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적갈색의 고벨화 -
1)사막장미(?)


2)헤나 - 흰색 헤나, 적갈색 헤나(Hanna)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 (kopher)와 나도풀과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아 4:13)
주님은 누이이자 신부로 부르신 우리에게서 고벨화의 향을 맡으셨습니다.
적갈색을 가진 고벨화는 헤나(Henna)라고도 불리는 꽃입니다.
머리를 염색할 때 많이 쓰이지요.
그런데 고벨화의 히브리어는 Kopher(코프헤르)입니다.
이 단어는 생명의 값 또는 대속물이라는 뜻입니다.
왕이 침상에 앉았을 때에 나의 나도 기름이 향기를 뿜어냈구나 (아 1:12)
세상의 왕이 그의 침상으로 술레미 여인을 들였을 때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 (아 1:14)
그녀는 가슴에서 나오는 고벨화의 향을 맡고 정신을 차렸습니다.
다름 아닌 우리를 위해 대속물이 되어 적갈색의 피를 흘리고 죽으신 신랑 되신 주님의 피 냄새를 맡은 겁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치르신 희생을 기억하면서 세상과 음행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의 왕이 초대한 침상에서 옷 벗기를 좋아하는 것은 다름 아닌 주님이 흘리신 그 피 냄새를 잊어서 그렇습니다. 멀리서 찾을 것 없이 저의 삶이 그렇습니다. 고벨화의 향을 잊은 순간에는 어김없이 세상 왕의 침상에서 옷을 벗고 뒹굴고 있는 저를 보게 됩니다.
주님의 유일한 신부 되기를 거부하고 세상 왕의 첩이 되는 겁니다.
왕 중에 왕이신 주님의 신부가 되기를 거절하고 세상 졸장부의 후처가 되기를 자청하는 겁니다. 하지만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조금이라도 살았던 순간은 어김없이 고벨화의 향을 맡은 때였습니다. 코 끝이 아니라 영의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주님의 피 냄새가 저를 세상의 침상에서 서둘러 옷을 입고 다시 참된 신랑에게 나오게 했습니다.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 (kopher)와 나도풀과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아 4:13)
주님은 우리의 삶에서 고벨화의 향을 맡으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죄송합니다.
십자가에 흘리신 고벨화와 같은 주님의 적갈색의 피를 가지고 나를 꾸미는 염색약으로 사용하기에 죄송합니다. 예배당에 달아놓은 주님의 십자가를 고벨화를 담은 꽃병처럼 관상용으로 보고 있어서 죄송합니다. 우리를 위해 대속물로 주신 주님의 생명 값인 고벨화(Kopher)를 집값보다 가치 없게 보고 있어서 죄송합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저에게서 고벨화의 향이 난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고백합니다.
아닙니다. 주님. 주님의 코가 잘못되신 거예요. 저의 삶에서는 시궁창에 썩은 음식물 냄새밖에 나지 않아요. 주님의 생명 값의 냄새가 난다니요. 주님의 피 냄새가 저의 삶에서 난다니요. 아닙니다. 주님.
하지만 주님은 기필코 저의 삶에서 고벨화의 향을 맡고 있다고 하십니다.
아니 맡겠다고 하십니다. 주님이 시궁창 같은 제 안에서 사시면서 반드시 그렇게 살도록 만들어 내겠다고 하십니다. 저의 삶의 곳곳에서 주님의 피 냄새가 진동하도록 주님이 제안에서 피를 흘리시겠다고 하십니다. 주님이 흘리시는 그 피의 양을 제가 도저히 감당하지 못해서 입으로 주의 피를 토하고 손발로 그분의 피를 쏟고 다니도록 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저의 못난 삶에서도 고벨화의 향을 반드시 맡고야 말겠다고 다짐하십니다.
그래서 저도 다짐합니다.
주님. 저의 영과 육을 주님께 온전히 의탁합니다. 주님이 제 안에 들어오셔서 마음껏 살아주십시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 냄새만 나게 해주십시오.
주님의 생명이신 고벨화의 꽃잎 하나라도 되게 해주십시오. 그렇게 조각의 조각 예수라도 되게 해주십시오.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 (kopher)와 나도풀과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아 4:13)
우리를 걸음마다 고벨화의 적갈색 피가 묻어나는 주님의 신부가 되도록 빚어가실 주님을 기대합니다. 아멘.
