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교회 이야기(35) 저 넓은 세계를
향해
2009년 8월 8일(토)
교회를 개척한 지 벌써 2년 6개월이 다 되어간다. 왜 이리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아직까지 이렇다할 것 하나 주님 앞에 내놓을 것이 없는데, 시간은 인정사정없이 나를 훓고 지나가버린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3년이 되어 가는데...
눅13장에 보면, 열매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가 나온다. 이 비유의 핵심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렇다. 아버지의 파송을 받아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을 변화시킨 다음, 하나님의 나라의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3년동안 사역을 하신다. 하지만 그들은 변화하지 아니했으며 그들에게서 열매 또한 딸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어느날 포도원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내가 삼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그러자 포도원지기인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교회가 3년차가 되어가면 나는 교회가 어느정도 수준에 도달하리라 생각했었다. 숫적인 측면에 있어서나 재정적인 측면에 있어서 말이다. 그래서 그동안 교회를 개척할 때에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하고, 이제는 교회가 자립하여 다른 교회를 도울 수 있는 교회가 되어, 복음의 빚을 갚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었다. 그런데 막상 그날이 되어가지만 부족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렇다면 창22장의 사건이 아직까지 내게서 지나가지 않았단 말인가? 여러분은 창22장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최종적인 시험인 번제단에 자기 아들을 바치라는 말씀을 듣고 어떻게 했었는지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때 아브라함은 최종적인 시험을 통과했다.
그렇다면 최종적인 시험을 통과한 아브라함의 그후의 삶은 어떠했을까? 창세기 24장 1절에서는 아브라함의 근황을 이렇게 소개한다.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그랬었다. 그는 번제단에 아들을 바친 이후, 평탄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었다. 그에게는 더 이상 시험거리도 없었던 것이다. 그의 지조있는 믿음을 최종적으로 하나님께서 승인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나는 아직도 넘어야 할 산과 건너야 할 강이 남아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사실 어찌 하루 아침에 주님보시기에 합당만한 믿음이 떡하고 생길 수 있겠는가? 요즘 들어와서 얼마나 나 자신을 뒤돌아보는게 하는지 잘 모르겠다.
"오, 하나님, 저를 하나님의 나라건설의 도구로 그리고 복음의 연장으로 써 주소서."
1. 교회개척 전에 품은 비젼
누구든지 그렇게 하겠지만 나도 교회를 개척하기 전에, 내가 꿈꾸던 교회, 아니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교회에 대해 꿈을 꾸었다. 내가 교회를 개척하면 이러이러게 해 보리라고 다짐했던 것이다. 그것은 결코 하루 아침에 생겨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차적으로 그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것은 최종적으로 5가지로 정리되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 교회의 5대비젼이 되었다. 그것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하나, 모든 사람이 쉬어갈 수 있는 참된 안식처로서 생명의 둥지가 되겠습니다.
둘,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의 핵심적인 진리를 깨달아, 가난과 무지와 질병과 저주로부터 벗어나도록 하겠습니다.
셋, 모든 성도가 먼저 제자가 되고 그 다음에는 또 다른 제자를 낳고 길러내는 지도자가 되게 하겠습니다.
넷, 예수님 다시 오실 날이 멀잖은 이 때에 모든 성도가 주님맞이할 거룩한 신부가 되고 하나님 나라의 도래할 때,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겠습니다.
다섯, 동북아의 최대의 선교지인 중국에 그리고 우리 핏줄인 북한에 복음을 전하여 마지막 시대의 추수의 사명을 감당하겠습니다.
이러한 다섯까지 비젼은 23년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지켜보았고 그리고 성경의 핵심진리들을 깨달은 다음에 스스로 내 속에서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진 것들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성장하지 않는 요인은 무엇일까? 여러가지 요인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내 생각에는 외적인 요인보다 내적인 요인이 훨씬 더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파벌싸움, 직분싸움, 평신도와 목회자와의 알력다툼 등. 그러다 보니 교회는 안식처가 되기 전에, 갈등과 시험의 장소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았다. 그래서 우리 동탄명성교회는 권력을 잡아보기 위한 다툼의 현장에서 벗어나, 서로가 서로를 위해 기도해주며 위로해 주고, 남을 나보다 더 낫게 여기므로, 교회가 평안한 안식처가 되기를 사모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첫번째 비젼이 되었다.
