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18(금) 금요기도회 제1부
제목: 회개와 구원, 속죄와 정결의 상관관계에 대한 올바른 성경적 견해는?(요일1:7~9)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PdMGrSEvpjY
[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질문 7가지]
1. 반복적인 회개는 행위 구원을 주장하는 것인가?
2. 사람이 죄를 지으면 하늘과 육체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3. 최초의 구원은 속죄·죄 용서·칭의·중생을 거쳐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4. 속죄와 정결은 어떻게 다르며 예수님의 피는 각각 어떻게 역사하는가?
5. 회심의 회개와 자백하는 회개는 구원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6. 왜 많은 죄를 500번·1천 번 반복하여 회개해야 하는가?
7. 조상죄를 회개하는 이유와 그 결과는 무엇인가?
[설교핵심]
이 설교는 회개와 구원, 그리고 영적 정결 사이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다루며, 왜 성도가 끊임없이 자백하는 회개를 지속해야 하는지 그 필연성을 역설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속죄가 하늘의 행위책에 기록된 죄를 덮어주는 법정적 선언이라면, 입술의 고백을 통한 회개는 내면의 악한 영들을 몰아내어 삶의 저주를 끊어내는 정결 과정임을 강조합니다. 특히 조상으로부터 대물림된 죄의 영향력과 내 속의 귀신들을 제거해야만 질병과 가난 같은 실제적인 삶의 문제가 해결되며, 이것이 곧 천국의 상급을 예비하는 성숙한 신앙의 길임을 일깨우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금요기도회 제1부
회개와 구원, 속죄와 정결의 상관관계에 대한
올바른 성경적 견해는?
(요일 1:7-9)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회개기도를 시작한 이들이 자주 묻는 질문들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회개를 할 때 '회개기도문'(회개와천국복음연구소 발행)을 가지고 500번, 1천 번, 2천 번씩 반복해서 기도한다는 것은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는 사도가 아닌가? 이미 하나님께 용서받은 죄를 계속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의 속죄를 믿지 못하는 태도가 아닌가? 회개는 가던 방향을 바꾸어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인데, 지은 죄들을 꼭 입술로 죄를 자백해야만 하는가? 더 나아가 내가 알지도 못하는 조상들의 죄까지 왜 내가 회개해야 하는가? 등등이다.
이 질문에 올바로 답하려면 구원(救援, salvation), 속죄(贖罪, atonement), 죄 용서(罪容恕, forgiveness), 칭의(稱義, justification), 중생(重生, regeneration), 정결(淨潔, cleansing)의 관계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용어들을 하나로 뭉뚱그리면, 구원받기 위해 하는 회개와 구원받은 뒤 자신을 깨끗하게(정결케) 하는 회개를 혼동하게 된다. 그 결과 정결을 위한 회개를 보고 행위 구원이라고 판단하거나, 믿음으로 속죄받았으니 더는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또한 죄가 가져오는 두 가지 결과를 함께 보아야 한다. 죄를 지으면 그 행위가 하늘의 행위책에 기록될 뿐 아니라, 그 죄를 발판으로 악한 영이 사람의 몸 안에 침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법정에서 처리되는 죄의 기록과 사람의 육체 안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의 문제는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동일하지 않다. 예수님의 피로 내 죄가 덮여짐으로 내가 결국 구원받았다고 해서, 이미 죄를 통하여 들어온 악한 영이 자동으로 떠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믿음으로 구원받는 은혜를 분명하게 선포한다(행 16:31). 동시에 구원받은 성도가 자기 죄를 자백하며 모든 불의에서 깨끗해져야 한다고 가르친다(요일 1:9). 이 둘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최초의 구원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을 믿음으로 받는 선물이며(엡 2:8-9), 자백하는 회개는 그 구원을 끝까지 지키고 성품과 삶을 정결하게 하며 하늘의 상급을 준비하게 한다(요일 1:9, 딤후 2:20-21, 요일 3:2-3, 고후 7:1).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엡 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딤후 2:20-21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요일 3:2-3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고후 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그러므로 이 말씀을 이해할 때에는 ‘사하심(용서하심)’과 ‘깨끗하게 하심(정결케하심)’이라는 두 결과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죄를 용서받는 것만 말하고 정결을 빼도 안 되며, 정결을 강조한다고 은혜로 받는 구원을 행위로 바꾸어서도 안 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회개와 구원, 속죄와 정결을 성경의 순서에 따라 살펴보고, 반복 회개와 조상죄 회개가 이 땅의 삶과 천국의 상급을 어떻게 준비하게 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2. 반복적인 회개는 행위 구원을 주장하는 것인가?
회개기도문으로 가지고 반복적으로 회개하고 있으면 그것이 행위 구원론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성경은 회개를 할 때에는 반복적으로 회개하라고 명령한다. 먼저 예수께서는 '[계속해서] 회개하고 있어라. 왜냐하면 천국이 가까이 왔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다(마 4:17). 사도 요한도 요한일서 1:9에서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계속해서] 자백하고(시인하고) 있으면, 그분은 신실하시고 의로우시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에게 죄들을 용서해 주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로부터 깨끗하게(정결하게) 하신다." 라고 말했다. 앞에서 예수님의 명령은 '현재 명령형'으로 과거 명령형에 비해,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그렇게 하라는 명령이며, 뒤의 사도 요한의 권면은 '현재 가정법'으로서 과거 가정법에 비해,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그렇게 하면 그렇게 된다는 가정이다. 그러나 우리 말 한글 성경에서는 그렇게 번역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성도들은 그러한 사실을 잘 모른다. 성경은 계속해서 회개하고 있어서 천국에도 들어가고, 계속해서 회개하고 있어야 죄 용서도 받고 정결함도 입는다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회개는 계속적으로 하고 있어야 한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그러므로 '반복적인 회개'는 행위 구원(行爲救援, salvation by works)을 주장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가 회개 기도에 그 많은 시간을 들이고 친구를 만날 시간이나 취미 생활까지 줄이면서 하루에도 여러 차례 회개한다고 해서, 그 정성과 횟수가 예수님의 피를 대신하는 공로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헌금이나 봉사나 고행으로 죄 값을 갚아 구원받는 것도 아니다. 죄인을 구원하는 근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과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한다(엡 2:8-9).
