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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강해(12)] 정결법(05) 대속죄일 제사법이 들려주는 정결의 놀라운 비밀들(레위기 16:1~34)

레위기 16:1~34정보배목사2026-06-24(수)조회 766읽는 시간 약 26분

설교핵심

이 설교는 레위기 16장을 바탕으로 대속죄일 제사법에 담긴 정결의 영적 비밀을 강해한 것인데, 단순한 죄의 용서를 넘어선 근원적인 깨끗함의 원리를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죄를 지었을 때 드리는 일반 속죄제와 달리, 대속죄일 제사는 사람과 장소, 성물 전체를 정결케 하는 절차로서 우리 내면의 더러운 영을 몰아내는 과정임을 강조합니다. 특히 죄는 예수의 피로 덮음으로써 용서받지만, 우리 몸과 마음을 더럽히는 악한 영과 귀신들은 회개와 자백을 통해 밖으로 내보내야 비로소 온전한 정결에 이를 수 있다고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들이 회개 기도를 통해 하늘의 행위책에 기록된 죄를 지우고 내면의 악한 영들을 아사셀 염소처럼 광야로 떠나보냄으로써, 하나님 보좌 앞에 설 수 있는 거룩하고 정결한 상태를 유지할 것을 촉구합니다.

강의 자료

그림 1 · 슬라이드 24
레위기16장 The Purity Blueprint (2)설교 슬라이드 · 24장

1. 들어가며

레위기 16장은 흔히 “대속죄일 제사법”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본문을 단지 죄를 용서받기 위한 제사법으로만 읽으면, 레위기 16장이 들려주는 깊은 정결의 비밀을 놓치게 된다. 레위기 전체의 흐름에서 보면 1장부터 10장까지는 제사법의 큰 틀을 다루고, 11장부터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백성이 어떻게 깨끗해야 하는가를 다룬다. 음식의 정결, 해산 후 여인의 정결, 나병 환자의 진단과 정결, 유출병의 정결이 차례로 나온 뒤에, 16장에서 드디어 대속죄일의 정결이 등장한다. 그러므로 레위기 16장은 제사법의 반복이 아니라 정결법의 절정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죄를 범하면 제사를 드려야 했다. 그러나 더러워졌을 때에는 씻어야 했다. 죄는 피로 덮어야 하고, 더러움은 씻어야 하며, 몸 안으로 들어온 더러운 영은 내보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함께 이해될 때, 레위기 16장의 대속죄일 제사가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다. 죄를 덮는 일과 죄의 기록을 지우는 일, 그리고 죄를 통해 들어온 더러운 영을 내보내는 일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나 똑같지는 않다.

신약에 와서 이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안에서 완성된다. 예수님의 피는 죄를 덮을 뿐 아니라 깨끗하게 한다. 또한 예수님은 자기 피를 가지고 하늘 성소에 들어가신 참 대제사장이시다. 그러므로 대속죄일 제사는 단지 구약의 옛 의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속죄와 정결, 그리고 성도가 오늘 회개를 통해 실제로 경험해야 할 영적 정결을 미리 보여 준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레위기 16장의 대속죄일 제사가 어떻게 속죄와 정결을 함께 보여 주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회개를 통해 오늘 성도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정결하게 설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왜 레위기 16장은 정결법의 절정인가?

레위기 16장은 레위기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레위기 1장부터 10장까지는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와 제사장의 위임식을 다룬다. 이것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피와 제사를 통해 열린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나 레위기 11장부터는 문제가 달라진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백성은 제사를 드리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백성은 깨끗해야 한다. 그래서 음식의 정결, 출산 후 정결, 나병의 진단과 정결, 유출병의 정결이 차례로 나온다.

이 흐름의 마지막에 레위기 16장이 있다. 그러므로 레위기 16장을 레위기 4장의 속죄제와 같은 차원에서만 읽으면 본문의 배치가 설명되지 않는다. 레위기 16장은 제사를 통하여 정결을 완성하는 장이다. 특히 이 장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만이 아니라 성소와 회막과 제단까지 정결하게 하는 날을 다룬다. 즉 대속죄일은 죄를 사하는 날이면서 동시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공간을 깨끗하게 하는 날이다.

레위기 16장은 아론의 두 아들이 여호와 앞에 다른 불을 드리다가 죽은 사건 이후에 주어진 말씀으로 시작한다. 이것은 사람이 함부로 지성소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에는 정결이 필요하다. 대제사장이라도 자기 마음대로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 정하신 옷, 정하신 제물, 정하신 피의 절차를 따라야 한다(레 16:2).