그리고 두번째 비젼은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복들 중에서, 이미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해놓으신 일들을 통해,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때 누려야 할 기본적인 복이 무엇인지를 정의해 놓은 것이다. 그것은 가난과 무지와 질병과 저주에서 성도들을 해방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결코 가난하게 사는 것이 축복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 또한 복음의 핵심진리들을 몰라 질병에 시달리고 저주 가운데에 사는 것이 결코 주님의 뜻이 아닌 것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꼭 이루어야 할 두번째 사명은 예수님께서 그의 공생애를 통해 이뤄놓으신 축복들을 받아누리도록 하자는 것이다. 또한 이것을 준비하면서 깨달은 것은 이러한 기본적인 축복은 기도를 통해 이뤄진다고 하기보다는 선포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든지 주 예수의 이름으로 가난과 무지와 질병과 저주가 떠나가도록 명령함으로서 이 기본적을 축복을 받아누릴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개척 2년의 기간 중에 약 1년 정도를 이러한 복음적 진리의 선포에 역점을 두었다.
이제 우리는 세번째 비젼을 보아야 한다. 세번째 비젼은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들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대한 방법적인 면을 정의해 본 것이다. 사실 우리 신앙생활의 목표는 변화가 아닌가? 죄가 가득한 사람이 변화되어 성령이 충만한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이고, 세상적인 가치관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가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은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변화를 쉽게 하느냐 하는 것이다. 나는 그 환경을 소그룹 제자훈련이라는 환경으로 보았다. 예수님께서 3년동안 소그룹 환경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듯이, 나도 이러한 제자훈련을 통해 서로가 서로의 장점과 단점을 바라보면서 서로 보고 배울 수 있기를 바랬던 것이다. 또한 그러한 변화는 사실 거대한 환경보다는 작은 소그룹 환경에서 더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환경과 방법으로 소그룹 제자훈련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네번째 비젼은 정말 다른 교회에서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비젼이라고 감히 말씀드린다. 어떤 교회에서는 성도들로 하여금 주님의 거룩한 신부가 되게 하는 것을 표어로 삼는 경우를 본 적은 있다. 하지만 우리 교회는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신부가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것까지를 최종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기본적인 목표는 두번째 비젼에 새겨두었다. 그러나 이 네번째 비젼은 우리의 신앙생활의 최종적인 목표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정리해 본 것이다.
누구든지 예수그리스도를 자신의 개인적인 구주와 왕으로 믿으면 그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하지만 다시오시는 주님의 거룩한 신부가 되게 하는 것과 앞으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상속자가 되게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신부가 되게 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공중이 강림하실 때 모두 들림받는 성도 즉 휴거성도가 되게 하는 것을 의미하고, 상속자가 되게 하는 것은 천년왕국을 거쳐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갔을 때,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서 살면서 온 땅을 다스리는 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은 어떠한가?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럭저럭 만족한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다시 오실 주님의 거룩한 신부가 되기를 사모하며,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되기를 사모하고 있는가? 그러므로 우리 교회의 신앙목표의 수준은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 모두가 다 주님처럼 온전하고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 이르는 것을 최종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간신히 구원받기 위해, 아니면 천국가기 위해 신앙생활하는 정도를 꿈꾸고 있지 않다.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곧 우리 눈 앞에 펼쳐질 주 예수님의 공중강림시 휴거성도가 되는 것을 목표로 나아가고 있으며, 또한 천년왕국과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늘의 상속자가 되게 하는 것을 가르치며 그렇게 되도록 양육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교회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분명히 나누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복음의 빚진 자의 심정으로 아직 복음을 모르는 자들을 섬길 것임을 천명하고 있는데, 이것이 우리 교회의 마지막 비젼이다. 이 마지막 비젼은 아래에서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2. 그분이 있어서
사람들은 저마다 욕심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욕심들은 끝도 없이 계속된다. 그러다보니 피차 물고 물어뜯고 시기하고 질투하게 된다. 내가 올라서지 못하면 오히려 내가 짓밟힐 것이라는 생각이 만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사랑이 식어지고, 반목과 질시만 가득한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교회는 그러한 곳이 되어서는 아니된다. 우리와 같은 죄인들을 위해 자기의 하늘영광보좌를 버리고,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을 우리는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는 우리가 조금만 귀를 기울일 수만 있다면 그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 가운데에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다 들을 수 있는 특별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가진 축복을 우리 자신만을 위해 즐기며 사는 존재가 아닌 것을 금방 알게 된다. 그러다보니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기본이 된다.
