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9(일) 오후찬양예배
제목: [기독론(148)] 이사야의 예언(08) 모통이의 돌이자 깨뜨리는 바위이신 예수님 (이사야 8:14, 28:1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fuyFPywujHk
기독론 148 · 이사야의 예언 08
모통이의 돌이자 깨뜨리는 바위이신 예수님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이 질문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성경은 단순히 한 위대한 인물의 생애를 기록한 책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보내실 구원자, 곧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시며 어떤 일을 행하실 것인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증언하는 책이다.
특별히 이사야서는 구약성경 가운데서도 가장 풍성하게 메시아를 증언하는 책이다. 이사야는 예수님의 탄생부터 시작하여 그분의 신분, 사역, 고난, 죽음, 부활, 승리, 재림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완성까지 바라보며 예언하였다.
그래서 이사야서는 흔히 ‘구약의 복음서’라고 불린다. 복음서가 예수님의 지상 생애를 기록한다면, 이사야서는 예수님께서 오시기 약 700년 전에 이미 그분이 누구이신지를 미리 보여 준 책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사야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여러 모습을 살펴보았다.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이시며, 처음과 마지막이 되시는 분이다. 또한 유일한 구원자이시며 희년을 선포하시는 분이다. 그리고 아기이자 아들로 오신 하나님 자신이며,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의로운 왕이시다. 또한 고난받는 의로운 종이시며, 자데 또 하나의 중요한 예언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모퉁이의 돌’이시며 동시에 ‘깨뜨리는 바위’가 되신다는 말씀이다.
'돌'이라는 표현은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돌은 단순한 건축 재료가 아니다. 성경에서 돌은 기초, 견고함, 흔들리지 않는 진리,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상징한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돌'에 비유하셨고(마21:42), 사도들도 예수님을 '돌'이라고 증언하였다(행4:11, 벧전2:6-8, 롬9:33, 엡2:20). 특히 베드로는 예수님을 ‘산 돌’이라고 표현하였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죽은 우상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이며, 모든 믿는 자들이 그 위에 세워져야 할 영원한 기초가 되신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같은 돌이 어떤 사람에게는 구원의 기초가 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과 깨뜨리는 바위가 된다는 것이다. 왜 같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과 거부하는 사람 사이에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왜 어떤 사람에게 예수님은 생명의 반석이 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심판의 돌이 되는 것일까? 이것은 단순히 신앙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영원한 운명이 결정되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사야는 장차 하나님께서 시온에 한 돌을 두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 돌은 시험한 돌이자, 귀하고 견고한 기초돌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돌을 믿는 사람은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한다. 그렇지만 이 돌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어떤 사람에게는 보배로운 돌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걸려 넘어지는 돌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이사야가 예언한 모퉁이의 돌이자 깨뜨리는 바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시며, 그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왜 예수님은 ‘돌’로 예언되었는가?
성경에서 '돌'은 매우 특별한 상징성을 가진다. 돌은 변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도 쉽게 썩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성품을 돌에 비유한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십계명을 돌판에 기록하게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생각처럼 변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라는 것을 보여 준다.
또한 돌은 건축물의 기초가 된다. 건물이 아무리 아름답게 지어져도 기초가 흔들리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철학이나 종교 위에 세워지는 분이 아니라, 모든 구원의 기초가 되시는 분이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산 돌’이라고 표현하였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단순히 건축물의 재료가 되는 돌이 아니라 생명을 주시는 살아 있는 기초라는 의미이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버렸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버린 예수님을 가장 귀한 보배로운 돌로 세우셨다.
여기에는 중요한 영적 원리가 있다. 인간의 판단과 하나님의 판단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실패자로 보았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무능한 자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십자가를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셨고, 부활을 통하여 예수님이 참된 구원자이심을 확증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단순한 종교 지도자가 아니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영원한 구원의 기초이며, 모든 인생이 반드시 만나야 할 생명의 돌이다.
3. 왜 예수님은 ‘모퉁이의 돌’이 되시는가?
예수님께서 돌이시라는 표현 가운데 가장 중요한 표현은 ‘모퉁이의 돌’이라는 말이다. 성경에서 모퉁이의 돌은 단순히 건물 한쪽에 놓이는 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건물 전체의 방향과 안정성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초석을 의미한다.
