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87)]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8) 70이레의 환상과 성취(02)(단9:20~2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xW9hu4CA10s
[본문 이해를 위한 핵심 질문 7가지]
1. 다니엘의 앞선 환상들은 70이레 해석에 어떤 틀을 제공하는가?
2. 70년의 포로 회복과 70이레의 계획은 어떻게 다른가?
3. 세대주의는 이스라엘과 천년왕국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4. 70이레를 왜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석해야 하는가?
5. 단 9:25의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6. 단 9:26의 기름부음 받은 자와 장차 올 왕의 백성은 누구인가?
7. 단 9:27의 ‘그’는 누구이며 제사를 그치게 한다는 뜻은 무엇인가?
기독론(187)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8)
70이레의 환상과 성취(02)
(단 9:20-27)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다니엘서를 해석할 때 가장 어려운 대목 가운데 하나가 '70이레'의 환상이다. 이 환상에는 적어도 7가지 대표적인 해석이 존재한다. 저마다 성경과 역사에서 근거를 찾기 때문에 어느 한 대목만 보면 모두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시작점과 종착점,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의 연결, 기름부음 받은 자의 정체, 장차 올 왕의 백성, 제27절의 ‘그’가 누구인지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전체 종말론이 달라진다.
지난 시간에는 이 환상을 해석하기 위하여 몇 가지 원칙들을 살펴보았다. 다니엘은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언제 끝나고 백성이 언제 돌아올지를 기도하다가 예레미야를 통하여 70년의 기간을 깨달았다(단 9:1-2; 렘 25:11-13; 29:10-11). 그는 70년이 정해졌으니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굵은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자기와 자기 민족의 죄를 통곡하며 회개(悔改, repentance)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노여움을 풀어 드리고 주의 성과 성소를 회복해 달라고 간구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70년의 시작과 끝만 설명하지 않으셨다. 70년보다 일곱 배 긴 70이레, 곧 490이라는 더 큰 시간표를 보여 주셨다. 이스라엘 백성과 예루살렘 성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정하신 계획 안에서 허물이 그치고 죄가 끝나며 죄악이 속죄되고 영원한 의가 들어오는 일을 계시하셨다(단 9:24). 따라서 70이레는 단순한 포로 귀환의 연도가 아니라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통하여 죄와 악을 끝내실 하나님의 계획임을 알 수 있다.
다니엘서에 나오는 앞선 환상들에는 일정한 유형이 있었다. 인간 제국은 강성해지고 하나님을 대적하지만, 하늘에서 오시는 분이 그 권세를 깨뜨리고 영원한 나라를 세우신다. 예를 들어 보자. 다니엘 제2장에서는 손대지 아니한 돌이 신상을 부서뜨렸고, 제7장에서는 인자 같은 이가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았다. 제9장에서는 기름부음을 받은 통치자가 나타나고, 그를 대적하며 성읍과 성소를 황폐하게 하는 세력이 등장한다. 그러므로 이 대목도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Antichrist), 하나님의 백성과 대적 세력의 충돌이라는 흐름 안에서 읽어야 한다.
또한 구약성경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한다는 기본 구조를 갖고 있다. 예수께서도 역시 구약 성경이 자신에 대하여 증언한다고 말씀하셨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자신을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셨다(요 5:39; 눅 24:44). 그러므로 70이레를 고레스나 느헤미야 같은 역사적 지도자에게만 가두지 않고,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의 사역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풀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70년의 포로 회복과 70이레의 계획은 어떻게 다른가? 세대주의에서는 다니엘 70이레의 한 이레와 관련하여 이스라엘과 천년왕국을 어떻게 적용하고 있는가? 단 9:25에 나오는 69이레(7이레+62이레)는 어떻게 읽어야 하며, 제26절에 나오는 두 세력(기름부음을 받은 자와 한 왕의 백성)과 제27절의 ‘그’는 각각 누구인가? 그래서 이 시간에는 다니엘의 앞선 환상들이 70이레 해석에 어떤 틀을 제공하는지, 70년과 70이레가 어떻게 다른지, 세대주의의 문자적 이스라엘 해석이 무엇인지, 왜 그리스도 중심으로 읽어야 하는지, 그리고 단 9:25-27의 문장 구조와 사건 순서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다니엘의 앞선 환상들은 70이레 해석에 어떤 틀을 제공하는가?
