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81)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2) 인자 같은 이(01)(단7:13~1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bBmsmeED-S0
기독론(181)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2) 인자 같은 이(01)
(단 7:13-14)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다니엘서에 나타난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 그분은 심판하시는 왕이요, 영원한 나라를 세우러 오시는 전능자로 나타나 있다.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와 에스겔서에도 그리스도에 관한 풍성한 예언이 있지만, 세상 제국을 단번에 끝내고 소멸되지 않는 권세로 다스리시는 최후의 모습은 다니엘서에서 가장 강하게 드러난다. 제2장에서 손대지 아니한 돌이 거대한 신상을 쳐서 부서뜨렸다면, 제7장에서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는다. 두 환상의 표현은 다르지만 그 중심에는 같은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
다니엘서에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보여 주는 네 가지 예표(豫表, type)가 나온다. 제2장의 손대지 아니한 돌(단 2:34-35; 45), 제7장의 인자 같은 이(단 7:13-14), 제9장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메시아(단 9:24-26), 제10장과 제12장의 세마포 옷을 입은 이(단 10:5-6; 12:6-7)가 그것이다. '손대지 아니한 돌'은 세상 제국을 깨뜨리는 심판의 권세를, '인자 같은 이'는 하늘로부터 오는 왕과 영원한 통치를,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끊어져 없어질 메시아의 죽음을, '세마포 옷을 입은 이'는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 준다.
이 가운데 제7장의 환상은 느부갓네살이 제2장에서 본 꿈을 다른 각도에서 펼쳐 보인다. 제2장에서는 금과 은과 놋과 쇠와 진흙으로 된 신상이 등장하지만, 제7장에서는 독수리 날개를 가진 사자와 곰과 표범과 무서운 열뿔 가진 넷째 짐승이 바다에서 올라온다. 앞의 환상이 세상 제국의 화려함과 강함을 인간의 눈으로 보여 준다면, 뒤의 환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나라들의 포악한 짐승의 속성을 드러낸다. 두 환상 모두 바벨론, 메대와 바사, 헬라, 로마로 이어지는 세계 역사를 가리킨다.
다니엘이 이 환상을 본 때는 바벨론 벨사살 왕 원년 곧 B.C.577년이었다(단 7:1). 이 시기를 이해하려면 느부갓네살이 교만으로 인해 총명을 잃고 칠 년 동안 들짐승처럼 지낸 사건과 왕궁의 변화를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왕에게 미리 경고하셨고 다니엘은 공의를 행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라고 권했다(단 4:26-27). 그러나 느부갓네살 왕이 회개하지 않자 정해진 징계가 임했다(단 4:24-33). 인간 나라를 세우고 폐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제2장과 제4장의 선언은 제7장의 네 짐승과 인자 같은 이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그렇다면 다니엘서의 네 가지 표현은 그리스도의 어떤 인격과 사역을 보여 주는가? 손대지 아니한 돌과 인자 같은 이는 어떻게 같은 심판주를 가리키는가? 하나님께서는 왜 바벨론 제국을 곧바로 없애지 않고 열 발가락과 열 뿔의 때까지 허락하시는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은 어떻게 그 구원(救援, salvation)을 끝까지 지켜야 하는가? 그래서 이 시간에는 다니엘서가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네 가지 표현, 손대지 아니한 돌과 인자 같은 이의 관계, 벨사살 원년의 환상과 느부갓네살의 칠 년 징계, 네 짐승과 금신상이 보여 주는 네 제국, 작은 뿔 뒤에 임할 인자의 심판, 세상 제국이 마지막 때까지 허락되는 이유, 그리고 생명책에 이름을 지키며 시대의 파수꾼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다니엘서가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네 가지 표현은 무엇인가?
다니엘서가 계시하고 있는 4가지 그리스도의 표현은 대체 무엇인가?