나는 벌써 8년째 돕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 그는 40대 중반정도의 나이를 지니신 분이다. 나는 이분을 내가 이곳에 교회를 세우기 전에, 부목사로 있던 일산명성교회에서 만나게 되었다. 교회 로비에서 만난 그분은 정말의 언덕에 서 있는듯 보였다. 그는 예수님도 몰랐고 세상 모든 것이 다 싫다고 했다. 죽음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나는 의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자초지종을 들어보았다. 그랬더니 그는 여타의 다른 사람들 즉 돈을 뜯어내기 위해 거짓으로 자신을 위장하여 교회에 오는 사람 같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때 당시 우선 그가 살아갈 수 있도록 17만원인가를 그에게 도와드렸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벌써 8년이 다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를 도울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다. 교회가 개척되어 1년 6개월이 될 때까지 사실 교회의 성도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우리는 쉬지 않고 전도했으며, 정말 최선을 다했다. 우리는 개척교회에서는 감히 시도해 볼 수 없는 일들까지 기꺼이 해 보았다. 오직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운다는 일념하에. 그러다 보니 성도수가 120명까지(아이들포함) 늘어나게 되었다.
그런데 점차 동탄의 아파트 입주가 마무리되고, 종교부지 위에 세워진 교회들이 들어서다 보니, 우선 새로 교회를 찾는 사람들은 개척교회를 돌아보지 않았다. 우리는 그 과정을 매주마다 지켜보았기 때문에 다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전도에 쉬지 않았다. 오지 않더라도 할 도리는 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 입주하는 단지에 들어가, 얼마나 많은 전도지를 돌리고 또 돌렸는지 모른다. 무릎이 다 닳도록 해 보았다. 그렇게 해서 몇 달을 그렇게 해 보았지만 2천 3천세대 입주가정 가운데 한 두 가정 정도가 방문할 뿐이었다. 더 이상은 없었다.
확실히 교회는 새로 들어오는 성도가 없다보면 교회 규모가 들어드는가 보다. 개척 2년차가 지나가니, 교회의 스타일과 목사님의 목회스타일이 자신의 신앙관과 맞지 않다고 하는 이들과 다시 다른 곳으로 이사가는 가정들로 인해, 교인숫자는 점점 줄어갔다. 이제는 어느정도 안정되어, 90명정도(어린이포함)의 성도로 안정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문제는 교회를 개척한지 2년이 흐르다보니, 성도수 120명과 이전에 제가 부목사로 있었던 교회에서 교회적인 지원이 가능한 상태로 맞추어진 교회 운영에 차질이 생기게 된 것이다. 사실 나는 이전 교회에서 지원하는 지원금 모두를 나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고 교회살림을 위해 모조리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올해 3월부터 이전교회의 재정지원이 끊기고, 성도수가 90명으로 줄어들게 되자, 교회 임대비를 감당하기도 벅찬 상태가 되고 말았다.
동탄지역에 있는 다른 개척교회들 중에는 상가를 분양받은 교회가 참 많이 있다. 하지만 우리 교회는 상가를 분양받은 것도 아니며, 상가를 임대해서 쓰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보니 2차에 걸린 예배당 이전으로 인해, 우리 교회 예배당의 사이즈가 커진 만큼 재정적인 지출도 늘어갔던 것이다.
