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이 갖고 있었던 믿음은 크게 2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그가 부르심받은 직후에 가졌던 믿음과 그의 노년에 갖게 되었던 믿음이 또 한 가지다.
그가 부르심을 받은 75세 때에 그는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졌었다. 그리고 훗날 이삭을 제물로 바치던 노년의 시기에는 '죽은 자를 살려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되어서 그러한 믿음은 소유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그가 그동안 약 40~50년간의 수많은 실패의 교훈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가를 점점 깨닫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생각했다. 100세에 낳은 자식이지만 하나님이 주셨으니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달라하시면 또 돌려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말이다. 많은 성도들이 여기에서 실패한다. 받는 것까지는 성공하지만 다시 돌려드리는 데에는 인색한 것이다. 당신은 과연 어떠한 사람인가?
또한 하나님께 드리는 방법도 자신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대로 그는 햐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자기가 살고 있는 브엘세바가 아니라 하나님이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그곳에서 이삭을 바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자신이 감당해야 할 부분에 있어서는 끝까지 남들과 상의하지 않았으며 그것을 귀뜸도 해주지 않았다.
이삭은 당시 몇 살이었을까? 어떤 주석 책에 보면, 16~17세정도라고 이야기하고 있고,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책에 의하면 당시 이삭의 나이는 25세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율법의 해설서인 미드라쉬에 의하면 당시 이삭은 당시 37세였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3일길을 걸어가되, 번제에 사용할 나무장작을 등짐에 지고 걸어갈 수 있는 나이였음에는 분명하다.
그런데 자기 아버지가 자기를 결박하여 자신을 제물로 삼으려할 때, 이삭은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조용히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순종하여 받드셨다.
결국 아브라함의 절대적인 믿음과 이삭의 순종으로 인해 하나님은 감동하셨다. 당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 이처럼 절대적으로 따라 행하는 아브라함을 보고서, 하나님도 그 자리에(모리아산에 성전을 세울 자리) 자기의 독생자를 바칠 각오를 다시금 굳게 결심하게 된 것이다.
결국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친구'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사41:8, 약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