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06(일) 주일낮1부예배
제목: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6) 인자 같은 이(05)(다니엘7:13~1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wAK4cetSF_8
[설교를 정리하기 위한 핵심 질문 7가지]
1. 다니엘서의 그리스도 네 예표는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가?
2. 다니엘은 왜 메시아를 ‘인자’가 아닌 ‘인자 같은 이’라 했는가?
3. ‘인자’로 오신 예수께서는 이 땅에서 어떤 권세를 가지셨는가?
4. 인자는 왜 고난받고 죽어 많은 사람의 대속물이 되셨는가?
5. 인자 같은 이는 어떻게 영원한 왕과 심판자가 되셨는가?
6. 성도가 천국에 들어가 왕과 심판자가 되는 조건은 무엇인가?
7. 하늘의 영광을 얻으려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기독론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6)
인자 같은 이(05)
(단 7:13-14)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거룩한 주일에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하는 성도들을 하나님께서는 진심으로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 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도 말씀 앞에 마음을 열고,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보여 주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아야 한다.
대선지서에 나타난 기독론(基督論, Christology)은 저마다 강조점이 다르다. 이사야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고난받는 종으로 예언했다. 예레미야는 새 언약을 세우시는 의로운 왕으로, 에스겔은 하나님의 임재를 회복하는 참 목자와 새 성전으로 예언했다. 그런데 다니엘은 그리스도를 하늘로부터 권세를 받는 ‘인자 같은 이’로 보여 준다. 그분은 세상 나라를 끝내고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왕국을 세우실 분이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서 삼십삼 년 반의 생애를 사시는 동안 자신을 ‘인자 같은 이’라고 부르지 않으셨다. 자신을 가리켜 가장 많이 사용하신 칭호는 ‘인자’였다. 헬라어로는 ‘호 휘오스 투 안드로푸’, 곧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원문을 따라 세어 보면 그 칭호를 무려 예순일곱 차례 사용하셨다. 그 밖에도 아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왕, 생명의 떡, 세상의 빛, 양들의 문, 선한 목자, 길과 진리와 생명, 부활과 생명, 에고 에이미, 심판자라는 여러 칭호가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 자신의 사명과 삶을 가장 자주 설명하신 말은 단연 ‘인자’다.
다니엘이 약 서른다섯 살이던 벨사살 원년, 곧 주전 577년경에 그는 밤 환상 가운데 네 짐승을 보았다. 느부갓네살이 광인이 되어 정상적으로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던 때에 그의 아들 벨사살 1세가 대신 통치하던 시기였다. 넷째 짐승은 죽임을 당해 그 시체가 불에 던져졌고, 앞의 사자와 곰과 표범은 권세를 빼앗겼으나 정한 때까지 생명을 보존받았다. 마지막 시대에는 이 세 짐승의 속성이 다시 모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으로 나타난다. 바로 그 장면 뒤에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시는 인자 같은 이가 나타났다.
인자 같은 이를 모르면 하나님께서 왜 사람이 되셨는지, 왜 사람들을 섬기고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 주셨는지 알기 어렵다. 또한 지금 그분이 하늘의 영광스러운 보좌에 앉아 만유를 다스리고 심판하시는 분이라는 사실도 놓치게 된다. 더 나아가 천국에 들어간 모든 사람이 저절로 같은 지위와 신분을 얻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늘의 영광만 탐내면서 이 땅에서 섬기고 희생하는 삶을 외면하기 쉽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다니엘서의 그리스도 네 예표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인자와 인자 같은 이가 어떻게 다른지, 인자로 오신 예수께서 가지신 권세와 대속의 죽음, 영원한 왕과 심판자가 되신 과정, 성도가 천국에 들어가 왕과 심판자가 되는 조건, 그리고 하늘의 영광을 얻기 위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다니엘서의 그리스도 네 예표는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가?