하지만 그분은 우리의 이러한 실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번만 이번만하면서 도움을 청하기를 계속해 오는 것이 아닌가! 때로는 냉정하게 처리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목회자는 기도로서 지원해주는 존재이지 결코 물질로 돕는 존재가 아닙니다."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성도님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가 그분의 요청에 대한 항상 나의 똑같은 대답이었고, 그리고 그분의 도움을 거절한 적도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에게서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몇 달 전에 그분이 직장에 취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월급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집에 차압들어온 것을 또한 막을 수도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부끄럽지 않는 사람구실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소식을 듣게 되는 순간, 어찌나 기쁘던지... 벌써 8년째가 아닌가?
시작이 있다면 끝이 있다는 이야기가 빈 말이 아닌가 싶다. 이제 그분과의 이야기도 접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내가 특별히 이분의 이야기를 언급하는 이유는 다른 데에 있지 않다. 이제 우리 교회도 그동안의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나 재정적인 자립의 단계로 들어가고 있음에 대한 징조가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사실 이제까지 그분이 있어서 행복했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나도 많이 힘들었을 때, 그 답답한 마음을 어떻게 해결 할 수없었을텐데, 그분이 있어서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분이 있어서, "나는 저분보다는 훨씬 낫지 아니한가!"를 얼마나 많이 마음 속에 되뇌이며 말했는지 모르기 때문이리라.
3. 더 넓은 세상을 향해
사실 나는 개척한지 3년차가 되면, 재정적인 자립과 더불어 이웃을 섬기며 열방에 선교적 지원을 할 수 있는 교회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믿었다. 아직 완전한 3년차가 되지 않아서 어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잘 판단이 서지를 않지만, 아직 우리 교회는 남을 도울만한 형편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생각해 보았다. "우리 교회가 아무리 적다 하더라도, 우리 교회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우리도 완수해야 되지는 않을까?"하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막상 그 일을 시작하려 하니,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사실 나도 아직까지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도와주시는 분들에 의해 살아가고 있는 형편인데, 어찌 그러한 나와 우리 교회가 남을 도울 수 있으며 살 수 있을까하고 말이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아까 말한 그분으로 인해서 말이다. 내가 남을 돕지 못하는 것은 내가 남을 도울 수 있는 형편이 안 되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내게 남을 도우려는 마음이 없어서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8년전에 만난 그분을 통해 이제껏 정말 많은 교훈을 얻었던 것이다. 남을 돕는 것은 준비되어져서 돕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한 것임을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라도 시작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더 좋은 것을 우리에게 안겨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4. 결론
지금은 마지막 시대다. 조금만 시야를 돌려보면, 우리 주 예수님께서 얼마나 우리들 앞에 가까이 와 있는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날마다 쏟아지는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여러가지 징조들과 사건들이 아침신문을 장식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초를 아끼며 살아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특히 오늘 하루만이라도 그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마지막 시간인 것처럼 사용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결정했다. 우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라도 시작해 보기로 말이다. 이제 내일모레(8월 10일)면 우리 교회가 정식적으로 중국선교를 위해 첫발을 내딛게 되는 날이 된다. 중국의 처소교회의 지도자들을 교육하는 자리에 하나님께서 나를 써 주신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나는 중국에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백두산이나 여러 관광지들을 여행차 가본다는 것이 제 마음에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성도들과 나를 후원하는 이들의 선교헌금에 의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것을 어찌 세상 관광하는 데에 사용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중국에 가 보지를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제대로 중국에 갈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선교하러 갈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것이 주님이 바라시는 바요, 그것이 주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 남겨두신 이유이며, 동탄에 교회를 세워주신 이유가 아니겠는가!
이제 내일모레면 그날이 된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중국에 가면 중국 공안당국에 적발되어 붙잡혀 있을 수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전염병이 창궐한 이 때에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사도바울의 말처럼 주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을 완수하는 데에는 목숨도 초개같이 버릴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주님께서 하시는 일에 순종할 따름이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 마지막 때에 저로 하여금 해외에 나가서 주님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가고 오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과 거기서 해야할 모든 일들 가운데 하나님의 도우심과 긍휼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저를 붙들어 주시고 성령으로 충만케해주시고, 담대하게 복음을 잘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09년 8월 8일(토)
교회를 개척한 지 벌써 2년 6개월이 다 되어간다. 왜 이리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아직까지 이렇다할 것 하나 주님 앞에 내놓을 것이 없는데, 시간은 인정사정없이 나를 훓고 지나가버린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3년이 되어 가는데...
