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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6. 25. (목)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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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입니다(투박한 글 요약)

제목: [기독론(132)] 다윗의 아들 솔로몬(10) 아가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8가지 신분(04) 목자, 포도원의 주인, 동산지기(아4:12-5:2)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zlfsiieZce4

 

1. 들어가며

  아가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최소 여덟 가지 신분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분은 왕이시고 창조주이시며 또한 속전이시다. 이것은 지난 시간을 통해 살펴보았다. 이제는 그분이 목자이며 포도원의 주인이시며 동산지기라는 것을 살펴보려고 한다. 이 세 가지 신분은 각각 별개의 주제가 아니라 하나의 동산이라는 공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시는 일을 세 방향에서 조명한할것이다.

  우리는 솔로몬 왕으로 예표되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분이 얼마나 풍성한 분이신지가 살펴보고 있다. 첫 번째로 그분은 새 예루살렘의 왕이신 것을 살펴보았고, 두 번째로는 그분이 천사와 인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창조주이심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속전으로서 고벨화 송이로 예표되었음도 살펴보았다. 여기서 '고벨화'는 아가서에만 등장하는 식물이다. 특히 그분은 빨간색과 흰색과 노란색의 세 가지 색으로 어울어진 분이시다(아 5:10). 그것은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과 순결함과 천국의 영광을 동시에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의 송이라는 표현 속에 생명의 근원에서 나오신 그분이 속전으로 오셔서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산출하신다는 경륜까지 살펴보았다. 

  사실 필자가 아가서를 처음 연구하기 시작했을 때 단어 하나, 소품 하나, 색깔 하나, 숫자 하나가 모두 그리스도와 교회를 설명하기 위해 고도로 계산되어 배치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깊은 감동을 받았다. 성경 책 한 권 한 권을 연구해 오면서 이처럼 모든 단어가 살아서 말하는 책을 만난 것이 처음이었다. 눈물이 쏟아질 정도였다. 왜 이 책이 성경 안에 들어왔는지가 분명해졌다. 지금까지 연구해 온 어떤 성경 책도 이처럼 그리스도를 가슴 절절하게 드러낸 책은 없었다. 이 책 한 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과 사역, 그리고 그분의 신부가 어떤 존재로 성장해 가야 하는지를 모두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아가서는 한 마디로 '지혜 문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솔로몬이 잠언 삼천 가지를 말하고 노래가 천다섯 편이었는데(왕상 4:32), 그 모든 것 가운데 성경에 포함된 것은 아가서 하나이다. 수천 편의 노래 중에 오직 이 한 편이 성경이 된 이유가 있다. 그 안에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하나님의 가장 깊은 계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계시는 오늘 우리에게도 직접 말씀하신다. 아가서를 깊이 연구할수록 이 책이 왜 지혜 문학의 정수라 불리는지를 알게 된다. 표면에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있지만, 그 아래에는 창조부터 종말까지의 구원 역사가 담겨 있다.

  이 시간에는 아가서 6장 2절과 3절에서 신부가 남편을 찾다가 발견하는 장면을 중심으로, 그분이 자신의 동산에서 무슨 일을 하고 계셨는지를 살피고자 한다. 그 동산 안에서 그분은 목자이고, 포도원의 주인이고, 동산지기이시다. 이 세 가지 신분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현재적 사역이 무엇인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히브리서 7장 25절에서 그분이 항상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고 선언한다. 지금도 일하시고 지금도 중보하시며 지금도 돌보신다. 그분은 과거에 십자가에서 속전을 치르셨을 뿐 아니라, 지금도 현재 진행형으로 일하고 계신다. 양 떼를 먹이시고, 포도원을 가꾸시며, 동산을 돌보시는 일이 지금도 멈추지 않고 있다. 그 사역에 우리가 동참하도록 우리를 부르신다.

아 6:2-3 내 사랑하는 자가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서 향기로운 꽃밭에 이르러 동산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며 백합화를 꺾는구나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도다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는구나

 

2. 아가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과 사역을 어떻게 통합적으로 계시하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공부하는 데는 두 가지 큰 축이 있다. 첫 번째는 그분이 누구이신가, 즉 신분의 문제이다. 두 번째는 그분이 무슨 일을 하셨는가, 즉 사역의 문제이다. 신학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인격(Person)과 그리스도의 사역(Work)이라고 부른다. 이 두 가지가 기독론의 큰 뼈대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면 알수록 그분을 더 사랑하게 되고, 더 사랑할수록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가게 된다. 아가서는 그 알아가는 과정에서 가장 깊은 계시를 주는 책이다.

  신약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신분은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에서 가장 풍성하게 계시된다. 요한복음 1장은 태초에 말씀으로 계셨던 창조주를 선포하고, 요한계시록은 만왕의 왕이요 심판주이신 그리스도를 선포한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공관복음서에서 주로 나타난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이 기록하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기적과 귀신 쫓아내심이 그 사역의 역사이다. 예수님이 공생애 기간 동안 하신 일들을 살피면, 절반 이상이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는 일이었다. 그러나 신약 신학자들은 주로 요한복음을 기준으로 기독론을 연구하다 보니 이 귀신 쫓아내심의 주제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졌다. 아가서는 그 공백을 채운다. 골로새서는 바울의 기독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며, 에베소서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가장 깊이 다룬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있다. 아가서는 이 모든 것을 하나로 통합한다. 아가서는 그리스도의 신분을 왕, 창조주, 속전, 목자, 포도원의 주인, 동산지기, 재림주, 신랑의 여덟 가지로 묘사한다. 그리고 그 신분들 각각이 그분의 사역과 분리할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 왕이시기 때문에 가마를 보내시고,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생명을 나누어 주시며, 속전이시기 때문에 피를 흘리신다. 목자이시기 때문에 양 떼를 먹이시고, 포도원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열매를 산출하시며, 동산지기이시기 때문에 나무와 풀과 향품을 가꾸신다.

  특히 아가서는 요한복음이 명시적으로 다루지 않는 귀신 쫓아내심의 주제를 포함한다. 오빠들로 표현되는 타락한 천사들, 여우로 표현되는 귀신들, 사자굴과 표범산으로 표현되는 악한 영들의 억압이 아가서 전체에 걸쳐 등장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핵심 중 하나가 바로 이 귀신들을 쫓아내는 것이었는데, 아가서가 그 사실을 가장 생동감 있게 보여 준다.

히 2:11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받는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아가서가 이처럼 깊은 신학적 계시를 담고 있는 것은 솔로몬이 성령의 감동으로 이 책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성전을 완공한 후, 그 성전의 영적 의미를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받아 아가서라는 문학 작품으로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단어 하나하나가 그냥 선택된 것이 없다. 등장인물, 소품, 지명, 식물, 색깔, 숫자,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신부를 설명하기 위해 정교하게 배치되었다. 이것이 아가서를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가장 풍성한 계시의 책으로 만들어 준다.

  아가서가 가진 또 하나의 독특함은 이것이 구약 성경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점이다. 성전이 완공된 직후 솔로몬에 의해 기록된 이 책은, 마치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성전이 가리키는 영적 실재가 무엇인지를 직접 보여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와 교회를 놀라운 문학적 언어로 담아낸다. 이것이 단순한 솔로몬의 연애 시가가 아닌 이유이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이 책 안에 하나님이 만세 전에 계획하신 구원의 경륜이 가장 아름답게 담겨 있다.

 

3. 신랑이 신부를 레바논의 사자굴과 표범산에서 내려오라고 부르는 의미는 무엇인가?

  아가서 4장 8절에서 신랑은 신부에게 레바논에서 나와 함께 가자고 초청하면서, 사자굴과 표범산에서 내려오라고 말한다.