다니엘서에는 그리스도를 보여 주는 네 가지 중요한 예표가 나온다. 제2장에는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나오고, 제7장에는 ‘인자 같은 이’가 나오며, 제9장에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메시아가 나온다. 제10장과 제12장에는 ‘세마포 옷을 입은 이’가 나온다(단 2:34-35, 45; 7:13; 9:24-26; 10:5-6; 12:6-7). 이 네 모습은 서로 다른 네 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신분을 각각 다른 각도에서 보여 준다.
첫째, 손대지 아니한 돌은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진 왕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왕을 보여 준다. 느부갓네살이 본 금 신상의 발과 열 발가락을 이 돌이 쳐서 부서뜨리자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함께 가루가 되었다.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했다(단 2:34-35). 이는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시대의 세상 왕국을 심판하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왕국(王國, kingdom)을 세우실 것을 뜻한다.
둘째, 인자 같은 이는 하나님에게서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아 모든 백성과 민족과 언어를 다스리는 영원한 왕을 보여 준다. 그분은 이 땅에서 인자로 섬기고 희생하셨지만, 사명을 마치고 하늘에 오르신 뒤에는 소멸되지 않는 권세를 가진 분이 되셨다. 손대지 아니한 돌이 세상 왕국을 깨뜨리는 심판의 능력을 보여 준다면, 인자 같은 이는 그 심판 뒤에 세워질 왕적 지위와 통치권을 보여 준다.
셋째,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구원의 일을 이루기 위해 보냄받은 메시아를 보여 준다(단 9:24-26). 메시아는 자기 백성을 위하여 오시지만 끊어져 없어질 것이라고 예언되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셔서 고난받고 죽으실 것을 가리킨다. 넷째, 세마포 옷을 입은 이는 죄가 없고 거룩하며 하늘의 영광을 입으신 그리스도를 보여 준다.
다니엘이 본 세마포 옷을 입은 이는 허리에 우바스 순금 띠를 띠고, 몸은 황옥 같고 얼굴은 번갯빛 같으며 눈은 횃불 같았다. 팔과 발은 빛난 놋 같고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았다(단 10:5-6). 이 모습은 요한계시록에서 일곱 금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모습과 평행을 이룬다. 흰옷과 금 띠, 불꽃 같은 눈, 빛난 놋 같은 발과 많은 물소리 같은 음성이 서로 연결된다(계 1:13-16). 사람으로 오신 예수께서 죄 없이 사명을 완수하고 승리하신 뒤 얻으신 천상의 영광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네 예표는 하나의 흐름을 이룬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사람으로 오셔서 죽으시고, 죄 없는 세마포 옷을 입은 이로 사명을 완수하신다. 그분은 인자 같은 이로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고, 마지막에는 손대지 아니한 돌로 세상 왕국과 적그리스도의 권세를 깨뜨리신다. 다니엘의 네 예표는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고난, 승리와 영광, 재림과 영원한 통치를 함께 보여 준다.
3. 다니엘은 왜 메시아를 ‘인자’가 아닌 ‘인자 같은 이’라 했는가?
‘인자’와 ‘인자 같은 이’는 같은 분의 서로 다른 사역 상태를 보여 준다. 예수께서 이 땅에서 자신을 인자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실제 사람이 되어 오셨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분은 스스로 계신다는 측면에서는 하나님이시며, 보내심을 받았다는 측면에서는 아들이시다. 그러나 사람을 위하여 죽으시려면 사람의 육체를 입으셔야 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무엇이든 하실 수 있지만 하나님으로서는 죽으실 수 없기에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하여 사람이 되신 것이다.
예수께서 ‘인자’를 자주 사용하신 첫째 이유는 사람을 섬기고 죽기 위해 오셨음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그분의 낮아지심은 단지 겉모양만 사람처럼 보인 것이 아니다. 배고픔과 피곤함을 겪고, 배척과 능욕을 당하며, 실제로 자기 목숨을 내어 주셨다. 그러나 죄는 없으셨다. 이 때문에 다니엘 제10장과 제12장의 흰 세마포 옷을 입은 이가 인자로 오신 그리스도의 거룩함과 승리를 함께 보여 준다.
