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27)] 다윗의 아들 솔로몬(05) 지혜의 3가지 방면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지혜(고전1:18~31)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D6EOSr8i32o
1. 들어가며
구약성경에서 예수님은 과연 누구로 예표되었을까? 우리는 마태복음 12장 42절에서 다윗의 아들로서 솔로몬과 관련지어서 예수님은 "솔로몬보다 더 큰 이"나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솔로몬은 구약 성경에서 다윗의 아들이요 지혜의 왕이었지만, 신약 성경에서 다윗의 아들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마태복음 1장 1절을 보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리고 소경 바디매오는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쳤으며, 예수님 스스로도 "나는 다윗의 자손이요 뿌리"라고 말씀하셨다. 이 '자손'이라는 말은 헬라어 '휘오스(υἱός)'로 '아들'을 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솔로몬을 통하여 다윗의 아들로 이 땅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를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솔로몬의 모든 삶이 예수님을 예표하지는 않는다. 그는 나중에 하나님 앞에 심각하게 잘못한 부분이 있으며, 열왕기상 11장은 그 타락의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땅의 사람으로서 완전한 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하고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솔로몬의 훗날 타락 부분을 절대로 놓쳐서는 아니 된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은 솔로몬이 예수님을 예표하는 부분, 곧 지혜와 관련된 측면에 집중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가졌던 지혜의 세 가지 방면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지혜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이스라엘을 태평성대로 이끌었던 부분을 살펴보았다. 또 다윗이 예수님의 전사적 측면을 예표했다면, 솔로몬은 예수님의 평화의 왕으로서의 측면을 예표함을 살펴보았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그 중에서도 특별히 솔로몬의 지혜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를 가리키는지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고자 한다. 솔로몬은 세상의 모든 지혜를 섭렵한 지혜의 왕이었다. 동방의 지혜, 애굽의 지혜, 그리고 하나님께서 직접 부어 주신 지혜를 두루 갖추었다. 그러나 그가 배웠던 세상의 지혜로는 결국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반면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고 선언하였다. 솔로몬이 세상 지혜의 최고봉에 도달한 뒤 끝내 하나님의 지혜를 갖게 되어 아가서를 기록한 것처럼, 이 시간에는 지혜의 세 가지 방면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지혜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더불어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이 어떻게 속죄와 생명 분배와 마귀 멸함을 동시에 이루었는지, 그리고 아가서가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을 어떻게 담고 있는지도 함께 살펴보도록 한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무궁한 지혜가 드러나는 자리임을 깊이 새기며 말씀을 살펴보자.
2. 지혜의 왕 솔로몬이 섭렵한 세 가지 방면의 지혜는 각각 무엇인가?
솔로몬이 섭렵한 지혜에는 크게 세 가지 방면이 있다. 첫째로, 그는 동방 사람들의 지혜를 가졌다. 열왕기상 4장 29절에서 30절은 이렇게 기록한다.
왕상 4:29-30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 같이 하시니 솔로몬의 지혜가 동쪽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
여기서 "동쪽 모든 사람의 지혜"는 욥기서에 나오는 지혜와 맥을 같이한다. 욥기는 동방 사람 욥의 이야기로서, 고난의 문제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깊은 사색을 담고 있다. 솔로몬은 이 동방의 지혜를 완전히 터득하였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붙들고 "내 구속자가 살아 계심을 나는 아노라"고 고백했던 욥의 지혜, 엘리바스와 빌닷과 소발과 엘리후가 논하던 인생과 고난에 관한 지혜, 이 모든 것이 솔로몬의 그릇 안에 담겼다. 그뿐 아니라 솔로몬은 잠언 곳곳에서 동방의 지혜 전통에서 비롯된 비유와 격언들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지혜로 재해석하였다. 동방의 지혜는 인간의 경험과 자연 관찰로부터 쌓아 올린 삶의 지혜였지만, 그것 역시 솔로몬에게 있어서는 결국 더 높은 지혜를 향한 발판에 불과하였다.
둘째로, 그는 애굽 사람의 지혜를 가졌다. 당시 애굽은 고대 세계의 학문과 문명의 중심지였다. 천문학과 의학, 수학과 건축술, 철학과 제의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지식 체계가 애굽의 지혜였다. 솔로몬은 애굽 왕 바로의 딸과 혼인하는 등 애굽과 깊은 관계를 맺었고, 그 문화와 학문을 충분히 흡수하였다. 열왕기상 4장 30절은 솔로몬의 지혜가 이 애굽의 지혜보다도 뛰어났다고 증언한다. 잠언에는 애굽의 지혜 문서인 '아메넴오페의 교훈'과 유사한 구절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것은 솔로몬이 그 지혜를 단순히 차용한 것이 아니라, 이미 그것을 섭렵하여 하나님의 관점으로 재창조하였음을 보여 준다. 애굽의 지혜는 당대 최고의 문명이 낳은 지적 유산이었으나, 그것도 솔로몬에게는 결국 세상 지혜의 한 부분에 불과하였다.
셋째로,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지혜까지 받았다. 열왕기상 3장에서 하나님은 기브온에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시어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말씀하셨다. 솔로몬은 그때 부귀나 장수나 원수의 멸망을 구하지 않고 오직 지혜를 구했고, 하나님은 그 구함을 기쁘게 여기시어 지혜와 총명을 바닷가의 모래처럼 풍성히 주셨다. 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지혜가 솔로몬의 지혜를 세상의 모든 지혜보다 탁월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솔로몬은 잠언과 전도서와 아가서를 기록하였다. 잠언은 지혜로운 삶의 원리들을 담았고, 전도서는 세상의 모든 것을 시험해 본 결과를 담았으며, 아가서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을 담은 최고봉의 지혜문학이다.
솔로몬이 섭렵한 욥기서의 지혜는 동방 사람의 지혜요, 잠언과 전도서의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를 포함한 구약 성경의 지혜요, 그리고 아가서는 그 모든 지혜의 결론으로서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최고의 지혜다. 이 세 가지 방면을 거쳐 솔로몬이 내린 결론은 전도서 1장 2절의 선언이었다.
솔로몬이 지혜를 탐구하는 방식은 단순히 이론에 그치지 않았다. 전도서 1장을 보면 그는 지식과 학문을 탐구하고, 웃음과 희락도 시험하고, 토목 사업도 크게 벌이고, 포도원도 만들고, 원림과 동산도 만들었다. 노비도 사고, 은금도 쌓고, 왕들이 즐기는 모든 음악도 즐겼다. 무엇 하나 눈이 원하는 것을 제하지 않았고, 무엇이든 즐기는 것을 마음에서 막지 않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 끝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허무함뿐이었다. 이것이 바로 세상 지혜의 한계다. 세상 지혜는 그것이 아무리 방대하고 정교하더라도, 인간 영혼의 깊은 갈망을 채울 수 없다. 솔로몬보다 더 많이 누린 사람이 없었고, 솔로몬보다 더 많이 알았던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그가 내린 결론은 헛됨이었다. 이 헛됨의 선언이야말로 솔로몬이 세상 지혜의 한계를 가장 솔직하게 고백한 것이며, 동시에 그 너머에 있는 참 지혜를 향한 간절한 갈망의 표현이었다.
전 1: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먹고 싶은 것을 다 먹어 보았고, 공부하고 싶은 모든 것을 다 공부해 보았으며, 누리고 싶은 것을 다 누려 보았지만, 세상의 지혜는 사람을 구원하지 못하고, 천국에 이르게 하지 못하며, 영원한 삶을 보장하지 못한다. 아무리 뛰어난 학문과 지식을 쌓아도 우리의 영혼의 미래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세상 지혜는 없다. 세상 지혜의 결론은 헛됨이다. 솔로몬은 이 결론에 도달한 뒤 비로소 참 지혜를 향하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 곧 그리스도의 비밀이었다.