아 4:8 내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굴과 표범산에서 내려오라

  이 구절을 이해하려면 먼저 '레바논'이 무엇을 상징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레바논은 히브리어로 '흰산'이라는 뜻이다. 만년설로 뒤덮인 헤르몬 산이 있는 지역이다. 그 흰 눈처럼 죄가 없어 보이는 곳, 그러나 그 안에는 사자굴과 표범산이 있는 곳이 레바논이다. 술람미 여인이 오빠들의 강요로 일하던 바알하몬의 포도원이 바로 이 레바논 지역에 있었다. 낭떨어지 바위틈에 숨은 비둘기처럼, 신부는 레바논의 험한 곳에 처해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럼, '사자'와 '표범'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그것은 다니엘 7장이나 요한계시록 13장 1절부터 2절에서 계시된다. 그것들은 사탄의 대리인인 적그리스도와 같은 자로서,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다고 묘사된다. 특히 다니엘서 7장에서 사자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을, 표범은 헬라 제국의 알렉산더 대왕을 상징하고 있다. 이 짐승들은 강력한 포식자, 즉 영적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악한 영들을 가리킨다. 참고로 곰으로 표현된 바사제국의 고레스 왕은 천국에 들어갔기에 빠진 것 같아 보인다. 

계 13:1-2 내가 보니 바다에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즉 신부는 가장 강력한 악한 영들이 지배하는 환경 속에 갇혀 있었다. 사자굴 안에 있는 다니엘처럼, 신부는 그 영적 압박 속에서 순결을 지키며 살고 있었다.

  이것이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가는 성도들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 준다. 우리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는 마귀가 돌아다니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벧전 5:8). 강력한 영적 억압과 핍박과 유혹이 사방에서 밀려온다. 그러나 신부는 그 속에서도 비둘기처럼 순결을 지킨다. 그것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성도의 모습이어야 한다. 세상이 강력할수록, 원수가 더 클수록, 우리의 순결을 지키는 것이 더 빛난다. 그리고 그 순결 속에서 신랑의 눈에 아 름다운 자로  인정받는다.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그 극한의 환경에서도 신부는 비둘기 같은 순결을 잃지 않았다. 이것이 핵심이다. 원수들이 강력할수록, 환경이 혹독할수록, 순결을 지키는 것이 더 빛난다. 금이 불 속에서 제련되어 더욱 순수해지듯, 신부는 레바논의 사자굴과 표범산 속에서 오히려 더 순결하게 단련된다. 이것이 핵심이다. 원수들이 강력할수록, 환경이 혹독할수록, 순결을 지키는 것이 더 빛난다. 금이 불 속에서 제련되어 더욱 순수해지듯, 신부는 레바논의 사자굴과 표범산 속에서 오히려 더 순결하게 단련된다.

아 2:14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내가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신랑이 거기서 나와 함께 가자고 부르는 것은 구원의 초청이다. 그 강력한 원수들이 지배하는 곳에서 신부를 이끌어 내겠다는 선언이다. 그러나 단순히 거기서 빠져나오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신랑은 그 사자굴과 표범산의 원수들과 싸워서 이기고, 신부로 하여금 원수의 진영에 깃발을 꽂는 전사가 되게 하는 것이 목표이다. 신부는 피해자로 구출되는 것이 아니라 전사로 세워진다. 이것이 아가서가 제시하는 신부의 여정이다.

  레바논이라는 지명 자체도 의미심장하다. 흰 눈이 덮인 산이지만 그 안에 사자굴이 있다는 것은, 겉보기에는 깨끗해 보이지만 내면에 강력한 영적 억압이 있는 상태를 상징한다. 그 상태에서 신랑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진정으로 자유롭고 깨끗한 존재로 만드시겠다는 것이 이 구절의 선언이다.

 

4.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아가서와 요한계시록에서 어떻게 묘사되는가?

  신부가 잃어버렸던 신랑을 찾아 나선 끝에 마침내 발견하는 장면이 아가서 6장 2절에 나온다. 신랑이 어디에 있었는가?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서 양 떼를 먹이고 있었다. 신랑은 신혼에도 자신의 동산에서 양 떼를 돌보는 목자로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 6:2 내 사랑하는 자가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서 향기로운 꽃밭에 이르러 동산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며 백합화를 꺾는구나

  여기서 백합화를 꺾는다는 번역은 정확하지 않다. 백합화, 즉 아네모네는 순교를 상징하는 꽃이다. 핏빛의 선명한 붉은색으로 피어나는 이 꽃은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들, 특히 순교자들을 상징한다. 이 꽃을 꺾을 수는 없다. 정확한 번역은 백합화를 거두어 드린다이다. 순교자들이 올라올 때 예수님이 직접 나가서 그들을 영접하는 장면이다. 신랑이 밤새 동산에 있다가 늦게 집에 돌아온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순교하고 올라오는 영혼들을 맞이하고 위로하고 영광스러운 상을 주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목자 되심은 아가서뿐 아니라 시편 23편과 요한복음 10장에서도 잘 나타난다. 시편 23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선언한다. 요한복음 10장 11절에서 예수님은 친히 나는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7장 17절에서 이 목자 되심은 영원한 차원에서 선언된다.

계 7:16-17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이 구절이 묘사하는 대상은 누구인가? 주리고 목마르고 뜨거운 기운에 몸이 상한 자들이다. 이것은 복음을 위해 고문을 받고 굶주리고 목마른 채 순교한 자들의 상태이다. 그들이 천국에 올라왔을 때 예수님은 직접 목자로서 그들을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신다. 더 이상 고문도 없고, 굶주림도 없고, 목마름도 없는 곳으로 이끄시는 것이다.

  그 목자 사역 앞에 죽음도 막지 못한다. 요한복음 10장 15절에서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나를 아심 같이 나도 아버지를 알고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고 말씀하셨다.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 아가서의 신랑이 밤이슬을 맞으며 동산에서 일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양 떼를 돌보셨다. 아가서의 신랑이 밤이슬을 맞으며 동산에 있었던 것은 그 목자 사역의 시적 표현이다. 신혼에도 신부보다 양 떼를 먼저 챙기시는 그분의 헌신이 우리를 감동시킨다.

요 10: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심 같이 나도 아버지를 알고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그래서 아가서의 신랑이 양 떼를 먹인다는 표현은 단순한 목가적 장면이 아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따르다가 고통받고 순교한 영혼들을 직접 영접하고 먹이며 돌보는 목자로 활동하고 계신다. 그것이 그분의 현재적 사역이다.

요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또한 양 떼가 사자와 표범에게 잡혀가는 것을 막는 분이시다. 시편 23편이 선언하는 것처럼, 그분은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이끄신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우리와 함께하신다.

시 23:1-4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다윗이 사자와 곰에게서 양을 구출한 것처럼(삼상 17:34-35), 예수 그리스도는 사탄과 귀신들의 억압에서 우리를 건져 내시는 목자이시다. 아가서의 신부가 레바논의 사자굴과 표범산에서 고통받고 있을 때, 신랑이 직접 내려와 너는 나와 함께 가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바로 이 목자 되심의 표현이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보면 그분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사람들을 찾아가셨는지가 드러난다. 삭개오가 나무 위에 올라갔을 때 예수님이 먼저 그를 보시고 내려오라고 하셨다. 38년 된 중풍 병자가 못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예수님이 직접 찾아가셨다. 목자는 양을 기다리지 않는다. 양을 찾아 나선다. 이것이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방식이다(눅 15:4-5).

눅 15:4-5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 또 찾아낸즉 기뻐 어깨에 메고

 

5. 포도원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 산출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아가서의 동산 안에는 포도원이 있다. 신랑은 그 동산의 주인이며, 따라서 그 안의 포도원의 주인이기도 하다. 포도원은 성경 전체에서 이스라엘과 교회를 상징하는 핵심 이미지이다. 이사야 5장 7절에서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에서 자신이 참포도나무이고 신자들이 가지라고 말씀하신다.