둘째 이유는 사람이 되어 받은 사명을 끝까지 완수하신 뒤 하늘에서 왕 노릇하고 심판하실 것을 암시하기 위함이다. 예수께서는 섬김과 희생의 길을 지나 부활(復活, resurrection)하고 승천(昇天, ascension)하셨다. 그리고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아 만유를 통치하신다. 지상에서는 인자로 사셨지만, 천상에서는 사람의 모습을 지니면서도 하나님과 같은 영광을 가지신 ‘인자 같은 이’로 나타나신다.
셋째 이유는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이 땅의 사명을 완수하고 이기는 자가 될 때 천국에서 왕 노릇하고 심판하는 지위를 얻을 수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앉으신 것같이 이기는 자에게도 자신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계 3:21). 그러므로 ‘인자 같은 이’는 예수님의 영광만을 보여 주는 칭호가 아니라, 그분의 길을 따라가는 성도에게 주어질 하늘의 신분도 비추어 준다.
다니엘은 환상 중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모습을 보았기에 ‘인자 같은 이’라고 표현했다. 그분은 분명 사람의 형상을 지녔으나 평범한 사람으로 끝나는 분이 아니었다. 하늘 구름을 타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 앞으로 나아가 모든 민족의 섬김을 받았다. 사람으로 오셔서 섬기신 낮아짐과 하나님과 같은 영원한 통치를 함께 지니신 분이다. 바로 이 두 측면이 ‘인자 같은 이’라는 표현 안에 담겨 있다.
4. ‘인자’로 오신 예수께서는 이 땅에서 어떤 권세를 가지셨는가?
예수께서는 참사람으로 오셨지만 원래 하나님이시기에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권세를 나타내셨다. 요한복음은 그분이 하늘에서 내려오셨으며 이전에 계시던 곳으로 다시 올라가실 분이라고 증언한다(요 3:13; 6:62). 예수께서는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 알고”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 사용된 ‘내가 그다’라는 표현은 헬라어 ‘에고 에이미’이며, 그분이 단지 한 선지자가 아니라 본래 하나님으로 계신 분임을 드러낸다(요 8:28).
첫째, 예수께서는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셨다. 중풍병자를 향해 죄 사함을 선포하셨을 때 서기관들은 하나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사할 수 있느냐고 생각했다. 예수께서는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알게 하려고 병자에게 일어나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명하셨다. 그가 일어나자 보이지 않는 죄 사함의 권세가 눈에 보이는 치유를 통해 증명되었다(마 9:2-8).
둘째, 예수께서는 심판하는 권한을 받으셨다. 아버지께서는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그에게 주셨다(요 5:27). 여기에는 중요한 원리가 있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연약함과 시험과 고난을 몸소 겪으셨고, 끝까지 죄 없이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다. 그러므로 온 인류의 행위를 공의롭게 판단하실 인자로 세워지셨다. 그 심판은 겉모양이 아니라 사람의 중심과 행위를 모두 아는 심판이다.
셋째, 예수께서는 생명과 죽음을 다스리는 권세를 나타내셨다.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며 죽은 자를 살리셨다. 그러나 그 권세를 자신의 편안함과 명예를 위해 사용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고, 죄와 사망에 묶인 사람을 놓아 주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데 사용하셨다. 인자의 권세는 군림하는 권세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고 자유롭게 하는 권세였다.