3. 골로새서 2장 3절이 말하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2장 2절에서 3절에 이르는 말씀에서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비밀"이라 부르며, 그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고 선언한다.
골 2:2-3 이는 그들로 마음의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잠언 1장 7절과 9장 10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자 지혜의 근본"이라고 말한다. 이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누구 안에 감추어져 있는가? 바로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 안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지혜의 총체이시며, 지혜의 원천이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 했는데, 여호와이신 그리스도가 곧 지혜 자체이신 것이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잠언 8장은 지혜가 의인화되어 말하는 놀라운 말씀이다. 특히 잠언 8장 22절의 "태초에 하나님이 나를 가지셨으며"라는 선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물 창조 이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음을 드러낸다.
잠 8:22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이것은 요한복음 1장 1절의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는 말씀과 동일한 진리다. 솔로몬은 잠언 8장을 통해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가 지혜와 지식의 보화의 창고이심을 증언한 것이다. 솔로몬이 잠언 8장을 기록할 때 성령의 감동 속에서 이 진리를 담아냈다는 것은, 그가 단순한 세상 지혜를 넘어 하나님의 비밀을 향한 여정을 걷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잠언 8장의 지혜는 그냥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인격체, 곧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이 비밀은 마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것과 같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 모든 것을 팔아서 그 밭을 산다. 모든 것을 팔아도 아깝지 않다. 왜냐하면 그 밭 안에 모든 것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이 바로 이와 같다. 그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그분을 발견하는 자는 모든 것을 얻은 것이다. 이를 깨닫는 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분께로 나아가더라도 전혀 아깝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스도는 단순히 지혜를 가르쳐 주시는 선생이 아니시다. 그분 자신이 지혜이시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지혜를 '일부' 받은 자였지만, 예수님은 지혜 자체이시다. 솔로몬에게는 하나님이 지혜를 부어 주셨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의 모든 보화가 충만히 거하신다. 그분은 인간이 미칠 수 없는 영역 너머에 계시는 지혜 그 자체이시다.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 "내가 알고 있던 것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면, 솔로몬보다 크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더 큰 놀라움으로 고백해야 하겠는가. 마태복음 12장 42절은 그래서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고 증언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공부를 통한 지식도 필요하다. 공부하지 않고 지혜가 온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비밀은 탐구하는 자에게 열린다. 마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를 밝히셨는데, 이는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 아니라, 오히려 간절히 구하는 자에게 더 풍성히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발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분을 간절히 구하는 자에게, 이 감추어진 보화가 열리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알아 가는 것, 그것이 참된 지혜의 출발점이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지식과 정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시대다. 그러나 지식이 많아질수록 지혜는 오히려 부재하는 역설이 나타난다. 많은 것을 알면서도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넘치는 정보 속에서도 영혼의 방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늘어 가고 있다. 이것이 솔로몬이 말한 세상 지혜의 헛됨과 다르지 않다.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 그 보화를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나아가야 할 진정한 방향이다.
4. 유대인이 구하는 표적과 헬라인이 찾는 지혜가 왜 참 지혜가 될 수 없는가?
고린도전서 1장 22절은 당시 세계의 두 가지 지혜를 향한 열망을 간결하게 정리한다.
고전 1: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첫째로, 유대인이 구하는 표적은 참 지혜가 되지 못한다. 유대인들은 메시아의 증거로 기적과 이적을 요구했다. 예수님 당시에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표적을 보여 달라"고 거듭 요구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요나의 표적이란 죽었다가 사흘 만에 살아나는 부활의 표적이었다. 기적을 쫓아다니고, 병 고침을 쫓아다니며, 축사만을 쫓아다니는 것은 그 자체로 온전한 그리스도인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물론 병 고침과 축사와 이적이 하나님의 역사 속에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표적이 목적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표적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드러내는 도구가 될 수 있으나, 그것 자체가 하나님의 지혜는 아니다. 표적에만 의존하는 신앙은 표면적인 것에 머무를 위험이 있으며, 기적만 쫓아다니는 사람은 나중에 후회하게 된다. 표적 너머에 있는 그리스도 자신, 곧 하나님의 지혜를 알아야 한다.
둘째로, 헬라인이 찾는 지혜 역시 참 지혜가 되지 못한다. '헬라인'이란 곧 '지혜를 찾는 자들'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헬라 철학은 고대 세계의 모든 지적 탐구를 집대성한 것으로서, 오늘날 서양 철학의 원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 했고,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이라 했으며, 플라톤은 이데아의 세계를 탐구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재의 문제를 파고들었다. 당시 헬라 세계에서는 그 이름난 철학자들의 사상을 배우는 것이 최고의 지혜였다. 그러나 그 위대한 지성들은 결국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 만물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끝까지 발견하지 못했다. 만물이 물에서 나왔느냐 불에서 나왔느냐, 공기에서 나왔느냐를 두고 평생 토론했지만, 그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는 끝내 이르지 못했다. 사도행전 17장에서 아레오바고 설교 때 바울이 "알지 못하는 신"의 제단을 언급한 것은, 헬라인들이 아무리 지혜를 탐구해도 참 하나님께 이르지 못했음을 잘 보여 준다.
세상의 지혜는, 그것이 동방의 것이든 애굽의 것이든 헬라의 것이든, 결코 인간의 영혼을 구원할 수 없다. 인간의 영원한 미래는 세상의 지식 체계가 가르쳐 줄 수 없다. 사도 바울은 가말리엘 문하에서 엄격한 율법 교육을 받은 당시 최고의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세상 지혜로는 절대로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고전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솔로몬이 전도서를 통해 "모든 것이 헛되다"고 선언한 것이 바로 세상 지혜의 한계를 보여 주는 증거다. 세상에서 아무리 높은 학위를 취득하고 아무리 많은 것을 알게 되어도, 우리의 영혼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세상 지혜는 가르쳐 주지 못한다. 영원한 지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 하는 계획을 알아 가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경륜이요, 그 경륜의 핵심이 바로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다. 하나님의 지혜는 인간을 구원하고, 영생을 주며, 마귀를 멸하고, 인간을 하나님의 상속자로 세우는 영원한 능력이다. 유대인이 구하는 표적도, 헬라인이 찾는 철학도 이 자리에는 이를 수 없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사람들이 추구하는 지혜는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최첨단 과학과 철학이다. 이 시대의 지식과 정보는 과거 어느 때보다 방대하다. 그러나 그 방대한 지식이 사람에게 구원을 주었는가? 그 첨단 과학이 사람의 영혼을 안식에 이르게 하였는가? 그 고도화된 철학이 우리에게 영생을 약속할 수 있는가? 아니다. 오히려 지식이 늘어날수록 인간의 불안과 허무감은 더 깊어지고 있다. 정신건강 문제는 날로 심각해지고,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늘어 가고 있다. 그것이 바로 세상 지혜의 본질이다. 솔로몬의 결론은 오늘도 유효하다. "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지혜를 상대화하고, 그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 곧 그리스도를 향하여 담대히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솔로몬이 전도서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한 메시지요, 아가서를 통해 우리를 초대하는 자리다.
5. 사도 바울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지혜라고 선언한 이유는 무엇인가?
고린도전서 1장 23절에서 24절은 복음의 핵심을 이렇게 선언한다.
