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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6. 12. (금)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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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LH5-_yQy5EM​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20)]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26) 그는 전쟁에 능한 자였다(03)(시24:7~1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LH5-_yQy5EM​

 

 
1. 들어가며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전쟁에 능한 자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전쟁에 능하다는 말은 성품이 거칠고 사람과 잘 다투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성경이 궁극적으로 말하는 전쟁이란 혈과 육을 가진 사람을 향한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방해하는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다. 그러므로 전쟁에 능한 왕은 먼저 사랑할 대상과 대적할 대상을 정확히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가리켜 피아 식별이라고 부른다.

  이번 메시지의 중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앞선 말씀에서 왕은 양떼를 지키는 목자의 심정으로 싸워야 하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야 하고, 자신이 영적 전쟁을 위하여 부름받았다는 자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이제 그 싸움은 한 단계 더 깊어진다. 싸움을 잘하려면 먼저 누구와 싸워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대적을 잘못 정하면 사람을 미워하고, 교회를 분열시키며, 가정을 무너뜨리게 된다. 그러나 대적을 정확히 알면 사람은 사랑과 긍휼의 대상이 되고, 그 사람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막는 악한 영은 대적과 축출의 대상이 된다.
  시편 24편은 영광의 왕을 “강하고 능한 여호와”, “전쟁에 능한 여호와”라고 부른다(시24:8). 여기서 “능한”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깁보르’와 관련된다. 깁보르는 '강한 자', '용사', '전쟁을 잘 수행할 수 있는 자'라는 뜻을 가진다. 그러므로 전쟁에 능한 왕은 막연히 선한 마음만 가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지키고 하나님의 원수를 대적할 수 있는 영적 힘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시 24:8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동시에 이 말씀은 그리스도론의 중심을 열어 준다. 즉 여호와께서 구원하러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한 분 하나님께서 창조주로, 구약의 여호와로, 육신을 입고 오신 아들로, 죽고 부활하신 구속주로, 다시 오실 영광의 왕으로 자신의 경륜을 이루어 가신다. 그러므로 시편 24편의 전쟁에 능한 여호와는 마지막에 새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가시는 영광의 왕,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성도는 그분의 구원을 받은 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 함께 왕 노릇 할 자로 준비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전쟁에 능한 왕이 왜 대적을 정확히 식별해야 하며, 그 대적을 어떻게 이겨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전쟁에 능한 왕은 왜 ‘기보르’의 사람이어야 하는가?
  전쟁에 능한 왕을 이해하려면 먼저 ‘깁보르’라는 단어를 붙잡아야 한다. 히브리어 ‘기보르’는 단순히 힘이 조금 센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이 말은 강한 자, 용사, 싸움을 수행할 수 있는 자, 위기 앞에서 물러서지 않는 자를 가리킨다. 시편 24편에서 여호와께 붙은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때 단지 위로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실제로 원수를 치시는 분임을 드러낸다.
  이사야 9장 6절에도 이 단어의 신학적 깊이가 나타난다. 장차 한 아기로 오실 메시아의 이름 가운데 하나가 “전능하신 하나님”인데, 여기서 “전능하신”이라는 표현도 ‘엘 깁보르’, 곧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의미를 가진다(사9:6). 다시 말해 메시아는 평강의 왕이실 뿐 아니라 전쟁에 능하신 하나님이시다. 평강은 전쟁을 피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대적을 제압하시는 하나님의 승리 이후에 온다.
사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 사실은 성도의 정체성을 바꾼다. 성도는 귀신을 두려워하며 숨어 사는 존재가 아니다. 물론 사탄과 악한 영들은 실재하며, 그들에게도 질서와 계급과 활동 영역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왕은 악한 영의 존재를 알고도 뒤로 물러나는 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대적하는 자다. 전쟁에 능한 왕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안다. 그는 자기 힘을 자랑하지 않고,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을 의지한다.
  다윗의 위대함도 여기에 있다. 그는 왕이 되었어도 자기 출발점을 잊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목장에서, 양을 따르던 자리에서 데려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다는 사실을 기억했다(삼하7:8). 그러므로 다윗의 강함은 교만한 강함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부름받은 자의 강함을 가진 사람이었다. 원래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나, 하나님께서 세우셨기에 싸울 수 있다는 믿음이 그 안에 있었다.
삼하 7:8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여기서 중요한 영적 원리가 나온다. 전쟁에 능한 사람은 자기 능력을 과시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 원래의 자리를 알고, 하나님께서 불러 세우셨음을 아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은사가 주어져도 교만하지 않고, 무기가 주어져도 사람을 해치지 않으며, 영적 권세가 주어져도 자기 이름을 높이지 않는다. 그는 모든 능력과 은사와 무기가 하나님의 백성을 살리고 하나님의 원수를 멸하라고 주어진 것임을 안다.
  그러므로 ‘깁보르’의 사람은 겁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악한 영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사탄의 계략을 가볍게 여기지 않지만, 사탄을 하나님보다 크게 보지도 않는다. 그는 말씀을 붙들고 회개를 실천하며 성령의 능력 안에서 싸운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