눅13장에 보면, 열매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가 나온다. 이 비유의 핵심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렇다. 아버지의 파송을 받아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을 변화시킨 다음, 하나님의 나라의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3년동안 사역을 하신다. 하지만 그들은 변화하지 아니했으며 그들에게서 열매 또한 딸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어느날 포도원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내가 삼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그러자 포도원지기인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교회가 3년차가 되어가면 나는 교회가 어느정도 수준에 도달하리라 생각했었다. 숫적인 측면에 있어서나 재정적인 측면에 있어서 말이다. 그래서 그동안 교회를 개척할 때에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하고, 이제는 교회가 자립하여 다른 교회를 도울 수 있는 교회가 되어, 복음의 빚을 갚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었다. 그런데 막상 그날이 되어가지만 부족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렇다면 창22장의 사건이 아직까지 내게서 지나가지 않았단 말인가? 여러분은 창22장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최종적인 시험인 번제단에 자기 아들을 바치라는 말씀을 듣고 어떻게 했었는지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때 아브라함은 최종적인 시험을 통과했다.
그렇다면 최종적인 시험을 통과한 아브라함의 그후의 삶은 어떠했을까? 창세기 24장 1절에서는 아브라함의 근황을 이렇게 소개한다.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그랬었다. 그는 번제단에 아들을 바친 이후, 평탄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었다. 그에게는 더 이상 시험거리도 없었던 것이다. 그의 지조있는 믿음을 최종적으로 하나님께서 승인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나는 아직도 넘어야 할 산과 건너야 할 강이 남아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사실 어찌 하루 아침에 주님보시기에 합당만한 믿음이 떡하고 생길 수 있겠는가? 요즘 들어와서 얼마나 나 자신을 뒤돌아보는게 하는지 잘 모르겠다.
"오, 하나님, 저를 하나님의 나라건설의 도구로 그리고 복음의 연장으로 써 주소서."
1. 교회개척 전에 품은 비젼
누구든지 그렇게 하겠지만 나도 교회를 개척하기 전에, 내가 꿈꾸던 교회, 아니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교회에 대해 꿈을 꾸었다. 내가 교회를 개척하면 이러이러게 해 보리라고 다짐했던 것이다. 그것은 결코 하루 아침에 생겨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차적으로 그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것은 최종적으로 5가지로 정리되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 교회의 5대비젼이 되었다. 그것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하나, 모든 사람이 쉬어갈 수 있는 참된 안식처로서 생명의 둥지가 되겠습니다.
둘,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의 핵심적인 진리를 깨달아, 가난과 무지와 질병과 저주로부터 벗어나도록 하겠습니다.
셋, 모든 성도가 먼저 제자가 되고 그 다음에는 또 다른 제자를 낳고 길러내는 지도자가 되게 하겠습니다.
넷, 예수님 다시 오실 날이 멀잖은 이 때에 모든 성도가 주님맞이할 거룩한 신부가 되고 하나님 나라의 도래할 때,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겠습니다.
다섯, 동북아의 최대의 선교지인 중국에 그리고 우리 핏줄인 북한에 복음을 전하여 마지막 시대의 추수의 사명을 감당하겠습니다.
이러한 다섯까지 비젼은 23년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지켜보았고 그리고 성경의 핵심진리들을 깨달은 다음에 스스로 내 속에서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진 것들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성장하지 않는 요인은 무엇일까? 여러가지 요인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내 생각에는 외적인 요인보다 내적인 요인이 훨씬 더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파벌싸움, 직분싸움, 평신도와 목회자와의 알력다툼 등. 그러다 보니 교회는 안식처가 되기 전에, 갈등과 시험의 장소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았다. 그래서 우리 동탄명성교회는 권력을 잡아보기 위한 다툼의 현장에서 벗어나, 서로가 서로를 위해 기도해주며 위로해 주고, 남을 나보다 더 낫게 여기므로, 교회가 평안한 안식처가 되기를 사모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첫번째 비젼이 되었다.