넷째, 예수께서는 장차 아버지의 영광으로 천사들과 함께 와서 각 사람에게 행한 대로 갚으실 권세를 가지셨다(마 16:27). 이 땅에서 죄를 사하시고 생명을 주신 인자가 마지막 날에는 모든 사람을 심판하신다. 초림 때에는 섬기는 종의 모습으로 오셨지만 재림 때에는 왕의 영광으로 오신다. 낮아지신 인자와 영광스러운 심판주는 서로 다른 분이 아니라 한 분 예수님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서 가지신 권세를 바르게 보아야 한다. 그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권세를 가지셨고, 동시에 사람으로서 순종과 고난을 통과하여 그 권세를 온전히 행사하셨다. 그리고 죄 사함과 치유와 구원(救援, salvation)을 위해 그것을 사용하셨다. 우리도 하나님께 받은 은사와 직분과 권위를 자기 영광을 위해 쓰지 말고, 잃어버린 영혼을 살리고 섬기는 데 사용해야 한다.
5. 인자는 왜 고난받고 죽어 많은 사람의 대속물이 되셨는가?
인자가 오신 가장 중요한 목적은 잃어버린 사람을 찾아 구원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代贖物, ransom)로 주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피 흘려 죽으실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육체를 입고 사람이 되어 오셨다. 예수께서는 사람의 죄를 대신 담당할 흠 없는 속죄제물이 되기 위해 죄 없는 삶을 사셨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다.
대속이라는 말은 헬라어 ‘뤼트론’과 연결되며 속전, 속죄물, 석방금이라는 뜻을 지닌다. 노예나 포로를 풀어 주기 위해 값을 지불하듯이 예수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죄인들을 놓아 주는 값으로 내어 주셨다. 우리가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선행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인자께서 대신 값을 치르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속죄(贖罪, atonement)의 중심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제자들에게 적어도 세 차례 분명히 예고하셨다. 인자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림받고 죽임당한 뒤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한다고 하셨다(막 8:31). 또한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 만에 살아날 것을 말씀하셨다(막 9:31). 예루살렘에서는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능욕과 침 뱉음과 채찍질을 당하고 죽임당한 뒤 삼 일 만에 살아나실 것까지 구체적으로 밝히셨다(막 10:33-34).
인자의 고난은 우연한 실패가 아니었다. 사람들의 배신과 종교지도자들의 미움과 로마의 형벌이 있었지만,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인류를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다. 예수께서는 고난을 피할 능력이 없어서 죽으신 것이 아니다. 열두 군단이 더 되는 천사를 동원하실 수 있었지만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내어 놓으셨다. 섬김과 희생은 인자의 사명을 완수하는 길이었다.
죽음의 고난을 받으신 예수께서는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셨다.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신 뒤 부활하여 사망 권세를 깨뜨리셨기 때문이다(히 2:9). 십자가 없는 영광은 없다. 예수께서 먼저 낮아지고 순종하여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지극히 높이셨다. 그러므로 인자의 삶을 따르려는 성도도 섬김 없이 왕권만 탐하거나 희생 없이 영광만 구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을 반복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죄인을 구속하는 속죄의 죽음은 오직 죄 없으신 예수님만 감당하셨다. 우리가 따를 것은 그분의 구속 사역 자체가 아니라 섬김과 순종과 자기희생의 길이다.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은 이제 자기만을 위해 살지 않고, 주께서 맡기신 사람을 섬기며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6. 인자 같은 이는 어떻게 영원한 왕과 심판자가 되셨는가?
예수께서는 이 땅에 보내어진 사명을 완수하신 뒤 부활하고 하늘에 오르셨다. 그리고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아 왕 노릇하며 심판하시는 인자 같은 이가 되셨다. 다니엘이 본 권세와 영광과 왕국은 십자가를 피하여 얻은 것이 아니라, 죽기까지 충성하고 승리하신 뒤 받은 것이다. 먼저 인자로 섬기셨고, 그 후에 하늘의 인자 같은 이로 영광을 받으셨다.