 

 

3. 하나님은 왜 원수를 멸하기 위해 왕을 세우시는가?
  하나님께서 왕을 세우시는 이유는 단지 백성을 통치하게 하려는 데에만 있지 않다. 왕은 백성을 다스리는 자인 동시에 백성 앞에 나가 싸움을 싸우는 자다. 이스라엘 백성이 사무엘에게 왕을 요구했을 때 그들이 원한 왕의 기능도 두 가지였다. 하나는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였고, 다른 하나는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라는 요구였다(삼상8:19-20).
삼상 8:20 우리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여기서 '왕직'과 '목자직'이 만난다. '목자'는 양떼를 먹이고 돌보는 자이지만, 동시에 사자와 곰이 양을 물어 갈 때 싸워야 하는 자다. 양떼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사자와 곰 앞에서 도망한다면 그는 참 목자가 아니다. 예수님도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말씀하셨다(요10:11). 그러므로 왕이 전쟁에 능해야 한다는 말은 백성을 지배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백성을 살리기 위해 자기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는 뜻이다.
요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다윗은 이 원리를 몸으로 배운 사람이다. 그는 궁중에서 먼저 훈련받은 것이 아니라 들판에서 양을 지키며 훈련받았다. 사자와 곰이 양을 물어 갈 때 그는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양을 건져 냈다. 그 경험이 골리앗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다윗은 골리앗을 단지 키 큰 군인으로 본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대적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나오는 골리앗 앞에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갔다(삼상17:45).
삼상 17:45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왕은 원수를 멸하기 위하여 세워진다. 그러나 이때 원수는 자기 감정을 상하게 한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해치고,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지 못하게 만드는 세력이다. 왕은 사람을 자기 원수로 정하여 복수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수로 규정하신 대상을 정확히 알고 그 원수를 대적하는 자다.
  이 원리를 모르면 교회 안에서도 싸움의 방향이 틀어진다. 목회자는 성도를 원수로 여기고, 성도는 목회자를 원수로 여기며, 성도끼리 서로 시기하고 질투한다. 그러면 사탄은 뒤에서 웃고, 교회는 자기 안에서 무너진다.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왕은 그 길로 가지 않는다. 목자는 양떼를 사랑하고, 양떼를 해치는 영적 세력을 대적한다. 사람은 살릴 대상이고, 악한 영은 쫓아낼 대상이다.
  천국의 왕직도 이와 연결된다. 천국에서 왕 노릇 한다는 것은 단지 높은 자리에 앉는다는 뜻이 아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살리고 하나님의 원수를 대적한 자에게 주어지는 영적 신분이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이후의 삶은 허송세월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고 난 뒤부터 회개와 말씀과 영적 전쟁의 실제가 시작된다. 이 땅에서 준비하지 않은 자가 하늘에서 갑자기 왕의 권세를 받을 수는 없다. 왕직은 은혜로 열린 길이지만, 그 길을 실제로 걸어가는 자는 회개하고 순종하며 싸우는 자다.