첫째, 그리스도는 제2장에서 '손대지 아니한 돌'로 나타난다. 느부갓네살이 본 큰 신상의 발을 친 돌은 사람의 손으로 뜨인 돌이 아니었다. 인간이 제작한 우상이나 피조물이 아니며, 인간 제국의 힘과 계보에서 나온 왕도 아니다. 산에서부터 날아온 그 돌이 쇠와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한꺼번에 부서뜨린 뒤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했다(단 2:34-35, 45). 이는 그리스도께서 세상 나라를 심판하고 하나님 나라를 영원히 세우실 것을 보여 준다.
돌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작용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믿고 그분께 나아오는 백성에게 그리스도는 교회를 든든히 세우는 산 돌이요 모퉁잇돌이시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에게는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신다(벧전 2:4-8). 그러나 마지막까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 권세에는 신상을 쳐서 가루로 만드는 심판의 돌이 되신다. 같은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에게는 구원의 반석이 되시고, 거역하는 자에게는 심판의 돌이 되시는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는 제7장에서 인자 같은 이로 나타난다. 다니엘은 밤 환상 가운데 한 분이 하늘 구름을 타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는 것을 보았다. 그분은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고 모든 백성과 나라와 언어를 말하는 자들의 섬김을 받는다. 그분의 권세는 소멸되지 않고 그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단 7:13-14). 예수께서 자신을 가장 많이 부르신 칭호가 인자였으며, 대제사장 앞에서도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리라고 말씀하셨다(마 26:63-64).
셋째, 그리스도는 제9장에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 나타난다. 다니엘서 제9장은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령이 내린 뒤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메시아가 나타나며, 그가 끊어져 없어질 것을 예언한다(단 9:24-26). 이는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분이 오시되 먼저 죽음을 통과하실 것을 보여 준다. 다니엘은 영광스러운 왕만 말하지 않고 자기 백성을 위한 죽음도 예고한다. 심판주이신 그리스도는 먼저 초림(初臨, first coming)하여 죄인을 위해 죽으신 구주이시다.
넷째, 그리스도는 제10-12장에서 세마포 옷을 입은 이로 나타난다. 다니엘은 힛데겔 강가에서 세마포 옷을 입고 허리에 우바스의 순금을 띤 한 분을 보았다. 그 몸은 황옥 같고 얼굴은 번갯빛 같으며 눈은 횃불 같고 팔과 발은 빛난 놋 같으며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았다(단 10:5-6). 제12장에도 강물 위쪽에 있는 세마포 옷을 입은 이가 등장한다(단 12:6-7). 흰 세마포는 그분의 거룩함과 영광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네 표현은 서로 분리된 네 구원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손대지 아니한 돌은 그분의 심판 사역을, 인자 같은 이는 하늘 왕권과 영원한 나라를,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메시아의 죽음을, 세마포 옷을 입은 이는 거룩한 영광을 보여 준다.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서로 다른 환상과 예언으로 펼쳐 보여 주는 것이다.
3. 손대지 아니한 돌과 인자 같은 이는 어떻게 같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가?
손대지 아니한 돌과 인자 같은 이는 누구신가? 놀라운 사실은 이 두 가지 예표가 모두 인간에게서 시작되지 않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여기서 '돌'은 사람의 손으로 뜨이지 않고 어떤 산에서부터 나오며, '인자 같은 이'는 땅에서 왕좌를 빼앗아 올라가는 자가 아니라 하늘 구름을 타고 내려온다. 세상 제국의 왕은 군대와 정치와 혈통을 통해 권세를 얻지만, 그리스도의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그분의 나라는 인간 제국이 발전하여 완성되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시는 나라인 것이다(단 2:44; 7:13-14).