그리고 두번째 비젼은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복들 중에서, 이미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해놓으신 일들을 통해,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때 누려야 할 기본적인 복이 무엇인지를 정의해 놓은 것이다. 그것은 가난과 무지와 질병과 저주에서 성도들을 해방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결코 가난하게 사는 것이 축복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 또한 복음의 핵심진리들을 몰라 질병에 시달리고 저주 가운데에 사는 것이 결코 주님의 뜻이 아닌 것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꼭 이루어야 할 두번째 사명은 예수님께서 그의 공생애를 통해 이뤄놓으신 축복들을 받아누리도록 하자는 것이다. 또한 이것을 준비하면서 깨달은 것은 이러한 기본적인 축복은 기도를 통해 이뤄진다고 하기보다는 선포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든지 주 예수의 이름으로 가난과 무지와 질병과 저주가 떠나가도록 명령함으로서 이 기본적을 축복을 받아누릴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개척 2년의 기간 중에 약 1년 정도를 이러한 복음적 진리의 선포에 역점을 두었다.
이제 우리는 세번째 비젼을 보아야 한다. 세번째 비젼은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들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대한 방법적인 면을 정의해 본 것이다. 사실 우리 신앙생활의 목표는 변화가 아닌가? 죄가 가득한 사람이 변화되어 성령이 충만한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이고, 세상적인 가치관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가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은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변화를 쉽게 하느냐 하는 것이다. 나는 그 환경을 소그룹 제자훈련이라는 환경으로 보았다. 예수님께서 3년동안 소그룹 환경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듯이, 나도 이러한 제자훈련을 통해 서로가 서로의 장점과 단점을 바라보면서 서로 보고 배울 수 있기를 바랬던 것이다. 또한 그러한 변화는 사실 거대한 환경보다는 작은 소그룹 환경에서 더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환경과 방법으로 소그룹 제자훈련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네번째 비젼은 정말 다른 교회에서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비젼이라고 감히 말씀드린다. 어떤 교회에서는 성도들로 하여금 주님의 거룩한 신부가 되게 하는 것을 표어로 삼는 경우를 본 적은 있다. 하지만 우리 교회는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신부가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것까지를 최종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기본적인 목표는 두번째 비젼에 새겨두었다. 그러나 이 네번째 비젼은 우리의 신앙생활의 최종적인 목표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정리해 본 것이다.
누구든지 예수그리스도를 자신의 개인적인 구주와 왕으로 믿으면 그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하지만 다시오시는 주님의 거룩한 신부가 되게 하는 것과 앞으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상속자가 되게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신부가 되게 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공중이 강림하실 때 모두 들림받는 성도 즉 휴거성도가 되게 하는 것을 의미하고, 상속자가 되게 하는 것은 천년왕국을 거쳐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갔을 때,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서 살면서 온 땅을 다스리는 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은 어떠한가?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럭저럭 만족한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다시 오실 주님의 거룩한 신부가 되기를 사모하며,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되기를 사모하고 있는가? 그러므로 우리 교회의 신앙목표의 수준은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 모두가 다 주님처럼 온전하고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 이르는 것을 최종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간신히 구원받기 위해, 아니면 천국가기 위해 신앙생활하는 정도를 꿈꾸고 있지 않다.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곧 우리 눈 앞에 펼쳐질 주 예수님의 공중강림시 휴거성도가 되는 것을 목표로 나아가고 있으며, 또한 천년왕국과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늘의 상속자가 되게 하는 것을 가르치며 그렇게 되도록 양육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교회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분명히 나누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복음의 빚진 자의 심정으로 아직 복음을 모르는 자들을 섬길 것임을 천명하고 있는데, 이것이 우리 교회의 마지막 비젼이다. 이 마지막 비젼은 아래에서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2. 그분이 있어서
사람들은 저마다 욕심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욕심들은 끝도 없이 계속된다. 그러다보니 피차 물고 물어뜯고 시기하고 질투하게 된다. 내가 올라서지 못하면 오히려 내가 짓밟힐 것이라는 생각이 만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사랑이 식어지고, 반목과 질시만 가득한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교회는 그러한 곳이 되어서는 아니된다. 우리와 같은 죄인들을 위해 자기의 하늘영광보좌를 버리고,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을 우리는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는 우리가 조금만 귀를 기울일 수만 있다면 그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 가운데에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다 들을 수 있는 특별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가진 축복을 우리 자신만을 위해 즐기며 사는 존재가 아닌 것을 금방 알게 된다. 그러다보니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기본이 된다.