 

 

4. 다윗은 어떻게 ‘나의 원수’에서 ‘주의 원수’를 보게 되었는가?
  다윗의 대적 이해는 단계적으로 깊어졌다.
  첫째로, 처음에는 자신을 까닭 없이 미워하고 죽이려는 사람이 원수처럼 보였다. 사울과 그를 따르는 자들, 십 사람들의 밀고, 이스보셋의 잔여 세력, 압살롬의 반역, 세바의 반란은 모두 다윗 안쪽(나라 안)에서 일어난 대적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둘째, 이스라엘 나라를 공격하는 주변의 나라들 블레셋, 아말렉, 에돔, 모압, 암몬 같은 주변 민족이 다윗에게 있어서 원수였다. 이처럼 다윗에게 대적은 안에도 있었고 밖에도 있었다.
  시편 69편은 다윗이 까닭 없이 미움을 받았던 고통을 보여 준다(시69:4). 그는 자기 머리털보다 많은 자들이 자신을 미워하고, 부당하게 자기 원수가 되었다고 탄식한다. 이 단계에서 대적은 “나를 미워하는 자”, “나의 원수”, “나의 대적”으로 표현된다. 이것은 실제 고난의 언어다. 다윗은 억울하게 쫓겼고, 죽음의 위협을 받았으며, 가까운 사람에게도 버림받는 아픔을 겪었다.
시 69:4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고 부당하게 나의 원수가 되어 나를 끊으려 하는 자가 강하였나이다
  그러나 다윗의 대적에 대한 인식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점차 “나를 미워하는 자”를 넘어 “주를 미워하는 자”를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시편 68편은 “하나님이 일어나시니 원수들은 흩어지며 주를 미워하는 자들은 주 앞에서 도망한다”고 말한다(시68:1). 여기서 중심이 바뀐다. 문제는 단지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통치를 미워하는 세력이다.
시 68:1 하나님이 일어나시니 원수들은 흩어지며 주를 미워하는 자들은 주 앞에서 도망하리이다
  시편 139편도 같은 전환을 보여 준다. 다윗은 주를 대하여 악하게 말하는 자들과 주를 미워하는 자들을 말한다(시139:20-21). 이것은 인간적 원한의 언어가 아니라 영적 분별의 언어다. 다윗은 자기 감정의 원수에서 하나님의 원수로 인식을 옮겨 간다. 다시 말해 그는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한다”는 차원에서 “저 사람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막는 영이 역사한다”는 차원으로 깊어진다.
시 139:20-21 그들이 주를 대하여 악하게 말하며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으로 헛되이 맹세하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미워하는 자들을 미워하지 아니하오며
  이 전환이 없으면 성도는 영적 전쟁을 하면서도 육신의 싸움을 한다. 사람을 미워하고, 사람에게 복수하고, 사람을 제거하려 한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전쟁이 아니다. 성경의 전쟁이란 사람을 향한 증오가 아니라 악한 영을 향한 대적이기 때문이다. 다윗이 처음에는 사울을 자기 원수로 느꼈을 수 있다. 그러나 사울을 죽일 기회가 왔을 때 그는 자기 손으로 죽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람의 생명과 왕권의 판단은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오늘 성도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가정 안에도 대적처럼 보이는 상황이 있고, 교회 안에도 대적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성도는 그 사람 자체를 원수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을 붙잡고 역사하는 죄와 악한 영을 보아야 한다. 남편이나 아내, 자녀나 부모, 목회자나 성도가 미움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가로막는 영적 세력이 대적의 대상이다.
  다윗은 대적을 넓게 보았고, 깊게 보았다. 내부의 반역도 보았고 외부의 전쟁도 보았지만, 최종적으로는 주의 원수를 보았다. 이것이 전쟁에 능한 왕의 분별이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왕은 눈앞의 사람에게 사로잡히지 않는다. 그는 배후의 영적 실상을 본다. 그러므로 그의 싸움은 혈기와 복수가 아니라 말씀과 기도와 회개와 권세의 싸움이 된다.