구원의 출발점은 내가 무엇을 많이 하는 데 달려 있지 않다. 나는 죄인으로서, 나 자신을 구원할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구원의 길을 여신 것을 믿을 때에 발생한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그분이 이루신 일을 믿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도 하나님이 마련하셨고, 예수께서 생명 주는 영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가 구원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 받는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은혜의 선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왜 구원받은 뒤에 힘써 회개해야 하는가? 그렇다. 왜냐하면 회개는 내가 구원의 값을 지불하는 행위가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 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 죄의 흔적과 악한 영의 영향력을 처리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구원해 주셨다고 해서 내가 예수 믿기 전에 지은 죄의 습관이 당장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제까지 담배를 피우던 사람이 오늘 예수님을 믿었다고 해서 그 욕구가 자동으로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동시에 그동안 내가 혈기와 음란과 거짓말과 교만의 죄들을 지었을 때 타고 들어온 악한 영들도 결코 자동으로 나가지 않는다.
필자는 예수님을 믿은 후 혈기가 올라오려고 할 때마다 오랫동안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붙들고 몸부림쳤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고백했다. 죽은 자가 어찌 성질을 낼 수 있느냐면서 나에게 혈기부리는 나는 이미 죽었다고 고백했다. 때로는 올라오는 성질을 내지 않으려고 침을 삼키고 물을 마시며 감정을 눌렀고, 실제로 가정에서도 싸움을 피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나중에 영적 세계가 열리고 보니, 억지로 감정을 절제하고 있다고 해서 내 속의 혈기와 분노의 영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일시적으로 감정을 억제하는 것과 그 영이 예수님의 피로 떠나가는 것은 다른 문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또 혈기는 올라오고 또 올라왔다.
고로 반복적인 회개는 내게 남아 있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다. 특히 내 속에 있는 영들을 내보내어 나를 정결하게 하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죄를 자백할 때 예수님의 피가 하늘에 행위책에 기록되어 있는 나의 죄의 기록을 지워주며, 같은 죄를 통하여 들어온 악한 영의 권리를 무효로 만들어 내 몸에서 떠나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복해서 회개하는 것은 회개 횟수를 공로로 삼아 하나님께 구원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받은 은혜를 실제 삶에 적용하여 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회개를 많이 한 뒤 성품이 달라지고 저주가 떠나며 삶이 열리는 것은 내가 회개 행위로 구원을 샀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미 흘리신 보혈이 회개하는 사람에게 실제로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회개는 공로가 아니라 은혜를 받아들이는 통로다. 믿음과 회개를 서로 대립시키지 말아야 한다. 참된 믿음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넘어질 때마다 예수님의 피 앞으로 나아가 자백하게 한다.
3. 사람이 죄를 지으면 하늘과 육체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사람이 죄를 지으면 먼저 그 행위가 하늘의 행위책에 기록된다(계 20:12). 말로 지은 죄와 행동으로 지은 죄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품은 생각까지도 기록되어 심판 날에 내 앞에 벌거벗겨진 것처럼 드러난다. 하나님께서는 내 인생의 마지막 날에 막연한 인상이나 사람들의 평가로 나를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각 사람의 행위책에 기록된 내용에 따라 공의롭게 나를 판단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삶 특히 내가 지은 죄들은 과연 어떻게 남아서 나를 심판하는 도구가 되는지를 살펴보자. 내가 죄를 짓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첫째, 하늘에 있는 행위책에 내 죄들이 빼곡히 기록된다(계 20:12). 사람은 모태에서부터 그 일생이 하늘에 기록된다. 내가 영적 세계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며, 하나님께서 모태의 아기에게 하늘로부터 그 아기의 영을 보내시는 임신 약 2개월 무렵부터 기록을 맡은 천사가 달라 붙는다. 그 천사는 사람의 말과 행동을 보고하고, 성령께서는 그 마음까지 파악하는데, 그것이 하늘의 행위책에 기록된다. 이 기록은 단순한 문자 목록이 아니라 그때의 상황과 동기까지 드러내는 완전한 기록으로서, 영상으로도 글로도 기록이 된다. 그러므로 누구도 마지막 심판대에서 자기가 범죄했던 사실을 부인하거나 핑계댈 수 없다.
둘째, 내가 죄를 짓게 되면 동시에 내 몸(육체)에 악한 영이 침투한다(창 3:14, 마 12:43-45). 사도 요한은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다고 하였다(요일 3:8). 또한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더러운 귀신은 사람의 몸을 자기 집이라고 부르며 들락날락한다(마 12:43-45). 그런데 사실 창세기의 기록을 보면,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을 때 뱀에게 흙을 먹고 살라고 했는데, 이때 흙은 '아파르'라는 단어로서 땅의 티끌을 가리키는데, 이것으로 사람의 육체가 지어졌다(창 2:7). 그러므로 흙으로 지어진 사람의 몸 안에 뱀이 죄를 통하여 들어오는 것이다(창 3:14). 이때 우리가 미워하면 미움의 영이, 음란하면 음란의 영이, 교만하면 교만의 영이, 우상숭배를 하면 우상숭배의 영이 들어오는 것이다.