다니엘의 환상들은 인간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가 충돌하고, 마침내 하늘에서 오시는 그리스도께서 승리한다는 틀을 제공한다. 제2장에 나오는 '거대한 신상'은 바벨론과 메대와 바사와 헬라와 로마와 열 발가락 시대로 이어지는 인간 제국을 보여 준다. 나라들은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의 손으로 다듬지 않은 돌이 날아와 신상의 발을 치자 모두 무너진다. 그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해진다(단 2:31-35, 44-45).
여기서 '손대지 아니한 돌'은 하늘에서 오시는 심판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런데 다니엘 제2장만으로는 그 돌이 신상을 깨뜨린다는 정보만 가지고 있지만, 신약은 그리스도를 살아 있는 돌과 반석으로 해석한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람에게 버림받았으나 하나님께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 되었다고 했고, 바울은 이스라엘을 따르던 신령한 반석이 그리스도였다고 밝혔다(벧전 2:4; 고전 10:4).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계시는 뒤로 갈수록 앞선 상징의 의미를 더 분명히 드러낸다.
그리고 이어지는 제7장의 '인자 같은 이'는 손대지 않은 돌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려 준다. 그분은 처음부터 사람과 무관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다. 초림(初臨, first coming) 때에는 인자로 오셔서 우리와 같은 인성을 지니고 섬기셨다가 죽으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어진 사명을 완수한 뒤 하늘에 올라가 인자 같은 이로 영광을 받고 만왕의 왕과 만주의 주가 되셨다고 한다. 그러므로 인자 같은 이의 환상은 심판자의 권세뿐 아니라 낮아짐과 고난과 섬김을 거쳐 왕권을 얻는 과정을 보여 준다.
그리고 제9장에서도 같은 구조가 나오지만 더 진전된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나타나 죄와 악을 처리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이 장차 올 왕의 백성으로 등장하며 그는 예루살렘 성읍과 예루살렘 성소를 무너뜨린다. 전쟁과 황폐함이 계속되겠지만 마지막에는 황폐하게 하는 바로 그 사람에게 정해진 심판이 쏟아진다(단 9:24-27). 그리스도께서 속죄를 이루시고 죽으심으로 대적 세력은 잠시 파괴되지만, 하나님의 결정은 결국 악의 완전한 멸망으로 끝이 나는 것이다.
이처럼 계시는 점진적으로 진전된다. 제2장의 돌에서는 세상 왕국을 깨뜨리는 심판을 볼 수 있고, 제7장의 인자 같은 이에서는 섬김과 죽음 뒤에 받는 영광과 왕권을 볼 수 있다. 제9장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에서는 그분이 끊어져 죽고 희생 제사를 그치게 하는 구원(救援, salvation)과 속죄 사역이 드러난다. 제10장부터 제12장까지 세마포 옷을 입은 이는 마지막 때의 사건을 알려 주는 영광스러운 천상의 그리스도를 보여 준다.
그러므로 70이레를 앞선 두 개의 꿈과 환상과 단절하여 읽어서는 안 된다. 다니엘서 전체에는 땅에서 올라온 인간 통치자가 나타나 인류를 구원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시대마다 악한 세력이 땅에서 일어나 하나님을 대적하겠지만, 구원과 심판을 완성하실 분은 결국 하늘에서 오실 것이라고 말한다. 장차 다시 오실 그리스도도 이 땅에서 새로 출현하는 어떤 정치적 메시아가 아니라, 이 땅에 오셔서 왕적인 통치의 실상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시고, 사명을 마치신 후 하늘에 오르셨다가 다시 오리는(再臨, second coming) 예수님으로 오신다고 말한다.
3. 70년의 포로 회복과 70이레의 계획은 어떻게 다른가?
예레미야가 최초로 예언했으며(렘 25:11-12,. 29:10) 다니엘이 기도하다가 발견하였던 '70년'이라는 기간(단 9:2)은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죄에 대한 징계를 받은 뒤 다시 돌아오는 기간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 시작과 끝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70년에 대해 세 가지 계산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간 것은 세 차례나 있었기 때문이다. 제1차 포로가 시작된 주전 605년에 있었으니, 이 기준으로 보면 고레스가 귀환 조서를 내린 주전 536년경과 맞물린다. 그리고 제3차 포로와 예루살렘 멸망이 일어났던 주전 586년을 기준으로 하면, 스룹바벨 성전이 완공된 주전 516년경과 연결된다. 그러나 제2차 포로를 시작점으로 삼는 견해도 있다.