 

 

5. 예수님은 참된 대적의 정체를 어떻게 드러내셨는가?
  다윗의 대적 이해는 시편 110편에서 절정에 이른다. “여호와께서 내 주(아도나이)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는 말씀은 메시아의 승귀와 통치를 보여 준다(시110:1). 예수님께서도 이 말씀을 인용하시며 다윗이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내 주”라고 불렀음을 밝히셨다(마 22:45). 그러므로 시편 110편의 “내 주”는 다윗 자신이 아니라 장차 오실 메시아, 곧 예수 그리스도다.
시 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원수는 누구인가? 헤롯인가?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인가? 아니라면 대제사장들과 산헤드린 공회인가인가? 빌라도인가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십자가 앞에서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친 군중인가? 그런데 실제로 이들은 모두 역사 속에서 예수님을 대적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사람들을 최종 원수로 규정하지 않으셨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다(눅23:34). 사람은 무지와 죄와 악한 영에게 붙잡힌 구원의 대상이었다.
눅 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에게 있어서 예수님을 미워하는 자요 대적이요 원수요 악한 자는 누구였는가? 예수님께서 드러내신 참된 대적은 사탄과 마귀와 귀신들, 곧 악한 자다. 주기도문에서 예수님은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가르치셨는데, 원문적 의미로는 악한 자에게서 건져 달라는 뜻을 담고 있다(마6:13).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기도 뒤에 악한 자에게서의 구원이 이어진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방해하는 실체가 악한 자임을 보여 준다.
마 6: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사역도 이 사실을 증명한다.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전하셨고,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셨으며, 귀신들을 쫓아내셨다(마 4:23, 9:35).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도 함께 있게 하시고, 전도하게 하시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갖게 하셨다(막3:14-15). 이때 예수님에게 복음 전파와 귀신 축출은 서로 분리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귀신들은 사람을 죄와 질병과 우상숭배와 거짓에 묶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가장 막강한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막 3:14-15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여기서 원수의 재정의가 완성된다. 예수님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마5:44). 사람을 원수로 삼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나 동시에 마귀는 대적해야 한다. 사랑할 대상과 대적할 대상을 혼동하면 복음이 무너진다. 사람은 사랑해야 하고, 사람 속에서 역사하며 하나님 나라를 방해하는 악한 영은 미워하고 쫓아내야 한다.
마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것이 전쟁에 능한 왕의 중심 분별이다. 그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을 붙잡고 있는 악한 영과 타협하지도 않는다. 그는 죄인을 긍휼히 여기지만 죄와 귀신의 활동을 방치하지 않는다. 그는 상처받은 사람을 품지만 그 사람을 묶은 어둠의 권세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적한다. 예수님께서 바로 그렇게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전쟁 방식은 십자가의 사랑과 부활의 권세가 함께 나타나는 방식이다.

 

 