레 16: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휘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 그리하여 죽지 않도록 하라 이는 내가 구름 가운데에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여기서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는 말씀은 지성소가 얼마나 거룩한 장소인지를 보여 준다. 그런데 바로 그 거룩한 장소도 정결하게 되어야 한다. 이것이 레위기 16장의 놀라운 비밀이다. 죄는 사람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공간과 기도의 자리까지 더럽힌다. 그래서 대속죄일은 사람의 죄만 처리하지 않고 성소의 부정까지 처리한다.

레위기 11장부터 15장까지의 정결법은 개인과 생활의 정결을 다룬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 출산 후 어떻게 정결하게 될 것인가, 피부병과 집의 곰팡이 문제를 어떻게 진단하고 처리할 것인가, 몸에서 유출이 있을 때 어떻게 정결하게 할 것인가를 다룬다. 그런데 레위기 16장은 이 모든 부정함이 하나님 앞에서 종합적으로 처리되는 날이다. 그러므로 대속죄일은 정결법의 마지막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레위기 16장이 정결법의 절정이라는 사실은 30절에서 가장 분명해진다. 그날 하나님은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를 정결하게 하리니”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에는 속죄와 정결이 함께 들어 있다. 속죄가 목적의 전부라면 “속죄하리니”에서 멈추어도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정결하게 하리니”라고 덧붙이신다. 그러므로 대속죄일은 죄를 덮는 날인 동시에 더러움을 제거하는 날이다(레 16:30).

레 16:30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를 정결하게 하리니 너희의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

또한 정결법의 순서를 보면 하나님의 경륜이 보인다. 하나님은 먼저 사람이 먹는 문제를 다루신다. 그다음 출생의 문제를 다루시고, 피부와 집에 나타나는 부정함을 다루시며, 몸에서 흘러나오는 유출의 문제를 다루신다. 마지막에는 그 모든 부정함이 하나님 앞에서 종합적으로 처리되는 대속죄일로 인도하신다. 먹는 것, 태어나는 것, 피부와 집, 몸의 유출, 그리고 성소의 정결은 따로 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삶 전체가 더러움과 연결될 수 있고, 하나님 앞에 서려면 삶 전체가 정결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리하면 레위기 16장은 제사법의 부록이 아니다. 그것은 정결법의 절정이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백성은 제사를 통해 죄를 덮어야 하고, 물과 피를 통해 더러움에서 깨끗하게 되어야 하며,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소까지 정결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레위기 16장이 가진 신학적 위치다.

3. 속죄와 정결은 어떻게 다른가?

속죄와 정결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같은 말은 아니다. 속죄는 죄를 처리하는 말이다. 정결은 더러움을 처리하는 말이다. 사람이 죄를 범하면 죄책이 생기고, 그 죄는 하나님 앞에서 피로 덮여야 한다. 그러나 죄를 통해 사람 안에 더러운 영이 들어오면, 그 사람은 더러워진다. 이때에는 정결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속죄는 죄책의 문제를 다루고, 정결은 더러움과 오염의 문제를 다룬다.

구약에서 속죄와 관련된 중요한 단어는 히브리어 “카파르”다. 이 단어는 덮다, 가리다, 속죄하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제사에서 피는 죄를 덮는 역할을 한다. 하나님은 피를 보시고 그 죄를 넘어가신다. 그러나 덮였다고 해서 더러운 영의 문제가 자동으로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정결법에는 반복적으로 씻음이 나온다. 옷을 빨고, 몸을 씻고, 물로 정결하게 하는 절차가 나온다. 이것은 더러움의 문제는 실제로 씻겨야 함을 보여 준다.

신약은 이 두 차원을 더 선명하게 보여 준다. 요한일서 1장 7절은 예수의 피가 모든 죄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한다고 말한다(요일 1:7).

요일 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예수의 피는 단지 죄를 덮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그 피는 깨끗하게 한다. 그러나 그 깨끗함은 자동으로 아무에게나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자백과 회개를 통해 실제화된다. 요한일서 1장 9절은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한다(요일 1:9).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여기서 “자백”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인정하는 것이다. 헬라어로는 “호몰로게오”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같은 말을 한다는 뜻을 가진다. 하나님께서 죄라고 하시는 것을 나도 죄라고 말하는 것이 자백이다. 하나님께서 우상숭배라고 하시는 것을 나도 우상숭배라고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음란이라고 하시는 것을 나도 음란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자백이다. 이 자백이 있을 때 죄 사함과 정결이 함께 일어난다.