나는 벌써 8년째 돕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 그는 40대 중반정도의 나이를 지니신 분이다. 나는 이분을 내가 이곳에 교회를 세우기 전에, 부목사로 있던 일산명성교회에서 만나게 되었다. 교회 로비에서 만난 그분은 정말의 언덕에 서 있는듯 보였다. 그는 예수님도 몰랐고 세상 모든 것이 다 싫다고 했다. 죽음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나는 의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자초지종을 들어보았다. 그랬더니 그는 여타의 다른 사람들 즉 돈을 뜯어내기 위해 거짓으로 자신을 위장하여 교회에 오는 사람 같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때 당시 우선 그가 살아갈 수 있도록 17만원인가를 그에게 도와드렸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벌써 8년이 다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를 도울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다. 교회가 개척되어 1년 6개월이 될 때까지 사실 교회의 성도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우리는 쉬지 않고 전도했으며, 정말 최선을 다했다. 우리는 개척교회에서는 감히 시도해 볼 수 없는 일들까지 기꺼이 해 보았다. 오직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운다는 일념하에. 그러다 보니 성도수가 120명까지(아이들포함) 늘어나게 되었다.
그런데 점차 동탄의 아파트 입주가 마무리되고, 종교부지 위에 세워진 교회들이 들어서다 보니, 우선 새로 교회를 찾는 사람들은 개척교회를 돌아보지 않았다. 우리는 그 과정을 매주마다 지켜보았기 때문에 다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전도에 쉬지 않았다. 오지 않더라도 할 도리는 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 입주하는 단지에 들어가, 얼마나 많은 전도지를 돌리고 또 돌렸는지 모른다. 무릎이 다 닳도록 해 보았다. 그렇게 해서 몇 달을 그렇게 해 보았지만 2천 3천세대 입주가정 가운데 한 두 가정 정도가 방문할 뿐이었다. 더 이상은 없었다.
확실히 교회는 새로 들어오는 성도가 없다보면 교회 규모가 들어드는가 보다. 개척 2년차가 지나가니, 교회의 스타일과 목사님의 목회스타일이 자신의 신앙관과 맞지 않다고 하는 이들과 다시 다른 곳으로 이사가는 가정들로 인해, 교인숫자는 점점 줄어갔다. 이제는 어느정도 안정되어, 90명정도(어린이포함)의 성도로 안정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문제는 교회를 개척한지 2년이 흐르다보니, 성도수 120명과 이전에 제가 부목사로 있었던 교회에서 교회적인 지원이 가능한 상태로 맞추어진 교회 운영에 차질이 생기게 된 것이다. 사실 나는 이전 교회에서 지원하는 지원금 모두를 나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고 교회살림을 위해 모조리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올해 3월부터 이전교회의 재정지원이 끊기고, 성도수가 90명으로 줄어들게 되자, 교회 임대비를 감당하기도 벅찬 상태가 되고 말았다.
동탄지역에 있는 다른 개척교회들 중에는 상가를 분양받은 교회가 참 많이 있다. 하지만 우리 교회는 상가를 분양받은 것도 아니며, 상가를 임대해서 쓰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보니 2차에 걸린 예배당 이전으로 인해, 우리 교회 예배당의 사이즈가 커진 만큼 재정적인 지출도 늘어갔던 것이다.