고전 1:23-24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유대인에게 십자가는 거리끼는 것이다. 기적을 행하던 이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면, 그것은 신명기 21장 23절의 선언대로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받은 자라는 표시였기 때문이다. "저는 기적을 베풀 수 있다면서 왜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못하느냐, 기적을 행하여 봐라"는 조롱이 그 대표적인 반응이었다. 그런데 이방인에게 십자가는 미련한 것이다. 최고의 지혜를 추구하는 헬라인들의 눈에, 죄인처럼 처형당한 이를 구원자라고 선포하는 것은 지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바로 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지혜라고 선언한다. 고린도전서 2장 1절에서 2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전도 원칙을 밝힌다.
고전 2: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노라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그는 아름다운 말솜씨나 세상 지혜의 논리로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했다. 왜 그랬는가? 그것이 하나님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세상 지혜의 수사로 복음을 포장하면 십자가의 능력이 헛되게 될 위험이 있었다.
고린도전서 2장 7절에서 8절은 이 지혜의 성격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고전 2:7-8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을 것이니라
이러한 하나님의 지혜는 세상의 지혜가 아니다. 동방 사람의 지혜도 아니고, 애굽의 지혜도 아니며, 헬라 철학도 아니다. 이것은 만세 전에 이미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은밀한 지혜다. 세상의 통치자들 중 아무도 이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던 지혜다. 더욱이 이 비밀은 사탄 마귀조차 몰랐던 하나님의 경륜이었다. 만일 사탄이 이 비밀을 알았더라면, 결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비밀을 철저하게 감추어 두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가 세상 어떤 지혜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탁월한 이유다. 세상의 지혜자들은 모두 드러내어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려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는 감추어 두셨다. 감추어 두셨기 때문에 원수가 알지 못하였고,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역이용당하였으며, 역이용당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구원이 성취되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경륜인가! 우리는 이 십자가의 지혜 앞에 머리를 숙이고 경배해야 한다.
또한 고린도전서 1장 18절은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임을 선언한다.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지혜인 것은, 그것이 단순한 도덕적 모범이 아니라 인류를 구원하고 마귀를 멸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실현된 사건이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님의 지혜는 성육신과 십자가의 죽으심 속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하나님이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시고, 그 몸으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가 실현된 자리다. 인류를 구원하고 사탄 마귀를 멸하는 이 놀라운 방법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이것이 사도 바울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지혜라고 선언한 이유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유대인들의 표적 요구와 헬라인들의 지혜 추구를 모두 경험하였다. 그 환경 속에서 그는 오직 한 가지만 전하기로 작정하였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었다. 세상의 눈에 미련하고 거리끼는 그 십자가가 하나님의 지혜임을 그는 흔들림 없이 선포하였다. 부르심을 받은 자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이 십자가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임을 그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6. 하나님께서 사탄 마귀를 멸하시기 위해 성육신과 십자가의 방법을 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천사장 미가엘과 그 군대를 동원해서 사탄과 그 부하들을 즉시 제압하실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친히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시고, 그 몸으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시는 방법을 택하셨는가? 그 비밀은 에스겔서 28장 12절에서 15절에 기록된 말씀 곧 두로 왕을 빗대어 사탄 마귀의 본래 상태를 이렇게 묘사하는 것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겔 28:12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슬픈 노래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도장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사탄은 원래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 가운데 가장 지혜롭고 아름다운 존재였다. 에스겔서 28장 13절 하반절은 그를 위해 찬양하는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다고 기록한다. 그의 존재 목적 자체가 찬양이었다. 그러나 그가 교만하여 타락하였고,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혔으며, 하와를 미혹하여 아담을 넘어뜨렸다. 그것은 사탄이 지혜의 이인자(二人者)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혜로운 자가 하와를 유혹한 것이다. 그러나 그 지혜를 그릇된 방향으로 사용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인류를 넘어뜨렸다.
사탄는 하와를 통해 아담이 범죄하게 함으로 천하만국의 권세와 영광을 차지하게 되었다. 누가복음 4장 6절에서 사탄이 예수님께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라고 말한 것은 이 사실을 반영한다. 베드로후서 2장 19절의 원리대로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된다." 아담이 마귀에게 패하여 종이 되었고, 사탄은 이 세상 임금이 되어 온 인류를 사망 아래로 끌고 가는 자가 되었다. 이때부터 모든 인간은 어미의 태에서 날 때부터 악한 영이 들어오는 상태가 되었고, 사탄은 온 세상 만국을 자기의 것이라 여기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하나님이 그냥 전능한 능력으로 사탄을 멸하실 수도 있었지만, 그 방법을 택하지 않으신 데는 깊은 지혜가 있었다. 아담이 하와를 사랑하여 하와가 먹는 것을 함께 먹었을 때, 사탄은 아담을 이긴 것이다. 그 결과 사탄이 아담 위에 군림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이 그 사탄을 이기려 하신다. 그런데 하나님이 직접 이기신다면, 사탄은 "나는 하나님한테 졌지만 사람한테는 이겼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사람 레벨로 사탄과 싸워 이기신다면, 사탄은 하나님보다도 못하고 사람보다도 못한 존재로 영원히 확증되는 것이다. 사탄이 하나님과 싸우면 그것은 하나님 레벨의 싸움이다. 그러나 사탄이 사람과 싸우면 그것은 사람 레벨의 싸움이다. 하나님은 직접 사람이 되셔서, 사람 레벨로 사탄과 싸워 이기심으로써 사탄이 사람보다도 못한 존재임을 영원히 입증하신 것이다. 이것이 성육신의 깊은 이유 중 하나였다. 사탄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직접 멸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오셔서 사람 수준으로 이겨서 사탄이 사람보다 못한 존재라는 것을 영원히 확증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람으로 이 땅에 태어났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존재로 지음받은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히브리서 2장 14절은 이 사실을 명확하게 증언한다.
히 2: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하나님이 성육신하셔서 혈과 육을 가진 인간이 되신 이유는,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만세 전에 하나님이 은밀하게 감추어 두신 플랜 B였다. 아무 천사도 이것을 알지 못했고, 사탄 마귀도 몰랐으며, 세상의 지배자들도 알지 못했다. 사탄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지조차 확신하지 못한 채 시험했다.
마 4:3-4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사탄은 예수께서 세례받을 때까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 본 적도 없었고 들은 적도 없었다. 하나님이 친히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공생애의 시작을 보니, 예수님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이라고 물으며 시험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그 시험을 물리치셨고, 사탄은 3년 반 동안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며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 것인가를 연구했다. 그리고 사탄이 마침내 내린 결론은 "그는 인간이다. 인간은 죽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탄은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 권력자들을 동원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그것이 사탄의 계략이었다.
그러나 그 계략이 바로 사탄 자신의 패망이 되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무궁한 지혜였다. 사탄이 자신이 판 함정에 자신이 빠진 것이다. 에스겔서 28장에서 사탄은 원래 지혜가 충족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지혜가 하나님의 지혜 앞에서는 완전히 무너졌다. 원래 지혜의 이인자였던 사탄이 하나님의 무궁한 지혜 앞에 완전히 패배한 것이다. 사탄의 지혜가 아무리 출중하다 해도, 하나님의 지혜를 이길 수는 없다. 이것이 로마서 11장 33절에서 34절이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라고 고백하는 이유다.
7.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이 속죄와 생명 분배, 마귀 멸함을 동시에 이룬 방식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에는 두 차원의 목적이 있었다. 인간을 향한 차원과 마귀를 향한 차원이다.
첫째, 인간을 향한 차원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으신 것은 두 가지 일을 이루신 것이다.
첫째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속죄를 위한 죽음이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은 이렇게 증언한다.