고로 '손대지 아니한 돌'과 '인자 같은 이'라는 두 가지 표현은 모두 같은 세계 제국의 마지막을 보여 준다. 제2장의 돌은 신상의 발을 친다. 발과 발가락은 쇠와 진흙이 섞여 있어 강함과 약함이 공존하고, 서로 섞이려 해도 하나가 되지 못하는 마지막 시대를 나타낸다(단 2:41-43). 제7장의 인자 같은 이는 네 짐승과 넷째 짐승의 열 뿔, 그 가운데 올라오는 작은 뿔의 시대 뒤에 나타난다. 열 발가락과 열 뿔은 같은 종말의 국면을 서로 다른 상징으로 보여 준다.
특별히 우리는 다니엘 제2장과 제7장에서 그리스도의 심판이 그리스도의 초림에서 시작되어 재림(再臨, second coming)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예수께서는 초림하여 십자가와 부활로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고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다(창 3:15; 골 2:14-15; 히 2:14). 그러나 세상 나라가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재림 때 그분은 왕 중의 왕으로 오셔서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를 심판하고, 그를 따르던 세상 권세를 끝내실 것이다(계 19:11-21). 제2장의 돌이 시작과 완성을 함께 압축한다면, 제7장의 인자 같은 이는 왕권을 받아 영원한 나라를 이루시는 장면을 더 선명하게 보여 준다(단 7:13-14).
돌이 신상의 발과 발가락을 치자 위로부터 금만 부서지거나 쇠만 부서진 것이 아니었다. 아래에 있는 쇠와 진흙, 그리고 놋과 은과 금이 다 함께 부서져 여름 타작마당의 겨와 같이 되고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게 되었다(단 2:35). 이는 마지막 세상 나라 안에 앞선 제국들의 우상숭배와 교만과 폭력과 통치 방식이 이어져 있음을 보여 준다. 그리스도는 한 시대의 왕만 교체하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해 온 세상 제국 전체를 끝내시는 분이다.
또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고, 인자 같은 이가 받은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 심판은 파괴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나라를 제거하고 그리스도의 영원한 통치를 세우기 위한 일이다. 성도는 세상 나라의 화려함을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마침내 온 땅에 가득할 그리스도의 나라를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에게 그분은 거침돌이 아니라 모퉁잇돌이 되어야 한다. 말씀에 순종하고 회개하는 사람은 그 돌 위에 세워지지만, 끝까지 대적하는 사람은 그 돌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4. 벨사살 원년의 환상은 느부갓네살의 칠 년 징계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다니엘은 바벨론 벨사살 왕 원년에 침상에서 꿈을 꾸고 머릿속으로 환상을 받았다고 했다(단 7:1). 그런데 이 벨사살 1세는 제5장에서 예루살렘 성전의 금은 그릇으로 술을 마시다가 벽에 기록된 글씨를 보고 그날 밤 죽임당한 마지막 시기의 벨사살 2세와 구별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니엘 7장에 나오는 벨사살 원년은 느부갓네살이 총명을 잃은 동안 그의 아들이 왕의 직무를 대신하던 때와 연결된다. 바로 그 혼란한 시기에 다니엘은 세상 왕국의 배후와 마지막 심판을 보여 주는 네 짐승의 환상을 받았다.
그 배경에는 느부갓네살의 두 번째 꿈이 있다. 왕은 높고 무성한 한 나무가 땅 중앙에 서서 땅끝에서도 보이고, 그 열매로 만민이 먹으며 들짐승과 새가 그 아래와 가지에 깃드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하늘에서 한 순찰자 곧 거룩한 이가 내려와 나무를 베고 가지를 자르며 잎사귀와 열매를 흩으라고 명했다. 다만 뿌리의 그루터기는 쇠와 놋줄로 동이고 들풀 가운데 남겨 두며 일곱 때를 지내게 했다(단 4:10-17).
다니엘은 그 나무가 강성해져 하늘에 닿은 느부갓네살 왕이라고 해석했다. 왕이 사람에게서 쫓겨나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먹고 하늘 이슬에 젖어 일곱 때를 지낸 뒤에야, 지극히 높으신 이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고 자기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단 4:20-26). 그리고 왕에게 공의를 행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겨 죄악을 사하라고 권했다(단 4:27). 경고는 징계를 피할 회개(悔改, repentance)의 기회였다.