동탄명성교회가 강조해 온 영적 팩트에 따르면, 사람이 죄를 범하면 두 가지 일이 생긴다. 첫째, 그 죄가 하늘의 행위책에 기록된다. 말과 행동뿐 아니라 마음으로 지은 죄까지 기록된다. 둘째, 그 죄를 통로로 뱀들과 귀신들이 사람 안으로 들어온다. 죄는 기록의 문제를 만들고, 동시에 더러운 영의 거처 문제를 만든다. 그러므로 회개는 하늘에서는 행위책의 죄를 지우는 사건이고, 땅에서는 몸 안의 더러운 영을 내보내는 사건이다.

성경에서 더러움은 단순한 위생 문제가 아니다. 물론 정결법은 위생적 유익도 가진다. 그러나 그보다 더 깊은 뜻은 영적 접촉의 문제다. 부정한 것과 접촉하면 부정하게 되고, 부정한 것을 먹으면 몸 안으로 부정함이 들어온다. 복음서에서 귀신은 “더러운 영”으로 불린다. 헬라어로는 “프뉴마 아카타르톤”, 곧 깨끗하지 않은 영이라는 뜻이다. 더러운 영이 사람 안에 들어와 거주하면, 그 사람의 몸은 성령이 온전히 거하시기에 합당한 상태가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정결은 단순히 죄책감이 사라지는 심리적 위로가 아니다. 정결은 실제적인 영적 사건이다. 더러운 영이 떠나가고, 몸과 마음과 생각이 깨끗해지며, 성령이 더 깊이 역사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레위기의 정결법을 오늘 성도가 다시 배워야 하는 이유다. 예수 믿는 사람도 회개하지 않은 죄가 있을 수 있고, 그 죄를 통해 들어온 더러운 영이 몸 안에 남아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정결은 구원 이후의 신앙생활에서 반드시 다루어야 할 문제다.

이런 점에서 속죄와 정결은 함께 가야 한다. 예수 믿는다는 말로 죄가 덮였다고만 생각하고, 실제로 자백하지 않으면 행위책의 죄가 지워지지 않는다. 또한 죄를 통해 들어온 더러운 영이 몸 안에 그대로 남아 있으면 성령의 거처로서 몸이 온전히 깨끗하게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속죄의 은혜를 붙들되, 반드시 정결의 실제로 나아가야 한다.

4. 일반 속죄제와 대속죄일 제사는 무엇이 다른가?

레위기 4장에는 온 회중을 위한 속죄제가 나온다. 이스라엘 온 회중이 부지중에 죄를 범하고, 나중에 그 죄를 깨닫게 되었을 때 드리는 제사다. 이때 회중은 수송아지를 속죄제물로 드리고, 회중의 장로들이 그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한다(레 4:13~15).

레 4:13-15 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 그 범한 죄를 깨달으면 회중은 수송아지를 속죄제로 드릴지니 그것을 회막 앞으로 끌어다가 회중의 장로들이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그러나 레위기 16장의 대속죄일 제사는 다르다. 대속죄일 제사는 죄를 깨달았을 때마다 드리는 제사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해마다 일곱째 달 열째 날에 반드시 지키라고 명하신 연례 제사다. 그날은 안식일 중의 안식일처럼 지켜야 했고, 백성은 스스로 괴롭게 해야 했다. 이것은 대속죄일이 단순한 임시 제사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온 백성의 죄와 부정을 정리하는 정해진 날이었음을 보여 준다(레 16:29~31).

레 16:29-31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일곱째 달 곧 그 달 십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든지 그리하라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를 정결하게 하리니 너희의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 이는 너희에게 안식일 중의 안식일인즉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 영원히 지킬 규례라

두 제사는 집례자도 다르다. 레위기 4장의 온 회중 속죄제는 제사장이 집례한다. 그러나 레위기 16장의 대속죄일 제사는 대제사장이 집례한다. 대제사장도 죄인이므로 먼저 자기와 자기 집을 위하여 수송아지로 속죄제를 드려야 한다. 그래야 백성을 위한 속죄를 감당할 수 있다. 이것은 구약의 대제사장이 완전하지 않음을 보여 주고, 장차 죄 없으신 참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야 함을 예표한다.