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자신의 목숨을 주셨다. 이것이 속죄의 죽음이다. 인류는 죄로 인해 사망 아래 놓였고, 그 죄의 삯을 치러 줄 완전한 제물이 필요했다. 예수님이 그 제물이 되신 것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므로(롬 6:23), 모든 인간은 그 법 아래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셨기에,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실 수 있었다. 아담이 죄를 지어서 사탄에게 패한 것처럼, 예수님은 죄 없이 사탄의 손에 잡혀 죽으심으로써 사탄의 올무를 뒤집으셨다. 이것은 인류를 위한 가장 거룩한 속죄의 행위였다.
둘째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생명 분배를 위한 죽음이었다. 요한복음 12장 24절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듯이, 예수님의 죽으심은 그 생명을 많은 사람에게 분배하기 위한 죽음이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고, 고린도전서 15장 45절은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라고 증언한다. 예수님은 생명 주는 분으로 이 땅에 오셨고, 그 생명을 나누어 주시기 위해 죽으신 것이다. 로마서 8장 2절이 말하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하였다는 것이 바로 이 생명 분배의 결과다.
원래 하나님의 계획(플랜 A)은 아담에게 속죄없이 그냉 생명을 분배해주는 것이었다. 아담이 생명나무를 따 먹고 영생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이 원래의 계획이었다. 그런데 마귀의 미혹으로 아담이 범죄함으로써 속죄가 추가로 필요하게 되었다(플랜 B). 하나님은 지혜가 무궁하시므로, 인류가 타락한 경우에 대비한 계획까지 만세 전에 이미 정해 두셨다. 하나님의 경륜은 타락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타락하면 타락한 대로, 타락하지 않으면 타락하지 않은 대로, 하나님은 이미 그 모든 경우의 지혜를 가지고 계셨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죽음 안에는 속죄와 생명 분배라는 두 가지 목적이 동시에 담겨 있다.
이 두 가지 목적이 동시에 성취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이 죄 없으신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셨기 때문이다. 완전한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생명을 주실 수 있었고, 완전한 인간이셨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대속하실 수 있었다. 이 두 가지 성질을 동시에 가진 분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지혜는 창세 이전부터 계획된 하나님의 가장 완전한 방법이었다. 그 방법 안에서 인간의 죄 문제와 사탄의 권세 문제, 그리고 생명 분배의 문제가 모두 한꺼번에 해결되었다. 이것이 고린도전서 1장 24절이 말하는 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지혜"라는 선언의 가장 구체적인 의미다.
둘째, 마귀를 향한 차원에서는, 십자가는 사탄 마귀가 스스로 함정에 빠지게 한 사건이었다. 사탄은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기에 죽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 권력자들을 동원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사탄의 패망이었다. 죄 없는 자는 죽음의 법 아래 있지 않다. 죄의 삯이 사망이므로(롬 6:23), 죄 없는 예수님을 죽인 사탄은 불법을 행한 것이었다. 사탄은 예수님을 죽임으로써 자신이 승리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순간이 바로 자신의 권세를 상실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무궁한 지혜였다. 그러므로 요한일서 3장 8절은 이 사실을 이렇게 증언한다.
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요한계시록 1장 17절에서 18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렇게 선언하신다.
계 1:17-18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이제 예수님이 가지셨다. 사탄이 쥐고 있던 죽음의 권세를 예수님이 빼앗아 오신 것이다. 골로새서 2장 14절에서 15절은 이 사실을 선명하게 증언한다.
골 2:14-15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무력화"라는 말은 헬라어 원문에서 '무장 해제시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십자가의 그날, 사탄과 그 모든 부하들의 계급장이 떨어졌다. 그러므로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대적할 수 있다. 능력은 있으나 계급장이 없는 귀신들은 예수 이름으로 명하면 들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이 속죄와 생명 분배, 그리고 마귀 멸함을 동시에 이루어 낸 하나님의 지혜로운 방법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단순히 희생의 상징으로만 보아서는 아니 된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가 가장 완전하게 드러난 사건이다. 인류의 구원과 생명 분배, 그리고 마귀의 멸망이 단 하나의 사건 안에서 동시에 이루어졌다. 이것이 고린도전서 1장이 선언하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라는 말씀의 가장 풍성한 의미다. 이 지혜를 아는 자는 복된 자다.
8. 아가서가 지혜문학의 최고봉으로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을 담고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골로새서 2장 2절과 3절이 말하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비밀이시며, 그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 그런데 하나님에게는 두 가지 층위의 비밀이 있다. 하나님의 비밀은 그리스도이고(골 2:2), 그리스도의 비밀은 교회다(엡 3:4). 이 두 가지 관계를 가장 깊고 아름답게 담아낸 구약의 책이 바로 '아가서'다. 아가서는 지혜문학의 최고봉이요, 성경의 심장부이기도 하다. 아가서를 제대로 이해할 때 그리스도의 사랑이 가슴 절절하게 다가오며, 하나님이 인류를 위하여 무엇을 계획하고 계신지를 분명히 알게 되기 때문이다.
아가서는 노래요 연극 대본이요 가곡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모든 식물, 모든 색깔, 모든 의복, 심지어 모든 숫자까지 다 상징이다. 이것을 문자 그대로만 읽어서는 그 깊이를 알 수 없다. 성령의 감동과 그리스도를 향한 간절한 탐구가 있는 자에게만 열리는 비밀이다. 솔로몬은 세상의 모든 지혜를 다 탐구하고 그 결론이 헛됨이었음을 깨달은 뒤,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을 사랑하신 그 사랑을 아가서라는 노래와 연극으로 표현해 냈다. 솔로몬이 진정으로 지혜에 이르렀다는 것은 바로 이 아가서를 기록했다는 데서 드러난다. 아가서는 솔로몬의 지혜 탐구의 결론이요, 그 결론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이었다.
아가서에는 두 가지 대표적인 식물이 등장한다. 하나는 고벨화요, 또 하나는 백합화다. 아가서 1장 14절은 신부가 신랑 되신 그리스도를 이렇게 고백한다.
아 1:14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 화 송이로구나
엔게디는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하여 숨었던 들염소의 바위, 곧 유대 광야의 오아시스다(삼상 24:1). 히브리어로 '엔(עֵין)'은 눈, 즉 샘을 뜻하고, '게디(גְּדִי)'는 염소를 뜻한다. 곧 '염소의 샘'이라는 의미다. 광야 한복판에서 생명수가 솟아오르는 그 샘 곁의 포도원에 핀 고벨화. 고벨화는 적갈색의 꽃으로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포도원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하고, 생명수가 솟아나는 샘은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의 강을 상징한다. 그 자리에 피어 있는 적갈색의 고벨화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셨다. 그냥 어디서나 피어날 수 있는 평범한 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이 솟아나는 바로 그 자리에 피어 있는 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더 자세히 나누게 될 것이다.
또한 아가서 2장 2절에서는 신랑이 신부를 이렇게 노래한다.
아 2:2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
가시나무는 창세기 3장의 타락 이후 저주받은 세상을 상징한다. 아담의 범죄 이후 땅은 가시덤불을 내었고(창 3:18), 인간은 죄를 짓고 고통과 상처 속에 살아가는 가시나무 같은 환경 속에 있다. 그 가시나무 가운데 피어 있는 한 송이 백합화. 여기서 백합화는 흰색의 릴리가 아니라 빨간색의 아네모네이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아 세상 한복판에서 아름답게 피어 있는 성도, 곧 교회를 가리킨다. 아무리 어렵고 처참한 상황 속에서도 아름답게 피어나는 존재, 그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구원받은 성도의 정체다. 이것도 다음 시간에 더 자세히 공부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아가서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사랑 이야기로 담아낸 책이다. 그 사랑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 흘린 사랑, 그 참을 수 없는 그리움, 그리고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만난다. 솔로몬은 수많은 여인들을 사랑한 왕이었으나, 아가서의 신랑은 단 한 명의 신부를 향한 절절한 사랑을 노래한다. 이 신랑이 그리스도요, 이 신부가 교회다. 아가서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이 가슴 절절하게 다가오는 자는, 그 사랑에 이끌려 하나님의 위대한 경륜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것이 지혜문학의 최고봉인 아가서가 우리에게 보여 주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이다.