이처럼 70년의 시작점은 서로 다르게 계산할 수 있지만, 한 가지 중심은 분명하다. 이스라엘이 죄값을 징계로 받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차면 포로 상태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예레미야의 예언은 하나님께서 바벨론 왕과 갈대아인의 땅을 벌하고 자기 백성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을 선포했다(렘 25:11-13; 29:10). 따라서 '70년'은 이스라엘의 포로 생활과 땅의 회복을 다루는 역사적 기간이다.
반면 '70이레'는 좀 다르다. 왜냐하면 우선 숫자만으로 보더라도 ‘일곱’이 일흔 번 있는 기간이므로, 70년의 7배가 되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이는 하루를 한 해로 보는 원리에 따라 계산하는 것으로서, 70이레는 총 490년이 된다. 왜냐하면 모세가 가나안 정탐꾼으로 보낸 자들이 사십 일간 정탐을 하고 돌아왔는데, 이들 대부분의 불신앙적의 보고 때문에 하나님게서는 하루를 한 해로 환산하여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헤매가 하셨기 때문이다(민 14:34). 그러나 그 의미가 490일인지, 490주인지, 490년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 이날을 490년으로 계산한다.
그렇다면 이것에 대한 가브리엘 천사장의 해석은 어떠한가? 그는 70이레는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하였다(단 9:24). 이 계획안에는 사람과 장소에 대한 예언이 함께 들어 있다. 따라서 이 예언은 일차적으로 육적인 이스라엘 백성과 예루살렘 성을 가리킨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구원 경륜상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유대인과 이방인이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늘의 시온산과 새 예루살렘이 성도들의 영원한 도성이 될 것을 말하고 있다(요 10:16; 갈 3:28-29; 히 12:22; 계 21:2). 그러므로 70이레는 궁극적으로 영적인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거룩한 성으로서, 영적인 이스라엘과 새 예루살렘까지 포함하는 개념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70이레 안에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그것은 단순한 귀환이 아니다. 거기에는 이것보다 더 큰 일들이 6가지 있다. 첫째는 허물(반역)이 철저히 끝나고, 둘째는 죄들이 봉인되며, 셋째는 악이 속죄되고, 넷째는 영원한 의가 들어오며, 다섯째는 환상과 예언이 봉인되고, 여섯째는 지극히 거룩한 처소에 기름이 부어진다고 했기 때문이다(단 9:24). 개역개정 성경은 마지막 부분을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필자가 원문을 대조하여 보았을 때에는 사람보다 아니라 그것이 장소를 뜻하는 바, ‘가장 거룩한 처소’로 해석하는 것이 바른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성전으로 삼아 거룩한 처소로 세우시는 일까지 내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필자가 번역한 단 9:24을 보면, 칠십 개의 이레들이 다니엘의 백성 위에 그리고 다니엘의 거룩한 성읍 위에 정해진 것이다. 이는 그 반역을 철저히 끝내며 죄들을 봉인하고 악을 철저히 속죄하며 영원한 의를 가져오고 환상과 선지자를 봉인하며 가장 거룩한 처소에 기름을 붓기 위함이다
고로 70년이 바벨론이라는 단지 이스라엘을 외적인 포로 상태에서 해방하는 것이라면, 70이레는 죄와 마귀에게 붙잡힌 사람을 메시아가 오셔서 완전히 해방하는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확장될 것이며, 그것이 영적으로 성취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과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은 이러한 큰 구원 계획의 역사적 기초가 된다. 그러나 허물을 끝내고 영원한 의를 가져오는 일은 고레스의 조서나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만으로 완성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다니엘의 70이레의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贖罪, atonement)와 그분이 세우시는 영적 성전을 통하여 성취될 것이다.
4. 세대주의는 70이레를 어떻게 해석하고 이스라엘과 천년왕국을 어떻게 보는가?