다니엘 제8장의 환상은 이 왕권이 악한 세력을 어떻게 끝내는지 보여 준다. 벨사살왕 삼 년, 곧 주전 575년경에 다니엘은 을래강변에서 두 뿔 가진 숫양과 큰 뿔이 있는 털 많은 숫염소를 보았다(단 8:1-8). 가브리엘은 숫양이 메대와 바사의 왕들이고 숫염소는 헬라 왕이며, 두 눈 사이의 큰 뿔은 첫째 왕이라고 해석했다(단 8:20-21). 알렉산더는 십 년 만에 죽었고, 그 뒤 카산드로스, 리시마코스, 셀류코스, 프톨레마이오스의 네 왕국이 일어났지만 그의 권세만큼 강하지는 못했다.
그 네 나라의 마지막 때에 뻔뻔하고 속임수에 능한 한 왕이 일어나 거룩한 백성을 괴롭힐 것이 예고되었다. 역사 속에서는 셀류코스 왕국의 안디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가 그 예언을 이루는 인물로 나타났다. 그는 주전 215년에 태어나 주전 164년에 쉰한 살로 죽었으며, 하나님의 백성과 성전을 대적했다. 동시에 그는 마지막 때 하나님을 대적할 적그리스도의 모습을 미리 보여 주는 예표가 된다.
그 왕은 스스로 높아져 만왕의 왕을 대적하지만 사람의 손으로 말미암지 않고 깨진다(단 8:23-25). 원문에서 강조한 표현은 ‘사르들의 사르’이며, 신약의 표현으로 하면 ‘주들의 주’, 곧 만주의 주다. 다니엘 제2장에서 사람의 손으로 다듬지 않은 돌이 금 신상을 부서뜨린 것과 같은 원리다. 인간의 무기나 정치적 연합이 아니라 하늘에서 오시는 그리스도께서 악한 왕의 권세를 끝내신다. 인자 같은 이는 만왕의 왕이며 만주의 주로서 모든 짐승의 나라와 적그리스도의 통치를 심판하신다.
승천하신 예수께서는 지금도 영광의 보좌에 앉아 만유를 통치하신다. 장차 때가 이르면 하늘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신다. 먼저 익은 알곡 성도를 거두시고, 마지막에는 아마겟돈 전쟁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왕들과 그 군대를 쳐부수실 것이다. 그분의 재림(再臨, second coming)은 초림처럼 낮고 감추어진 모습이 아니라 능력과 큰 영광 가운데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사건이 된다.
예수께서는 대제사장 앞에서도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밝히며,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그들이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막 14:61-62). 또한 아버지의 영광으로 천사들과 함께 와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실 것이라고 하셨다(마 16:27). 그러므로 인자 같은 이의 영원한 왕권에는 통치만 아니라 의로운 심판(審判, judgment)이 포함된다.
그분의 권세는 소멸되지 않고 왕국은 멸망하지 않는다. 세상 왕은 죽고 나라의 주인은 바뀌지만 예수님의 통치권은 다른 백성에게 넘어가지 않는다. 모든 백성과 나라와 다른 언어를 말하는 자들이 그분을 섬긴다. 이 영원성 때문에 인자 같은 이는 단지 위대한 인간 왕이 아니라 하나님과 같은 영광과 권세를 지니신 분이다.
7. 성도가 천국에 들어가 왕과 심판자가 되는 조건은 무엇인가?
우리 영혼은 이 땅에서 처음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보내어진 존재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듯이, 어머니의 태에서 육체가 지어질 때 하나님께서 영혼을 그 육체 안에 보내신다. 필자가 천국에 가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사람마다 하늘에서부터 사명을 받고 보내어진 경우가 있었고, 이 땅에 내려갔다가 다시 천국으로 돌아오라는 말씀을 듣고 온 이들도 있었다. 그렇다면 땅에 내려와 사람이 된 뒤 누가 다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
첫째,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이다. 사람이 범한 죄는 하늘의 행위책에 기록되며, 죄를 통하여 들어온 악한 영들이 사람을 붙잡는다. 그 죄가 가려지지 않으면 거룩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하여 속죄제물로 오셔서 흘리신 피가 자기 죄를 가린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예수께서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자신을 내어 주셨음을 믿고 죄를 회개(悔改, repentance)해야 한다.
