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05(일) 주일낮1부예배
제목: [기독론(140)]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그리스도는 대체 어떤 분이신가?(이사야 44:6, 9: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l88FklwjHVY
1. 들어가며
구약의 기독론은 모형과 예표와 예언을 통하여 점점 더 선명해진다. 창세기에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하여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이기는 자를 산출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이 드러났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여정에서는 만나와 쪼개진 반석과 장대 위에 달린 놋뱀과 성막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생명 공급과 속죄와 임재가 계시되었다. 여호수아서에서는 가나안 정복 전쟁을 통하여 악한 영들과 싸워 기업을 차지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예표를 보았다. 이어서 다윗과 솔로몬의 삶에서는 왕이신 그리스도와 전쟁에 능한 그리스도, 그리고 평화의 왕이신 그리스도와 지혜의 왕이신 그리스도, 그리고 성전 곧 교회를 세우시는 그리스도를 인격적인 예표로 살펴보았다.
이제 선지서에 이르면 그리스도는 모형이나 인물의 그림자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이제는 직접적인 예언의 말씀으로 직접 선포된다.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장차 보내실 메시야를 예언하였고, 그분이 어떤 분인지, 어떤 일을 하실 것인지, 그분의 오심과 고난과 죽음과 영광과 왕노릇과 심판까지 증언했다. 그중에서도 이사야서는 '구약의 복음서'라고 불릴 만큼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가 풍성하다. 이사야는 메시야의 잉태와 탄생만 말한 것이 아니다. 그는 메시아의 신분을 말했고, 그분의 사역을 말했으며, 무엇보다도 그분이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의 나타나심이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증언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다. 그것은 베드로처럼 매우 성경적인 신앙고백이다. 그러나 거기에서 멈추면 안 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보내심을 받은 분이지만, 원래는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속죄하시려고 아들로 나타나신 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아들'이라는 말은 한 분 하나님의 낮아지심과 보내심과 성육신의 신분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본질은 한 분 하나님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아들로만 제한하면 그분의 이름의 권세를 제대로 알 수 없고, 그분이 흘리신 피가 왜 하나님의 피인지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의 아들을 화목제물로 보내셨다고 분명하게 증언했다(요일4:10).
요일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들을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의]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여기서 “화목 제물”은 헬라어로 ‘힐라스모스’이며, 속죄제물 혹은 화목제물의 의미를 가진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신 이유는 우리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사도행전에서 사도 바울은 그분의 피를 “하나님의 피”라고 언급한다(행20:28).
행20:28 여러분은 [자기]자신[들]과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주의하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세우시고 하나님이 자기[자신에게 속한] 피로 사신(획득하신) 교회를 보살피게(목양하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아들로 오셨다는 사실과, 그분이 원래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함께 붙들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함께 보지 못하면 성경 전체의 기독론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이사야서가 왜 구약의 복음서라고 불리는지, 그리고 이사야가 예언한 그리스도는 대체 어떤 분이신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왜 이사야서는 구약의 복음서라 불리는가?
이사야서는 선지서 가운데 가장 복음서적인 책이다. 이 책에는 심판과 회복, 죄와 속죄, 남은 자와 새 창조, 메시야의 탄생과 사역과 고난과 영광이 함께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사야서를 읽으면 마치 구약 속에서 복음서를 미리 읽는 것과 같다. 이사야 40장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를 통하여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사역을 말한다. 이 말씀은 세례 요한의 사역으로 성취되었다. 이사야 53장은 고난받는 종의 죽음과 속죄를 말한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성취되었다. 이사야 61장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할 것을 말한다. 예수님은 나사렛 회당에서 바로 이 말씀을 읽으시고 자신에게 응했다고 선언하셨다.
이사야는 자신이 활동하던 시대의 왕들을 정확히 밝힌다. 그는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왕의 시대에 활동한 선지자였다(사1:1). 그는 궁궐과 나라의 운명을 바라보는 선지자였고, 동시에 하늘 보좌를 본 선지자였다. 그는 웃시야 왕이 죽던 그 해에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주님을 보았고, 스랍들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고 찬송하는 것을 들었다(사6:1-3).
사1: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
사6:1-3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이사야서를 읽아보면 이 선지서는 크게 두 흐름으로 볼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먼저 1장부터 39장까지는 유다와 열방에 대한 심판과 경고가 강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40장부터 66장까지는 위로와 회복과 새 창조의 소망이 강조된다. 그러므로 어떤 학자들은 역사적 배경과 문체 등을 이유로 이사야서를 제1이사야와 제2이사야, 때로는 제3이사야로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전통적으로는 이사야 한 사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심판과 위로, 현재와 미래, 앗수르와 바벨론, 그리고 메시야의 시대까지 통전적으로 예언한 것이다.
이사야서가 구약의 복음서인 이유는 메시야 예언이 가장 풍성하기 때문이다. 이사야는 처녀가 잉태하여 임마누엘을 낳을 것을 말했고(사 7:14), 한 아기와 한 아들이 전능하신 하나님과 영존하시는 아버지와 평강의 왕으로 불릴 것을 예언했다(사 9:6). 또한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고, 그 위에 여호와의 영이 머물 것을 말했다(사 11:1-2). 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는 종을 말했다(사 42:3). 그는 찔리고 상하며 징계를 받고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를 낫게 하시는 고난받는 종을 말했다(사 53:4-5). 그는 새 하늘과 새 땅까지 보았다(사65:17-18, 66:22-24).
그러므로 이사야서를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를 부분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오심과 사역과 속죄와 왕국과 새 창조까지 한 흐름으로 보게 된다. 이사야서의 중심에는 복음이 있고 그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는 것이다.
3. 이사야는 한 분 하나님을 어떻게 증언했는가?