그럼, 70이레의 대표적인 7가지 해석 가운데 많은 영향을 미쳤던 세대주의에서는 다니엘의 70이레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 이를 위해서는 우선 세대주의(世代主義, dispensationalism)가 어떤 신학사조인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세대주의란 영국의 성공회 신부였던 '존 넬슨 다비(1800~1882)에 의해서 시작된 신학사상으로서, 하나님께서 육적인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은 절대 변개함이 없이 이 땅에서 문자 그대로 성취되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스라엘이 비록 과거에 불순종하여 나라를 잃은 바 되었어도, 마지막 때가 되면 다시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질 것이고, 다윗과 같은 통치자가 나타나 그 아래에서 태평성대를 이루게 될 것이며, 결국에는 지상에서 천년왕국(千年王國, millennial kingdom)으로 들어가 거기에서 그들이 제사장 나라가 되 이방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게 될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대주의적 해석에는 예루살렘과 성전 그리고 칠 년과 그리고 삼 년 반을 물리적 장소와 연대에 직접 대응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상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주지하시다시피 세대주의 사상은 영국의 형제운동이 존 넬슨 다비와 만나 형성된 것이다. 이를 우리는 고전적 세대주의라고 부른다. 그럼, 영국에서 시작된 형제운동이란 어떤 것이었는가? 그것은 기존 교회의 직분 체계를 거부하고 모두를 형제와 자매로 부르려 한 경건운동이었다. 이것은 중국의 워치만 니를 거쳐 중국과 대만, 필리핀, 한국으로 전해지는데, 한 지방에는 하나의 교회만 있어야 한다는 지방교회가 여기서 나왔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한국복음서원이 대표적인 선교기관이다. 이 흐름은 성경을 깊이 연구하는 장점이 있지만, 1900년대 초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해석을 절대화한다. 그리하여 그 뒤에 계속될 수 있는 계시 이해의 점진적인 발전을 막는다. 그리하여 그들도 원래는 제도권이 싫어서 밖으로 나왔는데 다시 하나의 제도권을 만들고 있다.
그런데 미국으로 들어간 세대주의는 이와 다르게 발전하였다. 중국으로 전래된 형제운동은 교회 변방에서 진행되었지만, 미국으로 들어간 세대주의는 수정되고 확장되어 제도권 교회와 근본주의 안으로 들어가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기 때문이다. 필자가 살펴본 바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지금도 약 800만 명의 세대주의 성향의 기독교 신자들이 있고, 약 500만 명의 유대인들이 있다. 이들은 현재 미국 정치와 종교에 직간접으로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들은 창세기 제12장에 나오는 바,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에 대한 약속과 예루살렘의 평안을 구하라는 말씀을 오늘의 이스라엘 국가에 직접 적용한다. 그리하여 미국은 지금도 이스라엘의 문제라면 거의 무조건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창 12:3; 시 122:6).
그렇다면 왜 한국에는 세대주의에 입각하여 전천년설이 주요한 종말론이 되어 있는가? 그것은 한국에 들어온 초기 미국 선교사들이 종말이 가까웠으니 빨리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고전적 세대주의의 열정을 가지고 들어와 학교와 병원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화여대와 배재학당과 세브란스병원 같은 교육·의료 기관의 설립과 함께 많은 한국인 지도자를 양성했고, 그 과정에서 전천년설(前千年說, premillennialism)과 환난 전 휴거(携擧, pretribulation rapture) 해석이 널리 전해진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한국 교회의 종말론을 이해하려면 세대주의의 형성과 전파 과정을 알아야 한다.
특히 세대주의는 단 9:27에 나오는 바, 이스라엘 백성과 한 이레(7년)의 언약을 굳게 세우는 ‘그’를 적그리스도로 본다. 마지막 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과 칠 년 평화조약을 맺고 성전을 지어 주지만, 삼 년 반 뒤 돌변하여 제사와 예물을 금지하고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 한다고 해석한다(살후 2:3-4). 그러면 교회는 이보다 앞서 공중으로 휴거되어 칠 년 혼인잔치에 참여하고 있는 상태이기에, 후반기 환난에는 유대인 가운데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순교자들이 나온다고 본다. 그리하여 살아남은 이스라엘 백성이 지상 천년왕국의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시간표다.
또한 세대주의자들은 곡과 마곡 전쟁과 아마겟돈 전쟁을 서로 다른 전쟁으로 나누고, 에스겔의 성전을 지상 천년왕국에 세워질 물리적 제3성전과 연결된다고 해석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예루살렘에 성전을 다시 지을 준비와 미국의 이스라엘 정책을 예언 성취의 과정으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해석은 단 9:27의 ‘그’를 누구로 정하느냐에 크게 의존한다. 만일 ‘그’가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리스도라면 칠 년 평화조약과 중간의 배신이라는 전체 구조가 달라진다.
필자는 육적인 이스라엘에게 일어난 역사적 성취를 인정하지만, 그들이 불순종하여 이루지 못한 하나님의 뜻은 그리스도 안의 영적인 이스라엘을 통하여 완성된다고 본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예수 안에서 한 백성이 되고, 그들이 함께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이다(고전 3:16). 종말의 전쟁도 물리적인 예루살렘만을 차지하려는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과 악한 영들을 사주받은 악한 자들과 악한 영들의 충돌로 보아야 한다. 필자는 지금도 육적인 차원의 사건이 다시 나타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지만, 예언의 본류는 영적인 하나님의 백성과 새 예루살렘에게 있다고 본다.