고대 건축에서 모퉁이의 돌은 특별한 역할을 했다. 건물을 세울 때 가장 먼저 놓는 돌이며, 두 벽이 만나는 기준점이 되는 돌이다. 이 돌이 바르게 놓이면 건물 전체가 균형을 이루지만, 이 돌이 잘못 놓이면 건물 전체가 기울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모퉁이의 돌이 되신다는 것은 예수님이 모든 구원의 기준이 되신다는 뜻이다. 인간의 사상, 철학, 종교, 경험이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것의 기준이 되신다는 의미이다.
이사야는 장차 하나님께서 시온에 한 돌을 두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 돌은 단순한 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선택하신 돌이었다.
여기서 ‘기초돌’이라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핀나(פִּנָּה)’라는 단어와 연결된다. 이 단어는 모퉁이, 모퉁이 돌이라는 뜻을 가진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단순한 장식용 돌로 세우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지탱하는 중심 돌로 세우셨다.
예수님이 중심이 되지 않는 신앙은 결국 흔들린다. 인간의 감정, 환경, 성공, 능력 위에 세워진 신앙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신 신앙은 어떤 환난과 시험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의 차이는 단순히 지식의 차이가 아니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느냐의 차이였다.
예수님은 우리의 인생 건축물의 기초가 되신다. 그분 위에 세워진 삶만이 마지막 심판의 날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이라는 돌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돌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가 문제라는 것이다. 같은 돌을 가지고도 어떤 사람은 집을 세우지만 어떤 사람은 그 돌에 걸려 넘어지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유대 지도자들에게 자신이 바로 그 돌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건축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께서 보내신 참된 돌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 체계와 전통을 붙잡았고, 그 기준으로 예수님을 판단했다. 결국 하나님께서 보내신 가장 귀한 돌을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오늘날에도 동일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사람이 자신의 경험, 지식, 교만한 생각을 기준으로 예수님을 판단하면 결국 생명의 돌을 버리게 된다. 그러나 어린아이처럼 겸손하게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가장 귀한 보배가 된다.
4. 왜 예수님은 어떤 사람에게 ‘깨뜨리는 바위’가 되는가?
예수님은 '모퉁이의 돌'이실 뿐만 아니라 '깨뜨리는 바위'가 되신다. 이것은 매우 두려운 말씀이다. 같은 예수님이 어떤 사람에게는 구원의 반석이 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심판의 바위가 된다는 뜻이다.
이사야는 이미 이것을 예언하였다.
여기서 ‘거치는 돌’과 ‘걸리는 반석’이라는 표현은 예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결과를 말한다. 예수님은 본래 구원자로 오셨다. 그러나 사람이 그 구원자를 거부하면 그분은 오히려 심판의 기준이 된다. 빛이 찾아왔는데도 어둠을 사랑하면 그 빛은 자신을 정죄하는 증거가 된다. 의사가 찾아왔는데도 치료를 거부하면 병이 더 깊어지는 것과 같다. 예수님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거부하는 인간의 완고함이 문제이다.
베드로는 이사야와 시편의 예언을 연결하여 예수님을 설명하였다. 믿는 자에게 예수님은 보배로운 돌이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에게 예수님은 넘어지게 하는 돌이 된다. 결국 예수님 자체가 두 가지 모습을 가진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동일한 구원자이시다. 다만 사람이 그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자신이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대하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예수님을 내 삶의 중심에 모시고 있는지, 아니면 내 생각과 기준으로 예수님을 판단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5. 베드로는 왜 예수님을 ‘산 돌’이라고 고백했는가?
예수님을 '돌'로 표현한 대표적인 인물이 있다. 바로 사도 베드로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산 돌’이라고 표현하였다(벧전 2:5).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베드로 자신의 인생과 깊은 관련이 있는 고백이었다. 베드로는 원래 '시몬'(들으심)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셨다. 그것이 바로 '베드로'였다(요 1:42).
헬라어로 베드로는 ‘페트로스(Πέτρος)’이다. 그리고 반석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는 ‘페트라(πέτρα)’이다(마 16:18). 두 단어는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동일한 의미는 아니다. '페트라'는 크고 견고한 바위를 의미하고, '페트로스'는 그 바위에서 나온 작은 돌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름을 주시면서 그가 무엇을 붙들고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 주셨다. 베드로 자신이 교회의 기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세워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오해한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개인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반석은 베드로가 고백한 신앙 고백, 곧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고백이다. 교회는 사람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다. 훌륭한 지도자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살아 계시는 반석이시다.
베드로는 훗날 이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산 돌’이라고 증언하였다.
베드로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성도가 돌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예수님과 성도의 차이는 분명하다. 예수님은 기초가 되는 산 돌이시고, 성도는 그 돌 위에 연결되어 세워지는 살아 있는 돌이다.