우리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그 신부다. 가시나무로 가득 찬 이 세상 속에서 우리는 백합화로 불림받았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신랑 되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우리를 사셨기 때문이다. 골로새서 1장 27절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고 증언한다.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신다. 그 사실이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를 가능하게 하는 근거다. 우리가 스스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로 인하여 가시나무 세상 속에서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아가서가 전하는 비밀은 바로 이것이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 그 사랑의 비밀이 곧 하나님의 가장 깊은 지혜다.
이 비밀을 아는 자는 더 이상 세상의 지혜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헬라인이 추구하는 철학도, 유대인이 구하는 표적도, 이 세상이 자랑하는 어떤 지혜도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이라는 이 비밀에는 미치지 못한다. 에베소서 3장 10절은 이 비밀이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에게도 드러나고 있다고 증언한다.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각종 지혜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단순한 종교 집단이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가장 깊은 지혜가 드러나는 자리요, 그리스도의 신부요, 아가서가 노래하는 바로 그 백합화다.
그러므로 시편 147편 5절의 고백은 이 모든 것에 대한 찬양의 응답이다.
시 147:5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
하나님의 지혜는 무궁하시다. 세상의 지혜로는 상상할 수 없는 방법, 곧 하나님이 친히 사람이 되시고 죽으심으로써 인류를 구원하시고 마귀를 멸하신 그 지혜는, 로마서 11장 33절에서 34절의 고백을 불러일으킨다.
롬 11:33-34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9. 나오며
지혜의 세 가지 방면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지혜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솔로몬은 동방의 지혜와 애굽의 지혜, 곧 세상의 모든 지혜를 섭렵하였다. 하나님은 그에게 바닷가의 모래 같은 총명과 지혜를 부어 주셨고, 그 결과 욥기의 지혜와 잠언과 전도서와 아가서가 탄생하였다. 그러나 세상의 지혜에 대한 솔로몬의 결론은 전도서 1장 2절의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였다. 세상의 지혜는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고, 영생을 주지 못하며, 영원한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
참 지혜는 오직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 안에 있다. 골로새서 2장 3절이 증언하는 것처럼 그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 유대인이 구하는 표적도, 헬라인이 찾는 철학적 지혜도 이것을 대신할 수 없다. 하나님의 지혜는 만세 전에 감추어 두셨던 은밀한 경륜, 곧 하나님이 친히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인류를 구원하시고 사탄 마귀를 멸하신 성육신과 십자가의 도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은 인간을 향하여는 속죄와 생명 분배를 이루었고, 마귀를 향하여는 그 권세를 무장 해제시키는 하나님의 지혜로운 방법이었다. 사탄은 스스로 함정에 빠져 죄 없는 예수님을 죽임으로써 자신의 권세를 상실했고, 사망과 음부의 열쇠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있다. 이것이 고린도전서 2장 7절과 8절이 말하는 것처럼,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은밀한 지혜였다. 이 지혜가 만세 전에 감추어져 있었고, 성육신과 십자가를 통하여 세상에 드러났다.
솔로몬은 그 모든 지혜의 탐구 끝에 아가서를 기록하였다. 아가서는 지혜문학의 최고봉으로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을 담은 책이다. 가시나무 가운데 핀 백합화처럼 이 땅에서 아름답게 피어 있는 성도, 곧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사실을 아가서는 노래한다. 하나님의 비밀은 그리스도이고 그리스도의 비밀은 교회임을 깊이 알아 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지혜의 여정이다.
우리는 세상의 지혜를 쫓는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아 가야 한다. 시편 147편 5절의 고백처럼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라고 찬양하며 그 무궁한 지혜를 날마다 탐구해야 한다. 또한 로마서 11장 33절에서 34절의 고백처럼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라고 경탄하며, 그 지혜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내가 세상 지혜를 찾아다니던 삶을 돌이켜 보라! 더 많이 알려고, 더 많이 쌓으려고, 더 많이 누리려고 달려온 삶의 끝에서 솔로몬처럼 "헛되도다"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이제 그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지혜다. 이 지혜를 가진 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구원과 생명과 평안을 누리게 된다. 세상의 어떤 지혜도, 어떤 철학도, 어떤 과학도 이것을 대신할 수 없다.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이 우리의 모든 것이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속죄받고,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마귀를 이기는 복된 성도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지혜를 기억하며 그분만을 높이고 찬양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6월 19일(금)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구약의 지혜자 솔로몬과 신약의 그리스도 예수를 대조하며,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하나님의 비밀인 십자가의 지혜를 깊이 있게 조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세상 지혜를 섭렵했으나 결국 헛됨을 고백한 솔로몬과 달리, 예수 그리스도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진 실체이자 지혜 그 자체임을 강조합니다. 특히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성육신과 십자가의 죽음을 마귀를 멸하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고도의 전략이자 무궁한 지혜로 풀이합니다. 결론적으로 성도는 회개를 통해 악한 영을 몰아내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 담긴 영원한 생명의 설계도를 발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또 다른 요약본입니다(쳇지피티).]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27)] 다윗의 아들 솔로몬(05) 지혜의 3가지 방면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지혜(고전1:18~31)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구약 역사에서 지혜의 왕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다윗의 왕위를 이어받았고, 평화의 시대를 누렸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백성을 재판하고 열방을 놀라게 한 왕이었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 자체로 완전한 목적지가 아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예표의 사람이다. 구약에서 다윗의 아들은 솔로몬이지만, 신약에서 다윗의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다. 그러므로 솔로몬을 살펴볼 때에는 반드시 솔로몬에게서 끝나지 말고, 솔로몬보다 더 크신 이 곧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나아가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다고 말씀하신 뒤,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고 선언하셨다(마 12:42). 이 말씀은 솔로몬의 지혜가 작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솔로몬의 지혜가 매우 컸기 때문에, 그보다 더 크신 그리스도의 지혜가 더욱 선명히 드러나는 것이다.
마 12:4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지혜란 단순히 머리가 좋거나 정보를 많이 아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서 지혜는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지으셨으며, 인간을 어떤 목적으로 창조하셨고, 타락한 인간을 어떤 방식으로 구원하시며,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사람을 어떻게 세우실 것인지를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 지혜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경륜을 알고,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아는 데서 열린다.
필자는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에 지혜를 구하는 기도를 시작하였다. 왜냐하면 필자가 뛰어난 IQ를 가진 것이 아니라 평범한 IQ를 가졌다는 것을 중학교 2학년 때에 IQ검사를 통하여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등학교 2학년 때에 교회에 처음 나가게 되었고 그 때 설교 중에 야고보서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 그것은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하는 말씀이었다(약 1:5). 그래서 그때부터 지혜를 구하는 기도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지혜는 성경을 공부하지도 않았는데 그냥 오는 그러한 지혜는 아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리스도를 깊이 알고자 하며, 성령께서 열어 주시는 계시의 빛 안에서 있을 때에 얻게 되는 지혜이기 때문이다.
약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솔로몬은 지혜를 받은 사람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진 분이시다. 솔로몬은 지혜를 구했고 지혜를 누렸으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 자체로 오셨다. 특히 사도 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지혜라고 선포했다.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성육신과 십자가에서 가장 결정적으로 드러났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지혜의 왕 솔로몬이 섭렵한 세 가지 지혜가 무엇이며, 그 지혜가 어떻게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지혜로 완성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지혜의 왕 솔로몬이 섭렵한 세 지혜는 무엇인가?