5. 70이레를 왜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석해야 하는가?
그렇다. 70이레는 다니엘 9:24-27을 어떻게 번역하느냐와 그것을 문자적인 성취로만 보느냐에 따라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다. 그렇다면 다니엘의 70이레는 어떻게 해석해야 가장 실수 없이 해석할 수 있다. 필자는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읽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다니엘 9장 24절부터 27절까지의 흐름을 하나로 연결해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직접 구약의 율법과 선지서와 시편은 모두 당신 자신인 예수님을 증언한다고 했기 때문이다(눅 24:44). 그러므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나타나 반역을 끝내고 죄를 봉인하며 악을 속죄하고 영원한 의를 가져온다면, 그이는 단순한 정치 지도자일 수 없다.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의 직분을 모두 지니고 인류의 죄를 해결할 수 있는 분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바사왕 고레스는 포로 귀환의 조서를 내린 왕이었고, 하나님께로부터 기름부음 받은 자라고 불렸지만 그를 다니엘 9장에 나오는 바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고 말하기는 어렵다(사 45:1). 또한 바사 왕 아닥사스다 왕 때 살았던 느헤미야도 역시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한 지도자(나기드)로서, 메시아의 사역을 부분적으로 예표할 수 있지만 그를 다니엘 9장에 나오는 바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들은 제사장으로서 죄를 속죄하거나 선지자로 모든 계시를 완성한 이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제26절을 보면,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3년 반이 지난 다음에 끊어져 없어져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다나엘 9장에 나오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을 때 기름부음을 받았던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리고 그분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뒤에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이 땅에서 끊어지셨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70이레에 관한 점진적 계시(漸進的啓示, progressive revelation)를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앞선 시대에 주신 빛을 폐기하지 않으면서, 뒤의 계시를 통하여 그 의미를 더 분명히 하시기 때문이다. 어떤 단체가 20세기 초반이나 특정 지도자의 해석에만 머물러 이후의 원문 연구와 교정을 거부하면, 성경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결국 자기 해석을 따르라고 요구하는 것이 되고 만다. 베뢰아와 귀신론, 다락방과 G12, 미국의 신사도·빈야드 및 여러 영성운동도 성경 전체와 원문을 가지고 이들의 주장이 무엇이 옳았고 잘못된 것이었는지를 계속해서 분별해야 한다.
필자는 헬라어를 근 30년동안 공부하면서 오랫동안 여러 번역본을 대조해 왔다. 허성갑 목사의 원문직역성경도 구약을 연구할 때 귀하게 사용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번역이라도 모든 구절이 완전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유진 폴스티히의 연대기 연구를 한국창조과학회의 김명현 박사가 번역한 『다니엘 연대기』도 구입하여 살펴보았고, 2010년 무렵부터 70이레의 여러 견해를 비교해 왔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도구에 헬라어와 히브리어 문법과 번역 관점을 반복하여 훈련시키며 원문을 다시 대조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는 사람의 지식을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필자는 자신의 머리만으로 이 모든 것을 깨달을 수 없으며 주께서 보게 하셔야 깨닫게 된다고 고백한다. 헬라어 신약성경에 대한 번역 작업도 약 70퍼센트까지 진행하고 있지만, 어느 번역도 무조건 절대화하지 않고 원문과 문맥과 그리스도 중심성을 함께 살펴야 하는 것이다. 히브리어 문장은 악센트와 구두점의 위치에 따라 둘 이상의 번역 가능성이 생길 수 있으므로, 문법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계시를 주신 목적까지 대입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 중심 해석은 모든 구절에 임의로 예수님의 이름을 붙이는 일이 아니다. 단 9:24의 여섯 사역, 제25절의 기름부음 받은 통치자, 제26절의 끊어짐, 제27절의 언약과 제사 중지가 실제로 예수님의 생애와 속죄 사역에 맞는지를 하나씩 대조하는 것이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고레스와 느헤미야가 가진 부분적 예표의 위치는 인정하면서도, 예언을 완성하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6. 단 9:25의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그리고 단 9:25는 히브리어 문장의 구두점과 강조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크게 두 방향으로 읽힌다. 이 구절에 대한 하나의 해석의 하나는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말씀이 나온 때부터 기름부음 받은 지도자가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가 지날 것이고 다시 예순두 이레가 지나서 광장과 해자가 건축된다고 해석한다(허성갑역 히브리어 헬라어 직역성경). 이렇게 읽으면 일곱 이레를 시작하는 고레스와 일곱 이레 후에 등장하는 느헤미야 같은 지도자를 기름부음 받은 자로 연결하기가 한결 쉬워진다.