마 12:43-45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44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45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창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아다마)의 흙(아파르)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성도들은 자신이 죄를 지으면 하늘에만 죄가 기록되는 줄 안다. 그때에 자신의 육체 안에 악한 영이 들어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실은 내가 예수님을 믿어 분명히 죄를 용서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난하고, 여전히 질병이 낫지 않으며, 여전히 신기가 떠나지 않고, 여전히 하는 일이 계속 막히게 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이전에는 이와 같은 원리를 몰랐기에 이를 설명하지 못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만 계속해서 암송할 뿐 실제의 삶에서는 저주가 떠나지 않은 채 계속되어 온 것이다. 사실은 예수께서 분명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속죄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저주도 해방하셨다. 그런데 속죄는 우리가 믿을 때에 자동적으로 우리에게 적용되어 죄를 덮어버려 우리가 죄의 용서를 받게 된다. 그리고 악한 영들이 우리 몸속에 들어와서 일으킨 저주들은 우리가 자백하는 회개를 할 때에야 우리 몸속에 예수님의 피가 들어와서 그것을 몰아낸다. 그러므로 자백하는 회개를 하지 않는 한 내게서 저주가 끝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잘 모르기 때문에, 자신에게 저주가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더 연단하시고 훈련하시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저주에서 해방되었으니 내가 그것을 선포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면서 날마다 저주더러 떠나가라고 연신 외치며 살아간다. 그러면 언젠가는 자신의 저주의 문제가 사라질 것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죄를 통하여 들어온 영들은 사람 안에서 계속해서 질병, 가난, 신기, 막힘이라는 네 가지 저주를 일으킨다. 이와 같은 사실은 신명기 28장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또한 그 영들은 가만히 머물지 않고 자신이 저질렀던 죄를 다시 짓도록 생각과 감정을 자극한다. 음란의 영은 음란한 생각을 되풀이하게 하고, 거짓의 영은 입을 열 때마다 거짓말이 툭툭 튀어나오게 하며, 혈기와 분노의 영은 작은 자극에도 화를 폭발하게 한다. 이렇게 죄가 악한 영을 불러들이고, 들어온 영이 더 많은 죄로 유혹하는 악순환은 계속해서 만들어진다.
이 문제를 모르면 예수님을 믿고도 삶이 달라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성령을 받았는데 왜 육체의 소욕과 계속 싸우는지, 선을 행하기를 원하는데 왜 원하지 않는 악을 되풀이하는지 답답해한다(롬 7:18-24; 갈 5:16-21). 성령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뜻으로 이끄시지만, 육체 안에 자리 잡은 악한 영들은 이전의 욕망과 습관을 붙들고 저항한다. 그러므로 하늘의 죄 기록과 육체 안의 악한 영을 함께 처리해야 한다.
갈 5:16-21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그렇다. 죄의 결과는 두 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필자가 죄의 결과를 이렇게 두 가지 측면에서 보는 것은 사람을 두려움에 묶어두기 위함이 아니다. 문제의 원인을 알아야 올바른 해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늘의 죄는 예수님의 피로 용서받고 지워져야 하며, 육체 안의 악한 영은 그 죄를 자백함으로 권리를 잃고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회개가 법정적인 용서와 실제적인 정결을 함께 가져오는 이유인 것이다.
4. 최초의 구원은 속죄·죄 용서·칭의·중생을 거쳐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그렇다면 내가 죄와 저주와 사망과 마귀로부터 벗어나 구원받으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구원의 시작은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고백'하는 데서 시작된다(눅 5:8).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동안에 구원자는 필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자신의 죄와 무능을 본 사람은 베드로처럼 주님 앞에 엎드려 고백할 수밖에 없다.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말이다. 그러면 그에게는 구원자가 필요케 된다.
필자는 구원받기 위해 최초로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를 것을 가리켜 '회심(回心, conversion)으로서의 회개(悔改, repentance)'라고 정의한다. 세상과 우상을 섬기던 내가 방향을 돌려 하나님께 나아가며, 예수님만이 나를 죄에서 건지실 구원자임을 믿는 것이다. 이때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다. 죄인인 나에게 구주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는 믿음의 돌이킴이다.
둘째, 이제 주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믿음으로 자신의 죄를 '속죄'받고 '죄의 용서'를 받는 것이다. 죄인이 구원받으려면 하나님의 생명을 받기 전에 먼저 자신이 죄 없는 자로 여김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구약의 속죄제사에서는 흠 없는 희생 제물의 피를 뿌려 백성의 죄를 속죄했고, 그 결과 사함(용서)을 받았다(레 4:20). 이것은 장차 예수님께서 흘리실 피가 죄를 덮어 하나님 앞에서 죄 없는 자로 여김을 받게 할 것을 미리 보여 주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로 하늘에 있는 행위책에 기록되 내 죄가 덮이면(이것을 '속죄'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죄를 없는 것으로 간주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죄 사함' 곧 '죄의 용서'인 것이다. 죄인인 내가 스스로 모든 죄의 빚을 갚아서 죄를 용서받은 것이 아니라, 주님이 값을 대신 치르시고 그 빚을 더는 묻지 않으심으로 죄 용서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 결과 실제로 의로운 행위를 완전하게 이루지 못한 사람도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는 선언을 받는다. 이것을 가리켜 '칭의'라고 한다(롬 3:23-24, 28). 그러니까 내가 죄인임을 시인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일차적으로 '속죄'가 일어나고, '죄 용서'가 일어나며, '칭의'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의 전단계이다.
