뜨리셨고, 장차 구름을 타고 오셔서 세상 왕들과 마지막 적그리스도를 심판하실 것이다.

  성도는 인자 같은 이의 영광만 바라보면서 인자의 고난을 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 회개로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세상 속에서 복음을 전하며, 주어진 은사와 사명을 충성스럽게 사용하고, 고난과 악한 영의 공격을 믿음으로 이겨야 한다. 오늘의 순종을 통하여 알곡으로 익고 천국에서 맡을 신분과 지위를 준비해야 한다.

  그리하여 고난받은 인자의 발자취를 끝까지 따르고 구름을 타고 오실 인자 같은 이와 함께 영원히 왕 노릇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9월 04일(금)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다니엘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예표 중 '인자 같은 이'의 신학적 의미와 종말론적 역할을 규명하는 데 집중합니다. 본문은 구약의 '인자(벤 아담)'가 연약한 인간을 상징한다면, 다니엘 7장의 '인자 같은 이(바르 에나쉬)'는 하늘 구름을 타고 권능을 부여받는 재림하시는 자로서 강하신 심판주 그리스도임을 천명합니다. 특히 정보배 목사는 적그리스도의 세력과 음녀의 유혹이 만연한 종말의 때에, 성도들이 세속 정권과 결탁하지 않고 회개와 영적 분별력을 통해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함을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께서 고난받는 '인자'로서 사역을 완성하신 후 영광스러운 '인자 같은 이'가 되셨듯, 신자들 또한 현재의 고난과 역경을 인내로 극복하여 천국의 왕권과 영원한 통치에 참여할 것을 강력히 권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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