피가 들어가는 장소도 다르다. 레위기 4장의 온 회중 속죄제에서는 피를 회막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 휘장 앞에 일곱 번 뿌리고, 향단 뿔에 바른다. 그러나 레위기 16장의 대속죄일에는 대제사장이 지성소 안으로 들어간다. 그는 속죄소 동쪽과 속죄소 앞에 피를 뿌린다. 이것은 대속죄일 제사가 지성소까지 들어가는 유일하고도 특별한 제사임을 보여 준다.

또 하나의 차이는 백성의 참여 방식이다. 레위기 4장의 회중 속죄제에서는 회중의 장로들이 대표로 안수한다. 그러나 대속죄일에는 온 백성이 그날을 안식일처럼 지키며 스스로 괴롭게 해야 한다. 이것은 대속죄일이 지도자 몇 사람의 예식이 아니라 온 백성이 함께 자기 죄와 부정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는 날이었음을 뜻한다. 오늘날로 말하면, 정결은 목회자만의 문제가 아니고, 예배 인도자만의 문제가 아니며, 모든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함께 감당해야 할 문제다.

정결의 범위도 다르다. 일반 속죄제는 죄를 범한 사람이나 회중의 죄를 처리하는 데 초점이 있다. 그러나 대속죄일 제사는 사람만이 아니라 지성소와 회막과 제단을 속죄하고 정결하게 한다. 이것이 가장 큰 차이다. 대속죄일은 사람을 위한 제사이면서 동시에 성소를 위한 정결 사건이다. 그러므로 레위기 16장은 레위기 4장의 반복이 아니다. 그것은 훨씬 더 깊고 넓은 정결의 예식이다.

5. 아사셀 염소는 무엇을 보여 주는가?

대속죄일 제사에서 가장 독특한 장면은 두 마리의 염소다. 하나는 여호와를 위한 염소이고, 다른 하나는 아사셀을 위한 염소다. 여호와를 위한 염소는 죽임을 당하고, 그 피는 백성을 위한 속죄와 성소 정결에 사용된다. 그러나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죽임을 당하지 않는다. 그 염소는 살아 있는 채로 광야로 보내진다.

레위기 16장은 대제사장이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두 손으로 안수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죄를 아뢴 뒤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광야로 보내라고 말한다(레 16:21~22).

레 16:21-22 아론은 그의 두 손으로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아뢰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접근하기 어려운 땅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

이 장면은 죄의 처리가 두 방향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하나는 피를 통한 속죄다. 다른 하나는 죄를 멀리 보내는 것이다. 속죄가 죄를 덮는 것이라면, 아사셀 염소는 죄를 진영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여기에서 정결의 중요한 원리가 드러난다. 죄는 단지 덮여야 할 뿐 아니라, 내게서 떠나야 한다.

아사셀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여러 설명이 있다. 광야의 장소로 보는 견해도 있고, 광야의 악한 존재로 보는 견해도 있다. 설교의 영적 해석에 따르면 아사셀은 광야와 관련된 사탄적 세력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죄가 백성 가운데 남아 있지 않고 광야로 보내진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오늘 성도의 회개와 축사 원리와 연결된다. 죄를 자백하여 용서받은 후, 그 죄를 통해 들어온 악한 영들은 몸 안에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예수 이름으로 쫓겨나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믿는 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는 표적이 따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막 16:17).

막 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그러므로 아사셀 염소는 단순한 구약 의식이 아니다. 그것은 죄와 더러움이 하나님의 백성 안에 계속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죄는 자백되어야 하고, 피로 씻겨야 하며, 더러운 영은 내보내져야 한다. 이것이 정결의 실제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호와를 위한 염소처럼 피 흘려 죽으셨고, 동시에 아사셀 염소처럼 백성의 죄를 지고 진영 밖으로 나가셨다. 그는 사람들에게 버림받았고, 제자들에게도 버림받았으며, 십자가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다. 그러므로 두 염소는 나뉘어 있지만, 그 예표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 그분은 피 흘려 속죄하신 분이시며, 우리 죄와 부정을 멀리 옮기신 분이시다.

6. 왜 성소와 향단도 정결케 해야 하는가?

대속죄일 제사의 놀라운 점은 사람만 속죄하는 것이 아니라 성소도 속죄한다는 데 있다. 레위기 16장 16절은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들이 범한 모든 죄로 말미암아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회막을 위하여도 그와 같이 하라고 말한다(레 16:16).