요 15: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포도원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은 아가서 8장 11절에서 확인된다. 솔로몬이 바알하몬에 포도원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지키는 자들에게 맡겨 두었다. 술람미 여인의 오빠들이 그 포도원지기를 맡아서 여동생을 강제로 일하게 했다. 그러나 그 포도원의 진정한 주인은 솔로몬이었다. 이처럼 이 세상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백성의 포도원, 즉 교회의 진정한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아 8:11-12 솔로몬이 바알하몬에 포도원이 있어 지키는 자들에게 맡겨 두고 그들로 각기 그 열매로 말미암아 은 천 개를 바치게 하였구나 솔로몬 나의 포도원은 내 앞에 있구나 은 천 개는 너 솔로몬 네 것이요 이백 개는 그 열매를 지키는 자의 것이니라

  포도원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 포도원에서 열매를 산출하시기를 원하신다. 요한복음 12장 24절에서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다. 이 말씀이 고벨화 송이의 의미와 연결된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많은 알들, 곧 수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산출된다. 그리고 그 자녀들 각각이 다시 다른 이들에게 생명을 전함으로 포도원은 계속 확장된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성장 원리이다. 작은 겨자씨가 자라서 큰 나무가 되는 것처럼(마 13:31-32), 한 알의 밀이 죽어 많은 열매를 맺듯이, 포도원은 계속 자라고 넓어진다.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그러므로 포도원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핵심적인 사역은 교회를 산출하는 것이다. 그분은 자신의 피를 흘리심으로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낳으신다. 그리고 낳아진 그 자녀들이 다시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새로운 포도송이들을 만들어 낸다. 이것이 포도원의 주인이신 그분이 원하시는 열매이다.

  포도원에서 열매를 맺으려면 반드시 여우를 잡아야 한다. 작은 여우들이 포도원을 망친다. 이 작은 여우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귀신들, 혹은 우리의 작은 죄와 습관들을 상징하기도 한다. 큰 적그리스도나 강력한 악한 영보다 오히려 이 작은 여우들이 포도원을 더 망친다. 아가서 2장 15절의 작은 여우가 포도원을 허문다는 말씀이 이것을 가르친다.

  포도원은 또한 교회의 연약함과 보호의 필요성을 가르친다. 아가서 2장 15절에서 여우들을 잡으라고 한다. 작은 여우들이 포도원을 망친다는 것이다. 여우는 포도원을 헤치는 작은 귀신들을 상징한다. 포도원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 여우들, 곧 교회를 공격하는 귀신들을 쫓아내심으로 포도원을 보호하신다.

아 2:15 우리를 위하여 여우를 잡으라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포도원의 주인이신 그분이 이 포도원에서 원하시는 것은 풍성한 열매이다. 그 열매는 수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만세 전부터 계획하신 경륜의 목적이다. 에베소서 1장 4절에서 창세 전에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다고 하셨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포도원의 귀한 열매로 미리 계획되었다.

엡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요한복음 15장 16절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다. 포도원의 주인이 가지들을 세우는 목적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 열매가 항상 있어야 한다. 한 철의 열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열매를 맺어야 한다. 이것이 포도원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다.

요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고벨화 송이처럼 한 나무에서 많은 알들이 열리듯, 그분의 십자가 사역을 통해 수많은 성도들이 모여 교회라는 포도원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7장 9절에서 이 큰 무리가 완성되는 장면이 나온다.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선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온 자들이다. 이것이 포도원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원하시는 열매의 최종 모습이다. 한 나라, 한 민족, 한 언어가 아닌 온 세계 모든 사람들이 그 포도원에 모이는 것이다.

계 7: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6. 동산지기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동산(히, '간')은 어떤 곳이며, 그 안에는 무엇이 있는가?

  아가서에서 동산은 히브리어로 '간(גַּן)'이다. 에덴동산이라 할 때의 그 동산이다. '간'은 단순한 정원이 아니라 울타리로 둘러쳐진 공간을 가리킨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셨을 때, 그 동산은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교제하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죄로 인해 인간이 그 동산에서 쫓겨났다. 아가서의 동산은 그 에덴동산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 것이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닫힌 공간, 문을 열어 주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아 4:12 내 누이, 내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신랑이 신부를 가리켜 '잠근 동산'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녀가 신랑 한 사람만을 위하여 자신을 지켜 온 존재임을 말한다. 그리고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동산, 즉 천국도 잠근 동산이다. 누구나 들어오기를 원할 수 있지만, 합당한 자격을 얻은 자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그 안에는 생명수 샘이 있고 덮은 우물이 있다. 구약 시대에는 생명수가 봉해져 있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그 봉한 샘이 열리고 생명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 동산 안에는 무엇이 있는가? 아가서 4장 13절부터 14절은 동산 안의 식물들을 열두 가지로 열거한다. 이것들이 단순한 식물 목록이 아니라는 것을 성경 전체의 맥락에서 읽을 때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이 동산을 계시하실 때 각각의 식물에 신학적 의미를 부여하셨다. 하나하나가 예수 그리스도의 다양한 면모와 그분의 구속 사역을 가리키는 상징이다. 일곱 가지 나무와 다섯 가지 풀과 향품이다. 여기에서 일곱 나무는 석류나무, 각종 아름다운 과수(사과나무와 포도나무), 고벨화나무, 계수나무, 유향나무, 몰약나무이고, 다섯 가지 풀은 나도풀, 나도(나드), 번홍화(샤프란), 창포, 침향(알로에)이다. 여기에는 향품들이 포함되어 있다.

아 4:13-14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풀이며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이 열두 가지는 단순한 식물 목록이 아니다. 각각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역에 관한 신학적 상징이다. 석류나무는 밖이 밝은 빨간색이고 안에 수많은 열매가 가득하다. 예수님의 피로 많은 생명을 잉태한다는 뜻이다. 사과나무는 앞에서 살펴본 대로 생명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고벨화는 속전이신 그분이다. 몰약은 죽음과 장례를 준비하는 향품으로 십자가의 죽음을 가리킨다. 유향은 부활의 향기를 가리킨다.

  이 열두 가지 식물이 동산 안에 가득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동산에 그분의 사역에 관한 모든 진리가 충만하게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열두라는 숫자도 의미심장하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예수님의 열두 사도, 요한계시록 새 예루살렘 성의 열두 문과 열두 기초석처럼, 열둘은 하나님의 완전하고 충만한 나라를 상징하는 숫자이다. 동산 안에 열두 가지가 있다는 것은 그 동산이 하나님 나라의 충만함을 담은 장소임을 의미한다.

계 21:12-14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동쪽에 세 문, 북쪽에 세 문, 남쪽에 세 문, 서쪽에 세 문이라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신부가 그 동산 안에 들어가는 것은 단순히 천국에 입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모든 사역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19장 14절에서 신부는 단지 혼인 잔치에 참석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어린양과 함께 백마를 타고 출정하는 군대로 등장한다. 동산에 거주하는 자는 결국 신랑과 함께 통치하는 자가 된다.

계 19: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신랑은 그 동산에 모든 사람이 들어오기를 원하신다. 아가서 4장 16절에서 신부가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라고 외친다. 동산의 향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야 한다. 그 향기를 맡은 사람들이 동산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해야 한다. 이것이 선교이다. 복음의 향기가 퍼져 나가야 한다. 동산 안에 있는 사람들만 향기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 향기가 울타리 밖으로 나가서 아직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해져야 한다. 바울이 고린도후서 2장 14절에서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라고 한 것이 바로 이 동산의 향기 선교이다.

고후 2: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때 그들이 향기를 맡고 동산을 찾아오게 된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포도원의 주인이시고 동산지기이신 그분이 원하시는 일이다.

  또한 동산 안에 덮은 우물과 봉한 샘이 있다는 것도 중요하다. 생명수가 준비되어 있다. 구약 시대에는 봉해져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그 봉이 열렸다. 요한복음 4장 14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요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아 4:16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열매 먹기를 원하노라

  그리고 아가서 8장 13절에서 신랑은 신부의 최종 상태를 이렇게 선언한다. 너 동산에 거주하는 여자야. 신부의 최종 목적지는 동산에 거주하는 자이다. 처음에는 레바논의 사자굴과 표범산에서 고통받던 존재가, 마침내 신랑의 동산 안에 들어와 거주하는 자로 완성되는 것이다. 그 여정에서 신랑은 한 번도 신부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사자굴에서 이끌어 내시고, 실수할 때마다 다시 찾아오시며, 동산까지 인도하시는 신랑의 변함없는 사랑이 이 여정을 완성으로 이끈다. 우리의 신앙 여정도 이와 같다.