그러나 열두 달 뒤 왕은 바벨론 왕궁 지붕을 거닐며 자신의 능력과 권세로 이 큰 바벨론을 건설했다고 자랑했다. 그 말이 아직 입에 있을 때 하늘에서 선고가 내려왔다. 왕권이 떠나고 사람에게서 쫓겨나 소처럼 풀을 먹으며 일곱 때를 지냈다(단 4:28-33). 하나님께서 징계를 정하시기 전에는 그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셨지만, 선고가 내려지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주어진 징계의 기한을 채우게 하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돌이키려면 형벌이 차기 전에 돌이켜야 한다.
칠 년의 기한이 차자 느부갓네살은 하늘을 우러러보았고 그에게 총명이 돌아왔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했다. 하나님의 권세는 영원하고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며, 누구도 하나님의 손을 막거나 무엇을 하시느냐고 물을 수 없다고 고백했다(단 4:34-35). 그때 왕의 지위와 영광도 회복되었다. 그는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능히 낮추신다고 선포했다(단 4:36-37).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느부갓네살이 이처럼 진실하게 돌이켰을 때 그의 이름이 생명책(生命冊, Book of Life)에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구원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이전의 길로 돌아가 버림으로써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고 말았다. 이 내용은 필자가 영적 세계에서 확인한 체험으로 전하는 것이니 참고만 하기를 바란다. 제2장에서 다니엘의 해석을 들은 뒤에도 왕은 하나님을 모든 신들의 신이라고 칭송했지만, 그때의 감탄만으로 삶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단 2:46-49). 큰 체험과 훌륭한 고백이 있어도 이후의 믿음과 회개가 뒤따르지 않으면 그것은 계산되지 않는다.
벨사살 원년의 환상은 바로 이러한 왕궁의 격변 속에서 주어졌다. 강대한 왕도 한순간에 총명을 잃고, 왕좌를 대신 맡은 사람도 오래 가지 못하며, 인간의 통치는 계속 바뀐다. 그러나 그 모든 변화를 다스리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제4장에서 한 왕을 낮추고 다시 세우신 하나님께서 제7장에서는 네 제국 전체를 심판하고 인자 같은 이에게 영원한 나라를 주신다. 개인 왕의 교만과 회복을 보여 준 칠 년의 사건이 세계 제국의 흥망과 최후 심판을 이해하게 하는 살아 있는 표지가 된 것이다.
5. 네 짐승과 금신상은 세상에 일어날 네 제국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
다니엘은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고 모양이 서로 다른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단 7:2-3). 천사는 그 네 큰 짐승이 세상에 일어날 네 왕이라고 설명했다(단 7:17). 바다는 요동하는 세상 민족을, 짐승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힘으로 정복하고 지배하는 제국의 성격을 보여 준다. 제2장의 신상이 왕들이 보기에 찬란한 문명과 권세라면, 제7장의 짐승은 하나님 앞에서 드러난 제국의 포악한 실상이다.
첫째 짐승은 독수리의 날개를 가진 사자와 같았다. 이것은 금 머리에 해당하는 바벨론 제국을 가리킨다. 사자는 짐승 가운데 강한 존재이고 독수리 날개는 바벨론의 빠른 정복과 높은 위세를 보여 준다. 그러나 날개가 뽑히고 땅에서 들려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되며 사람의 마음을 받았다(단 7:4). 이는 교만했던 느부갓네살이 짐승처럼 낮아졌다가 총명을 되찾은 사건과도 맞닿아 있다.
둘째 짐승은 한쪽 몸을 들고 서 있는 곰과 같았으며 입의 잇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려 있었다. 이것은 은 가슴과 두 팔에 해당하는 메대와 바사 제국을 가리킨다(단 7:5). 두 팔처럼 두 민족이 연합했지만 한쪽이 더 강하게 일어났고, 많은 나라를 삼키며 영토를 넓혔다. 바사 왕 고레스는 바벨론 왕과 달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유다 백성을 돌려보내는 도구가 되었다. 필자가 영적 세계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그는 십사만 사천 명 안에 들어간 왕이다. 같은 제국의 왕이라도 하나님의 뜻에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중요하다.