레 16:16 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들이 범한 모든 죄로 말미암아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할 것이요

이 말씀은 죄와 부정이 개인에게만 머물지 않음을 보여 준다. 백성의 죄와 부정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까지 더럽힌다. 제사장이 매일 성소에 들어가 등잔을 관리하고, 향을 사르고, 진설병을 두는 일을 했지만, 제사장 자신도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가 섬기는 장소도 정결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향단은 매우 중요하다. 출애굽기 30장 10절은 아론이 일 년에 한 번씩 향단 뿔을 위하여 속죄해야 한다고 말한다(출 30:10).

출 30:10 아론이 일 년에 한 번씩 이 향단 뿔을 위하여 속죄하되 속죄제의 피로 일 년에 한 번씩 대대로 속죄할지니라 이 제단은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하니라

향단은 성도의 기도와 연결된다. 요한계시록 8장에서는 금 향로와 많은 향이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하나님 앞으로 올라간다(계 8:3~4).

계 8:3-4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그러므로 향단이 정결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성도의 기도도 정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기도라고 해서 다 거룩한 것은 아니다. 기도도 자기 욕망과 세상 성공과 육체의 안일만 구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면 더럽혀질 수 있다. 대표기도도 마찬가지다. 성도의 마음을 하나님께 올려 드려야 하는 자리가 인간의 욕심과 체면과 세상적인 말로 채워지면 그 기도는 정결하지 못한 향이 될 수 있다.

대속죄일은 사람과 장소와 기도의 자리까지 정결하게 한다. 이것은 오늘 교회에도 중요하다. 성도 개인이 정결해야 하고, 예배의 자리도 정결해야 하며, 기도의 내용도 정결해야 한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모든 통로가 깨끗해야 한다. 정결은 개인 윤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예배 전체의 문제다.

7. 하늘 성소는 왜 예수의 피로 정결케 되었는가?

레위기 16장을 읽을 때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성소는 제사장들이 매일 드나들었으므로 더럽혀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지성소는 대제사장만 일 년에 한 번 들어간다. 그렇다면 지성소는 왜 정결케 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땅의 성막을 넘어 하늘 성소의 비밀로 우리를 이끈다.

히브리서는 이 땅의 성막이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고 말한다(히 8:5).

히 8:5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땅의 성막이 모형이라면, 하늘에는 원형이 있다. 그런데 에스겔 28장은 기름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이 하나님의 성산에 있었고, 그가 불의로 성소를 더럽혔다고 말한다(겔 28:14, 18).

겔 28:14 너는 기름 부음을 받고 지키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불타는 돌들 사이에 왕래하였도다
겔 28:18 네 죄악이 많고 네 무역이 불의하므로 네 모든 성소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네 가운데에서 불을 내어 너를 사르게 하고 너를 보고 있는 모든 자 앞에서 너를 땅 위에 재가 되게 하였도다

이 본문은 두로 왕을 빗대어 사탄 마귀의 타락을 보여 주는 본문으로 읽을 수 있다. 그는 하나님 가까이에서 지음을 받은 존재였으나 교만과 불의로 성소를 더럽혔다. 그러므로 하늘 성소에도 정결이 필요했다. 땅의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피를 가지고 들어간 것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를 가지고 하늘 성소에 들어가실 일을 예표한다.

히브리서 9장은 그리스도께서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않고 바로 하늘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나타나셨다고 증언한다(히 9:24).

히 9: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또한 하늘에 있는 것들은 더 나은 제물로 정결하게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히 9:23).

히 9:23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가지고 하늘 성소에 들어가셨다. 그 피로 하늘 성소가 정결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탄 마귀는 더 이상 하나님 보좌 앞에서 성도들을 참소할 권리를 잃게 되었다. 요한계시록 12장은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다고 말한다(계 12:10).

계 12: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그러므로 예수님의 피는 땅의 죄인만을 위한 피가 아니다. 그 피는 하늘 성소까지 정결케 한 피다. 이것이 대속죄일 제사의 신약적 성취다. 예수님은 참 대제사장이시고, 자기 피를 가진 제물이시며, 하늘 성소를 정결케 하신 분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피만이 온전한 정결을 이룬다.

8. 오늘 성도는 어떻게 정결을 완성해야 하는가?

오늘 성도는 대속죄일 제사를 그대로 반복할 필요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속죄일이 보여 준 영적 원리는 오늘도 그대로 유효하다. 죄는 속죄되어야 하고, 더러움은 정결케 되어야 하며, 몸 안에 들어온 더러운 영은 내보내져야 한다.