이사야서의 가장 강력한 특징은 매우 독특한 여호와 하나님의 자기선언이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홀로 한 분이심을 계속해서 반복해서 선포한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외에 다른 신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분은 창조주이시며, 왕이시며, 구원자이시며, 구속자이시다. 그리고 이사야가 증언하는 하나님은 여러 신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신이 아니다. 그분은 홀로 하나님이시며, 비교 대상이 없는 유일한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이사야 44장 6절은 이러한 사실을 매우 놀랍게 압축한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이요 구원자라고 말씀하신 후에,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고 선언하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구원자”란 히브리어로 ‘가알’이라는 말과 관련된다. 이는 구속자, 속량자, 값을 치르고 되찾는 분이라는 뜻이다. 이사야의 여호와는 단지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아니라, 값을 치르고 자기 백성을 되찾으시는 구속자이시다(사44:6). 그런데 그분이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사야서에서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가리켜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는 표현을 세 번씩이나 말씀하신다(사41:4, 44:6,. 48:12)
사44: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그리고 하나님이 한 분이심은 이사야 45장에서도 계속해서 반복해서 선언된다. 하나님은 자신이 여호와이며, 다른 이가 없고, 자신 외에 신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사45:5-6).
사45:5-6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그런데 이 선언은 단순한 유일신 사상만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것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가 누군지를 이해하게 도와주는 매우 소중한 열쇠다. 왜냐하면 신약성경은 예수님을 이 한 분 하나님의 나타나심으로 증언하기 때문이다. 만약 구약에서 하나님이 여러 위격의 하나님들이 따로따로 활동하셨다고만 본다면, 이사야의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는 선언이 힘을 잃게 된다. 그러나 이사야는 그러한 하나님은 홀로 한 분이라로 증언한다. 그리고 신약은 바로 그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셨다고 증언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존재'와 '나타나심'을 구별하는 것이다. 그렇다. '아들'은 창세 전부터 하나님의 품 안에, 하나님의 계획 안에,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었다(골 1:15-16). 그때에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아들 안에서, 아들을 통하여, 아들을 위하여 창조하셨다(골1:15-16). 그러나 아들로 나타나신 것은 성육신 이후다. 성령도 구약시대부터 하나님의 영으로 활동하셨지만, 사람 안에 내주하시는 보혜사 성령으로 오신 것은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고 승천하신 후다.
골1:15-16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의) '먼저 나신 이(프로토토코스)'시니, 만물이 그에게서(그분 안에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분으]로 말미암고 그[분]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그러므로 이사야의 한 분 하나님 선언은 신약 기독론의 뿌리인 셈이다. 예수님이 누군지를 제대로 알려면 우리는 이사야 선지자가 증언한 여호와 자기선언을 먼저 들어야 한다. 그렇다. 그분은 언제나 홀로 한 분이시다. 그분 외에 다른 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한 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기이자 아들로 이 땅에 들어오신 것이다. 그래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아들이 되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사야가 증언하는 그리스도에 관한 놀라운 신비적인 증언이다.
4. 여호와의 ‘처음과 마지막’ 선언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사야서에서 여호와께서는 세 차례에 걸쳐 “처음과 마지막”이라는 자기선언을 하신다(사 41:4, 44:6, 48:12). 그러나 이 말씀은 하나님의 시간적 영원성만을 뜻하는 표현이 아니다. 물론 하나님은 시작 전부터 계셨고 끝 이후에도 계실 것이다. 그러나 이 표현은 그 이상을 담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역사의 시작이시며 완성이시라는 뜻이다. 만대를 불러내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마지막에 심판하고 완성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모든 역사는 그분에게서부터 시작되었고 그분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특히 이사야 41장 4절에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여기서 하나님은 모든 세대와 만대를 부르시고 이루시는 분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신다(사41:4). 그런데 하나님이 한 분으로서 그분이 처음이요 마지막이라는 표현은 이사야 48장 12절에서도 동일하게 “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신다(사48:12).
사41:4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처음부터 만대를 불러내었느냐 나 여호와라 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사48:12 야곱아 내가 부른 이스라엘아 내게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라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자기선언은 신약에서 예수님의 입에서 다시 나온다. 즉 요한계시록에 보면, 부활 승천하셨던 예수께서는 자기자신을 가리켜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분이 자신을 가리켜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고 말씀하신다는 점이다. 이사야에서 “처음과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셨던 분은 여호와이신데, 요한계시록에서는 죽었다가 살아나신 예수님의 자기선언으로 또 나타나는 것이다(계1:17-18). 이러한 사실은 서머나 교회에게 주신 말씀에서도 또 다시 나온다. 즉 예수께서는 서머나 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을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계2:8).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 22장에서도 역시 주 예수께서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고 선언하고 계신다(계22:13).
계1:17-18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계2: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계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그렇다면 이러한 예수님의 자기선언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자 다시 시작해보자. 구약시대에 “처음과 마지막”이라는 표현은 여호와 하나님만의 독특한 자기선언이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 “처음과 마지막”은 예수님의 자기선언으로 또다 등장한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둘 중의 하나가 된다. 하나는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을 사칭하는 자이든지 아니면 또 하나는 그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이다. 즉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 구원을 위하여 부득이하게 아들로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사야서의 하나님의 자기선언을 통하여, 오직 홀로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신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사야가 말한 홀로 한 분 하나님이 신약에서 예수님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은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의 또다른 표현이라고 본다. 실로 예수님은 비록 아들의 신분으로 이 따에 들어오셨으나 본질상 한 분 하나님이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단순히 하나님 곁에 있는 또 다른 신적 존재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분은 아버지와 하나이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께서 직접 제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신 표현이다(요10:30). 그리고 또한 자신의 제사 빌립이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했을 때, 예수께서는 자신을 본 자는 이미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셨다(요14:9). 그는 아버지와 아들이 별개의 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그리고 신약시대에 두 인격적인 존재로 아버지와 아들은 원래 한 분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나타나셨으미,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은 두 분이라고 말해서는 아니 된다.
요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요14: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더욱이 예수님이 이러한 말씀들은 이사야의 여호와 자기선언과 결코 분리시킬 수 없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경쟁하는 분이 아니시다. 또한 예수님은 아버지와 전혀 다른 두 번째 하나님도 아니시다.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아들로 나타나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사야서에 나타나 있는, 한 분 하나님의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는 선언은 요한계시록의 예수님 안에서 완결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5. 이사야 9장 6절은 아들과 하나님을 어떻게 연결하는가?