셋째 짐승은 등에 새의 날개 넷이 있고 머리 넷을 가진 표범과 같았다. 이것은 놋으로 된 배와 넓적다리에 해당하는 헬라 제국을 가리킨다(단 7:6). 표범과 네 날개는 매우 빠른 정복을, 네 머리는 정복자의 죽음 뒤 나라가 나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제8장의 숫염소 환상도 헬라 왕국과 그 뒤의 분열을 다시 보여 준다(단 8:5-8, 21-22).
넷째 짐승은 앞의 어떤 짐승과도 같지 않고 무섭고 놀라우며 매우 강했다. 큰 쇠 이빨로 먹고 부서뜨리며 나머지를 발로 밟았고 열 뿔을 가지고 있었다(단 7:7). 이것은 쇠로 된 두 다리와 쇠와 진흙으로 된 발에 해당하는 로마 제국과 그 이후의 분열된 나라들을 가리킨다. 로마에 대항한 나라는 철저히 부서졌지만 항복한 민족은 제국의 질서 안에 편입되었다. 로마는 뒤에 동서로 나뉘었고 서방 지역은 여러 나라로 갈라졌다. 오늘의 유럽 여러 나라와 대서양을 건너간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의 역사까지 이 열 발가락 시대의 연장선에 있다.
로마는 강력한 정복 국가였으나 뒤에는 기독교를 공인했고, 그 유산 속에서 복음이 여러 지역으로 전해졌다. 유럽에서 신앙의 자유와 선교의 열망을 품은 이들이 대서양을 건넜고, 종말의 때가 가까웠다는 각성 속에서 아펜젤러와 같은 선교사들이 1885년 조선에 들어왔다. 우리 민족이 복음을 받은 일도 세계 역사를 주관하신 하나님의 경륜(經綸) 안에서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제국의 죄악을 심판하시면서도 그 역사 속에서 자기 백성을 찾아 구원하신다.
그러므로 금신상과 네 짐승은 서로 다른 역사를 말하지 않는다. 금 머리와 날개 달린 사자, 은 가슴과 곰, 놋 배와 네 날개 달린 표범, 쇠 다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이 차례로 대응한다. 인간의 눈에는 금에서 쇠로 이어지는 찬란한 신상이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서로 먹고 부서뜨리는 짐승들이다. 성도는 세상 제국의 외형에 미혹되지 말고 그 배후의 교만과 폭력을 분별해야 한다.
6. 작은 뿔이 등장한 뒤 인자 같은 이는 어떤 심판을 행하시는가?
다니엘이 넷째 짐승의 열 뿔을 자세히 살필 때 그 사이에서 또 하나의 작은 뿔이 올라왔다. 먼저 있던 뿔 가운데 셋이 그 앞에서 뿌리째 뽑혔고, 그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과 큰 말을 하는 입이 있었다(단 7:8). 그는 지극히 높으신 이를 대적하는 말을 하고 성도들을 괴롭게 하며 때와 법을 고치려 한다. 성도들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동안 그의 손에 붙여진다(단 7:24-25). 작은 뿔은 마지막 때 하나님을 대적하여 일어날 적그리스도의 권세를 보여 준다.
그러나 작은 뿔의 활동이 역사의 결론은 아니다. 다니엘이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앉으셨다. 그 옷은 희기가 눈 같고 머리털은 깨끗한 양털 같으며 보좌는 불꽃이고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었다. 불이 강처럼 흘러 그 앞에서 나오고 천천만만이 그 앞에 서서 심판을 베풀며 책들이 펴 놓였다(단 7:9-10). 작은 뿔이 아무리 큰 말을 해도 하늘 법정의 판결을 바꿀 수 없다.