둘째, 아버지의 생명을 받은 사람이다. 천국에는 하나님의 자녀이자 상속자가 들어간다.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께서는 생명 주는 영이 되어 믿는 자들 속에 들어오신다(고전 15:45). 사람이 예수님을 자신의 구원자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생명을 받고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다.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만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한 번 영접했다는 사실만으로 이후의 삶과 상관없이 생명이 영구적으로 보장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는 이기는 자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않고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겠다고 말씀하셨다(계 3:5). 이 약속은 반대로 끝까지 이기지 못하는 사람의 이름이 지워질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성도는 믿음과 회개를 계속 지키며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한다.
셋째, 천국에 들어가는 것과 천국에서 왕적 지위를 얻는 것을 구별해야 한다.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생명을 얻은 사람은 자녀로 들어간다. 그러나 이 땅에 보내어진 사명을 충성스럽게 완수한 사람은 기업을 물려받을 상속자로 들어가며, 더 나아가 왕 노릇하고 심판하는 지위에 들어간다. 하늘의 지위와 신분은 땅에서의 충성과 섬김과 이김에 따라 달라진다.
예수께서는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 자신을 따른 열두 제자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라고 하셨다(마 19:28). 또한 아버지께서 왕국을 맡기신 것같이 제자들에게도 맡겨 보좌에 앉아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신다고 약속하셨다(눅 22:29-30). 주와 함께 죽고 인내하는 사람은 주와 함께 살고 왕 노릇한다(딤후 2:11-12).
왕과 심판자가 되는 것은 세상에서 권력을 탐하라는 말이 아니다. 예수님의 왕권은 먼저 섬김과 희생과 충성으로 검증되었다. 성도도 맡겨진 사명을 끝까지 수행하고 죄와 세상을 이겨야 한다. 자기 욕심을 위해 사람 위에 군림하려는 자가 아니라, 주님처럼 섬기고 영혼을 살리며 진리를 위해 고난을 견디는 사람이 하늘의 보좌를 맡을 수 있다.
8. 하늘의 영광을 얻으려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믿음은 말로만 예수님을 높이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되어 이 땅에 보내어진 사명을 충성스럽게 완수하고, 예수님을 따라 이기는 삶을 사는 것이다. 하늘의 영광을 원하는 사람은 먼저 지상에서 인자의 길을 걸어야 한다. 섬김을 받으려고 하지 말고 섬겨야 하며, 자기 유익만 붙잡지 말고 주께서 맡기신 영혼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
첫째, 고난을 참고 견뎌야 한다.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앞에 두고도 사명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우리도 복음을 전하다가 오해와 손해를 만나더라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아야 한다.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딤후 2:12). 인내는 하늘의 지위를 돈으로 사는 공로가 아니라, 믿음이 살아 있음을 드러내는 열매다.
둘째, 섬기고 희생하며 겸손해야 한다. 예수께서 영광의 자리에 앉으신 과정에는 발을 씻기고 병든 자를 고치며 굶주린 자를 먹이고 마침내 목숨까지 내어 놓으신 삶이 있었다. 우리는 결과와 칭찬만 바라보지 말고 작은 일에서부터 다른 사람을 높여야 한다. 하늘의 영광만 탐하면서 땅에서 섬기지 않는 것은 인자의 길과 반대다.
셋째,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 충성해야 한다. 사람마다 받은 사명과 분량은 다르지만 충성의 기준은 같다. 주께서 맡기신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진실해야 하고,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악한 영에게 눌린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일에도 충성해야 한다. 이 모든 사역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승리와 천국의 도래를 증언하기 위한 것이다.