그리고 이사야 9장 6절의 말씀은 이사야서의 기독론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는 결정적 본문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다. 이 본문은 한 아기가 태어나고 한 아들이 주어진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아기의 이름이 놀랍다. 그는 기묘자인 모사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자, 영존하시는 아버지시요, 평강의 왕이라고 불릴 것이라고 말씀한다. 여기서 아기와 아들이 곧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로 불린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다(사9:6).
사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태어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통치권)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놀라우신 분)라 모사(조언자)라 전능하신(전사이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영원한) 아버지라 평강의 왕(통치자)이라 할 것임이라
이 본문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에 나오는 “능하신”이라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보면 ‘깁보르’이다. ‘깁보르’는 강한 자, 능한 자, 용사, 전쟁에 능한 자의 의미를 가진다. 그러므로 이 아기는 연약한 아기로 오시지만 본질상 능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귀신과 사망과 음부와 죄를 이기시는 전쟁에 능한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나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취하신 승리자이시다.
또한 이 아기는 그분을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말한다. 이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아들로 오셨으나, 그분의 본질이 아버지와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정확하게 보여 준다. 아들은 아버지와 다른 목적을 가진 존재가 전혀 아니다. 왜냐하면 아들은 아버지를 나타내시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신다”고 말씀하신 것도 바로 이와같은 이유 때문이다(요14:10).
요14: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또한 그는 “평강(샬롬)의 왕”이다. 여기서 “왕”이란 히브리어 ‘사르’로서 통치자, 다스리는 자의 의미를 가진다. 그분은 평화를 통치하시는 분이다. 솔로몬이 평화의 왕으로 예표되었지만, 솔로몬의 평화는 일시적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는 죄와 사망과 마귀를 이긴 후 주어지는 영원한 평화다.
이처럼 이사야 9장 6절은 예수님의 신분을 한꺼번에 보여 준다. 그는 아기로 오셨다. 그는 아들로 주어졌다. 그러나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그는 영존하시는 아버지다. 그는 평강의 왕(통치자)이다. 그러므로 아들로 오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정도로만 낮추어 이해하면 안 된다. 아들이라는 신분은 성육신의 경륜에서 필요했던 낮아지심의 표현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의 본질은 한 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한 분 하나님의 경륜이다. 하나님은 홀로 한 분이셨다. 그러나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들로 오셨다. 아들은 보내심을 받으셨고, 육신을 입으셨고, 피 흘려 죽으셨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피를 흘릴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로 오셨기에 피를 흘리실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 피는 단순히 한 의인의 피가 아니다. 성경은 그것을 '하나님의 피'라고 증언한다(행 20:28). 그러므로 이사야 9장 6절은 한 분 하나님과 아들로 오신 그리스도를 연결하는 가장 강력한 본문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어떤 독립된 제2의 신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아기와 아들로 오신 하나님의 나타나심이기 때문이다.
6. 예수님의 자기선언은 이사야 예언을 어떻게 완성하는가?
이러한 이사야의 예언은 신약에서 예수님의 자기선언으로 완성된다. 예수님은 자신을 단순히 선지자나 교사나 기적 행하는 자로만 소개하지 않으셨다. 그는 자신이 아버지와 하나라고 말씀하셨고, 자신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셨다. 또한 “내가 그(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8장 24절에 보면, “내가 그”라는 번역은 헬라어로 보면 ‘에고 에이미’이다. 이는 “나는 나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라는 신적 자기선언과 같은 표현이다(요8:24).
요8: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그렇다. 예수게서는 자신을 믿는 자는 자신만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자신을 보는 자는 자신을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요12:44-45).
요12:44-45 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이 말씀은 사실 예수님을 한 분 하나님의 나타나심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정확히 이해가 될 것이다. 이때 예수께서는 아버지와 분리된 다른 존재처럼 자신을 나타내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 안에서 아버지께서 일하신다. 예수님을 보는 것은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은 단순히 한 아들의 이름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께서 구원 사역을 위해 나타내신 이름이다. 고로 요한복음 1장 18절에서는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하나님을 나타내셨다고 말한다(요1:18). 그분이 바로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태어난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
요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나타내셨다”는 표현이다. 구약시대가지 아들은 아버지 품속에 계셨다. 그러다가 때가 되자 그분이 자신을 나타내신 것이다. 그러므로 아들의 나타나심은 하나님의 경륜의 시간 속에서 이해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존재와 나타나심을 혼동하면 아들을 영원 전부터 아버지 옆에 따로 서 계셨던 이 곧 또 다른 하나님처럼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성경은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심으로 자신을 이 땅에 나타내셨다고 증언한다.
특히 요한계시록은 이러한 모든 사실을 하나로 결론짓는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께서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선언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사야에서 여호와께서 하신 자기선언과 동일한 표현이다. 그렇다면 신약의 예수님은 구약의 여호와와 따로 떨어진 분이 아니다. 이사야가 예언한 한 분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서 나타나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디모데전서 3장 16절은 경건의 비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러한 그분(하나님)은 육신으로 나타나셨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셨으며, 천사들에게 보이셨고, 만국에서 전파되셨으며, 세상에서 믿은 바 되셨고, 영광 가운데 올려지셨다(딤전3:16).
딤전3: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신비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그분은 육신으로 나타나셨다. 원래부터 육신이셨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육신 안에서 나타나신 것이다. 그분은 이 땅에서 아들로 사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부활하셨으며, 승천하셨다. 그리고 지금도 아버지와 아들로 동시 존재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일하고 계신다. 이것이 한 분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이다.
7. 이사야는 오실 그리스도의 사역을 어떻게 예언했는가?
또한 이사야서는 그리스도의 신분에 대해서만 언급하지 않는다. 그분의 사역도 구체적으로 예언한다.
첫째, 이사야는 그분의 잉태와 탄생에 대해 예언한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이라고 했다(사7:14). 이 말씀은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의 탄생으로 성취되었다.