롬 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셋째, 이제 아버지의 생명을 생명주는 영으로 오신 예수님을 통하여 분배받는 것이다(고전 15:45). 이것을 '생명의 분배'라고 하는데, 이것을 통하여 사람이 거듭 태어나게 되고, 그의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된다. 이것은 회심의 회개를 한 사람이 예수님을 자기 안에 영접함으로(모셔 들임으로) 일어난다(요 1:12). 그러면 그가 구원받은 것이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자,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사람이 과거에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받는 것만으로는 구원의 모든 과정이 끝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속죄'와 '죄사함'과 '칭의'는 아담이 타락하기 전의 죄 없는 상태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이것만으로는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왜 그러한가? 이는 사자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사자의 생명이 있어야 하고, 독수리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독수리의 생명이 있어야 하듯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생명을 독생자 안에 두셨으며,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그 아버지의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다(요 5:26; 11:25; 14:6).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5: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요 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죽고 부활하신 뒤 생명을 주는 영이 되어 우리 안에 들어오신다(고전 15:45). 즉 자신의 죄를 용서받은 사람이 성령을 통하여 그 생명을 분배받을 때 거듭나는 것이다. 이것을 '중생'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중생은 생명의 분배를 가리키는 말이다. 자식이 태어날 때에 부모의 생명이 아들에게 전달되듯이, 하나님의 자식으로 태어날 때에도 역시 아버지의 생명이 그 사람에게 분배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때 그의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이다. 속죄와 죄 용서와 칭의가 죄인을 하나님 앞에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로 만든다면, 생명의 분배(生命分配)는 그 사람을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녀로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한편, 필자가 영적 세계에서 본 바로는 사람이 구원받을 때에 모태에서부터 일생을 기록하는 천사 외에, 구원받은 성도를 돕고 지키는 수호천사가 하나 더 파송된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죽는 날까지 항상 두 천사가 함께 대동한다. 이것이야말로 구원이라는 것이 단지 죄를 덮는 법정적 선언에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천국에 있는 생명책에 이름을 내 이름이 기록되게 하고,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수호천사까지 파송하심으로, 그 사람을 천상의 도움 아래 두시는 실제적인 사건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는 것이다.
따라서 최초의 구원은 속죄, 죄 용서, 칭의 그리고 생명 분배와 중생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됨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주도권은 모두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를 만들지 않았고 하나님의 생명을 스스로 생산하지도 않았다. 다만 복음을 듣고 죄인임을 인정하며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 선물을 받게 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얻는 구원인 것이다.
5. 속죄와 정결은 어떻게 다르며 예수님의 피는 각각 어떻게 역사하는가?
그렇다면 왜 거듭난 그리스도인일지라도 반복적으로 회개해야 하는가? 왜 반복적으로 회개하는 것을 일반 성도들은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그가 '속죄'와 '정결'을 구별하지 못해서 생겨난 오해이다.
'속죄'란 죄를 덮어 하나님께서 나의 죄가 있기는 있으나 없는 것으로 간주해 주시는 것이고, '정결'이란 하늘에 행위책에 기록된 죄의 기록들과 그 죄로 들어온 더러운 영을 실제로 씻어 내는 것을 가리킨다. 속죄가 하늘 법정에서 죄인을 받아 주시는 근거라면, 정결은 그 은혜가 사람의 행위와 육체와 성품과 삶에 실제로 적용되는 과정인 것이다.
첫째, '속죄'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속죄를 히브리어로 '카파르(כָּפַר, kāpar)'라고 한다. 이는 '덮다, 가리다, 칠하다'라는 뜻에서 '진정시키다, 달대다' 그리고 '화해하다. 속죄하다'는 의미로 발전되어 사용되는 단어다. 성경에서 그 뜻을 이해하게 하는 첫 장면은 노아의 방주에서다. 하나님께서는 고페르 나무로 방주를 만들고 역청을 안팎에 칠하라고 하셨다. 이때 '역청을 칠하다'는 단어가 최초로 사용된 '카파르'이다. 판자 사이를 역청으로 덮어 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듯, 희생 제물의 피가 죄를 덮어 심판이 죄인에게 미치지 않게 하는 것이 속죄인 것이다.
이와 연결되는 명사형 '코페르'는 '속전, 몸값'과 '속량, 구속'의 의미를 지니며, 아가서의 고벨화 송이와도 이와 연결하여 생각할 수 있다(아 1:14). 왜냐하면 '고벨화 송이'를 히브리어로 보면, '코페르 송이'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붉고 흰 빛을 함께 지닌 고벨화는 예수님의 피가 죄를 덮고 깨끗하게 하는 일을 떠올리게 해준다. 고로 속죄의 핵심은 죄인이 자기 공로로 심판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가 내 죄를 덮는 데 있다.
둘째, 이와 더불어 '죄사함' 혹은 '죄 용서'라는 단어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신약에서 '용서하다'로 번역되는 헬라어 단어는 '아피에미(ἀφίημι, aphiēmi)'이다. 그런데 이 단어의 원뜻은 '내버려 두다'이다. 그리고 이 단어가 '떠나가라, 놓아보내다' 그리고 '용서하다, '탕감해주다'는 뜻으로 발전해 갔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최초의 제자였던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 그리고 요한과 야고보의 형제가 그물(마 4:20) 혹은 배와 아버지(마 4:22)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다는 표현에도 이 단어가 쓰였다.