첫째,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붙들어야 한다. 죄를 덮고 씻는 것은 사람의 결심이나 선행이 아니다. 오직 예수의 피다. 구약의 동물 피는 그림자였고, 예수의 피는 실체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예수의 피가 아니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사실을 붙들어야 한다.

둘째, 성도는 죄를 자백해야 한다. 자백하지 않은 죄는 행위책에 남아 있다. 진실한 자백은 행위책의 기록을 지우는 통로가 된다. 다윗이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라고 기도했던 것처럼, 성도도 자기 죄가 하늘의 기록에서 지워지도록 회개해야 한다(시 51:1).

시 51:1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셋째, 성도는 몸 안에 들어온 더러운 영들을 내보내야 한다. 죄를 통해 들어온 뱀들과 귀신들은 더러운 영이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귀신을 “더러운 영”이라고 부르셨다(막 1:23).

막 1:23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더러운 영은 깨끗한 성전 안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성도는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다. 그러므로 회개와 예수 이름의 권세로 악한 영들을 대적하고 내보내야 한다. 이것이 정결의 실제다.

넷째, 성도는 자기 기도와 예배의 자리도 점검해야 한다. 향단이 정결해야 했던 것처럼 성도의 기도도 정결해야 한다. 기도가 자기 욕심과 세상 욕망으로만 채워져 있다면, 그 기도 역시 정결의 대상이 된다. 성도는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 회개와 정결, 천국과 상급, 신부의 준비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정결의 목표는 단지 “귀신이 나갔다”는 체험 자체에 있지 않다. 그 목표는 하나님과 더 깊이 동행하는 데 있다. 몸이 정결해지면 말씀이 더 잘 들리고, 기도가 더 맑아지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지혜가 열린다. 정결은 성결로 가는 문이고, 성결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 준비되는 길이다.

다섯째, 성도는 정결에서 성결로 나아가야 한다. 레위기의 흐름은 정결에서 끝나지 않는다. 깨끗해진 다음에는 거룩해져야 한다. 죄를 자백하고 악한 영을 내보낸 다음에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한다. 성결은 정결 위에 세워진다. 더러운 것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거룩함을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회개는 구원의 부속품이 아니라 천국을 준비하는 핵심 과정이다.

이 땅에서 살아 있는 동안에는 아직 기회가 있다. 죄를 자백할 수 있고, 행위책의 죄를 지울 수 있고, 몸 안의 더러운 영을 내보낼 수 있다. 그러나 죽은 후에는 행위책이 고정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오늘 정결해야 한다. 이것은 두려움만을 주기 위한 말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아직 우리에게 회개할 시간을 주셨다는 은혜의 선포다.

9. 나오며

이번 시간에는 레위기 16장의 대속죄일 제사가 단순한 속죄제사가 아니라 정결법의 절정이라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레위기 16장은 죄를 피로 덮는 일만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과 성소와 향단까지 정결케 하는 날을 말한다. 또한 여호와를 위한 염소와 아사셀 염소를 통해, 죄가 피로 속죄될 뿐 아니라 백성에게서 멀리 보내져야 한다는 사실도 보여 준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없이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또한 예수의 피가 죄를 덮을 뿐 아니라 깨끗하게 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그러나 그 깨끗함은 자백과 회개를 통해 실제가 되어야 한다. 자백하지 않은 죄는 행위책에 남아 있고, 죄를 통해 들어온 더러운 영은 몸 안에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성도는 정결을 단순한 의식으로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정결은 하늘의 기록과 몸의 실제와 예배의 자리와 기도의 내용까지 포함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날마다 자기 죄를 자백해야 하고, 예수의 피를 의지해야 하며, 더러운 영들을 내보내어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자신을 깨끗하게 준비해야 한다. 또한 기도도 정결해야 하고, 예배의 자리도 정결해야 하며, 하나님 앞에 서는 마음도 정결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대제사장이시다. 그분은 자기 피를 가지고 하늘 성소에 들어가셨고, 사탄이 더럽힌 하늘 성소까지 정결하게 하셨다. 그분의 피가 하늘과 땅의 정결을 이루었으므로, 성도는 그 피를 붙들고 회개와 정결의 길을 계속 걸어가야 한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회개를 통해 행위책의 죄가 지워지고 몸 안의 더러운 영들이 떠나가며,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서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6월 24일(수) ·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