 

7. 신랑이 결혼 후에도 새벽까지 밖에서 늦게 온 이유는 무엇인가?

  아가서 5장 2절은 아가서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이다. 결혼을 한 신부가 잠을 자고 있는데, 신랑이 문을 두드린다. 신부는 깊이 잠들어 있었지만 마음이 깨어 있어서 그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그 시간이 밤늦은 새벽이었다. 신혼인데 신랑이 밤새 밖에 있다가 새벽에 들어온 것이다.

아 5:2 내가 잘지라도 마음이 깨어 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 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가득하고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다 하는구나

  신랑의 머리에는 밤이슬이 가득하다. 그 이슬을 맞으며 밤새 밖에 있었다는 뜻이다. 신혼인 신부로서는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신부는 문을 열지 않았다. 옷을 이미 벗었고 발을 씻었으니 다시 더럽히기 싫다는 핑계로 문을 열어 주지 않은 것이다(아 5:3).

아 5:3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

  그러나 신랑이 늦게까지 밖에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 아가서 6장 2절에서 나중에 신부가 발견한 신랑의 모습을 보면, 그는 자기 동산에서 양 떼를 먹이고 백합화를 거두어 들이고 있었다. 순교하고 올라오는 영혼들을 영접하고, 고문과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고통받다가 올라온 자들을 위로하고 먹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신랑이 신혼에도 집에 일찍 들어오지 못한 이유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이 시간에도 자신의 이름을 위해 고통받고 순교하는 영혼들을 직접 맞이하고 돌보는 일을 하고 계신다.

  요한계시록 6장 9절부터 11절에서 순교자들의 영혼이 제단 아래에 있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은 주님께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느냐고 외친다. 주님은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고 잠시 기다리라고 하신다. 그 흰 두루마기는 목자이신 주님이 직접 그들에게 입혀 주시는 것이다. 순교자들을 직접 대면하시고, 그들에게 영광의 옷을 입혀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목자 사역이 요한계시록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계 6:9-11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그것이 그분의 목자 사역이고 동산지기 사역이다. 신혼의 달콤함보다 더 급한 일이 있었던 것이다.

  신부가 문을 열지 않았을 때, 신랑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었다. 그 손에서 몰약 기름이 뚝뚝 떨어졌다(아 5:5). 몰약은 죽은 자의 시체에 바르는 향품이다. 신랑이 밤새 무슨 일을 했는지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죽음과 관련된 일, 즉 순교자들을 받아들이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부는 그제야 신랑의 손에서 몰약 기름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마음이 상했다. 자신이 얼마나 큰 실수를 했는지를 깨달은 것이다.

아 5:5 내가 일어나서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 때에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빗장 손잡이에 떨어지는구나

  나중에 신부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아가서 4장 16절에서 신부는 우리 동산에 북풍과 남풍이 불어서 향기를 날리고, 내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와서 열매를 먹기를 원하노라라고 고백한다. 이제 신부도 신랑과 같은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신랑이 동산에서 하는 일에 자신도 동참하기를 원하게 된 것이다.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서 예수님이 문 밖에 서서 두드린다는 말씀이 나온다. 이 말씀이 아가서 5장 2절의 신약적 성취이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의 마음 문 밖에 서서 두드리고 계신다. 그 문을 열 때 그분이 들어오셔서 함께 먹고 마시는 교제가 이루어진다. 신부가 문을 열어 드릴 때, 신랑은 들어와서 그 밤새 동산에서 거두어 온 열매들을 신부와 함께 나누신다.

 

8. 아가서의 신부가 동산에 거주하는 자로 완성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가?

  아가서는 술람미 여인이 처음 등장할 때 바알하몬 포도원의 포도원지기였다가, 마지막에 동산에 거주하는 자로 완성되기까지의 성장 여정을 담고 있다. 이 여정은 그리스도의 신부인 우리 각자의 신앙 여정과 정확히 일치한다.

  신부의 성장은 세 단계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백합화 같은 신부이다. 아네모네, 즉 백합화는 핏빛의 순결한 꽃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긴 순결을 상징한다. 신부가 처음 신랑을 만났을 때, 신랑은 그녀를 비둘기 같다고 불렀다. 비둘기는 평생 한 짝만 사랑하는 존재이다. 일부종사, 오직 한 분만을 향한 순결이 첫 번째 단계이다.

  두 번째 단계는 원수의 진영에 깃발을 꽂는 전사이다. 신랑이 신부를 포도주의 집으로 이끌어 들이고 깃발을 보여 주었다(아 2:4). 그 깃발은 승리의 표시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원수의 진영을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레바논의 사자굴과 표범산에서 고통받던 존재가 이제 그 원수들을 이기는 전사가 되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다른 신부를 낳는 신부이다. 신랑이 자신의 동산에서 포도원을 가꾸고 열매를 맺듯이, 신부도 다른 영혼들을 낳아 신랑에게 데려오는 일을 해야 한다. 선교와 전도가 이것이다. 신부가 단지 신랑의 사랑을 받는 존재에서 더 나아가 다른 신부들을 낳는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단계를 거쳐 신부는 완전한 자가 된다. 아가서 5장 2절에서 신랑은 신부를 나의 완전한 자라고 부른다. 완전한 자란 무엇인가? 아가서 4장 16절에서 신부는 나도 몰약산과 유양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고 고백한다. 몰약은 죽음을 상징하고 유양은 부활을 상징한다. 신랑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내어 주는 삶, 그것이 완전함이다.

아 4:16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내가 몰약 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

  이 완전함에 이른 신부가 거주하는 곳이 바로 동산이다. 아가서 8장 13절에서 신랑은 너 동산에 거주하는 여자야라고 부른다. 레바논에서 포도원지기로 억압받던 그 여인이 마침내 신랑의 동산에 거주하는 자가 된 것이다. 처음에는 사자굴과 표범산에 갇혀 있었지만, 이제는 신랑의 동산 가장 은밀한 곳에 거주하는 자로 변화된 것이다. 이것이 우리 각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처음 주님을 만날 때 우리 모두 어떤 형태의 레바논에 있었다. 그러나 주님이 찾아오시고 이끌어 가셨다.

아 8:13 너 동산에 거주하는 자야 친구들이 네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나로 네 소리를 듣게 하여라

  처음에 레바논의 사자굴에서 고통받던 그 여인이 마침내 신랑의 동산에 거주하는 자가 된 것이다. 이 변화가 어떻게 가능했는가? 오직 신랑의 사랑 때문이다. 그 사랑이 레바논까지 찾아오시고, 사자굴에서 이끌어 내시며, 동산까지 데려가셨다. 우리가 신부가 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신랑의 사랑과 은혜 때문이다.

  이 여정이 짧지 않다. 레바논에서 고통받으며 순결을 지키고, 사자굴의 두려움을 이기고, 여우들을 쫓아내고, 신랑의 동산에 들어와 그가 하는 일에 동참하며, 마침내 그 동산에 거주하는 자가 되기까지의 긴 여정이다.

  바울은 빌립보서 3장 12절에서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고 고백했다. 완성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 그것이 신앙의 여정이다. 아가서의 신부도 처음부터 완전했던 것이 아니다. 레바논에서 포도원지기로 살다가, 왕을 만나고, 왕궁으로 들어와, 결혼을 하고, 신랑의 동산에서 그와 함께 일하며, 마침내 동산에 거주하는 자로 완성되어 가는 긴 여정을 걸었다.

빌 3:12-14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그러나 그것이 아가서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신부의 완성이다. 이 긴 여정을 걷는 자에게 하나님은 그 과정을 외면하지 않으신다. 시편 126편 5절에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라고 약속하신다. 레바논의 사자굴에서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가 마침내 기쁨으로 단을 거두어 동산에 들어오게 된다. 그 과정에서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아가서의 신부도 중간에 실수를 했다. 문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신랑을 잃어버린 고통 속에서 다시 일어나 신랑을 찾아 나섰다. 실수 이후의 회복이 신부를 더 성숙하게 만든다.