마 4:22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그런데 이때 사용되는 죄의 용서는 죄가 아예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죄가 있지만 예수님의 피가 그 죄를 덮어버렸으니, 더는 죄값을 묻지 않으시겠다는 뜻이다. 이것은 일만 달란트 빚진 종이 갚을 능력이 없는데도 주인의 긍휼(불쌍히 여김)로 빚을 탕감받은 것과 같은 것이다(마 18:23-35). 그런데 정작 일만 달란트나 탕감받은 그 종은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를 용서하지 않고 감옥에 가두었다. 그러자 이 사실을 지켜본 동료들이 주인에게 고해 바쳤고, 그러자 주인은 그 종을 다시 불러 악한 종이라 책망하고 형벌을 주는 자들에게 넘겨버렸다. 이는 용서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고 죄악 가운데 돌아가면 이미 탕감받은 빚도 다시 물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사람이 속죄와 더불어 죄 용서를 받아 칭의를 받은 것은 완전한 속죄나 완전한 죄 용서나 완전한 칭의가 아니라 유보적인 속죄와 유보적인 죄 용서이며 유보적인 칭의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용서받은 자라 할지라도 그가 그 이후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다시 심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속죄와 죄 용서와 칭의 이후에 정작 필요한 성결의 삶에 대해서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사실 죄를 덮어버리는 것과 죄 자체를 씻어서 없애버리는 것은 같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더러운 것을 덮어 두면 잠시 보이지는 않겠지만, 계속 치우지 않고 남겨 두면 그것 때문에 냄새가 나고 벌레가 생긴다. 예수 믿기 전에 지은 죄가 피로 덮여짐으로 내가 구원받았어도, 그 죄의 습관과 그때 들어온 악한 영이 남아 있다면, 내 삶에서 냄새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즉 내가 비록 예수님을 믿기는 믿었지만, 내 성질은 여전히 그대로이고, 중독과 음란과 거짓의 습관은 계속되며, 질병과 가난과 신기와 막힘의 저주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뒤에는 정결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것을 정확히 말해주는 것이 구약성경 레위기에 들어있다. 레위기는 제1장부터 제10장까지가 제사와 속죄의 원리를 보여 준다. 그리고 제11장부터 제17장까지는 부정한 것을 씻어 정결하게 하는 길을 가르쳐주고, 제18장부터 제20장까지는 거룩한 삶(성화)에 대해 알려준다. 속죄받은 백성은 구원받은 자로서의 삶의 첫 출발일 뿐이다. 성도는 이제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물과 피로 날마다 자신의 더러움을 씻으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정결이요 성결의 과정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과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믿고 난 후의 정결의 과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해주었다(요일 3:2-3, 고후 7:1).
고후 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그렇다. 그리스도인이 속죄를 받은 것은 이제 구원의 여정에 첫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구원의 과정을 밟아야 한다. 그것은 성결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주님을 볼 때에 부끄럽지 않게 된다. 그래야 최소한 더 이상 저주받은 삶을 살지 않게 되는 것이다.
놀랍겝도 요한일서 1장 9절은 이 두 사역을 한 문장 안에 보여 준다.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를 사하시고(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하였다. 죄를 사하심은 하늘의 기록을 처리하는 것을 가리키며, 깨끗하게 하심은 예수님의 피가 우리 안에 적용되어 악한 영을 내보내는 역사를 가리킨다. 예수님의 피는 죄를 덮어 구원받게 할 뿐 아니라, 자백하는 자를 씻어 성품과 삶까지 바꾸어 놓는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성령과 물과 피를 남겨두신 것이다. 성령을 통해 나의 죄의 책망하시고, 나의 자백을 통하여 예수님의 물과 피로 나를 정결케 하시려고 말이다.
6. 회심의 회개와 자백하는 회개는 구원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말한다. 회개란 방향을 돌이키는 것이니만큼,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깨닫고 죄에서 돌이키면 회개한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회개의 시작과 과정을 이해하지 못해서 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회개에는 돌이키는 시작과 자백하는 과정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처음 믿을 때에 있는 '회심으로서의 회개'는 예수님을 믿지 않던 사람이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방향을 돌이키는 것이다. 이것은 회개의 시작이다. 이때 돌이키는 회개와 믿음으로 자신이 예수님을 영접하면 그분의 피가 이전의 자신의 죄를 덮고, 생명을 주는 영이 들어와 그가 거듭나게 된다. 이것은 구원 안으로 들어가는 문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 후에는 반드시 자백(自白, confession)하는 회개가 뒤따라야 한다. 방향을 돌렸다고 해서 과거에 지은 모든 죄를 구체적으로 고백한 것이 아니며, 육체 안에 들어온 영들이 모두 나간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제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면, 성령께서 나의 죄를 깨닫게 하실 때마다 나의 입술로 그 죄를 자백하고 예수님의 피를 적용해야 한다. 그러면 하늘의 행위책에 기록된 나의 죄가 완전히 씻겨서 사라진다. 백지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으로 인하여 내 속에 들어와 있는 악한 영들이 더 이상 내게 머무를 수 있는 권한이 삭제된다. 그리고 죄를 회개하면서 내 속에 들어오는 예수님의 피로 인하여 그 영들은 떠나가야 한다. 그러므로 방향 전환은 회개의 시작인 것이고, 죄를 하나씩 자백하며 씻는 것은 회개의 실제적인 과정인 것이다.