그러나 또 다른 해석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를 합하여 기름부음 받은 통치자가 이를 때까지 총 69이레가 지난다고 보는 해석이 있다. 예루살렘의 거리와 해자도 그 곤란한 기간 안에 다시 건축된다고 본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한글 개역개정의 문장도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라고 하여 이 두 기간을 하나로 연결해 해석하고 있음을 본다.
먼저, 필자가 히브리어 원문을 대조하여 보면, 개역개정이나 허성갑역에는 단 9:25절에 있는 ‘돌이키다’라는 단어 ‘슈브’가 빠져 있음을 본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을 돌이켜 다시 건축하라는 말씀이 떨어진 때부터 시작하여, 기름부음 받은 통치자에 이르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난다고 해석하는 것이 가장 옳은 것 같다. 예루살렘은 먼저 하나님께 돌이켜야 했고, 그 후에 다시 세워져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육적인 예루살렘에 주님이 왔으니, 그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인하여, 주께서는 믿는 자들을 영적 성전으로 건축하시게 된다.
필자가 번역한 것으로 단 9:25은 이렇다. "그러므로 너는 [장차] 알고 명철하게 깨달아라. 예루살렘을 돌이켜 다시 건축하라는 말씀이 나감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통치자에 이르기까지 일곱 이레들과 예순두 이레들이다. 그리고 거리와 해자가 다시 건축될 것이나 곤란한 때들 가운데서 이루어질 것이다."
여기서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를 합하면 69이레가 되고, 한 이레를 칠 년으로 계산하면 483년이 된다. 그런데 70이레에 관한 일곱 가지 대표적 계산 가운데에는 69이레의 끝을 주후 27년경, 곧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받고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 공생애를 시작한 때와 연결하는 해석이 있다. 안식일예수재림교회도 이 계산을 사용하지만, 그 계산의 모든 요소가 오직 그들에게서 시작된 것은 아니며 복음주의권의 연구도 이와 연결되어 있다.
그럼, A.D.27년은 어느 해인가?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고 하늘에서 아버지의 음성이 들린 때였다(마 3:16-17). 이때 기름부음을 받은 통치자가 공개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약 삼 년 반의 공생애가 지난 뒤 십자가에서 끊어짐으로 죽으신다. 따라서 제25절의 69이레와 제26절에 나오는 바, 69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질 것이라는 내용이 하나의 역사적 흐름을 이루고 있다. 고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일곱 이레 뒤의 한 정치 지도자(느헤미야)로 보는 것보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르는 총 69이레로 읽는 것이 환상의 목적과 더 잘 맞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단 9:25절의 말씀은 문법적으로 가능한 해석이 이것만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결론도 내릴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제24절에서 누가 죄를 속죄하고 영원한 의를 가져오는지, 제26절에서 누가 끊어지는지, 제27절에서 누가 언약을 굳게 세우고 제사를 그치게 하는지를 함께 대조하면 답이 나오기 때문이다. 고로 원문 문법과 사건의 순서와 그리스도 중심성을 모두 적용하면 69이레 뒤에 예수께서 기름부음을 받은 통치자로 나타났다고 3년 후에 십자가에서 죽으신다고 하는 해석이 가장 일관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7. 단 9:26의 기름부음 받은 자와 장차 올 왕의 백성은 누구인가?
제26절에는 서로 다른 두 세력이 나온다. 첫째는 끊어져 없어질 기름부음 받은 자이고, 둘째는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릴 ‘장차 올 왕의 백성’이다. 기름부음 받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이고, 장차 올 왕의 백성은 일차적으로 주후 70년에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한 로마 군대를 가리킨다. 두 존재를 하나로 합치면 메시아의 죽음과 대적 세력의 파괴를 구별할 수 없게 된다.
예수께서는 69이레가 지난 뒤 기름부음 받은 통치자로 나타나셨고, 약 삼 년 반 뒤 십자가에서 끊어짐을 당하셨다. 이후에도 유대인들이 회개하지 않고 성전 제사를 계속하자 하나님께서는 약 사십 년을 기다리셨다. 마침내 주후 70년 로마의 디도 장군이 예루살렘을 포위하여 성과 성전을 철저히 파괴했다. 원문에서 전한 수치에 따르면 약 110만 명이 죽고 약 10만 명이 포로가 되었으며, 포로들은 로마의 대규모 건축에도 동원되었다.