시 126:5-6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9. 나오며

  아가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세 가지 신분, 즉 목자, 포도원의 주인, 동산지기를 살펴보았다. 이 세 가지 신분은 하나의 동산이라는 공간 안에서 통합된다. 그 동산 안에서 그분은 양 떼를 먹이는 목자이시고, 포도원을 가꾸어 열매를 산출하는 포도원의 주인이시며, 열두 가지 나무와 향품이 있는 동산을 돌보는 동산지기이시다.

  신랑이 신혼에도 밤새 밖에 있다가 새벽에 들어온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분은 순교하고 올라오는 영혼들을 영접하고 위로하며 먹이는 목자의 일을 하고 계셨다. 요한계시록 7장 17절에서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신다는 말씀이 바로 이 장면의 신약적 표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을 위해 고통받는 자들을 직접 찾아가서 돌보시는 목자이시다.

  레바논의 사자굴과 표범산은 강력한 악한 영들의 억압을 상징한다. 그 억압 가운데서도 비둘기처럼 순결을 지켰던 신부를, 신랑은 거기서 이끌어 내어 자신의 동산으로 초청하신다. 그리고 그 동산 안에서 신부는 점차 완전한 자로 성장해 간다. 원수의 진영에 깃발을 꽂는 전사가 되고, 다른 신부들을 낳는 어머니가 되며, 마침내 동산에 거주하는 자가 된다.

  아가서의 동산은 잠근 동산이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그러나 신랑은 그 동산의 향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 더 많은 이들이 들어오기를 원하신다. 요한계시록 22장 17절에서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라고 한다. 잠근 동산이지만, 신부가 먼저 들어간 다음에는 다른 이들을 초청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동산에 거주하는 신부의 사명이다.

계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그 향기를 전하는 것이 선교이고, 그 향기를 맡고 들어온 자들이 새로운 포도송이들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목자이시고 포도원의 주인이시며 동산지기이시다. 그분은 지금도 당신의 동산에서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신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이 신앙 생활의 실제적 기초가 된다. 주님이 아직도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 때, 우리도 쉬지 않고 그 일에 동참하게 된다.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서 계시를 받았을 때, 그분은 이미 촛대들 사이를 거닐고 계셨다(계 1:13). 지금도 교회들 가운데 거니시며 일하고 계신다. 그분이 일하시는 곳에 우리도 함께 있어야 한다. 주님이 순교자들을 위로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 때, 우리도 기꺼이 고난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 세 가지 신분이 하나의 동산이라는 공간 안에서 통합된다는 것이 아가서의 놀라운 통찰이다. 우리는 흔히 예수 그리스도를 목자라고 하면 시편 23편의 온화하고 평화로운 이미지만 생각한다. 포도원의 주인이라고 하면 농업적 이미지를 떠올린다. 동산지기라고 하면 요한복음 20장에서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동산지기로 착각한 장면을 생각한다. 그러나 아가서는 이 세 가지를 하나로 묶어서, 그분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신지를 입체적으로 보여 준다.

요 20: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겨 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문을 열어 드리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서 그분은 문 밖에서 두드리고 계신다. 그 문을 열 때 그분이 들어오셔서 함께 교제하시고, 우리를 동산에 거주하는 완전한 신부로 빚어 가신다.

  아가서 5장 2절에서 신부가 신랑의 두드림 소리를 들었지만 문을 열지 않은 것은 우리에게 깊은 교훈을 준다. 우리도 때때로 주님의 임재와 부르심을 느끼면서도, 편안함을 추구하고 내 방식대로 살고 싶어서 그 문을 열지 않는다. 그러나 신부가 나중에 그 결과로 얼마나 고통스럽게 신랑을 찾아 헤매었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문을 즉각 열어 드리는 것, 그것이 가장 지혜롭고 가장 복된 선택이다. 그 신부로 준비되어 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목자이신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고, 포도원의 주인이신 주님이 맡기신 포도원에서 열매를 맺고, 동산지기이신 주님의 동산에서 그분과 함께 일하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것이 아가서가 우리에게 보여 주는 신부의 완성된 모습이다. 목자이신 주님이 양 떼를 먹이시듯 우리를 먹이시고, 포도원의 주인이신 주님이 열매를 맺게 하시며, 동산지기이신 주님이 우리를 자라게 하신다. 그분의 세 가지 사역이 하나되어 우리를 완전한 신부로 빚어 가신다. 이 진리가 우리 가슴 안에 살아 있기를 바란다.

 

2026년 6월 25일(목)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아가서를 통해 기독론의 깊이를 탐구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목자, 포도원의 주인, 동산지기라는 세 가지 핵심적 신분으로 조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아가서에 등장하는 '고벨화'와 '엔게디' 같은 상징물들이 단순한 문학적 표현을 넘어 예수님의 대속적 사역과 천국의 실상을 계시한다고 역설합니다. 특히 신랑이 밤이슬을 맞으며 늦게 귀가한 이유를 순교한 성도들을 영접하기 위한 희생적 사역으로 풀이하며, 주님과 신부의 관계를 생명으로 연결된 연합으로 묘사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들이 회개를 통해 정결한 신부의 자격을 갖추어, 주님이 예비하신 비밀의 동산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자가 되기를 촉구하는 목적을 지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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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입니다(정제된 글 요약)

제목: [기독론(132)] 다윗의 아들 솔로몬(10) 아가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8가지 신분(04) 목자, 포도원의 주인, 동산지기(아4:12-5:2)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아가서는 구약 성경 가운데 가장 신비로운 책이다. 이 책에는 기도하라, 회개하라, 예배하라, 여호와를 경외하라와 같은 직접적인 신앙 명령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책은 정경 안에 들어와 있다. 그 이유는 아가서가 단순한 남녀의 사랑 노래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을 가장 깊고 진하게 보여 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아가서를 표면으로만 읽으면 신랑과 신부의 사랑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성령의 빛 아래서 읽으면, 그 안에는 그리스도께서 누구시며, 그분이 교회를 위해 어떤 일을 하셨으며, 신부 된 성도들이 어디까지 준비되어야 하는지가 감추어져 있다.

  예수님은 구약 성경 전체가 자신에 대해 증언한다고 말씀하셨다(요 5:39). 또한 부활하신 뒤 제자들에게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기록된 자신에 관한 것을 풀어 주셨다(눅 24:44). 그러므로 구약을 그리스도 없이 읽으면 중심을 놓친다. 창세기의 요셉과 유다, 출애굽기의 모세와 여호수아, 사무엘서와 시편의 다윗, 열왕기상과 역대하의 솔로몬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다윗이 전쟁에 능한 왕으로서 그리스도의 승리와 영적 전쟁을 보여 준다면, 솔로몬은 평화의 왕, 지혜의 왕, 성전 건축자로서 그리스도의 또 다른 면을 보여 준다.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특히 아가서는 솔로몬이 남긴 지혜문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잠언은 지혜의 길을 말하고, 전도서는 해 아래 인생의 헛됨을 말한다. 그러나 아가서는 지혜의 최종 목적을 보여 준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를 얻으시고, 교회를 신부로 단장하여 새 예루살렘으로 이끄시는 것이다. 이것이 아가서가 말하는 사랑의 본질이다. 사랑은 감정의 흥분이 아니라, 피와 생명과 헌신으로 신부를 얻으시는 그리스도의 경륜이다.

  이번 본문은 아가서 4장 12절부터 5장 2절까지의 흐름을 중심으로 한다. 여기에는 신부가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으로 묘사되고, 그 동산 안에 여러 나무와 향품이 있으며, 신랑이 그 동산에 들어와 몰약과 향재와 꿀과 포도주와 우유를 누리는 장면이 나온다. 또한 6장에 가면 신랑이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양떼를 먹이고 백합화 가운데 거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 모든 표현은 단순한 시적 장식이 아니다. 이것은 목자이신 그리스도, 포도원의 주인이신 그리스도, 동산지기이신 그리스도의 사역을 보여 주는 영적 실재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아가서에 나타난 목자, 포도원의 주인, 동산지기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이 무엇이며, 그 신분이 오늘 성도와 교회를 어떻게 신부의 자리로 이끌어 가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왜 아가서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진하게 보여 주는가?