이를 좀 더 살펴보자. 예수님을 믿기 전에 지은 죄는 어떻게 처리되어야 하는가? 처음 우리가 회심으로서의 회개와 더불어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하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지었던 모든 죄는 예수님의 피로 덮인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내가 예수 믿기 전에 지은 모든 죄를 다 낱낱이 기억하여 자백한 뒤에야 구원을 받는다면 구원받을 사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많은 죄를 어떻게 다 기억하여 자백할 것인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처음 구원을 받을 때에는 우리가 믿는다고 하면 무조건 우리의 과거의 모든 죄를 다 덮어주시는 것이다. 이것을 '속죄'라고 한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는 즉시 생명을 주는 영인 성령을 보내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우리의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하시어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다. 그 이후 말씀과 성령의 빛 가운데 드러나는 죄를 자백할 때에 하늘에 기록되어 있는 죄의 기록도 지워지고 그 죄로 들어온 악한 영도 떠나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은 뒤에 지은 죄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그것은 자백으로 용서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죄는 처음 예수님을 믿었을 때에 주어지는 속죄로 죄의 용서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백함으로 용서가 일어나기 때문이다(요일 1:9). 즉, 내가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받았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믿은 이후에 지은 죄가 자동적으로 용서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비록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주셨지만, 사람이 끝까지 자신이 예수님을 믿은 후에 지은 죄를 붙들고 회개하지 않고 있으면 결국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다(계 3:5). 예수님을 믿은 자라도 육체의 일을 계속 행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것을 성경은 경고한다(갈 5:19-21). 이는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의 죄를 끝까지 회개하지 않게 되면, 그가 죽을 때에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면서 거룩한 성 밖으로 던져지거나, 불못에 던져지게 되는 것이다(계 21:8; 22:15). 그러므로 날마다 우리는 자신이 지은 죄들을 회개해야 한다(계 22:14).
계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계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왜냐하면 구원받은 성도라도 그가 죽게 되는 날에,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고후 5:10) 혹은 '하나님의 심판대'(롬 14:10) 앞에 서기 때문이다. 이 심판은 본래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상을 받든지 형벌을 받든지 하게 하는 심판인데, 그가 만약 예수님을 믿고도 회개하지 않은 채 죄만을 짓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한 열매가 없거나 부족하다면, 그는 그날 생명책에 이름이 지워지면서 성밖이나 혹은 불못에 던져지게 되는 것이다.
벧전 4: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롬 14:10-12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12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사실 예수 믿기 전의 모든 죄는 속죄의 피로 덮여 최초 구원의 근거로부터는 처리되었다. 그러나 자신이 예수님을 믿은 뒤에 그 죄를 자백하면 행위책에서 해당 기록이 지워지고, 육체 안에 있던 영도 떠나간다. 그리고 예수를 믿은 뒤의 죄 역시 자백할 때 죄의 용서가 일어나며, 정결도 함께 일어난다. 그러므로 자백하는 회개에는 구원을 지키는 측면과 자신을 정결하게 하는 측면이 함께 있는 것이다.
고로 지금도 회개하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죄를 더 이상 지을 수 없다. 어떻게 해서 행위책에 죄를 지웠으며, 어떻게 해서 자기 몸 속에 들어온 영들을 내보내었는데, 죄를 지어 다시 하늘의 행위책에 죄를 다시 쓰며, 내 몸 속에 악한 영들을 들어오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날마다 자신을 씻는 사람은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고, 마지막 날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상급을 받게 되는 것이다. 회심의 회개로 구원의 문에 들어가고, 자백하는 회개로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것이다.
7. 왜 많은 죄를 500번·1천 번 반복하여 회개해야 하는가?
왜 우리는 자신이 죄를 지었다고 한 번만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자백하는 회개를 해야 하는가? 그것은 내가 죄를 한 번만 지은 것이 아니라 수도 없이 반복해서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늘에 기록된 그 죄들을 지워 없애려면 자신이 지은 죄들을 반복해서 회개할 수밖에 없고, 또한 내 속에 죄를 지을 때마다 들어온 영들을 내보내기 위해서는 반복해서 죄를 회개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내가 회개기도문으로 자신의 죄를 500번이나 1천 번 회개하라고 권면하는 것은 이미 용서받은 단 한 번의 죄를 하나님이 못 들으신 것처럼 생각한 채 그 죄를 되풀이해서 회개하라는 뜻이 아니다. 어느날 아들이 아버지의 지갑에서 돈을 한 번 훔치고 용서받은 뒤, 같은 한 사건을 날마다 처음 일어난 일처럼 다시 고백한다면 그건 아버지의 용서를 믿지 못하는 태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실제 삶은 한 번의 거짓말, 한 번의 혈기, 한 번의 음란만 행하지 않았다. 같은 종류의 죄를 수도 없이 반복했고, 그때마다 악한 영이 들어온 것이다.
그러므로 반복적인 회개는 같은 죄명을 가진 수많은 사건과 그 결과를 하나씩 하나씩 처리하는 과정이다. 거짓말을 여러 차례 했다면 거짓말의 죄를 충분히 자백해야 하며, 혈기와 분노를 평생 반복했다면 그만큼 많이 그리고 깊이 회개해야 한다. 우상에게 절하고 제사 음식을 먹고 무당과 점쟁이를 찾아간 일이 집안에 오랫동안 반복되었다면, 그 죄와 관련하여 내려온 영들도 적지 않다. 죄가 많고 들어온 영이 많으니 회개도 충분히 해야 하는 것이다.
형식적으로 입술만 움직이는 것과 진실로 죄를 슬퍼하며 자백하는 것은 다르다. 횟수 자체가 귀신을 내보내는 주문은 결코 아니다. 마음은 죄를 붙들고 있으면서 숫자만 채운다고 정결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거슬렀음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 죄를 미워하며, 예수님의 피 외에는 자신을 깨끗하게 할 길이 없음을 믿고 진실되게 자백해야 한다. 반복은 진실한 회개를 지속하도록 돕는 훈련이지 공로를 쌓는 계산법이 아닌 것이다.