6. 성도는 왜 사람과 악한 영을 구분해야 하는가?
  성도가 사람과 악한 영을 구분해야 하는 이유는 성경이 우리의 싸움의 대상을 분명히 말하기 때문이다. 에베소서 6장은 우리의 씨름이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밝힌다. 혈과 육은 사람이다. 성도의 싸움은 사람이 아니라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하는 싸움이다(엡6:12). 그러므로 성도가 사람을 원수로 삼는 순간, 그는 이미 싸움의 방향을 잃은 것이다.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사람과 악한 영을 구분하지 못하면 가정이 무너진다. 배우자가 나를 힘들게 할 때 그 사람을 미워하면 싸움은 끝없이 반복된다. 그러나 그 사람 속에서 역사하는 고집의 영, 분노의 영, 음란의 영, 제사의 영, 무속의 영, 거짓의 영을 보면 마음이 달라진다. 사람은 불쌍히 여겨야 할 대상이 되고, 악한 영은 대적해야 할 대상이 된다. 이것이 영적 전쟁의 출발점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 안에서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며 파를 만들면, 그것은 성도끼리의 싸움이 아니라 악한 영이 교회를 내부에서 무너뜨리는 것이다. 목회자를 미워하고, 성도를 미워하고, 직분자를 미워하는 방식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 없다. 대적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우리의 주적은 사탄과 마귀와 귀신들과 뱀들이다. 이 사실이 분명해질 때 교회는 사람을 살리는 공동체가 되고, 악한 영을 대적하는 군대가 된다.
  또한 성도 안팎에는 싸워야 할 영적 실상이 있다. 죄를 통해 들어온 악한 영들이 사람 속에서 역사하고, 가문과 세대를 통해 역사해 온 어둠의 세력들이 사람 주변에서 틈을 노린다. 출애굽기 20장 5절은 우상숭배의 죄가 자손 삼사 대까지 이른다고 말한다(출20:5). 이것은 죄가 개인의 선택으로 끝나지 않고 영적 영향력을 남긴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회개는 단지 마음의 후회가 아니라 악한 영의 합법적 근거를 제거하는 영적 행위다.
출 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아버지의 죄악을 자녀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고로 회개 없이 귀신을 다루려 하면 위험하다. 죄의 근거가 남아 있으면 악한 영은 다시 들어올 틈을 찾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다가 쉴 곳을 찾지 못하고 다시 돌아올 수 있음을 말씀하셨다(마12:43-45). 그러므로 회개와 축사는 분리될 수 없다. 회개가 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권세를 나타내며, 성령의 능력이 악한 영을 내쫓는다.
마 12:43-45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사람과 악한 영을 구분하는 일은 사랑을 가능하게 한다. 남편을 미워하지 않고 그 안의 악한 영을 대적하기 때문이다. 자녀를 정죄하지 않고 그를 묶은 어둠의 영을 끊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성도를 배척하지 않고 그를 흔드는 악한 영을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정한 목자의 심정이다. 목자는 양을 때려잡는 사람이 아니라, 양을 물고 있는 사자와 곰을 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전쟁에 능한 왕은 사람을 향하여는 긍휼을 품고, 악한 영을 향하여는 단호함을 가진다. 그는 사람의 약함을 이용하지 않고, 사람의 죄를 방치하지도 않는다. 그는 회개의 길을 열어 주고, 말씀으로 진리를 가르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적한다. 이런 분별이 있을 때 성도는 혈과 육의 싸움에서 벗어나 영적 전쟁의 실제 안으로 들어간다.

 

 