심판이 시작되자 넷째 짐승은 죽임을 당하고 그 시체가 상한 뒤 타오르는 불에 던져진다. 다른 짐승들은 권세를 빼앗기지만 생명은 정한 시기까지 보존된다(단 7:11-12). 이어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영원한 권세를 받는다. 제2장에서 돌이 신상의 발을 쳐서 모든 부분을 부서뜨린 사건이 제7장에서는 하늘 법정의 심판과 인자의 왕권 수여로 펼쳐진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재림 때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를 불못에 던지고 그들을 따르던 왕들과 군대를 심판하신다(계 19:19-21). 이것이 아마겟돈 전쟁의 심판이다. 손대지 아니한 돌이 세상 제국을 끝내는 때와 인자 같은 이가 영원한 나라를 받는 때는 같은 종말의 완성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성도의 시선은 작은 뿔의 위세가 아니라 그 뒤에 오시는 인자에게 머물러야 한다.
필자는 오스만 제국의 흥망과 오늘날 이슬람권의 변화를 살피며 마지막 적그리스도의 출현 가능성도 내다본다. 특히 튀르키예와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를 이슬람권의 세 세력으로 보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적그리스도가 나올 가능성을 추측한다. 이는 지나가 보아야 알 수 있는 일이므로 확정된 계시로 말하지 않는다. 다만 세상 정세를 보며 마지막 때를 깨어 준비해야 한다는 목회적 경고는 분명하다.
인자 같은 이의 심판은 성도에게 두려움만 주는 소식이 아니다. 작은 뿔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이 마침내 나라를 얻고 영원히 누릴 것이기 때문이다(단 7:18, 22, 27). 그리스도의 심판은 악한 권세를 끝내고 성도에게 나라를 돌려주는 공의로운 심판이다. 지금 세상 권력이 강해 보여도 마지막 판결은 이미 하늘 보좌에서 정해져 있다.
7. 하나님은 왜 열 발가락과 열 뿔의 때까지 세상 제국을 허락하시는가?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금 머리가 등장했을 때 곧바로 세상 역사를 끝내지 않으셨다. 메대와 바사와 헬라와 로마가 차례로 일어나게 하셨고, 쇠와 진흙의 발과 열 발가락, 넷째 짐승의 열 뿔에 이르기까지 역사가 이어지게 하셨다. 열이라는 수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모두 갖추어진 것처럼 충분히 찬 상태를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구원할 백성을 충분히 얻기까지 세상 역사를 오래 참으신다.
예수께서는 좋은 씨를 뿌린 밭에 원수가 가라지를 덧뿌린 비유를 말씀하셨다. 종들이 가라지를 뽑을지 물었을 때 주인은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여 추수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게 두라고 했다(마 13:24-30). 세상 제국 안에 죄악과 우상숭배가 가득해도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서 돌아올 사람을 찾으신다. 금 머리를 곧바로 깨뜨렸다면 바벨론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사람도, 포로 생활 속에서 믿음을 지킬 사람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느부갓네살의 생애가 그 오래 참으심을 보여 준다. 그는 제2장의 꿈과 해석을 통해 하나님이 왕들을 세우고 폐하시는 분임을 들었다. 다니엘에게 엎드려 절하고 그의 하나님을 모든 신들의 신이며 모든 왕의 주재라고 고백하기도 했다(단 2:46-48). 그러나 금 신상을 세워 절하게 했고, 큰 바벨론을 자기 능력으로 건설했다고 교만해졌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나무의 꿈을 주고 열두 달의 회개할 시간을 주신 뒤에야 칠 년의 징계를 내리셨다(단 4:27-33).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 칠십 년도 같은 원리를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기간을 이미 말씀하셨고, 다니엘은 그 예언의 연수를 깨달아 금식하며 민족의 죄를 자복했다(렘 25:11-12; 단 9:2-5). 하나님의 선고가 확정되고 기한이 시작된 뒤에는 다니엘이라고 해서 하루를 임의로 줄일 수 없었다. 그러므로 심판이 아직 집행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죄를 계속 지어도 된다는 뜻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형벌이 차기 전에 돌이킬 은혜의 시간이다.