사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둘째, 이사야는 그분이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것을 예언하고 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고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라고 했다. 그 위에는 여호와의 영, 지혜와 총명의 영, 모략과 재능의 영,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머물 것이다(사11:1-2).
사11:1-2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셋째, 이사야는 메시야의 길을 예비할 선구자가 있다고 말한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주의 길을 예비하라고 외칠 것이다(사40:3). 이것은 세례 요한의 사역으로 성취되었다.
사40: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넷째, 이사야는 그분의 공생애 사역을 예언한다. 그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며,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할 것이다(사61:1). 예수님은 나사렛 회당에서 이 말씀을 읽고 자신에게 응했다고 하셨다.
사61: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다섯째, 이사야는 그분이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는 종으로 오실 것을 말한다(사42:1-3). 그는 강압으로 세우는 왕이 아니라, 긍휼과 공의로 세우는 종이시다.
사42:1-3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여섯째, 이사야는 그분의 고난과 죽음을 가장 선명하게 예언한다. 그는 멸시를 받고 버림받으며, 질고를 알고, 찔리고 상하고 징계를 받고 채찍에 맞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고난은 자기 죄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이다(사53:4-6).
사53:4-6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일곱째, 이사야는 그분의 장사와 높아짐도 말한다. 그는 악인들과 함께 죽을 자리로 정해졌으나 부자의 묘실에 장사될 것이며, 자기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린 후에는 씨를 보며 그의 날이 길 것이고 여호와의 뜻을 성취할 것이다(사53:9-11).
사53:9-11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여덟째, 이사야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말한다. 메시야의 사역은 개인의 구원에서 끝나지 않는다. 최종적으로는 새 창조와 새 예루살렘의 회복으로 이어진다(사65:17).
사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이처럼 이사야는 그리스도의 잉태, 탄생, 혈통, 선구자, 성령의 기름부음, 공생애, 치유와 자유 선포, 고난, 죽음, 장사, 높아짐, 왕국, 새 창조까지 예언한다. 그러므로 이사야서를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역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8. 한 분 하나님이신 예수 이름의 권세는 왜 강력한가?
고로 예수님의 이름은 단순히 한 청년의 이름이 아니다. 또한 그것은 단지 하나님의 아들로 불린 한 인물의 이름만도 아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구원 사역을 위해 우리에게 나타내신 이름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 혹은 '여호와가 구원자이시다'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에는 전능자의 권세가 뒤 따른다. 귀신들이 예수 이름 앞에서 떠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수님이 단지 종교 지도자라면 귀신들이 그분을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사야가 말한 처음과 마지막이신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분이므로, 그 이름에는 사망과 음부를 이긴 권세가 들어있다. 특히 예수께서는 부활 후 승천하실 때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내게 주어졌다”고 말씀하셨다(마28:18).
마28: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리고 믿는 자들에게는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표적이 따를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막16:17).
막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이름'이다. 우리가 축사할 때에 사용하는 이름은 자기 이름이 결코 아니다. 교단의 이름도 아니고, 사람의 권위도 아니다. 오직 예수의 이름이다.
그렇다면 그 예수는 대체 누구신가? 이사야가 말한 그분은 한 아기요 한 아들이시자, 동시에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요 평강의 왕이시다. 요한계시록에서 자신을 “처음과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신 바로 예수님이 그분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라는 이름은 단지 아들의 이름일 뿐만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의 고유한 이름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제대로 알수록 이름의 권세 역시 더 담대히 사용할 수 있다. 예수님을 단지 하나님의 아들 정도로만 생각하면, 귀신을 쫓을 때도 마음이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홀로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분임을 알면, 그 이름 앞에서 어떤 악한 영도 최종 권세를 가질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귀신들은 피조물이며 타락한 영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분이다.
또한 예수의 피는 단지 의로운 사람의 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교회를 사신 피다. 성도가 회개하고 자백할 때, 예수의 피는 죄를 사하고 깨끗하게 한다(요일1:9).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성도는 이를 붙들어야 한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모르면 이름을 사용하면서도 두려워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한 분 하나님이심을 알면, 예수 이름의 권세를 믿음으로 선포하게 된다. 이 권세는 자기 자랑을 위한 권세가 아니다. 사람을 살리고, 귀신에게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며, 천국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권세다. 그러므로 예수 이름의 권세를 아는 자는 더 많이 회개해야 하고, 더 거룩하게 살아야 하며, 더 담대하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예수님은 아들로 오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속죄를 위해 낮아지셨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으며, 부활하여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의 이름을 부를 때, 우리는 처음과 마지막이신 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 이름의 권세가 강력한 이유다.
9. 나오며
이사야서가 증언하는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그분이 어떻게 홀로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분인지를 살펴보았다. 이사야서는 단지 메시야의 탄생을 예고한 책이 아니다. 이사야서는 여호와의 자기선언과 메시야의 예언을 함께 담고 있으며, 그 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만나는 것을 보여 준다. 여호와께서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셨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께서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사실은 예수님이 여호와와 다른 또 하나의 신이 아니라, 홀로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나타나신 분임을 증거한다.
성도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야 한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분이 왜 아들로 오셔야 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피 흘려 죽으실 수 없으나, 우리 죄를 속죄하시려면 피가 필요했다. 그래서 홀로 한 분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로 오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아들 되심은 하나님의 사랑과 속죄의 경륜을 드러내는 낮아지심의 신분이다.
또한 성도는 이사야 9장 6절을 깊이 붙들어야 한다. 한 아기와 한 아들로 오신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요 평강의 왕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이 말씀을 붙들 때, 우리는 예수님을 단순히 역사 속의 인물이나 하나님의 아들로만 제한하지 않게 된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한 분 하나님을 보게 되고, 그분의 이름에서 전능자의 권세를 보게 된다.
그러므로 마지막 시대의 성도는 교리의 틀보다 성경의 증언을 더 깊이 붙들어야 한다. 성경이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말하고, 이사야가 여호와는 처음과 마지막이라고 말하며, 요한계시록이 예수님은 처음과 마지막이라고 말한다면, 성도는 그 증언 앞에 엎드려야 한다. 그리고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분임을 믿어야 한다.