  아가서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가장 진하게 보여 주는 구약의 책이다. 그 이유는 이 책이 단순히 그리스도의 신분만 말하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어떻게 사랑하시고, 어떻게 찾으시고, 어떻게 단장하시고, 어떻게 자기 동산 안으로 이끄시는지를 사랑의 노래로 보여 주기 때문이다. 신약에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가장 직접적으로 말한 본문은 에베소서 5장이다. 바울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말하다가 그것이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큰 비밀이라고 말한다(엡 5:31~32). 그런데 그 비밀을 구약의 시가서 안에서 가장 풍성하게 보여 주는 책이 아가서다.

엡 5:31-32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아가서는 성전의 영적 의미를 문학적으로 풀어 놓은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솔로몬은 역사적으로 성전을 건축한 왕이다. 그러나 열왕기상과 역대하는 성전의 건축 과정과 봉헌 기도를 기록할 뿐, 그 성전이 장차 그리스도와 교회 안에서 어떻게 성취될 것인지를 충분히 풀어 주지는 않는다. 성전의 외형은 돌과 백향목과 금으로 지어졌지만, 성전의 영적 실체는 하나님이 거하실 인격적 처소다. 신약에 와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성전이 되고, 교회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지어져 간다.

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렇다면 솔로몬이 지은 성전의 내적 의미는 어디에서 가장 깊이 드러나는가? 그것이 바로 아가서다. 아가서는 성전을 건축한 솔로몬이, 물질적 성전의 영적 실체인 교회를 사랑의 노래로 표현한 책이다. 여기서 신부는 단순한 여인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로 사시고 생명으로 낳으시며 향품으로 단장하시는 교회를 예표한다. 그러므로 아가서는 교회론의 숨은 보고다. 그리스도를 깊이 알지 못하면 아가서는 연애시로만 보인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와 생명과 신부의 경륜을 알면, 아가서는 구약 최고의 교회론으로 열린다.

  아가서가 특별한 이유는 또 있다. 이 책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논리로만 설명하지 않고 감각과 상징으로 보여 준다. 포도원, 동산, 고벨화, 몰약, 유향, 백합화, 사자굴, 표범산, 레바논, 생수의 우물, 봉한 샘, 밤이슬 같은 표현은 모두 신랑과 신부의 관계를 설명하는 영적 언어다. 여기서 성도는 자신이 어떤 존재로 준비되어야 하는지를 본다. 성도는 단순히 죄 사함만 받은 자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피와 생명을 받아, 그분의 동산 안에서 향기를 내고 열매를 맺고 양떼를 함께 돌보는 신부로 준비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아가서는 성도의 최종 목적지를 보여 준다. 그것은 단순히 천국 변두리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아가서가 보여 주는 신부는 신랑의 동산 안으로 들어가고, 신랑의 사역을 이해하며, 신랑의 마음과 하나가 된다. 이 점에서 아가서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가장 친밀하게, 가장 진하게 보여 주는 책이다.

3. 왜 세 신분을 한 묶음으로 보아야 하는가?

  아가서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여러 신분이 나온다. 그분은 왕이시고, 창조주이시고, 속전이시며, 목자이시고, 포도원의 주인이시고, 동산지기이시고, 재림주이시고, 신랑이시다. 이 여덟 가지 신분은 따로 떨어진 명칭이 아니다. 하나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중 이번 시간에 살피는 목자, 포도원의 주인, 동산지기는 특히 하나의 묶음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세 신분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신부와 양떼와 열매를 어떻게 돌보시는지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목자는 양떼를 먹이고 보호하는 분이다. 포도원의 주인은 열매를 바라보고 포도원을 맡기고 거두는 분이다. 동산지기는 잠근 동산 안에 있는 생명과 향기와 열매를 돌보는 분이다. 세 표현은 모두 관리와 돌봄과 산출의 언어다. 여기에는 그리스도의 사역이 들어 있다. 그리스도는 신부를 사랑하는 데서 멈추지 않으신다. 그분은 자기 양떼를 먹이시고, 자기 포도원을 통해 많은 열매를 산출하시고, 자기 동산에서 몰약과 향재와 꿀과 포도주와 우유를 누리신다.

  아가서 4장 12절은 신부를 “잠근 동산”이라고 부른다. 이 동산은 아무나 들어가는 곳이 아니다. 울타리가 있고, 봉함이 있고, 덮임이 있다. 히브리어로 동산은 ‘간’이라고 하는데, 이는 울타리 쳐진 공간을 뜻한다. 에덴동산도 이러한 동산이다. 에덴은 하나님이 사람을 두신 곳이었고, 생명나무와 강물이 있던 곳이었다. 아가서의 동산도 마찬가지다. 이곳은 신부 안에 감추어진 생명과 향기와 열매의 공간이며,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시는 장소다.

아 4:12 내 누이 내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그런데 이 동산은 양떼와도 연결된다. 아가서 6장 2절은 사랑하는 자가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서 양떼를 먹인다고 말한다. 동산은 단순히 신랑과 신부만의 사적인 정원이 아니다. 그 안에는 양떼가 있고, 백합화가 있고, 신랑의 돌봄이 있다. 이것이 목자와 동산지기의 신분이 분리될 수 없는 이유다. 또한 포도원도 마찬가지다. 포도원은 열매를 산출하는 곳이다. 신랑은 포도원의 주인으로서 열매를 원하고, 동산지기로서 그 열매와 향품을 거두며, 목자로서 그 안의 양떼를 먹인다.

아 6:2 내 사랑하는 자가 자기의 동산으로 내려가 향기로운 꽃밭에 이르러 동산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며 백합화를 꺾는구나

  그러므로 이 세 신분은 그리스도의 현재 사역을 보여 준다. 우리는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으로만 알아서는 안 된다. 그분은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뒤에도 계속 일하신다. 그분은 지금도 자기 양떼를 먹이시고, 포도원의 열매를 찾으시고, 신부의 동산에서 향기를 거두신다. 이 사역을 알 때 성도는 자신의 신앙을 다시 보게 된다. 나는 단순히 구원받은 자인가, 아니면 신랑의 동산 안에서 향기와 열매를 내는 자인가? 나는 양떼로 먹임받는 자인가, 아니면 주님의 마음을 알고 함께 양떼를 돌보는 신부인가? 아가서는 이 질문을 우리 앞에 세운다.

4. 신부는 왜 사자굴과 표범산에서 나와야 하는가?

  신랑은 신부에게 레바논에서부터 함께 가자고 부른다. 그리고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굴과 표범산에서 내려오라고 말한다(아 4:8). 이 말씀은 단순한 지리적 초청이 아니다. 신부가 있던 자리가 어디였는지를 보여 주는 영적 묘사다. 신부는 처음부터 왕궁에 있던 자가 아니다. 그녀는 바알하몬 포도원에서 오빠들에게 부림을 당하던 자였고, 햇볕에 그을려 거무스름해진 자였으며, 사자굴과 표범산 같은 위험한 영적 지형 속에 있던 자다.

아 4:8 내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 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오너라

  사자와 표범은 성경에서 영적 권세와 포악함의 상징으로 쓰인다. 다니엘서 7장은 짐승들을 통해 세상 제국의 포악한 권세를 보여 주고, 요한계시록 13장은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을 표범과 곰과 사자의 복합 이미지로 묘사한다. 이는 적그리스도적 세력과 사탄의 권세를 보여 주는 상징이다. 그러므로 아가서 4장 8절의 사자굴과 표범산은 신부가 있던 영적 억압의 자리를 가리킨다. 신부는 안전한 곳에 있던 자가 아니라, 사탄의 세력과 타락한 영들의 압제 가운데 있던 자다.