세상 역사가 계속되는 동안 복음도 이동했다. 로마 제국의 영역이 여러 나라로 나뉘고 유럽 사람들이 대서양을 건너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로 갔으며, 그들이 지닌 여러 형태의 기독교도 함께 전해졌다. 다시 선교의 불이 일어나 조선에까지 복음이 들어왔다. 하나님께서는 짐승 같은 제국의 야망을 그대로 인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복잡한 역사 속에서도 구원받을 사람을 찾아내고 복음이 땅끝까지 이르게 하신다(마 24:14).
오늘 우리 민족 가운데 회개 운동이 일어나는 것도 하나님의 계획과 무관하지 않다. 조상의 죄를 회개하는 일이 개인의 구원을 대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상의 죄를 통해 혈통을 따라 내려온 악한 영의 영향을 회개로 처리하지 않으면 질병과 가난과 신기와 막힘 같은 현세의 고통이 계속될 수 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도 자기 죄와 조상의 우상숭배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여 가정을 살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늦추시는 동안 회개의 기회를 붙드는 것이 지혜다.
필자는 미국의 현재 역할이 트럼프의 시기 이후 크게 약해지고 이슬람 세력과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억제하던 힘도 사라질 것으로 내다보았다. 이 역시 설교에서 제시한 종말론적 전망이다. 정확한 시기와 인물은 하나님의 손에 있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는 경고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열 발가락과 열 뿔의 때까지 기다리시는 목적은 죄악을 묵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지막 한 사람까지 회개하고 돌아올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8. 생명책에 이름을 지키며 시대의 파수꾼으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은 영원한 구원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한때 믿었다는 이유만으로 이후의 삶과 회개가 아무 상관도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는 이기는 자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계 3:5). 이 약속은 끝까지 이기는 믿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함께 보여 준다. 바울도 복음을 위해 함께 힘쓰던 여인들과 동역자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다고 말하며 그들이 믿음 안에서 하나 되도록 권했다(빌 4:2-3).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의 능력을 직접 체험했고, 교만한 자를 낮추시는 하나님을 찬양했으며,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그의 이름도 생명책에 기록되었다. 그러나 그 체험을 끝까지 지키지 못했다. 이것은 한 번의 감동이나 고백으로 모든 과정이 끝난다고 안심하지 말아야 함을 보여 준다. 히브리서는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뒤 타락하는 위험과,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뒤 고의로 죄를 범하는 위험을 엄중히 경고한다(히 6:4-6; 10:26-29).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는 날마다 자신을 살피고 죄를 자백해야 한다. 회개는 예수를 처음 믿을 때만 필요한 입구가 아니다. 믿은 뒤에도 말씀과 성령의 책망 앞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돌이켜야 한다. 회개하지 않은 죄가 쌓여 하나님의 형벌이 확정되기 전에 돌이켜야 한다. 느부갓네살에게 나무의 꿈과 다니엘의 권면과 열두 달의 시간이 주어졌듯이, 오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은혜의 기회다.
시대의 파수꾼은 먼저 자기 자신과 가정을 위해 깨어 있는 사람이다. 세상에서 이름이 드러나지 않고 별다른 지위를 갖지 못했어도, 아침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어둠을 몰아내며 여명을 준비하는 사람은 영광스러운 사람이다. 예레미야가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세움을 받았듯이, 오늘 성도도 자기 집안의 파수꾼으로 세움을 받았다. 내가 먼저 회개를 시작하면 가정 안에서 죄의 흐름을 막고 가족이 하나님께 돌아올 길을 준비할 수 있다.