동시에 처음에 회개할 때에 진실한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고 해서 회개를 미루어서는 안 된다. 말씀을 따라 입술로 자백하기 시작하면 성령께서 감추어진 죄를 더 깨닫게 하시고, 죄의 심각성을 마음에 새겨 주시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정해진 회개기도문을 따라 내가 회개하는 것처럼 보여도, 계속 기도하다 보면 과거의 장면과 죄의 뿌리가 드러나며 마음에서 우러나는 회개로 깊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백할 때에는 죄에 대한 낱낱의 구체성도 매우 중요하다. “제가 모르는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라는 말만으로는 어떤 죄를 회개했는지 분명하지 않다. 교만의 죄인지, 음란의 죄인지, 제사와 우상숭배의 죄인지 구체적으로 인정해야 그 죄를 타고 들어온 영도 자기를 권리를 잃게 된다. 회개기도문과 말씀 훈련은 미처 알지 못했던 죄의 종류를 배우고 구체적으로 고백하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진실로 회개를 계속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어느 순간 “됐다”고 하시며 특별히 한꺼번에 죄들을 처리해 주실 수도 있다. 그것을 필자는 '특사(특별사면)'라고 정의한다. 필자는 진실되이 오랫동안 회개하면서 특별 사면과 같은 은혜를 받았다. 그날 필자 안에 있는 악한 영의 집들이 한꺼번에 무너지고 영들이 빠져나가는 체험을 했다. 그 뒤로 영적 세계를 분별하고 말씀을 전하며 회개를 가르치는 사역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이런 특별한 체험을 하나님께 강하게 요구하거나 회개 횟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는 안 된다. 주권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회개를 시작하기 바란다. 회개를 계속하면 달라지는 것이 생길 것이다. 가장 먼저는 자신의 성품이 달라졌다는 것을 나도 알고 내 가족도 안다. 그리고 내 주변 사람도 알게 된다. 어떤 이는 6개월 동안 회개한 뒤에 보니, 자녀에게 화를 내고 싶어도 예전처럼 분노가 솟아나지 않는다는 것을 고백했다. 혈기와 분노의 영이 떠나니 억지로 참는 수준을 넘어 마음 자체가 부드러워진 것이다. 이어서 죄의 유혹이 약해지고, 질병과 가난과 신기와 막힘의 저주가 풀리면서, 가정 관계와 사명의 길도 회복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500번, 1천 번, 2천 번이라는 숫자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강요되는 율법도 아니다. 많은 죄와 영적 찌꺼기를 충분히 처리하도록 돕는 유익한 훈련의 분량이다. 회개 횟수로 자신을 자랑하지 말고, 예수님의 피가 내 죄를 씻고 성품과 삶을 바꾸고 있는지를 열매로 살펴야 한다.
8. 조상죄를 회개하는 이유와 그 결과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왜 조상죄를 회개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자. 먼저 말씀드리는 것은 조상죄를 회개하지 않아도 자신의 구원에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말씀드린다.
그러면 왜 조상죄를 회개하는가? 그것은 이미 죽은 조상을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조상의 구원 상태를 그 후손의 회개로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조상죄를 회개하는 것이 내가 최초로 구원을 받기 위하여 행해야 할 필수 조건도 전혀 아니다. 예수님을 믿고 회심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피로 자신의 죄를 덮음받으며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구원받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조상죄를 회개하는 까닭은 조상들이 지은 죄를 통하여 들어온 악한 영이 혈통을 따라 후손에게 내려와 실제로 역사하여 내게 저주를 주고, 또한 죄를 짓도록 계속해서 유혹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변하지 않을 도덕법으로서 십계명을 통하여, 누구든지 우상을 만들고 그것에 절하며 섬기는 자는 그 죄를 자손 삼사 대까지 물으시겠다고 하셨다(출 20:4-5). 이는 삼사 대가 지나면 무조건 끝난다는 뜻이 아니라, 한집에 함께 사는 여러 후손들을 통하여 같은 죄와 영적 영향력이 계속 이어지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필자의 경험이며 또 여러 임상사례를 통해 알아낸 정보이다. 필자가 사람들 안에 들어있는 악한 영들을 살펴보니, 적게는 약 70퍼센트에서 많게는 90퍼센트가 조상들의 죄와 관련하여 내려온 것들이었다. 85퍼센트 이상인 경우도 아주 많았다. 필자 자신은 사실 큰 죄를 거의 짓지 않았고 비교적 선하게 살았다. 하지만 내 안에서 발견된 영들 가운데 내가 직접 지은 죄로 들어온 것은 5~10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대부분은 우상숭배 즉 조상 제사와 부처 불교 그리고 무당과 점쟁이와 미신잡신 등의 죄를 통하여 내게 내려온 조상들의 영이었다.
그런데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후손들은 조상의 혈통 안에서 부모의 생명을 이어받는다. 고로 부모와 조상들이 죄를 지을 때 그의 후손인 나도 그 허리 안에 있었으므로, 같이 죄를 지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렇게 해서 내게 내려온 영들은 조상들의 피를 물려받은 후손인 내가 대신 조상의 죄를 자백함으로 내 속에 들어와 있는 영들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조상에게 구원을 소급하여 적용하는 일이 아니라, 그 죄를 구실로 내 몸과 가정에 내려온 영들의 권리를 끊어내는 일이다. 이는 후손이 자기 혈통 안에 들어온 죄의 영향력을 회개로 처리하는 것을 가리킨다.