솔로몬이 지혜의 왕이었다는 말은 막연한 찬사가 아니다. 성경은 그가 어떤 지혜를 가졌는지 구체적으로 말한다. 열왕기상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과 넓은 마음을 주셨으며, 그의 지혜가 동쪽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났다고 증언한다(왕상 4:29-30).
왕상 4:29-30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 같이 하시니 솔로몬의 지혜가 동쪽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
여기서 솔로몬이 섭렵한 지혜는 세 가지 방면으로 정리된다. 첫째는 동방 사람들의 지혜다. 이는 욥기서에 나타나는 지혜와 연결된다. 욥기서는 동방 사람 욥과 그의 친구들이 고난의 문제, 의인의 문제, 하나님의 섭리, 인간 지혜의 한계를 놓고 씨름하는 책이다. 욥은 자신이 의롭게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을 만난 뒤 자신이 하나님의 세계를 다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므로 동방의 지혜는 인간의 의로움과 고난의 이유를 따지다가, 결국 하나님 앞에서 인간 지혜의 한계를 인정하게 하는 지혜다.
욥기서의 결론은 명확하다. 지혜는 인간이 자기 머리로 모든 것을 해석하는 능력이 아니라, 주를 경외하고 악을 떠나는 것이다(욥 28:28). 이 말씀은 지혜의 본질을 단번에 보여 준다.
욥 28:28 또 사람에게 말씀하셨도다 보라 주를 경외함이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
둘째는 애굽 사람들의 지혜다. 애굽은 고대 세계에서 문명과 학문과 통치술이 발달한 나라였다. 애굽의 지혜는 생활상의 지혜, 통치의 지혜, 처세의 지혜, 문명의 지혜를 포함한다. 잠언에는 이러한 생활 지혜가 많이 나타난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고,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의 금 사과와 같으며, 게으름은 가난을 불러오고,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 된다. 이 모든 것은 이 땅의 삶을 질서 있게 만드는 실제적 지혜다.
그러나 잠언의 생활 지혜는 단순한 세상 처세술로 끝나지 않는다. 잠언은 모든 지식과 지혜의 근본을 여호와 경외에 둔다(잠 1:7, 9:10). 그러므로 잠언은 애굽식 생활 지혜를 넘어 하나님 앞에서 사는 지혜로 올라간다.
잠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셋째는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지혜다. 솔로몬은 동방의 지혜와 애굽의 지혜를 섭렵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지혜를 받았다. 그 지혜로 그는 백성을 재판했고, 성전을 건축했으며, 열방의 왕들이 찾아올 만큼 탁월한 통찰을 나타냈다. 그러나 솔로몬이 경험한 모든 지혜와 부귀와 사업과 쾌락의 마지막 결론은 전도서에서 드러난다. 그는 해 아래 모든 것이 헛되다고 고백했다.
전 1:2-3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솔로몬이 집을 지어 보고, 포도원을 만들어 보고, 정원을 꾸며 보고, 노비와 재물과 노래하는 남녀와 처첩과 학문과 사업을 다 경험했지만, 하나님 없는 인생의 결론은 바람을 잡는 것과 같았다. 그러므로 솔로몬의 위대함은 세상 지혜를 많이 가졌다는 데만 있지 않다. 그는 세상 지혜의 끝을 보고, 결국 하나님을 경외하며 마지막 심판을 준비하는 것이 사람의 본분임을 증언했다(전 12:13-14).
전 12:13-14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그러므로 솔로몬이 섭렵한 세 가지 방면의 지혜는 동방의 지혜, 애굽의 지혜,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다. 하지만 이 세 가지 지혜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다. 솔로몬은 지혜를 받은 왕이지만, 그리스도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진 하나님의 지혜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3.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뜻은 무엇인가?
골로새서 2장 3절은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지혜는 헬라어로 '소피아', 지식은 '그노시스', 보화는 '데사우로스'라는 말과 연결된다. 이는 단순한 정보나 학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감추어 두셨다가 그리스도 안에서 열어 보이시는 구원의 비밀을 가리킨다.
골 2:2-3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이 말씀에서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라는 표현이다. 하나님께서 감추어 두신 비밀은 어떤 철학 체계나 종교적 상징이 아니라 그리스도다. 한 분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분 안에서 창조와 구속과 심판과 왕국의 경륜이 열린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모르면 성경을 많이 읽어도 중심을 놓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알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의 경륜이 하나로 연결된다.
그리스도 안에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는 말은, 성경의 모든 핵심 주제가 그리스도 안에서 해석된다는 뜻이다. 창세기의 생명나무도 그리스도 안에서 해석된다. 성막의 제사와 피 뿌림도 그리스도 안에서 해석된다. 다윗의 왕권도, 솔로몬의 지혜도, 성전도, 아가서의 신랑과 신부도,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과 재림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묶인다.
예수님께서도 모든 성경이 자신에 대하여 증언한다고 말씀하셨다(요 5:39). 그러므로 성경을 연구하는 목적은 단지 지식을 쌓는 데 있지 않고, 성경 속에 계시된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데 있다.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또한 부활하신 주님은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자신을 가리킨다고 말씀하셨다(눅 24:44). 이는 구약 전체가 그리스도 중심으로 열려야 한다는 뜻이다.
눅 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지혜의 중심을 아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비밀이고(골 2:2),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비밀은 교회다(엡 3:4).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생명을 나누어 주시고, 그리스도께 합당한 신부로 교회를 준비하신다. 이 비밀은 아가서에서 구약적 상징과 사랑의 노래로 감추어져 있고, 에베소서에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로 드러난다.
엡 5:31-32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결국 골로새서 2장 3절은 그리스도를 지혜의 창고로 제시한다. 이 세상 지혜는 어떤 분야에는 유익할 수 있으나, 사람의 영원한 운명과 하나님의 경륜을 열어 주지는 못한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하나님이 누구신지, 사람이 왜 지음받았는지, 죄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생명이 어떻게 주어지는지, 사탄 마귀가 어떻게 패배했는지, 교회가 어떤 신부로 준비되는지가 열린다.
4. 표적과 헬라 지혜는 왜 참 지혜가 될 수 없는가?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유대인과 헬라인의 특징을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는다고 했다(고전 1:22). 여기서 표적은 눈에 보이는 기적과 능력의 증거를 가리킨다. 지혜는 헬라 철학과 인간 이성의 탐구를 가리킨다.
고전 1: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첫째, 유대인의 표적을 추구하는 신앙은 결코 참 지혜가 될 수 없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메시아라면 눈에 보이는 강력한 표적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출애굽의 기적, 광야의 만나, 엘리야의 불, 모세와 같은 능력을 기대했다. 그래서 예수님께도 계속 표적을 요구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다고 하셨다. 요나의 표적은 죽음과 사흘 후의 살아남을 가리키며,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예표한다(마 12:39-40).
마 12:39-4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표적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기적을 행하신다. 그러나 표적을 따라가는 신앙은 언제든지 위험해질 수 있다. 사람이 기적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을 수 있고, 병 고침을 받고도 그리스도를 모를 수 있으며, 귀신이 떠나가는 것을 경험하고도 십자가의 도를 붙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표적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표지일 때 의미가 있다. 그러나 표적 자체가 목적이 되면 참 지혜가 되지 못한다.