파수꾼은 세상 역사를 분별하되 공포에 사로잡혀 날짜만 계산하는 사람이 아니다. 다니엘은 환상을 받은 뒤 기록했고, 말씀을 연구했으며, 민족의 죄를 자기 죄처럼 자복했다(단 7:1; 9:2-5). 우리도 성경 전체를 배우고 세상 제국의 흐름을 살피며, 그 지식을 남을 정죄하는 데 쓰지 말고 더 깊은 회개와 중보기도로 연결해야 한다. 마지막 때를 안다는 증거는 자극적인 예측이 아니라 거룩한 삶과 충성된 기도다.
또한 파수꾼은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맡기신 사명을 품어야 한다. 우리 민족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고, 십사만 사천 명 가운데 많은 이들이 나오는 나라가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자기 가족만 편안하기를 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민족을 살리고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 세상에서는 작아 보여도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사람은 영원한 나라에서 귀하게 여김을 받는다.
지금은 회개할 수 있는 은혜의 때다. 작은 뿔이 나타나고 인자 같은 이가 심판하러 오기 전에, 죄를 버리고 맡겨진 자리를 지켜야 한다. 구원은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 가야 하며(빌 2:12), 파수꾼은 졸지 말고 새벽을 깨워야 한다. 내가 먼저 돌이키고 가정을 위해 기도하며 민족의 죄를 품고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한 사람을 통해 집안과 민족을 살리는 일을 이루신다.
9. 나오며
다니엘서의 네 가지 그리스도 예표와 손대지 아니한 돌과 인자 같은 이의 관계, 벨사살 원년의 환상과 느부갓네살의 칠 년 징계, 네 짐승과 네 제국, 작은 뿔 뒤에 임할 심판, 세상 제국이 마지막까지 허락되는 이유, 그리고 생명책에 이름을 지키며 파수꾼으로 사는 길을 살펴보았다.
다니엘서의 역사는 우연히 흘러가지 않는다. 금 머리의 바벨론부터 은의 메대와 바사, 놋의 헬라, 쇠의 로마와 열 발가락의 시대까지 하나님께서 전체를 알고 다스리신다. 인간의 눈에는 찬란한 신상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서로 삼키는 짐승이며, 그 마지막에는 손대지 아니한 돌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모든 교만한 권세를 끝내신다.
인자 같은 이는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으신다. 작은 뿔의 큰 말과 박해도 그분의 심판을 막지 못한다. 그분의 권세는 소멸되지 않고 그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도는 잠시 강해 보이는 세상 나라보다 영원한 그리스도의 나라를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세상 역사를 허락하신 것은 구원할 백성을 얻고 회개의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다. 그 오래 참으심을 심판이 없다는 뜻으로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선고가 확정되기 전에 돌이키고,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끝까지 믿음과 회개를 지켜야 한다.
이제 우리는 가정과 민족의 파수꾼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 아침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먼저 자기 죄를 회개하며, 가족과 민족이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중보해야 한다. 세상 역사를 분별하되 두려움에 빠지지 말고, 다시 오실 인자 같은 이를 바라보며 맡겨진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한다. 그리하여 생명책에 이름을 끝까지 지키고 가정과 민족을 살리며 영원한 그리스도의 나라에 참여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9월 01일(화)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다니엘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네 가지 예표를 통해 인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디자인과 심판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조명합니다. 특히 다니엘 2장의 손대지 아니한 돌과 7장의 인자 같은 이를 핵심 주제로 삼아, 바벨론부터 로마에 이르는 세상 제국들의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계획 아래 있음을 강조합니다. 이 설교는 느부갓네살 왕의 교만과 징계, 그리고 회복의 역사를 상세히 서술하며 인간의 진실한 회개가 구원의 결정적 열쇠임을 역설합니다. 궁극적으로 정보배 목사는 마지막 시대의 파수꾼으로서 회개 운동에 동참하여 다가올 심판을 준비하고 개인과 가문을 구원하는 영광스러운 삶을 살 것을 촉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