조상죄를 회개하지 않아도 사실 예수님을 믿어 얻은 최초의 구원은 계속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내려온 영들이 남아 있으면 질병과 가난과 신기와 막힘의 저주가 내게 계속 나타나고, 같은 죄를 반복하도록 유혹을 받게 된다. 열심히 일하고 선하게 살며 전도하고 기도해도 일이 계속 막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영적 세계에서는 교회 앞을 가로막는 큰 영, 무당과 조상의 형상을 한 영, 말씀을 들을 때 졸게 만드는 영들이 실제로 사역을 방해한다. 그러므로 조상 죄도 회개하는 것이 매우 유익하다.
필자는 동탄 신도시의 아파트 계단을 모두 돌아 다니며 전도지를 붙이고 사람들을 찾아가며 최선을 다해 전도했지만, 사역의 길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이유를 그때에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회개를 통하여 내가 지은 죄들과 내 가문에서 내려온 영들을 처리하고 나서야, 눈에 보이지 않던 방해세력이 떠나가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러자 내 성품이 달라지고 말씀의 권세가 나타났다. 어느날에는 성령의 은사와 영적 무기가 더해졌다. 그리고 지금은 한 번도 직접 만나지 않은 이들까지 자원하여 헌금을 해 줌으로써, 55억 원 규모의 성전 건축을 하고 있다. 일상의 작은 필요까지 공급받는 것을 보면서 필자는 저주가 풀려가고 있는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조상죄 회개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질병과 가난과 가정의 어려움을 보고 무조건 특정 조상의 죄 때문이라고 단정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성령께서 말씀과 기도 가운데 깨닫게 하시는 우상숭배, 제사, 무속, 음란, 폭력, 탐욕과 같은 죄를 내 혈통의 죄로 인정하고 겸손히 자백하는 것이다. 질병이 있을 때에는 회개와 기도를 하면서 필요한 검사와 치료도 받아야 하며, 전문 치료를 임의로 중단해서는 안 된다.
조상죄 회개의 열매는 후손 자신에게 나타난다. 악한 영의 권리가 끊어지면서 죄의 충동이 약해지고 성품이 부드러워지며, 오랫동안 반복되던 저주의 고리가 끊어진다. 부모가 자녀에게 내려간 죄의 영을 대신 회개하면 자녀를 붙들던 영향력도 약해질 수 있다. 이처럼 조상죄의 회개는 죽은 조상의 운명을 바꾸는 행위가 아니라, 살아 있는 후손과 그 가정이 예수님의 피로 정결해져 자유를 누리게 하는 능력인 것이다.
9. 나오며
지금까지 회개와 구원, 속죄와 정결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사람은 죄를 지을 때 하늘의 행위책에 죄가 기록되고, 동시에 그 죄와 같은 속성을 가진 악한 영이 육체 안에 들어온다.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에는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회심의 회개를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다. 그러면 그분의 피가 죄를 덮어 속죄하고,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여 의롭다고 칭하시며, 생명 주는 영이 들어와 거듭나게 하신다.
이 최초의 구원은 전적으로 은혜이며 믿음으로 받는 선물이다. 500번이나 1천 번의 회개가 예수님의 피를 대신하지 못하고, 어떤 행위도 하나님의 생명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반복 회개를 구원값을 치르는 행위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자랑할 것은 오직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그러나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사실이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속죄'가 죄를 덮어 없는 것으로 여겨 주는 것이라면, '정결'은 덮여 있던 죄의 기록과 육체 안의 더러운 영을 실제로 씻어 내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자백하는 회개를 할 때 하나님께서는 죄를 사해 주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신다. 예수 믿기 전의 죄는 자백함으로 그 흔적과 저주에서 자유롭게 되고, 예수 믿은 뒤의 죄는 반드시 자백하여 용서받고 구원을 지켜야 한다.
반복해서 회개하는 것은 한 사건을 하나님께 계속 상기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평생 같은 종류의 죄를 많이 지었고 그때마다 악한 영이 들어왔으므로, 그 죄들을 충분히 자백하여 하나씩 처리하는 것이다. 조상죄를 회개하는 것도 조상을 구원하려는 행위가 아니라 혈통을 따라 내려온 영의 권리를 끊기 위함이다. 반복 회개와 조상죄 회개는 최초 구원의 조건은 아니지만, 성도를 정결하게 하고 저주에서 벗어나게 하며 죄의 유혹을 이기도록 돕는 매우 유익한 길이다.
참된 회개는 반드시 열매를 낳는다. 혈기와 분노가 줄고 성품이 부드러워지며, 죄를 향하던 욕망이 약해지고 성령의 뜻에 순종할 힘이 생긴다. 질병과 가난과 신기와 막힘으로 나타나던 저주가 떠나고, 가정과 사명의 길이 회복되며, 같은 섬김을 하더라도 하늘에 쌓이는 상급의 빛과 크기가 달라진다. 회개는 우리를 움츠러들게 하는 형벌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가 우리 삶 구석구석에 흐르게 하는 은혜의 통로다.
그러므로 날마다 말씀을 듣고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해야 한다. 죄를 숨기거나 구원받았다는 말 뒤에 감추지 말고, 넘어질 때마다 즉시 보혈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하여 회심의 회개로 구원의 문에 들어가고 자백하는 회개로 자신을 깨끗하게 하며, 이 땅에서는 저주에서 벗어나고 장차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는 부끄러움 없이 상을 받도록 준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9월 18일(금)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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