7. 영적 전쟁에는 왜 말씀과 무기와 은사가 함께 필요한가?
  영적 전쟁은 열심만으로 감당할 수 없다. 전쟁에는 무장이 필요하다. 그래서 에베소서 6장은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말한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호심경, 평안의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가 악한 날에 능히 대적하고 서기 위해 필요한 영적 장비다(엡6:13-17). 이 갑주가 약하면 악한 영의 공격 앞에서 쉽게 흔들린다.
엡 6:13-17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여기서 '믿음의 방패'는 악한 자의 불화살을 막는다. 악한 자는 의심과 정죄와 음란과 분노와 낙심의 불화살을 쏜다. 방패가 작으면 여기저기 맞는다. 말씀과 회개와 순종으로 믿음이 자라야 방패가 커진다. 그리고 '구원의 투구'는 생각을 지킨다. 그리고 '성령의 검'은 말씀으로 대적을 찌른다. 또한 '진리의 허리띠'가 없으면 체험이 있어도 중심을 잃고, '의의 호심경'이 없으면 죄책과 정죄에 가슴이 뚫린다.
  시편 7편도 하나님께서 전쟁의 무기를 준비하신다고 말한다. 회개하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칼을 가시며 활을 당기시고 불화살을 예비하신다(시7:12-13). 여기에는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동시에 영적 전쟁의 실제를 보여 주는 상징도 있다. '칼'과 '활'과 '불화살'은 악을 치시는 하나님의 도구다. 성도는 하나님의 무기를 자기 욕심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기 위해 사용해야 한다.
시 7:12-13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겨 예비하셨도다 죽일 도구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가 만든 화살은 불화살들이로다
  그리고 영적 전쟁의 무기 가운데 시편 2편에 나오는 '철장(쇠지팡이)'도 중요하다. 하나님은 아들에게 이방 나라를 유업으로 주시며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리게 하신다(시2:8-9). 요한계시록에서도 이기는 자에게 철장 권세가 약속된다. 이것은 마지막 시대의 왕권이 단지 다스림의 권세가 아니라 대적을 깨뜨리는 권세임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영적 무기는 성경 밖의 상상이 아니라 성경 안에 이미 계시된 전쟁의 언어다.
시 2:8-9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지만 이런 무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말씀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영적 세계를 본다고 해서 모두 하나님께 속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회개가 부족하고 말씀이 약하면 악한 영이 보여 주는 것을 하나님의 계시로 착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과 영적 전쟁을 감당할 사람은 말씀을 공부해야 한다. 성경의 큰 흐름, 곧 한 분 하나님의 경륜과 창조와 타락과 구속과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과 교회 시대와 종말의 심판과 새 예루살렘의 완성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영적 체험을 성경의 빛 아래에서 분별할 수 있다.
  더불어 영적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은사도 필요하다. 영 분별의 은사, 지식의 말씀, 지혜의 말씀과 같은 '보는 은사(빛의 은사)'가 필요하며, 병 고침, 능력 행함, 믿음의 은사와 같은 '행함의 은사(불의 은사)'도 필요하다. 그리고 영의 '말의 은사'로서 방언, 방언 통역, 예언도 필요하다. 이러한 성령의 9가지 은사들은 성도가 영적 전쟁을 더 효과적으로 수행하도록 도와주는 귀한 도구들이다(고전12:7-10). 그러나 은사는 회개와 말씀의 토대 위에서 사용되어야 한다. 회개하지 않은 입술로 예언하면 혼합이 생기고, 말씀 없는 능력 추구는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은사는 자랑거리가 아니라 섬김의 도구다.
고전 12:7-10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병 고치는 은사를 주시나니
  그렇지만 처음부터 큰 무기를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처음에는 다 믿음으로 싸운다.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고, 말씀을 붙들고, 회개하며, 악한 영을 대적한다. 그러는 동안 하나님께서 필요한 무기와 은사와 담대함을 주신다. 목자의 심정으로 양떼를 살리려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싸울 도구를 주신다. 자기 명예를 위해 능력을 구하는 사람과 양떼를 살리기 위해 엎드리는 사람은 다르다.
  그러므로 영적 전쟁에는 '말씀'과 영적 '무기'와 '은사'가 함께 필요하다. '말씀'은 기준이고, 영적 '무기'는 전투의 도구이며, '은사'는 성령께서 주시는 실제적 도움이다. 이 셋이 회개와 순종 안에서 함께 움직일 때 성도는 악한 영을 효과적으로 대적할 수 있다. 전쟁에 능한 왕은 체험만 붙드는 사람이 아니며, 지식만 쌓는 사람도 아니다. 그는 말씀으로 분별하고, 회개로 합법적 근거를 제거하며, 성령의 은사와 무기로 악한 영을 제압하는 사람이다.