넷째, 죄를 깨달을 때마다 회개하며 정결함을 지켜야 한다. 죄 사함을 받았다는 과거의 경험만 의지하지 말고 오늘의 말과 생각과 행동을 살펴야 한다. 죄를 자백하고 예수님의 피를 의지함으로 악한 영이 붙잡을 근거를 제거해야 한다. 회개는 사명을 가로막는 죄를 치우고 끝까지 이기는 자로 서게 하는 실제적인 길이다.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에 담긴 감사와 결단도 이 길을 분명히 보여 준다. 다니엘이 장차 오실 예수님을 왜 인자 같은 이로 보았는지 알게 하신 것을 감사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손대지 아니한 돌, 인자 같은 이, 기름부음을 받은 자, 흰옷을 입은 이로 나타나신다는 사실을 붙들어야 한다. 섬기러 오신 예수님은 보지 못한 채 하늘의 영광만 탐냈던 죄를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섬기는 자가 되겠습니다. 희생하고 겸손하며 사명에 충성하고 예수님처럼 살겠습니다”라고 결단해야 한다. 예수께서 어떻게 영광의 보좌에 앉으셨는지 보지 못하게 막는 악한 영과, 영광만 탐하게 하고 섬기지 못하게 하는 악한 영을 예수의 이름으로 결박하고 떠나가라고 명해야 한다. 잠든 영혼을 깨우고 먼저 인자로 사신 뒤 인자 같은 이의 영광을 받으신 예수님의 삶을 따라가야 한다.
하늘에서 아름다운 지위와 신분을 얻는 길은 땅에서 높아지는 데 있지 않다. 예수님처럼 낮아지고 섬기며, 회개와 천국복음을 위해 살고, 맡겨진 사명을 끝까지 완수하는 데 있다. 왕 노릇과 심판의 권세는 자기 영광을 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장식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으로 사람을 섬기고 진리를 지킨 이기는 자에게 맡겨지는 책임이다.
9. 나오며
다니엘서의 그리스도 네 예표와 인자와 인자 같은 이의 차이, 인자로 오신 예수께서 이 땅에서 가지신 권세, 대속의 고난과 죽음, 영원한 왕과 심판자가 되신 과정, 성도가 천국에 들어가 왕과 심판자가 되는 조건, 그리고 하늘의 영광을 얻는 삶을 살펴보았다.
다니엘서의 손대지 아니한 돌과 인자 같은 이와 기름부음을 받은 자와 세마포 옷을 입은 이는 모두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분은 사람의 손으로 세워진 왕이 아니라 하늘에서 오신 왕이며, 죄 없는 메시아로서 죽음을 통과하고 영광을 얻으셨다. 마지막에는 세상 왕국과 적그리스도의 권세를 깨뜨리고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왕국을 세우신다.
예수께서는 원래 하나님이셨지만 우리를 위해 사람이 되셨다. 인자로서 죄를 사하고 생명을 주는 권세를 나타내셨으며, 잃어버린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 주셨다. 고난과 죽음은 실패가 아니라 사명을 이루는 길이었고, 부활과 승천 뒤에는 인자 같은 이로서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으셨다.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과 그곳에서 받을 지위의 조건을 함께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아버지의 생명을 받아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야 한다. 동시에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회개하며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자녀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에 머물지 않고, 맡겨진 사명을 완수하여 상속자와 왕과 심판자의 신분을 얻도록 충성해야 한다.
하늘의 보좌는 땅에서 섬김을 외면한 채 영광만 탐낸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먼저 낮아지고 섬기며 희생하셨다. 우리도 고난을 참고, 작은 일에 충성하며,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악한 영에게 눌린 자들을 자유롭게 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은사와 권세도 자기 자랑이 아니라 영혼을 살리는 데 사용해야 한다.
지금 영광 가운데 계신 예수님이 어떻게 그 자리에 이르셨는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 먼저 인자로 오셔서 죽기까지 순종하셨고, 그 후에 인자 같은 이로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으셨다. 우리도 예수님의 길을 따라 섬기고 희생하며 사명에 충성해야 한다. 그리하여 이 땅에서 인자의 길을 충실히 따르고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왕 노릇 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9월 06일(일)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