이 사건은 제26절의 일차적 역사 성취다. 그러나 예언은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다”고 말한다. 디도의 파괴로 모든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다. 로마 군대와 그 우두머리는 마지막 때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할 적그리스도 세력의 예표가 된다. 그 세력은 홍수처럼 밀려와 성읍과 성소를 파괴하려 하지만, 마지막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심판을 받는다.
성읍과 성소도 육적인 차원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신약의 성도는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그 안에 거하신다(고전 3:16). 새 예루살렘은 육적인 유대인만의 성이 아니라 어린양을 믿고 이기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들어가는 하늘의 도성이다(계 21:2, 12-14, 27). 그러므로 마지막 대적 세력이 성읍과 성소를 공격한다는 것은 세계 곳곳의 참된 성도들과 교회를 핍박하는 영적 전쟁을 포함한다.
마지막 시대에는 예수를 가장 잘 믿는 나라와 성도들이 집중적인 공격을 받을 수 있다. 필자는 대한민국도 그러한 핍박의 중심에 설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먼저 익은 이기는 자들을 공중으로 불러 올리시고, 그들이 하늘의 군대로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따라 아마겟돈 전쟁에 참여하게 하신다. 대적은 성도들을 없애려 하지만 손대지 아니한 돌과 인자 같은 이이신 그리스도께서 마침내 그 권세를 끝내신다.
육적인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에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예언의 궁극적인 성취를 오늘의 이스라엘 국가와 물리적 성전 안에만 가두어서는 안 된다. 기름부음 받은 자의 죽음으로 세워진 영적인 백성과 성전, 그들을 향한 대적의 공격, 하늘에서 오시는 그리스도의 심판까지 함께 보아야 제26절의 역사적 성취와 종말론적 성취가 연결된다.
8. 단 9:27의 ‘그’는 누구이며 제사를 그치게 한다는 뜻은 무엇인가?
단 9:27의 ‘그’는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앞에 나온 기름부음 받은 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황폐하게 하는 자는 그와 구별되는 대적 세력이다. 세대주의는 제26절의 ‘장차 올 왕’과 제27절의 ‘그’를 곧바로 연결하여 적그리스도로 해석하지만, 문장 안에는 언약을 굳게 세우는 이와 가증한 것들의 날개 위에서 황폐하게 하는 이가 구별되어 나타난다.
개역개정의 ‘금지할 것’이라는 표현은 적그리스도가 강제로 제사를 못 드리게 한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여기에 사용된 히브리어는 ‘샤바트’로, 문맥에서는 금지하다보다 그치게 하다, 중지시키다, 끝내다라는 뜻이 중심이다. 예수께서 한 이레의 절반, 곧 공생애 약 삼 년 반 뒤 십자가에서 완전한 제사를 드림으로 희생 제물과 곡식 제물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하셨다는 뜻이다.
필자의 번역 단 9:27 그가 한 이레 동안 많은 자들과 언약을 굳게 세울 것이다. 그리고 그 이레의 절반에 그가 희생 제물과 곡식 제물을 그치게 할 것이다. 가증한 것들의 날개 위에 황폐하게 만드는 자가 설 것이며, 마침내 완전한 멸망과 단호히 작정된 심판이 그 황폐하게 만드는 자 위에 쏟아져 부어질 것이다
예수께서는 자기 몸을 단번에 드려 새 언약(新約, new covenant)을 세우셨다. 짐승의 피로 반복하던 제사는 그분의 완전한 속죄 제사 안에서 목적을 이루고 끝났다.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번에 드려짐으로 거룩함을 얻었다(히 10:9-14). 따라서 제사의 중지는 적그리스도의 훼방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완성이다. 이 한 가지 번역이 제27절의 주체와 70이레 전체의 중심을 바꾼다.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제사를 완성하신 뒤에도 약 사십 년 동안 성전에서 제사를 계속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회개하고 메시아를 받아들이기를 기다리셨지만 완고함이 계속되자 디도 군대를 통하여 성전을 없애셨다. 로마 군단은 독수리 문양의 깃발을 앞세워 들어왔는데, 이는 가증한 것들의 날개 위에 황폐하게 하는 자가 선다는 표현과 연결된다. 그러나 로마도 최종 승리자가 아니며, 작정된 심판이 마지막 황폐하게 하는 자 위에 쏟아진다.