이 믿음은 삶을 바꾼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피조물의 자리까지 낮아지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다면, 성도도 다른 영혼을 살리기 위하여 자기 생명을 드리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또한 예수 이름이 한 분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성도는 영적 전쟁에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대적하고, 예수의 피로 죄를 씻으며, 예수의 말씀으로 천국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이제 성도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더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분은 아들로 오신 하나님이시며, 처음과 마지막이신 분이고, 전능하신 하나님이며, 영존하시는 아버지이고, 평강의 왕이시다. 그분을 아는 만큼 그분을 사랑하게 되고, 그분을 사랑하는 만큼 그분의 이름의 권세를 믿음으로 사용하게 된다. 그리하여 한 분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사랑하며 그분의 이름으로 승리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설교핵심]
이사야서를 '구약의 복음서'로 정의하는 이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이 한 분뿐인 여호와 하나님의 성육신적 나타남이라는 사실을 신학적으로 규명합니다. 이 설교는 구약에서 자신을 처음과 마지막이라 선포하신 하나님이 신약의 예수님과 동일한 존재임을 강조하며, 아들이라는 신분은 인류를 속죄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낮아지신 경륜적 모습일 뿐 그 본질은 영존하시는 아버지임을 역설합니다. 또한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의 탄생과 고난, 그리고 통치는 단순히 역사적 인물을 넘어 전능하신 하나님이 직접 자기 피로 교회를 사신 구원 사역의 완성임을 설명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들이 예수 이름을 단순히 아들의 이름이 아닌 유일신 하나님의 권세로 인식하여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고 복음의 신비를 깊이 깨닫도록 촉구하는 목적을 지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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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05(일) 주일낮1부예배(투박한 글 요약)
제목: [기독론(140)]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그리스도는 대체 어떤 분이신가?(이사야 44:6, 9: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우리 주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가, 아니면 하나님이신가. 이 질문 앞에서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성도들이 의외로 많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하는 증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다고 증언하였다(요일 4:10). 여기에서 '화목제물'에 해당하는 헬라어 '힐라스모스'는 속죄제물 혹은 화목제물이라는 뜻이다.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그런데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여전히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는 이들이 많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으로 계시는데 이 셋은 하나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고 말하면 "예수님이 하나님이셨어?"라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아들로 계셨고,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오시어 속죄를 담당하셨으며, 돌아가신 다음에는 영원까지 하나님의 아들로 존재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이의 머릿속에는 사실상 한 분이신 하나님이 없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셋으로 존재하셨는데 이 셋은 본체와 능력과 영원성에 있어서 동일하기 때문에 하나라고 본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질문이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아는 것이 곧 신앙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겟세마네로 가시기 전날 밤에 아버지께 기도하시면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7:3). 그러니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그분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것이 곧 영생과 직결되어 있는 것이다.
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그렇다면 성경은 과연 무엇이라고 증언하는가. 놀랍게도 이러한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정의를 한꺼번에 정리해 주는 구약의 책이 있다. 그것이 바로 이사야서다. 이사야서에는 그리스도이신 아들에 대한 놀라운 계시의 말씀들이 들어 있는데 가히 충격적이다. 우리가 만약 이사야 선지자의 계시를 몰랐다면 우리는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그리스도가 대체 어떤 분이신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인가, 아니면 하나님 자신이신가?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의 왕이요 구원자이신 여호와께서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하시면서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고 선언하셨다는 말씀이요(사 44:6), 바로 그분이 한 아기와 한 아들로 태어나실 것인데 그분의 이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요 평강의 왕이라 불릴 것이라는 말씀이다(사 9:6).
사 44: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사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여기에서 '구원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가알'은 구속자 혹은 속량자라는 뜻이다. 그리고 '전능하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깁보르'는 능하신 자, 강한 자, 전사라는 뜻이며, '기묘자'는 놀라운 분, '모사'는 조언자, '평강의 왕'에서 '왕'에 해당하는 '사르'는 통치자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심각한 질문이 생긴다.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다고 선언하신 여호와께서 친히 아기와 아들로 태어나신다고 하였으니, 과연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신가,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신가. 아기로 태어나신 그분의 이름이 어떻게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신약성경, 특히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을 통하여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 수가 있다. 첫째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하셨고(요 10:30),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셨으며(요 14:9),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요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라고 하셨다(요 12:44-45).
요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요 14: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요 12:44-45 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나아가 예수께서는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고까지 말씀하셨다(요 8:24). 여기에서 '내가 그'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고 에이미'는 "나는 나다" 곧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호렙산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에게 당신 자신을 계시하실 때에 사용하신 바로 그 이름이다(출 3:14). 그러니까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이 곧 모세에게 나타나셨던 스스로 있는 자라고 선언하신 것이요, 이것을 믿지 않으면 죄 가운데서 죽는다고까지 말씀하신 것이다.
요 8: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출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둘째로, 하늘로 승천하신 예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시어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셨다(계 1:17).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예수님의 이 자기선언과 이사야서에서 여호와께서 세 번씩이나 반복하신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라는 자기선언 사이에는 대체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곧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대답이 된다.
3.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삼위일체 교리는 무엇이 문제인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현재 고백하고 있는 신앙고백의 교리다. 제일 중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장로교는 1648년 영국에서 만들어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삼위일체 교리를 믿고 있다. 이것은 1643년부터 1647년까지 영국의 웨스트민스터에서 열린 회의 기간 중에 제정된 전문 33장의 칼빈주의적 신앙고백서다. 이 신앙고백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이렇게 정의한다. "하나님의 본체는 하나이시며 곧 동시에 삼위이시다. 즉 본체와 능력과 영원성에 있어서 동일하신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시다. 성부는 아무에게서도 나시거나 나오시지 않으시고, 성자는 성부에게서 영원히 나셨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영원히 나오신다."