둘째, 이 세상 것에서 지혜를 찾았던 헬라인들이 찾은 지혜도 마찬가지로 참된 지혜가 될 수 없다. 그들은 만물의 근원이 무엇인지, 세계가 물에서 나왔는지, 불에서 나왔는지, 공기에서 나왔는지, 인간과 진리와 윤리가 무엇인지 탐구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들은 인간 이성의 높은 수준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그들의 지혜는 창조주 하나님께 도달하지 못했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지혜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세상의 지혜는 한계가 있는가? 그것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어느 정도까지만 이 세계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 지혜는 정작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죽음을 이기지 못한다. 악한 영들의 실제를 알려주지 못한다.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사람을 준비시켜주시도 못한다. 그러므로 헬라인의 지혜는 참 지혜가 될 수 없다. 그것은 피조세계 안에서 움직이는 지혜일 뿐, 하나님의 감추어진 경륜을 여는 지혜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하셨다고 말한다(고전 1:21).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오만한 지혜를 무너뜨리시고,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는 뜻이다.
고전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표적 추구와 헬라인의 지혜 추구는 모두 한계를 가진다. 하나는 감각과 능력 체험에 머물고, 다른 하나는 인간 이성 안에 갇힌다. 참 지혜는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셔야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계시의 절정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다.
5. 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지혜인가?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를 추상적인 원리로 설명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말했다(고전 1:23). 그리고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고 선언했다(고전 1:24).
고전 1:23-24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십자가는 겉으로 보면 실패처럼 보인다. 유대인에게 십자가는 거리끼는 것이었다. 그들은 능력의 메시아를 기대했는데,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는 그들의 기대와 맞지 않았다. 또한 헬라인에게 십자가는 미련한 것이었다. 철학적 지혜를 찾는 사람들에게 처형당한 사람이 하나님의 지혜라는 말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십자가는 만세 전에 감추어 두신 지혜가 드러난 자리였다.
고린도전서 2장 7절은 이 지혜가 은밀한 가운데 감추어졌던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의 타임라인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생명나무의 생명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와 상속자와 왕노릇할 존재로 창조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본래 계획이다. 그러나 사람이 사탄 마귀의 미혹을 받아 죄를 범하자, 하나님은 감추어 두신 또 하나의 지혜를 나타내셨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 사건'이다.
고전 2:7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십자가가 하나님의 지혜인 이유는 그 한 사건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동시에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죄를 그냥 넘어가지 않으셨다. 죄의 삯은 사망이므로 죄는 반드시 처리되어야 했다(롬 6:23). 그러나 하나님은 죄인을 멸망시키는 대신, 자신이 육신을 입고 오셔서 죄 없는 사람으로 죽으셨다. 그리하여 죄에 대한 공의가 집행되었고, 죄인에게는 구원의 길이 열렸다.
첫째로, 십자가는 인간의 구속과 생명을 해방하여 분배해주는 자리였다. 먼저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를 속량하셨다(막 10:45).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속죄를 위한 행위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기 안에 가지신 하나님의 생명을 해방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다(요 12:24). 이는 예수님의 죽음이 단지 죄값을 치르는 사건만이 아니라, 그분 안에 있는 생명이 부활 후 성도들에게 분배되는 사건임을 나타낸다.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둘째로, 더 나아가 십자가는 사탄 마귀를 무너뜨린 자리다. 세상의 통치자들은 이 지혜를 알지 못했다.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이다(고전 2:8). 사탄은 예수님을 죽이면 하나님의 일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죽음이 오히려 자신의 권세를 무장 해제하는 하나님의 지혜가 될 줄 몰랐다.
고전 2: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그러므로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다고 말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고전 2:2). 십자가는 모든 지혜의 중심이다. 십자가를 알면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고, 죄의 무서움을 알게 되며, 생명의 길을 알게 되고, 사탄의 패배를 알게 된다.
고전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6. 왜 하나님은 성육신과 십자가로 마귀를 멸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다. 그러므로 사탄 마귀를 당장 소멸시키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순한 힘의 방식으로 사탄을 처리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자신의 의와 지혜와 법적 질서에 합당한 방식으로 마귀를 멸하기로 하셨다. 그 방법이 바로 성육신과 십자가 사건이다.
첫째로, 성육신은 한 분 하나님께서 혈과 육을 입고 사람으로 오신 사건이다. 이 일로 인하여 사탄마귀를 사람이신 예수님을 만만한 상대로 볼 수 있었다. 이 모든 비밀을 알게 된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2장 14절은 성육신의 목적을 분명히 밝혀주었다. 자녀들이 혈과 육에 속했으므로 그분도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셨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기 위함이다(히 2:14).
히 2: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여기서 하나님의 지혜가 드러난다. 사탄은 지혜로운 피조물이었다. 에스겔 28장은 두로 왕을 빗대어 타락한 존재의 아름다움과 지혜를 말한다. 그는 지혜가 충족하고 온전히 아름다웠으나, 결국 교만과 불의로 타락했다(겔 28:12, 15).
겔 28:12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슬픈 노래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도장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겔 28:15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네게서 불의가 드러났도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타락한 지혜자를 더 높은 지혜로 꺾으셨다. 하나님은 하늘 보좌에서 명령 한마디로 사탄을 없애는 방식이 아니라, 사람의 자리로 내려오셔서 사람으로 이기는 방식을 택하셨다. 이는 사탄이 하나님과 맞서는 수준의 존재가 아니라,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 앞에서도 패배하는 존재임을 드러내신 것이다.
마태복음 4장에서 사탄은 예수님을 시험하며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말했다(마 4:3). 이 말은 그가 예수님의 정체를 온전히 알지 못했음을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신 비밀은 만세 전부터 감추어져 있었고, 사탄은 그 비밀을 알지 못했다.
마 4: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둘째,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합법적으로 사탄마귀를 멸하는 사건이 되었다. 사탄은 예수님이 혈과 육을 가진 사람이므로 죽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 권세와 군중을 움직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했다. 그러나 그것이 사탄의 결정적 패배가 되었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죄가 있는 사람은 죽음의 권세 아래 놓인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다. 사탄은 죄 없는 분을 죽임으로 불법을 행했고, 그 결과 죽음의 권세를 빼앗기게 되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자신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다고 말씀하셨다(계 1:17-18). 이는 사탄이 쥐고 있던 죽음의 권세가 그리스도께 넘어갔음을 보여 준다.
계 1:17-18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이 방식은 하나님의 공의와 지혜가 함께 작동한 방식이다. 하나님이 피조물인 사탄을 단순히 힘으로 없애셨다면 사탄은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 사라졌을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으로 오셔서 사람의 위치에서 사탄을 이기셨다. 이것은 사탄의 교만을 가장 깊이 꺾는 방식이다. 그는 자신이 인간보다 우월한 영적 존재라고 여겼으나,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 앞에서 패배했다. 그러므로 성육신은 낮아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탄의 지혜를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더 높은 지혜였다.
그러므로 성육신은 인류에게는 구원의 길을 열기 위한 방법이었고, 사탄에게는 덫과 같은 하나님의 지혜였다. 하나님은 혈과 육을 입고 오심으로 사람이 되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사탄이 불법을 행하게 하셨으며, 부활로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셨다. 이것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지혜인 이유다.
7. 십자가는 속죄와 생명 분배와 마귀 멸함을 어떻게 이루었는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은 한 가지 의미만 가진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를 위한 속죄의 죽음이며, 하나님의 생명을 분배하는 죽음이며, 사탄 마귀를 멸하는 죽음이다. 이 세 가지를 분리하면 십자가의 지혜를 온전히 볼 수 없다.
첫째, 십자가는 속죄의 죽음이다.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다(막 10:45). 여기서 대속물은 헬라어 뤼트론과 연결되며, 값을 치르고 놓아 주는 의미를 가진다. 인간은 죄 때문에 사망의 권세 아래 있었으나, 예수님께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죄값을 대신 담당하셨다.