계 13:2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여기서 우리는 동탄명성교회가 강조해 온 귀신론의 실제를 보아야 한다. 인간은 단순히 도덕적 약함 때문에 고통받는 것이 아니다. 죄를 통해 들어온 악한 영들이 사람을 포도원지기처럼 부리고, 사자굴과 표범산 같은 두려움과 고통의 자리로 몰아넣는다. 아가서 1장 6절에서 술람미 여인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다”고 고백한다. 이것은 단순한 가정사의 상처가 아니라, 영적으로는 타락한 영들이 인간을 억압하고 자기 포도원을 지키지 못하게 만드는 상태를 보여 준다.

아 1:6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 자리로 찾아오신다. 신랑은 왕궁에 앉아 신부가 알아서 오기를 기다리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레바논의 위험한 자리, 사자굴과 표범산 같은 자리로 찾아와 신부에게 함께 가자고 부르신다. 이것이 구원의 시작이다. 예수님은 죄와 귀신과 사탄의 억압 아래 있던 우리를 찾아오셔서, 그 자리에서 나오게 하신다. 그리고 신부를 단순히 해방시키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자기 동산과 새 예루살렘으로 데려가신다.

  그러므로 신부의 구원은 위치 이동이다. 바알하몬의 포도원에서 왕의 동산으로, 사자굴과 표범산에서 새 예루살렘으로, 오빠들의 억압에서 신랑의 사랑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회개와 축사는 이 이동의 실제 과정이다. 죄를 회개해야 하고, 그 죄를 통해 들어온 영들이 떠나야 하며, 성도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따라 악한 영들의 영역에서 내려와야 한다. 이것이 신부가 “내려오라”는 부름을 들어야 하는 이유다.

5. 목자이신 그리스도는 양떼를 어떻게 돌보시는가?

  아가서 6장은 사랑하는 자가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향기로운 꽃밭에 이르러 양떼를 먹인다고 말한다. 이 장면은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보여 준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하셨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요 10:11). 그분은 양을 이용하지 않으신다. 양을 먹이고, 지키고, 생명수로 인도하신다. 아가서의 신랑도 그러하다. 그는 신부와의 사랑에만 머무르지 않고, 자기 동산 가운데서 양떼를 먹인다.

요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한계시록 7장은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목자가 되셔서 성도들을 생명수 샘으로 인도한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놀라운 역설이 있다. 어린양이 목자가 된다. 죽임당한 어린양이 다시 목자가 되어 자기 백성을 돌본다. 그분은 굶주린 자를 먹이시고, 목마른 자를 생명수로 인도하시며, 뜨거운 기운에 상한 자의 눈물을 씻어 주신다. 아가서의 목자도 이와 같다. 그는 자기 동산에서 양떼를 먹이시는 분이다.

계 7: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여기서 양떼는 누구인가? 좁게는 주님의 백성이고, 넓게는 주님의 생명을 받아 돌봄을 필요로 하는 모든 성도다. 신부도 처음에는 먹임을 받아야 하는 양이다. 그러나 성숙한 신부는 신랑의 마음을 알고 양떼를 함께 돌보는 자리로 나아간다. 예수님께서 부활 후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하신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자가 반드시 주님의 양떼를 돌보는 사역으로 이어져야 함을 보여 준다.

요 21: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그러므로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은 자기 구원만 생각하지 않는다. 주님의 양떼를 생각한다. 교회 안에는 굶주린 양이 있고, 목마른 양이 있고, 상처 입은 양이 있고, 귀신에게 눌려 헤매는 양이 있다. 목자이신 그리스도는 이들을 버려두지 않으신다. 그분은 지금도 양떼를 먹이고 계신다. 신부가 성숙한다는 것은 그 목자의 마음을 아는 것이다. 신랑이 어디에 계신지 알게 되는 것이다. 그분은 자기 동산에서 양떼를 먹이고 계신다.

  따라서 아가서의 신앙은 감상적 사랑에 머물지 않는다. 신랑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양떼에는 관심이 없다면 아직 신랑의 마음을 온전히 모르는 것이다. 목자이신 예수님은 양떼를 위해 생명을 내어 주신 분이다. 그분의 신부라면 결국 그분의 양떼를 사랑하는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6. 포도원의 주인은 무엇을 산출하시는가?

  아가서에는 포도원 이미지가 반복된다. 술람미 여인은 자기 포도원을 지키지 못했다고 말하고, 솔로몬에게는 바알하몬에 포도원이 있었다고 기록된다. 포도원은 성경에서 열매와 산출의 장소다.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포도원으로 묘사되고,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참포도나무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포도원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는 자기 생명으로 많은 열매를 산출하시는 분이다.

  예수님은 “나는 참포도나무”라고 하셨고, 성도들은 그 가지라고 말씀하셨다(요 15:1,5).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열매를 맺지만, 떨어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것은 교회의 산출 원리다. 교회는 인간 조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생명에 붙어 있을 때 산출된다. 포도원의 주인은 그리스도시고, 열매의 생명도 그리스도에게서 나온다.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포도원은 또한 피와 관련된다. 포도주는 포도의 생명에서 나온다. 아가서에서 신랑은 신부를 포도주의 집으로 이끌어 간다. 이는 신랑이 자신의 피와 생명을 통해 신부를 얻으실 것을 예표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고, 그 피로 죄를 속죄하셨으며, 그 생명을 해방하여 많은 열매를 맺게 하셨다. 요한복음 12장 24절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한다. 포도원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도 바로 그 방식으로 많은 하나님의 자녀를 산출하신다.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여기서 우리는 속전이신 그리스도와 포도원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가 연결되어 있음을 본다. 앞서 아가서 1장 14절의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는 피 흘려 죽으실 그리스도를 보여 주었다. 그분은 고벨화처럼 피의 색을 가지신 분이며, 포도원 안에서 송이처럼 많은 열매를 산출하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포도원의 목적은 단지 풍성함이 아니다. 포도원의 목적은 생명의 번식이다. 한 분 그리스도 안에서 많은 아들들, 많은 신부들, 많은 왕노릇할 자들이 산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이 포도원 안에 있는 가지인지 점검해야 한다. 그리스도께 붙어 있지 않은 열매는 영원한 열매가 아니다. 세상 성공, 종교적 활동, 외적 규모가 포도원의 열매가 아니다. 주님의 피와 생명으로 산출된 사람, 회개와 정결을 통해 주님의 생명을 담는 사람이 참 열매다. 포도원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는 바로 이런 열매를 찾으신다.

7. 동산지기는 잠근 동산에서 무엇을 하시는가?

  아가서 4장 12절은 신부를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신부가 아무에게나 열려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신부는 신랑에게 속한 존재다. 동산은 울타리가 있는 공간이고, 우물은 덮여 있으며, 샘은 봉해져 있다. 이것은 정결과 소유와 보호를 동시에 말한다. 신부는 세상에 함부로 열려 있어서는 안 된다. 신부는 신랑에게 열려야 한다.

아 4:12 내 누이 내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이 동산 안에는 여러 나무와 향품이 있다. 성류나무, 각종 아름다운 과수, 고벨화, 나도, 번홍화, 창포, 계수, 유향목, 몰약,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 언급된다. 이 목록은 단순한 식물 목록이 아니다. 각각은 그리스도와 신부의 성숙을 보여 주는 상징이다. 성류나무는 많은 씨를 품고 있는 열매로서 생명의 번식을 생각하게 하고, 고벨화는 피와 속전의 그리스도를 떠올리게 하며, 몰약은 죽음과 장사를, 유향은 부활의 향기와 하나님께 올라가는 향을 떠올리게 한다.

아 4:13-14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풀과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동산지기이신 그리스도는 이 동산 안에 들어오신다. 아가서 5장 1절에서 신랑은 “내 동산에 들어왔다”고 말한다. 그는 몰약과 향재를 거두고, 꿀송이와 꿀을 먹고, 포도주와 우유를 마신다. 이것은 신랑이 신부 안에서 산출된 향기와 열매를 누리시는 장면이다. 신부는 단순히 보호받는 존재가 아니라, 신랑이 기뻐하실 향기와 열매를 내는 존재다.