[출처] 2019년 12월 10일 화요일-아가서 4 (4장 13절-고벨화)|작성자 엘토토
'헤나'로 알려진 천연 염색 재료
[ 성지의식물 ] 이강근 목사 21. 고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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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벨화는 가지와 잎 그리고 꽃과 송이열매 모두가 염색의 재료가 된다. 여리고에서 고벨화 잎 몇 개를 집에 가져와 작은 그릇에 잎을 짓이겨 물과 함께 넣고 몇 시간이 지나자 진한 적갈색 액체가 고여 있었다. 고대로부터 고벨화는 천연의 염색 재료로 그 역사는 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헤나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고벨화는 고대 이집트에서 화장품과 피부치료용으로 사용하였다. 3000년전 솔로몬을 찾아온 시바의 여왕은 고벨화(헤나)로 화장을 했었고 역사상 가장 아름다웠다는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는 또한 헤나로 그의 아름다움을 유지했다.
솔로몬은 헤나(고벨화)로 턱수염을 염색했다는 기록을 통해 여성 뿐 아니라 남성들 역시 헤나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에도 중동의 아랍 남성들은 자신의 턱수염을 헤나로 물들이기도 한다. 염료로서 뿐 아니라 피부건강에도 그 효능이 있었으니 아름다움과 피부 건강에 모두 사용되었다. 특히 고대로부터 신을 부르거나 액운을 몰아내고 복을 비는 주술적인 용도로 몸에 헤나로 문양을 그린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고벨화 꽃은 유독 아름답다. 유향이나 몰약 등의 향료는 향이 좋을 뿐 외관은 볼품 없는 것에 비해 고벨화의 꽃과 송이는 아름다움을 더했다. 고벨화는 아가서에서만 두 번 언급된다. 1장14절에서는 내 사랑하는 자는 엔게디의 고벨화 송이 같다는 표현이 고벨화의 모양을 노래한 것이라면, 4장 13절에서는 여러 향료품 가운데 고벨화를 언급해 좋은 향료로 언급된 것이다. 고벨화 꽃과 잎을 목욕통의 물에 담가 놓으면 향과 함께 피부를 매끈하게 하는 효능을 누렸고 집안에 장식해 시각과 후각을 동시에 즐겁게 한 식물이었다.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고대 유대교 랍비들의 고벨화에 관한 해석이다. 유대인 문학에는 '고벨화송이'라는 제목의 책도 있다. 십계명의 순서에 따라 쓰여진 신앙백과사전인 주석서이다. 식물로서의 고벨화가 아닌 신앙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우선 고벨화는 중세 이전의 탈무드 시대에는 코페르(고벨화)를 키페르(속죄)의 언어의 유희로 해석했다. 고벨화의 히브리어 이름 '코페르'를 '키페르'로 부르면 덮다 속죄하다라는 의미가 된다. 이는 고벨화란 식물을 용서와 죄사함의 의미로 본 것이다. 실제 성막의 법궤를 덮는 덮개를 '카포렛'이라고 부른다. 오늘날 대속죄일을 욤키프르라고 하는 것도 다 같은 어원이다.
고벨화의 꽃이 자라면 다닥다닥 열린 송이가 된다. 고벨화송이는 알은 아주 작지만 마치 포도송이처럼 생겼다. 그래서 송이(에쉬콜)라는 말에는 알알이 풍부하다는 표현이 담겨 있다. 유대인 지인에게 고벨화송이 같은 사람이란 무슨 뜻인가를 물어봤더니 즉답이 온다. "그 안에 모든 것이 있는 사람이죠", 즉 학식이 풍부한 사람이란 뜻이다.
히브리어로 송이를 에쉬콜이라고 하는데 오늘날에도 그냥 에쉬콜하면 포도송이를 지칭한다. '에쉬콜 하코페르', '고벨화 송이'를 '이쉬(사람) 에쉬콜롯(송이들)'라고 하면 관용어로 "그 안에 모든 것이 있는 박식한 사람"이란 뜻이다. 예를 들어 "당신은 이쉬 에쉬콜롯이야"라고하면 유대교에 정통한 박학다식한 사람이란 뜻이다. 그림이나 조각이나 학문에 모든 것을 갖춘 레오나드다빈치를 '이쉬 에쉬콜롯'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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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보기 : https://youtu.be/8MJrK2TWNSo
이강근 목사 / 이스라엘 유대학연구소 소장
https://www.pckworld.com/article.php?aid=8969223725
15. 고벨화 (Camphire)
고벨화(camphire)의 잎은 독특한 적갈색의 물감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동방의 여성들은 손톱과 손바닥을 물들이기 위해 이를 사용했다.