그런데 이 교리는 뒷부분에서 잘못된 정의를 내렸다. 성자가 '영원히' 나셨고 성령이 '영원히' 나오셨다는 표현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성자가 성부에게서 영원히 나셨다는 표현이다. 이 교리를 따르는 이들은 영원 전에 나셨던 아들과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셨던 성령이 함께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믿게 된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처음부터 셋으로 계셨다는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교리는 하나님의 경륜을 무시한다. 하나님께서 홀로 한 분으로 계셨으나 우리 인간을 위하여 아들로 오셨다는 시간적인 절차를 무시한 정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경륜에는 분명한 시간의 순서가 있다. 태초에 하나님은 홀로 한 분으로 계셨다. 그리고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보내시어 여자에게서 나게 하셨다(갈 4:4). 그리고 아들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오순절에 보혜사 성령이 강림하셨다. 아들이 나신 때는 영원이 아니라 성육신 때이며, 보혜사 성령이 나오신 때도 영원이 아니라 오순절 성령강림 때인 것이다.
갈 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예수께서도 보혜사 성령에 대하여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5:26).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성령을 보내실 분이 예수님이시니, 보혜사 성령이 나오시는 때는 영원 전이 아니라 예수께서 승천하신 이후인 것이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셨다고 증언하였다(갈 4:6). 아들의 영이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진 때가 언제인가. 그것 역시 영원 전이 아니라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다.
요 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갈 4: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왜 한 분 하나님에 대하여 오해하거나 잘못 알게 되었는가. 나는 그 뿌리가 벨직신앙고백서에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1561년에 나온 벨직신앙고백서는 성부는 성자가 아니고, 성자는 성령이 아니며, 성령은 성부가 아니라고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니다'라고 할 것이 아니라 '구별된다'라고 표현했어야 했다. '아니다'라고 정의하는 순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서로 다른 세 분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천주교에서 삼위일체 교리를 가르칠 때 사용하는 그림들을 보면 이 문제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어떤 그림은 성부는 할아버지처럼, 아들은 젊은 사람처럼, 성령은 비둘기로 그려 놓았기 때문에 셋을 구별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그림은 셋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아서 찬찬히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그림들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 눈에 셋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림을 보는 이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세 분으로 새기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어떻게 증언하는가. 아들은 아버지와 하나이며, 아들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이라고 증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리와 그림이 아니라 성경의 증언 앞에 서야 한다.
4. 아들과 성령의 존재하심과 나타나심은 어떻게 다른가?
그런데 이러한 교리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가 별로 없다. 왜냐하면 아들과 성령의 '존재하심'과 '나타나심'을 구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둘을 구별하는 것이야말로 한 분 하나님을 이해하는 열쇠다.
먼저 아들의 경우를 보자. 구약시대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품속에 계셨다. 곧 존재하고 계셨다. 사도 요한은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다고 증언하였다(요 1:18). 아들은 아버지의 품속에 계시다가 때가 되매 육신을 입고 나타나신 것이다. 그래서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증언하였다(요 1:14).
요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아들 안에서, 아들을 통하여, 아들을 위하여 창조하실 수가 있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며,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되 그분으로 말미암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증언하였다(골 1:15-16). 여기에서 '먼저 나신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가 '프로토토코스'다.
골 1:15-16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그러니까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이미 하나님의 생각 속에는 아들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분이 아들로 나타나셔서 활동하신 것은 성육신 이후다. 존재로 말하면 아들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품속에 계셨으나, 나타나심으로 말하면 아들은 베들레헴에서 아기로 태어나실 때에 비로소 이 땅에 나신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바로 이 존재하심과 나타나심을 구별하지 못하고 '영원히 나셨다'고 정의함으로써 혼란을 일으킨 것이다.
성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성령께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교리와는 달리 이미 구약시대부터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셔서 활동하고 계셨다. 창세기는 태초에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셨다고 증언한다(창 1:2).
창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그러나 성령께서 보혜사 성령으로서 사람 속에 내주하시기 위하여 오신 때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후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 아버지께 말씀하시어 내주하시는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이 '영원히 나오신다'는 정의 역시 존재하심과 나타나심을 구별하지 못한 정의다. 성령께서는 구약시대부터 이미 나오셔서 활동하고 계셨고, 내주하시는 보혜사로 나타나신 때는 오순절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존재하심과 나타나심을 구별하고 나면, 하나님은 홀로 한 분이시며 그 한 분 하나님께서 때가 되매 아들로 오시고 보혜사로 오셨다는 하나님의 경륜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5. 이사야는 대체 누구이며 이사야서는 어떤 책인가?
그렇다면 이러한 한 분 하나님을 가장 강력하게 증언하는 이사야는 대체 누구인가. 이사야는 B.C. 740년부터 680년까지 약 60년 어간에 남유다의 네 왕, 곧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의 시대에 활동하였던 궁궐 선지자다(사 1:1).
사 1:1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
그가 궁궐 선지자였다고 보는 것은 그가 웃시야(아사랴) 왕의 아버지였던 남유다 제9대 왕 아마샤의 형제이거나 아들로서 선지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는 왕실의 혈통에 속한 사람으로서 왕들 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선지자였던 것이다. 그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천국의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올라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선지자가 되었다(사 6:1). 왜냐하면 그는 이미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선지자로 보내신 사람이었기 때문이다(사 49:1).
사 6: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사 49:1 섬들아 내게 들으라 먼 곳 백성들아 주의하라 여호와께서 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으며
이사야서는 어떤 책인가. 이사야서가 중요한 것은 다음 네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구약의 열일곱 권의 선지서들 가운데 맨 앞에 나오는 예언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사야서가 구약의 가장 이른 시기에 기록된 선지서는 아니다. 기록된 선지서만 따진다면 이사야보다 약 100년 전에 이미 오바댜서와 요엘서가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록 여부와 상관없이 선지자로 말한다면 사무엘 선지자 내지는 엘리야나 엘리사가 먼저일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그가 예언한 것들이 너무나 방대하기 때문이다. 분량으로 보면 선지자들 가운데서 예레미야 다음이지만, 장수로 보면 제일 많다. 예레미야서는 52장이요, 이사야서는 66장이다.