아 5:1 내 누이 내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재를 거두고 나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우유를 마셨으니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많이 마시라

  여기서 동산지기의 사역은 매우 중요하다. 주님은 신부의 동산을 방치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들어오시고, 거두시고, 누리시고, 친구들과 사랑하는 자들을 초청하신다. 동산은 폐쇄적 자기 만족의 공간이 아니다. 신랑이 들어오시고, 신랑이 누리시고, 신랑이 다른 사람들을 초청하시는 생명의 공간이다. 그러므로 동산은 교회의 내적 실재다. 참 교회는 세상에 열려 있으면서도 영적으로는 잠겨 있어야 한다. 세상과 귀신에게는 닫혀 있고, 그리스도께는 열려 있어야 한다. 그럴 때 그 안에서 향기와 열매와 생수가 나온다.

  이것은 오늘의 교회에 중요한 교훈을 준다. 교회가 프로그램은 많으나 향기가 없을 수 있다. 교회가 활동은 많으나 봉한 샘의 생명수가 없을 수 있다. 교회가 외적으로 열려 있으나 신랑에게는 닫혀 있을 수 있다. 아가서의 동산은 이와 반대다. 그것은 그리스도께 잠겨 있고, 그리스도께 열려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먹고 마시고 기뻐하시는 곳이다. 신부 된 성도도 이와 같이 되어야 한다.

8. 신부는 왜 신랑의 사역에 동참해야 하는가?

  아가서 5장 2절은 매우 중요한 장면을 보여 준다. 신랑이 밤이슬을 맞고 신부의 문을 두드린다. 그는 신부를 “내 누이, 내 사랑, 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라고 부르며 문을 열어 달라고 말한다. 신혼의 시기인데도 신랑은 밤늦게 돌아왔다. 그의 머리에는 이슬이 있고,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다. 왜 신랑은 늦게 돌아왔는가? 이것이 아가서의 깊은 질문이다.

아 5:2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어 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 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처음 신부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녀는 이미 발을 씻었고 옷을 벗었기 때문에 일어나 문을 열기 망설인다. 그러나 신랑은 그냥 밖에서 방황한 것이 아니다. 아가서 6장에 가면 신랑이 어디 있었는지 드러난다. 그는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향기로운 꽃밭에 이르러 양떼를 먹이고 백합화 가운데 있었다. 그는 신부 곁에서만 머물던 분이 아니라, 양떼와 백합화를 돌보던 분이다.

아 6:2 내 사랑하는 자가 자기의 동산으로 내려가 향기로운 꽃밭에 이르러 동산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며 백합화를 꺾는구나

  여기서 백합화는 단순한 꽃이 아니다. 아가서 2장 2절에서 신부는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로 불렸다. 이것은 죄와 저주의 세상 가운데 피로 정결하게 될 신부를 보여 준다. 그런데 6장에서는 신랑이 백합화 가운데서 양떼를 먹인다. 설교의 흐름에서 이 백합화는 피 흘림과 순결과 순교의 상징으로 읽을 수 있다. “백합화를 꺾는다”는 표현은 문자적으로 꺾는 것이 아니라, 꺾여진 백합화들을 주워 거두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이해해야 한다. 주님은 오늘도 자기 이름을 위해 피 흘린 자들을 맞이하시고, 고난받는 자들을 위로하시며, 양떼를 먹이신다.

  신부는 처음에는 신랑이 자기 곁에만 머물러 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성숙한 신부는 신랑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신랑은 나만 사랑하시는 분이면서도, 동시에 다른 양떼와 다른 백합화들을 돌보시는 분이다. 그분의 마음은 넓다. 그분은 순교자들을 맞이하시고, 굶주린 양을 먹이시고, 목마른 자를 생명수로 인도하신다. 신부가 성숙한다는 것은 바로 이 사역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부는 사랑받는 자리에서 사역에 동참하는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신부는 신랑의 품에서 위로만 받는 자가 아니다. 신부는 신랑의 시선을 배워야 한다. 신랑이 양떼를 보는 곳을 같이 보아야 하고, 신랑이 백합화를 거두는 곳을 같이 보아야 하며, 신랑이 밤이슬을 맞는 이유를 깨달아야 한다. 이것이 신부의 성숙이다.

  이것은 오늘 성도에게 매우 실제적인 적용을 준다. 성도는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고백에서 멈추면 안 된다. 그 사랑이 참되다면, 주님이 사랑하시는 양떼와 신부들과 순교자들과 고난받는 자들을 향해 마음이 열려야 한다. 그리스도의 동산 안에 들어간 신부는 결국 동산지기이신 그리스도의 일을 함께 배우게 된다. 이것이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길이다.

9. 나오며

  이번 시간에는 아가서에 나타난 목자, 포도원의 주인, 동산지기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과 그 사역의 비밀을 살펴보았다. 아가서는 단순한 사랑의 노래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가장 진하게 보여 주는 지혜문학의 정수다. 그 안에서 그리스도는 신부를 사랑하는 신랑이실 뿐 아니라, 양떼를 먹이시는 목자요, 많은 생명의 열매를 산출하시는 포도원의 주인이요, 잠근 동산 안에서 향기와 열매를 거두시는 동산지기이시다.

  성도는 먼저 자신이 어디에서 불러냄을 받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신부는 처음부터 왕궁에 있던 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레바논의 험한 곳, 사자굴과 표범산, 바알하몬의 포도원에서 고생하던 자였다. 그러나 신랑이 찾아오셔서 함께 가자고 부르셨다. 이것이 구원의 은혜다. 그러므로 성도는 죄와 귀신과 세상 권세의 자리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따라 내려와야 한다.

  또한 성도는 그리스도를 목자로 알아야 한다. 그분은 양떼를 먹이시고,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며, 고난받은 자들의 눈물을 씻어 주시는 분이다. 그래서 성도도 그분의 마음을 배워야 한다. 주님의 양떼를 향한 관심이 없는 신부는 아직 신랑의 사역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신부는 사랑받는 자리에서 양떼를 함께 돌보는 자리로 자라가야 한다.

  성도는 그리스도를 포도원의 주인으로 알아야 한다. 그분은 많은 열매를 원하신다. 그 열매는 세상적 성공이나 종교적 숫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와 생명으로 산출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리스도께 붙어 있어야 하고, 그분의 생명 안에서 열매를 맺어야 한다. 포도원의 주인이 기뻐하시는 열매는 오직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맺힌 열매다.

  성도는 그리스도를 동산지기로 알아야 한다. 신부는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이 되어야 한다. 세상과 더러운 영들에게 함부로 열려 있는 동산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열려 있는 동산이 되어야 한다. 그 동산 안에는 향기와 열매와 생수의 샘이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신랑은 그 동산에 들어오셔서 몰약과 향재와 꿀과 포도주와 우유를 누리신다.

  마지막으로 성도는 신랑의 밤이슬을 이해해야 한다. 주님은 우리만 위해 계시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지금도 자기 동산에서 양떼를 먹이시고, 꺾여진 백합화를 거두시며, 고난받는 성도들을 위로하신다. 신부는 이 마음을 알아야 한다. 신랑의 사랑을 받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신랑의 마음과 시선과 사역에 동참해야 한다. 그럴 때 신부는 완전한 자로 빚어져 간다.

  오늘의 교회는 다시 아가서의 동산으로 돌아가야 한다. 교회는 세상적 프로그램만 많은 곳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는 그리스도께 잠겨 있고, 그리스도께 열려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향기와 열매를 거두시는 동산이 되어야 한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도 그렇게 준비되어야 한다. 회개를 통해 더러운 영들을 내보내고, 그리스도의 피와 생명으로 정결하게 되고, 주님의 말씀과 사랑으로 향기를 내며, 양떼를 먹이고 백합화를 거두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동참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동산 안에서 향기와 열매를 내며 주님의 양떼를 함께 돌보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6월 25일(목)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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