 

 

8. 마지막 시대의 영적 장군은 어떻게 준비되는가?
  전쟁에 능한 왕의 주제는 종말론과 연결된다. 시편 24편의 영광의 왕은 마지막 전쟁을 마치고 문들을 향하여 들어가시는 왕이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라는 외침은 단지 과거 예루살렘 성문을 향한 노래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마지막에 승리하신 그리스도께서 새 예루살렘의 영광 가운데 들어가시는 장면을 바라보게 한다. 그분은 전쟁에 능한 여호와이시며, 백마를 타고 의로 심판하며 싸우시는 왕이시다(계19:11).
계 19: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요한계시록 19장은 하늘의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분을 따른다고 말한다(계19:14). 이것은 마지막 시대의 성도와 하늘 군대가 그리스도의 승리에 참여하는 장면을 보여 준다. 성도는 땅에서 아무렇게나 살다가 갑자기 영광의 행렬에 참여하는 존재가 아니다. 이 땅에서 회개하고, 말씀으로 무장하고, 악한 영을 대적하며, 가정과 교회를 지킨 자들이 그날의 영광에 합당하게 준비된다.
계 19: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시편 110편도 종말의 전쟁을 말한다. 주의 오른쪽에 계신 주께서 노하시는 날에 왕들을 쳐서 깨뜨리신다(시110:5-6). 이것은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세상 왕들과 그 배후의 악한 세력들이 심판받는 마지막 전쟁과 연결된다. 하나님은 그 전쟁을 위해 영적 장군과 용사들을 준비시키신다. 어떤 사람은 장군으로, 어떤 사람은 용사로, 어떤 사람은 가정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부름받는다. 역할은 다를 수 있지만, 모두가 하나님의 편에서 싸워야 한다는 점은 같다.
시 110:5-6 주의 오른쪽에 계신 주께서 그의 노하시는 날에 왕들을 쳐서 깨뜨리실 것이라 뭇 나라를 심판하여 시체로 가득하게 하시고 여러 나라의 머리를 쳐서 깨뜨리시며
  그렇지만 마지막 시대의 영적 장군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는 먼저 회개로 자신을 정결하게 해야 한다. 자신 안에 들어온 악한 영의 근거를 제거해야 하며,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우상숭배와 무속과 음란과 폭력과 거짓의 죄를 끊어야 한다. 그 다음 말씀을 배워야 한다. 성경의 조각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의 타임라인을 알아야 한다. 창조, 타락, 구속 약속, 이스라엘의 왕국, 여호와의 성육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승천과 성령 강림, 교회 시대의 영적 전쟁, 마지막 심판과 새 예루살렘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알아야 한다.
  또한 영적 장군은 처음에는 가정에서부터 훈련된다. 큰 전쟁을 말하면서 자기 가정을 지키지 못하면 안 된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가 서로를 원수로 삼지 않고, 각 사람 속에 역사하는 악한 영을 분별하며, 회개와 중보와 대적 기도로 싸워야 한다. 한 가정이 살아나면 한 교회가 살아날 수 있고, 한 교회가 살아나면 한 지역이 깨어날 수 있다. 하나님은 거대한 구호보다 실제로 악한 영과 싸워 사람을 살리는 자를 찾으신다.
  그러므로 일선의 목회자도 새롭게 배우기를 힘써야 한다. 복음만 전하면 충분하고 귀신은 없다고 말하면 양떼는 불량품처럼 방치된다. 구원은 예수님을 믿는 순간 문이 열리지만, 성도는 회개와 순종과 영적 전쟁을 통해 천국에 합당한 사람으로 준비되어야 한다. 목회자는 성도를 위로만 할 것이 아니라, 대적이 누구인지 가르쳐야 하고, 회개를 가르쳐야 하며, 악한 영을 대적하는 실제를 가르쳐야 한다. 이것이 마지막 시대 목자의 책임이다.
  천국의 생명책 가운데 다윗의 생명책에는 사자의 깃발을 들고 있는 다윗이 삽화로 그려져 있다. 왜 그런가? 야곱은 자신의 넷째 아들 유다를 가리켜 사자의 새끼라고 예언하였다. 그리고 그 지파에서 다윗이 나왔으며, 궁극적으로 유다 지파의 사자이신 예수님이 오셨다(창 49:9-10; 계 5:5). 사자는 왕권과 전쟁의 상징이다. 다윗은 찬양의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전쟁에 능한 왕이었다. 예수님은 어린양이시지만 또한 유다 지파의 사자이시다. 성도도 어린양의 피로 씻김받은 자로서, 사자의 왕권에 참여할 자로 준비되어야 한다.
계 5:5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마지막 시대의 영적 장군은 사람을 선동하는 자가 아니라 진리를 분별하게 하는 자라야 한다. 그는 분노를 키우지 않고 대적을 정확히 보게 한다. 그는 사람끼리 싸우게 하지 않고 악한 영을 대적하게 한다. 그는 성도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지 않고 하나님의 군사로 세운다. 이런 자들이 많아질 때 교회는 마지막 시대에 흔들리지 않고, 가정은 천국 백성을 길러 내며, 성도는 영광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에 참여하게 된다.