사해 해변에 위치한 엔게디 지방에서만 발견되는 식물이다. 식물학자들에게는 `Lawsonia alba` 또는 쥐똥나무의 일종인 ‘inermis` 라는 용어로 알려져 있다. 6-8피트 높이로 자란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밤에) 내 품 가운데 몰약 향낭이요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아 1:13-14).
이 구절들에서 우리는 그녀가 품에 품은 사랑과 믿음(품―딤전 1:14, 살전 5:8) 가운데 그분의 죽음 안에서 개인적으로 (밤에) 그분을 누리는 것을 본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모든 자들은 믿음과 사랑으로 충만하고, 그분을 믿음과 사랑으로 품는다.
또한 그녀는 구속의 샘(엔게디―‘어린 양의 샘’)이신 그리스도의 교회들(포도원들) 가운데서, 그리고 그분의 부활(고벨화 송이) 안에서 그분을 공개적으로 누린다.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는 고벨화 송이로 자라신다. 교회 안에는 또한 구속의 샘이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샘으로 끊임없이 적셔진다.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영적 생활의 주된 부분이 교회 생활과 관련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왕이 상에 앉았을 때에 나의 나도 기름이 향기를 토하였구나”(아 1:12)

연회(宴會)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연인이 교회 안에서 서로를 얻고 누린 것의 초기 결과의 표현이다(아 1:12).
그리스도는 주인이시고 그분의 연인은 주된 손님으로서 그들이 서로를 얻고 누린 것을 이 구절은 보여준다.
왕이신 그리스도는 그분의 연인과 더불어 상에서 연회를 열고 계신다.
그분의 연인의 그분을 향한 사랑은 나도 기름처럼 향기를 토하였다.
그러한 상호 누림과 만족이 교회 생활 안에 있다.
"그리스도는 부활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고벨화 송이이시다"(아 1:14)
그 연인은 그녀를 위한 그리스도의 달콤한 죽음을 예표하는 몰약 향낭이신 그리스도(1:13上)를 얻었다.
그리고 그분의 구속의 샘 위에 건축된 교회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얻었다. 그리스도는 부활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고벨화 송이이시다(아 1:14). 오늘날 그리스도는 죽음 안에, 부활 안에, 영 안에 계신다.
그리스도를 얻는 것은 그분의 죽음과 그분의 부활과 그분의 영을 얻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얻는 것은 그분의 죽음과 그분의 부활과 그분의 영을 얻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을 얻는다면, 우리는 그분의 부활을 얻을 것이며, 우리가 그분의 부활을 얻는다면,
우리는 우리 영 안에 계신 그분의 영을 얻을 것이다.
"우리는 그분의 영 안에 있는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얻는다."
어떤 형제는 그의 기질 때문에 그의 아내 때문에 마음이 상하게 될 것이다.
주님은 그에게 와서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네가 나와 함께 죽는다면 나를 얻을 것이다.` 만일 그가 이 말을 받아들인다면, 즉시 그는 몰약 향낭이신 그분의 죽음 안에서 그분을 누릴 것이다.
다음 날 아침에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누리며 매우 신선하게 될 것이다. 그런 후, 그가 집회에 올 때 그의 말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분의 영 안에 있는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얻는다.
그 연인은 밤에 그녀의 품 가운데 있는 몰약 향낭이신 그리스도를 누린다.
이것이 그녀가 품는 죽음 안에 계신 그리스도이다.
그런 다음 그녀는 고벨화 송이이신 그리스도를 누리는데, 그것은 그녀가 표현하는 부활 안에 계신 그리스도이다.
이것은 구속의 샘 위에 건축된 교회 안에 그 영과 부활이 있음을 가리킨다.
14절에 있는 엔게디는 어린양의 샘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은 이 샘은 그 영이시다.
우리는 그분의 영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체험하여 그분을 얻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