하지만 그분은 우리의 이러한 실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번만 이번만하면서 도움을 청하기를 계속해 오는 것이 아닌가! 때로는 냉정하게 처리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목회자는 기도로서 지원해주는 존재이지 결코 물질로 돕는 존재가 아닙니다."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성도님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가 그분의 요청에 대한 항상 나의 똑같은 대답이었고, 그리고 그분의 도움을 거절한 적도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에게서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몇 달 전에 그분이 직장에 취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월급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집에 차압들어온 것을 또한 막을 수도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부끄럽지 않는 사람구실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소식을 듣게 되는 순간, 어찌나 기쁘던지... 벌써 8년째가 아닌가?
시작이 있다면 끝이 있다는 이야기가 빈 말이 아닌가 싶다. 이제 그분과의 이야기도 접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내가 특별히 이분의 이야기를 언급하는 이유는 다른 데에 있지 않다. 이제 우리 교회도 그동안의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나 재정적인 자립의 단계로 들어가고 있음에 대한 징조가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사실 이제까지 그분이 있어서 행복했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나도 많이 힘들었을 때, 그 답답한 마음을 어떻게 해결 할 수없었을텐데, 그분이 있어서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분이 있어서, "나는 저분보다는 훨씬 낫지 아니한가!"를 얼마나 많이 마음 속에 되뇌이며 말했는지 모르기 때문이리라.
3. 더 넓은 세상을 향해
사실 나는 개척한지 3년차가 되면, 재정적인 자립과 더불어 이웃을 섬기며 열방에 선교적 지원을 할 수 있는 교회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믿었다. 아직 완전한 3년차가 되지 않아서 어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잘 판단이 서지를 않지만, 아직 우리 교회는 남을 도울만한 형편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생각해 보았다. "우리 교회가 아무리 적다 하더라도, 우리 교회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우리도 완수해야 되지는 않을까?"하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막상 그 일을 시작하려 하니,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사실 나도 아직까지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도와주시는 분들에 의해 살아가고 있는 형편인데, 어찌 그러한 나와 우리 교회가 남을 도울 수 있으며 살 수 있을까하고 말이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아까 말한 그분으로 인해서 말이다. 내가 남을 돕지 못하는 것은 내가 남을 도울 수 있는 형편이 안 되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내게 남을 도우려는 마음이 없어서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8년전에 만난 그분을 통해 이제껏 정말 많은 교훈을 얻었던 것이다. 남을 돕는 것은 준비되어져서 돕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한 것임을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라도 시작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더 좋은 것을 우리에게 안겨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4. 결론
지금은 마지막 시대다. 조금만 시야를 돌려보면, 우리 주 예수님께서 얼마나 우리들 앞에 가까이 와 있는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날마다 쏟아지는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여러가지 징조들과 사건들이 아침신문을 장식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초를 아끼며 살아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특히 오늘 하루만이라도 그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마지막 시간인 것처럼 사용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결정했다. 우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라도 시작해 보기로 말이다. 이제 내일모레(8월 10일)면 우리 교회가 정식적으로 중국선교를 위해 첫발을 내딛게 되는 날이 된다. 중국의 처소교회의 지도자들을 교육하는 자리에 하나님께서 나를 써 주신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나는 중국에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백두산이나 여러 관광지들을 여행차 가본다는 것이 제 마음에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성도들과 나를 후원하는 이들의 선교헌금에 의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것을 어찌 세상 관광하는 데에 사용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중국에 가 보지를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제대로 중국에 갈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선교하러 갈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것이 주님이 바라시는 바요, 그것이 주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 남겨두신 이유이며, 동탄에 교회를 세워주신 이유가 아니겠는가!
이제 내일모레면 그날이 된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중국에 가면 중국 공안당국에 적발되어 붙잡혀 있을 수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전염병이 창궐한 이 때에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사도바울의 말처럼 주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을 완수하는 데에는 목숨도 초개같이 버릴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주님께서 하시는 일에 순종할 따름이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 마지막 때에 저로 하여금 해외에 나가서 주님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가고 오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과 거기서 해야할 모든 일들 가운데 하나님의 도우심과 긍휼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저를 붙들어 주시고 성령으로 충만케해주시고, 담대하게 복음을 잘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