 

 

9. 나오며
  지금까지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 왜 전쟁에 능한 자이어야 하며, 그 전쟁의 핵심이 대적 식별에 있음을 살펴보았다. 전쟁에 능한 왕은 ‘기보르’의 성격을 가진 자이며, 하나님께서 원수를 멸하게 하시려고 세우신 자다. 그러나 그 원수는 사람 자체가 아니다. 다윗은 처음에 ‘나의 원수’를 보았으나 점차 ‘주의 원수’를 보게 되었고, 예수님 안에서 궁극적인 대적이 사탄과 마귀와 귀신들과 악한 자임이 분명히 드러났다.
  성도는 사람과 악한 영을 구분해야 한다. 사람을 미워하면 혈과 육의 싸움에 빠지지만, 악한 영을 분별하면 회개와 사랑과 권세의 길이 열린다.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먼저 사람을 살리는 마음을 가져야 하며, 그 사람을 묶고 있는 죄와 귀신의 역사를 대적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회개를 계속해야 하고, 말씀을 배워야 하며,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야 한다. 또한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를 자기 자랑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고 악한 영을 제압하는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
  마지막 시대의 왕직은 막연한 소망이 아니다. 이 땅에서 준비된 만큼 하늘에서 맡겨진다. 영광의 왕이신 예수님은 전쟁에 능한 여호와로서 마지막 승리를 이루신다. 그분과 함께 설 자들은 오늘 이 땅에서 회개와 말씀과 영적 전쟁으로 준비되어야 한다. 목회자는 양떼를 살리기 위해 대적을 가르쳐야 하고, 성도는 자기 가정부터 악한 영의 역사를 끊어 내는 영적 용사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의 왕직을 허황된 꿈으로만 바라보지 않아야 한다. 날마다 회개해야 하며, 말씀의 기준을 세워야 하며, 사람을 미워하는 싸움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원수를 대적하는 싸움으로 들어가야 한다. 한 분 하나님께서 창조로부터 새 예루살렘까지 이루어 가시는 경륜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성도는 마지막 시대의 영적 군사로 준비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원수를 정확히 대적하여 마지막 시대의 영적 용사로 준비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6월 12일(금)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본 설교는 시편 24편에 묘사된 ‘전쟁에 능한 여호와’의 성품을 통해,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핵심 자질인 영적 분별력과 그 사명을 조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진정한 승리란 혈과 육을 가진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뒤에서 역사하며 하나님 나라를 방해하는 악한 영적 세력을 정확히 식별하여 대적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다윗이 자신의 개인적인 원수를 넘어 하나님의 원수를 보는 단계로 성장했듯, 성도 또한 철저한 회개와 말씀의 전신 갑주, 그리고 성령의 은사로 무장하여 영적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마지막 시대의 성도들이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목자의 심정과 악을 멸하는 용사의 권세를 동시에 갖추어, 영광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에 동참하는 영적 장군으로 준비될 것을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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