한편 무할례자의 사도였던 바울도 역시 예수께서 한 편으로 구원얻는 이방인들에게는 교회를 건축하는 모퉁이 돌이 되셨지만(엡 2:20), 동시에 예수님을 거부했던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부딛히는 돌이자 거치는 바위가 되셨다고 언급하였다(롬 9:33).
롬 9:32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건물은 하나의 돌만으로 세워지지 않는다. 기초석 위에 수많은 돌이 연결될 때 아름다운 건물이 된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든 성도가 연결될 때 하나님의 거룩한 집이 된다.
6. 반석 위에 세워지는 교회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특징은 분명하다. 그것은 사람이 중심이 되는 교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는 교회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바라볼 때 건물, 조직, 프로그램, 사람의 능력을 먼저 본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세워졌느냐에 있다.
예수님께서는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음부의 권세'는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음부의 문들'이다. 이것은 죽음과 사탄의 세력을 상징한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 아무런 힘이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 삼은 교회는 죽음의 권세를 넘어선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진정한 능력을 가지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위에 서야 한다. 말씀을 의심하고 인간의 생각으로 바꾸기 시작하면 반석 위의 교회가 아니라 모래 위의 집이 된다.
특히 예수님의 말씀은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는 진리이다. 인간의 생각은 시대에 따라 변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신뢰하는 믿음이다. 말씀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결국 말씀 자체가 자신을 넘어뜨리는 돌이 될 수 있다.
예수님은 우리의 판단을 받아야 하는 분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판단받아야 하는 존재이다.
7. 우리는 예수님을 어떤 돌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결국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예수님이 누구신가가 아니라 내가 예수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느냐이다. 예수님은 어떤 사람에게는 보배로운 모퉁이 돌이 된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깨뜨리는 바위가 된다. 이 차이는 예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반응에 있다.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그분은 생명의 반석이 된다. 그러나 예수님을 거부하고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는 사람에게 그분은 결국 심판의 기준이 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님 앞에서 항상 겸손해야 한다.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워야 한다. 내 경험보다 예수님의 말씀을 신뢰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을 무너뜨리려고 오신 분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를 영원히 견고하게 세우기 위해 오신 분이다. 예수님을 중심에 모신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환난이 와도 무너지지 않는다. 죽음 앞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는다. 왜냐하면 영원한 반석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8. 예수 그리스도를 반석으로 삼는 자에게 어떤 축복이 있는가?
예수님을 반석으로 삼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은 크다.
첫째, 그는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돌을 붙드는 사람은 마지막 날에 버림받지 않는다.
둘째, 그는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게 된다. 세상의 환경은 계속 변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변하지 않는다.
셋째, 그는 음부의 권세(문들)를 이기는 삶을 살게 된다. 예수님의 이름과 권세 안에 거하는 사람은 사탄의 공격 앞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반석으로 삼는 것은 단순한 종교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과 연결되는 결정이다.
9. 나오며
이사야가 예언한 모퉁이의 돌이자 깨뜨리는 바위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살펴보았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시온에 두신 귀하고 견고한 기초돌이다. 그분은 모든 구원의 중심이며, 모든 성도가 세워져야 할 영원한 반석이다.
그러나 같은 돌이 믿는 자에게는 '보배'가 되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도 살펴보았다. 예수님은 변하지 않으신다. 변화되는 것은 예수님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의 생각과 기준을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가장 중심에 모셔야 한다. 그분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을 붙드는 영원한 반석이시며, 어떤 환난과 시험 속에서도 우리를 무너지지 않게 하시는 구원의 돌이시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참된 모퉁이의 돌로 삼고 그분 위에 믿음의 집을 세워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7월 19일(주일)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이사야의 예언을 바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모퉁잇돌이자 깨뜨리는 바위라는 이중적 상징으로 규명하며, 신앙의 본질이 주님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 있음을 역설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예수님을 건축의 중심인 기초의 모퉁잇돌로 영접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구원이 보장되지만, 그분을 배척하고 의심하는 자들에게는 그 존재가 오히려 자신을 부수고 넘어뜨리는 걸림돌과 심판의 바위가 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특히 베드로의 신앙 고백과 사도적 권위가 바로 이 '반석'과 같은 진리 위에 세워졌음을 설명하며, 성도는 지성적 판단보다 초자연적인 말씀의 권위를 온전히 신뢰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결국 이 텍스트는 영원히 변치 않는 기록된 말씀을 심령에 새기고, 회개와 믿음을 통해 예수님을 파멸의 바위가 아닌 구원의 기초석으로 삼으라는 권면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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