그렇다면 세대주의가 제시하는 칠 년 평화조약과 삼 년 반 뒤의 배신은 본문의 중심이 아니다. 한 이레의 언약은 그리스도께서 많은 사람을 위하여 굳게 세우시는 언약이고, 그 절반의 제사 중지는 십자가의 완전한 희생을 가리킨다. 적그리스도는 언약의 주체가 아니라 성읍과 성소를 황폐하게 하며 끝까지 하나님을 대적하는 별도의 세력이다. 곡과 마곡과 아마겟돈도 육적인 전쟁의 시간표만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과 악한 영들 사이의 마지막 충돌로 읽어야 한다.
성도는 땅에서 새로 나타날 정치적 그리스도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참그리스도는 이미 이 땅에서 섬기고 죽으신 뒤 하늘에 오르셨으며, 마지막 날 하늘로부터 다시 오신다. 우리는 영적인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성경 원문과 그리스도 중심의 구원 경륜을 따라 혼란한 시대에 진리를 분별해야 한다. 그래야 마지막 영적 전쟁에 참여할 이기는 자로 준비될 수 있다.
9. 나오며
다니엘의 앞선 환상들이 제공하는 해석의 틀, 70년과 70이레의 차이, 세대주의의 이스라엘과 천년왕국 해석, 그리스도 중심 해석의 필요성, 단 9:25의 69이레, 제26절의 기름부음 받은 자와 장차 올 왕의 백성, 그리고 제27절의 ‘그’와 제사 중지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첫째, 다니엘서의 계시는 점진적으로 진전된다. 손대지 아니한 돌은 세상 왕국을 심판하는 그리스도를, 인자 같은 이는 섬김과 죽음 뒤에 영광을 받으신 왕을 보여 준다. 70이레의 기름부음 받은 자는 죄를 속죄하고 새 언약을 세우기 위하여 끊어질 메시아를 보여 준다. 마지막 세마포 옷을 입은 이는 천상에서 영광을 입고 종말의 일을 알리시는 그리스도다.
둘째, 70년은 포로 귀환과 예루살렘의 역사적 회복을 다루지만 70이레는 그보다 큰 구원 계획을 담는다. 육적인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영적인 이스라엘과 새 예루살렘까지 나아간다. 죄와 반역을 끝내고 영원한 의를 가져오며 성도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로 세우는 일이 그 중심이다.
셋째, 세대주의가 단 9:27의 ‘그’를 적그리스도로 읽으면 칠 년 평화조약과 물리적 성전 재건과 삼 년 반 뒤의 배신과 환난 전 휴거라는 시간표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그’를 그리스도로 읽고 ‘샤바트’를 제사를 그치게 한다는 뜻으로 보면, 한 이레의 언약과 그 절반의 제사 중지는 예수님의 새 언약과 십자가의 완전한 속죄를 가리킨다.
넷째, 단 9:25-27은 서로 분리된 수수께끼가 아니다. 69이레 뒤 예수께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나타나시며, 약 삼 년 반 뒤 끊어져 죽으심으로 제사를 완성하신다. 그 후 회개하지 않은 예루살렘은 주후 70년에 디도 군대에게 파괴되고, 그 사건은 마지막 때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할 대적 세력과 그 위에 쏟아질 심판을 미리 보여 준다.
우리는 특정 교단의 해석이나 오래된 번역을 무조건 따라가기보다 성경 원문과 문맥과 계시의 목적을 함께 살펴야 한다. 동시에 자기 지식을 자랑하지 말고 성령의 조명을 구해야 한다. 참그리스도는 땅에서 새로 출현하는 정치적 구원자가 아니라, 이미 십자가에서 속죄를 이루고 하늘에 오르셨다가 다시 오실 예수님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중심으로 진리를 분별하고 영적인 새 예루살렘과 마지막 승리를 준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9월 08일(화)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다니엘서 9장에 기록된 '70이레'의 환상을 그리스도 중심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며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구원 계획을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이 예언이 단순히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을 넘어 메시아의 사역과 대속의 성취를 상징한다고 강조하며, 특히 기름 부음 받은 자가 끊어지는 사건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풀이합니다. 또한 세대주의적 해석의 한계를 지적하며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성전 파괴 등의 종말론적 사건들을 영적인 이스라엘인 교회의 역사와 연결해 복합적으로 분석합니다. 결국 이 설교는 성경의 점진적인 계시를 통해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신자들이 천국 입성을 준비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는 영적 경각심을 일깨우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