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둘째, 십자가는 생명 분배의 죽음이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다. 이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단지 죄값을 처리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이 해방되어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지는 사건임을 가리킨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생명 주는 영으로 성도들에게 생명을 주신다(고전 15:45).
고전 15: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도 생명과 관련된다. 요한복음 10장 10절은 주님이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고 오셨다고 말한다(요 10:10). 그러므로 성육신과 십자가의 목적은 단지 죄의 용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을 사람 안에 넣어 주어 하나님의 자녀와 상속자와 왕노릇할 자로 세우는 데 있다.
요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셋째, 십자가는 마귀를 멸하는 죽음이다. 요한일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목적이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함이라고 말한다(요일 3:8). 마귀의 일은 죄를 짓게 하고, 죽음의 권세 아래 묶어 두며, 귀신들을 통해 사람의 몸과 삶을 더럽히고, 결국 지옥으로 끌고 가는 일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이 마귀의 일을 깨뜨리셨다.
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골로새서 2장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을 무력화하시고 구경거리로 삼으셨다고 말한다(골 2:14-15). 여기서 무력화는 영적 권세의 무장 해제를 의미한다. 귀신들은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십자가 이후 법적 권세를 잃은 존재들이다. 그래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악한 영들을 대적하고 내보낼 수 있다.
골 2:14-15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그러므로 십자가는 인류 편에서는 속죄와 생명의 사건이고, 사탄 편에서는 패배와 무장 해제의 사건이다. 하나님은 하나의 십자가 사건 안에서 죄를 처리하시고, 생명을 분배하시고, 마귀를 멸하셨다. 이것이 인간의 지혜로는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다.
8. 아가서는 왜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을 담은 최고봉인가?
아가서는 지혜문학 가운데 가장 깊이 감추어진 책이다. 욥기와 잠언과 전도서는 지혜를 직접 말한다. 그러나 아가서에는 지혜라는 단어가 중심 주제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가서는 지혜문학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아가서는 지혜를 설명하지 않고, 하나님의 지혜의 최종 목적을 사랑의 노래와 상징 안에 감추어 보여 주기 때문이다.
아가서는 단순한 남녀의 연애시가 아니다. 물론 문자적으로는 신랑과 신부의 사랑을 노래한다. 그러나 정경 전체의 빛에서 보면, 아가서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을 예표적으로 담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얻고자 하시는 것은 단순히 죄 용서받은 개인들의 집합이 아니다. 그리스도께 합당한 신부,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들어갈 교회다.
아가서 1장 14절에서 술람미 여인은 사랑하는 자를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라고 부른다(아 1:14). 엔게디는 광야 가운데 샘이 있는 곳이며, 다윗이 사울을 피해 숨었던 장소와도 연결된다. 고벨화는 히브리어 코페르와 관련되며, 식물로는 고벨화 혹은 헤나를 가리키지만, 같은 어근은 덮음과 속전의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 설교적 관점에서 이는 그리스도의 피와 대속의 사랑을 깊이 생각하게 한다.
아 1:14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
아가서 2장 2절에는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라는 표현이 나온다(아 2:2). 가시나무는 창세기 3장의 타락 이후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게 된 저주의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그 가시나무 가운데 피어난 꽃은 죄와 고통과 저주의 세상 가운데 나타난 순결한 사랑과 생명의 표지다.
아 2:2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
그러므로 아가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감춘 책이다. 특히 그 사랑은 피 흘림의 사랑이다. 하나님께서 사람 되어 오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이유는 단지 죄인을 용서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분은 자신의 생명을 나누어 주어 교회를 신부로 준비시키신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
에베소서 5장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말하다가, 그것이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큰 비밀이라고 말한다(엡 5:31-32). 이 말씀은 아가서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아가서의 신랑과 신부는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바라보게 한다.
엡 5:31-32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이때 아가서의 상징을 함부로 뭉뚱그려서는 안 된다. 포도원은 열매 맺는 생명과 돌봄의 영역을 가리키고, 향품은 그리스도의 향기와 성도의 성숙을 생각하게 하며, 신랑의 찾아옴과 신부의 응답은 은혜와 믿음의 질서를 보여 준다. 아가서는 상징을 통해 감춘 책이지만, 감추었다는 말은 아무렇게나 해석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성경 전체의 흐름,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피 흘림, 교회의 신부 됨이라는 큰 경륜 안에서 하나씩 정밀하게 읽어야 한다.
결국 지혜의 끝은 처세가 아니다. 지혜의 끝은 하나님을 알고,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교회가 신부로 준비되는 것이다. 아가서가 지혜문학의 최고봉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잠언은 지혜의 길을 가르치고, 전도서는 해 아래 인생의 헛됨을 폭로하며, 욥기는 인간 지혜의 한계를 드러낸다. 그러나 아가서는 그 모든 지혜의 목적이 그리스도의 사랑과 교회의 준비에 있음을 노래한다.
그러므로 아가서를 읽을 때에는 단순한 연애 이야기로만 보지 말아야 한다. 그 안에 감추어진 그리스도의 피, 사랑, 신부의 준비, 교회의 부르심, 어린양의 혼인 잔치를 보아야 한다. 요한계시록은 마지막에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다고 말한다(계 19:7). 이것이 아가서가 향하는 최종 지점이다.
계 19: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9. 나오며
이번 시간에는 지혜의 왕 솔로몬이 섭렵한 세 가지 지혜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를 살펴보았다. 솔로몬은 동방 사람들의 지혜와 애굽 사람들의 지혜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두루 경험한 왕이었다. 그러나 그의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예표였으며, 그 자체로 완성은 아니었다. 솔로몬보다 더 크신 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세상 지혜는 삶의 한 부분을 도울 수 있다. 동방의 지혜는 고난과 인간 한계를 생각하게 하고, 애굽의 지혜는 생활과 통치와 처세의 유익을 줄 수 있다. 헬라의 지혜는 이성의 탐구를 발전시킬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지혜도 사람을 죄와 사망과 마귀의 권세에서 구원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성도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진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다. 그 십자가에서 속죄가 이루어졌고, 생명이 분배되었으며, 죽음의 세력을 잡은 마귀가 멸망의 판결을 받았다. 사탄은 예수님을 죽이면 이길 줄 알았으나, 죄 없으신 그리스도를 죽임으로 도리어 자기 권세를 잃었다. 이것이 만세 전에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지혜다.
성도는 이 지혜를 단순한 교리로만 알고 있어서는 안 된다. 십자가의 지혜 안에서 회개해야 하고, 악한 영들을 내보내야 하며, 성령의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 또한 장차 심판대 앞에 설 것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리스도의 신부로 준비되어야 한다. 아가서가 보여 주는 것처럼 하나님의 지혜의 최종 목적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이며,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들어갈 신부의 준비다.
그러므로 참 지혜자는 세상 지혜를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이다. 참 지혜자는 표적만 좇는 사람이 아니라 십자가의 도를 붙드는 사람이다. 참 지혜자는 철학적 사유만 높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을 깨닫고, 성육신과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아는 사람이다. 또한 참 지혜자는 자기 안의 죄와 악한 영의 문제를 처리하고, 성령의 생명 안에서 장차 왕노릇할 자로 준비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솔로몬을 통하여 지혜를 보되, 솔로몬에게 머물지 않아야 한다. 솔로몬의 지혜를 지나 그리스도에게 가야 한다. 잠언의 지혜를 지나 십자가의 지혜를 붙들어야 한다. 전도서의 허무를 지나 영원한 생명을 보아야 한다. 아가서의 사랑을 지나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을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지혜를 붙들고,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서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6월 19일(금)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