셋째, 그의 예언은 구약 예언자의 모형이 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는 심판과 회복, 심판과 회개의 촉구, 회복과 구원의 소망을 선포하였다. 이것이야말로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이 걸어간 길이다.
넷째, 구약 예언 가운데 메시야에 관한 가장 많은 직접적인 예언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사야서는 한마디로 '구약의 복음서'라고 불린다. 이사야 40장부터 66장까지를 보면 영락없이 사복음서를 닮았기 때문이다. 메시야의 오실 길을 준비하는 광야의 외치는 소리가 이사야 40장에 나온다. 그리고 공생애에 그분이 무슨 일을 하실 것인지가 그 중간에 나오고, 이사야 65장과 66장에는 재림 후에 펼쳐질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예언이 나온다. 그러니까 이사야서는 그리스도의 초림에서 재림과 새 하늘과 새 땅에 이르기까지 복음의 전 과정을 미리 보여 주는 책인 것이다.
6.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의 신분과 사역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사야가 예언하였던 메시야는 대체 어떤 분이신가.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에 관한 것들을 분석해 보면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메시야의 신분에 관한 예언이다. 이사야서에는 적어도 아홉 가지 이상의 메시야의 신분이 나온다. 이사야는 메시야를 첫째 한 분이신 하나님으로, 둘째 처음과 마지막이신 분으로, 셋째 유일한 구원자로, 넷째 아기이자 아들로 오실 하나님 자신으로, 다섯째 다윗 왕의 후손이자 의로운 가지로, 여섯째 고난받는 종으로, 일곱째 목자로, 여덟째 모퉁잇돌이자 반석으로, 아홉째 재림주이자 심판주로 예언하고 있다.
이 가운데 몇 가지만 성구로 확인해 보자. 이사야는 여호와 외에 구원자가 없다고 선언하였다(사 43:11). 그런데 신약은 예수님을 구원자라고 증언하니, 예수님이 곧 여호와가 아니시라면 이 두 증언은 충돌하고 만다.
사 43:11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또한 이사야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예언하였다(사 7:14).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이니, 처녀에게서 나실 그 아기가 곧 하나님 자신이시라는 것이다.
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또한 이사야는 메시야가 이새의 줄기에서 나는 한 싹이요 그 뿌리에서 나는 한 가지라고 예언하였고(사 11:1), 우리의 허물 때문에 찔리고 우리의 죄악 때문에 상하는 고난받는 종이라고 예언하였으며(사 53:5),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는 목자라고 예언하였고(사 40:11), 시온에 두신 견고한 기촛돌이라고 예언하였다(사 28:16).
사 11: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 40:11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사 28:1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놀랍지 않은가. 유대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는 한 인간 정도가 아니라, 처음과 마지막이시요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다고 선언하신 한 분 하나님 그분이시라는 것이다.
둘째는 메시야의 사역에 관한 예언이다. 이사야는 메시야의 혈통과, 잉태와 출생과, 선구자의 인도와, 성령을 받고 갈릴리에서 사역하실 것과, 이방인의 빛으로서 병든 자를 치유하실 것과, 고난받으시고 죽으시고 부자의 묘실에 장사되실 것과, 높아지셔서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부어 주실 것과, 심판주로 오셔서 왕 노릇 하실 것과, 회복될 그분의 나라가 새 하늘과 새 땅이 되는 것까지 예언하였다. 메시야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사역하실 것과(사 61:1), 죽으신 후에 부자와 함께 장사되실 것까지(사 53:9) 낱낱이 예언되어 있다.
사 61: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사 53: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예컨대 메시야보다 앞서 와서 그분의 길을 예비할 선구자에 대하여 이사야는,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고 예언하였는데(사 40:3), 사복음서는 이 말씀이 세례 요한을 통하여 그대로 성취되었다고 증언한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놀라운 사실이 발견된다. 선구자가 예비하는 길이 '여호와의 길'이라고 되어 있는데, 정작 세례 요한이 예비한 길은 예수님의 길이었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예수님이 곧 여호와이심을 보여 주는 강력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사 40: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또한 이사야는 메시야가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 곧 이방의 갈릴리에서 큰 빛으로 비추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사 9:1-2). 마태복음은 예수께서 갈릴리 가버나움으로 가시어 사역을 시작하신 것이 바로 이 말씀의 성취라고 증언한다.
사 9:1-2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우리가 사복음서에서 확인하는 예수님의 생애가 이미 700여 년 전에 이사야의 입을 통하여 낱낱이 예언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예언들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예언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께서 홀로 한 분이셨던 하나님이시라고 가르쳐 준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이사야서에 나오는 여호와의 자기선언과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예수님의 자기선언을 통하여 확인할 수가 있다.
7. 여호와와 예수님의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는 선언은 어떤 관계인가?
이사야서에서 여호와께서는 세 번씩이나 당신 자신을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선언하셨다. 여호와께서는 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라고 하셨고(사 41:4),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다고 하셨으며(사 44:6), 야곱과 이스라엘을 향하여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라고 하셨다(사 48:12).
사 41:4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처음부터 만대를 불러내었느냐 나 여호와라 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사 48:12 야곱아 내가 부른 이스라엘아 내게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라
그런데 하늘로 승천하신 예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시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을 가리켜 처음이요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라고 선언하셨다(계 1:17-18, 2:8). 나아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고까지 선언하셨다(계 22:13).
계 1:17-18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계 2: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계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 알파와 오메가라는 칭호는 전능하신 주 하나님의 자기 칭호이기도 하다(계 1:8). 알파는 헬라어 알파벳의 첫 글자요 오메가는 마지막 글자이니, 알파와 오메가는 곧 처음과 마지막이라는 뜻이다.
계 1: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그렇다면 여호와의 자기선언과 예수님의 자기선언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아무런 차이가 없다. 완전히 동일한 자기선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대한 결론 앞에 서게 된다. 여호와께서는 분명히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다고 하셨다. 그런데 예수께서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선언하셨다. 만약 예수님이 여호와와 다른 분이시라면 처음과 마지막이 두 분이 되고, 이는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다는 여호와의 선언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러므로 결론은 하나뿐이다. 예수님은 여호와의 또 다른 오심이다(사 44:6). 이사야 9장 6절이 가르쳐 준 바에 따르면, 그분은 원래 한 분 하나님이셨는데 우리 인류를 위하여 아기이자 아들로 오신 것이다.
그 증거는 세 가지다. 첫째, 그분은 당신 스스로를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요 8:24). 둘째, 그분은 당신 스스로를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계 1:17). 셋째, 그분이 흘리신 피가 곧 하나님의 피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다고 말하였다(행 20:28).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를 성경은 하나님 자신의 피라고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행 20: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그렇다. 예수께서는 원래 홀로 한 분 하나님이신데, 우리 인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피 흘려 죽으시고자 육신을 입고 아기이자 아들로 오신 것이다(사 9:6). 그러므로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 정도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여호와의 또 다른 오심이며, 그것을 가리켜 그분이 아들로 오셨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직 홀로 동시존재가 가능하신 하나님께서 성육신 이후에는 아버지와 아들로 활동하시게 된 것이다. 예수께서 빌립에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시면서,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신다고 말씀하신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요 14:9-10).
요 14:9-10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그리고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보혜사로 오셨다. 그러므로 오순절 이후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시는 성령은 생명 주는 영이 되신 것이다.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아들로 나타나셔서 당신의 일을 하신 것이니, 사도 바울이 노래한 대로 이것이야말로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 아닐 수 없다(딤전 3:16).
딤전 3: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8.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이심을 알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믿음이 있어도 한 분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모르면 어떻게 되는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잘 모르게 된다. 창조주는 여호와요 구속자는 예수님이라고만 생각하게 된다. 예수께서는 태초부터 홀로 한 분으로 계신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시라는 것을 알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을 세 분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예수님을 끝까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만 우기게 되며, 예수님을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으로 보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은 홀로 한 분이라고 하면서도, 그분이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하셨는데 예수께서도 역시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예수님의 이름이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모르게 되고,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하면서도 그 이름이 전능자의 이름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을 때에도 귀신이 안 떠나갈까 봐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시라는 것을 믿어, 하나님께서 아들이라는 신분으로 오셨음을 믿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한 분이심을 믿는다고,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이심을 믿는다고, 예수께서 아들로 오신 것은 우리의 속죄를 위한 부득이한 조치였음을 믿는다고, 예수께서 아들로 오셔서 나의 죄를 속죄하여 주셨음을 믿는다고, 그리고 다시 오실 한 분 하나님을 기다린다고 고백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구약시대에는 여호와께서 처음이자 마지막이신 분이셨지만 신약에는 예수께서 처음이자 마지막이신 분으로서 동일한 한 분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신 것을 감사함으로 고백해야 한다. 나아가 이제까지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것을 믿지 못하게 하고, 예수께서 원래 한 분 하나님이셨으나 온 인류를 위하여 아들로 오신 것을 깨닫지 못하게 하던 악한 영들을 예수의 이름으로 결박하고 물리쳐야 한다. 그리고 내 영혼을 향하여 깨어나라고 선포해야 한다.
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그분을 사랑하게 된다. 그분은 아들로 존재하시기 위하여 존재하신 분이 아니다. 그분은 원래 한 분이신 하나님이셨지만 우리의 속죄를 위하여 아들로 오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면 우리는 두 가지를 행하게 된다.
첫째,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내놓을 수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영원하신 하나님이 피조물이 되시어 죽으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내놓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둘째, 그분의 이름을 사용할 때에 단지 아들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그분을 알고 그분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우리에게서 그분의 이름의 권세가 나타난다. 그분이 전능자시요 한 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지막 시대에 영적 전사로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이렇게까지 행하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요, 그분의 이름이 전능자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도 예수의 이름의 권세를 실제로 영적 세계에서 사용하여,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예수님을 널리 전해야 하는 것이다.
9. 나오며
이 시간에는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그리스도가 대체 어떤 분이신지를 살펴보았다. 이사야는 B.C. 740년부터 680년까지 남유다의 네 왕의 시대에 활동한 궁궐 선지자로서, 메시야의 신분에 관하여 아홉 가지 이상을 예언하였고 메시야의 사역에 관하여 잉태와 출생에서 새 하늘과 새 땅에 이르기까지 낱낱이 예언하였다. 그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예언은 아기와 아들로 태어나실 그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시라는 것이었다(사 9:6). 그리고 이사야서에서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다고 선언하신 여호와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님으로서 동일하게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선언하셨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구약시대에는 여호와께서 처음이자 마지막이신 분이셨고 신약에는 예수께서 처음이자 마지막이신 분이시니, 두 분은 동일한 한 분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정도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들어오셨지만 원래 그분은 한 분 하나님의 또 다른 표현이시기 때문이다. 동시존재가 가능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아들로 오셨기 때문에 지금은 아버지와 아들로 동시에 존재하시며 활동하고 계신다. 오늘날의 삼위일체 교리는 셋을 강조하다가 그만 삼신론적 신앙으로 빠져 버리게 하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리를 따라갈 것이 아니라 성경에 나온 그대로 믿고 따라가야 한다. 이사야서는 한 분 하나님이 곧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증거하는 강력한 책이다.
또한 우리는 예수께서 아들로 오신 것이 우리의 속죄를 위한 부득이한 조치였음을 알아야 한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피 흘려 죽으시기 위하여 친히 피조물의 몸을 입고 오셨으니, 그 사랑을 아는 자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예수의 이름이 곧 전능자의 이름이요 한 분 하나님의 이름임을 알아, 그 이름의 권세를 영적 세계에서 실제로 사용해야 한다. 그분을 알면 알수록 그분을 사랑하게 되고, 그분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그분의 이름의 권세가 우리에게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지막 시대에 예수의 이름의 권세로 영적 전사로 승리하며,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예수님을 널리 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7월 5일(일)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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